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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자전거 로망
    자전거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확 트인 강가에서 산들산들 봄바람을 맞으며 아이들과 나란히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었다.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했으며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매주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겠노라고 꿈꿨었다. 자전거만큼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저렴한 비용으로 최대의 즐거움을 누리는 이동 수단이 또 있을까? 어디든 달리거나 나아가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을 가장 건전하게 실현시킬 수 있는 수단이 자전거라고 생각해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 즐거움을 꼭 누리게 하고 싶었다. 첫째가 3-4살 즈음 페달을 혼자서 돌릴 수 있을 때 네발 자전거를 시작으로, 4명의 아이들 모두에게 비교적 성실하게 자전거를 가르쳤으며(물론, 이 부분은 대부분 남편이 담당했다.) 1년 정도 제주도에 살 때는 큰 애가 학교 갈 때를 비롯마트 갈 때도 자전거를 타고 가곤 했었다. 아주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면서 문득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자전거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첫째, “시선을 앞으로, 혹은 자연으로 돌릴 수 있어서 좋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 최근에 초등학교 앞에 가본 적이 있는가? 아이들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 앞에 가보면 아주 진기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삼삼오오 일렬로 모여 핸드폰 게임을 하는 장면이다. 학교 정문 앞이나 문구점 의자에 빼곡하게 앉은 아이들이, 손에 핸드폰을 들고 다 무언가를 하며 앉아 있다 태권도 학원, 피아노 학원 등의 차량이 오면 그제야 고개를 들고 후다닥 차를 탄다. 이런 아이들, 손바닥 세상에 머물러 있는 아이들의 시선을 어떻게 하면 돌릴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자전거는 아주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자전거를 타는 동안에는 시선이 앞으로, 더 나아가 자연에 머물 수 있기 때문에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볼 수 있다. 저 멀리 있는 산, 펼쳐져 있는 구름, 길가에 있는 가로수 등 무심하게 지나친 것들이 자전거를 타면 이미지로 박혀서 남는 경우가 있다. 자전거가 주는 묘한 매력이다. 둘째,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서 좋다.” 아이들에게 자전거는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이동 수단이다. 걸어서 갈 수 없는 거리도 자전거만 있으면 어느 정도까지는 충분히 실현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보잘 것 없는 일인 것 같지만 의외로 아이들에게 뿌듯한 성취감을 안겨다준다. 아이들은 부모의 도움 없이 먼 거리를 간다는게 힘든 일인데, 자전거는 이 어려움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끔 도와주면서 동시에 “어른들처럼 나도 해냈다” “혼자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한다. 어릴 때부터 쌓인 이 경험은 큰 자산이 되어 무슨 일을 하든 밑거름으로 자신이 될 것이다. 굳이 두 가지 이유를 들지 않더라도 자전거는 단순히 타는 그 자체만으로도 즐겁고 재미있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며, 상쾌한 날씨에 아이들 모두가 자전거를 스스로 탈 만큼 건강하게 자란 것도 감사하고, 자전거를 타면서 함께 웃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우리가 있다는 것도 더없이 감사했다. 자전거, 앞으로 더 많이 애용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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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1-10-22
  • [다음세대 칼럼]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지만 목사님은 믿습니다.
    제자녀석에게서 D.M(문자)이 왔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절 기억하실지는 모르겠습니다. 술 한 잔 하다가 예전에 이삭교회 수련회에 따라 갔다가 목사님이 제 발을 씻어준 게 기억이 나서 갑자기 연락을 드립니다. 저는 불교신자라서 예수님은 아직 믿지 않지만 목사님은 믿습니다.” 하나만 더 소개하고자 한다. “목사님 oo입니다. 친구랑 싸우고 주먹으로 유리창을 깨트려서 손에서 피가 날 때 내 손을 잡고 유리 조각 하나 하나 빼주신 것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연히 학교 앞을 지나가다가 학교를 생각하니 그때 일이 떠올라 소식 드립니다. 성공해서 찾아뵙겠습니다.” 학교에서 수많은 제자들이 지나갔다. 큰 사고를 쳐서 기억나는 제자부터, 존재감 없이 아주 착하게 성실하게 지나간 제자들까지 여러 부류의 제자들이 지나갔다. 수많은 제자들이 세상을 흘러가는 중에 잊지 않고 소식을 전해오는 제자들은 여러 사건 사고 속에서 함께 했던 제자들이 상당수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 순간 함께 했기 때문이다. 학교라는 곳은 문제학생들을 그렇게 반기지 않는다. 문제학생들을 부담스러워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이런 녀석들이 더 손에 잡혔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의리라는 이름으로 함께 밥 먹고, 함께 욕하고, 함께 공도 차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때는 몰랐다. 나는 그냥 이 녀석들이 좋아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냥 좋아해서 했던 그 시간이 훗날 녀석들에게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고 답을 주곤 한다. 결국 살아있는 교육은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보여주는 교육이 가장 힘 있는 교육이라는 것을 현장에서 깨닫곤 한다. 생명 있는 교사로, 부모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때 그 순간 같이 있는 것이다. 아이들도 안다. 자기들이 지금 온전한 모습인지 아닌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때 먼저 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들과 함께 해주는 것이다. 한 번은 교회에서 수요예배를 드리는데 예배당 뒷문이 슥 열리더니 우리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 하나가 예배당 안으로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걷는 것이 조금 수상했다. 교복을 입고 술 한 잔을 하고 비틀거리면서 예배당으로 들어온 것이다. 나는 얼른 제자놈을 부축해서 내 옆에 앉혔다. 그리고 곧 데리고 나가서 혼내 주려고 하는데 앞자리에 앉아 있는 권사님이 자꾸 뒤를 돌아보며 눈치를 주면서 얼른 데리고 나가라는 사인을 주는 것이었다. 나는 오기가 생겼다. 데리고 나가려다가 그냥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게 하고 그냥 재워 버린 후 예배가 다 마치고 데리고 나왔다. 물론 제자 녀석은 나한테 엄청 혼났다. 그날 제자 녀석을 끝까지 안고 있었던 것은 교회는 멀쩡한 사람만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제자놈처럼 비행을 일삼고, 사고를 치는 녀석도 올 수 있는 곳이 교회여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교회는 이런 아이들을 배척하려 한다. 그리고 그때 배척받은 아이들은 교회를 영원히 떠나게 된다. 이때 내가 안고 있었던 그 제자 녀석은 지금 훌륭한 교회의 리더로 자라 있다. 이 녀석도 같은 말을 한다. “목사님이 그때 나 안고 있는 바람에 내가 지금 여기 있게 된 겁니다” 그렇다. 다음세대 아이들은 하나님이 먼저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다. 그래서 무엇을 하기 전에, 보이는 우리가 먼저 신자됨을 보여야 한다. 아이들이 하나님보다 먼저 여러분을 믿게 하라. 거기에서 복음은 시작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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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22
  • [신앙교육 나침반]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 것
    코로나로 온 세상이 혼란과 두려움에 휩싸였던 2020년 9월 초순 질병관리청 정은경 청장은 “2020년 하반기 방역은 심리방역이 강조되어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2년째 우리의 일상을 마비시킨 코로나는 이제, 우리의 몸이 아닌 마음을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유연하고 순수한 아이들은 우리의 생각 그 이상으로, 코로나로 인해 잃어버린 것이 많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발생한 휴교, 외출 금지로 인해 아이들의 마음에 난 구멍은 점점 커져가고 있습니다. 자해, 자살과 같은 극단적 방식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우울감과 무기력 같이 침습력 강한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다음은 현재 아이들이 코로나 상황에 대해 느끼는 직관적인 생각 중 몇 가지를 김현수 박사의 「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 것들」이라는 책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밖으로 돌아다니지 말아야 한다. 학교에는 갈 수 없고 집에서 지내야 한다. TV시청, 인터넷 검색을 계속 하게 된다. 감염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집에 혼자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컴퓨터만 한다. 하루 종일 가족들과 한 공간에 있어야 한다. 부모님과의 관계가 힘들다. 전쟁이다. 거의 나는 암적인 존재이다. 부모에게 암적인 존재이다.> 아이들에게 코로나는 한마디로 ‘지옥’입니다. 이 아이들은 유일하게 대면할 수 있는 공간인 가정에서 ‘암적인 존재’(아이들의 표현)로 취급당한다고 생각하며 부모와의 불화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아이들은 삶에서 감사를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학교도, 가정도 아이들에게는 감사가 아닌 한숨과 원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는 부모세대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세대와 자녀세대 모두 코로나로 인하여 지쳐 있습니다. 서로를 따스하게 돌보고 관심 있게 물어볼 여유가 없습니다. 이러한 가정에 필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도, 온 가족이 환경을 초월하여 감사와 찬송드릴 수 있는 신앙의 힘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1620년 102명의 청교도들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험난한 항해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작은 목선에 몸을 맡긴 채 63일 동안 3,400마일(5,440km)의 멀고도 위험한 여정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마침내 꿈에 그리던 신대륙에 도착하였지만,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눈보라 치는 혹독한 추위와 질병, 굶주림, 원주민들의 냉대와 들짐승들의 위협 등 극심한 고통뿐이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청교도들이 이러한 고통의 순간마다 하나님께 감사와 송축을 올려드렸다고 합니다. 특히 그들은 여러 감사의 시 가운데 시편 100편으로 감사의 찬미를 드렸습니다. 그들의 감사와 찬미의 대상은 환경이 아닌 오직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를 지으시고, 자녀삼아주시고, 우리의 목자가 되어주시는 자체가 감사와 송축의 이유였습니다. 그러하기에 청교도들은 거센 파도가 휘몰아치고, 살인적인 강풍과 배고픔 속에서도 하나님으로 인한 감사를 올려드릴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 가정에게 가장 필요한 시간은, 험난한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를 지으시고, 자녀삼아주시고, 우리의 목자 되어 주시는 자체로 감사의 송축을 올릴 수 있는 시간입니다. 향기나무 교육개발원은 11월 8일 우리집 성경놀이터 지도자클래스를 통하여 교회가 코로나로 쓰러진 가정에 하나님으로 인한 감사와 송축의 생명에너지를 불어넣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전수해드립니다. 향기나무교육개발원에서 준비한 ‘처음 추수감사절로 떠나는 온 가족 감사여행’와 ‘베들레헴 마구간으로 떠나는 온가족 복음여행’을 통하여 귀 교회 가정이 잃어버린 감사와 송축이 회복되어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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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교육 나침반
    2021-10-22
  • [교사의 힘]예수님의 제자훈련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가장 중요한 사역은 제자훈련입니다. 예수님은 말로 하시지 않으시고 친히 3년을 그들과 동거동락 하셨습니다. 삶으로 가르치는 것은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사랑한다는 말 백 마디보다 한 번 햄버거를 같이 먹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교회는 말이 참 많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부터 사랑과 섬김의 이야기까지 다 좋지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교육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사역할 때 영어를 잘 못하시는 교사였지만 계속 지속적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고 함께한 그분의 사역이 연말에 가장 빛이 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이나 말이 아닌 지속적인 교사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사시면서 모든 결정과 행동의 가치를 하나님 나라에 두셨습니다. 그 삶이 약속을 이루어내신 십자가와 부활로 이어질 때 제자들은 뒤집어지고 목숨을 바쳐 교회를 세웠습니다. 우리도 삶으로 오늘도 말이 아닌 삶을 나누는 교육을 통하여 열매 맺는 가을이 되길 소망합니다. 교사는 주일사역이 아닙니다. 교사는 주중에 학생들과의 만남이 주일사역을 좌우합니다. 코로나시대에는 불편한 사람은 오히려 교사들입니다. 아이들은 이미 많이 익숙해져있습니다. 식사나 모임도 각자 집에서 간식을 앞에 두고 먹으며 교제가 가능합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방법으로 만남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만나야하고 시간을 함께 보내는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찾아가십시오. 함께하시고 코로나시대에는 영상으로라도 만남을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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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사의 힘
    2021-10-22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다양한 아이들을 위한 맞춤 양육의 어려움
    “엄마, 은샘이 이제는 도저히 안되겠어요. 혼을 내거나 벌을 세워야겠어요” “도대체 쟤는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요. 엄마가 막내라고 자꾸 이쁘다, 이쁘다 하니까 마음대로 하잖아요” 맞다. 둘째가 하는 말이 다 맞다. 내가 막내라고 많이 봐준다는 둘째의 항의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아이들을 낳아 기르다보니 태어난 순서도, 말하는 방법도, 하는 행동도 각각 다른 아이들을 향한 나의 사랑의 모양도 미세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발견한다. 가령, 첫째는 보고만 있어도 확실히 듬직하고 편안한 마음이 생긴다. 바쁜 아빠를 대신해 어렸을 때부터 엄마 일을 곧잘 도왔을뿐만 아니라 동생들을 돌보는 것도 늘 첫째 몫이었고, 중학생이 될 때까지 큰 사고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준 것도 그저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다. 둘째는 딸이라 그런지 옆에만 있어도 흐뭇하다. 물론 딸이라 감정을 읽어줘야 하고, 가능하면 부드럽고 다정하게 말을 전달해야 하는 부담감이 항상 있지만 이런 것만 제외하고는 둘째라서 자기 일 알아서 하고, 엄마 마음 잘 공감해줘서 참 흐뭇하다 . 셋째는 재미있다. 위로는 형과 누나, 아래로는 동생이 있어 단독적인 존재감을 잘 느끼지 못하는 셋째는 그래서 그런지 볼 때마다 재미있다. 재미있는 표정, 말투를 잘 지어서 재미있기도 하고, 자기 출생 상의 서열이 뭐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에 늘 최선을 다하는 모습 자체가 아직 재미있고 유쾌하다. 집에서 게임을 할 때보면 가장 치열하고 승부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또한 셋째 특유의 재미라고도 할 수 있다. 문제의 넷째가 이제 등장한다. 넷째는 그냥 넷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막내, 그냥 옆에서 살아 숨쉬기만 해도 듬직하고 흐뭇하고 재미있고 심지어 살아있는 인형같은 존재이다. 내 기억에 넷째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번도 몸을 꼿꼿이 세운 적이 없는 것 같다. 늘 허리를 반쯤 구부린 C자를 만들어 엄마에게 애교를 피우고, 울 때도 눈과 입은 웃고 있는데 슬픈 소리를 내는 것처럼 운다. 이렇게 세상 귀여움을 다 갖고 태어난 아이에게 엄마인 내가 자꾸 봐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수도 있다. 심지어 나는 애교라고는 전혀 없는 세상에서 가장 무뚝뚝한 장녀이기에 나와 전혀 다른 막내를 보면 그저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각기 다른 아이들을 향한 사랑의 모양은 조금씩 차이가 있을지언정 그래도 기본적인 사랑의 크기를 비슷하다. 첫째는 첫째대로 또 막내는 막내대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라 생각하고 사랑으로 아이들을 양육하려고 애쓴다. 그런데, 아이들이 다 다르다보니 특히 자기들 나름대로의 형제 내에서 서열도 있다보니 엄마인 내가 그 부분들을 민감하게 잘 다루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힘겨울 때가 많다. 첫째는 듬직한 대신 첫째라는 마음의 부담감을 갖고 있고, 둘째는 형제 중 유일한 딸이라 형제 중에서 정서적으로 소외되지 않아야 하고, 셋째는 존재감을 드러내기보다 여유를 가지며 생활해야 하고, 마지막으로 막내는 사랑과 집중을 이용하지 말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잘 키워야하는 엄마의 책임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육아는 과학적이며 사회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즉, 인간이 다룰 수 있는 모든 부분들을 살피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어떤 일보다 더 많은 이론적인 공부가 필요하고 실제적인 경험이 있어야 하며 영적으로 기도와 은혜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요즘, 막내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질타하는 나머지 아이들의 이유 있는 항변을 생각하며 나의 육아에 대해 반성하며 다시 힘을 내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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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1-10-01
  • [신앙교육 나침반]2022년에 우리교회는 ‘가정통합교회’다!
    가정통합교회는 명칭 그대로 가정과 교회가 통합이 된 모델이다. 교회와 가정이 한 팀이 되는 구조이다. 교회는 작은 교회로서의 가정이 모인 가정 공동체라는 점에서, 교회와 가정이 연합되어 나아가는 모델은 당연한 형태이다. 가정통합 교회에는 연령별로 운영되는 주일학교가 없으며, 여러 세대가 함께 예배하고 배우고 섬기고 교제한다. 연령 통합 사역은 세대 간에 의미 있는 관계 네트워크를 끊임없이 만들어간다. 경건한 아버지들은 불신 부모를 둔 자녀들의 멘토가 되어 이끌어주며, 경건한 어머니는 젊은 여성들의 멘토가 되어 그들의 성숙을 돕는다. 지금까지 대다수의 교회는 연령별 사역을 통하여 가정을 분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교회는 개인의 영혼구원과 훈련에만 집중하며, 이를 위해 목회계획을 세우고 실행하였다. 각각의 부서는 자체활동, 자체 커리큘럼, 자체 예산을 갖게 되면서 서로 비교하고 견제하며 운영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교회가 한 몸이라는 공동체적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성경은 결코 가족을 분리하지 않는다. 구약성경 말라기는 마지막 구절인 4장 6절에서 각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한지 강력하게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말라기의 마지막 메시지를 통하여 아버지의 마음이 자녀에게로 전해지고, 자녀의 마음이 아버지에게 전해져서 모든 세대가 함께 하나님을 따르기를 열망하신다.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의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는 말씀에서 ‘땅 끝까지’는 단순히 수평적 복음 전파의 의미만이 아닌, 세대 간 연결을 통한 수직적 복음 전파 명령을 내포한다. 가정통합교회는 부모세대와 자녀세대 간의 단절된 관계를 연결하여 천대까지 복음이 끊어지지 않고 전달되는 일에 최우선을 두며 달려간다. 부모세대들은 교회를 통하여 자녀들과 더 친밀하게 소통하며, 자녀들은 부모세대들과 깊은 교제를 나눔으로써 영적으로 성숙해진다. 가정통합교회는 어떠한 신앙교육 콘텐츠를 사용할까? 당연히 세대통합 형태의 신앙교육 도구를 사용한다. 기존에 대다수의 신앙교육 콘텐츠는 연령을 구별하여 분리하는 형태이다. 한 가족이 두 권에서 많게는 네 권 이상(장년용, 청소년용, 소년부용, 유년부용, 유아용, 영아용)의 다른 교재로 말씀을 배운다. 그러다보니 열심히 큐티하고 성경공부를 하였지만, 가정의 신앙교류는 점점 단절된다. 참 아이러니하다. 가족 세대 간의 영적 교류를 활성화할 수 있는 도구는 달라야 한다. 첫째, 연령분리형태가 아닌 세대통합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야 한다. 가정이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 진정한 연합을 경험하게하기 위해서는 세대통합을 위한 한 가지의 도구가 필요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은혜 받고, 아버지와 어머니도 은혜 받고, 자녀들도 함께 은혜 받을 수 있는 한 가지의 콘텐츠가 필요하다. 둘째, 경험중심, 놀이중심의 교육방법을 담고 있어야 한다. 부모세대의 신앙이 자녀세대로 막힘없이 전수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이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제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의 경험을 비유로 사용하셨다. 이처럼 부모들도 자녀에게 신앙을 전수하기 위해서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을 만들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 필요하다. 특별히 전 세대가 마주하며 공감할 수 있는 놀이경험은 세대 간의 벽을 무너뜨리고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게 만드는 최고의 방법이다. 향기나무 교육개발원은 2022년에 신앙의 교류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세대통합 콘텐츠인 ‘열두달 우리집 성경놀이터’를 제공한다. 이는 교회가 한 달에 한 번, 가족이 말씀 안에서 마주하여 생명 가득한 성경놀이를 경험하게 한다. 어떤 연령의 세대도 배재되지 않고 “놀다보니 하나님!”, “놀다보니 예수님!”, “놀다보니 성령님!”을 경험하며 자연스럽게 신앙전수가 되도록 하는 온가족 성경놀이 프로그램이다. 자세한 내용은 [우리집 성경놀이터 지도자 클래스]에서 소개된다. 코로나시대, 많은 교회가 2022년 목회비전의 중심을 ‘가정’으로 세우고, 성도들의 가정이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 생명의 하나 됨을 경험하는 성경놀이터로 서도록 지원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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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01
  • [다음세대 칼럼]목사님 빚 갚으러 왔습니다.
    L이라는 학생이 있었다. 함께 학교에서 성경 시간 강사로 섬기던 후배 전도사가 반찬통을 가득 채워 가지고 출근을 했다. ‘뭐냐’고 물었더니 L에게 줄 반찬이라는 것이다. 집에 부모님들이 다 안 계신 상황에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데 반찬 만드는 일이 가장 힘들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L과 좀 가까워진 다음에 집안 사정에 대해 물어보았다. 들어보니 많이 어려웠다. 할아버지의 부도로 모든 빚이 아버지에게 넘어와서 아버지의 월급이 차압을 당해 생활비를 거의 주지 못하신다고 했다.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 벌어지자 어머니는 이혼하고 다른 지역으로 가서 살고 계시고, 자신은 동생들을 데리고 살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직장일로 집에 가끔 들어오시다 보니 동생들을 돌봐야 하고 밥을 챙겨 줘야 하는데 반찬을 준비해서 밥을 해먹이고 하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라고 했다. 18살의 나이에, 학교에서 마음껏 뛰어야 할 남학생이 집에 가서 동생들 반찬해 줄 걱정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해보라.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서 학교 급식 도우미를 하며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L은 이런 상황 가운데에서도 절망하거나 낙심하지를 않았다. ‘목사님 해뜰날 있겠죠? 제가 빨리 자라서 동생들 잘 돌봐야 합니다. 그래서 빨리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대견스러웠다. 그래서 매월 내가 쓸 돈을 아껴서 용돈을 전해 주었다. 그렇게 L은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자신이 원하는 전공을 찾아서 전문대학에 진학을 했다. 몇 해 만에 L이 나타났다.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나타났다. 하고 싶어 한 요리 분야에 취직해서 셰프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학교 다니는 동안 용기 잃지 않도록 힘을 주어 고맙다며 취직 인사를 하러 온 것이다. 그리고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뭐냐?” “목사님, 첫 월급입니다. 목사님이 필요한데 사용해 주십시오. 조건이 있습니다. 목사님만을 위해 사용해 주십시오. 애들 돕거나 간식 사는데 사용하지 말고 목사님만을 위해 사용해 주십시오. 받았던 사랑에 비하면 많은 금액 아닙니다. 저의 마음이라 생각하시고 첫 직장에서 받은 첫 월급을 목사님께 드리겠다고 오래전부터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해주십시오.” 봉투를 열어보니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L에게는 큰돈이었다. “임마, 이거 너무 많다. 너 이거 있으면 동생들한테 좋은 옷에, 맛난 것들 맘껏 사줄 수 있을 텐데 이렇게 큰돈을 가져오면 어떻게 하냐?” “목사님, 저 원래 없이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아르바이트 해서 모은 돈들 있어서 사는데 지장 없습니다. 이제 목사님 걱정하실 정도 아닙니다. 그냥 목사님 그렇게 해주십시오.” “그리하마. 그리고 고맙다.” 나와 L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나는 L이 준 돈을 나를 위해 쓸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곳에 사용하고 싶어서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우리 학교 아이들 중 어려운 4명의 아이들에게 장학금으로 조용히 전달해 주었다. 학교에서는 모르는 일이다. L이 전해준 첫 월급 장학금을 받은 아이와 나만 알고 있다. L에게는 알려주고 싶었다. “L아, 네가 준 돈으로 내가 잘 썼다. 너무 아까워서 그냥 쓰기 아까워서 네 후배들 4명에게 나눠주었다. 너처럼 어려운 애들이 있더라. 그래서 힘내라고 하면서 전해 주었다. 혹시 아냐? 얘들도 나중에 너처럼 그렇게 첫 월급 가져올지..” 학교에서 때로는 나를 보면서 ‘내가 헛짓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문득 문득 들 때가 있다. 같이 근무하는 선생님들 중에 가끔 “목사님, 애들한테 그렇게 해 줄 필요 없습니다. 점마 저것들 은혜 모릅니다”라고 하는 분들이 있다. 그런데 나는 뭔가 돌아오기를 바라고 아이들을 대하지는 않는다. 그냥 내가 해야 할 일이기에, 목사로서 해야 할 일이기에, 크리스천으로서 그렇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배웠기에 여전히 나는 내 방법대로 살고 싶다. 나는 하루하루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 그래서 그 은혜를 나만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은혜가 우리 아이들 삶 속으로 흘러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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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01
  • [교사의 힘]테크닉이 아니라 삶으로 가르친다
    교회학교 교사는 자신의 힘과 지식으로 가르치는 자리가 아닙니다. 성경의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도 아닙니다. 우리는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엄청난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우리는 사역의 현장에서 체험합니다. 교사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붙잡혀야 큰 열매를 맺을수 있습니다. 오늘은 교사를 향한 잘못된 고정관념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교사는 모든 것을 알아야 하고 성경지식이 특출해야 한다. 교사는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교사가 모르는 부분은 솔직하게 모른다하며 진실된 모습만 보여주면 됩니다. 우리가 매번 가르치는 입장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배우기도 합니다. 2. 교사는 말을 잘해야 한다. 말을 잘하는 은사가 도움이 되지만 말만 잘하는 교사를 학생들은 따르지 않습니다. 행동과 지속적인 모습이 따라주지 않으면 절대 학생들은 그 교사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3. 교사는 잘 웃겨야 한다. 있는 그대로 모습이 더욱 좋습니다. 너무 애쓰고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를 더 하는 것이 역효과를 나타나게 합니다. 4. 교사는 무서워야 한다. 쓸데없이 무섭기만 한 교사에게 누가 마음을 열겠습니까? 권위는 그렇게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한 룰이 있는 것은 좋지만 그 누구보다 교사가 먼저 지켜야 합니다. 5. 아이들과 같아야 한다. 마음을 나누는 것과 아이들과 같은 것은 다르며 아이들은 친구보다 어른중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학생 편에 서서 오늘도 아이들에게 기운을 넣어주는 교사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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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01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얻는 것과 잃는 것
    솔직해 질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괜찮다고 아무리 주문을 외워도 눈 앞에 감당하기 어려운 어지러운 상황이 펼쳐져 있으면, 뒤돌아서서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해결을 위한 빠른 열쇠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솔직해 질 수 밖에 없는 경우에도 회피하고, 숨고, 외면하며 비겁한 모습을 보이는 나와 종종 마주한다. 특히, 아이와 관련된 일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 “엄마, 은율이 선생님을 만났는데 나보고 은율이 받아쓰기와 구구단을 가르치래” 아이들 방학이 시작되기 전, 둘째가 학교에서 오더니 나에게 다급한 일을 전하듯 헐레벌떡 거리며 말하는 것이 아닌가! 둘째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다급할 수 있는 일이다. 본인은 6-7살 때 한글을 다 알아서 1, 2학년 받아쓰기 할 때는 내가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알아서 다 했고, 구구단도 설렁설렁 외우면서 끝냈는데 동생은 2학년 1학기가 끝나가도록 학습적인 부분이 제대로 된 것 같지 않으니 충분히 놀랄 만하다. “엄마가 은율이 봐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네. 알았어. 엄마가 신경쓸테니까 걱정하지마” 그래, 이쯤이면 슬슬 펑크가 날 만도 하다. 셋째 은율이는 온갖 핑계를 대며 학교 공부 봐주는 것을 미뤄왔다. “12월 생이기에 조금 늦어도 괜찮다. 위에 형과 누나가 있는데 알아서 어깨 너머로 배우겠지. 또릿또릿해서 자기 알아서 다 할거야” 이런 말들이 주 핑계였다. 그 어느 말에도 “엄마인 내가 너무 여유가 없어서 못 봐주고 있다”나, “셋째까지는 도저히 신경쓸 수가 없었다” 등 나 때문, 나 책임이란 말을 할 수 없었다. 이유를 나에게서 찾는 순간, 즉 상황을 솔직하게 인식하는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껴야 하고 그러면 뭔가 총체적으로 복잡해질 것이란 생각에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이 4명을 양육하고 일 하면서, 사람들로부터 듣는 말 중 가장 자주 듣는 표현은 “아이 4명을 키우고 일도 하고 정말 대단해요”이다. 이런 말들을 들으면 사실 “아니에요. 아이들 양육도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해 곳곳에서 펑크가 나는데 그냥 모른 척하고 살고 있어요”라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은데, 그냥 씩 웃으며 못 들은 척 하고 만다. 우리나라의 많은 아동 전문가들이 아이가 1세부터 3세까지는 가능하면 주 양육자가 엄마가 되어서 안정적으로 양육하는 것이 아이의 평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단.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그렇게 키우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처해진 내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음은 잘하고 싶은데 많은 한계에 부딪혀 곳곳에서 구멍이 펑펑 터진다. 당연한 것이지만, 내가 아이들의 학업에 신경을 쓰고 집에서도 봐주면 별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 그럴 여유조차 생기지 않아 몇 개월 동안 놔두면 ‘알아서 잘 하겠지’라는 내 희망은 뿌연 연기처럼 사라지고 그 자리에 뜻하지 않는 문제들만 가득 있는 것을 본다. 그러면, 또 난 상황에 솔직해지지 않고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나 때문임’을 피하고 싶지만, 결국 문제의 해결은 ‘나 때문임’을 솔직하게 인정하는데서 시작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가끔, 이런 일이 발생할 때,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지금 나는 살아가면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고 있는가?” 지금 내게 주어진 여러 역할들을 감당하면서 분명 얻는 것이 있고, 잃는 것이 있을 것인데, 생각할 여유조차 없을 때는 하루하루 살아내기만 하다 만다. 하지만 내가 우선 순위를 바로 세우고 적절하게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할 때 비교적 모든 일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 감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나는 지금 주어진 일에 적절한 우선 순위를 정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도 이 질문을 대뇌이며 분주한 삶의 퍼즐을 맞춰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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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1-09-03
  • [다음세대 칼럼]기다림
    수업시간 아이들에게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세 가지로 정리해 보자.”하며 주제를 던졌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대체로 비슷하다. ‘가족, 친구, 돈’이 거의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간혹 의외의 답이 나오기도 한다. 다른 아이들보다 한 살이 많은 G였다. 전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다시 시험을 보고 우리 학교에 입학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공부와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살던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런 대답을 한 것이다. “첫째는 여친(여자 친구)이고, 둘째는 자존심이고, 셋째는…… 교회입니다.” “인마, 아부하지 마라. 교회는 무슨…….” “목사님, 아닌데요. 정말 교회 맞는데요.” “어째서 그러냐?”“먼저, 지금 제게는 여자 친구가 제일 소중합니다. 제가 지켜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남자입니다. 남자의 뽀대(자존심)는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소중합니다. 마지막으로 교회가 소중한 이유인데요. 저는 교회에 이제 세 번 가 봤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갔을 때 이상하게도 누군가 내 말을 들어 주는 것 같았고, 교회에서는 나를 이상한 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정겹게 자꾸만 웃어 주는 것 같았습니다. 또 교회 샘들이 나를 볼 때마다 등을 쓸어 주면서 이것저것 챙겨 주시는 모습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내 이름은 주로 ‘인마’ 아니면 ‘어이’나 ‘야, 새끼야’였는데 이름도 제대로 불러 주시고 말이지요. 그래서 지금은 교회가 소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왠지 따뜻한 느낌이 들어서요.” 아이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나 역시 웃었다. 물론 G는 교회에 꾸준히 출석한 것은 아니다. 나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만 교회를 찾곤 했다. 하지만 고비의 순간마다(술이 취했든 맨 정신이든)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었다. 그리고 이런 관계가 그에게 따뜻함을 주었던 것이다. G는 이제 군 제대를 앞두고 있다. 지난 12월에도 연락도 없이 음료수 한 통을 들고 학교를 찾았다. 나는 반가워서 꼭 안아 주었다. 그런데 녀석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며 휑하니 가 버리는 것이다. “목사님 생각나서 그냥 들렀습니다. 저 이제 부대로 복귀하는 길입니다. 얼굴 뵈었으니 바로 가겠습니다.” 나는 G의 뒷모습을 보면서 웃음을 지었다. 아이들은 큰 것만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도 감동할 줄 알고 귀하게 여기기도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 사람이 소중하다고 하면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나의 기준으로만 생각하며 상대방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것이 무엇보다 소중하기에 온 마음과 생각을 집중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른이나 아이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 대해 자신의 기준으로 평가하며 판단해 버린다. 우리는 ‘기다림’이라는 단어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면 결국은 제 위치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1~2년조차 기다리지 못하고 있다. 우리 하나님은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데, 우리는 너무 쉽게 아이들을 포기하고 판단해 버리는 잘못을 하고 있다. 동일한 질문을 내게도 해 보았다. 학교에 근무하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그중에 하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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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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