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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이야기]친환경의 나라(2)
    오늘 환경문제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것은 바로 쓰레기 문제이다. 인류가 매일 매일 쏟아내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들은 땅과 바다를 오염시킬 뿐 아니라, 한정된 자원을 고갈시키고 있다. 그럴듯한 광고에 매료되어 물건을 구매한 사람은, 아직 쓸 수 있는 물건들을 처리하는 일을 고민하게 된다. 배달음식을 주문해서 한 끼의 배를 채우면, 남은 음식쓰레기와 더불어 스티로폼과 비닐, 플라스틱 등 다양한 종류의 쓰레기를 처분해야 한다. 가급적 쓰레기로 나올 것을 줄이고, 쓰레기 중에 재활용이 가능한 것을 분리해서, 버리는 양을 최소화하는 것이 친환경적인 삶이다. 우리나라는 1995년부터 전국적으로 쓰레기 종량제를 실시하였고, 지금 세계에서도 쓰레기분리를 잘 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독일은 오래전부터 시작해서 1993년에 내가 갔을 때는 이미 생활화되어 있었다. 동네 곳곳에 재활용 쓰레기 수거함들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특이한 것은 빈병수거함이 그 재료의 차이에 따라 흰색, 녹색, 갈색 병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다. 독일의 환경정책은 쓰레기를 줄이고 재활용을 늘리는 것이고, 국민들 역시 그런 것이 생활화 되어 있다. 가급적 1회용 용기를 줄이기 위해 음료수 용기에 ‘저당’이라는 뜻의 ‘판트’(Pfand) 제도를 도입했다. 가령 음료를 담은 병, 플라스틱, 또는 종이팩의 경우 한번 쓰고 재활용수거함에 버리는 일회용이 있는가하면, 판트용으로 여러 회를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이 있다. 이런 음료수에는 판트 비용이 포함되어 있어서 다 사용한 뒤 가게로 가져가면, 그 판트 비용을 돌려받게 된다. 병은 모르겠는데, 주스를 담은 종이팩을 재사용하는 것이 특이하게 생각되었다. 보통 병은 50회 정도를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고, 플라스틱은 잘 세척하면 25회 정도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병이 무거우므로 차량운반 중 CO2가 더 많이 배출되는 것을 이유로 플라스틱이 더 환경적이라고 계산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쨌든 내가 있을 때에 비해 지금 이 판트제도는 훨씬 더 광범위해지고 일상화가 되어서 이제 마트에서 파는 음료용기 중 일회용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아울러 독일은 벼룩시장이 일상의 문화처럼 되어있다. 지역마다 주간으로 나오는 벼룩신문은 값이 비싼 편인데도 많은 독자들을 갖고 있다. 이 안의 정보를 갖고 직접 연락해서 서로 만나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벼룩시장이 온라인상에서 점점 발달해 가고 있다. 어디서나 그렇지만, 여기서도 정기적으로 열리는 큰 벼룩시장은 상업화되어 있어 새 물건을 가져다 파는 상인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동네에서 주말마다 열리는 벼룩시장은 주로 동네 사람들이 집에서 안 쓰는 물건을 가지고 나와서 사고판다. 가끔 부모가 지켜보는 가운데 어린 애들이 자기가 쓰던 물건을 직접 흥정하는 것을 보곤 했다. 환경과 경제를 교육하는 장이 되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이렇게 벼룩시장이 발달하다보니 남이 입던 옷을 입고, 쓰던 물건을 쓰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긴다. 심지어 아이 물건도 새로 사지 않고 남이 쓰던 것을 잘 세척해서 사용한다. 절약이라는 관점 이전에, 쓰레기를 줄이고 자원을 아낀다는 점에서 본받을 좋은 문화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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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07
  • [성서연구]지금은 기도 뿐입니다(예레미야 27장 16-18절)
    예레미야는 남 유다가 멸망하는 모든 과정을 지켜 본 눈물의 예언자입니다. 바벨론의 유다 침략은 세 차례에 나누어 이루어졌는데, 주전 605년에 1차 침공이 있었고, 다니엘 등이 포로가 되었습니다. 2차 침공은 주전 597년으로서 즉위한 지 석 달 밖에 되지 않은 여호야긴 왕이 에스겔 등이 함께 끌려갔습니다. 3차 침공은 주전 586년으로서 이때 유다는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시드기야는 유다의 마지막 왕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2차 침공 후에 있었던 말씀입니다. 이때는 아직 유다 왕국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멸하기로 작정하신 후였고, 나라는 완전히 피폐해진 상태였습니다. 그런데도 당시의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택하셨고,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이름을 두셨고, 날마다 하나님께 제사가 드려지고 있기에,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울러 바벨론에 약탈된 성전 기구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받은 예레미야는 그 반대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약탈된 성전 기구가 돌아올 것이며 포로들도 무사 귀환할 것이라고 말하는 선지자들을 믿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남아있는 유다 왕국마저 완전히 심판하기로 작정하신 터였습니다. 머지않아 느부갓네살의 3차 침공이 있을 것이고, 그때엔 유다 왕국은 사라질 판국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선지자들은 백성이 듣고 싶어 하는 좋은 말만 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백성들이 좋아하는 말을 전하는 거짓선지자들이었습니다. 이 와중에 예레미야만이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고, 바벨론 왕을 섬기라고 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을 섬기고 기다리면 때가 될 때 하나님께서 포로들이 돌아오게 하시고 무너진 예루살렘과 성전이 다시 회복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이런 메시지는 백성들에게 반감을 샀습니다. 예레미야는 매국노처럼 보였고, 많은 탄압을 받았습니다. 저는 예레미야가 살던 시대, 특히 서로 충돌하는 상반된 메시지가 선포되던 당시를 자주 생각해 봅니다. 그 이유는 오늘 우리 시대를 보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언젠가 유투브를 보니, 예언의 능력을 가졌다는 어떤 이들이 장차 대한민국이 세계 위에 우뚝 서서 전 세계를 선도할 것이며, 한국교회는 세계 선교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한국 경제가 세계 1위가 된다는 내용도 있었고, 몇 년 안에 통일이 되어 부강해질 것이라는 예언도 있었습니다. 정말 가슴이 흥분되는 내용입니다. 저도 그렇게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그러나 유투브에는 상반된 내용도 있었습니다.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의 때가 다가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타락한 교회와 사회를 향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심판의 채찍 중 하나가 북한의 핵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약 제게 선택권이 있다면 당연히 전자를 선택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합니다. 이때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요? 본문은 우리가 할 한 가지 일을 알려줍니다. 그것은 기도입니다. 예레미야 27장 18절은 이렇습니다. <만일 그들이 선지자이고 여호와의 말씀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이 여호와의 성전에와 유다의 왕의 궁전에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기구를 바벨론으로 옮겨가지 못하도록 만군의 여호와께 구하여야 할 것이니라> 그들이 진정으로 선지자라면 남아 있는 것이라도 바벨론으로 옮겨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기도입니다. 정치, 경제, 안보, 도덕 등 모든 분야가 위태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축복인지, 심판인지 알 수 없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한국교회의 기도가 식어버린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구국 기도원들이 문을 닫고, 기도하는 소리가 죽었습니다. 그 대신 갈등과 분쟁, 교권을 둘러싼 경쟁만 치열합니다. 뜻 있는 성도 여러분, 상황이 어떠하든 우리는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각자가 기도의 제물이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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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07
  • [소강석 칼럼]사막으로 간 꽃밭 여행자
    ‘사막에 숲이 있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방송작가이자 독립프로덕션 허브넷 대표인 이미애 작가가 쓴 책입니다. 죽음의 사막에 나무를 심어 생명의 숲으로 만든 인위쩐의 기적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2006년 식목일, KBS1TV '수요기획'에서 ‘숲으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인위쩐이라는 몽골 여인이 1985년 바이완샹과 결혼하였는데, 인위쩐의 아버지는 죽음의 땅 사막에 그녀를 내려놓고 가 버렸습니다. 그녀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사막이라 돌아가는 길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바이완샹의 순한 눈을 보고 차마 떠날 수가 없어서 정착을 하게 됩니다. 대신 그녀는 바이완샹에게 사막을 사람 사는 곳으로 만들자고 제안하고 친척이 준 양 한 마리를 팔아 나무 600그루를 사서 심기 시작합니다. 정말 누가 보면 말도 안 되는 바보 같은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묵묵히 한 그루, 한 그루 나무를 심기 시작하였고, 어느덧 20여 년의 세월이 지나 사막 1400만 평을 온갖 나무와 채소가 자라는 믿을 수 없는 생명과 기적의 땅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미애 작가가 인워쩐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아 직접 책을 쓰고 다큐멘터리로 방송 제작까지 하면서 우리나라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인위쩐도 대단하지만 이걸 연구해서 책으로 엮고 다큐로 제작까지 한 이미애 작가도 참 대단한 분이시죠. 저는 이 책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우연히 이 책을 알게 되어서 송구한 마음과 기대감이 겹쳐 단숨에 다 읽어버렸습니다. 문장 하나 하나가 그림처럼 펼쳐졌고, 인위쩐의 이야기가 제 앞에 영화처럼 한 장면 한 장면 펼쳐졌습니다. 저 역시 ‘사막으로 간 꽃밭 여행자’라는 시집을 낸 적이 있는데, 그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의 시가 있습니다. “꽃밭을 여행했으면 사막으로 가라 / 사막을 다녀왔으면 다시 꽃밭으로 가라 / 꽃밭의 향기를 사막에 날리고 / 사막의 침묵을 꽃밭에 퍼뜨리라 / 꽃밭에는 사막의 별이 뜨고 / 사막에는 꽃밭의 꽃잎이 날리리니.” 그런데 저도 예장합동 총회장, 한교총 대표회장으로서 사막으로 간 꽃밭여행자가 되어 공교회와 공적 사역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쁘기만 하였지 아무 흔적도 없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만 같아 허전함을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높은 탑을 쌓든지 넓은 도로를 내든지 해야 하는데 눈에 보이는 일을 아무 것도 하지 못한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러나 보이지는 않지만 한국교회와 민족의 광야에 꽃씨를 심고 나무를 심는 사역을 해 왔습니다. 어쩌다 고향에 가면 어린시절에 거의 벌거숭이 산이었지만 지금은 울창한 무덤산을 보며 느끼는 일이 있습니다. 어린시절 벌거숭이 산에 식목일마다 나무를 심었는데 그때 심은 나무가 지금은 울창한 숲을 이루었거든요. 저 역시 인위쩐처럼 오늘도 사막에 나무를 심고 꽃씨를 심고 있습니다. 총회장, 한교총 대표회장이 끝나도 저는 계속 이 일을 할 것입니다. 십 수 년 전부터, 이슬람, 동성애, 종교인과세 문제를 대처하고, 한국교회 연합과 생태계 보호사역을 위해서 눈물로 씨를 뿌려왔습니다. 저는 이념적 세계관을 가지고 공적 사역을 해 온 것이 아니라 순수한 신앙적 가치와 신념을 가지고 이런 일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이 정도라도 한국교회를 지키고 건강한 사회를 보호할 수 있다고 스스로 위무를 받기도 합니다. 코로나 이후에는 한국교회 예배 회복을 위해서 애간장이 타도록 전면에서 활동을 하였습니다. 좀 더 온전한 예배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가시지 않아 잠 못 이루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저는 절절포(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의 정신으로 사막에 꽃씨를 뿌릴 것입니다. 저의 시처럼 사막으로 간 꽃밭 여행자가 되어 방역에 힘쓰고 안전한 예배운동을 위해 앞장설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사막으로 간 꽃밭여행자가 되어 꽃씨를 뿌리면 코로나19와 반달리즘이 쓸고 간 폐허 속에 예배 회복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모든 영역에 다시 새 풀이 돋고 꽃이 피어나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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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07
  • [시사칼럼]그 쇳물 쓰지 마라
    5월의 첫 날을 “메이 데이(May Day)”라고 부릅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이미지와 사뭇 다른 “근로자의 날”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곳곳의 오월에 안타까운 사연들이 꽃같이 피었습니다. 1993년 5월 10일 태국의 한 인형공장에서 화재가 일어나 188명의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작업능률과 도난방지를 위해 출입구를 막아놓은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들을 추모하며 국제노동기구(ILO) 등이 제정한 날이 바로 “산업재해노동자의 날”(4월 28일)입니다. 한국은 올해 들어서야 이 날을 법정기념일에 포함하자는 발의가 나왔습니다. 2016년 5월 26일만 해도 서울 구의역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홀로 수리하던 약관의 청년이 사고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말입니다. 당시 진상규명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비용 절감을 위해 4-6명의 하청업체 직원에게 48개 역을 담당하게 함으로써 2인 1조 작업이 불가능한 상태를 조성하여 결국 어린 김 군이 홀로 작업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2월 국회환경노동위원회 산업재해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현대중공업 대표이사가 한 발언이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사고 유형을 보니 실질적으로 작업자 행동에 의해 많이 발생했다.. (작업장의) 불완전 상태는 안전시설투자로 바꿀 수 있지만, (작업자들의) 불완전한 행동은 상당히 어렵다.” 동회사는 최근 5년 간 산업재해신청 현황 1위였고, 직전 대비 사고가 2.2배 증가했으며, 사업장 특별관리도 실시되었으나 개선된 부분이 없다는 지적 끝에 나온 반응이었습니다. 이를 옹호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산업안전관리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들도 개인적인 책임을 강조하는데, 호통만 치면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부 의원들이 문제라는 식의 기사도 존재했습니다(조선, 2021.3.1). 하지만 동시에 “내 아들을 살려내라”며 울부짖는 어머니와 함께 젊은이를 사지로 내몬 기업과 환경을 규탄하는 목소리도 많았습니다. 이 분야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하인리히(Herbert W. Heinrich)는 1931년「산업재해예방 : 과학적 접근」에서 “1: 29 : 300 법칙”이라는 유명한 이론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중상자 1명이 나왔다면 이미 그 이전에 경상자가 29명과 잠재적 상해자 300명 정도가 있었으리라는 추정입니다. 그러면서 재해가 일어나는 과정을 다섯 단계로 설정했는데(도미노 이론), 그 중에서도 불완전한 행동이 산업재해의 주된 원인이라고 보았습니다(80%). 그러나 1969년 버드(Frank Bird)는 170만 건의 사고를 분석한 뒤 하인리히 이론을 수정․보완한 신 도미노 이론을 내놓습니다. 그에 따르면 재해는 <관리감독의 부족, 기본원인, 직접원인, 사고, 재해>의 다섯 단계를 거치는데(New Domino Theory),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원인은 바로 관리감독과 기본원인이며 따라서 이 둘에 주력해야 실질적으로 재해를 줄이고 예방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2020년 9월 가수 하림은 의미심장한 노래를 한 곡 발표했습니다. “그 쇳물 쓰지 마라”는 제목을 가진 이 노래 가사는 이렇습니다. “광염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 쓰지 마라 자동차도 만들지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마라...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 적 얼굴 찰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창문 곁에 세워두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 새끼 얼굴 한 번 만져보게.” 다음은 하림 씨의 말입니다. “십 년 전 바로 오늘, 당진에서 스물 아홉 청년이 용광로에 추락해 사망했다... 그 후로 여태까지 위험한 상황은 사라지지 않아서, 요즘도 일하다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목숨을 잃는다.” 2018년에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또 다른 이십 대 청년이 목숨을 잃자, 희생자 이름을 딴 법개정안(김용균법)까지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곳곳에 위험은 산재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동안 이러한 현실을 모른 척하고 살았을까요? 구약의 성전은 만군의 여호와를 모시는 신전치고는 너무 왜소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성경은 곡식 떠는 소까지도 챙겨주라는 말씀을 남겼을까요? 왜 예수님은 이 땅에 위험한 작업장에서 일하는 자의 모습으로 오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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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07
  • [의학칼럼]다낭콩팥병 ‘물이 보약
    물혹을 발생시키고 성장시키는 주된 원인은 ‘바소프레신’이라는 호르몬으로 알려졌다. 바소프레신은 주로 우리 몸에 물이 부족할 때 뇌하수체에서 정상적으로 분비되어 체내에서 물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도와주는 인체의 필수 호르몬이다. 예를 들어, 운동을 열심히 한 후 땀을 많이 흘리고 나면 갈증을 느끼게 되는 동시에 소변이 진노랑색으로 나오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이것은 체내의 수분이 부족해지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뇌하수체에서 바소프레신이 다량 분비되어 콩팥에서 수분의 배설이 감소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명이 유지되는데 필수적인 호르몬이 다낭콩팥병에서 물혹의 발생과 크기 증가의 핵심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낭콩팥병 환자에서 바조프레신이 적게 분비될수록 콩팥의 낭종 형성억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바조프레신은 우리가 물을 지속적으로 마실 때 효과적으로 억제되기 때문이다. 다낭콩팥병 환자에서 물을 많이 마실 때 낭종의 성장이 억제가 되는지에 대하여 몇가지 연구에서 증명되었고, 현재 대규모 전향적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연구결과들을 기다리는 동안 신장내과 전문의들은 다낭콩팥병 환자들에게 물을 많이 마시도록 권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물을 마셔야 하나요? 라고 물어보실 것이다. 의학적으로 소변의 오스몰농도가 280mOsm/kg 이하로 유지하도록 권고되고 있다. 필자는 환자의 측면에서 소변색이 투명한 연노랑색을 유지할 수 있도록 물섭취를 하도록 권한다. 환자의 체격에 따라 마시는 물의 양이 차이가 나겠지만 대개는 2-3리터의 물을 하루 종일 골고루 나누어 섭취하도록 권한다. 다낭콩팥병 환자에서 요로결석의 유병률이 20%로 높기 때문에 콩팥내 결석이 있거나 요로결석의 경험이 있는 경우라면 수분섭취량을 확실히 늘릴 것을 권한다. 하지만 환자의 콩팥기능의 상태에 따라 이러한 지침도 조정이 필요할 수 있으므로 자신의 수분섭취량에 대해 주치의사와 상의하길 권한다. 갈증이 없는데 물마시기란 때로는 힘든 일이다. 다낭콩팥병 환자들에게 보약이 될 수 있는 하루 2-3리터의 물 마시기를 위해서는 물 마시는 시간을 정해놓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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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07
  • [은혜의 말씀]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수14:6-15)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전쟁을 거의 마무리 지을 무렵 그들에게 중대한 한 과제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정복지를 지파별로 분배하는 문제였습니다. 땅을 분배하는 그 긴장된 자리에 갈렙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는 여호수아를 향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그러면 내가 올라가서 그 땅을 정복하겠나이다.”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충격이었습니다. 모두들 ‘어떻게 하면 제비를 잘 뽑아 좋은 땅을 차지할 수 있을까?’ 가슴 졸이고 있던 상황에서 갈렙의 뜻밖의 폭탄선언은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갈렙은 어떻게 이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이런 믿음의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1. 갈렙은 말씀을 확신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9절) 45년 전 가나안땅 정탐 때 “네가 밟는 땅은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약속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 약속대로 가나안을 정복하게 되는 날을 꿈꾸며 그 꿈에 취해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입니다. 갈렙은 이 약속의 말씀 때문에 늙지도 않았습니다. 말씀을 받은 사람은 위기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낙심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말씀을 좇아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동안 안정적으로 쌓아놓은 삶의 기반을 뒤로하고 고향을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어디서 나왔습니까?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왔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평생을 가슴속에 간직하며 붙들 수 있는 말씀의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일생을 걸 수 있는 말씀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붙들고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며 전진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2. 갈렙은 도전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12절) 사실 갈렙은 헤브론 산지에 구태여 갈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밟는 땅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갈렙은 도전합니다. 모두가 꺼리는 곳 위험한 곳으로, 오직 하나님의 꿈을 위해서 헤브론 산지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나이도 육체적 조건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한계가 한계가 되지 못합니다. 믿음은 도전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믿음으로 도전합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 교회를 통해 아직 헤브론 같은 이 땅이, 여러분의 직장이, 여러분의 이웃이 주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런 도전에는 헌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도전은 대가를 지불해야 성취할 수 있습니다. 그저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이룰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희생하는 것입니다. 내 땀도, 눈물도, 내 생명까지라도 주님께 드리기에 주저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로 일어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해야 할 부분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헌신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믿음의 도전은 헌신이라는 희생을 통해 꽃 피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헌신과 충성 땀과 눈물이 재료가 되어야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섬김과 헌신이 천국에서 해같이 빛날 것을 믿으며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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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07
  • [좌출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잠시 멈추니, 깊게 보이는 소중한 것들
    5월 5일 어린이날이 지났다. 첫째가 14살이니 14년 동안 5월 첫째 주가 되면 올해는 또 아이들과 함께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에 들어간다. 특히 우리 가족은 주말과 주일에는 교회로 인해, 주중에는 여러 상황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제대로 된 여행을 가지 못한 기간이 오래 되어서 2021년 어린이날에는 “어디든 나가야만” 했었다. 코로나가 걱정이 되고, 길게 늘어선 줄이 겁이 나기도 하고, 혹시 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 어쩌지, 라는 염려가 밀려왔지만 우리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어린이날이면 아이들이 가장 좋아할만한 곳, 꿈과 환상의 공간, 바로 ‘놀이공원’이다. 4일 저녁 애들에게 “내일은 놀이공원에 가자”라고 말하니, 큰 아이는 엄청 좋지만 사춘기다보니 절제해서 빙긋 웃는 수준이고, 둘째와 셋째는 춤을 추고, 막내는 뭣도 모르고 노는 거냐며 무조건 좋아한다. 밤새 천둥번개가 쳐서 엄마인 나는 마음을 졸였지만, 5일 새벽부터 파란 하늘이 펼쳐지고 날이 맑아지면서 아이들의 부푼 기대는 더욱 높아지고, 부산에서 경주로 향하는 차 안에서는 아이들끼리 노래를 부르며 오랜만에 나들이에 흥을 돋우며 신나했다. 도착하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긴 입장줄을 보며 나와 남편은 입이 쩍 벌어지게 놀랐지만 아이들은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다는 듯 신나게 기다리고, 기분 좋게 입장했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디즈니의 배경이, 판타지의 정점인 놀이동산을 삼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들어서면서부터 알았다. 마치 현실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입장하는 듯한 놀이동산의 넓은 문을 지나면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은 동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화려하면서도 웅장한 건물들이다. 그 건물들의 아름다움에 빠질 때 즈음에 나타나는 것은 현실 세계에는 없는 짜릿함을 선사해 줄 놀이기구들이 등장한다. 우리 가정은 4명의 아이들의 나이가 다 다르기에 팀별로 나누어 다녔다. 아빠와 함께 다니는 아이들은 바이킹, 롤러코스터 등 고난이도의 놀이기구, 엄마와 다니는 아이들은 가족 열차, 회전 목마 등 유아들이 탈 수 있는 것으로 즐겼다. 어린이날이라 오후에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평소 같으면 짜증내고 화를 내야 할 아이들은 그 때는 자기들끼리 즐겁게 이야기하고 놀면서 잘 기다렸다. 또한 놀이동산에 있을 때에는 아이들을 다그치거나 큰 목소리로 이야기해야 할 경우가 없을 정도로 말을 잘 들었다. “엄마, 11년 동안 살면서 오늘이 가장 즐거운 날이에요”라는 말을 둘째가 했을 만큼 아이들도 좋은 시간이었음에 틀림없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부부가 아이들에게 하루 온종일 집중해서 시간을 보낸 적이 많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에는 주일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으로 바빴고, 평일에는 각자 해야 하는 일 때문에 즐길수가 없었다. 물론 틈틈이 여유가 있을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는 썼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늘 부족했을 것이다. 겨우 하루, 아침부터 오후까지만 부부의 일들을 멈추고 아이들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다 쏟으니 힘이 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들에 대한 소중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도 깔깔대고, 긴 줄을 기다리면서도 장난을 치고, 놀이기구를 탈 때는 가슴이 콩닥콩닥 거린다고 서로 이야기하고… 함께 웃고, 함께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니 부모가 부모의 일을 멈추어야 아이들의 소중하고 귀함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매달 이렇게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겠다, 혹은 두 달에 한번 여행을 가겠다는 등의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의식적으로 나의 일을 멈추고 아이들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내야겠다는 결심을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잠든 아이들을 바라보며 했다. 잠시 나를 멈추니 우리 아이들의 소중함이 더 깊게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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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1-05-07
  • [신앙교육 나침반]타락한 세상에서 경건한 가정 세우기
    지금 우리는 타락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이 없다는 전제 아래, 삶의 모든 결정을 인간이 판단하고 선택하고 옳고 그름을 결정할 수 있다고 지속적이며 은밀한 자극으로 우리의 영혼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우리와 자녀들이 속한 세상의 동료집단은 이러한 세속적 인본주의로 가득 차 있으며, 그들은 우리에게 ‘타협’이라는 방법을 매우 지혜롭게 여기며 강요합니다. 그들은 사사기 17장 6절의 말씀과 같이 자기 마음대로, 아무 기준도 없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최선이며 지혜롭다는 것을 과시합니다. 그러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인본주의라는 고상한 철학에 매력을 느끼며 혼외정사나 동성애, 낙태 등에 대한 타협과 옹호에 자신도 모르게 동의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온통 가득하고, 그들의 생각과 모든 계획이 악한 이 세상을 보시고 어떤 생각을 하실까요? 창세기 6장 6-7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현재 상태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현재 번뇌와 근심이 가득하십니다. 하나님은 현재 큰 고통 가운데 신음하시며 한탄하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나님은 열렬히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칠흙같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려고 발버둥치는 가정이 있는지 열렬히 찾고 계십니다. 말라기 2장 15절 말씀에는 경건한 자손을 찾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함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Godly offspring)을 얻고자 하심이라.” 하나님은 지금 타락한 세상 속에서 경건한 가정을 애타게 찾고 계십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해보면, 경건한 가정을 세우려고 몸부림치는 부모를 찾고 계십니다. ‘경건한’(Godly)이란 말은 ‘하나님을 드러내는’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경건한 삶이란, 성경을 두 손에 잡고 거룩한 말과 모양을 갖춘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참된 경건이란 편안한 쇼파에 앉아서 자녀와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는 그 순간에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는 것, 파자마를 입고 누운 채로도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는 것, 즉 하나님과 일상속에서 매순간 동행하며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노아가 바로 그랬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제사드릴 때만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에녹 할아버지로부터 귀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은 거 같습니다. 그는 제사드릴 때뿐 아니라 모든 순간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창세기 7장 1절 말씀은 경건한 부모로 인해 한 가정이 어떻게 세워지는지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하나님은 노아에게서 ‘의로움’을 보셨습니다. 이는 노아의 모든 삶이 죄로부터 온전히 깨끗하였다는 의미가 아닙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의’를 따라 살아가는 시대에, 노아만은 매순간 하나님의 ‘의’를 붙잡고 살려고 발버둥치며 살았다는 뜻입니다. 그 모습이 하나님 눈에는 의로움으로 보였고, 그 의로움은 온 가족을 생명과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매일매일 하나님 말씀을 내 안에 가득 채우고, 그 말씀을 삶으로 드러내려고 고군분투하는 부모를 애타게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찾으시는 경건한 부모가 바로 저입니다! 저희 가정을 구원해주세요!”라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가정으로 세워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향기나무 교육개발원에서는 “Godly Family"를 주제로 경건한 가정 세우는 여름성경학교 컨텐츠를 개발하였습니다. 온가족이 경건한 노아와 그들의 가정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향기나무 우리집 성경학교 컨텐츠는 가정에서 성경학교를 진행할 수 있도록 놀이키트와 영상자료를 제공하는 놀이중심의 신앙교육 컨텐츠입니다. 온 가족이 하나님 말씀 앞에 마주 앉아 놀이하면서 경건한 가정으로 세워지는 첫걸음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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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07
  • [다음세대 칼럼]스며들게 하다
    오늘은 오래전 브니엘고를 졸업하고 서울 K대에 진학한 제자가 자신의 SNS에 적은 글을 옮겨볼까 한다. (원문 그대로 옮겨보고자 한다) 내가 처음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아침예배 하는 걸 보고 한숨을 쉬었다. 길거리에서 항상 나를 붙잡고 설교하던 교회 다니시던 아주머니들이 생각났다. 게다가 내가 졸업할 때가 되어서도 그 예배를 좋아하게 된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난 아직도 교회도, 성당도, 절에도 다니지 않는다. 첫 종교수업이 있는 날에, 전영헌 목사님을 만났다. 언제나 그렇듯 첫 만남은 아무것도 모르는 서로가 편견을 가지고, 어느 정도의 기대감을 가지고 만나는 자리였기에 목사님이라는 위치에 계시는 선생님을 만났을 때는 별다른 느낌도 없었고, 성경을 읽어주면서 나에게 기독교에 대한 교육만 시키지는 않을까 경계심이 일었었다. 하지만 2년동안(고1, 고3) 목사님께서 나에게 가르쳐 주신건 그런게 아니었다. 아마 나와 함께 수업을 들은 모두가, 배운건 그런게 아니었을 것이다. 2년동안, 몇십번의 수업을 하면서, 몇십가지의 수업내용이 있었겠지만 내가 기억하고 내가 그 몇십번의 수업내용들 속에서 배운 것은 한가지였다. 아마도 목사님께서도 그 한가지를 계속 말하셨던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 배운 것을, 어떻게든 실천해보려고 노력했고, 그것과는 조금 다른 결과가 나온 것 같아서 당황스러웠고 회의감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와서 새삼 느끼는 건, 어쩌면 내가 행동한 것들이 틀린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그 생각마저 틀린 것일지도 모르지만...맞겠지)이 들었다. 아직까지도 한번씩 중얼거리게 되는 단어가.....영향력. 그때 목사님이 가르친 건 바로 영향력이었다. 오래전 졸업한 제자가 나에게 보낸 글이 아니라, 자신의 SNS 개인 담벼락에 적은 글이다. 나는 우연히 이 글을 보고 내가 하는 일이 헛일이 아니구나 하는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 제자는 대학에 들어간 후 청년의 시간을 살아가면서 문득 자신을 지탱해주는 의미들을 생각하던 중에 나에게 배웠던 종교수업시간의 내용들이 무의식중에 자리잡고 있음을 이야기 한 것이었다. 학교는 그런 곳이다. 매일 똑같은 시간들의 반복 속에서 의미없는 것 같은 순간 조차도 시간이 지나고나니 의미로 다가오는 묘한 매력이 있는 곳이다. 제자녀석이 글에서 말한 것처럼 뻔한 종교수업이 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그 몸부림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목사가 할 수 있는 말은 늘 정해져 있다. 뻔하다. 그러나 그 뻔한 것을 들키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성경적 가치관을 전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제자들은 그 가치가 훗날 성경의 메시지였음을 알게 된다. ‘스며들다’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속으로 배어들다’하는 뜻을 가지고 있다. 교육은 이런 것이다.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은연중에 속으로 배어들게 하는 것. 지금도 현장은 그렇게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이 일을 위한 교회와 기독교 가정의 뒷받침이 있다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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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07
  • [다음세대 이야기] 다음세대의 고민은 모든 교회의 관심(2)
    이 비유의 배경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목이었습니다. 이 지역은 악이 서식하기에 최상의 환경적 요건을 지닌 지역이라 보는 것도 틀리지 않은 관점이라 봅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목, 그 환경을 개선한다면 강도 만난 사람이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목에 방범초소를 설치하고, 가로등을 설치한다면, 그렇게 환경을 개선해 간다면 선한 사마리아인이 없어도 이 사회는 더 살기 좋은 환경이 되지 않을까? 이런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지역교회의 당위성이 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많은 사회라고 할지라도 사회구조상 여전히 강도 만난 사람들이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아름다운 사회를 원한다면 강도가 없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이 역할을 하는 교회가 지역교회(Local Church)의 사명인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방법은 무엇인가? 예수님의 사역을 통하여 그 해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 가운데 많은 사람들과 제자들에게 삶을 통하여 딱 한 가지 공통적으로 보여주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마음이 들켜지는 것입니다. 예수님 마음은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온몸으로 예수님은 그 사랑을 들키고자 십자 가의 사랑까지 보여 내셨지요. 그 방편으로 예수님은 교회라는 공동체를 지역 가운데 두셨습니다. 지역에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통하여 바로 예수님이 그토록 들켜보이고자 했던 사랑을 보이고자 함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지역사회에 사랑의 광체입니다. 교회가 있는 주변은 교회를 통하여 정화되어져야 합니다. 사랑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말이지요. 그래서 교회가 있는 곳에는 교회를 통해 살만한 세상이 되어져야합니다. 이것이 선한 사마리아인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의 모토입니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그 길을 정화하는 교회가 되려고 지속적인 시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강도 만난 사람들이 더 이상 발생하여 선한 사마리아인이든, 강도 만난 사람이든 모두가 힘들고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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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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