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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연] 기독교인들에게 인문학은 왜 필요한가?
    본고는 백양로교회(담임목사 김태영)가 운영하는 사단법인 디아코니아부산에서 마련한 디아코니아 지상포럼의 발표 내용을 전재한 것입니다. (편집자 주) 1.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인문학이 왜 필요할까? 이런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인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정리해 두어야겠다. 우리가 인문학(人文學, Studia Humanitatis)이라고 할 때 이 말은 문사철, 곧 문학과 역사 철학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서 인문학이라는 말은 흔히 자연과학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쓰인다. 자연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학문이라는 것이다. 인문학을 인간에 대한 학문이라고 말할 때 인문학이란 문학이나 역사나 철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광범위한 의미를 지닌다. 그 광범위한 의미란 바로 인간을 위한,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인문학이라고 말할 때 이 말은 문학이나 역사나 철학만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을 포괄하는 보다 광의의 인간에 대한 탐구를 목적으로 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에서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고자 한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자연과학적 지식이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인간다움을 추구할 수 없다. 과학이나 기술이 장인(匠人) 혹은 기술인(技術人)을 양성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인간다움을 영위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전공에 앞서 인문학 관련 강좌를 듣게 한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공과대학이 짧은 기간에 전문적인 기술인을 양성한다는 목표아래 학부 1학년 때부터 자연과학 분야만으로 구성된 교과를 운영한바 있으나 몇 년이 못가 문제점을 파악하게 되었다. ‘인간의 얼굴을 가진 과학’이 되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전공과목을 가르치기 전에 인문 혹은 사회과학에 대한 이해를 갖도록 교과를 개편한 일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의학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어떤 의사가 과학과 의료기술로만 무장되어 있다면 로버트와 같은 의료인이 되고 말이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 필요하기에 의과대학에도 의무적으로 인문학교실을 두게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인문학은 대학교육은 물론이지만 인간 교육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인문학은 왜 필요한가? 그런데 근년에 와서 인문학이 천대를 받고 있다. 문학이나 역사나 철학을 공부해도 취업에 어렵고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이유이다. 사회전체로 볼 때 자연과학이나 공학이나 의학이 발전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 인문학적 토대가 없으면 건실한 사회가 될 수 없고 어쩌면 인간 상실의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인간 없는 과학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현제 우리나라에서 인문대학은 인기가 없어 폐과되거나 다른 학과와 통폐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아무리 어려워도 인간 삶의 근간을 이루는 인문학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고전이 강조되고 고전 읽기도 권장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인문학은 왜 필요한가? 두 가지로 정리해 두고자 한다. 첫째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하고 설교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이런 말이 있다. “성경만 아는 사람은 성경도 모른다.” 성경과 성경이 기록된 환경을 둘러싸고 있는 언어, 문화, 역사, 사상, 종교 등 인문학적 배경을 알지 못하면 성경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칼빈은 1559년 6월 5일 제네바 아카데미를 개교했을 때 신학예비과정을 개설했다. 성경과 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전에 인문학적 소양을 터득하게 하기위해 신학예과를 설치한 것이다. 제네바 아카데미의 신학 예과 과정에서는 그리스어나 히브리어 등 성경 언어만이 아니라 라틴어와 프랑스어를 공부하게 했고, 중급과정에서는 호머, 키케로, 버질, 크세노폰, 폴리비우스 등의 작품을 읽게 했고, 고급과정에서는 키케로나 데모스테네스의 웅변술 등 수사학을 공부하게 했다. 즉 고전과 고전어, 철학과 변증, 논리학과 수사학을 공부하게 한 것이다. 이런 인문학적 바탕에서 성경을 읽고 해석해야 바르고 풍요롭게 성경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인문적 소양의 무지 때문에 성경을 왜곡하거나 곡해하고, 독단적으로 혹은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성경을 이상하게 해석하거나 비 논리적인 독단적인 해석하는 경우는 대체적으로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결국 성경만 아는 사람은 성경도 모르게 된다. 1830년대 인도로 갔던 서구 선교사들이 직면했던 문제는 성경과 기독교를 가르치기 전에 문자와 언어, 기초교육이 없이는 인도에 건실한 복음주의적인 교회를 세울 수 없다는 확신이었다. 그래서 학교를 세워 먼저 글자와 문자부터 가르쳤다. 인문학적 소양이 없으면 인간과 사회, 성경과 기독교를 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근대의 선교학교(mission school)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하면 무지와 억지, 반지성주의에 빠지게 된다. 둘째,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인문학은 인간, 혹은 존재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인문학은 인간을 위한, 그리고 인간에 대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문학은 구원받아야 할 전도(선교)의 대상인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깨닫게 만들어 준다. 인문학의 대상은 인간이고, 인문학의 본질은 그러한 인간성을 탐구하는 데 있다. 인문학은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해 왔기 때문에 인문학(人文學)은 사실은 인간학(人問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인간과 인간의 본질, 인간 삶의 환경에 대한 폭넓은 지식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지식이지만 특히 목회자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만 그 대상은 인간 곧 ‘사람’이다. 따라서 목회를 잘하려면 사람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 목회자가 열심히 기도하고 심방하고 설교하면 되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전도의 대상인 인간에 대한 이해는 매우 중요하다. 기독교 인문주의자였던 칼빈은 그의 <기독교강요> 서두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De cognitione Dei)은 우리(인간)를 아는 지식(De cognitione hominis)과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 이른바 이중지식을 다루면서, 인간이 하나님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자기 자신을 알 수 있고, 우리 인간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되었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 존재의 의미는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인문학은 인간을 인간에 대해 사유하고 질문하면서 인간다움 삶을 살게 하는데 유용한데, 인간이 추구하는 삶의 의미와 목적은 오직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리하면 인문학을 통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알게 해 주고,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지음 받은 의존적 존재라는 점을 알게 해 준다는 점이다. 3. 기독교와 인문학 기독교와 인문학을 대립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15세기 이후의 인문학(인문주의) 운동은 종교적인 운동이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종교개혁의 토대가 되었다. 르네상스 운동기의 인문주의운동이 있었기 때문에 종교개혁이 일어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한 것이다. 그래서 인문학과 기독교를 대립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개혁사상의 토대를 형성했던 사람들은 다 르네상스 운동에 영향을 받았던 인문주의자였다는 사실이다. 루터도 그러했고 칼빈도 그러했다. 인문주의 교육이 개혁운동의 바탕이 된 것이다. 인문주의의 가장 큰 영향을 받았던 인물이 츠빙글리였다. 그는 사실상 종교개혁자이기에 앞서 인문주의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주의와 종교개혁, 혹은 인문학과 기독교 간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잘못된 이해를 가진 이들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인문주의를 서구에서 휴머니즘(humanism)이라고 하는데, 이를 인본주의(人本主義)로 해석한다면 의미는 크게 달라진다. 인본주의는 인간중심주의로서 신중심주의와 대조적인 의미로 받아드려지는데,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났던 시기에 인문주의는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인문주의, 곧 휴머니즘이 아니었다. 도리어 그리스와 로마의 언어와 문학에 강조점을 둔 교육의 형태였다. 곧 지금의 인문학이었다. 이 시대의 인문학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주는 것이 라틴어 ‘ad fotes,’ 곧 ‘원천에서’ 혹은 ‘원천으로부터’였다. 즉 인문주의란 “원래의 자료들로 돌아가자(go back to the original sources)”는 슬로건으로 요약될 수 있는 문화 운동이었다.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은 개혁자들은 그 ‘원천’을 ‘성경’으로 보아 오직 성경, 곧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던 것이다. 정리하면 인문학(humanities)을 신본주의가 아닌 인본주의(人本主義, humanism)나 인도주의(人道主義)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인문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탐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취급하며 사색하고 질문한다. 이런 점에서 인문학적 소양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인간과 사회를 건실하게 성찰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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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7
  • 삼일운동과 한국기독교
    (이 글은 2월 28일 부산롯데호텔에서 열린 재단법인 21세기포럼 주최 3.1운동 100주년 특별기획포럼에서 이상규 교수가 강의한 원고입니다. ) 1. 문제와 과제 ‘삼일운동’이란 일제의 식민지배와 그 억압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운동으로서 1919년 3월 1일 서울의 파고다공원과 태화관, 그리고 전국의 9개 지역에서 ‘독립선언서’를 선포함으로 시작되어 적극적으로 약 2개월, 광의적으로는 1년여 간에 걸쳐 국내와 만주, 연해주 등으로 확대된 민족적인 항일독립운동을 의미한다. 이 운동은 1910년 8월 일제가 한국을 강점하고 9년 후에 일어난 사건으로서 민족독립에 대한 열망과 독립투쟁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약 2개월에 걸쳐 전국적으로 전개된 이때의 독립운동 기간 동안 전인구의 10%에 해당하는 200만이 넘는 한국인이 만세운동에 가담하였고, 전국 218(232)개 부,군 가운데 212(229)개 부,군에서 1,491(1,542) 건의 시위기 일어났다. 4월 말에 접어들면서 일제의 야만적인 탄압으로 반일 투쟁은 서서히 막을 내리게 되지만 3월 1일에서 5월말까지 학살된 자 7,509명, 부상자 15,961명이었고, 피검된 자는 46,948명에 달했다. 피해상황이 보여주는 바처럼 1919년의 삼일운동은 한국인들이 거족적으로 참여한 독립운동으로서, 한국독립운동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인정되고 있다. 삼일운동은 한국인들이 신분, 직업, 계급, 지역 그리고 종교를 초월하여 대동단결하여 일어난 사건으로서 한국인이 근대민족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 삼일운동은 한민족의 주체적인 독립 쟁취에 대한 자신감을 부여했고, 이후 전개된 독립운동의 지속적인 원동력이 되었다. 세계인들에게 한민족의 자주독립 의지와 역량을 알리는 기회가 된 것 또한 삼일운동의 의미를 더해 준다. 평양 주제 감리교 선교사 문요한(John Moore, 1874-1963)은 “조선인의 삼일운동 후 일 년 간의 사상적 진보는 50년의 진보와 같은 진보”라고 평가했을 정도였다. 삼일운동은 궁극적으로 독립을 쟁취하자는 것이었으나 독립을 이루지 못했으나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평가되어 왔다. 첫째, 그해 4월 11일 상하이(上海)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됨으로서 국민주권정부 수립운동이 일어나고 거족적인 민족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형성되었다. 둘째, 삼일운동이 비폭력운동으로 시작되어 많은 피해를 입게 된 것을 교훈으로 삼아 만주지역을 중심으로 무장독립 투쟁이 일어나, 북간도에서의 국민군회를 비롯하여 북로군정서, 서로군정서, 대한독립군, 대한의용군, 광복군 총영 등이 조직되었다. 1920년에는 홍범도 장군이 지휘하는 독립군 부대가, 같은 해 청산리전투에서는 김좌진 장군이 지휘하는 북로군정서군이 일본군과 대결하는 등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셋째, 삼일운동에 참여했던 민중들의 정치의식이 고조되어 국내 민족운동 기반이 강해졌고, 국산품애용, 근검, 절재운동, 계몽운동 등으로 발전하였다. 넷째, 삼일운동이 민족 자결주의에 영향을 받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세계의 피 압박 약소 만족의 독립과 해방운동에도 영향을 끼쳤다. 북경대학 중심의 5.4 운동, 인도 간디 중심의 ‘샤타 그라하’ 비폭력 무저항운동이 그것이다. 필리핀, 베트남, 이집트 등지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다섯째, 삼일운동은 일제의 식민통치수단인 무단정치의 한계를 깨닫게 해 주어 비록 가식적 측면이 없지 않지만 문화정치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상에서 개괄한 삼일운동을, 이기백은 거족적 ‘민족운동’으로, 함석헌은 ‘민중운동’으로, 김성균은 ‘민족정신 환기운동’으로, 현상윤과 이병혁은 ‘조국해방운동’으로 인식했는가 하면 공산주의자들은 러시아혁명의 영향으로 일어난 농민 노동자운동이기 때문에 ‘인민혁명운동’ 혹은 ‘계급투쟁운동’으로 평가한다. 어떤 평가를 하던 분명한 사실은 삼일운동은 소수의 엘리트 구릅의 주도적인 준비와 대중적 호응으로 발전하여 한국독립운동의 신기원을 이룬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삼일운동에 대한 연구는 민족운동사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삼일운동사 연구에 있어서 아래의 문제에 대해서는 상반된 의견이 있어왔다. 첫째, 삼일운동 준비단계에서 러시아 혁명이나 윌슨의 민족자결론이 우리나라 삼일운동에 실제적인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점이다. 삼일운동은 대중 혹은 민중운동으로 발전하였고 거사에 참여한 주도적인 세력은 농민들이었는데 이들이 국제 정세에 민감할 수 있었을까? 지도부를 형성한 소수의 엘리트 구릅이 국제정세에 민감했고, 그것이 삼일운동의 시원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민중동원의 실제적인 동력원이 되었을까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즉 삼일운동 발발배경에 있어서 외인론(外因論)과 내인론(內因論), 그리고 양자를 균형 있게 이해하려는 시도가 있어왔다. 둘째, 삼일운동을 이끌어가 주체인가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이 이 운동의 주체인가 아니면 이 운동을 실제적으로 확대 발전시켜 간 다수의 기독교계가 관여한 민중 세력인가? 이 운동의 외연에 있어서 주도적인 세력 혹은 조직은 무엇인가? 셋째, 삼일운동의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 운동이 근대 민족주의 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보아 동학농민운동, 개화자강운동, 의병운동 등 세 갈래의 민족운동이 합쳐진 운동이라고 보는 견해와 개항 이후 추진되어 온 민족운동의 하한점으로 보고 이후의 민족운동을 사회주의 세력이 주도하는 민족운동을 이해하는 입장이 있다. 이런 사학계의 해석과 더불어 기독교계의 삼일운동 참여정도에 따라 삼일운동 성격규정이 달라 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 글에서는 위의 세 가지 논점에 대해 유의하면서 삼일운동에 있어서 기독교의 기여 혹은 역할이 어떠했던 가에 대해 고찰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기독교’는 개별 기독교인들(Christians)과 집합적 개념으로서의 기독교회(Christian church) 양자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삼일운동과 기독교에 대해서는 이미 논구된 바 있으나, 이 글에서는 기존의 연구를 수렴하되 새로운 정보 혹은 자료를 기초로 삼일운동의 준비단계, 거사 실행단계, 그리고 피압박 민족의 현실과 독립에의 열망에 대한 국제적인 여론 형성에 있어서 기독교의 역할이 어떠했는가, 그리고 체한 선교사들은 3.1 운동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했는가 하는 점에 대해 부다 구체적으로 논구하였다. 특히 국제사적 시각에서 이해한 선교사들의 견해, 특히 삼일운동에 있어서 선교사의 역할이 어떠했던가에 대해 고찰하였고, 또 필자의 의견을 제시하였다. 무엇보다도 이 글에서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논구하였다. 이러한 연구는 3.1운동 백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시의적절한 논구로 판단되며, 향후 기독교와 삼일운동에 관한 보다 구체적인 연구의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2. 삼일운동의 배경과 준비과정 1910년대는 변화의 시기였다. 1911년 중국의 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청나라가 무너지고 공화제국가인 중화민국이 출범했고, 1917년에는 러시아에서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났다. 이듬해 11월에는 독일에서 독일제국이 붕괴되고 1920년 바이마르공화국이 출범했다. 특히 1914년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의 종식(1918)과 함께 세계정세의 큰 변화가 예견되고 있었다.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1918년 1월 연두교서에서 새로운 전후 질서의 ‘14개조’(The Fourteen Points) 원칙을 제안했다. 여기에는 민족자결주의와 국제평화유지를 위한 국제연맹의 결성 등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민족자결주의(self-determination) 원칙은 식민지배 하에 있던 약소국을 크게 고무하였다. 한국의 지식인들도 민족자결주의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였고, 1918년 11월 미국대통령 특사 찰스 크레인(Charles R. Crane)이 중국 상하이를 방문했을 때 여운형은 그를 만나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크레인은 1919년 1월의 파리강화회의(Peace Conference at Paris)에 한국 대표 파견을 권유하고 국내외에서 한국인들의 독립의지를 피력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래서 여운형을 비롯한 장덕수 김규식 서병호 선우혁 신석우 조동호 등은 이를 즉각 실행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위한 조직으로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을 만들었다. 이들은 김규식을 파리강화회의에 파송하여 민족의 독립을 호소하였고, 장덕수는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생들과 접촉하여 2.8독립선언을 준비하게 했다. 이에 1919년 2월 8일 400여명의 학생들이 도쿄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이를 일본 정부와 공공기관 그리고 언론기관에 발송했다. 이 독립선언식의 주도적 인사들이 기독교신자들이었고, 조선기독교청년회(YMCA) 총무 백남훈은 2.8 독립선언 실무를 담당했던 기독교 신자였다. 반면 선우혁(鮮于爀)은 1919년 2월 조선으로 들어와 선천과 평양 정주 등지에서 기독교계의 이승훈 길선주 양전백 등 기독교 지도자들과 접촉하고 파리평화회의 소식을 알리는 한편, 서북지역 개신교세력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이들과 협력하도록 했다. 위의 신한청년당의 7인의 지도적 인사들을 포함하여 삼일운동의 추진 과정에서 활약했던 이들 대부분은 기독교신자였다. 한편 미주의 ‘대한인국민회’도 파리평화회의에 독립을 청원키로 했는데, 중심인물 이승만 민찬호 정한경 등은 기독교인들이었다. 비록 이들은 일본 영사관의 방해로 파리평화회의에 참석하지는 못했으나, 이 소식이 일본의 영자신문에 보도되어 재일 유학생들에게 자극을 주었다. 한편 국내에서도 만세운동이 준비되고 있었는데 종교적으로 두 갈래로 준비되고 있었다. 손병희 권동진 오세창 최린 등 천도교측 인사들은 일본유학생들의 독립선언 준비 소식을 접하고, 1919년 1월 중순경 만세시위 형태의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합의했고, 이 운동의 대중화, 일원화, 비폭력의 3대 원칙을 정했다. 한편 평양의 기독교계는 정주교회 집사 출신으로 상하이 한인교회에서 일하던 선우혁을 통해 상하이에서의 독립운동에 대한 근황을 전해 듣고 1919년 2월 중에 기독교계 학생들과 신자들을 동원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했다. 김선두 강규찬 도인권 이덕환 윤원삼 김동원 등 교회 지도자들이 중심이었다. 천도교 측은 독자적으로 만세운동을 준비하던 중 손병희 최린을 중심으로 기독교 측의 이승훈 함태영과 접촉하여 운동의 일원화를 협의했다. 2월 24일의 일이었다. 기독교측과 천도교측은 연합하여 1) 독립을 선언하고, 2) 일본 미국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을 청원하며, 3) 만세시위를 전개한다는 3가지 방식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최린과 함태영은 각각 양측을 대표하여 실무를 협의하였다. 이 때 서울에서는 연희전문학교 김원벽, 보성전문학교 강기덕, 조선 YMCA 전국연합회 박희도, 세브란스병원구내 교회 이갑성 등 학생 중심의 시위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이들 학생들에게도 참여를 요청하였다. 불교계도 동참케 하여 성사되었으나 유림(儒林)과의 연합은 성사되지 못했다. 운동지도부는 최남선에게 독립선언서를 기초할 것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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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2-28
  • 시한부 종말을 주장하는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이 글은 6월 21일(수) 번영로교회에서 개최된 제2회 부산이단대책세미나 강의안 전문입니다.) 시한부 종말을 주장하는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탁지일교수(부산장신대학교/월간현대종교 이사장겸 편집장) 1. 성령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은 한국사람 하나님의교회는 한국인 남녀를 각각 ‘성령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으로 신격화한다. 설립자인 안상홍(安商洪)을 ‘재림 예수’, ‘재림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으로, 그리고 1985년 안상홍 사후 후계자로 등장한 장길자(張吉子)를 ‘어머니 하나님’, ‘새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 ‘성령의 신부’, ‘어린양의 아내’로 믿고 있다. 이 글은 『교회와 이단』(두란노, 2016)에 게재한 글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교회 건물 급격히 증가”(「현대종교」, 2016.12), “법원, 하나님의교회가 가정파괴 야기한 사실 인정”(「현대종교」, 2017.2), “하나님의교회 비판 가이드라인”(「현대종교」, 2016.1) 등의 기사 내용을 추가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찬송을 ‘안상홍님 지으신 모든 세계’로 바꿔 부르고, ‘안상홍 하나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 포교하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안상홍님’에게 기도하고 ‘아버지 안상홍님 이름’으로 기도를 마무리한다. 어린이들에게는 “십자가를 세우지 마세요. 일요일도 거짓말예요. 우리는 이 세상 교회 없는 어머니도 있죠. 우리의 구원자 안상홍님도 계신답니다. 안상홍님 믿어야 하늘나라에 가죠”라는 노래를 가르친다. 안상홍과 장길자 두 사람이 하나님으로 등장한 이유에 대해 하나님의교회는 창세기 1장 26절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에 나오는 ‘우리’라는 복수형 단어를 성경적 근거로 들고 있다. 즉 여기서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히브리어 ‘엘로힘’은 복수 명사며, 또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만들었으니, 따라서 하나님은 복수인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엘로힘’(אֱלֹהִים)은 ‘엘로아’(אֱל֫וֹהַּ)의 복수(gods)로서가 아니라, 전능하신 한 분 하나님(the supreme God)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용어다. 하나님의교회는 부정확한 성경 원어 해석을 근거로 한국인 남녀를 하나님으로 신격화하고 합리화하는 데 이르게 된 것이다. 주목할 점은, 표면적으로는 안상홍과 장길자에 대한 신격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교회 실세는 김주철(金湊哲) 총회장이다. 하나님의교회 정관 제28조에 따르면, “총회장은 성령 안상홍 하나님께서 세우신 김주철님이시며, 영구직이다”라고 명시 하고, 총회장의 직무에 대해, “모든 회의의 의장이고, 진리를 전수하여 반포하는 책임자이며, 자산에 대한 최고 책임자로 총회 재정을 감독하고, 정관 및 규정의 최종 해석권자이며, 권징의 최고결정권자이고, 총회 운영 부서 및 지역 교회를 통괄하는 책임자”라고 정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안상홍과 장길자는 겉으로만 신격화된 인물들일뿐, 막강한 절대 권력을 가진 김주철 총회장이 바로 하나님의교회 실세라고 할 수 있다. 2. 반복되는 시한부 종말 주장 하나님의교회 설립자 안상홍의 교리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곳은 장길자와 김주철의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www.watv.org)가 아니라, 안상홍의 아들이 이끌고 있는 새언약 유월절 하나님의 교회(www.ncpcog.co.kr)다. 새언약 유월절 하나님의교회는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가 안상홍의 교리를 계속 변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새언약 유월절 하나님의교회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와의 차이점에 대해 언급하면서, “근본 뿌리와 진리가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 세계복음선교협회(증인회)는 1985년도 이후에 안상홍님의 가르침에도 없고 성경에 모든 선지자들이 증거하신 적도 없는 어머니 하나님을 세우고 또한 시대별 구원자와 새 이름이라는 교리의 바탕으로 예수님의 이름이 아닌 안상홍님의 함자로 기도를 올리고 … 현재는 살아생전 안상홍님의 책자와 육성 말씀의 가르침보다는 그곳에서 만든 교리를 바탕으로 책자를 만들어 어머니 하나님을 증거하는 데 큰 힘을 쏟고 있습니다”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한다. 새언약 유월절 하나님의교회는 자신들이 안상홍의 가르침을 그대로 준수하고 있는 정통 후계자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홈페이지에는 안상홍의 모든 저서, 친필로 기록된 설교문과 교회연혁, 육성 설교, 유품, 사진 등을 전자책 및 그림파일 형태로 게시하고 있어, 가장 정확한 안상홍의 원래 교리 연구를 가능하게 해 준다. 이들 자료에 따르면, 하나님의교회 교리는 시한부 종말론에 기초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교회는 ‘1988년은 세상 종말’이라고 주장하는 전단지를 배포했다. 또한 1988년뿐만 아니라 2012년도 종말의 때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1988년과 2012년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오히려 하나님의교회는 2012년 한 해 동안, 전국 29개 지역에 건물을 신축하거나 부동산을 매입해, 그들의 시한부종말 주장이 허구였음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의교회는 시한부 종말론 주장을 줄곧 부인해 왔지만, 최근 수원지방법원의 판결문에 따르면, “안상홍 사망 이후 1988년 종말이 온다는 취지의 전도서를 만든 바 있고, 1999년에는 신도들에게 Y2K나 1999년 지구 멸망 예언에 관한 설문조사를 벌였으며, 하나님의교회 내에서 2012년 지구의 종말이 올 것이라는 주장 또한 제기되었던 점”을 이유로 들어 하나님의교회 시한부 종말론이 허위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한편,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와 관련해서, 안상홍은 교회 내에서 여성을 신격화하거나 여성이 지도력을 갖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1983년 측근 엄모 여 전도사로 인한 분란에 대해, “예루살렘을 한 여자로 해석한다는 것은 정신환자 아니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설교를 통해 경고하고, 신부는 한 여성이 아니라 144,000 성도들이라고 단언했다. 1985년 안상홍 사후, 서울과 부산 세력으로 교회가 분열되는 과정에서 김주철 총회장이 직접 작성한 글에 따르면, “장길자 전도사 본인 자신도 우상화하는 것을 원치 않고 우리도 우상화할 수 없다 … 144,000 성도들이 신부이다”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약속은 결코 지켜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교회는 설립자 안상홍의 교리 중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만을 취사선택하여 세력을 키워 나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이, 필자가 방문했던 양산 통도사 인근 공원묘지에 있는 안상홍의 무덤은 하나님의교회가 주장하는 내용과는 격이 맞지 않는 규모로, 벌초조차 되지 않고 방치된 모습이었다. 3. 종말은 실패해도 교세는 오히려 성장 하나님의교회 시한부 종말 주장에는 종말이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한부 종말 주장은 계속 실패했지만 교세는 오히려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신격화된 안상홍이 사망하고 시한부 종말 주장이 실패하면 신도들이 하나님의교회를 떠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이는 국내외 이단들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상식의 눈’이 아니라 ‘신도들의 눈’을 통해서 바라볼 때 이해할 수 있다. 즉 신격화된 교주의 죽음과 시한부 종말 주장의 실패를 받아들이는 순간 신도 자신은 정체성의 심각한 혼란을 겪게 된다. 게다가 그 단체에 몸담고 헌신했던 지난날들을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은 이 혼란을 더욱 가중시킨다. 이러한 현실은 교주의 죽음과 시한부 종말 주장의 실패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순간이다. 그 이유는, 자신의 선택을 반대했던 가족들과 주변 지인들에게 받을 비난과 동정이 두렵기 때문이다. 결국 신도들은 스스로를 위해 교주의 죽음을 미화하거나 업그레이드된 신격화 과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또한 교리 변개를 통해 새롭게 설정된 또 다른 종말의 때를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변개된 교리를 근거로 배수진을 치고 재무장한 신도들은, 외부적으로는 공격적인 포교 활동을 통해 새로운 신도들을 영입하고, 내부적으로는 2세대 자녀들을 교육하면서 교세의 확장을 시도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하나님의교회는 자신들의 신도 수가 수백만에 이른다고 주장하지만, 대략 20~30만 정도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단연 국내 최대 이단 조직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들의 주력 연령층이 30~40대라는 사실이다. 특히 주된 포교 대상은 30~40 주부들이다. 이들 주부들을 미혹하면, 그들의 자녀들이 함께 오게 되어있고, 만약 나중에 남편이 알게 되더라도, 하나님의교회에 가는 것을 막기 어렵기 때문이다. 남편들이 반대할 경우, 이혼 등의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아내가 하나님의교회에 가는 것을 용납하거나, 혹은 자신도 따라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해외에도 다수의 외국인 신도들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해외 선교사들 및 현지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교회는 이미 복음 전도의 장해물이 되고 있다. 하나님의교회 해외 교회 설립 현황을 분석하면 세계 곳곳에 수많은 모임처들이 세워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지구 반대편 페루에도, 힌두교의 나라 인도에도 수십 개의 하나님의교회가 짧은 시간 내에 세워져 운영 중이다. 현지 선교사들에 따르면, 하나님의교회가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건물을 세우고 신도들을 미혹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하나님의교회 피해자들이 인터넷사이트(www.examiningthewmscog.com 혹은 encountering-ahnsahnghong.blogspot.kr)를 통한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다. 하나님의교회에 대한 국제적 차원의 공동 대책 마련이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교회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의 재산이 3~4조에 이른다고 한다. 통일교처럼 사업을 하지 않는 하나님의교회가 어떻게 이런 거대한 자산을 가지게 되었는지 자못 궁금하다. 분명한 점은, 탁월한 사업 아이템인 시한부 종말론의 실패와 재설정을 거듭하는 동안, 하나님의교회 교세는 성장하고 재산을 지속적으로 증식해 왔다는 사실이다. 4. 오른손이 하는 일은 반드시 왼손이 알게 하는 홍보 전략 하나님의교회의 홍보 방식이 특이하다. 한편으로는 가가호호 방문과 거리 포교 등의 직접적인 포교 전략을 구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적 성격을 감춘 채 지역 사회 봉사활동을 통해 긍정적인 노출을 시도하는 양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장길자가 대표로 있는 ‘국제위 러브유 운동본부’(www.weloveu.or.kr)와 ‘새생명 복지회’(www.newlifewf.org)가 그 전위 조직들이다. 성경은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마 6:3)라고 가르치며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봉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하나님의교회의 경우는 정반대다. 오히려 오른손이 하는 일은 ‘반드시’ 왼손이 알게 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 하나님의교회 홍보 패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역 사회 봉사활동을 한 후, 그 내용을 상대적으로 통제가 용이한 지역 언론을 통해 기사화한다. 둘째, 해당 기사를 가지고 지역 공공기관을 찾아가 상장 수여를 요청한다. 주민 선거로 구성되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이를 거절할 명분을 갖기 어렵다는 것을 하나님의교회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수상 내용을 보도 자료로 배포하여 다시 기사화하거나, 자신들의 인터넷 홈페이지나 신도들의 블로그에 올려 선전한다. 넷째, 이를 밖으로는 포교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안으로는 반대하는 신도들의 가족들을 안심시키고 설득하는 데 사용한다. 이 과정을 국내외에서 반복하며 주변 사회에 성공적인 정착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신흥 종교 단체의 사회적 노출 정도와 효과는 그 성패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통일교를 비롯한 1세대 이단들이 네거티브 홍보(negative promotion)를 통해 자신들의 이름을 사회에 알렸다면, 최근 신세대 이단들은 포지티브 홍보(positive promotion)를 통해 자신들의 존재감을 사회에 각인시킨다. 즉 자신들이 사회적 역기능을 수행하는 위험한 사이비 종교가 아니라 친사회적인 평범한 종교 단체인 것을 알리는 전략이다. 물론 이들의 최종 목적은 명백히 반기독교적이다. 즉 안상홍과 장길자를 하나님으로 세상에 알리며, 하나님의교회가 기독교의 대안 세력으로 사회에 자리 잡기 위함인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교회 홍보 전략은 일면 성공적으로 보인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러한 성공이 기독교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하나님의교회는 사회적 비판에 직면하고 있는 기독교를 비판하며, 자신들을 타락한 기독교의 대안 세력으로 세상에 내세우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한국 교회의 개혁은 이단 대처에 필수적이다. 개혁된 교회만이 날로 업그레이드되는 이단들의 도전에 응전할 수 있다. 이 점에서 교회의 이단 대처 현장에 사리사욕과 정적 제거의 목적을 가지고 이단 문제를 악용하는 교회 정치 세력들이 들어와서는 안 된다. 기득권을 위해 이합집산하는 이들 정치 세력들이 바로 이단 활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거나 이단 대처를 위한 연합 활동을 방해하는 반교회적 세력들이기 때문이다. 이단과 주변 사회로부터 주어지는 영적 신호를 읽을 줄 아는 교회만이 스스로를 개혁할 수 있는 동력을 가질 수 있다. 5. 부산울산경남지역 하나님의교회 현황 하나님의 교회가 발흥한 부산지역은 국내 다른 지역에 비해, 사회봉사 및 거리와 가가호호방문 포교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또한 교회 및 교육관 건물이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어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다음은 부산울산경남지역 하나님의교회 현황이다. 2016년 12월 현재, 부산광역시 9곳, 울산광역시 5곳, 경상남도 11곳으로 나타난다. 6. 하나님의교회 대처 가이드라인 시한부 종말 주장으로 사회와 가정에 혼란을 야기하는 하나님의교회는 사회봉사 단체라는 복면을 쓴 채 친사회적 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이들의 포교 전략은 조직적이고 집요하다. 청소년들과 청년·대학생들은 물론이고, 어린 자녀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젊은 가정주부들에게까지 집중적으로 다가서고 있다. 거리에서 하나님의교회 포교자들에게 미혹된 청소년들이 하나님의교회로 자의 반 타의 반 이끌려 들어가 교리 교육과 침례까지 받는 피해 사례들이 발생하는가 하면, 집요한 가가호호 방문 포교를 통해 미혹된 주부들로 인해 가정불화가 발생하기도 한다. 사회봉사라는 복면을 쓰고 정체를 감춘 채 친근하게 접근하는 하나님의교회에 대한 예방과 대처 없이 한국 교회의 복음 전도와 이단 대처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하나님의교회에 대처하기 위한 합법적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 첫째, 접근을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의교회 포교자들은 길거리 혹은 집을 방문해 집요한 포교를 진행한다. 거절에 익숙하지 않은 청소년들을 길에서 미혹해 교리 교육을 시킨 후 침례를 주기도 하고, 집을 방문해 교리 교육을 시킨 후 집안 화장실에서 샤워기로 침례를 준 사례도 있다. 성경은, 이단에 속한 사람은 한두 번 훈계하고 멀리하고(딛 3:10),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고(요이 1:10) 권면한다. 하나님의교회 포교자들의 접근을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 특히 중고등학생들에게 집요하게 접근하는 하나님의교회 포교자들을 만나면 주변 사람들이나 공권력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요청하도록 자녀들에게 경계 예방 교육을 해야 한다. 둘째, 교회 밖 봉사활동에 신중해야 한다. 다양하게 진행되는 하나님의교회 봉사활동에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자녀들이 사회봉사학점 이수를 위해 봉사활동을 해야 될 경우, 혹시라도 하나님의교회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 봐야 한다(물론 다른 이단들도 최근 사회봉사활동에 집중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무엇보다도 각 지역 자원봉사 단체에도 하나님의교회 영향력이 강하게 미치고 있기 때문에, 봉사활동을 주관하는 단체에 대해 미리 확인한 후 사회봉사활동에 참여해야 한다. 셋째, 가면을 벗겨야 한다. 대통령표창 등을 수상했다고 선전하는 하나님의교회 정체를 주변 이웃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즉 하나님의교회는 한국인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으로 신격화하는 단체며, 반복적으로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해 왔고, 이로 인해 재산 갈취와 가출과 이혼을 조장한다는 사실이 재판을 통해 받아들여졌다는 점을 널리 알려야 한다. (아래의 참고자료 1~3). 이를 통해 하나님의교회를 경계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교회가 새로워져야 한다. 하나님의교회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응전하기 위해서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한국 교회가 다시 사회봉사의 아이콘으로 거듭나야 한다. 정결한 그리스도의 신부로 살아가는 교회만이 시한부 종말의 위기를 조장하며 ‘참된 하나님의 교회’를 오염시키는 ‘이단 하나님의교회’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 기고/강연
    • 강연/특강
    2017-06-23
  • 이단 신천지의 실체
    (이 글은 6월 21일(수) 번영로교회에서 개최된 제2회 부산이단대책세미나 강의안 전문입니다.) 이단 신천지의 실체 권남궤실장 (부산성시화운동본부 이단상담실) 1. 교주 이만희의 약력 및 신천지의 태동 교주 이만희는 1931년 9월 15일 경북 청도군 풍각면 현리 702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7세 때 서울에 상경하여 건축업에 종사하다가 1948년 외국 선교사에게 이끌려 경복궁 앞 천막교회에서 침례를 받았다. 그 뒤 고향으로 돌아와 풍각장로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였고 다시 서울로 상경해 1957년 박태선의 전도관에 입교하여 신앙촌에 머물다가, 이어서 유재열의 장막성전에 가입한다. 이후 이만희는 장막성전의 아류로 분류된 자칭 보혜사라고 주장했던 백만봉의 재창조교회를 섬기다가 이탈하여 장막성전 동료인 홍종효와 함께 1980년 3월 14일 경기도 안양에서 신천지교회를 시작한다. 신천지 포교의 동력이 되었던 센터는 1990년 6월 12일 서울 서초구 방배 2동에 신학교육원을 설립하고 8월에 제 1기 수강생을 모집한 것이 무료성경신학원의 출발이다. 1991년 1월, 부산에 신학 교육원을 설립하였고, 동년 5월에 광주에 신학 교육원을 설립하였다. 1992년에는 영등포, 동해, 천안, 대전, 대구, 제주도, 성남, 인천, 안양, 불광, 구의, 신설, 신촌에 교육원을 설립하여 전국으로 확장시켜 현재는 12지파 본부 교회와 산하 지교회 55개소, 전국 266개의 센터(교육원)와 801개의 복음방, 위장교회, 위장 문화센터가 신천지 교육장소라는 것을 숨긴 채 위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해외에는 31개국에 교회와 센터가 운영되고 있다.(유럽 8곳, 오세아니아 2곳, 아프리카 5곳, 아시아 9곳, 북아메리카 2곳, 남아메리카 5곳) 2. 신천지 조직구성 및 추수꾼 훈련 시스템 신천지의 조직구성은 총회장 이만희를 중심으로 7교육장, 12지파장, 24장로들이 핵심 인물들이다. 12지파별로 지파장, 교회장, 총무, 부서장, 부장, 지역장, 구역장, 구역원으로 직책이 구성되며, 직분은 강사, 전도사, 장로, 권사, 집사, 문도가 있다. 신천지는 철저한 상하구조의 체제로서 절대 복종의 위계질서를 강조한다. 신천지가 전도에 특심한 이유는 144,000의 수를 채우면 순교자의 영혼들과 신천지인들이 신인합일함으로 육체가 변화되어 이 땅에서 육체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영생관 때문이다. 그래서 전 교인의 추수꾼화, 전 교인의 특전대화(특별 전도대원)를 완성하기 위해 신천지 12지파가 경쟁적으로 추수꾼 훈련 시스템을 구축하여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신천지 교인들을 전도기계로 세뇌시키는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훈련시키는 것이 복음방 교사 교육이다.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면서 섭외방법, 유도멘트, 정신무장, 스피치훈련을 반복적으로 훈련시켜 시험과 실적에 따라 정교사 자격증을 부여한다. 신천지에서는 전도의 실력자들을 특전대로 분류해 운영하고 있으며, 그 명칭은 총회 특전대, 지파 특전대, 지교회 특전대, 부서 특전대 등으로 구분한다. 3. 포교단계 및 방법 4. 포교 접근 멘트 ✤ 혹시 이런 질문을 받아보셨습니까? 성도님은 이단 신천지를 만나셨습니다. 1) “고아원 아이들에게 보낼 사랑의 메시지를 적어주세요.” 신천지가 만든 위장 봉사단체로는 (사)만남, HWPL(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 IPYG(국제청년평화그룹), IWPG(세계여성평화그룹), 그루터기, 열린 이웃, 굿 프렌즈 등이 있고 불우이웃돕기, 독거 노인 돕기, 김치나누기, 사랑의 쌀 나누기, 벽화봉사, 고아원 아이들에게 편지쓰기 등의 봉사활동으로 접근한다. 2) “저희 교회에서 건강 세미나해요.” 신천지로 넘어간 기존의 목회자들을 앞세워 대한예수교장로회 간판을 걸고 위장교회를 만들어 미혹하며, 또한 찬양집회나 성경세미나, 아버지학교, 제자훈련, 품성학교, 문화강좌, 건강세미나 등을 마련하여 포섭한다. 3) “동화구연을 배울 수 있는 좋은 문화센터가 있는데 같이 가요.” 신천지가 위장 문화 센터를 만들어서 자기개발특강, 연애특강, 힐링콘서트에 초대하며 오카리나, 종이공예, 꽃꽂이, 발마사지, 컴퓨터, 리본공예, 영어회화, 비누공예, 십자수, 가야금, 고전무용, 장구춤, 민요, 요가, 삭스돌, 캘리그라피, POP, 동화구연, 악기, 수지침 등 전문영역을 가르치면서 접근한다. 4) “선후배 멘토링 해요.” 어플(예그리나, 맛집투어, 밥한끼와 토크, 여행, 피아노, 독서, 스포츠 동호회 등)을 이용해 회원을 모집하거나 대학 캠퍼스 강당을 빌려 예비대학생들과 대학 선배들을 일대일로 연결시켜서 예비 대학생들이 학교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돕는 멘토링 프로그램을 위장으로 만들어 접근한다. 5) “영어스터디 함께 해요.” 대학 캠퍼스 내에서 위장 영어 스터디 및 농구 동호회, 스피치 동아리 등을 만들어 모임을 통해 접근한다. 6) “설문지 하나만 해주세요.” 버스정류장, 학교 캠퍼스, 지하철, 공원, 길거리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접근한다. 설문지 내용은 신앙적인 색채를 띠지 않으며 연락처를 기록하도록 한다. 주로 힐링상담, 진학상담, 다문화가정 및 탈북자 상담, 유대인학습법, 자녀양육법, ST club 재능 나눔 신청, 심리검사, 성격유형검사, 한국형기질검사(사군자), 애니어그램, MBTI, 미술치료, 스트레스 검사 등의 설문 이후 검사 결과를 알려준다고 유도하여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접근한다. 7) “어제 밤 꿈에 OO님을 보았는데 흰 세마포를 입고 계셨어요.” 이미 나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거짓으로 만든 꿈이나 환상으로 주님이 보여 주셨다고 하면서 접근한다. 8)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 갈 것이 아니라는 데 무슨 의미인지 아세요?” 신천지는 성경에 대한 궁금한 내용을 담은 ‘궁금증 유발멘트’를 통한 전략도 쓰고 있다. ‘궁금증 유발멘트’는 성경 내용의 의문을 풀어주기 보다는 포교 대상자에게 궁금증을 유발시켜 다음 약속을 잡고 지속적으로 만나기 위한 수단이다. ‘궁금증 유발멘트’ 로는 아래와 같다. “요한계시록에 대해 궁금하지 않아? 세상 종말이 어떻게 될 것 같아?” “열 처녀 비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등과 기름을 준비한다는 것은 무슨 뜻이야?” “아담 이전에도 사람이 있었다는 것 알아?” 9) “좋은 말씀을 전해주는 선교사님과 함께하는 모임이 있어요.” 큐티(QT)나 성경공부를 하면서 천국보화 비유(마 13:44-46)를 예로 들고 교회, 목회자, 성도 및 가족 등 주변 사람들에게 절대로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면 섬기는 교회 목사님과 꼭 상담한다. 10) “잡지사에서 나왔습니다. 청년들의 트렌드에 관련한 인터뷰 부탁드립니다.” 잡지사 기자를 사칭한 인터뷰 요청은 대학생과 청년들을 대상으로 관심사에 맞는 접근방법으로 다양하게 진행된다. ■ 이단신천지 전국 신도수 (2016년 12월 기준) 2015년 161,691명 → 2016년 12월 기준 172,775명, 11,084명 증가 6.90%증가 ■ 이단신천지 전국 센터 등록수 (2016년 한 해 동안) 5. 신천지의 핵심 교리 신천지의 3대 핵심교리는 실상교리, 육체영생교리, 성경공부교리이다. 이 중 성경공부교리는 일명 비유풀이라고도 하며, 일종의 미혹교리로서 실상교리와 육체영생교리로 이끌기 위한 미끼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실상교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 시대별 구원자론 (배도-멸망-구원) 교리이다. 1) 실상교리 ① 신천지에서 말하는 ‘실상’의 의미 ‘실상’이라는 단어의 원뜻은 ‘실제 모양이나 상태’를 의미한다. 또한 모든 것의 ‘있는 그대로의 참 모습’ 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천지에서 말하는 실상은 예언이 성취되어 ‘현실 세계에서 실제로 나타났다’는 의미이다. 그들은 계시록의 각종 상징, 인물, 사건을 모두 신천지의 역사에 대입해서 해석한다. 즉 신천지 창립부터 일어난 모든 사건과 이만희씨에 관계된 사건들이 계시록 성취의 사건으로 이해한다. 계시록의 예언이 실상으로 성취되는 때에 실상의 주인공인 이만희씨가 유일한 계시받은 자임으로 그를 믿고 신천지에 와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논리이다. 신흥 이단 교회였던 과천의 장막성전이 정통 교회로 개혁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을 요 한 계시록의 예언에 꿰어 맞춰 실상이라 한다. 경기도 과천 소재의 장막성전의 교주였던 유재열씨는 계시록 12장의 해를 입은 여자이며, 초림 때 길 예비사자 세례 요한의 입장으로 온 사람이며, 유씨 부자 등 일곱 사람은 배도자로서 예수님의 손에서 떨어진 일곱 별. 개혁의 주제였던 오○○ 목사는 멸망의 아들, 이방 사람의 아내 밧세바에게 나서 이방신을 섬긴 솔로몬과 같은 자, 또한 땅에서 올라온 666 짐승, 뱀, 일곱 머리에 속한 여덟째 왕. 이만희와 홍종효씨, 이 두 사람이 옥고를 치른 사건은 계시록 11장의 두 증인이 짐승에 죽임을 당한 것. ◆ 이만희씨는 이를 배경으로 자신을 다음과 같이 증거 한다. - 계시록의 실상을 사건 현장에서 보고 들은 증인, - 계시록 1-4장의 예언대로 예수님의 성령이 임해서 7별에게 편지하고 하늘에 올라간 사도 요한 같은 자, - 6장과 19장의 예수님께서 타신 백마, - 10장 말씀과 같이 하늘에서 온 열린 책을 받아먹고 가르치는 약속한 목자, - 12장의 여자가 낳은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 아이, - 19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영이 임하는 어린양의 신부, - 2장-3장에서 니골라당과 싸워 이기고 하나님과 예수님과 거룩한 성이 함께하는 이긴 자, - 12장, 13장, 15장, 17장의 예언대로 7머리와 10뿔 가진 짐승과 싸워 이긴 자, - 마24:45-47의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 - 요14: 15: 16: 다른 보혜사. ◆ 이만희씨는 신천지인들에게는 : 말세에 약속한 목자, 계시록의 사도요한과 같은 사명자, 말세의 구원자, 보혜사, 오늘날 천국 가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메시야, 그리스도인 셈이다. 그리고 신천지 교회는 계15:5에 약속된 증거장막성전이고, 계14:1에 144,000명이 서 있는 시온산의 실상이며, 이곳이 말세에 약속된 성전과 구원의 처소라고 주장한다. ② 노정순리 즉 시대별 구원자론 신천지의 배도-멸망-구원(줄여서 ‘배멸구’ 라고도 부른다)의 교리는 살후2:1-3을 근거로 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한 목자를 선택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창조하셨지만 택한 목자의 배도와 이방 멸망자의 출현으로 창조세계가 멸망하고 그 후 하나님이 새 목자를 구원자로 택하여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신다는 교리이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후 아담의 세계가 부패하고 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세우시고 아담의 세계를 홍수로 멸하셨다. 노아의 세계도 부패하므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찾아가서 장래 일을 알리시고, 후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켜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 족장들 중 10족장(여호수아와 갈렙 제외)이 불신하고 불순종하므로 모세를 비롯한 출애굽 세대는 광야에서 죽게 되고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워 후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언약(모세를 통해 세우신)대로 살아가게 하셨다. 그러나 솔로몬이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자 이스라엘이 멸망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구약 선지자들을 통해 장래의 이룰 일을 예언하셨으니 이 약속이 구약이라는 것이다. 그 이후 하나님은 약속대로 예수님에게 오셔서 구약을 성취하셨고, 예수님을 통해 장래 일을 약속하신 것이 신약이라는 것이다. 이 신약은 주의 재림 때에 성취된다는 것이다. 그 성취된 일을 사도요한에게 알렸으니 이것이 계시록이다. 그런데 이 계시록은 봉인된 책이라서 아무도 펴거나 볼 자가 없고(계5:1-3) 오직 계시록 사건 전체가 어떻게 성취되는지 본 자만이 알 수 있는데 그 사람이 신천지 집단을 세운 ‘이만희’라는 것이다. 즉 아담세계 → 노아의 세계 → 아브라함의 세계 → 모세의 세계 → 예수님을 통해 ‘영적 이스라엘’ 세계창조 → 새로운 약속의 목자를 통해 ‘영적 새 이스라엘’인 신천지 시대 창조, 이런 과정(노정)을 거쳐 신천지를 마지막으로 영원한 세계가 펼쳐진다는 주장이다. 위와 같이 신천지의 역사관에 의하면 각 시대마다 다 배도하고 부패했으니 결론적으로 거룩한 신천지 집단에 와야만 구원을 받게 되며, 기성교회마저도 부패한 영적 이스라엘에 해당하므로 거기에는 구원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천지에서는 기성교회를 격렬하게 매도하고 비난하여 바벨론이라고 치부한다. 이와 같은 신천지의 시대별 구원자 교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로 성경적인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첫째, 시대별로 구원자가 따로 있다는 것은 성경의 흐름과 맞지 않는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만을 구원자로 말씀하셨다(창3:15, 요1:1-5). 그리고 모세를 통하여 주신 제사 제도, 절기, 의식, 규례 등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모형이다.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히8:5)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2:16-17) 무엇보다도 구원의 본질은 무엇인가? 죄로부터의 해방과 자유이다. 구원자의 조건은 죄 문제를 해결하셔야 한다. 인간은 죄로 인해 부패하여 가망이 없으므로 아예 구원자 후보에도 오를 수 없다(롬3:10-12). 그러므로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등이 구원자가 될 수 없다.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유일한 구원자로 증거한다(행4:11-12). 둘째, 기성교회를 전면 부정하고 새로운 교회를 주장하는 신천지의 가르침은 교회의 연속성을 부인하는 이단 사설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자.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1:5)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딤후3:14)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딤전1:18) 디모데가 어릴 때부터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그리고 바울에게서 교육을 받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조상 대대로 물려온 참된 믿음의 교훈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교회를 통하여 배우는 가르침도 교회 역사를 통하여 대대로 전해져 온 것이다. 2,000년 동안 예수님은 교회를 그의 영이신 성령을 통하여 지도해 오시고 지켜오셨다(마16:18, 딤전3:15). 그런데 뜬금없이 지금까지의 교회와 그 가르침을 부정하고 새로운 집단인 신천지에만 구원이 있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기성교회가 부패하여 구원이 없으므로 자기들에게로 와야 구원이 있다고 하는 말은 지금까지 교회를 세우시고 이끌어 오신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과 역사의 중심에 계셨던 성령님을 모독하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신천지에서 시대별 구원자론을 주장하고 기성교회를 부정하는 것은 신천지를 부각시켜 신천지에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려는 억지일 뿐 성경의 흐름이나 가르침과는 맞지 않는다. ③ 위와 같은 실상교리의 문제점 실상교리 자체의 구도가 잘못되었다. 구약과 신약을 나누어 구약의 예언은 초림 때에 성취되고, 신약의 예언은 재림 때에 성취되므로 최종 성취자인 이만희씨가 최종구원자라는 것은 성경의 흐름과 맞지 않는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만을 구원자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심판자와 구원자를 구분하는 것도 성경과 맞지 않는다. 초림 때 예수님이 구원자로서 오셨고, 재림 때에도 예수님은 구원자이면서 심판자로서 오신다고 성경은 이야기 한다. 그래서 계6:-11:에서는 일곱 인과 일곱 나팔의 재앙(심판), 계15:에서는 일곱 대접의 심판을 이야기하며, 계20:에서는 최후 심판으로서의 백보좌 심판을 묘사하고 있으며 심판의 주체는 어린양이시며,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로 되어 있다. 그래서 성경 맨 마지막 부분도 최종 구원자요 심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계22:20-21) 즉 계시록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고, 구원자도 예수 그리스도, 심판자도 예수 그리스도, 역사의 종결자도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1:8) 이러한 구도 속에 이만희씨가 끼어들 여지는 전혀 없다. 2) 육체 영생교리 ① 신천지의 영생교리와 계7:의 144,000명 신천지에서는 계7:의 144,000명과 큰 흰 무리를 구분하고 있다. 즉 144,000명은 제사장의 수이며, 계7:의 후반부에 나오는 흰 옷을 입은 큰 무리는 일반 성도들이 라고 가르친다. 144,000명은 계20:4의 목 베임을 받은 ‘순교자의 영들’로서 첫째 부활에 참여하여 제사장이 되어 천년동안 왕 노릇할 자들이며, 큰 흰 무리는 그들의 백성으로서 144,000명을 섬기게 된다는 주장이다. 자세히 말하면 144,000명이 차면 예수님의 영은 이만희씨의 육체와 결합하고, 144,000명 ‘순교자의 영들’은 신천지인 144,000명의 육체와 결합하여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그들이 말하는 육체 영생교리이다. ② 144,000명은 실제 수인가, 상징적인 숫자인가? 먼저 144,000명에 대해서 살펴보면 이 숫자는 문자적으로가 아니라 상징적인 숫자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계7:4에 ‘이스라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144,000’ 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지구상의 실제 나라인 이스라엘 사람들만 구원받는 것이 되어서 성경과 맞지 않는다. 그래서 당연히 여기서의 ‘이스라엘 12지파’는 영적인 이스라엘을 뜻한다. 계시록의 모든 단어들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신천지가 숫자만큼은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일관성 없이 자기 편리대로 해석하는 것이다. ③ 신천지의 육체 영생교리의 문제점 신천지에서는 구원받는 무리들을 144,000명과 흰 무리로 구분하였다. 그렇다면 구원받는 사람들 사이에 차별이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맞지 않는다. 성경 어디를 봐도 구원받는 사람들 사이에 단계나 차별이 있다는 내용은 없다. 오히려 차별이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롬1:16)”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롬10:12). 그리고 구원받는 모든 사람들을 제사장 무리와 기타 무리로 구분하는 것은 성경과 맞지 않는 것이 성경에서는 구원 얻는 성도들을 모두 영적인 제사장으로 보기 때문이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벧전2:5,9) 3) 성경공부교리(말씀의 짝, 비유풀이, 영적해석) ① 신천지의 성경공부교리 즉 비유풀이의 목적 신천지에서는 성경에서 말씀하신 예언적인 내용 특히 천국비밀을 예수님께서 비유로 감추었기 때문에 비유를 풀어야만 천국을 깨닫고 천국이 허락된다고 주장한다. 신천지 집단만이 이 천국비밀 즉 비유를 올바로 풀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데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첫째, 교주를 재림주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게 되면 재림 주는 하늘로부터 구름을 타고 호령과 천사장의 나팔 소리 가운데 오시는 것으로 되기 때문에 여인에게서 태어난 자신들의 교주를 재림주로 내세울 수 없다. 그래서 구름, 하늘, 나팔소리 등을 비유라고 하여 자기들 방식대로 풀어서 교주를 재림 주로 끼워 맞추는 것이다. 둘째로, 성경을 자신들이 만든 교리에 맞추기 위해서이다. 결국 이단 신천지를 비롯한 여러 이단들이 성경 해석을 비유풀이로 하는 것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핵심교리를 믿게 하고 교주를 신격화하기 위함이다. ② 신천지에서 성경을 비유로만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 및 비판 마13:34-35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34절) 그러나 이 본문은 성경에 기록된 모든 예수님의 말씀이 다 비유라는 뜻이 아니다. 여기서의 비유는 마13:의 비유를 뜻한다. 더구나 마13:의 내용도 모두 비유라고는 말할 수 없다. 마13:에서 예수님은 비유를 제자들에게 직접 해석하여 풀어주신다. 이어서 마13:35을 보자.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로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이것은 시78:2을 인용하는 것으로서 신천지에서는 비밀을 감추인 그대로 발표한다고 해석하지만 시78:2의 뜻은 비밀을 감추인 그대로 발표한다는 것이 아니라, 창세로부터 감추인 것을 밝히고 드러낸다는 뜻이다. 이렇게 본다면 마13:34-35은 “모든 성경은 비유로 되어 있으니 비유로 풀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구절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성경은 비유로 기록되어 감추어져 있다’는 신천지 측의 주장은 억지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비유를 던져만 놓으신 것이 아니라 상당수를 직접 풀이해 주셨다. ‘비유’라는 단어는 성경(헬라어)에 ‘파라볼레’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이 단어의 의미는 “어떤 사물의 옆에 나란히 던져 놓음으로서 서로 비교하게 하여 그 의미를 깨닫게 함”이라는 뜻이다. 즉 비유의 원래 목적은 감추려는 것이 아니라 알게 하는 것에 있다. 또한 마13:51에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비유를 깨달았느냐고 물으시니 제자들이 깨달았다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막4:33에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저희가 알아들을 수 있는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더라도 예수님이 천국의 비밀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리고 알아듣기 쉽게 하기 위해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임을 알 수 있다. ③ 신천지식 비유풀이 방식 ⓐ 공식화해서 획일적으로 푼다. 성경의 문맥을 무시하고 자기들만의 비유공식을 만들었다. 실제로 신천지에서는 <씨 = 말씀>, <밭 = 사람의 마음 혹은 교회>, <나무 = 사람>, <가지 = 제자>, <잎=전도자>, <열매 = 말씀과 성도>, <새 = 영>, <양식 = 말씀>, <누룩 = 교훈>, <그릇 = 사람의 마음>, <물=말씀>, <샘=목자>, <강=전도자>, <구름=성령>, <하늘=장막 혹은 목자>, <땅=육체 혹은 성도>, <해=목자>, <달=전도자>, <별=성도>, <바다=비진리의 세상>, <어부=목자 혹은 전도자>, <그물=말씀>, <고기=성도>, <배=교회>, <산=교회>, <머리=목자>, <뿔=권세자>, <꼬리=거짓선지자>, <우상=거짓목자>등으로 가르친다. 단어와 성구를 중심으로 해석하여 마치 수학문제를 풀듯이 이 공식에 따라서 획일적으로 성경을 풀이한다. 그러나 이 방식이 잘못된 것은 성경이 그러한 공식에 따라서 획일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씨’라는 낱말의 경우 신천지에서는 공식에 의해 무조건 ‘말씀’으로 풀이하는데 ‘씨’가 ‘말씀’이라는 뜻으로만 쓰이지 않는다. 렘31:27의 경우 신천지에서는 ‘씨=말씀’이라는 공식에 의해 거기에 나오는 ‘사람의 씨’는 진리, ‘짐승의 씨’는 비진리를 풀이한다. 그러나 렘31:23-28을 문맥으로 보면 ‘사람의 씨’는 사람의 자식, ‘짐승의 씨’는 짐승의 새끼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씨’가 눅17:6에서는 ‘믿음’이라는 뜻으로 고후9:10-11에서는 ‘연보(헌금)’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을 볼 때 비유는 문맥을 중심으로 보면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기에 획일적으로 공식화하는 것은 아전인수 격인 오류이다. 또한 신천지에서는 ‘물’ 역시 ‘말씀’으로 공식화해서 성경을 푸는데 요7:37에서는 ‘성령의 역사’, 시22:14에서는 ‘그리스도의 고난’, 시88:17에서는 ‘원수의 핍박’등의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성경의 낱말들을 획일화, 공식화해서 성경에 대입해서 푸는 것은 엉터리 해석법이 될 수밖에 없다. ⓑ. 성경에서 짝이 있다고 하면서 성경구절끼리 연결하면서 푼다. 신천지에서 성경 구절에 짝이 있어 짝으로 풀어야 한다고 하면서 성경 구절을 연결해서 비유풀이를 한다. 그 근거로 인용하는 구절은 사34:16이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그러나 이 구절은 문맥상 에돔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한 말씀이다. 그 예언은 사34:11-15까지 기록되어 있다. “당아와 고슴도치가 그 땅을 차지하며 부엉이와 까마귀가 거기 거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혼란의 줄과 공허의 추를 에돔에 베푸실 것인즉(12절 생략) 그 궁궐에서 가시나무가 나며 그 견고한 성에는 엉겅퀴와 새품이 자라서 시랑의 굴과 타조의 처소가 될 것이니 짐승이 이리와 만나며 숫염소가 그 동류를 부르며 올빼미가 거기 거하여 쉬는 처소를 삼으며 부엉이가 거기 깃들이고 알을 낳아 까서 그 그늘에 모으며 솔개들도 그 짝과 함께 거기 모이리라” 에돔이 심판을 받아 땅이 황폐화되어 사람이 살지 못하게 되며, 그 땅에는 레위기에서 언급한 부정한 짐승들이 짝을 이루며 살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그래서 나중에 실제로 심판이 임했을 때 그 땅에 사는 짐승들을 보면서 여호와의 책, 즉 11-15절의 예언과 비교해보면 그 예언대로 하나도 빠짐없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사34:16절은 예언의 성취에 관련된 구절일 뿐 성경에 짝이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구절이 아니다. 신천지 비유풀이는 성경구절을 그럴 듯하게 연결시켜 가며 마치 성경으로 성경을 풀어간다고 착각을 하지만, 그러나 성경을 연결해가며 인용한다고 해도 성경을 정확히 해석하여 적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비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다. ④ 신천지식 비유풀이의 근본적인 문제점 성경에서 명백히 비유로 하고 있지 않는 것을 무리하게 비유로 풀게 되면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엉뚱하게 해석하게 된다. 성경을 해석할 때는 문맥적인 상황, 역사적 문화적 지리적 종교적 상황, 언어적 상황 등을 고려해서 본문의 의미를 해석해야 하며, 성경이 기록된 원래 의도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서 신천지식의 비유풀이는 문맥과 성경이 기록된 의도를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성경을 끼워 맞추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6. 신천지 미혹에 대한 대책 1)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이단대책의 최선은 예방교육이다. 정기적인 이단 예방 세미나를(년1회) 통해 성도들이 일시적 경계가 아닌 지속적으로 이단에 대한 경각심과 건강한 면역력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부서별, 구역별로 소그룹 모임들을 통해 이단들을 만났던 경험들을 나누며 서로 조사하여 발표하거나 교회에서는 주기별로 최근에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단들의 동향을 전시회 형식으로 본당입구나 가능한 공간에 게시하는 방법도 필요하다. 2) 성경공부에 대한 갈급함을 교회 안에서 해소시켜 주라. 신천지의 특징은 성경공부를 통해서 미혹한다는 것이다. 다른 각도에게 보면 성도들이 그만큼 성경 중심의 설교에 굶주려 있고, 성경을 알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천지에 대한 우선적인 대책은 성경 중심의 설교와 함께 성경 자체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평소 교인들이 성경에 대해 가지고 있는 궁금증을 교회에서 적극적으로 해소해 주어야 한다. 교회 성경공부 및 교리교육의 강화를 통해 올바른 성경관, 신앙관, 믿음관을 심어주며, 구원론, 기독론, 성령론 등을 통해 기초를 튼튼하게 하며 사이비 이단의 교리가 구체적으로 성경을 어떻게 왜곡 시켜서 가르치는지를 객관적으로 분별할 수 있도록 실례를 들어주어야 한다. 3) 교회 새신자 교육과 관리 프로그램을 체계화 하여야 한다. 새신자가 등록하면 새가족 교육기간 중에 반드시 기독교를 사칭한 사이비 이단들 특히 신천지의 미혹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믿는 자들에게 진행되는지 충분한 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관리자를 통한 심방과 세심한 돌봄이 필요하다. 신천지는 자기 신분(직장, 가정, 학교 등) 노출을 꺼린다. 새가족이 교회를 방문하면 혹시 신천지가 아닐까 의심하고 고민만 할 것이 아니라 신천지가 위장하여 추수꾼으로 잠입하여도 성도 개개인이 분별할 수 있는 지각을 갖게 되면 미혹이 통하지 않으므로 교회 안에서의 위장 활동이 쉽지 않게 된다. 당회는 교회의 중심기구로서 모범적인 중직자들을 중심으로 이단 대책 위원회를 구성하여 정관과 매뉴얼을 만들어 문제 발생시 당황하지 않고 일사분란하게 대처해야 한다. 4) 교주 사후를 준비하자. 교회는 교역자나 중직자 중 이단 전문 상담사를 양성하여 성도들이 항시 이단 문제나 궁금증을 문의하면 신속한 대응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신천지 교주 사후에 큰 충격을 받을 미혹된 영혼들을 회복하고 치유하는 프로그램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신천지에 미혹된 영혼들은 교회가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해서 잃어버린 양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정죄와 출교가 대안이 아니라 불쌍한 영혼들을 찾아서 상담을 통해 이단교리의 허구성을 분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고 복음으로 회복시켜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 5) 지역별 연합 대처와 정보 공유가 필요하다. 신천지는 급성장하면서 체계적, 공격적인 포교를 하기 때문에 한 교회의 힘만으로는 대처하기가 힘들다. 따라서 각 지역별로 연합해서 신천지 센터와 복음방 위치파악, 포스터와 전단지 현수막 제작, 스티커 부착, 센터 앞 1인 및 집단 시위, 피해자 파악 후 지역교회와 나누기, 이단의 심각성을 사회에 알리기(불신자도 미혹의 대상), 연합 세미나 개최 등의 협력이 필요하다. 6) 교회와 성도들의 영적 건강함이 제일 중요하다. 교회가 교회답지 않고 목회자가 목회자답지 않고 성도가 성도답지 않으면 이단은 암적 존재로 우리의 약점을 빌미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교회를 갈등과 혼란에 빠뜨리며 미혹의 동력을 얻게 된다. 복음 앞에 바로 선 교회와 복음으로 건강한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미혹이 통할 수 없음을 기억하자.
    • 기고/강연
    • 강연/특강
    2017-06-23
  • 난민 선교
    ▲ 이병수 교수(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과, 국제다문화사회연구소 소장)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으로 그들을 위해 이론과 실천의 모범적 삶을 사셨던 손봉호 고신대 석좌 교수는‘난민’에 대한 한국사회와 교회의 입장을“난민에 대해서 세상에서 가장 인색한 우리나라와 이에 대해서 아무 감각도 없는 한국교회”라고 질타 한 적이 있다. 그는 또“만약 우리나라에 미국이나 영국처럼 노동자들과 난민들이 대거 몰려왔다면 아마 우리는 그보다 훨씬 더 극렬하게 국수주의적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지적하였다. 하지만 난민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바꾸어 놓는‘유쾌한 오보’들이 중동과 북아프리카와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다. 필자는 금년 파리 난민포럼(2월 8-11일)에 참가해서 중동과 북아프리카와 유럽에서 난민사역에 종사하는 많은 한국 선교사들의 보고를 통해 우리가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놀라운 일이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온 몸으로 느꼈다. 그것은 한국과 세계 여러 나라의 선교사들의 난민선교에 의해 수많은 시리아 및 기타 지역의 무슬림 난민들이 주님께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주는 것이 기독교 세계관 학술 동역회 잡지 2017 년 월드뷰 2 월호 내용이다. 글쓴이는 금년 1 월에 한국을 방문한 네덜란드 라브리 공동체 대표이며 국제 라브리 회장을 역임했던 리트께르크(Wim Rietkerk) 목사이다. 그는 유럽에 몰려드는 시리아를 포함한 기타 난민을 하나님께서 유럽 교회에 보내 주신 '뜻밖의 선물'로 본다. 그의 보고에 의하면 고국과 종교적 전통으로 부터 단절된 수많은 무슬림들은 새로 정착한 땅에서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하기 시작하고, 유럽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들을 따뜻하게 환영해주자 놀랄만한 많은 숫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2015 년부터 독일에 약 100 만 명의 난민이 몰려든 현재까지 무려 3,000 명 이상이 세례를 받았고 그가 살던 네덜란드 동네 교회에서도 70 명의 무슬림들이 새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지금까지 이슬람국가를 찾아간 어떤 선교사도 이런 엄청난 결과를 얻어 낸 적이 없었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난민 사태로 그 나라에서는 이슬람 때문에 복음을 듣지 못했던 무슬림들이 난민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복음에 매우 쉽게 노출되고, 인간적으로 처한 힘들고 갈급한 상황 때문에 복음에 매우 수용적이라 선교의 열매와 결과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국의 작가 루이스(C. S. Lewis, 1898-1963)가 「고통의 문제(The Problem of Pain)」라는 책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고통은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있는‘확성기’라고 말한 것처럼 시리아 난민들이 겪는 고통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확성기’를 통해 듣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에 주신 선교의 수확 및 추수의 기회라는 것이다. 유럽과 중동의 한국인 및 유럽의 선교사들의 헌신과 수고로 많은 중동의 난민들이 주님께로 돌아올 뿐만 아니라, 그들이 앞으로 잘 훈련되어 본국으로 돌아가 같은 민족 무슬림들을 복음화 하는데 선교적 도구로 쓰임 받는 놀라운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선교사들이 예상하고 있다. 그리스 지역에 있는 시리아 난민을 위한 한인 선교사의 보고에 의하면 지금 미국 선교부는 이런 상황을 최대한 활용해서 난민선교의 중요성과 효과를 깨닫고 매우 발 빠르게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유럽의 난민사태를 통해 하나님께서 잠자고 있고 쇠락해 가는 유럽교회를 깨우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앞에서 언급한 네덜란드 리뜨께르크 목사의 생각이기도 하다. 그는 그의 글 결론에서 이런 질문을 제시하면서 마친다. '혹시 하나님은 유럽을 기독교적 뿌리로 돌려보내시기 위해 난민들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닐까?' 마찬가지로 우리 한국교회도 이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포착해서 난민 선교의 파도의 물결에 타야 하지 않을까? 유엔난민기구(UNHCR)에 의하면 전 세계에 6,700만 명의 난민이 존재하고 있으며, 시리아 인구 2,200만 명 중 난민은 1,100만 명이다. 그들 가운데 자국 내에 거주하는 난민은 600만 명이고, 해외에 50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본다. 이들에 대한 복음의 선교적 접근과 그 열매와 효과를 위해서 한국교회가 매우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혹자는 누가복음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타나는 강도 만난 사람은 오늘날 시리아 독재자에 의해 발생된 시리아 난민이고, 그들을 돕는 선한 사마리아인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로 본다. 그 비유에서 예수님의 ‘누가 네 이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두 부류로 볼 수 있다. 하나는 강도 만난 가운데 고통당하고 도움이 필요한 자이고, 다른 하나는 그 고통당하는 사람을 도와주어야 할 사람이다. 따라서 ‘이웃’은 가까이 있고 멀리 있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공간적 개념’이 아니라, 도움을 필요로 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랑의 필요자와 공급자가 공간적 개념을 뛰어 넘는 이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한국교회가 이 일에 참여한다면 공간적으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 할지라도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난민들에게 진정한 그들의 이웃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피는 물보다 더 진하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다 아니다. 때로는 물이 피보다 더 진할 수도 있다. 인류의 역사는‘피는 물보다 더 진하다’는 원초적 본능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꿈과 이상을 가지고 ‘물이 피보다 더 진하게 사는’ 사람에 의해 발전하고 진보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피가 물보다 더 진하다’는 이 원초적 본능과‘물이 피보다 더 진할 수 있다’는 일반은총을 뛰어 넘어 시리아 난민사역에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특별은총의 하나님의 사랑이 근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익히 잘 아는 대로 아프리카 지역에서 유럽으로 가는 수많은 난민의 행렬 가운데 지중해에서 많은 난민들이 목숨을 잃어가고 있다. 그래서 언론에서“지중해, 난민들의 공동묘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인류적 재앙을 우리 모두가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보편적 인류애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진정한 해결책이다. 어거스틴(Augustine of Hippo, 354-430)에 의하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다. 타인을 돕는 손, 가난한자에게 달려가는 발, 불행을 보는 눈, 한숨과 슬픔을 듣는 귀를 가진 것이야 말로 사랑의 참모습이다”라고 갈파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우리는 시리안 난민 사역을 위해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즉각적으로 순종하고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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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13
  • 2016 10대 이슈 및 사회인식조사(종교분야)
    한국기독교언론포럼(이사장 김지철)은 지난 8일 ‘한국기독교 선정 2016 10대 이슈’를 발표했다. 포럼은 종교, 정치, 통일, 경영경제, 사회문화, 교육, 언론 등 7개 분야별로 전문가그룹에 의뢰해 10대 이슈를 선정, 발표했다. 종교분야는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대표회장 김경원 목사)에서 맡았다. 다음은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에서 선정한 종교분야 2016년 10대 이슈다. 2016 10대 이슈 및 사회인식조사 종교분야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이 상 화 목사 | 사무총장 1. 종교개혁 500주년 준비를 고뇌하다 2016년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2017년을 준비하기 위해 바쁜 한 해를 보냈다. 현재 루터회를 비롯하여 예장고신, 예장통합, 예장합동, 기장 교단에서 종교개혁500주년기념사업위원회가 설치되어 있고, REFO500 기관이 활동하고 있다. 또한, CBS와 국민일보가 공동으로 한국교회 24개 교단과 5개 연합기관, 기독교대학 및 신학교 등 주요 기관이 참여한 슬로건인 ‘나부터 □’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각 교단의 기념사업을 비교해 보면 거의 교단과 교회 내에 국한되어 있어서 종교개혁의 정신을 사회에까지 광범위하게 이어가기 위한 노력으로는 너무 제한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를 극복하고자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대표회장 김경원 목사)는 다섯 차례의 ‘열린대화마당’과 전국수련회를 열면서 한국교회 주요 교단들의 종교개혁 500주년 준비상황을 점검하고, 깊이 있는 논의와 대안을 모색해 왔다. 그 결과로 10월 27일 중앙루터교회에서 가진 한목협 주최 종교개혁 499주년 기념예배를 통해 모인 각 교단 임원과 종교개혁 500주년 준비위원, 한목협 운영위원들은 2017년 한국교회가 공동으로 추진할 과제에 대해 마음을 모으고 구체적인 준비를 위한 논의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한국기독교언론포럼(이하 한기언)의 조사결과는 한국교회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개혁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로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돌아가 복음의 본질 회복’을 가장 많이 꼽았고, 다음으로 ‘목회자들의 윤리 회복’이락 응답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지금의 한국사회 분위기 속에서 내년 대선을 앞둔 한국사회에 불고 있는 거센 개혁의 바람이 도리어 한국교회에 회개와 변화의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은 대단히 역설적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이 시작되는 2017년을 맞은 한국교회의 실제적인 변화의 열매를 세상 사람들이 발견하게 될 때 종교개혁 500주년의 울림의 깊이와 영향력은 지속적인 반향을 일으킬 것이 틀림없다. 2. 이단사이비로 인해 자중지란이 일어나다 2016년 한국교회는 이단 문제로 자중지란이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예장통합 교단은 올해 9월 12일 특별사면 형식으로 ‘이단 해제’를 결정했다가 총회 현장에서 거센 반발에 부딪혀 철회했지만,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공교단이 ‘이단 해제’를 결정했다는 것은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 와중에 이단사이비들은 대규모의 집회와 시위를 통해 공개적으로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는 등 전략적으로 움직였다. 이에 맞서 대전 새로남교회(오정호 목사) 같은 경우에는 신천지를 상대로 집회금지가처분을 냈고, 지난 8월 8일 대전지방법원 제21민사부(재판장: 문보경 판사)는 이를 인용하는 결정을 내려 이단사이비 집단이 무기로 삼던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막아내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도 했다. 가장 큰 사건은 역시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교계에서 중요한 담론으로 등장한 온갖 기독교 이단 관련 이슈들이다. 한국교회는 최순실 씨의 아버지 최태민의 ‘목사’라는 호칭에 대해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였지만, 최 씨가 예장종합총회에서 신학 교육 없이 목사 안수를 받았다는 보도 이후 힘을 잃고 있다. 이번 한국기독교언론포럼(이하 한기언)의 조사결과를 보면 이단사이비에 대응하기 위해 목회자들은 교계 연합의 대책기구와 입장발표에 방점을 둔 반면, 성도들은 이단사이비에 대한 교육이 절실하다고 응답했다. 이는 이단사이비들의 포교대상이 일반성도라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 한다. 한국교회가 여러 이단들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결과로 지금의 국가적 재앙을 초래하게 되었다. 2017년은 한국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논리로 공교회성을 회복하고 교파의 벽을 넘어 서로 협력해서 이단사이비의 침투를 막고 삶의 현장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을 양육하는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 3. 목회자 윤리문제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올해도 목회자의 성추행 소식은, 사람과 공간만 새로울 뿐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상적인 일이라는 사람들의 다소간의 편견에 확신을 심어주는 꼴이 되었다. 특히 청소년사역단체 대표 목사의 성추문뿐만이 아니라 선교사의 성적 비리, 그리고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재정 비리는 교회의 거룩성을 훼손하고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목회자의 윤리문제는 자신뿐만 아니라 교회의 대사회적 이미지 추락, 그리고 사회 전체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이번 한국기독교언론포럼(이하 한기언)의 조사결과에서 일반성도들은 목회자 윤리문제 발생시 해결 방안으로 ‘모든 직임을 내려놓고 교회의 처분을 기다려야 한다’(50.8%)를 가장 많이 꼽았다. 다음으로 ‘문제 발생 즉시 사과하고 교회를 떠나야 한다’(33.3%), ‘충분한 회개의 시간을 갖게 하고 용서해야 한다’(8.1%), ‘사실 관계가 확인될 때까지 사역을 지속해야 한다’(5.2%)고 응답했다. 이러한 결과는 교단, 연령, 성별, 지역, 경제수준, 교회 크기 등 응답자특성별 전 분야를 불문하고 지도자의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교회가 보여준 일련의 문제 해결 과정들은 정치권이나 일반사회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아니 더욱 견고하다는 좌절감을 주고 있으며, 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영적 권위를 약화시키고 있다. 결국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목회자의 윤리의식 정립에서 찾아야 한다. 목회자들은 뼈를 깎는 자기갱신과 거룩성 회복을 통해 더욱 낮아진 자세로 주님께서 주신 소명을 바르게 수행해야만 비로서 이 세대와 복음으로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4. 이슬람의 거센 도전 앞에 서다 2017년의 한국교회는 교회 밖에서는 이단사이비와 싸우고 교회 안에서는 윤리 문제로 내홍을 겪으며 약점이 노출된 상태에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이슬람과 맞닥뜨리고 있다. 교계 언론과 공교회의 대표자들은 하나같이 잘못하다 보면 유럽처럼 될 수 있기에 이슬람이 한국에 뿌리 내리지 못하도록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이슬람에 대한 전문성 있는 연구자를 미처 길러내지 못한 한국교회는 확인할 수 없는 괴담 수준의 정보들로 성도들에게 공포감만 조성하고 있다. 예측 불가능한 미지의 대상에 대한 정보 부족은 막연한 두려움을 낳는다. 이슬람이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이때에, 한국교회는 이슬람의 교리와 제도, 문화 전반에 걸친 정확한 정보를 성도들에게 제공하고, 설득력 있게 이슬람을 바라볼 수 있는 기독교인 전문가들을 길러내어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할 것이다. 5. 인공지능(AI) 시대에 신학적 담론을 요구받다 2016년 3월, 알파고(AlphaGo)가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승리하면서 한국사회에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 보다 높았던 한 해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교회의 목회현장과 목회자들에게는 AI는 큰 관심의 주제가 되었다. AI와 관련한 논의의 초점은 AI에게 감성, 창조성, 예술성이 가능한가의 수준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가진 AI가 과연 자유의지나 양심이나 도덕성까지도 지닐 수 있는가에 대한 윤리적 담론으로 옮겨갔다. 특히 간과할 수 없는 것은 AI 프로젝트의 최종 지향점이 인공지능을 통한 영생하는 신으로서의 AI인 것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담론을 형성시킬 수 있는 분야 중 하나는 분명 신학적 담론이기에 한국교회는 어떻게 응답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인가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한 해 였다. 6. 목회자 공급 과잉은 한국교회가 공동으로 풀어야 한다 금년 총회에서 각 교단의 교세 현황이 보고되었다. 교단마다 교회와 교인은 감소하는데 목회자는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수요와 공급이 엇갈리는 상황 속에서 신학교 구조조정은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한국기독교언론포럼(이하 한기언)의 조사결과에서도 개신교인과 목회자들은 한국교회의 목회자 수급에 대해 ‘각 교단에서 구조적으로 조정하여 목회자 수를 줄여야 한다’를 각각 57.8%, 60.0%의 비율로 가장 많이 꼽았다. 예장통합 교단에서 장로회신학대학교 박상진, 이만식 교수에게 2015년 목회자 수급 문제 연구를 의뢰한 결과 교인은 감소하고 교회와 목사는 증가하는 것으로 예측되었다. 목회자 증가의 배경에는 신학교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 문제는 한국교회가 공동으로 풀어야 한다고 보고서에서 지적하고 있다. 또한 ‘비인가 신학교’에서 자질과 역량이 검증되지 않은 수많은 목회자들이 배출되고 있는데, 이들로 인해 전체 기독교 명예가 훼손되고, 전도의 문이 막힌다고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반면에 신대원 지원자 수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이는 신학교 운영에 어려움을 초래하고 교육의 질을 저하시켜 목회자 윤리 문제와 일탈 행위를 발생시킬 것이며, 한국교회 신뢰도는 계속해서 하락하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는 끊기 위해서는 한국교회 전체가 뼈를 깎는 아픔을 각오하고 먼저 수술대에 오르는 용기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7. 한국교회 연합, 실질적 방안을 고민하다 교단장회의는 올해 7월 26일 한기총과 한교연 대표회장을 배석시킨 가운데 ‘한기총과 한교연 통합협의회’를 출범시키기로 결의하고 ‘선 통합 선언, 후 추진’의 원칙을 세우고 통합절차를 밟기로 했다. “대외적으로 이단, 동성애, 이슬람, 종교인 과세 등 문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한국교회의 내적 일치와 연합이 강하게 요구된다”고 밝히면서 이후에 출범한 ‘한국교회연합추진위원회’는 각 교단 총회에 이를 상정하고, 10월과 11월에 통합 정관 등을 협의한 뒤 12월에 통합총회를 갖기로 결의한 바 있다. 했다. 하지만 이단 문제와 내부 반발로 통합 논의가 진통을 겪으면서 11월 30일 통합 선언의 시기를 넘겼다. 또 다시 12월 5일에 회의를 열고 금년 성탄절에 한국교회에 연합이라는 선물을 내 놓겠다고 약속한 상황인데 이후의 상황은 지켜 볼 일이다. 이번 한국기독교언론포럼(이하 한기언)에서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에서도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중심단체를 묻는 질문에 대해 ‘한기총’(23.0%)를 가장 많이 꼽았지만,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연합기구의 영향력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한국교회 연합의 당위성에 대해 많은 목회자들이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2017년으로 넘어가게 된 연합논의가 어느 정도의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8. 노년세대 증가가 교회 사역에 새로운 방향성을 묻다 통계청에서 실시했던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를 2010년과 비교한 결과 유소년인구는 97만 명이 감소했고, 65세이상 고령인구는 121만 명이 증가했다. 1인 가구는 520만 가구(27.2%)로 대폭 증가했고, 모든 시도에서 고령인구 비율이 7%를 넘어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고 한다. 이것은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난해에 60대에 진입한 6.25 전쟁 이후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유년 시절 한국교회 부흥을 이끌었고, 중장년 시기에는 한국교회의 양적 성장을 견인했던 이들이다. 이들이 중장년층이 되면서 경제적으로 부요하고 건강한 교회의 핵심활동 연령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반면에 출산율의 저하로 인한 인구절벽 현상과 맞물린 전국적인 교회학교의 감소는 다음세대를 낙관할 수 없게 하고 있다. 다음세대를 살리기 위한 각 교단의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아직 해답을 찾지 못했지만, 다가오는 새해에도 교회의 미래를 위해 다음세대를 향한 집중력만큼은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동시에 가족에 대한 책임 못지않게 개인적 욕구에 충실한 역사상 첫 세대인 노년세대를 향한 이해와 목회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한국교회 전체적으로 더욱 중요한 과제로 남게 되었다. 9. 통일에 대한 관심 부족을 보이다 지난해 광복 70년을 맞아 그 어느 때보다 통일 논의가 활발했지만 올해 2월 충분한 절차와 합의 없이 감행된 개성공단의 폐쇄와 함께 남북 대화의 돌파구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동북아시아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견제와 대립의 틈바구니에서 생존과 번영을 고민해야 할 중대한 시점에 국정 농단의 혼돈에 놓인 국내 정치 상황은 통일 문제를 입에 담기에도 부족한 상황이다. 한반도평화연구원에서 2015년 11월에서 12월까지 일반인 300명, 목회자 300명을 대상으로 “한국교회 목회자 통일인식 조사”를 실시하고 올해 2월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 결과를 보면 남북한의 통일에 있어서 대한민국의 약점(Weakness)으로 일반인은 ‘젊은 세대의 무관심’(54.3%)을, 목회자는 ‘남남갈등’(60.7%)을 가장 많이 꼽았다. ‘통일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 부족’도 일반인의 45%, 목회자의 59%가 ‘그렇다’고 응답해 통일 의지가 부족하다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통일문제와 탈북자들에 대해 선교적인 마인드로 접근하는 목회자들에 비해 일반인은 남북간 단절로 인한 괴리와 일상의 삶과 ‘통일’ 담론에 거리감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다. 한국교회의 북한에 대한 입장은 무관심과 의지의 부족 가운데 정치 상황과 맞물려 냉온탕을 넘나들며 진행되어 왔다. 29,830명(2016년 9월 기준, 통일부)의 탈북민들도 제대로 품지 못하는 한국교회가 분단의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북한 동포를 위한 평화의 사도가 되어 통일의 최선봉에 나설 수 있을지는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다. 10. 한국교회의 정치 참여는 대개 헛발질이었다 과거 한국교회는 구국기도회나 집회, 조찬모임을 통해 사회적 안정과 질서 유지에는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정치참여를 했으나, 때로는 그런 정치적 행보가 보편적 가치와 인권이 유린된 관료적 권위주의 정권을 지속시킨 힘으로 작용해서 정치적 민주화를 지연시킨 과오를 범하기도 했다. (사)한국기독교언론포럼 이번 한국기독교언론포럼(이하 한기언) 조사에서 개신교인들은 한국교회의 정치 참여에 대해 ‘정치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것이 좋다’(65.7%)를 가장 많이 꼽았다. 다음으로 ‘정치에 직접 참여하지는 말고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것이 좋다’(31.0%)를 꼽았다. 목회자의 정치 참여를 묻는 질문에서도 마찬가지로 ‘정치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것이 좋다’(58.3%)를 가장 많이 꼽았고, ‘정치에 직접 참여하지는 말고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것이 좋다’(26.2%)를 꼽았다. 개신교인들은 교회나 목회자의 정치 참여에 대해 부정적이며 학생(48.8%)보다 기성세대(68.9%~72.6%)가 더욱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광장에 나타난 상처받은 민심을 위로하고 한국사회가 당면한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불평등의 해소는 물론 평화 통일의 시대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관점에서 예언자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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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연/특강
    2016-12-30
  • 다문화 사회, 한국사회의 위기인가 기회인가?
    ▲ 국제다문화사회연구소 소장 이병수 교수(고신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라”(신10:18-19). 국제 다문화 사회연구소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국제 이주민 즉 외국인 근로자, 유학생, 국제결혼 부부, 다문화 가정 청소년 및 새터민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나그네’, ‘손님’, 그리고 ‘형제, 자매와 자녀’로 맞아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겨 ‘하나님의 가족’으로 초대하기 위한 성경적·신학적·철학적·정책적·선교적·실천적 연구소입니다. 1. 본 연구소는 하나님의 형상교리를 기초로 해서 신학적 및 선교학적 의미를 추구합니다. 성경적으로 본다면 국제 이주민들도 기독교인인 우리와 같이 창세기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형상(Immago Dei)’입니다. 본 연구소는 국제 이주자의 한 축을 이루는 무슬림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라는 것이 성경적 가르침이라고 믿습니다. 만약 유교도, 불교도, 그리고 힌두교도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한다면 무슬림도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개혁주의 조직신학자인 앤서니 후크마는 그의 책 「개혁주의 인간론」에서 ‘하나님의 형상’ 교리로 인간론을 설명합니다. 후크마는 타락한 죄인도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에 의하면 “성경은 인간이 죄에 빠진 사실이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향상을 심각하게 왜곡시켰다고 가르치지만 또한 타락한 인간도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 간주해야 한다고도 가르친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이므로 우리는 그 사람을 저주해서는 안 되며(약3:9)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에게 선을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후크마는 이런 ‘하나님의 형상’의 교리를 칼빈에게서 배웠습니다. 후크마에 의하면 “어느 누구 못지않게 인간의 죄악성과 무가치함에 대해 깊이 알고 있었던 존 칼빈은”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죄인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다고 “놀랍게 표현했다”하면서 그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다음과 같이 인용합니다. “우리는 사람들 자신이 어떤 자격이 있는지 고려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바라보아야 하며 그 형상에 모든 영예와 사랑을 바쳐야 한다. 그러므로 당신은 당신의 도움이 필요한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그 사람을 돕기를 거절할 어떤 이유도 없다. 가령 ‘그 사람은 경멸받을 만하고 무가치 하다’고 하자. 그러나 주님은 곧 주님이 자신의 형상의 아름다움을 아끼지 않고 주신 자가 그 사람임을 알려주신다. 가령 그 사람이 당신의 최소한의 노력조차 받을 자격이 없다고 하자. 그러나 당신에게 그 사람을 천거하는 하나님의 형상은 당신이 당신 자신과 당신의 모든 소유를 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설파합니다. 후크마는 이 하나님의 형상의 교리가 가지는 선교적 함의를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교회는 복음전파 내지 선교사역을 할 때 이 땅위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라는 확신을 고수해야”하고 “하나님의 형상교리는 교회의 복음전파의 사명에 있어서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조직신학의 장점은 조직신학과 선교학을 통섭(統攝)적으로 보려는 시도와 노력이었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그는 칼빈의 신학에 기초한 여러 신앙고백서들을 선교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선교적 함의를 제안했습니다. 조직신학자 후크마의 책을 읽으면서 다른 화란의 교의학자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의 「개혁교의학」이 생각이 났습니다. 이 책은 최근 고려신학대학원 출신의 박태현 교수가 4권으로 한국어 번역본으로 완성했습니다. 미국에서도 이 책을 최근에 번역한 것으로 볼 때 이 번역이 한국 신학계에 끼친 공헌은 참으로 귀하고 큰 것입니다. 4권 분량이 약 3,500 쪽에 가깝습니다. 바빙크는 그의 책에서 교의학의 실천적 성격을 여러 곳에서 매우 강조합니다. 정말 귀하고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의 책 4권중에 신학의 실천적 성격이 가장 잘 나타야 할 선교에 대해서 책 전반과 관련하여 선교적 함의와 또는 4권에 포함되는 교회론의 부분에서도 교회의 선교적 역할을 언급한 것을 거의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칼빈의「기독교 강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 강요 4권에 해당하는 교회론 에서도 칼빈의 선교에 대한 언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교회의 중요한 역할 중 예배, 교제, 봉사, 그리고 증거가 있습니다. 증거하는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아니라면 교회라고 부를 수가 없습니다. 조직신학자 에밀 부르너는 “불이 탐으로써 존재하듯이 교회는 선교함으로써 존재한다.”고했습니다. 독일의 조직신학자 마틴 켈러는 “선교는 신학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마틴 켈러의 주장은 교회와 신학이 존재할 수 있는 기반은 교회가 복음을 전하고 선교하였기 때문에 신학이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이 교회의 증거하는 공동체의 요소, 증인의 공동체를 누구보다도 강조한 신학자가 보수신학에서 비판한 독일계 스위스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였습니다. 화란 선교학자 요하네스 베르카일은 그의「현대선교신학 개론」에서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특히 III:2권 과 IV: 3권은 선교학에 매우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이들 항목에서 바르트는 하나님의 선교를 논의 하면서 교회의 소명은 ‘하나님의 선교의 연속(missio Dei Continuata)’으로서 교회는 하나님의 지상 증거자라.”고 주장합니다. 바르트는 “교회의 선택, 화해, 영적 약속, 소명, 명령 그리고 봉사 등의 배경에 반하여 교회의 소명에 대한 그의 사상을 전개” 하면서 마침내 “만일 교회가 선교의 의무를 실패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혹자는 칼 바르트를 위대한 신학자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선교학자 심지어 “선교사”라고까지 평가했습니다. 내가 최근에 만난 화란 선교학자가 헤르만 바빙크의 이런 면을 지적하면서 그에 비하면 아브라함 카이퍼는 모든 부분에서 기여한 바가 지대하지만 그는 또한 선교의 중요성을 강조한 점도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같은 신학의 전통에서 자란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차이들이 생기는가가? 참으로 궁금합니다. 복음전도의 연구의 영국의 대표적 신학자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은 그의 책 「초대교회의 전도」에서 “대부분의 전도자들은 신학에 관심이 거의 없는 반면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전도에 거의 관심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후크마가 하나님의 형상의 교리를 단순히 조직신학적으로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 교리가 가지는 선교적 함의를 심도 있게 다룬 것을 통해서 모든 학문이 가지는 이론과 실천의 조화와 신학의 통합적 접근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이유는 신학은 방법론적으로 이론적이지만 목적은 실천적이고 이것이 성경적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함이라.”(딤후3:16-7) 2. 모든 인류는 평등합니다. 성경에서 인간의 평등사상을 발견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혹자는 모든 인류는 성경이 제시하는 세 가지 신학적 측면에서 평등하다고 주장합니다. 첫째, 우리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둘째,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이요 죄인입니다. 셋째, 따라서 모든 인류는 하나님에게 의존적이고 구원이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인간의 능력 여하에 따라 불평등하다고 주장하는 내용은 한 곳도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의 인간 평등사상을 구체적으로 찾기도 쉽지 않지만 또한 인간 불평등 사상을 찾기도 거의 불가능합니다. 인간 불평등 사상에 대한 성경의 언급은 단 한 곳도 없고 눈을 부릅뜨고 찾아보려고 해도 찾아볼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평등사상을 찾아본다면 사도행전 17:26 절일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그곳에서 모든 인류가 “한 혈통으로” 만들어진 존재로 파악함으로 모든 인류가 같은 근원에서 나왔고 따라서 인류 모두가 평등하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바울이 이 주장을 할 그 당시의 문화적 상황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당시 지중해 세계에서 지성의 중심이요 헬라인을 모든 인류보다 가장 뛰어난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아덴에서 인간 평등사상을 강조했다는 점입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BC384-322)가 서구사상에 끼친 긍정적 영향이 지대하지만 그의 인간 평등사상은 매우 부정적이고 실망스럽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야만인들’(그리스인이 아닌 사람), 특히 아시아인은 ‘타고난 노예’라고 가르쳤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과 사도 바울이 이 땅에 태어나기 수 백 년부터 이런 사상이 편만했으리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헬라인들은 유대인의 선민사상과 같이 자부심이 대단한 자민족 중심주의와 우월주의에 빠졌던 대표적 민족입니다. 신약학자 브루스(F. F. Bruce)는 이런 오만한 자부심을 사도행전 17장 26절 주석에서 이렇게 질타합니다. “그러나 이 자부심은 잘못된 근거에서 나온 것이었다. 모든 인류는 하나의 근원에서 나왔으니, 모두 하나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며, 모두 한사람의 공동시조에게서 흘러나왔다. 이 사실은 헬라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외국인들보다 우월하게 태어났다는 믿음을 정당화 시키려는 거짓된 모든 시도를 일소해 버리며, 이러한 점에 있어서는 그와 유사한 오늘날의 국수적 여러 가지 믿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자연 안에서도 은혜 안에서도, 즉 옛 창조 안에서도 새 창조 안에서도, 인종우월주의가 들어설 수 있는 여지는 전혀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제자 알렉산더 대왕(BC 356-323)은 동서양의 결합을 통해 하나 된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동양과 서양을 하나 되게 하고자 시도했던 알렉산더 대왕의 위대성은 단 한 번도 전쟁에서 패배한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든 인류는 평등”하다는 세계시민 정신 때문이었습니다. 알렉산더는 그리스인의 편견과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의 한계를 뛰어넘은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제자였습니다. 알렉산더는 전쟁터 등의 장소에서 ‘야만인’들과 직접 접촉할 기회를 가지면서 그리스인이 과연 그들보다 우월한지 시험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그는 모든 사람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원전 329년 힌두쿠시를 가로질러 박트리아로 진군할 때는 대규모의 아시아인을 원정 주력군으로 충원했습니다. 그는 아시아 여성 록사나와 결혼했고, 1만 명의 병사들에게도 아시아 출신 아내를 얻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정복지로 가는 곳마다 수많은 국제결혼을 시도했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나타나는 인간 평등사상의 가르침이 성경신학·조직신학적 의미의 영역에서만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선교의 대상이 되는 모든 인류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가르침에 근거한 선교적 함의를 생각해야합니다. 이 가르침은 선교사가 현지인보다 인종적·문화적으로 조금이라도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오히려 이 평등사상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은 이런 우월 사상을 ‘말살’할 것입니다. 이 평등사상에 근거한 본 연구소는 지배욕과 우월사상에 젖은 식민지 제국주의자들이 제 3세계에 저지른 오만과 교만을 처절하게 경험하고 이런 만행에 치를 떨었던 한 국가와 국민으로서 이런 만행이 한국에 살고 있는 제 3세계 사람들에게 자행되지 않도록 평등과 진리의 파수꾼이 되겠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프랑스 혁명의 3대정신은 자유·평등·박애입니다. 이 평등의 정신을 누구보다도 강조한 철학자가 영국의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입니다. 인간의 본질을 설명하는데 성경보다 더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토마스 홉스는 그의 책 「리바이어던 Leviathan 」에서 성경적 인간관과 가깝게 설명한 책 중의 하나입니다. 그는 잘 아는 대로 인간의 자연 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관계”로 “인간은 서로에게 늑대와 늑대 같은 존재”로 보았습니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은 이러한 홉스의 주장을 “마키아벨리의 이론보다 더 근대적이다”라고 평했습니다. 러셀은 “리바이어던이 출간되었을 때, 좋아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런 평가의 이유는 홉스의 인간에 대한 진술이 너무 충격적일 정도로 인간의 죄악된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의 인간관 못지않게 그가 끼친 현대적 사상은 인간의 평등에 대한 사상이었습니다. 홉스에 의하면 “자연은 인간이 육체적·정신적 능력의 측면에서 평등하도록 창조했다. 간혹 육체적 능력이 남보다 더 강한 사람도 있고, 정신적 능력이 남보다 뛰어난 경우도 있지만, 양쪽을 합하여 평가한다면, 인간들 사이에 능력 차이는 거의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이익을 주장할 수 있을 만큼 크지는 않다. 왜냐하면 체력이 아무리 약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음모를 꾸미거나, 혹은 같은 처지에 있는 약자들끼리 공모하면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충분히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적 능력들의 경우에는 체력보다도 오히려 더 평등하다고 나는 생각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동양인이나 서양인이나 절대로 차이가 없습니다. 홉스는 이 “능력의 평등에서 희망의 평등이 생긴다.”고 주장했습니다. 본 연구소는 이 ‘희망의 평등’을 이루기 위해서 능력의 평등을 열심히 가르치고 확산해 나가겠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믿음 없이 단지 철학적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점만으로는 외국인과 내국인이 하나 된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그것은 사도바울이 아덴에서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셨다고 고백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인류 조상의 근원이 같다는 것이요 모든 인류는 평등하다는 것이며 한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한 가족이라는 표현이 좋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요 가족입니다. 이렇게 성경에 근거한 믿음 안에서 진정한 평등사상일 때만 하나 된 세상이 가능한 것입니다. 똑 같이 우리는 ‘인류 조상의 근원이 같고 ‘모든 인류는 평등하고 한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이 평등사상은 그 어떤 인종차별도 허용하지도 않고 용납하지도 않습니다. 본 연구소는 그런 차별을 말살시키는데 앞장설 것입니다. 영국의 기독교 정치철학자 에드먼드 버크(Edmond Burke)는 “악이 승리하려면 선한 사람이 가만히 있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악에 대해서 맞서서 싸워야하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본연구소는 성경적 평등사상에 근거해서 외국인을 불평등하게 대하는 어떤 악과 제도와 조직과 싸울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려움과 곤궁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 선한 사마리아인도 필요하고 악의 세력과 제도와 조직과 맞서고 싸우고 무너뜨리는 정의의 사람도 필요합니다. 제도와 조직은 인간이 부패하고 타락한 죄인이기 때문에 언제나 부패할 수 있습니다. 마이클 왈츠(Michael Walzer)는 그의 책 「성도의 혁명 The Revolution of Saints: A Study in the Origins of Radical Politics」에서 인간의 모든 조직은 인간의지와 결정의 산물이기 때문에 언제든 잘못될 수 있고 따라서 잘못된 결정과 의지에 의한 잘못된 제도와 조직은 바뀌어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책에서 주장한 내용입니다. 이 마이클 왈츠의 입장을 니콜라스 월터스토프(Nicholas Woltersroff)는 그의 책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출 때 까지 Until Justice and Peace Embrace」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의 책 서문에서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어느 기도문을 인용합니다. “오 하나님, 굶주리는 자들에게는 빵을 주시고, 빵을 가진 우리에게는 정의에 대한 굶주림을 주소서.” 이 정의의 굶주림으로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빵을 제공하는 정책적 연구소가 되겠습니다. 3. 본 연구소는 인류학적 고찰을 배울 것입니다. 프랑스의 사상가요 인류학자인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는 「야생의 사고 La Pansee Sauvage」라는 책에서 어떤 문명이나 민족도 다른 집단 보다 우월한 것이 없다고 주장함으로, ‘우수한’ 서구 문명이 ‘미개한’ 원시문화를 지배한다는 서구 우월주의의 편견을 깨뜨렸습니다. 그 책은 이런 서구의 오만한 ‘환상에 대한 해체’를 선언한 책입니다. 그는 이런 인류학적 연구의 결과로 문명의 우열을 뛰어 넘어 상대방의 문화를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공존과 상생의 의식을 가지게 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하였습니다. 한국사회에서 국제이주자와 다문화가정이 겪는 어려움 중 가장 원초적인 것은 그들에 대한 내국인의 편견과 차별입니다. 국제다문화 사회연구소는 외국인과 “차별 없는 세상” “차별 없는 대한민국”을 꿈꿉니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단초는 톨레랑스의 가치와 한계를 직시하면서 ‘모든 인류는 평등하다’는 인간에 대한 진정성 있는 교육과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4.본연구소는 철학적 고찰을 배우고 사용할 것입니다. 철학적 단상 프랑스의 유태인 철학자 엠마뉴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는 서양철학을 모두 ‘존재론’이라 못 박고 그것을 한 마디로 ‘주체 중심’의 철학이고 주장했습니다. 이 철학은 자신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인식의 대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이’와 ‘다른 것’에 대한 관심과 배려 대신 그들을 자신의 욕망의 충족과 정복의 대상으로 간주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레비나스는 이 철학을 ‘전체주의적 철학’, ‘전쟁의 철학,’ 그리고 ‘이기주의적 철학’이라고 단죄합니다. 이런 주체 중심적 철학은 서구의 오래된 전통 즉 그리스 철학의 영향 이후 서구의 철학 예를 들면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의 “내가 곧 세계(소우주)다”라고 생각하는 구조에서 쉽게 발견될 수 있습니다. 레비나스가 이런 서양 철학을 비판하는 이유는 서구가 식민지 정복과 1, 2차 세계 대전이 ‘주체 중심’의 철학 즉 ‘전체주의’와 ‘전쟁의 철학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가 시도하고자 한 것은 “전체성의 철학, 또는 전쟁의 철학에 대항해서 어떤 무엇으로 환원될 수 없는 개인의 인격적 가치와 타자에 대한 책임을 보여주는 평화의 철학”이었습니다. 그에 의하면 ‘주체중심’의 철학에서 생겨나는 ‘전쟁의 철학’에서 ‘평화의 철학’으로 바꿀 수 있는 방안 중의 하나는 모든 사람과 사물을 자신이 중심인 ‘주체’ 중심이 아니라 ‘타자’에 초점을 둘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즉 구심점을 ‘나’로부터 ‘다른 이’로 옮기려는 철학의 혁명적 변화의 시도이고 그의 철학에는 어떤 점에서 서구철학의 자아 중심적 인간 사상의 모습을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레비나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진정한 인간의 주체성을 '타인을 받아들임(l'hospitalite)' 또는 '타인을 대신한 삶(la sustitution)' 등으로 정의하는 가운데 인간의 삶은 자신의 고유한 세계를 가지면서도 이 세계는 타인의 관계를 통해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대와 책임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이 타자를 ‘다른 이의 얼굴’로 묘사한다. 그는 주장하기를 모든 “다른 이”는 마치 데카르트(Descates)에 있어서 신(神)과 같이 ‘다른 이’가 ‘영원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때 나타나는 ‘다른 이의 얼굴’은 단지 생물학적 물체가 아니라 자기중심적 우리를 꾸짖고 우리에게 호소하는 ‘고와와 과부’의 얼굴이요 ‘나그네와 이주자’의 얼굴이요 그 안에서 ‘여호와의 얼굴’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마더 테레사(Mother Terasa)가 고통 받고 있는 타인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처럼 말이다. 진정한 주체성은 타인의 존재를 자기 안으로 받아들이고 이 타자에 중심을 두는 레비나스의 철학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강조하게 되는데 이것은 오늘날 소외된 ‘고아와 과부’ ‘장애인’ 뿐 만 아니라 ‘이주자’와 ‘다문화가정’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5. 본 연구소는 팔레스타인 출신 기독교 사상가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의 「오리엔탈리즘 Orientalism」의 책에 언급된 사상을 참고할 것입니다. 많은 학자의 서평에 의하면 이 책은 “서구인들이 말하는 동양의 이미지가 그들의 편견과 왜곡에서 비롯된 허상임을 체계적으로 비판한 명저”로 평가받습니다. 이 책의 저자 사이드에 의한 오리엔탈리즘의 정의는 “오리엔탈리즘이란 서양이 동양에 관계하는 방식으로서, 유럽 서양인의 경험 속에 동양이 차지하는 특별한 지위에 근거하는 것이다. 동양은 단지 인접되어 있다는 점만이 아니라, 유럽의 식민지 중에서도 가장 광대하고 풍요하며 오래된 식민지였던 토지였고 유럽의 문명과 언어의 원천이었으며, 유럽문화의 호적수였고, 또 유럽인의 마음속에 가장 깊은 곳에서 반복되어 나타난 타자 이미지이기도 했다”고 묘사합니다. 이것은 서양이 가지는 동양에 대한 타자의 이미지를 지리적·문화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만으로는 서양이 동양에 대해 가지는 구체적 성격을 잘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이드의 다음의 오리엔탈리즘이란 정의를 보면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이 동양을 침략하면서 조작된 동양에 관한 모든 편견, 관념, 담론, 가치, 이미지 등을 말한다.” 오리엔탈리즘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이렇습니다. “요컨대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억압하기 위한 서양의 방식이다.” 이런 오리엔탈리즘의 구체적 예를 유명한 유럽인 두 사람 크로머와 벨푸어의 언어에서 찾습니다. “동양인은 마치 (법정에서처럼) 재판을 받는 존재로 (교육과정에서처럼)학습되고 묘사되는 존재로, (학교나 감옥 에서처럼) 훈련받고 규율되는 존재로 또(동물도감에서처럼) 도해되는 존재로 묘사되었다. 요컨대 동양인은 어떤 경우에도 지배의 틀 속에 포함되며 그 틀에 따라 표상되는 존재이다.” 우리는 이런 오리엔탈리즘의 가장 구체적 모습을 영국의 이집트 외교관 크로머 그의 책 「현대 이집트」에서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동양인이나 아랍인은 우둔하고, 활력과 자발성이 없으며 정도에 지나친 아부와 음모, 교활, 동물학대를 일삼는다. 동양인은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둔감하고 의심이 많으며 모든 점에서 앵글로 색슨 인종의 명석함, 솔직함, 고상함과 대조적이다.”「오리엔탈리즘」을 한국으로 번역한 박홍규 교수는 “이 책은 1911년 일본어로 번역되어 한국 침략을 위한 일본의 참고 문헌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본 연구소는 서양이 동양에 대한 우월 및 지배사상이 비성경적이며 역사적으로도 얼마나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고 비판하면서 이런 잘못된 오리엔탈리즘이 한국에 오는 제 3세계 국가의 국민들에게 반복하지 않도록 건강한 견제와 비판 기능을 수행할 것입니다. 6. 본 연구소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도울 것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이론과 실천으로 몸소 모범적으로 살아왔던 손봉호 고신대 석좌 교수는 특히 ‘난민’에 대한 한국사회와 교회의 입장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난민에 대해서 세상에서 가장 인색한 우리나라와 이에 대해서 아무 감각도 없는 한국교회.”라고 질타 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또 “만약 우리나라에 미국이나 영국처럼 노동자들과 난민들이 대거 몰려왔다면 아마 우리는 그보다 훨씬 더 극렬하게 국수주의적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지적하였습니다. 필자는 손봉호 교수의 지적이 많은 부분에 옳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필자는 고신대학교에서 세계화와 다문화 이해라는 과목을 강의하는 가운데 매학기 200명씩 수강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들이 밀려오는 외국인들에 대한 우리의 입장과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 강의에 참석한 학생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놀라운 희망을 보았습니다. 국제이주자와 다문화 이해를 위한 관심과 그들을 돕고자 하는 열망을 보면서 한국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을 실천하기 위하여 우리 눈에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지만 난민 및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실천하는 사람들도 곳곳에 있는 줄 압니다. 하지만 본 연구소는 이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여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이유로 고국을 떠난 난민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그들을 섬기겠습니다. 우리는 이 나그네들을 생각할 때 예수님께서 선한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었던 것처럼 강도만난 그 사람들을 진실로 도와주는 사마리아인이 진정한 이웃인 것처럼 또한 “이웃이란 우리가 잘 아는 주위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 이니라.”(약2:26)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연구소가 되고자 합니다. 성경의 기록목적도 선한 일을 도모하기 위한 실천적 목적을 가진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7). 어거스틴에 의하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다. 타인을 돕는 손, 가난한 자에게 달려가는 발, 불행을 보는 눈, 한숨과 슬픔을 듣는 귀를 가진 것이야 말고 사랑의 참모습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이유 때문에 모든 이주민들에게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7. 국제 이주자 및 외국인 근로자, 그들은 ‘노동력’이 아니라 ‘사람’으로 왔습니다. 여러 통계들이 2018년을 정점으로 대한민국의 인구는 인구절벽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저 출산, 고령화 및 젊은이의 3D 직종 기피로 이민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한국사회가 외국인 근로자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급속한 다문화 사회로 나아 갈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런 시대적 흐름 가운데 혹자는 “다문화 사회, 득이냐 실이냐?”라는 실용적 질문을 제기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본 연구소는 이런 실용적 관점을 참고는 하되 인간을 단지 “효율”과 “기능”으로 보는 기능주의적 관점 등 어떤 비성경적 관점으로 접근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유는 스위스의 소설가, 극작가 및 건축가인 막스 프리슈(Max Rudolf Frish, 1911-1991)의 지적처럼 “우리는 노동력을 불렀다. 그런데 사람들이 왔기 때문”입니다. 8. 본 연구소는 모든 문화의 다양성을 무시한 채 우리의 것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동화 주의적 접근을 반대합니다. 동화 주의적 사고방식 근저에는 타자를 나와 같아야 하는 존재로 상정하는 동일성 논리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유럽의 역사·예술사·인류학·철학·소통 이론들을 연구하며, 그 속에서 유럽이 낯선 이들을 어떻게 만나왔는지를 유형화한 독일의 선교학자 순더마이어(Theo Sundermeier)는 동일성 원리의 극단적 원형을 식민주의적 타자관 에서 찾습니다. 유럽의 식민주의자들이 중남미 식민지 피지배인 들을 대하는 태도는 흔히 둘 중 하나였습니다. 그들을 가르치고 개화시켜 나처럼 인간이 되게 하든지 아니며, 인간이 아닌 사물로 분류하여, 사고 팔수 있는 노예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오직 A 만을 살아남게 하는 사회, A와 다른 것이 존재할 수 없는 사회는 다양성 아닌 획일성이 지배하는 사회이며, 주류의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입니다. 일제 식민지 정책으로서, 일본식 성명 강요, 조선어 금지 신사참배 강요 등이 이러한 동일성 논리에 입각한 것입니다. 이런 동일성 논리의 잘못을 역사를 통해 뼈저리게 경험하고 그것을 저주했던 우리가 한국에 있는 외국인에게 우리가 당한 방식을 그대로 외국인들에게 적용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죄악입니다. 9. 본 연구소는 이런 동화 주의적 접근 대신에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다원주의적 입장을 취할 것입니다. 문화 다양성을 꽃피우기 위해 동일성 논리에 입각한 사고방식을 청산하고 나와 다른 문화를 그것의 고유성 속에서 파악하고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인정할 것입니다. 유네스코도 ‘세계 문화 다양성 선언’ 뿐 아니라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협약’을 통해 “문화 다양성이 인류의 중요한 특성이며” “인류의 공동유산으로” 소중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본 연구소는 이러한 입장을 지지합니다. 10. 본 연구소의 무슬림에 대한 이해 국내 모 대학의 교수처럼 무슬림에 대한 실체와 다르게 옹호하는 입장도 배격하고 이슬람에 대한 실체와 다른 왜곡된 생각도 교정하고자 합니다. 이슬람에 대한 실체적 접근을 하고자 합니다. 이슬람에 대한 지나친 호교론적 접근 보다는 객관적인 실체에 대한 진리적 접근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10.1. 최근 국내에서 다문화 선교 사역을 하는 선교사님이 저에게 보낸 문자에 “이슬람은 적그리스도이다.” “교회와 가정을 파괴시키는 사탄의 도구” 라는 내용이 왔습니다. 이와 유사한 입장의 학자도 있습니다. 그는「중동 짐승 (Mideast Beast)」이라는 책의 저자 조엘 리차드슨 입니다. 저자는 에스겔, 다니엘, 요한계시록을 토대로 성경을 꿰뚫어 보는 안목과 이슬람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를 토대로 이슬람이 적그리스도가 될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슬람국가(IS)의 출현과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발흥과 전 세계적으로 이슬람이 파급되고 있는 이때에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이슬람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줍니다. 하지만 조엘 리차드슨의 입장과 대척점의 위치에 있는 책이 조나단 E. 컬버의 「이스마엘」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마엘과 그의 후손들을 향한 선교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밝힙니다. 하나님께서 하갈과 이스마엘에 대한 언급 가운데 부정적 언급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 주장에 대해 구약학자 월트 브루거만은 그의 「창세기」주석에서 이 점에 대해 분명하게 동의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 16장을 보면 아직 이스마엘이 하갈의 복중에 있을 때를 묘사하고 있는데, 여호와의 사자가 하갈에게 나타나서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 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16:11)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마엘 이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들으신다.’ 라는 의미를 가지며 그 이름은 여호와께서 하갈의 마음의 고통을 들으시고 그녀의 고통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보이신다는 것을 항구적으로 상기시켜 주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마엘 이 광야에서 갈증으로 죽어 갈 때에 창세기 21:17은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마엘 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을 읽을 수 있습니다.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민족을 이루게 하리라.”(창21:13).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창21:18). 이런 축복을 한마디로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이와 함께 하시니.” (창21:20b). 이 어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 곧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기드온, 다윗, 예레미야 등에게 사용되었습니다. 구약학자 김의원 박사는 이 책이 기여하는 바는 “기독교인인 우리로 하여금 성경을 다시 읽어 보게 하고 이스마엘 을 향한 약속을 이행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보게 해준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개입으로 이스마엘 의 후손들 사이에 엄청난 규모의 영혼들을 추수하게 될 것이다.”고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이슬람 지역인 이란, 파키스탄과 이집트 등에서 일어나는 내부자 운동으로 수많은 무슬림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고 있다고 선교현장의 사역자들이 전하는 것에서 증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0.2.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종교개혁 당시 개혁자들에게는 오스만 투르크는 무시무시한 대상이었습니다. 종교개혁자들 대다수는 그 당시의 교황과 오스만 투르크를 “적그리스도”로 보았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칼빈의 저작을 볼 때 오스만 투르크에 대한 언급을 거의 발견할 수 가 없습니다. 하지만 루터는 그의 저작 「탁상담화」에서 ‘터키인들에 관하여’ 라는 장에서 오스만 투르크 이슬람에 대한 언급이 나타납니다. 루터는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예리하게 지적하면서도 이슬람이 가지는 문화와 종교의 좋은 점을 긍정적으로 인정하였습니다. 루터는 이슬람의 행위에 의한 구원, 종교전쟁, 일부다처제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한편 이슬람 예배의 진지함, 이슬람 교사들의 엄격한 생활, 그들이 본 그대로의 진리에 대한 사랑, 터키 군의 엄격한 규율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이슬람에 대한 태도도 루터와 같은 균형 있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0.3. 본 연구소는 무슬림의 유입으로 발생할 수 있는 다문화 사회의 위험성을 직시하지만 그들 가운데 “옥석”과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하면서 접근하고자 합니다. IS(Islamic State, 이슬람 국가)가 저지른 리비아 해안에서 21명의 콥트 교도들의 참수, 브뤼셀과 파리 테러는 천인공노할 행위입니다. 그것은 악마의 짓입니다. 그 사악함에 대해 우리는 치를 떨어야 하고 어떤 강력한 대응도 불사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IS에 대한 생각과 분노 때문에 대다수의 선량한 외국인 유학생, 국제 결혼자 및 무슬림 외국인 근로자들을 IS와 같이 취급하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더러운 물을 버리기 위해 목욕 물통 속에 있는 소중한 아이를 버리는 잘못과 같습니다. 제 수업을 듣는 대학원생 중 한명은 한국에 몰려오는 무슬림들이 마치 대한민국을 접수하러 오는 “침략군” 같이 여겨진다고 했습니다. IS의 만행과 이명박 정부의 수쿠크(Sukuk)법 통과 시도와 박근혜 정부의 익산의 할랄 식품단지 조성시도를 보면서 많은 대다수의 기독교인들과 일반인들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을 사랑하여 방문하는 대다수의 선량한 외국인 유학생, 국제결혼 가족들과 근로자들도 있다는 것도 현실입니다. 따라서 본 연구소는 이러한 사실을 많은 국민들에게 알리고 그들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을 개선하고 관점을 변화시켜 성경적 가르침에 따라 그들을 “나그네” 와 “손님”으로 섬기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이 학술대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1. 본 국제학술대회는 유럽의 경우처럼 다문화 사회가 가져올 수 있는 부정적·파괴적·혼돈적 측면을 간과하지 않되 다문화 사회가 가져다 줄 긍정적·창조적·역동적 측면도 보고자 합니다. 많은 문화 연구자들은 “한 사회 속에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며 상생할 때, 그 사회는 엄청난 창조적 역동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봅니다. 특히 “문화적 다양성은 그 사회의 문화적 자산을 풍부하게 해 줄 뿐더러 차이를 껴안고 함께 사는 것을 배우게 함으로써 사회를 성숙시키는 것으로 봅니다.”, “유네스코의 문화 다양성 선언에서도, “창조는 다른 문화와의 접촉을 통해서 풍성해 진다고 봅니다.” 많은 학자들은 문화의 다양성을 “창의성과 발전의 원천‘으로 봅니다. 따라서 “각각의 문화전통은 창의성의 원천으로서 보존되어 후대에 전달되어야함”을 강조합니다. 유네스코의 내용 중 “문화 다양성은 발전을 위한 원천의 하나로서, 발전이란 단지 경제 성장의 관점에서뿐 아니라, 지적·감성적·윤리적·정신적으로 좀 더 만족스러운 삶에 도달하는 수단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영국의 선교학자 레슬리 뉴비긴(L. Newbigin)은 다원주의를 문화적 다원주의와 종교적 다원주의로 구분합니다. 우리는 종교적 다원주의를 수용할 수 없지만 문화적 다원주의는 인정하고 존중합니다. 그에 의하면 문화적 다원주의는 “한 사회 안에 있는 다양한 문화와 생활 방식을 환영하고 그것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이유는 문화적 다원주의는 우리의 삶을 다양하고 풍요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름의 평화’와 ‘차이의 공존’을 강조할 것입니다. 올해 노벨상 수상자 절반도 이민자라고 합니다. 올해 노벨상 수상자 총 11명 중 6명(물리학상 3명·경제학상 2명·화학상 1명)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미국 대학에 소속된 이민자 출신입니다. 1901-2015년 까지 미국인 노벨상 수상자의 31%는 미국이외 국가에서 태어난 이민자 출신이라고 합니다. 금년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인 노벨화학상 수상자 프레이저 스토더트는 “미국이 지금 같은 최강국이 된 이유는 미국의 국경이 열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답니다. 12. 본 연구소는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불평등과 인권유린 같은 중요한 이슈에 대해 내부 고발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것입니다. 이 이슈로 세계적 관심을 유발시킨 「막스 하벨라르 Max Havelaar」(1860) 소설을 참고할 것입니다. 이 작품은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노예제 폐지에 끼친 영향에 비견될 만큼 그의 조국 네덜란드와 수많은 식민지 국가 정책에 많은 변화를 촉발시켰습니다. 「막스 하벨라르」는 많은 서평자 들에 의해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중의 한권으로 언급됩니다. 정신분석학을 개척한 프로이트는 ‘10권의 책을 추천해 달라’는 의뢰를 받고 주저 없이 이 책을 첫 번째로 올렸다고 합니다. 그는 네덜란드의 소설가입니다. 네덜란드의 식민지인 인도네시아에서 지방관과 부이사관을 지냈으며, 대표작 「막스 하벨라르」는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썼습니다. 내용은 본국의 식민지 통치의 기만성과 학정을 풍자하였으며, 그의 정열적 이상주의는 근대 네덜란드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본명은 데케르(Eduard Douwes Dekker) 필명은 물타툴리(Multatuli 많이 고생했다는 뜻의 라틴어)이며 암스테르담에서 출생했습니다. 18세 때 네덜란드 통치하의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자바 ·수마트라 ·셀레베스 등지의 지방관을 거쳐 1855년 자바의 레박 지구 부이사관으로 부임하였습니다. 그러나 가혹한 식민지정책에 시달리는 원주민을 동정하여 상관과 충돌한 끝에 사직하고 1857년 귀국하였으며, 네덜란드 ·벨기에 · 독일 등의 각지를 방랑하면서 저작 ·강연 ·기부 등에서 얻은 수입으로 생활하였습니다. 그의 대표작 「막스 하벨라르 Max Havelaar」(1860)는 인도네시아 체류 시의 체험을 바탕으로, 원주민에 대한 착취 ·억압의 생생한 정경을 사실 그대로 묘사하여 본국의 식민지 통치의 기만성과 학정을 풍자적으로 폭로하고 탄핵한 것으로, 그의 정열적 이상주의는 근대 네덜란드 문학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책 한권으로 19세기 네덜란드의 정책을 흔든 필명이 물타툴리 (Multatuli)를 가진 데케르는 스스로 고생의 삶을 살면서 그 책을 통해서 네덜란드의 풍족한 삶 뒤에 식민지 인도네시아 민중의 피와 눈물이 있음을 폭로하고 각성을 촉구했습니다. 오슬로 국립대 박노자 교수는 그를 “해적국가의 양심”으로 묘사했습니다. 이 필명으로 유럽 전역에서 문명(文名)을 얻은 에두아르드 데커(Eduard Douwes Dekker)는 정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즐길 것을 두루 즐기고 규율적이면서도 편한 생활을 보내는 선량한 소시민을 모범으로 내세우는 유럽의 가장 부르주아적 국가인 네덜란드 대다수 국민과는 달리 데커는 본인이 의식적으로 고생의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는 강물에 빠진 개를 위해서 주저 없이 강에 뛰어내리고 극장에서 배우를 험담하는 지체 높은 부르주아 손님의 뺨을 갈기기도 하는 괴짜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그 책을 통해서 돈독한 신앙심과 빈틈없는 법질서, 합리적 사업정신을 자랑하는 네덜란드가 부유하게 된 것이 결코 근검절약에 의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렸습니다. 박노자 교수에 의하면 네덜란드 사회의 깨끗함과 조용함, 예절과 매너 뒤에는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착취를 당하는 식민지 인도네시아 민중의 피와 눈물이 있었던 것입니다. 부르주아 사회의 자본축적 과정의 약탈성을 데커가 과감하게 누설한 것입니다. 데커는 어떻게 해서 네덜란드 식민지 착취 체제의 내부 고발자가 된 것일까. 유럽의 ‘모범 문명국’의 ‘모범 식민지’인 인도네시아에서 그가 본 것은 소위 ‘강제재배 체제’아래서 강제 노동수용소의 죄수처럼 당국의 지시대로 특정 작물만 파종했다가 수확이 좋지 않을 때는 아무런 구휼도 없이 그저 대량으로 굶어죽어야만 하는 원주민들과 ‘공식적’ 착취에다가 개인의 치부를 위해서 물불 가리지 않고 온갖 부정부패 가렴주구를 다 저지르고도 처벌되지 않는 네덜란드의 탐관오리들, 네덜란드 당국과의 유착 덕분에 살인을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토착지주들이었습니다. 네덜란드의 국고와 상인들의 주머니들을 해마다 살찌우는 인도네시아의 커피와 사탕에서는 말 그대로 피비린내가 났습니다. 처음에는 순진하게도 지역 관료들의 비리를 인도네시아 총독에게 고발했다가 결국 생트집 잡혀 정직·직위해제 처분을 몇 번씩 당해본 데커는 이 체제 안에서의 개선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달았습니다. 결국 그는 퇴직을 자청하고 유럽으로 돌아와 벨기에 수도 브뤼셀의 한 호텔에서 인도네시아에서의 식민지배 체제라는 살인기구를 폭로·단죄하는 소설의 집필에 몰두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바로 현재 네덜란드 19세기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막스 하벨라르」였습니다. 그의 필명 ‘물타툴리(Multatuli)는 라틴어 이름 그대로, 혹자는 “모질었던 그의 삶을 빼닮았다.”고 합니다. 작품 때문에 조국으로부터 불온주의자로 찍혀 각국을 방랑하던 그는 1887년 2월 19일 67세의 나이로 타계했습니다. 불온주의자로 찍혀 직업을 얻지 못한 데커는 각국을 방랑하며 집필과 연설로 생계를 꾸리다 1887년 2월19일 67세로 가난하게 죽었지만 ‘해적국가의 양심’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혹자는「막스 하벨라르」를 “식민주의를 말살”한 작품으로 추앙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소설로 평가합니다. 우리는 그가 남긴 명언을 기억합니다. “이 세상에는 단 하나의 악, 범죄, 죄악만이 있다. 그것은 심장의 부재이다(There is only one evil, one crime, one sin: lack of heart).”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에 대한 이 심장의 부재가 있는 곳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진리와 사랑 안에서 일깨우는 연구소가 되겠습니다. 13. 하나 된 세상을 꿈꿉니다. 본 연구소는 거스를 수 없는 다문화 시대에 다문화 가족과 한국인이 차별 없는 하나 된 세상 대한민국을 꿈꾸어 봅니다. 서구사회가 이루지 못한 하나 된 세상을 복음 안에서 이루고자 합니다. 대한민국에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저력과 경험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나의 경계를 뛰어 넘어 하나 되는 세상이 대한민국에서 성취되어 오만하고 콧대 높은 유럽에 역수출 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우리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복음 안에서 선진화를 이루는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교회가 앞장 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선진화는 고아, 과부, 나그네와 장애인등 세상에서 가장 힘없고 소외받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관심을 우리가 대변 해 줄 때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일에 교회가 가장 앞장서서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이 땅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교회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희망입니다. 이 교회가 룻과 보아스의 다문화 가정의 결혼을 통해 사사시대의 칠흑과 같이 캄캄하고 어두운 시대에 빛처럼 밝은 가정을 이루는 모범을 보이는 것처럼 그런 가정을 만드는데 본 연구소와 교회가 협력하며 나아갈 것입니다. 이방 나라의 모압 여인이었던 룻이 유대 남자 보아스를 만나 다윗의 조상이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복음 안에서 수많은 외국인 여성들이 시어머니 나오미의 신앙으로 룻이 신앙을 가지고 어머니의 하나님을 믿고 따랐던 것처럼 그들이 한국의 룻과 보아스와 같은 믿음의 가정이 될 수 있도록 저희 연구소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룻·보아스 프로젝트’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이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 본 연구소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다문화 가정의 역할 모델로 캐나다 총리 트뤼도의 개혁을 참고하고자 합니다. 첫째,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오바마 프로젝트’입니다. 몇 해 전 매일경제신문에서 다문화 가정 청소년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서 오바마 프로젝트를 구상했습니다. 그 후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본 연구소는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Barak Obama)는 국제 결혼한 다문화가정의 자녀였습니다. 아프리카 케냐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미국 캔자스 출신 백인 어머니 가운데 출생했습니다.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그의 삶을 조명하는 가운데 미국 시사저널 뉴스위크지에 의하면 그의 어머니는 흑인 아버지와 이혼 한 뒤 외롭고 힘들게 사는 가운데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전락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는 어릴 때 급식권(Food Stamp)으로 어린 시절을 영위했다고 합니다. 그의 고생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의 어머니가 인도네시아 남자와 재혼함으로 의붓아버지를 따라 이슬람 국가 인도네시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버지가 다른 인도네시아 여동생은 중국계 캐나다인과 결혼했습니다. 그래서 오바마는 “우리 가족이 다 모이면 유엔 같을 것”이라 했습니다. 어머니가 또 이혼 한 뒤 오바마는 외조부모들이 살고 있는 하와이로 보내졌습니다. 거기서 그는 백인들의 인종차별 가운데 심지어 ‘깜둥이’라는 말도 여러 번 들으면서 상처 많은 청소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런 아픔과 상처 가운데 그는 마약도 손에 대기도 해서 한때 ‘문제아’로 낙인찍히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외할머니의 교육의 힘으로 오늘의 그가 되었다고 합니다. 교육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교육의 힘으로 다문화 가정 자녀 중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교육의 힘으로 오늘날 수많은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을 교육기관, 중앙정부, 지방정부와 기업과 교회와 연대와 협력을 통해 그들이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는 연구소가 되고자 합니다. 둘째, 얼마 전 취임한 캐나다 트뤼도 총리는 내각 장관 30명중 절반인 15명을 여성으로 임명했고, 청년, 난민 또는 이민자, 원주민, 장애인 출신을 두루 기용했습니다. 그 중 난민과 이민자를 각료로 영입했습니다. 이것은 획기적인 발상입니다. 우리는 이집트에서 이런 획기적 발상을 먼저 시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요셉의 예입니다. 그의 탁월한 예지의 능력과 국가 경영능력을 인정함으로 그가 어느 나라의 사람이든 상관없이 그를 사용하였습니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서양 역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헤로도토스는 그의 책 「역사」에서 이스라엘 주변의 여러 국가들이 다양한 인재를 받아들이는 문호를 개방하는 장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애굽, 바벨론과 바사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이집트와 바벨론에서 국제적 인재로 쓰임 받은 요셉과 다니엘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요셉은 남의 나라에 노예로 팔려왔지만 그 나라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런 개방된 세상을 만드는데 본 연구소가 도움이 되도록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입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규모가 전 세계에서 상위권에 해당되는 국가입니다. 세계에서 인구 5천 만 명 이상에 개인국민소득 2만 5천불이 넘는 국가가 미국·일본·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 그리고 우리나라 밖에 없다고 합니다. 한국은 자동차·선박·전자 등에서 세계최고의 기술력으로 인정받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미국·일본·독일에 이어 네 번째로 특허를 많이 받은 나라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경제규모의 선진국만 아니라 다른 문화와 민족에 대해서도 배려하는 명실상부한 선진국 수준에 이르는 품격 있는 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일본인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의 위대성을 다른 어떤 것보다도 ‘개방성’에 두었습니다. 그 개방성 때문에 로마가 가장 위대한 제국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한국이 일본보다 더 강점이 있습니다. 한국이 일본이 가지고 있는 기술력과 장인정신에서는 뒤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타민족과 타문화에 대한 개방성에 있어서는 한국이 일본보다 앞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개방성이 가장 잘 나타나야 하는 곳이 국제 이주자와 다문화 가정에 대한 태도입니다. 다문화 가정 문제를 다루는 이유를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부정적 요소로 다문화 가정이 직면한 문제들을 우리가 소홀히 할 때 서구사회가 오늘날 직면한 문제들을 동일하게 겪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브뤼셀 테러처럼 국내에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잘못될 경우 IS와 언제든지 연계될 수 있는 ‘자생적 늑대’들을 양산할 수 있습니다.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은 현재 피부색 편견, 빈곤과 교육 격차의 악순환으로 심각한 소외 계층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청년 연령에 도달해서 실업 및 그 동안 겪었던 인종 차별로 분노와 적개심 가운데 사회 불만이 고조될 경우 우리에게 걷잡을 수 없는 무서운 부메랑으로 우리에게 돌아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 (Ulrich Beck)의 지적처럼 우리 사회가 그렇게 방치될 때 대한민국이 ‘위험 사회'로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긍정적 측면으로 이들이 다양한 문화와 언어 그리고 인구 증가와 함께 가져다 줄 노동력은 한국여성의 출산율 저하로 치닫는 인구 감소와 노동력 부족을 해결 할 수 있고 나아가 다문화 가정의 부모 나라와 대한민국 그리고 국제사회의 가교역할을 담당하는 국제적 인재로 기여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국제이주자와 다문화 가정을 ‘그들’과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데는 ‘2%’가 부족합니다. 이유는 레비스트로스의 나라 프랑스에서 최근 이런 철학에 기초한 다문화 정책을 포기하는 가운데 그들이 주장한 톨레랑스(Tolerance, 관용)의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톨레랑스는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화두(話頭)입니다. 모더니즘이 강조하는 보편성과 획일성 대신 포스트모더니즘이 강조하는 ‘다름’과 ‘차이’를 포괄하는 가장 매력적인 용어입니다. 이 사상에 기초한 것이 유럽의 다문화정책입니다. 몇 해 전 노르웨이 사건은 독일의 메르켈 총리, 영국의 캐머런 총리와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의 다문화주의 정책 포기와 궤를 같이 하는 가운데 일어났습니다. 이들의 ‘다문화주의 포기’ 발언은 1970년대 그것을 처음 도입한 호주와 캐나다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런데 유럽의 다문화주의 포기를 한국은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국제이주자와 다문화 가정에 대한 톨레랑스 및 다문화정책을 유지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지는 피상성은 철저하게 경계해야 합니다. 다문화주의 포기는 그들이 주장하는 톨레랑스의 사상적 피상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이 피상성은 캐머런과 사르코지의 우파정권이 인권 보다는 국익 때문에 다문화주의를 포기하는 것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다문화정책과 톨레랑스를 전유물로 삼고 있는 유럽 좌파는 우파의 다문화 정책 포기를 비판하지만 그것이 실천 없는 수사(修辭)에만 그친다면 그 피상성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한 달 전 한국을 방문한 유럽의 학자와 함께 여러 가지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중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유럽인들 ‘톨레랑스’라는 단어 너무 좋아한다. 하지만 ‘톨레랑스’를 그렇게 열심히 부르짖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결정적 순간에 가장 ‘톨레랑스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을 것을 들었습니다. 너무나 위선적입니다. 해결책은 진정성입니다. 한국사회에서 국제이주자와 다문화가정이 겪는 어려움 중 가장 원초적인 것은 그들에 대한 내국인의 편견과 차별입니다. 국제다문화 사회연구소는 외국인과 “차별 없는 세상” “차별 없는 대한민국”을 꿈꿉니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단초는 톨레랑스의 가치와 한계를 직시하면서 ‘모든 인류는 평등하다’는 인간에 대한 진정성 있는 교육과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이 교육과 실천에 앞장서는 연구소가 되겠습니다. 국제다문화 사회 연구소 소개 1. 시작 및 경과 국제 다문화 사회 연구소는 2015년 부산지역의 다문화 사역에 관심을 가진 몇 분의 기독인들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2월 1일 창립총회를 가지고 3월 24일에 국내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는 11월 11일 금요일 오전 9:00-오후 6:00까지 고신대 손양원 홀(4강의동 4401호)에서 국제학술 대회를 개최합니다. 2. 구성 한국에 이주해 살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 유학생, 국제결혼 가정 및 다문화 가정 자녀들을 돕는 학술 중심의 국제 연구소입니다. 국외 및 국내 전국 75개 대학에 171 명의 각 영역의 교수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국외 학자 6명, 수도권에 약 50명의 교수 그 중 서울대 8명, 고려대 5명, 연세대 2명, 이화여대 2명, 한국외대 2명, 서강대 2명, 부산대 7명, 동아대 6명, 한동대 7명 호남지역 3명 기타지역의 교수님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고문은 김형오 전국회의장,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 정근두 목사, 허남식 전 부산시장, 신정택 전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선교현장과 다문화 사역의 현장에서 일하는 30여명의 사역자들과 협력을 하고 있습니다. 본 연구소는 전문분야와 실무분야 중 약 200명의 인원들로 구성되어있습니다. 3. 협력사역 학문적 이론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문화 청소년들을 위한 (사단법인) 다문화 청소년 협의회와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청소년들 가운데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젊은이들도 많지만 다문화 청소년들 가운데는 도움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한 젊은이는 훨씬 더 많습니다. 또한 긍정적으로 본다면 그들이 앞으로 한국사회와 그들 어머니의 나라를 연결할 수 있는 국제적 가교의 역할을 할 수 있기에 이것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4. 저희 연구소는 정책적으로 건강한 성경적 다문화 가정을 세우는데 앞장서 나갈 것 입니다. 본 연구소는 “다문화 가정, 선교의 땅 끝”으로 생각합니다. 다문화 가정의 요셉 가정, 룻과 보아스와 같은 건강한 성경적 다문화 가정을 세우기 위해 성경적·신학적·선교적·실천적 노력들을 수행할 것입니다. 특히 다문화 시대에 직면한 한국사회와 교회가 다문화 선교사역을 위해 서로 돕고 협력할 것입니다. 교회, 전문가, 현장사역자 및 정책 기관을 함께 엮을 수 있는 겸손과 섬김의 협력체가 되고자 합니다. 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연대와 협력의 고리 역할을 하겠습니다. 현대는 Network의 시대입니다. 첫째도 연대와 협력, 둘째도 연대와 협력, 셋째도 연대와 협력입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 하느니라”(전4:12). 4.1. 입법기관 즉 국회, 행정기관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교육과학 기술부, 법무부에 정책 제안 및 입안을 하고자 합니다. 4.2. 광역지자체인 부산광역시, 부산시 교육청, 경상남도, 김해, 울산, 양산시와 부산지역의 16개 구군에 속한 다문화 가족을 정책적으로 돕고자 합니다. 국제다문화사회 연구소 소장 고신대이병수 교수(010-6566-7176) 사무처장 송태운 (010-9686-2262) 홈페이지 http:irim.or.kr/
    • 기고/강연
    • 강연/특강
    2016-11-18
  • 토마스 선교사의 입국, 활동 그리고 죽음
    이 글은 2016년 8월 31일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에 위치한 부전교회에서 행한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 순교 150주년 기념 예배 및 심포지엄’에서 행한 강연을 요약한 것임, 이 글에서 고무송, 『토마스와 함께 떠나는 순례여행』(쿰란출판사, 2004), 박용규, 『한국기독교회사1』(생명의 말씀사. 2004), 오문환, 『토마스 목사전』(평양, 1928), 프라이스 스텔라, 『조선에 부르심을 받다』(Korea. com. 2016)와 Hamilton, Moffett, Rhodes 등의 자료를 참고하였으나 각주로 처리 못한점에 대하여 양해를 구한다. 토마스 선교사의 입국, 활동 그리고 죽음 ▲ 이상규(고신대학교, 교회사학) 시작하면서 부산지역의 부전교회를 비롯하여 주변의 여러 교회가 연합하여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 150주년을 기념하여 함께 이를 기념하게 된 것은 뜻 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일을 추진하여 주신 한국기독교사연구소의 박용규 소장님과 이 뜻에 공감하여 기꺼이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부전교회와 박성규 담임목사님, 그리고 당회와 성도들에게 감사한다. 부전교회는 부산지역을 대표하는 건강하고 건실한 교회이고 박성규 담임목사는 부산의 영적 갱신과 부흥을 위해 헌신하시는 영적 지도자라는 점에 이의가 없을 것이다. 오늘 모임에 토마스 선교사에 대해 깊이 연구하신 박용규 교수님이나 토마스 목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수득하신 고무송 목사님과 같은 학자가 강연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양했으나 부산에 살고 있다는 이유에서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을 송구하게 생각한다. 오늘 필자는 토마스 선교사가 걸어갔던 26년의 삶의 여정을 뒤돌아보고 오늘 우리들과 우리 교회에 주는 가르침이 어떤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16세기 독일의 위대한 화가였던 알브레히트 뒬러(Albrecht Durer, 1471-1528)는 ‘그림’(painting)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는데, 첫째는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고, 둘째는 죽은 자를 기억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초상화를 그렸다. 오늘 우리의 ‘기림’(commemorate)도 두 가지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유익을 주는 일이고, 둘째는 토마스 목사가 걸어갔던 믿음의 길을 기리는 일이다. 이 목적을 위해 우선 토마스 목사가 살아갔던 삶의 여정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우리들의 신앙과 삶, 그리고 오늘의 교회 현실을 성찰해 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1. 출생과 가정 배경, 학교교육 로버트 저마인 토마스(Robert Jermain Thomas, 1840-1866)는 로버트 토마스(Robert Thomas, 1810-1884)와 메리 윌리암스(Mary L. Williams, 1817-1895)의 6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로버트 토마스는 당시 웨일즈의 위대한 설교가이자 웨일즈 부흥을 주도한 윌리엄 윌리엄스의 제자인데, 중부 웨일즈에 있는 신학교에서 수학했다. 1837년 4월 18일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1839년 여름 라야더(Rhayader)의 터바나클 교회 부임했는데, 바로 이곳에서 둘째 아들 저마인 토마스가 출생했다. 로버트 토마스 목사가 이곳에서 사역하는 동안 강력한 성령의 역사 일어났고 교회 부흥의 역사를 경험하였다. 이곳에서 목회하면서 1795년에 창립된 런던선교회에 후원금을 보내기 시작하는데, 후에 그의 아들이 런던선교회의 파송으로 중국으로 향하게 된 것은 흥미로운 관련이 아닐 수 없다. 로버트 토마스 목사는 1848년에는 몬머스셔(Monmouthshire)의 하노버교회로 이동하게 된다. 이때 저마인 토마스는 8살이었다. 토마스는 이곳 하노버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게 된다. 토마스의 교육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최초의 공교육이 이루어 진 곳은 란도버리(Landovery) 칼리지에 3년간 공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그는 헬라어와 라틴어, 그리고 프랑스어를 공부했는데 이때부터 다른 아이들에 비해 언어능력이 탁월했다고 한다. 그가 언어에 재능이 있었다는 점은 그 이후의 다른 기록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그후 토마스는 오스포드대학교 지저스 칼리지에 장학생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나 나이 어리다는 이유로 입학이 보류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토마스는 도제식 의학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스텔라 프라이스(Stella Price)에 의하며 토마스는 외과의사가 되는 교육을 받으라는 주변의 권고를 받고 워터만(Waterman) 의사 휘하에서 2년간 의학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왕실의사면허 시험 제도가 있어 공인된 의사 밑에서 훈련을 받고 시험에 합격하면 의사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가 2년여 이런 교육을 받았으나 적성에 맞지 않았고, 육신의 치료자보다는 영혼의 치유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든 중 잉글랜드 노스헴톤 지역 온들(Oundle)에 있는 알프레드 뉴스 학교(Alfred Newth’s school) 보조교사로 부름을 받고 약 1년간 일하게 된다. 이 학교 교장 알프레드 뉴스는 중국선교를 준비했던 사람으로 로버트 모리슨에게 중국어를 배운 인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토마스는 알프레드 뉴스를 통해 중국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토마스는 또 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가 캐를라인 갓프리(Caroline Godfrey)였다. 토마스는 주일에는 온들 회중교회에 다녔는데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던 중 존 갓프리의 외동딸 캐를라인 갓프리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여성은 토마스보다 2살 연상으로 후일 아내가 된다. 일 년 간의 교사생활을 마감한 토마스는 고향 하노버로 돌아갔고, 이때 아버지 청으로 교회에서 설교를 했는데, 그것이 히브리서 13장 8절의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본문의 설교였다. 아마도 이것은 자신의 신앙고백이었을 것이다. 토마스는 1857년에는 런던대학교 뉴칼리지에 입학했다. 온들에 있을 때 교장이었던 알프레드 뉴스의 친형인 새무엘 뉴스가 당시 학장이었다. 이곳에서 2년만에 학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3년간 최고의 금액인 밀스장학금을 받았다. 이 시기가 웨일즈의 영적 부흥기였는데 토마스는 교수드르이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 년 간 휴학했는데, 휴학기간동안 지역교회에서 설교활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복학한 그는 중국선교에 대한 조바심으로 학교에 조기 졸업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가 선교의 이상을 갖게 된 데는 귀츨라프의 영향 또한 없지 않았다. 토마스는 1832년 충청남도 보령시의 고대도와 조선 해안을 방문했던 귀츨라프의 항해기를 읽은 것으로 보이는데, 귀츨라프가 서해안을 따라 여행하면서 성경을 보급했듯이 후일 토마스도 동일한 방법을 선택했다. 1859년 10월 토마스는 런던선교회 소속의 록하르트(Lockhart) 선교사의 설교 듣고 큰 감명을 받는데, 그의 설교 또한 선교사의 길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록하르트는 1861년에는 영국공사관의 공의로 베이징에서 활동하게 된다. 2. 선교사로의 길 토마스는 1863년 5월 뉴칼리지 졸업했다, 휴학기간을 포함하여 6년이 소요되었다. 졸업 후인 5월 29일에는 런던의 회중교회에서 온들에서 만난 캐롤라인 갓프리와 결혼했다. 이때 토미스는 23세, 아내는 25세였다. 결혼 6일 후인 6월 4일에는 목사안수 및 선교사 파송식이 거행되었다. 이로부터 7주 후인 7월 21일 토마스 부부는 그레이브센드(Gravesend) 항구 떠나 상해로 출발했다. 그가 중국으로 가게 된 것은 몇 가지 연쇄적 영향도 없지 않았지만 당시 중궁은 인도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선교지였고, 가장 많은 선교사가 파송된 지역이었다. 토마스는 영국을 떠난지 4개월 만인 1863년 12월 첫주 상하이(上海)에 도착했다. 런던선교회 상하이 지부장 무어헤드(William Muirhead)의 충심의 영접을 받았으나 두 사람 간의 친밀한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상하이 도착 2개월 후인 1864년 2월 4일 자로 부모님께 보낸 편지가 남아 있는데 이 문서에는 당시 정황을 헤아리게 해 주는 중요한 문서라고 할 수 있다. 중국 도착 4개월 후인 1864년 3월 11일 런던선교회의 그리피스 존(Griffith John) 선교사가 사역하고 있는 한커우(漢口)로 갔는데 그 기간동안 임신 중이던 부인은 유산하고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1864년 3월 24일 2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토마스는 타지에서 아내의 죽음을 맞게 되었고, 이 일로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사별의 아픔이치유되기도 전에 토마스는 또 다른 고뇌에 빠졌는데, 상하이지부장 무어헤드와의 갈등이었다. 선교관의 차이에서 유래한 갈등은 토마스에게는 심각한 현실이었다. 상하이에 주제하는 영국인을 위해 목회했던 무어헤드는 상하이가 선교 중심이어야 한다고 보았으나 토마스는 자국민보다 중국인 선교가 우선해야 된다고 보았고, 한커우로 가고 싶어 했다. 토마스에게 신설되는 학교 교장직 요청을 받았으나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음으로 이 사역은 그에게 매력적이지 못했다. 결국 토마스는 런던선교회를 사임하게 된다. 1864년 12월 7일이었다. 곧 이 일을 경솔한 행동이었다고 후회하게 되지만 토마스에게는 성급함과 무모함이 없지 않았다. 고무송 박사는 토마스에게는 모험정신, 강한 의무감, 무모함, 성급함, 엘리트 의식 등 몇 가지 기질 혹은 특징이 있다고 보았는데, 적절한 지적이라고 생각된다. 런던 선교회를 사임한 그는 현제 엔타이(煙臺)라고 불리는 지푸(Chefoo)로 이동하여 이곳 세관의 통역 및 감독관으로 일했다. 이때부터 1865년 8월 31일까지 약 8, 9개월간 일했다. 3. 제1차 조선 방문 지푸는 산동성 북부의 해안도시로서 조선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 당시로 볼 때 외국과의 무역을 허용한 유일한 항구였다. 이곳에서 토마스는 두 사람의 한국인을 만나게 된다. 이곳의 스코틀랜드성서공회 소속 알렉산더 윌리암슨(Alexander Williamson)은 두 한국인을 만나게 되는데, 김양선에 의하며 그 두 조선사람 김자평(金子平)과 최선일이라고 한다. 윌리암슨은 이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는데, 토마스도 함께 초대되었고, 이들을 통해 한국의 상황을 듣게 뙨다. 즉 한국의 로마가톨릭 신자는 5만명이 이르고, 11명의 신부들이 비밀히 활동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이런 접촉을 통해 토마스는 조선 선교를 자원하게 되고, 스코틀랜드성서공회 대리인 자격으로 1865년 9월 4일 ‘허락되지 않는 땅’(terra incognito) 조선으로 향하게 된다. 이것이 제1차 조선방문인데, 윌리암슨으로부터 한문성경과 기독교 서적을 보급 받았고 또 약간의 경비 지원도 받았다. 이대 김자평이 동행했고, 중국인 우웬타이가 항해를 맡았다. 그 달 13일에는 황해도 해안에 도착했는데, 이곳이 황해도 옹진 자라리(紫羅里) 근포(近浦)였다. 이곳에서 성경을 나누어 주며 전도했고 한양까지 가려했으나 배가 파선되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을 떠난 그는 만주의 피쯔워 항구를 거쳐 도보와 말을 타고 여행하여1866년 1월 4일 혹은 5일 베이징에 도착했다. 지푸를 떠난지 4개월 만이었다. 조선에 체류한 기간은 2달 반 정도였고, 체류한 곳은 서해안, 곧 황해도나 평안도에 속한 도서지방이었다. 김양선 교수의 지적처럼 토마스를 인도했던 김자평이 황해도의 ‘육도’였기 때문에 자기가 잘 아는 지역으로 안내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곳에서 성경책과 기독교 문서를 배포했다. 이점은 토마스가 두 번째 조선으로 향하기 일주일 전에 런던선교회 지부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베이징으로 돌아온 토마스는 런던선교회 선교사로 재가입 되었고 근무지는 베이징 지부로 결정되었음을 통보 받았다. 즉 재가입된 것은 1865년 9월에서 11월 사이로 판단되는데 이 점은 토마스가 런던선교회 소속으로 조선을 방문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토마스가 런던 선교회 티드만 회장에게 보낸 조선방문 보고는 당시의 사정을 헤아릴 수 있는 소중한 정보를 제공한다(스텔라, 100). 4. 제2차 조선 방문 고종 3년인 1866년은 우리나라 최대의 천주교 박해인 병인박해가 있었던 해였고 이때 대원군은 천주교를 금압했을 뿐 아니라 약 8천명의 천주교인이 죽임을 당했다. 이 때 조선에서 활동하고 있던 베르뇌(Berneux) 주교를 비롯하여 9명의 프랑스 주교들이 참수되었다. 천주교도를 색출하기 위해 오가작통법으로 감시했고 해안은 봉쇄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토마스는 두 번째 조선을 방문하게 된다. 토마스는 조선에서의 천주교 박해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조선행을 시도했다. 그러든 중 프랑스 해군사령관 로즈 제독으로부터 통역관으로 조선으로의 동행을 요청했다. 로즈 제독은 베이징의 프랑스 대사관을 방문했는데, 프랑스 대리공사 벨로네(Bellonet)에게 조선에서 일어난 천주교 박해 소식, 특히 프랑스인의 처형 소식 알려주었다. 벨로네는 로즈에게 조선 진격을 요구했고, 약간의 조선어를 알고 있는 토마스에게 로즈 제독의 통역관으로 조선 동행을 요청한 것이다. 주저되는 바가 없지 않았으나 토마스는 조선으로 갈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서 텬진에서 로즈 제독과 합류하여 지푸를 거쳐 조선으로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로즈 제독은 베트남 사이공에서 일어난 소요를 진압하기 위해 그리로 가게 됨으로 원래 계획이 취소되었다. 토마스는 조선으로 갈 길을 찾기 위해 일단 지푸로 갔다. 여기서 필요한 경비도 마련할 계획이었다. 여기서 다시 윌리암슨과 한국인 김자평을 만났는데 이들을 통해 조선방문의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든 중 1884년 7월 29일 지푸에 커다란 선박이 나타났다. 그것이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였다. 원래 이 배는 1861년 영국에서 건조한 범선으로 ‘프린세스 로얄’호로 불렸으나 1863년 1월 미국으로 넘겨져 미 해군에서 사용하였고, 1865년에는 경매에 넘겨져 상선으로 개조되었다. 남북전쟁 당시 위력을 떨친 남군의 장군 셔먼으로 이름을 따 제너럴 셔먼으로 개칭되었으나 더 이상 해군 함정이 아니라 영국의 메도우 사(Meadows Company) 소속 상선이었다. 이 배는 조선에서 팔릴만한 비단, 유리그릇, 천리경, 자명종 등을 싣고 텬진항을 거쳐 지푸로 온 선박이었다. 토마스가 어떻게 이 배에 승선하게 되었는가는 분명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나 조선행을 의도했던 토마스에게는 조선행의 호기였다. 그 배가 어떤 성격의 배인지, 조선 방문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따질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토마스는 베이징을 떠난지 26일 만인 1866년 8월 9일 제너럴 셔먼호에 승선했고, 이날 셔먼호는 조선으로 향했다. 알렉산더 윌리엄슨으로부터 상당히 많은 양의 한문성경과 기독교 서적을 공급받았다. 제너럴 셔먼 호는 무장한 상선으로 승선인은 선주 미국인 프레스턴(W. Preston)을 비롯하여 항해사 윌슨(Wilson), 선장 페이지(Page), 화물관리인 영국인 호가스(G. Hogarth), 토마스 선교사, 두 사람의 중국인 이팔행 등 항해안내원, 그리고 중국인과 말레시아인 선원 등 24명으로 파악된다. 후의 일이지만 고종실록에는 프레스톤을 보래돈(普來敦)으로, 페이지를 파사(巴使)로, 호가스를 하갈특(何噶特)으로, 토마스를 최란헌(崔蘭軒)으로 표기했다. 물론 최란헌이라는 표기가 토마스를 표기한 것이 맞느냐에 대한 논란이 없지 않다. 지푸를 떠난 제너럴 셔먼호의 첫 경유지는 백령도의 두무진 항이었다. 이곳에서 토마스는 성경을 나눠주었고, 이때 제너럴 셔먼호를 목격했던 한 조선인의 목격담이 스텔라 프라이스는 자신의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124쪽). 곧 백령도를 떠나 돛섬으로 향했는데, 여기서 중국인 선장 우웬타이(Yu-Wen-Tai) 만나게 된다. 그는 여러 차례 조선의 해안을 왕래하며 장사했던 중국인이었다. 다시 배는 대동강 안쪽으로 행진했다. 외국선박의 입항이나 접촉을 금지했던 조선의 사정을 알고 있던 선원들은 안전을 위해 더 이상 진출 우려했으나 선장과 선주는 우웬타이의 경고를 무시했다. 조선 사정이 밝은 우웬타이는 더 이상 안내할 수 없다며 지푸로 돌아갔다. 그러나 셔먼호는 자만했다. 5. 대치상황과 제너럴 셔먼호의 최후 8월 16일에는 용강면 다미면 주용포항에, 8월 17일 금요일에는 황주 송산에 정박했다. 예상되는 바이지만 강둑에는 이양선을 보기 위해 조선인들이 몰려들었고, 조선관리는 긴급 회합하여 선박의 철수를 요구했으나 셔먼호는 입항을 고집했다. 고종 3년, 곧 1866년 음력 7월 15일자 고종실록에는 당시의 상황이 언급되어 있다. 배는 더 진행하여 8월 20일에는 평양 초리방 사포구에 이르렀다. 이곳에서도 서양 선막은 구경꺼리였다. 많은 이들이 구경하러 몰려왔다. 오문환에 의하면 홍신길이라는 소년도 작은 배로 셔먼호 근처로 접근했고, 토마스는 갑판에서 그를 맞이하여 방으로 데리고 기독교 문서를 주고 그에게 케이크를 맛보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감자를 보았다고 한다. 또 그날 밤에는 인근 쑥개마을에서 장인국 지달수 지달체 지택구 지택붕 지택주 장용국 지달해 표명보 등 아홉 사람이 토마스를 찾아갔다고 한다. 이 들 중 장용국 외에는 천주교 신자들인데 천주교 신자들을 보호해 줄 프랑스 선박을 기다리고 있던 중 셔먼호로 찾아간 것이다. 토마스는 자기는 천주교 신자도 프랑스 함대도 아니라고 말하고 개신교 선교사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성경과 기독교 문서, 그리고 빅토링여왕 얼굴이 새겨진 동전까지 주었는데, 천주교신자들은 성모 마리아상으로로 오인했다고 한다. 오문환 장로 기록의 정확성은 확인할 수 없으나 조선인과의 접촉의 사례로 제시되고 있다. 얼마 후 지달수와 지달해는 서양인 접촉했다는 이유로 참수되었다고 한다. 다음날 조선관리가 선박의 철수를 요구했을 때 셔먼호는 교역을 원한다며 비단, 유리, 망원경, 자명종을 조선의 쌀, 인삼, 종이, 호랑이 가죽 등과 교환하자고 했다. 그러나 교역을 금하는 정책에 따라 이를 거절했다. 거듭된 경고를 무시한 것은 제너널 셔먼호의 오만이었고 신중치 못한 처신이었다. 대치상황은 약 2주일간 계속되었다. 조선 관리들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제너럴 셔먼호는 평양행을 고집하고 8월 21일에는 평양 신장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도 구경꾼들이 몰려오았고, 토마스는 성경책 나눠주었다. 토마스로서는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의무를 다한다면 된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 성경 받은 김영섭은 후에 기독교신앙을 받아드렸고, 두 아들 김종권과 김성집은 후일 장로가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도 조선 관리 김낙수는 선박의 도래경위를 조사하고 철수를 요구했다. 8월 22일 셔먼호는 평양 만경대의 작은 선 두로도에 닻을 내렸다. 토마스 이곳에서 100권의 성경 배포했다고 한다. 평양감사 박규수는 셔먼호의 공격에 대비하여 만경대를 둘러싸는 방어선 구축 지시했다. 그럼에도 셔먼호 대동강으로 계속 진입했다. 8월 27일에는 보다 심각한 사건이 일어났다. 셔먼호 승무원들이 순시대장 중군(中軍) 이현익을 억류한 것이다. 조선에 무단 침입했을 뿐 아니라 퇴거를 거부하고 조선관리를 억류한 일은 심각한 일이었다. 셔먼호의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 혹은 물이나 식량, 연료를 공급받기 위한 것이라는 설이 없지 않으나 방자한 행동이었다. 선원 중 한 사람은 이현익의 관원 명찰을 빼앗은 일을 더욱 그러했다. 이현익의 억류소식을 접한 주민들은 셔먼호에 돌을 던졌고, 석방을 요구했다. 관군은 사격을 가했다. 셔먼호 측에서도 발포했다. 이런 와중에서 박춘권(朴春權)이 혼자 배를 저어 가 이현익을 구출했다고 한다. 오문환에 의하면 그가 후에 평양의 장로교회 첫 인물이 되었다고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 의견도 있다. 셔먼호가 수세에 몰리자 더욱 낙폭하게 대응했다. 8월 28일 발포를 시작했고, 8월 31일에는 조선인 7명 사살되고 5사람 중경상을 입었다. 사태는 심각하게 전개되었다. 고종의 허락에 따라 평양감사 박규수는 셔먼호 공격을 지시했다. 9월 3일이었다. 박규수는 실학자 박지원의 손자로서 개방론자였으나 셔먼호의 무단접근은 용인될 수 없었다. 곧 강 수위는 낳아졌고 배는 좌초되었다. 9월 4일 달빛도 없는 그믐밤이었다. 결국 선원은 쑥섬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작은 거룻배에 나무를 싣고 불을 붙여 셔먼호로 접근시켜 셔먼 호 불태웠다. 선원들 불길을 피해 강밖으로 헤엄쳐 나왔으나 강변에 정렬해 있는 군인들에 의해 창에 찔려 주임을 당했다. 토마스 목사도 남은 성경책을 안고 배에서 띄어 내렸다. 강가로 끌려나온 그는 모래사장에 머리를 숙이고 기도했다. 그리고는 마지막 성경을 관군에게 내밀었다. 관군의 칼은 토마스의 가슴을 내리쳤고 토마스는 9월 5일 대동강 쑥섬 모래사장에서 26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토마스의 시신은 대동강변에 묻혔다. 6. 토마스의 순교 이후 토마스의 최후에 대해서는 상이한 기록이 남아 있다. 배가 불타고 선원들이 죽임을 당할 때 토마스는 뱃머리에서 홀로 야소(耶蘇)를 외치고 남은 성경을 뿌렸다는 기록이 있는가하면, 한석진 목사는 토마수가 순교한지 26년이 지난 1892년 당시 목격자로부터 제널 셔먼호가 불탈 때 토마스가 성경을 던지며 ‘야소’를 외치는 것을 들었다는 증언을 남겨주고 있다. 그런가하면 백기를 흔들며 목숨을 외국인도 한 두명 있었다고 한다. 그 한 사람이 토마스였을 것으로 말하는 이도 있다. 기록의 정확성을 검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을 균형 있게 판단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토마스의 죽음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제너럴 셔먼을 구경하라 갔던 소년 최치량(崔致良, 1854-1930)에 관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는 12살 때 숙부와 함께 1866년 9월 3일 토마스 순교장면을 목격하였고, 토마스 목사가 뿌린 한문성경 3권을 주었다고 한다. 책 소지자에 체포 명령이 내려 대부분 성경을 소각하거나 강변에 버렸다. 최지량도 이 성경을 집으로 가져 오지 못하고 영문주사(營門主事) 박영식(朴永植)에게 주었다고 한다. 박영식은 이 성경을 가져와 찢어 벽지로 사용했다. 오랜 후 최치량은 사업에 성공하여 물상객주(物商客主)가 되어 평양 대동문 안에 집을 사 여관을 운영하게 되었는데, 그 여관의 전 주인이 박영식이었다. 최치량은 이 벽지로 사용된 성경을 읽고 또 한석진의 전도로 회심하였고, 평양에서 최초로 마펫에게 세례를 받고 평양지역 교회의 초석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널다리골의 홍종대(洪鐘大)의 집을 사서 예배처소로 사용했는데, 이것이 평양장대현교회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서구와의 불행한 접촉이었으나 그 이후 역사는 흥미롭게 전개되었다. 이 사건은 조선과 미국간의 외교문제로 발전하였고, 널리 알려진 바처럼 이 일이 신미양요(辛未洋擾, 1871. 6)의 원인이 되었다. 이런 대결과 접촉이 후일에는 조미 양국 간의 통상조약(1882)으로 발전하여 외국인의 조선 거주를 보장 받게 된다. 결국 1884년에는 알렌이 입국하게 되는데, 토마스 순교 18년 후의 일이었다. 이런 점에서 박용규 교수는 토마스의 순교는 한국교회의 보이지 않는 이정표가 되었다고 말한다. 오문환은, 토마스의 피가 뿌려진 대동강 물을 마신자마다 예수를 믿었고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릴 만큼 한국교회의 거룩한 도성이 되었다고 했다. 7. 남은 문제: 토마스는 순교자인가 침략자인가? 토마스 목사는 오랫동안 잊혀진 인물로 남아 있었다. 그가 죽임을 당하고 60년이 지난 1926년 평양의 오문환 장로는 토마스 목사의 생애와 죽음에 대한 소책자를 발간했다. 그것이 토마스의 생애와 조선 기독교사의 분수령이 되는 양란(洋亂)에 대한 기록이었다. 1927년에는 토마스 기념회가 조직되었고, 1927년 5월 8일 토마스 목사가 묻힌 쑥섬에서 토마스 목사 순교 60주년 기념예배가 거행되었는데, 이때 1천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1932년 9월 14일에는 대동강변에 토마스기념예배당을 건립했는데, 1933년 10월 14일 봉헌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10여년 이래로 토마스를 순교자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래서 그 의 죽임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감리교의 존스(G. H. Jones) 이래로 초기 선교사들은 토마스 목사를 순교자로 이정해 왔고, 설사 게일의 경우처럼 순교자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복음을 위한 그의 숭고한 죽음을 기리고 있고, 그를 정치적 희생자라든가 침략자로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토마스를 순교자로 볼 수 없다거나 심지어는 침략자에 불과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토마스는 무장상선을 타고 입국했기 때문에 순교자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가 하면 조선에 와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순교자로 칭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 그가 죽은 이유가 기독교 복음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제너럴 셔먼호의 부당한 처신과 횡포에 기인하는 정치적인 죽임이라고 주장하다. 일견 고려할 점이 전무한 것은 아니지만 1860년대 상황에서 해석하는 일이 필요하다. 토마스가 복음의 열정, 곧 조선 선교의 이상을 가진 점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당시로는 조선 입국 방법이나 경로를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설사 무장상선이라 할찌라도 셔먼호 승선이 조선으로 진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였다. 제너럴 셔먼호의 신중치 못한 점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셔먼호로 입국했기 때문에 순교자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선교사가 내한 한 이후 무엇을 했는가가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토마스는 1863년 이래로 선교사 신분이었고, 이미 조선을 방문하바 있고 선교사역을 감당했다. 그가 내한 즉시 죽임을 당했다고 해서 순교자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그의 죽음이 복음전도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는 주장도 고려할 점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기독교가 금압된 당시 상황에서 서양인의 죽음, 특히 서양선교사의 죽음을 비종교적 행동으로만 취급할 수 없다. 1866년 병인양요 때의 프랑스 선교사들은 죽음은 정치적 성격이 강했고, 외세에 의한 침략세력으로 간주되었다. 그 누구도 프랑스 신부의 죽음을 순교가 아니라고 부정하지 않는다. 기독교가 금지된 상태에서 ‘선교사의 현존’ 자제가 정치적 행위일 수 있고, 정치적 침략세력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토마스의 죽음을 순교로 볼 수 없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토마스 목사가 제너럴셔먼호로 입국한 일이나 셔먼호의 부당한 혹은 불법적인 행위는 지탄받을 수 있지만 토마스 목사는 조선인에게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려는 선한 의지는 부정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토마스가 죽임을 당한 후 초기 선교사들을 시작으로 한국교회는 토마스를 순교자로 간주하고 그의 죽음의 의미를 기념해 왔다. 15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토마 목사의 삶과 죽음을 통해 오늘우리의 모습을 성찰해 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 기고/강연
    • 강연/특강
    2016-09-08
  • 이슬람(2)
    (이 글은 5월 25일(수) 거제교회에서 개최된 제1회 부산이단대책세미나 강의안입니다.) 이슬람(2) ▲ 이만석 목사 (현. 한국이란인교회 담임, 4HIM 대표) 그렇다면 우리가 그들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 이슬람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첫째 : 이슬람의 타끼야(Taqiyya) 교리를 알아야 한다. 타끼야란 위장 즉 거짓말을 허용하는 교리다. 이를 이란어사전에서 찾아보니 “피하다, 삼가다, 절제하다”등의 뜻이 있는데 종교적인 의미로는 “금전적이나 생명의 손해가 예상될 경우 자신의 생각이나 종교를 숨기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슬람 외에 어떤 종교가 교리적으로 거짓말을 허용하는가? 그러나 이슬람에서는 무함마드의 말(부카리 하디스)을 인용하여 세 가지 경우에 거짓말을 허용하고 있다. 즉 1. 전쟁 상황에서 승리를 위해 적을 속이는 것 2. 다투고 있는 두 그룹을 화해시키기 위한 거짓말 3.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아내를 속일 필요가 있을 때 등 그런데 이슬람의 교리를 보면 “비무슬림들과는 항상 전쟁상태”라는 것이다. 이슬람의 관점에서 보면 세상을 둘로 구분하는데 하나는 무슬림들이 살고 있는 평화의 집(Dar al Salam)과 비무슬림들이 살고 있는 전쟁의 집(Dar al Harb)으로 나눈다. 그러므로 비무슬림들은 전쟁의 집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거짓말이 용인되며 특히 그들을 이슬람으로 복속시키고자 하는 목적으로 이슬람을 미화시키는 모든 거짓말은 허용될 뿐 아니라 장려된다. 심지어는 꾸란의 번역도 미화, 왜곡 번역이 허용된다. TV 강연에서도 이슬람의 교리에 대해서 미화시킨 거짓말로 강연할 수 있다. 한 번의 거짓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슬람에 대한 호감을 갖게 할 수 있다면 알라께서 기뻐하실 것이라는 논리다. 예를 들면 “한 손에 칼을 한 손에 꾸란을”이라는 사상은 이슬람에 없으며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는 거짓말이다. 이슬람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기를 보면 이슬람의 신앙고백과 칼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이슬람의 대표적 사상이지만 타끼야 교리에 의해서 평화의 종교로 둔갑시켜 대한민국 교과서에서 이런 구절들을 모두 삭제하였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이라는 말은 꾸란 9장5절을 표어로 만든 것이다. 꾸란 번역도 거짓으로 미화시켜 놓았는데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3장 54절을 들 수 있겠다. 원래 3장 54절은 “그들도 알라를 속이려 했고 알라도 그들을 속이려 했는데 알라는 최고로 잘 속이는 분이시다.”라는 내용이며 영문번역은 이렇다. And they (the disbelievers) schemed, and Allah schemed (against them): and Allah is the best of schemers.(Pickthall역) 그런데 아랍어 꾸란 원문을 보면 이 문장에서 Makara라는 단어가 세 번 사용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보급된 아랍어 사전은 최영길, 이두선 씨가 엮은 것인데 거기서 찾아보면 Makara는 “속이다. 거짓말하다”라는 뜻 밖에 없는 단어다. 그렇다면 “알라는 가장 잘 속이는 분”이라고 번역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사전을 만든 최영길씨가 번역한 한글 꾸란은 그 단어를 ’가장 훌륭한 계획자’라고 번역해 놓았다. 경전을 번역하는 태도가 이런 정도라면 나머지 문서들이나 교리와 율법의 왜곡과 미화는 얼마나 심할까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 우리가 가장 많이 속고 있는 것들 중 하나는 이슬람의 신 알라가 기독교의 하나님과 같다는 생각이다. 그들은 이슬람은 알라(Allah)라는 신을 섬기고 있는데 이는 창조주 절대자 전능자 유일신을 의미하며 기독교나 유대교에서 믿는 여호와 하나님과 같은 분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철저히 타끼야(위장)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알라라는 신은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소속되었던 꾸라이시 족속의 종족신이었으며 라트(Lat) 우짜(Uzza) 마나트(Manat)라는 세 딸을 두었던 메카의 카아바 신전에 안에 있었던 360개 우상들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슬람 학자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꾸란에 이슬람의 신은 기독교의 신과 같은 분이라고 분명히 명시 되었다고 한다.(꾸란29:46) 꾸란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내용은 진실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슨 근거로 진실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누구도 그 권위를 부인할 수 없는 이슬람의 경전 꾸란과 기독교의 경전 성경을 비교해보면 확인할 수 있다. 성경: 예수를 주님으로 시인하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행16:31, 마16:16) 꾸란: 예수를 주님이라고 부르는 자는 믿음에서 떠난 불신자다.(꾸란5:17, 꾸란5:72) * 성경과 꾸란의 이 두 구절은 이를 계시한 영이 정반대의 영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하나가 성령의 계시라면 하나는 악령의 계시가 분명하다. 성경: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 사함과 구원을 위해 열어 놓으신 유일한 길이다. 꾸란: 십자가는 유대인들이 만든 상상의 산물이다.(꾸란4:157) * 십자가를 부인하는 것은 인류를 지옥으로 보내기 위한 사단의 최대의 전략이다. 성경: 예수께서 그리스도(구세주)라는 것을 부인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다.(요일2:22) 꾸란: 예수는 장차 아흐마드(무함마드)가 온다는 소식을 미리 전해주러 왔다.(꾸란61:6) * 예수 그리스도를 무함마드의 발아래 두려는 간악한 거짓말이다. 성경: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는 적그리스도다.(요일2:22) 꾸란: 신에게 아들이 있다고 하는 자들 때문에 큰 저주가 임할 것이다.(꾸란19:88-91) * 이 구절들을 비교해 보면 이슬람의 알라는 적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것이 확인된다. 이 외에도 이슬람의 알라는 수시로 계시의 내용을 취소하고 다른 구절로 대체할 수 있는데(꾸란2:106), 하나님께서는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응하리라(마5:18)고 하셨다. 또한 하나님은 일부일처에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고 이혼절대불가를 말씀하셨는데 꾸란에서는 일부다처를 허용하고(꾸란4:3) 이혼은 두 번까지(꾸란2:229)라고 한다. 이 외에도 하나님은 소통이 가능한 인격적인 신이지만 알라는 인간과 직접 소통이 불가능하며(꾸란42:5) 하나님은 심판권을 인간에게 양도하지 않으셨는데(롬12:19) 알라는 인간들에게 심판을 집행하라며 어디서 발견하든지 살해하라(꾸란9:5, 꾸란4:89, 꾸란4:91)고 하는 등 모든 면이 다른 신이지만 같은 신이라고 주장하며 속이고 있다. 셋째 : 기독교와 이슬람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같이 섬기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은 이것도 거짓이다. 우리가 이슬람의 주장들을 들어보면 그럴 듯하게 들리는 것은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나 꾸란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성경의 인물들과 같다는데서 혼동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엄청난 금액의 홍보비를 투자한 덕분에 학계가 속아왔고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은 아브라함의 종교라는 말에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강력하게 주장한다고 다 믿을 수는 없다. 한 번 확인해 보자. 성경 : 아브라함의 아버지 이름은 ‘데라’였다.(창11:31) 꾸란 : 아브라함의 아버지 아름은 ‘아자르’였다.(꾸란6:74) * 아무리 이름이 똑 같다고 해도 아버지가 다르다면 완전히 다른 인물이다. 성경 : 아브라함의 이름은 99세 때부터 바뀐 이름이다.(창17:5) 꾸란 : 아브라함은 어려서부터 그 이름이 바뀌지 않았다.(꾸란21:60) * 그 때는 수백세를 살았기 때문에 99세는 젊었다고 할 수 있다고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지만 성경은 90세의 사라가 나이 많아 늙어서 낙이 없다고 했다.(창18:11-13) 성경: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예루살렘)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했다.(창22:2) 꾸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이스마엘을 번제로 드리려 했다.(꾸란37:102-107) 성경: 아브라함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쪽으로 간 일이 없다. 꾸란: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메카의 카아바 신전을 건축했다.(꾸란2:127) 이 외에도 이슬람의 가르침에 의하면 아브라함을 불 속에 던졌는데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고 알라께서 구해 주셨다고 하는가 하면(꾸란21:69) 아브라함이 책을 계시 받았다고 한다.(꾸란87:19) 이로 볼 때 꾸란의 아브라함은 성경의 아브라함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마찬가지로 꾸란의 예수도 성경의 예수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꾸란의 예수는 아랍어로 이싸(Isa)라고 하는데 성경의 예수는 아랍어로 야슈아(Yashua)라고 한다. 이것을 한글로 모두 예수라고 번역하여 속이고 있는데 꾸란의 예수는 알라(Allah)만을 섬기라고 전도하며 다녔던 무슬림이었으며(꾸란5:72) 삼위일체도 거짓이며(꾸란5:73) 십자가에 죽지도 않았고(꾸란4:157) (부활도 없이) 그대로 승천했으며(꾸란4:158) 하나님의 아들도 아니며(꾸란19:88) 성자 하나님도 아니고(꾸란5:17)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메시아도 아니고(꾸란5:72) 다만 무함마드가 올 것을 미리 알려 주기 위해서 왔던(꾸란61:6) 선지자 중에 한 사람이라고(꾸란5:75) 한다. 꾸란에 등장하는 성경인물은 성경의 내용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들은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을 자신의 종교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성경에서 이름을 빌려다가 활용하며 계시를 빙자해 만들어낸 이야기들로서 역사적으로 입증할만한 근거 자료가 전혀 없는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고 속지 말아야 한다. 넷째 : 대한민국의 딸들을 구해야 한다. 며칠 전에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관내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관리하시는 외사과 담당자를 만났다.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관내에 거주하는 이슬람국가에서 온 사람들 중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에서 오신 분들이 30명 정도 살고 있는데 100% 한국 여성들과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산다는 것이었다. 남녀평등 시대를 지나서 여성 상위시대에 살고 있는 한국 여성들이 무슬림들에게 속아서 결혼하고 무슬림이 되어서 평생을 이슬람 율법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슬람에서 여성은 남성의 절반의 가치를 가지는 존재다. 상속도 남성의 절반을 받아야 하며(꾸란4:11) 여성의 증언은 남자의 증언의 절반의 가치가 있으며(꾸란2:282) 여성은 원할 때 씨를 뿌릴 수 있는 밭이라고 꾸란은 말한다.(꾸란2:223) 특히 알아야 할 점은 이슬람의 결혼 개념은 한 번 결혼하면 평생을 산다는 개념이 없다는 것이다. 아랍어로 결혼을 ‘니카’라고 하는데 이는 원래 ‘성관계’를 의미한다. 꾸란에는 성관계와 결혼을 ‘니카’라는 한 단어로 혼용하고 있다. 그래서 결혼계약서는 성관계 계약서이며 남편이 메흐르(Mehr:혼자금으로 번역됨)라는 금액을 주고 독점 성관계 계약을 한 것이다. 아내는 평생의 반려자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성관계의 도구로 계약을 통해서 매입한 것이며 따라서 원하면 구두로 3회만 통보를 하면 이혼할 수 있다.(꾸란2:230) 이혼이 이렇게 쉬운 이유는 이미 돈 주고 산 물건이기에 언제든지 더 좋은 물건이 보이면 하나 더 취하든지 혹은 바꾸거나 버리든지 할 수 있는 권리가 구매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에서는 결혼 당시에 메흐르(혼자금)를 정하는 법이 없기에 원할 때 부담 없이 버리고 달아나는 경우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슬람권에서 온 불법체류자들이 한국여인과 결혼하여 합법 체류자격을 얻은 후에 한국 국적을 얻으면 이혼하고 조국의 본처를 초청해 와서 같이 사는 사례도 종종 있다. 이슬람의 결혼식에서는 신과 하객들 앞에서 평생을 이 사람만을 반려자로 사랑하며 동거하겠다는 서약을 하는 순서가 없다. 그러므로 무슬림과 결혼하고자 하는 자매가 주변에 혹시 있다면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질문을 통해서 그녀를 구해줄 수가 있을 것이다. ㉠ 남편이 당신 외에 다른 여인들을 또 얻는다고 해도 결혼하고 싶은가? 꾸란에는 무슬림들은 4명의 아내까지 얻을 수 있도록 허락한다.(꾸란4:3) 내 남편은 안 그럴 것이라고 속단하지 말라. 종교적으로 허락된 사항이며 자신의 권리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있다. ㉡ 언제든지 구두로 3회만 통보하면 간단하게 이혼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최근에는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혹은 e-mail로도 3회 통보하면 이혼이 성립된다고 한다. 이혼은 남편의 권리이며 반드시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이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원하면 언제든지 아내를 바꿀 수 있다.(꾸란4:20) ㉢ 아내가 불순종하면 구타할 수 있는 권리가 남편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꾸란4:34)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남편이 아내를 때릴 때 제3자는 왜 때리냐고 물어서는 안 된다.”(하디스)고 말했다는 것은 이슬람의 율법이다. 최근에는 영국에서도 샤리아 법정이 생겨서 이슬람 율법으로 재판을 받기에 아내를 구타하는 무슬림들을 처벌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으면 그 결혼은 원천 무효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한국에서는 부부로 혼인신고해서 같이 살 수 있지만 남편이 귀국하면 아내는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는 한 부부자격으로 함께 살 수 없다. 무슬림이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해서 선교목적으로 결혼했어도 남편의 나라에서는 그의 개종은 합법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기독교인과의 결혼을 인정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 ㉤ 이혼한다면 자녀는 무조건 남편의 소유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가? 이것은 이슬람의 율법의 규정이기 때문에 남편이 사망했을 경우에도 남편의 가족들이 원한다면 억울해도 아이를 빼앗기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 이슬람에서는 아내와 재산 공유를 해야 하는 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아내에게는 의식주를 제공하고 성관계를 갖는 것이 전부다. 모든 재산은 남편의 것이고 아내는 여러 명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남편과 재산을 공동 소유한다면 분배에 많은 어려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 이슬람에는 이혼 위자료라는 개념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결혼 당시에 이미 메흐르(혼자금)를 몸값으로 치렀기 때문에 의식주 제공으로 충분하며 이혼 시에는 더 이상 아무런 대가를 치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여인의 몸을 평생 독점 사용할 수 있는데 해방시켜준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이혼은 아랍어로 딸락(Talaq)이라고 하는데 이는 해방시킨다는 의미이고 남성만 이혼한다(딸락을 준다)는 말을 사용할 수 있으며 여성은 이혼 당한다(딸락을 받는다)는 의미로만 사용할 수 있도록 용법이 한정된 단어다. ㉧ 여인이 이혼 당하면 숙정기를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숙정기란 태중의 아이가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3번의 생리를 볼 때까지 남편의 집에 머물면서 기다려야 하는 기간을 말하며 그 기간 중에 남편은 원하면 이혼을 취소할 권리가 있으며(꾸란2:228) 기다리는 동안 의식주는 남편이 제공하며 임신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떠나야 하고 임신이었다면 출산과 동시에 떠나야 한다.(꾸란65:4) 이슬람의 결혼 문화를 들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같은 문화권에서 살면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도 결혼을 한 후 함께 마음 맞춰 살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인데 언어도 문화도 제대로 모르고 이슬람 율법도 모르면서 어떻게 함부로 몸을 허락하고 평생의 운명을 맡길 수 있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더구나 저들은 타끼야 교리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도 얼마든지 위장하고 속일 수 있다. 우리가 이슬람의 정체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특히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속히 알려 줘야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다문화 정책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무슬림들이 급격히 늘어나는 것을 방관하고 있다. 오히려 산유국 출신이라고 우대하고 있는 경향까지 보인다. 그러나 이슬람의 정체를 바로 알지 않으면 유럽처럼 우리나라에도 이슬람 때문에 큰 재앙이 올 수 있다. 유럽에서 일어나는 지하철 테러나 열차테러나 학교 테러 등의 소식은 이대로 가다보면 멀리 않아 우리 가족들이 그 희생자 명단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보장은 누구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꼭 알아야 하는 것은 무슬림들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슬람은 악한 영이요 악한 가르침이지만 그 영에 속고 있는 무슬림들은 우리와 같은 하나님의 피조물들이며 우리의 사랑의 대상들이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 하늘에 속한 악한 영들에 대한 싸움이다.(엡6:12) 그러므로 무슬림들을 미워하며 육적인 싸움으로 몰고 가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 와 있는 무슬림들은 악한 거짓 영에 속고 있는 불쌍한 피해자들이다. 그들을 위해서 사랑으로 섬기면서 주님께 기도해서 그들의 감겼던 눈이 떠지고 참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이 이 시대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라고 생각된다. 여러분들의 사람의 섬김과 기도를 통해서 수많은 무슬림들이 주님 앞으로 돌아와 구원에 동참하는 귀한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원한다. 4. 무슬림들은 왜 타문화에 적응이 힘들까? 한국 사람들은 오랫동안 홍익인간을 숭상하는 단군의 후손으로서 단일 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20세기 후반부에 필자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가끔 길거리에서 눈과 머리카락 색깔이 다른 외국인을 만나면 깜짝 놀라서 그 외국인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곤 했다. 그런데 21세기 들어서면서 외국인들이 급증하더니 이제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숫자가 150만을 넘어섰고, 한 해 동안 결혼한 부부들 중에서 외국인과 결혼한 사람이 10% 정도나 된다고 한다. 이제 대한민국은 더 이상 단일민족을 고집할 수 없게 되었으며 어쨌든 우리 주변으로 몰려든 외국인들과 어울려 살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장관급 인사 15명을 포함한 전문가들 50여명으로 구성된 국민 대통합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두고 다문화정책이 우리나라에 성공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독일의 안젤라 메르켈 총리나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프랑스의 사르코지 전 대통령 같은 유럽의 선진국 지도자들은 자기 나라의 다문화 정책이 이슬람 때문에 실패했다고 이미 공언했다. 그들도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인들을 융화시켜 평화로운 복지국가를 유지하려고 최선을 다해 다문화 정책을 추진했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의 다문화주의자들은 유럽의 실패를 거울삼아 제도를 보완하고 풍성한 재정을 포함한 정책적 지원을 하면 우리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럴듯한 환상에 속고 있는 것 같다. 유럽의 정상들과 정치인들인들 왜 그런 생각을 안 해 봤겠는가? 재정지원 뿐 아니라 기존의 정책과 제도와 법을 바꿔가면서까지 무슬림들의 비위를 맞춰 평화롭게 공존하려고 노력해봤으나 안 되더라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다. 우리나라가 유럽에서 실패한 다문화정책을 억지로 추진한다면 우리는 그들보다 더 비참하게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이 그들에게 베풀어 줄 수 있는 복지혜택이나 재정이나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유럽보다 결코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무슬림들은 유럽에서 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 문화에 동화될 수 없었을까? 그것은 특별히 문제가 많은 무슬림들만 유럽에 모여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몇 가지만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Sharia)의 기본 정신 때문이다. 샤리아의 기본정신은 “알왈라 왈바라(Al Walla, Wal Bara)”이다. “알왈라(Al Walla)”는 무슬림들끼리는 국적, 성별, 피부색, 인종, 언어, 신분에 관계없이 무조건 돕고 보호하고 사랑하고 존경해야 한다는 말이다. 반면 “왈바라(Wal Bara)”는 이슬람 외의 종교를 가진 자들과는 국적, 성별, 피부색, 인종, 언어, 신분에 관계없이 절대로 존경하거나 사랑하거나 친절을 베풀거나 돕거나 친구로 사귀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철저히 미워하며 대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신 때문에 이슬람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열성적인 무슬림들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평화롭게 공존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며, 특정 지역에 무슬림들끼리 모여살기를 선호하고 자신들의 신앙과 문화를 지키는 게토를 형성해 그 영역을 넓혀 나가게 된다. 둘째 : 이슬람의 세계관 때문이다. 이슬람에서는 세계를 두 부분으로 나누는데, 한 쪽은 무슬림들만 살 수 있는 “평화의 집(다르 알 쌀람:Dar al Salam)”이며, 또 한 쪽은 기독교와 유대교를 포함한 불교 힌두교 배화교 라마교 유교... 등 이슬람 이외의 모든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사는 “전쟁의 집(다르 알 하릅: Dar al Harb)”이다. 그래서 열성적인 무슬림들은 설교나 강연들을 통해서 이슬람 이외의 문화권의 사람들과는 항상 “지하드(알라를 위한 전쟁)”상태라는 것을 의식하며 살도록 교육 받는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이런 교육내용이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지만, 종종 그들의 교과서에 실린 이런 내용들이 서방세계의 매스컴에 폭로되어 충격을 주기도 한다. 전쟁상태라면 그들의 모든 행동은 일반적인 윤리 기준으로 평가하면 안 되고 전시행동지침이 적용된다는 의미이다. 전시에는 적을 속이는 것은 훌륭한 전략이고 적의 요인들을 암살하는 것은 칭찬받을 일이며 많은 적들을 죽인 사람은 영웅이 되고 다른 사람들이 본받아야할 모델이 되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면 온 세계가 혐오하는 오사마 빈라덴 같은 끔찍한 테러범이 이슬람권에서는 영웅으로 존경받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셋째 : 무함마드의 행동지침 때문이다. 무함마드가 보여주었던 행동은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한 무슬림들의 모델이며 율법의 근원이 되었다. 이를 아랍어로 우스와 하사나(uswa hasana)라고 한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메카에서 힘이 없을 때는 “종교는 강제로 하지 말지니라(꾸란2:256)”라며 유화정책을 폈다. 그러다 주후 622년 메디나로 이주한 후 세력을 결집하여 힘이 생기자 주변의 족속들을 잔인하게 학살하였고, 주후 630년 고향인 메카(Mecca)까지 점령하고는 “이제부터는 두 개의 종교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특히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은 변질된 경전을 가지고 있는 타락한 무리이기 때문에 “가장 사악한 피조물”(꾸란98:6)이라며,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는 “이교도들은 어디서 발견하든지 살해하라”(꾸란9:5)고 명령했다. 그래서 이슬람은 초기부터 전쟁과 칼로 세력을 넓혀 나갔다. 어떤 이들은 “한 손엔 꾸란을! 한 손엔 칼을!” 이라는 사상은 이슬람에 없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이는 이슬람의 여러 교리 중의 하나가 아니라 이슬람의 핵심교리이다. 이슬람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기 도안을 보면 녹색바탕에 이슬람의 신앙고백을 중앙에 아랍어로 적어 놓고 그 밑에 전쟁용 칼을 그려놓았다. 이는 이슬람을 받아들이고 신앙고백을 하지 않는 사람을 죽이라고 하는 이슬람의 핵심교리를 확실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넷째 : 이슬람의 나지스(NaJis) 혹은 나제스(Najes)라는 사상 때문이다. 이는 비무슬림들은 더러운 존재들이라는 관념이다. 이슬람권에 가면 비무슬림들이 쓰던 잔으로는 마시지 않는 사람들이나, 아무리 배가 고파도 비무슬림들이 주는 음식은 안 먹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몇몇 유별난 사람들이 아니라 정상적인 이슬람 율법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취하는 행동이다. 이슬람에서 가장 거룩하다고 여기는 도시 메카를 향한 고속도로 수십 Km 전방에는 “여기서부터 비무슬림들은 통과할 수 없습니다”는 대형 간판을 볼 수 있다. 또한 죄수들을 고문실로 끌고 갈 때 눈을 가리는데, 죄수가 무슬림이 아니라면 수갑 채운 손을 잡아끄는 대신 짤막한 몽둥이 끝을 잡고 따라오게 한다고 한다. 이는 비무슬림들을 불결하게 여기는 꾸란에 기록된 나지스 사상(꾸란9:28) 때문이다. 다섯째 : 이슬람에서는 비무슬림들을 친구로 삼는 것을 죄악시한다.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이것은 꾸란에 기록되어 있는 명령이다.(꾸란3:28, 4:139, 4:144) 유럽에서 이슬람 율법을 제대로 지키려는 사람들을 위해 안내하며 질문에 답변해주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다. 거기에서 어떤 사람이 비무슬림 친구의 생일잔치에 가도 되는지를 문의하였다. 이슬람 성직자는 이렇게 답변했다. “그 초청에 응하는 것은 비무슬림들을 친구로 사귀지 말라는 알라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가면 안 된다.” 심지어 꾸란에는 “비무슬림들은 가장 사악한 짐승들”이라고 정의한다.(꾸란8:55) 짐승들 중에는 애완용으로 사랑받는 동물들도 있다. 그러나 사람만 보면 달려들어 공격하는 사악한 짐승은 보이는 대로 사살하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이슬람 외의 타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모두 사악한 짐승이라는 꾸란의 구절 때문에 이슬람권에서는 이를 적용한 잔인한 살인사건들이 종종 발생한다. 심지어는 유럽친구들과 사귄다는 이유로 자기의 친자식들을 명예 살인하여 알라에게 충성심을 증명하려는 헌신된 무슬림들의 기사가 가끔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여섯째 : 타크피르 문화 때문이다. 이슬람에서 카피르(Kafir)는 불신자라는 뜻이지만 배교자 혹은 이교도를 포괄적으로 칭하는 말로 “죽여도 좋은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다. “타크피르”는 카피르를 처형할 때 무슬림들이 외치는 구호 같은 것인데, 지금도 타크피르를 외치면 주변의 무슬림들이 돌과 몽둥이를 들고 달려들어 카피르에게 폭력을 행하여 죽이기까지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슬람에서는 자경단이라는 것이 있는데 배교자, 간음한 자, 살인자 등 주요 범죄를 한 자들은 법정에 끌고 가지 않고 직접 처형할 수 있다는 샤리아 율법에 근거를 둔다. 따라서 카피르에게 임의로 폭력을 가해도 처벌 받지 않는 것은 이슬람권에서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무슬림들이 집단으로 몰려가서 기독교인들이 예배드리는데 불을 지르거나 결혼식장에 몰려가 테러를 저지르는 일들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이슬람 학자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인방 중의 하나이며 이슬람에 관한 책을 120권이나 쓴 유수프 가라다위는 “만일 배교자를 살해하라는 율법이 없었다면 이슬람은 오래 전에 없어졌을 것이다”고 말했다. 일곱째 : 딤미(Dhimmi) 사상 때문이다. 이슬람을 받아들이지 않은 기독교인이나 유대교인들로부터 목을 자르지 않는 대가로 받는 인두세(지즈야-Jizya)라는 세금제도가 있었는데, 이런 세금을 내고 목숨을 부지하는 하층민들을 딤미(Dhimmi)라고 불렀다. 이 딤미 제도는 철저한 인권 유린, 폭력과 무거운 세금으로 타종교인들을 괴롭히던 제도였으나 영국과 프랑스가 중동을 통치할 때 없애버렸다. 그러나 그 정신은 아직도 무슬림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고, 열성적인 무슬림들은 꾸란을 읽다가(꾸란9:29) 이 제도가 사라졌다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속히 샤리아로 다스리는 세상을 만들어 21세기에도 이 제도를 실행하기를 열망하고 있다. 매주는 아닐지라도 모스크에서 설교를 통해 이런 가르침을 받고 있는 무슬림들은 타문화에 적응이 거의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이미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무슬림들도 많은데 왜 하필 극단주의자들의 견해를 들먹이며 혐오감을 조성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극단주의 무슬림들이 깜짝 놀랄만한 테러를 저질렀을 때 그 많은 평화주의자 무슬림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 현상을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그들도 이슬람의 율법인 샤리아로 다스리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이슬람의 궁극적인 목표에는 동의하지만 성취 방법에서만 약간의 차이를 보일 뿐인 것이다. 5. 이슬람은 아브라함의 종교인가? 우리는 이슬람을 잘 안다고 하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종교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다. 즉 아브라함의 종교를 이삭을 통해서 전수받은 사람들이 기독교와 유대교인들이라고 한다면 이스마엘을 통해서 전달 받은 사람들이 바로 무슬림들이라고 하는 설명이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이슬람의 신 알라(Allah)와 기독교와 유대인들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섬기던 바로 그 신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기독교와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종교를 타락시키고 경전으로 내려 준 성경을 변질시켰기 때문에 무함마드를 통해서 하늘에 있는 경전의 원본을 내려보내어 아브라함의 종교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것이 이슬람이라는 주장을 많이 들어왔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각없이 반복되는 이런 거짓말에 속아서 오늘날의 중동사태를 배다른 형제들의 싸움이니 이삭과 이스마엘의 싸움이니 하면서 무슬림들의 근거 없는 주장을 대신 홍보해 주고 있는지 모른다. 무함마드는 과연 이스마엘의 후손인가? 이 문제를 생각하자면 거슬러 올라가서 아브라함부터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성경의 아브라함(Abraham)과 꾸란의 이브라힘(Ibrahim)이 과연 같은 인물인가? 우선 성경의 아브라함은 아버지 이름이 데라(창11:31~32)라고 되어 있는데 꾸란의 이브라힘의 아버지 이름은 아자르(Azar)라고 한다.(꾸란6:74) 우선 아버지가 다르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아브라함의 원래 이름은 아브람이었는데 99세 때부터 하나님께서 바꿔주신 이름이다.(창17:5) 그런데 꾸란의 이브라힘은 젊었을 때부터 이브라힘이라고 불리던 사람이었다.(꾸란 21:60) 또한 성경의 아브라함은 이방인들에 의해서 불속에 던져진 일이 없는데 꾸란의 이브라힘은 이방인들이 그를 불속에 던진 것을 알라께서 구해 주셨다고 한다.(꾸란21:68~69) 꾸란의 여러 주석에 보면 그를 태워 죽이려던 이방인들은 앗수르왕 니므롯의 백성들이라고 한다.(김용선 주석, 최영길 주석) 특별히 성경에 아브라함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에 간 일이 없는데 꾸란의 이브라힘은 메카에서 이스마엘과 함께 카바(Kaaba)신전을 건축한 사람이라고 한다.(꾸란2:125~127) 그리고 이슬람의 제 2경전이라고 불리는 부카리의 하디스(Sahih al Bukhari)에 보면 이브라힘은 이스마엘에게 이혼을 명령했다는 것이다.(Bukhari hadith volume4 book55 number584) 성경과 꾸란의 이러한 극심한 내용상의 차이는 성경의 아브라함과 꾸란의 이브라힘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아니라 이스마엘이라도 메카에 가서 살았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스마엘이 메카로 간 것이 아니라 바란 광야에서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창21:21) 우리 성경은 ‘그가 바란 광야에 살 때에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애굽 여인을 아내로 얻어 주었다’고 되어 있어서 애굽 여인과 결혼할 때는 그가 바란 광야에 살았지만 평생을 거기서 살았다는 말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히브리 원문에는 ‘때에’라는 말이 없다. ‘그는 바란 광야에 살았다. 그리고 그의 모친이 애굽 여인을 그에게 아내로 주었다’는 것이 올바른 번역이며 킹제임스 번역이나 굳뉴스 바이블도 그렇게 번역하고 있다. 성경에 의하면 이스마엘의 거처는 바란 광야 즉 이스라엘 남쪽이며 모세가 열두 정탐꾼을 보냈던 가데스바네아 북부의 바란 광야였다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마엘이 메카에 가서 살았다는 이슬람의 주장이 성경적으로 보면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는 것이 확인된다. 그렇다면 이스마엘의 후손들 중 어떤 사람이라도 메카에 가서 살았고 그들의 후손 중에 무함마드가 태어나서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시작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친절하게도 이스마엘의 후손들의 거처까지 알려주고 있다. '이스마엘의 자손들은 하윌라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 편에 거주하였더라’(창25:18) 그런데 하윌라에서 술까지 통하는 지역이 어디인지 우리가 잘 모른다. 그러나 친절하게도 영어 성경에 보면 거기가 어딘지를 설명해 주고 있다. Near the border of Egypt(이집트 국경 부근)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쉽게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이스마엘의 모친인 하갈은 애굽 여인이었다. 그리고 이스마엘의 아내도 애굽 여인이었다.(창21:21) 그렇다면 이스마엘과 그의 후손들이 애굽 근처에서 살았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왜냐하면 어머니의 언어이자 할머니의 언어를 그 자식들과 손자들이 자연스럽게 배웠을 것이기 때문에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가까이 살았을 것이라는 것이 자연스런 추측이며 성경도 애굽 국경 부근에서 살았다고 증거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슬람 측의 주장을 합리화 하려면 이스마엘의 몇 대 후대의 자손들이 언젠가 메카로 이주해 와서 그 조상 이스마엘이 아브라함과 함께 섬기던 그 창조주 하나님을 섬겼었는데 그 후손 중에서 무함마드가 태어났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주장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인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훌륭한 학자가 주장한다고 할지라도 성경의 근거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우리가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으며 오히려 하나님과 원수된 사람들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시편 83편을 읽어 보면 3절에 ‘주님의 원수들이 떠들며 주를 미워하는 자들이 머리를 들었나이다’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렇다면 주님의 원수들이 누구란 말인가? 6절에 ‘에돔의 장막과 이스마엘인과 모압과 하갈인’... 이들이 주님의 원수들이라고 성경이 분명히 말하고 있다. 마지막 18절에 보면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라고 기도를 마치고 있다. 즉 이스마엘 후손들과 하갈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원수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며 살았던 것이지 그 후손들이 아브라함의 신앙을 그대로 대대손손이 물려 주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마엘이 하갈의 복중에 있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그의 장래를 예언해 준 것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He will lie in hostility toward all his brothers.’(창16:12) 이스마엘은 태어나기 전부터 그의 형제들과 대적하며 살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으며 이스마엘의 후손들도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하였더라.’(창25:18)라고 번역되었지만 영어 성경에 보면 ‘they lived in hostility toward all their brothers.’라고 되어 있다. 이스마엘은 그의 형제들과 적대적 관계로 살 것이고 그의 후손들 역시 그 형제들 즉 이삭의 후손들과 적대관계를 가지고 살게 될 것이라고 예언되었고 또 그 예언대로 적대적 관계를 가지고 살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시편83편) 그러므로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아브라함으로부터 전수받은 그 믿음을 충성스럽게 지키다가 무함마드 때에 그 믿음을 크게 확산시켰다는 주장은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원수로 살았다는 성경 말씀과는 정반대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이스마엘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부카리의 하디스에 보면 이브라힘이 이스마엘과 하갈을 데리고 메카에 와서 거기 버려두고 갔다고 한다. 그 때 메카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는데 천사가 파준 우물 잠잠(ZamZam)에서 물이 흘러나오자 주르훔(Jurhum) 족속의 사람들이 와서 함께 살기를 청하였고 그 때 이스마엘은 젖먹이 였으며 그들이 이스마엘에게 아랍어를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하갈은 주르훔 족속의 아랍 여인과 이스마엘을 결혼 시켰다는 것이다. (Sahih Bukhari volume4 book55 number584) 그래서 이스마엘은 아랍인들의 조상이 되었다고 하는데 성경에 의하면 이스마엘은 메카에 가지도 않았으며 이집트 여인과 결혼을 했다. 그러나 이 하디스를 기초로 하여 후대 사람들이 무함마드의 족보를 만들어 내었다. 이슬람의 제2의 경전인 부카리의 하디스에 이스마엘은 주르훔 족속에게서 아랍어를 배웠다는 것을 보면 아랍인들은 이스마엘 이전에 이미 존재했다는 것이며 따라서 이스마엘이 모든 아랍인들의 조상이라는 말은 거짓이라는 것이 이슬람 내부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되는 것이다. 후대에 만들어진 무함마드의 족보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씨엗 유쑤프(Syed Yusuf) 등의 대부분의 이슬람 학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무함마드는 이스마엘의 둘째 아들 까이달(Qaidar-게달)의 후손이라는 주장이다. 또 하나는 부카리의 하디스가 만들어지기 거의 100년 전에 무함마드의 전기 ‘씨라툴 라쑬알라’를 최초로 펴낸 이븐 이스학(Ibn Ishaq)같은 비중있는 학자들의 자료에 의하면 무함마드는 이스마엘의 첫째 아들인 나빗(Nabit-느바욧)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자료는 모두 무함마드부터 이스마엘 까지를 25 세대로 그 족보를 소개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웹싸이트에는 30세대로 소개하는 곳도 있다) 무함마드는 주후 570년에 태어났으며 아브라함은 주전 2000년 전 사람이다. 그 두 사람 간을 연결하는 인물들이 본인들을 제외하면 23명이라는 족보는 누가 봐도 약 2570년간을 채우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은 하디스에 무함마드가 자신의 근본에 대해서 설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자기(무함마드)는 무다르(Mudar)의 후손이며 그것은 지브리일(Gibriil) 천사가 자기에게 가르쳐 주었다’고 했다는 점이다. (Ibn Sa'd, Kitab al-Tabaqat al-Kabir, Volume I, p. 4) 무함마드 자신도 몰랐고 그 조상들에게 전해들은 것도 아니고 자신의 가문이 간직하고 있었던 족보에 근거한 것도 아니며 다만 천사가 말해주었다는 아무도 입증할 수 없고 증거도 찾을 수 없는, 계시를 빙자한 무함마드 개인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그것을 근거로 부카리의 하디스에 보면 무함마드가 키나나(Kinana)의 아들 나드르(Nadr)의 자손 무다르(Mudar)의 종족에 속하였다고 말했다고 기록하고 있다.(Sahih al Bukhari, volume 4, Book 56, Number698) 물론 후대 사람들은 이들의 이름을 무함마드의 족보에 포함시켜서 명단을 만들어 낸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슬람 이전의 문헌에는 이스마엘과 무함마드가 혈통상으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증명할 자료가 없다. 이는 모두 이슬람 이후에 무함마드가 했다는 말을 수집하여 엮은 하디스에 근거를 두고 만들어진 것인데 그 하디스라는 것들이 무함마드가 죽은 지 약 200년 후부터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죽은 지가 200년이 넘은 사람이 살았을 때 했다는 말을 수집했다는 것의 신뢰도가 어느 정도나 될까를 상상해 보기 바란다. 그래도 무슬림들이 경전처럼 여기는 부카리의 하디스에서는 종종 황당한 기사들이 발견되는데 예를 들면 ‘지구 상의 최초의 성전은 메카의 카아바 신전(Masjid ul Haram)이고 두 번째 성전은 예루살렘 성전(Masjid al Aqsa)인데 그 두 건축물 사이의 역사적인 간격은 40년 이라는 것이다.(Sahih al Bukhari Volume 4 Book 55 number 585) 카아바 신전이 자기들 말로는 이브라힘과 이스마엘이 건축했다면 주전 1950년 경에 건축했다는 말인데, 무함마드가 주후621년 어느 날 밤중에 천마(天馬)를 타고 방문했다는 예루살렘 성전(Masjid al Aqsa)과 역사적 차이가 40년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때 예루살렘 성전은 주후 70년 로마의 디도(Titus)장군에 의해서 파괴되어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무함마드는 거기 가서 선지자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고 주장하기에 예루살렘 성전은 오늘날 이슬람의 성지가 되어 있는 것이다.(꾸란17:1 참조) 이슬람의 제2경전이라고 하는 부카리의 하디스가 이 정도 수준이라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이슬람은 아브라함의 종교가 아니라 무함마드가 속했던 꾸라이시(Quraish) 종족의 신 알라(Allah)를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한 신으로 교묘하게 둔갑시키기 위하여 아브라함의 이름을 메카로 끌어들여 그가 자신의 서자인 이스마엘과 함께 카아바 신전을 건축했다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 무함마드가 창시한 종교인 것이다. 그러기에 전에는 이슬람을 마호메트교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슬람이 아브라함의 종교라는 근거 없는 비성경적 말을 함으로 본의 아니게 그들의 거짓말을 홍보해주는 어리석은 행위는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 기고/강연
    • 강연/특강
    2016-05-27
  • 이슬람(1)
    (이 글은 5월 25일(수) 거제교회에서 개최된 제1회 부산이단대책세미나 강의안입니다.) 이슬람 ▲ 이만석 목사 (현. 한국이란인교회 담임, 4HIM 대표) 1. IS는 가짜 이슬람인가? 최근에 이라크의 순니파 무장단체인 소위 이슬람국가(IS)의 잔혹한 만행으로 온 세상이 놀라고 있다. 한남동 이슬람 사원의 이주화 이맘은 IS 때문에 이슬람의 이미지가 나빠지자 서둘러 조선일보를 통해서 인터뷰 기사를 내면서 선긋기에 나섰다. 한마디로 IS는 “자신들의 목표를 위해 이슬람의 얼굴로 가장한 자들”이며 가짜 무슬림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견해는 매스컴을 통해서 대부분의 서방세계 정치인들의 입을 이용하여 대중에게 여과 없이 홍보되고 있다. 심지어 교황청 국무장관 안드레아 토르넬리 추기경은 이태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근에 발생하고 있는 중동의 기독교인들 살해 현상은 이슬람과 기독교간의 충돌이 아니라 개인적인 폭력”이라고 말했다.(Vatican Insider 2014.8.26.)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만일 그들이 가짜 무슬림들이면서 이슬람의 이름을 사칭하여 명예를 실추시켰다면 왜 세계적인 집단 시위가 일어나지 않고 잠잠할까?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이슬람의 경전 꾸란을 한 권 태우겠다고 했을 때 온 세계의 무슬림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며칠간 쉬지 않고 시위를 벌였었고 이로 인한 진압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었다. 아프가니스탄의 바그람 공군기지의 꾸란 소각 사건이나, 미국에서 별로 인기가 없어 관람자가 거의 없었던 “순진한 무슬림”이라는 짧은 영화가 무함마드를 조롱하는 내용인 것이 발견되었을 때도 세계적인 무슬림들의 폭력시위가 일어나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분노한 시위대가 리비아의 미국 대사 및 대사관 직원들까지 살해했었다. 꾸란 한 권 태우는 일이 이슬람의 명예를 얼마나 실추시켰을까? 만일 이슬람이 참으로 평화의 종교라면 IS처럼 이슬람의 이름으로 수천 명의 생명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것이 더 이슬람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국의 한 무슬림이 신문에 인터뷰 한 번 하는 것으로 그 모순을 뒤집으려 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행동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편 세계적인 집단시위가 일어난다는 것은 몇몇 사람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각국에서 이슬람 성직자들의 선동과 동원이 없으면 세계적인 집단시위는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런던 시내에서 나이지리아계 영국 시민권자인 ‘아데볼라요’라는 무슬림 청년(28)이 영국 군인 릭비(25)를 차로 들이받은 후 칼로 난자하고 참수하면서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다)”를 외치며 자랑스러운 듯 행인들에게 사진을 찍으라고 포즈를 취했다는 것은 꾸란을 한 권 태우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이슬람의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킨 너무 유명한 사건이지만, 이로 인해 세계적인 무슬림들의 폭력시위가 있었다는 것은 들어본 일이 없다. 이슬람의 율법에서는 이슬람을 보호하기 위한 폭력, 혹은 배교자를 대상으로 하는 폭력은 처벌받지 않는다. 이슬람의 명예를 위해서 혹은 무함마드를 모독하는 자를 살해하는 행위 등은 정당화 된다. 심지어는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느라 정부가 집행하지 못하고 있는 이런 행위를 감행한 담대한 무슬림들에게는 격려 차원에서 상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이것은 비단 이슬람 국가 혹은 샤리아(이슬람 율법)로 통치되는 지역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무슬림들이 소수인 지역에서도 이슬람의 성직자에 의해서 “살해하라”는 파트와(종교적 명령)가 떨어지면 알라의 이름으로 그 명령을 집행하려는 철저히 헌신된 무슬림이 언제든지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시각에 대해서 분노하는 무슬림도 있을 것이고 이런 견해를 부인하는 온건하고 순진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집트 꼽틱 기독교 사제 ‘자카리아 보트로스’라는 사람의 예는 이것이 사실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방송을 통해 이슬람의 경전 꾸란의 허구와 모순을 정확한 이슬람 내부 자료를 근거로 밝히고 있기에 그 방송을 보는 많은 무슬림들이 타종교로 개종하거나 이슬람에 회의를 품게 되는 현상이 퍼지게 되었다. 이에 이슬람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알카에다는 그를 살해하는 사람에게 미화 6천만 불의 현상금을 지급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미국 정부가 이슬람 테러단체 알카에다의 수장 빈 라덴에게 걸었던 현상금 5천만 불보다 20%나 더 큰 금액이다. 또한 ‘악마의 시’라는 글로 이슬람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영국 작가 ‘살만 루시디’의 목에 걸린 현상금은 150만 불로 시작해서 300만 불까지 치솟았지만 자카리아 보트로스에 비하면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들은 언론 출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미국과 유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이슬람을 모독했다는 죄목을 붙여 살해를 명하면서 상금을 주겠다는 것은 누가 봐도 테러를 사주하는 행위다. 알카에다는 국제법을 무시하는 테러집단이기에 그럴 수도 있다고 치부하더라도, 살만 루시디를 살해하는 자에게 상금을 주겠다고 한 것은 호메이니의 명을 받들고 있는 이란 정부였다. 이란 뿐 아니라 이슬람권에서는 테러범들에게 자금을 지원하거나 영웅 대우를 함으로 테러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온 세계를 경악시킨 9.11테러를 사주한 빈라덴은 이미 죽었지만 지금도 이슬람권의 영웅으로 존경받고 있고,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었다는 이유로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을 암살한 살해범 ‘칼레드 이슬람볼리’의 이름은 테헤란에 한 거리의 이름으로 명명되었으며, 그가 옥중에서 부르짖는 사진을 넣은 기념우표까지 발행되었다. 그러나 굳이 상금을 걸거나 영웅 칭호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이슬람, 꾸란, 알라, 무함마드 등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한 이슬람 성직자가 그를 살해하라는 파트와(종교적 명령)를 선포하면 충성된 무슬림에 의해서 언제 어디서나 살해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사실 세상에는 테러와는 상관이 없는 수많은 무슬림들이 평화스럽게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이슬람이 평화의 종교’이므로 테러와 관련짓지 말라고 강변한다. 설사 무슬림들이 모두 테러범은 아니더라도 세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테러는 무슬림들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권에 살면서도 이슬람의 경전 꾸란에 심취하게 되면 꾸란에 기록된 이교도들에 대한 증오 개념에 세뇌되면서 돌발적 테러범이 될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외로운 늑대’형 무슬림 테러를 수사하면서 벽에 부딪히는 이유는 그들이 현존하는 어떤 테러단체와의 연관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테러를 범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의 핵심은 정치인들이 전문가들의 조언을 통해서 테러의 원인은 바로 이슬람의 경전 꾸란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세계 인구의 20~25%를 점하고 있는 무슬림들의 분노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별 수 없이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지만 꾸란의 평화적 가르침을 오해하고 있는 일부 몰지각한 테러범들이 문제다’는 견해를 고집하게 된다. 이것을 서양에서는 ‘정치적으로 수정된 견해(Politically corrected opinion)’라고 부른다. 종교에 관심이 없는 대부분의 순진한 대중은 계속해서 매스컴을 통해 귓전을 때리는 이런 왜곡된 견해를 보편적 정설로 이해하게 된다는 점이 답답하다. 소위 평화주의 무슬림들은 이런 순진한 정치인들이나 매스컴을 이용하여 이슬람을 계속 평화의 종교로 믿도록 강요하는 한편, 이슬람의 정체를 알고 그들이 숨기고 싶은 혐오스런 참모습을 밝히는 사람들은 소위 증오법 혹은 차별금지법 등으로 묶어서 처벌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이미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유럽에서 성공을 거두어 유럽인들은 이슬람에 대해서 부정적인 표현도 못하고 처벌이 무서워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슬람의 지상목표인 ‘샤리아로 다스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원리주의자들의 폭력과 평화주의자들의 거짓은 무슬림들의 가장 강력하고도 효과적인 무기다. 이들은 공동의 지상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서로를 비난하는 척하며 적당히 역할분담을 한다. 즉 IS처럼 과격한 무슬림들은 무함마드가 보여준 행동모범과 꾸란의 명령을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감히 접근이나 간섭을 못하도록 가능한 한 잔인한 테러를 자행하고 대중매체를 통해서 동영상을 공개하여 대다수의 소심한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다. 이는 꾸란에도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다. 믿는 자들이여! 너희가 얼마나 잔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네 이웃의 불신자들과 싸우라. 알라는 항상 의로운 자들 편이시라는 것을 알라.(꾸란9:123) 이는 전쟁터에서 무장하고 대치하고 있는 적들과의 전쟁이 아니라 이웃에 살고 있는 불신자들, 즉 이슬람 이외의 종교를 믿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테러를 사주하고 있는 구절이다. IS는 바로 이런 꾸란의 명령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강대국들이나 알라의 법을 모르는 무지한 백성들의 눈치를 본다든지 체면이나 여론 때문에 망설일 필요가 없다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명백하게 기록된 창조주의 말씀인 꾸란의 명령대로 실천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행위라는 종교적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소동이 사라지고 종교가 모두 알라의 이름으로 통일될 때까지 그들과 싸우라.(꾸란8:39) 여기서 소동이라고 번역된 아랍어 피트나(fitnah)는 최영길 교수가 한글로 꾸란을 번역하면서 “알라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각주를 달았다. 전체적으로 이 구절은 지구상에 무슬림 아닌 사람이 한 사람도 남지 않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으면 죽여야 한다는 이론이 도출되고 이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현상이다. 어떤 죄를 짓거나 그들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았더라도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고 다른 종교를 고집한다는 것만으로도 핍박과 살해의 정당한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꾸란9:5, 꾸란5:33 등 참조) 소위 평화를 사랑하는 무슬림들도 이들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이슬람 학자들이라면 부인할 수 없는 만쑤크(Mansukh)교리에 의해서 이미 취소된 평화로운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라고 믿도록 많은 홍보비용을 투자하여 미화된 거짓을 퍼뜨리고 있다. 그러나 그 우두머리들은 같은 목적의 성취를 위해서 서로 역할만 분담할 뿐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고 배후에서 서로 돕고 있다. 이것도 정확하게 꾸란에 명시되어 있다. 꾸란은 무슬림들이 비무슬림들을 친구로 삼지 못하도록 명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보호와 유익을 위해서는 허락한다는 것이다.(꾸란3:28) 그 한 예를 들어보자. 압둘 라흐만 알 아무디는 클린턴 대통령의 자문 위원이기도 했으며 9.11 테러 후에도 워싱턴 국립 대성당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기도회 때 강사로 초청받을 정도로 평화를 사랑하는 무슬림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런데 그가 테러집단으로 알려진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후원한다는 것과 모금을 하여 불법 송금한 것이 발각되어 2004년 재판을 받고 미화 75만 불 벌금과 23년 형을 받고 수감되어 있다. 겉으로는 평화를 외치지만 뒤로는 서로 돕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표면상 미국과 공조하는 것처럼 보여도 테러범들에게 가장 많은 송금을 하고 있다는 것이 위키리크스를 통해서 이미 폭로되었다. 이슬람 국가 IS(Islamic State)는 이름 그대로 이슬람의 경전 꾸란과 무함마드의 행동모범을 근거로 만들어진 샤리아를 철저하게 지키는 무장 단체로서 이슬람의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선포한 가장 이슬람국가 다운 이슬람국가이며, 이것에 매력을 느낀 충성되고 헌신된 무슬림들이 세계 각국에서 모여들고 있다. 그들에 의해서 잔혹하게 고통 받으며 살해되고 있는 기독교인들과 비무슬림들을 지켜주고 보호하는 일을 위해서 물론 국제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힘을 모아야 하겠지만 우선 하나님의 보호를 간절히 구하는 일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2. 할랄 산업 육성 정책을 반대하는 열 가지 이유 우리는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애국 국민이라는 사실에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며 국민들에게 행복을 주는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대통령의 노력을 적극 지지하며 감사하게 생각한다. 정부 정책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반정부 세력과 동일시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리 가족들과 국가 안보를 위해서 그리고 후손들의 행복을 위해서 정부의 할랄 산업 지원 육성 정책을 폐기할 것을 촉구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아래와 같은 심각한 문제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할랄이라는 것은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 의해서 “허용한다”는 뜻이다. 즉 해도 좋다는 것이지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을 “와집”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에 의하면 고의가 아니고 모르고 먹었거나 어쩔 수 없어서 먹었을 경우는 알라께서 용서하신다(꾸란6:145)고 한다. 그러므로 할랄 인증만 받으면 17억 무슬림들의 식료품을 공급하게 되어 일확천금을 할 것처럼 홍보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행위다. 둘째, 할랄 고기는 몇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하는데 첫째는 무슬림이 도축해야 하며 둘째는 도축할 때 반드시 아랍어로 “비스밀라(알라의 이름으로)”라고 외쳐야 하며 셋째 짐승이 죽을 때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방향으로 머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그리고 부차적으로 죽은 고기, 피, 알코올 성분, 돼지고기 등을 먹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위생과 전혀 관계가 없고 건강이나 웰빙과도 전혀 관련이 없으며 다만 이슬람의 율법을 준수하는 것만 중요하다. 오히려 할랄식 도축은 매우 비위생적이다. 왜냐하면 짐승의 목을 반쯤 잘라놓고 피가 쏟아지는 채로 공중에 매달아 놓아 고통스런 짐승이 버둥거리는 동안 피가 사방으로 튀기 때문이다. 아무리 위생적인 도축장을 건설했어도 비무슬림이 도축을 한 것은 할랄이 아니다. 이를 “청결하고 안전한 먹거리”라고 홍보해 주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셋째, 일반 도축은 전기충격으로 기절시켜놓고 짐승을 잡기 때문에 짐승이 전혀 통증을 못 느끼면서 죽지만 할랄 도축 방식은 피를 먹지 말라는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짐승의 모든 감각이 정상인 상태에서 목뼈를 건드리지 않고 혈관과 식도와 기도를 자르고 거꾸로 매달아 놓는다. 그래야 심장의 펌프 작용으로 피가 분출되기 때문이다. 짐승은 거꾸로 매달려서 피를 분출하면서 모든 감각과 의식이 정상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죽는 그 순간 까지 몇 분간 극도의 고통과 분노와 스트레스를 느끼면서 죽어간다. 이 때 짐승의 체내에서 인체에 해로운 독성이 생성될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숨기면 안 된다. 이는 동물을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면 안 된다는 현행 동물보호법에도 저촉되는 범법행위임에 분명하다. 주로 할랄 고기를 섭취하는 이슬람권의 평균 수명이 타문화권보다 짧다는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심지어는 1인당 국민소득 9만 불을 훌쩍 넘은 카타르도 평균 수명은 3만 불도 채 안 되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짧다는 것은 결코 기후 문제로만 돌려서는 안 되며 음식 문제도 분명 관련이 있다고 본다. 넷째, 할랄 도축장을 건설하는 것은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할 문제가 아니다. 현재 할랄 고기의 대부분은 호주에서 수입한다. 그런데 호주산 쇠고기와 한우의 가격은 가격 경쟁이 안 된다. 등심을 기준으로 볼 때 2015년 초 축산협회의 조사에 의하면 호주산은 Kg 당 21,000원 이지만 한우는 34,000원이다. 한우를 도축할 때 할랄 도축사를 고용하고 할랄 관리인을 고용하면 인건비가 추가 부담되어 할랄 한우 값은 추가 상승요인이 있는 반면 호주산 쇠고기는 한국:호주 FTA에 의해서 관세를 매년 2.6%씩 인하하여 앞으로 15년 후면 관세가 완전 철폐되므로 가격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 할랄 도축장을 건설하면 그 비싼 한우 할랄고기를 누가 사먹을 것인가? 무슬림들 대상이라면 현재 수입하고 있는 호주산으로 충분하며 무슬림 관광객들이 대거 유입된다 하더라도 비싼 할랄 한우를 먹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므로 이는 시장 조사와 수지 타산을 정밀 조사하여 개인과 업체가 결정할 일이지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재 30여 곳 있는 도축장도 20여 곳으로 통폐합하는 형편인데 할랄 도축장을 다시 만든다는 것은 결코 지혜로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섯째, 할랄 도축장에는 무슬림들만 근무해야 하기 때문에 잘 훈련된 할랄 도축사들을 수입해 와야 한다. 영국도 파키스탄 할랄 도축사들 5천명을 수입했다고 한다. 이들은 이슬람 율법에 철저한 원리주의자들일 가능성이 크므로 지역주민들과 필연코 마찰이 발생할 것이다. 이슬람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는 유럽의 경우를 반면교사로 삼아 철저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여섯째, 할랄 인증에 소요되는 비용을 정부가 지원한다는 것은 특정 종교의 율법을 준수하는 일을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종교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할 정부가 이를 지원하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으므로 금해야 한다. 일곱째, 이슬람 율법에 “나지스(Najis)” 개념이 있는데 이는 더럽다는 뜻이다. 비무슬림들은 더럽기 때문에 상종하면 안 된다는 이슬람의 율법이며 비무슬림들이 만진 물건도 더럽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할랄 도축장에서 5Km 반경 내에 돼지 도축장이 있으면 안 되고, 비할랄 식품과 함께 운반해도 안 되고, 비할랄 식품을 조리하던 도구를 사용하여 요리해도 안 된다는 개념이다. 이는 무슬림이 아니면 더러운 존재들이라는 이슬람의 배타적 교리 때문에 그렇다. 이는 비단 음식의 문제뿐만 아니라 사람도 무슬림들은 할랄(허용된 것)이고 비무슬림들은 하람(금지된 것)이라고 한다. 무슬림들 여성들(할랄)이 비무슬림 남성(하람)과 결혼하는 것은 금하며 그를 이슬람으로 개종시켜야 결혼이 허용(할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무슬림들이 음식과 식자재만 할랄로 만들어 팔면 된다는 생각은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는 한 헛된 망상에 불과한 것이다. 여덟째, 할랄 인증에 소요되는 비용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국민의 세금으로 이슬람을 확산시키기 위한 포교 자금 혹은 이슬람 테러 자금을 지원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2011년 1월 5일 미국 기독교방송인 CBN은 70억불 규모의 프랑스 할랄 산업의 60%가 테러 단체로 잘 알려진 무슬림 형제단에 속한 기관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방송했다. 아홉째, 이슬람의 할랄 규정은 세계적으로 통일된 것이 없다. 국가마다 그 기준이 다르고 한 국가에서도 인증기관마다 기준이 다르다. 어제 있었던 할랄 기준도 무프티(Mufti)급의 성직자가 파트와(Fatwa)를 선언하면 언제든지 없어질 수도 있고 새로 생길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가변적인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 돈을 투자하면서 동분서주하는 행위는 결코 지혜로운 일이 아니다. 열째, 일반적으로 무슬림들은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원리주의 무슬림들은 샤리아로 통치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투쟁하고 있다. 오일 달러를 이용하여 샤리아의 영향력을 키우려 하는 것이 이슬람 금융 및 쑤쿠크(이슬람 채권)라고 한다면 음식을 통해서 샤리아의 영향력을 키워나가는 것이 할랄 확산 전략이다. 할랄 인증을 받은 회사의 경영진은 많은 돈을 투자해서 어렵게 받은 할랄 인증인데 혹이라도 직원들 중의 한 사람이 이슬람 율법을 어기는 것이 할랄 관리자들에게 발각되어 인증이 취소될 것이 두려워 직원들에게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 준수를 강요하게 된다. 따라서 한국인들이 보편적으로 즐기는 소주와 삼겹살도 회사를 해롭게 하는 준범죄행위로 취급되므로 화기애애한 직장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할랄 장려 및 인증 비용 지원 정책은 식품산업 세계화를 통한 기업의 경쟁력을 키워주기 위한 경제 활성화의 일환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할랄 산업이란 이슬람의 율법인 샤리아를 지키게 하기 위해서 음식으로 그 영향력을 키워나가는 이슬람 포교 전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는 유럽의 경우를 보건대 국가적 불협화음의 불씨가 될 것이다. 무슬림들이 급증하고 있는 유럽에서는 자경단을 조직하여 샤리아로 통치하는 지역이 프랑스에만 750곳 있으며 샤리아로 재판하는 재판소가 영국에만도 85개소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스웨덴에도 무슬림들이 완전히 접수하여 샤리아로만 통치하는 지역이 55개소 있으며 이 지역에서는 무슬림 자경단이 정부경찰을 공격하고 접근을 금지시킨다고 한다. 이는 유럽의 무슬림들이 특히 악해서가 아니고 유럽인들이 무슬림들에게 복지혜택 제공을 소홀히 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다만 이슬람의 경전의 가르침이 배타적이고 폭력적이기 때문에 충돌은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므로 할랄 전략을 통한 이슬람의 율법 샤리아의 영향력 확대는 한국의 보편적 미풍양속과 심각한 마찰을 일으키게 될 것이 확실하다. 이런 일에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국민으로서 결코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킬 수는 없다. 우리는 모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유민주주의를 향유하며 후손들이 평안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물려줘야할 사명이 있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서 정부가 정책적으로 할랄 산업에 지원하는 것을 당장 포기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 3. 일년에 한 번은 이슬람에 대해서 설교하라 2015년 말 현재 한국에 이주 노동자들이 60만명을 넘어섰고 노동 외의 목적으로 거주하는 외국인들까지 합하면 170만명을 넘는 외국인들이 우리 주변에 들어와 함께 살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혹자는 말하기를 이들을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큰 비용들이지 않고 선교할 수 있는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기회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문화충돌의 위기를 말하기도 한다. 굳이 어떤 예를 들지 않더라도 세상에는 다양한 문화가 있고 각 문화권마다 특색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아주 사소한 문제가 큰 피해를 불러올 수가 있다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 중에도 이슬람권에서 온 근로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매우 특별한 문화적 습관이 있기 때문에 제대로 알고 접근하지 않으면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것이다. 유럽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즉 이슬람이라는 문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제 와서 곤혹을 치르고 있으며 심지어 스위스에서는 모스크에 첨탑 시설을 금지하자는 안건을 국민들이 서명운동을 벌여 국민투표로 통과시켰고, 프랑스에서는 여인들의 몸 전체를 가리는 부르카 착용을 금하며 이를 어기는 사람에게는 벌금을 물리는 등 이슬람을 제재하는 법을 만들고는 있지만 이는 사후 약방문일 뿐 근본적인 대책은 미리 세웠어야 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유럽뿐만 아니라 이슬람이 들어가는 곳은 어디서든지 범죄가 증가하고 사회 분열이 일어나고 폭력과 테러 사건이 난무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사실 유럽은 기독교 문화가 오래 전부터 정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이 제도적으로 적용되고 있어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였다. 그래서 소위 “똘레랑스(관용)”정신이 사회 전반에 스며들어 있었기에 다른 문화에 대한 관용은 선진국 사람들로서의 성숙한 인격의 상징이라는 것이 사회적 통념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산업혁명과 기술과학 발달로 경제가 급성장하다보니 노동인구가 부족하게 되어 가장 가까운 북아프리카에서 값싼 노동력을 받아들이는 정책을 채택했다. 무슬림들은 본국에서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던 사람들이었기에 처음에는 유럽의 풍요를 체험하면서 그저 유럽에 거주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무슬림들의 숫자가 많아지자 태도가 달라지면서 무슬림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집단행동을 일삼아 사회적인 불협화음이 심화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1부4처를 인정해 달라든지, 학교식당에서 할랄 음식을 급식하라든지, 이슬람을 모독하는 자를 처벌하라는 법을 제정해 달라는 등 ... 이런 끈질긴 집단 시위를 통한 요구로 영국에서는 이미 각 도시에서 샤리아 법정이 85개나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들을 연구 분석한 독일의 메르켈 총리, 영국의 캐머런 총리, 프랑스의 싸르코지 전 대통령은 이구동성으로 이슬람 때문에 다문화 정책이 실패했음을 선언했다. 그런데 사회복지가 발달된 선진국에서 이슬람 때문에 실패했다는 다문화 정책을 대한민국 정부가 맹목적으로 따라가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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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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