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7-30(금)

‘손원일 선교센터’ 경남 창원에 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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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 ‘젠더 갈등’ 심각성 점점 높아져

최근 들어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특정 성을 혐오하거나 차별하는 단어를 뜻하는 ‘남혐’(남자혐오), ‘여혐’(여자 혐오)이란 말을 심심찮게 들린다. 젠더 이슈 관련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올해 들어 우리 사회 내 젠더 갈등 이슈가 부상하고 있고, 특히 2030세대가 젠더 이슈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목회데이터연구소(대표 지용근)가 최근 [넘버즈] 103호에서 새롭게 사회 갈등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는 젠더 이슈에 따른 갈등에 대해 다뤘다. 지난 1년 간 젠더 관련 단어 중, ‘여혐, 남혐, 젠더 갈등’ 키워드의 언급량을 분석하고, 올해 초 3~4월의 재보궐 선거 시점에 맞물리면서 급격하게 언급량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여혐’이란 단어가 최근 1년간 언급량이 798,111건으로 가장 많았고, 여혐 언급량의 40% 정도 수준으로 ‘남혐’이 언급됐다. 월 검색량으로는 ‘남혐’이 5월 125,861건으로 최근 젠더 이슈가 증폭하고 있는 추세를 보여준다. 젠더 갈등 관련 언급량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온라인에서 젠더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의 젠더 갈등에 대해 국민 5명 중 3명 이상이 ‘심각하다’고 응답하며, 젠더 갈등이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성 차별이 심각한 곳으로 ‘직장’ 61%, ‘가정’ 35%, ‘학교’ 30%로 응답했다.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의 2020년 조사에서, 2013년 ‘남녀 갈등 심각하다’는 응답이 29%였으나, 매해 상승하며 2020년 46%로 크게 증가했다. 젠더 갈등을 느끼는 정도는 연령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심각하다’곡 응답한 비율이 ‘60세 이상층’은 50%, ‘20대’는 75%, ‘30대’는 76%로, 2030세대가 젠더 갈등의 심각성을 더 크게 느끼고 있었다. 또 앞으로 갈등의 심각성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영역에 대해 서울 시민에게 질문했을 때, 연령이 높을수록 ‘진보-보수 이념 갈등’이라고 응답한데 반해, 20대에서는 ‘남녀 갈등’을 1위로 꼽았다. 2030세대가 젠더 갈등에 민감한 것은 남녀 간의 사회경제적 차이의 원인에 대한 인식이 다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것은 가부장제와 성차별 때문’이라는 의견에 2030 여성은 대부분 긍정하는 반면, 2030 남성은 대부분 부정하고 있다. 또 ‘여성은 노력한 것에 비해 보상받지 못한다’는 의견 역시 2030여성은 동의하는데 비해 2030 남성은 동의하지 않았다. 청년세대(만15~39세) 남녀 모두, 자신의 성(性)이 더 불평하다고 응답하며 서로의 인식차이를 드러냈다. 지난 3월 발표된 여성가족부 조사 결과, ‘남성 청년(만15~39세)’의 52%가 우리 사회는 ‘남성에게 불평등하다’고 응답한 반면, ‘여성 청년’은 8%만 응답했다. 반대로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불평등하다’는 항목에 대해 ‘여성 청년’의 75%가 응답한 반면, ‘남성 청년’은 19%가 응답했다. 2030세대의 가장 큰 관심사인 취업에서 누구의 성이 유리한지를 질문했을 때, 각자 자신의 성이 취업에 있어 상대 성보다 ‘더 불리하다’고 응답했다. 또한 남녀 간 임금 격차의 공정성에 대해 ‘남성 청년층(20~30세)’은 53%가 ‘공정하다’고 응답했으며, ‘여성 청년층’은 18%만 공정하다고 응답했다. 사회 각 분야의 자리의 일정 비율을 기계적으로 여성에게 할당하는 제도인 ‘여성할당제’에 대해 2030세대 남성의 72%가 ‘반대한다’고 응답했고, 여성은 32%만 반대했다. 반면, 2030세대 여성의 68%는 여성할당제 도입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남성 29%만 찬성) 2030세대는 경력 단절 여성 지원이나 남성 군복무 보상에 대해서는 다른 성에 대해 유리한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남녀 모두 동의율이 높게 나타났다. 이는 사회적 희생이나 보호가 필요한 대상에 대해서는 성별과 관계없이 지원과 보상을 하는 것에 거부감 없이 동의하는 것으로 2030세대가 젠더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나 사회적 보호 필요시 다른 성을 적대하지는 않는 것으로 풀이된다. 2030세대에서 전통적인 가부장적 인식이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 ‘자녀 육아의 일차적 책임은 여자에게 있다’는 가부장적 성 역할에 대해 20대 남성 19%, 20대 여성 8%가 동의하며 남녀 모두 낮은 동의율을 보였다. 또 ‘가족 생계의 일차 책임은 남자이다’는 의견에 20대 남성 25%, 20대 여성 15%만 그렇다고 응답하며, 5060대와 큰 차이를 보였다. 목회데이터연구소는 “불평등한 남녀 관계를 규정했던 전통적 사고는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남녀가 취업, 임금 등과 관련된 문제로 충돌하고 있기 때문에 20대를 중심으로 젠더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며 “가뜩이나 취업이 어려운 시대 상황에서 취업 문제는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므로 갈등의 위험성이 크다. 그러므로 젠더 갈등은 무시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아직 교회는 페미니즘에 대해 인식이 높지 않아서 젠더 갈등은커녕, 여성의 문제를 아예 관심 밖의 주제로 여기는 상황”이라면서 “한국 교회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 교회에서 여성의 지위 문제에 대한 관심이 조조하다는 것이 의외이기는 하지만 이제 교회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회적 갈등이 교회적 갈등으로 번지기 전에, 아니 그 이전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의 반, 교회의 반 이상인 여성에 대한 존중을 위해서 교회는 여성의 문제와 젠더 갈등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동서대 인공지능 연계 콘텐츠 혁신인재 양성 사업 플랫폼기관으로 선정

동서대학교(총장 장제국)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원하는 ‘2021 인공지능 연계 콘텐츠 혁신인재 양성 사업’ 플랫폼 기관으로 선정됐다고 13일 밝혔다. 올해 처음으로 진행되는 이 사업은 문화예술 콘텐츠 분야에서 인공지능(AI) 기술의 활용과 연계를 통해 창의적 콘텐츠의 혁신인재와 잠재인력 양성, 현업인의 직무 전환 등 문화예술 콘텐츠 산업계의 디지털 전환을 위해 진행되는 사업이다. 이번 사업에 선정된 동서대는 SW중심대학사업단(단장 문미경)을 통해 SW전공 및 비SW전공자를 대상으로 단계적 SW기초교육을 제공하며 동시에 융합연계전공 운영을 통해 다양한 학제간 융합을 실현하고 있다. 특히 이 사업에서는 SW중심대학사업단과 AI공학, 빅데이터, AI콘텐츠 융합연계전공, 영상애니메이션학과, 방송영상전공, 뮤지컬전공의 융합교육을 통해 ‘AI 기술 기반 버츄얼 휴먼 활용 메타버스 실감 콘서트 프로젝트’를 연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사업 운영은 올해 12월 10일까지이며, 총 예산 4억 8천만 원을 지원받는다. 협력기관으로 그래픽 AI 전문기업인 ㈜펄스나인(대표 박지은)과 함께 하며, 문화예술 콘텐츠기획과 제작실습, AI 연계교육, 프로젝트 지원 교육과정을 통해 라이브 A.Idol XR(Extended Reality) 공연이 최종 산출물로 나오게 된다. 이는 11월 동서대학교 센텀캠퍼스 소향뮤지컬 씨어터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사업의 책임자인 김기홍 SW융합센터장은 “창의 융합적 혁신 인재를 양성하는 목표가 이번 사업의 취지와 부합해 그 의미가 크다”며 “교육기간 동안 인공지능을 이용해 실사와 같은 가상 아이돌을 제작하고 인공지능으로 작사 작곡을 하여 실제 뮤지컬 공연장에서 실제 배우와 가상 배우간의 메타버스 뮤지컬 공연을 선보이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뮤지컬, 방송, 컴퓨터그래픽, AI 기술의 지금까지는 별개의 영역으로 존재했던 각 분야 간에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혁신 인재들을 배출하여 4차 산업혁명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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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풀어주신 사랑에 보답하는 부산CBS가 되겠다”

부산CBS 제30대 박창호 본부장의 취임예배가 7월 2일 거제교회 드림센터 2층에서 진행된다. 박창호 신임 본부장은 1991년 4월 1일 CBS에 입사해 2012년과 2018년 부산CBS 보도제작국장, 2014년 울산CBS 보도제작국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제3영도교회를 출석하고 있다. 취임식에 앞서 29일, 부산CBS에서 박창호 본부장을 만났다. Q. 부산CBS 신임 본부장에 선임되신 것을 축하드린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린다. A. 부족한 점이 많은 제가 부산CBS 본부장, 대표라는 막중한 자리를 맡게 돼 두려움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하나님께서 제게 허락해주신 1년 남짓한 시간동안 부산CBS 책임자로서 최선을 다해 지역 사회에서 공의로 바로 서는 언론, 하나님이 중심인 방송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겠다. Q. CBS가 타 기독언론사와 차이라면 교계 보도와 함께 일반 사회에 대한 보도를 다룬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 사회 보도에 비해 교계 보도에 있어서 약하다는 지적들이 계속 있어왔는데, 본부장님의 생각을 듣고 싶다. A. 부산CBS가 올해로 62돌을 맞았다. 지역시민과 40만 성도들을 생각할 때, 언론사로서 역할보다 선교기관으로서의 역할이 부족한 게 많았던 것 같다. 지역사회에서 진실과 정의를 바로 세우는 올곧은 언론사로서 역할을 해왔지만, 실제보다 더 높은 위치로 평가 받고 대접받으려고 한 오만함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40개 교단에서 파송된 이사들로 구성된 교계 연합기관으로 대표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자부했다. 지역교회의 기도와 헌신으로 세워진 방송임을 감사하고 보답하기 보다는 지역 교계의 따뜻한 기도와 성원만을 요구하는 욕심쟁이였음을 고백하고 반성한다. 신천지와의 전쟁을 하며 자부심이 있었지만 지역 교계에서 보내주시는 따뜻한 시선과 기도 성원에 충분히 보답을 못한 것 같다. CBS에는 좋은 콘텐츠, 선교 복음적인 기능들이 있지만 그것들을 충분히 알리지 못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교계에 더 다가가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본부장으로 일하면서 교계에서 주신 사랑에 보답하는 일을 하려고 한다. 오만했던 자세를 바꿔서 성경 말씀대로 겸손함으로 지역 교계를 섬기는 CBS가 되고자 한다. 저를 비롯한 부산CBS 임직원은 하나님의 방송, 사랑의 방송으로 교만하지 않고 낮고 겸손한 자리에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선교방송과 지역 여론을 주도하는 언로사로서의 몫을 다하도록 최선이 노력을 쏟겠다. 이 일을 위해서는 조직이 필요하다. 감사하게도 지난해 온천교회 안용운 원로목사님을 위원장으로 한 목회자자문위원회가 출범했다. 부산CBS와 운영이사회, 목회자자문위원회가 협력한다면 언론사로서, 선교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CBS가 먼저 잘 못한 것에 대한 회개와 섬기는 자세를 가지고 구성된 조직이 활성화된다면 좋은 성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Q. 코로나19, 목회자의 성문제, 교회 내 비리 등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교회 대표 방송으로 어느 때보다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이 시대 CBS의 사명, 그리고 나아갈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CBS가 언론기관으로서 빛과 소금 역할, 그 기능을 수행하며 교계에도 똑같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10여 년간 그 목소리를 제대로 못 냈다. 우리가 내는 (비판적)목소리에 교계가 아파하고 원망하면서 거기에 우리가 머뭇거렸던 것 같다. 그렇지만 신천지와의 전쟁 등 이단척결을 위한 집중보도를 해왔고, 계속할 것이다. 또 사회적으로 불거진 교계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발 빠르게 취재하며 언론사, 선교기관으로서의 더 확장된 역할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Q. 신임 본부장으로서 기획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린다. 그리고 얼마 전 미얀마를 위한 기도회를 지역교계와 함께 했는데 반응들이 좋다. 혹시 지역 교회와 함께하는 프로그램 중 구상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A. 지역 성도들과 목사님들께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하며 당연히 받아야 했던 존경과 명예를 돌려드리는 가칭 ‘부산기독대상’을 제정해서 매년 시상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4개 부분으로 선정하며 내년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으로 지역과 이웃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발휘한 사례들을 발굴하고, 이 상을 통해 또 다른 선한 영향력이 발휘되는 선순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상금의 액수를 떠나서 신뢰성이 높고 권위가 있는 상이 되길 바란다. 아울러 부산CBS 오케스트라를 부활하고 부산CBS 소년합창단 재창단, 부산CBS 시청자위원회 등을 새롭게 구성할 계획이다. 지역 교계와 함께할 수 있는 방법적인 부분을 연구하려고 한다. 우리 안에서도 연구하지만 외부에서도 좋은 아이디어를 주신다. 그러나 CBS가 단독으로 하기보다 교계와 협력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한다. 부산CBS에 주신 사랑을 감사하며 주신 사랑에 보답할 수 있도록 하겠다. Q. 지역기획보도(아파트 관리비)로 제31회 한국기자상을 수상한 바 있으시고, 부산CBS 선임기자로 최근까지 취재일선에서 활동하셨다. 기자로서 가장 보람된 순간이 있다면? A. 30년을 현장에 있었지만 돌아보면 사실 보람된 순간보다 아쉬움이 더 많다. 1999년 이달의기자상, 2000년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당시에는 보람됐지만 벌써 옛날이 됐다. 아파트 관리비에 대한 비리를 보도한 후 그 문제가 개선된 것 같았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지금은 아파트 갑질이 문제가 되고 있다. 유형은 바뀌었지만 크게 보면 아파트 문제로, 문제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다. 세상에 대해 알면서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다. 그래도 현업에서 CBS 박창호 기자라고 했을 때 늘 날카로운 시각으로 기사를 쓴다는 평가를 받았을 때 보람을 느꼈다. 30년 현장에 있었던 기자로서 평을 해줄 때 보람을 느낀다. Q. 끝으로 교계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린다. A. 지역교계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기도와 후원으로 베풀어주신 사랑을 기억하고, 작은 일이라도 교계에 도움을 주는 부산CBS가 되겠다. 지역 선교방송과 언론사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주님의 시선으로, 성경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Q. ‘시선’ 책 출간을 축하드린다. 책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를 해 달라. A. 처음 교회 주보에 칼럼으로 싣던 글이 한국기독신문에 ‘시사칼럼’으로 게재하게 됐고, 그것들이 모여 책으로 출간됐다. 기독교 고전 중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What Would Jesus Do?)라는 책이 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관점이 가장 중요하다. <시선>은 ‘What Would Jesus See?’(예수님이라면 어떻게 보실까?)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어떠한 사안을 한 관점에만 국한하지 말고 양쪽을 충분히 고려하고 어떻게 예수님의 시각, 성경적인 관점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다. Q. BTS부터 코로나까지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전 분야의 시사적인 이슈들에 대한 글은 어떻게 쓰게 됐나? A. 저의 의도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스포츠, 과학까지 아우르는 글을 쓰는 것이다. 사실 이런 것들이 다 저의 관심사다. 제가 고시공부를 3과를 하며 엄청 많은 과목을 공부했다. 다 제가 공부했던 분야들이다. 저는 문학소년이었고, 스포츠를 엄청 좋아한다. 그림과 영화, 예술에도 관심이 있고, 음악은 판소리부터 오페라 아리아, 대중음악까지 즐겨듣는다. 자녀들이 좋아하는 아이돌 음악을 같이 들으며 삼촌팬이 됐다. 대학생 때는 스스로 제어가 안될 만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져서 고민도 많이 했는데, 제가 경험한 것들에 대해 글을 쓰자는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렇게 폭 넓은 것을 좋아하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가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Q. 책 서문에서 사람, 사회, 역사 등 세상을 바라보던 ‘시선’이 달라졌고, 그 시선을 공유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어떤 시선을 공유하고 싶었나? A. 앞서 말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지, 어떻게 보실지’가 기독교인인 우리의 유일한 관점이다. 세상은 각자의 시선으로 본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봐야할까. 개인적인 정치적, 사회적 관점은 다를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라는 입장에서 표명할 때는 성경적인 관점, 주님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표현할 수 있어야 되지 않을까. 세상이 바라보는 관점에 기독교인들이 휩쓸려서 한쪽으로 치우치고 극단적인 견해를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신앙과 이성의 조화가 필요하다. 너무 이성을 강조하면 중세 스콜라철학이 되어 조심스럽지만 한국 기독교의 경우 이성적인 부분이 부족하다. 그리고 개인적인 경건과 사회적 경건의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 조화와 균형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중용의 입장을 취하는 것을 같이 공유하고 싶었다. Q. 성경적인 관점을 가지기 위해 어떤 훈련이 필요할까? A. 성경을 많이 봐야 한다. 성경을 집중해서 많이 보다보면 성경적인 관점이 생긴다. 그것이 성경의 자증성, 성경이 스스로를 증명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교회의 도움을 조금 받으셔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을 많이 읽으면 자기 관점이 생기지만 그러다보면 자칫 이상한 쪽으로 빠지게 되는데 그것을 이단이라고 한다. 그래서 교리적인 부분, 성경 구조에 대해 교회의 도움, 성경공부를 해야 한다. 성경읽기와 함께 묵상 훈련도 필요하다. 교회개혁은 본질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본질은 성경과 기도다. 교회의 도움을 받아 성경의 구조를 알고, 큐티 등으로 말씀을 묵상하는 훈련을 하면서 매일 마음에 와 닿는 성경 한 구절만이라도 붙잡는다면 왜 그리스도인이 달라지지 않겠는가. 말씀을 보는 것과 묵상, 기도의 훈련이 절실하다. Q. <시선>을 ‘기독교 세계관의 실천편>으로 소개하고 있다. 실천적인 면에서 이 책을 설명해 주신다면? A. 기독교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교회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인들이 정치, 경제, 스포츠, 예술 등 각 분야에서 활동하며 살고 있다. 1등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지금 기독교인 중 가장 놀라운 영향력을 보이는 사람은 가수 소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분의 영상과 함께 댓글을 봤는데, 댓글에 ‘왠지 교회를 가야할 것 같다’. ‘천국을 보는 것 같다’라고 하더라. 소향 씨가 의도적으로 CCM을 부른다던가 하나님, 예수님에 관해 말하지 않는데도 사람들은 교회를 생각하고 거룩함을 느낀다고 한다. 우리 삶이 이런 삶이 되면 좋겠다. 책을 보신다면 모든 삶속에 면면히 녹아있는 하나님의 창조와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리스도인으로 모든 삶의 영역에서 정말 성도답게, 정말 작은 예수처럼 생각하고 판단하고 바라보고 행동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Q. 저자로서 이 책이 ‘누구’에게 ‘어떤 방법’으로 읽히기를 바라나? A.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목사님들과 부교역자들에게 하나의 설교 예화집이 되면 좋겠다. 아직까지 오래된 외국의 예화를 많이 사용한다. 사실 저도 그랬다. <시선>은 상당히 많은 분야의 새로운 정보, 국내외에서 일어나는 일들,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성경적인 관점에서 썼다. 목회자들, 젊은 부교역자들, 신학하시는 분들이 이 책을 통해서 소스를 얻고 그것을 설교에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녹여내면 우리의 것, 한국적인 예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Q. 다음 책에 대한 계획도 있는가? A. 두 개의 글을 준비하고 있다. 하나는 모세오경과 선지서를 정리한 것이다. 설교집과 주석서 그 중간 정도의 글이다. 또 결혼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데, 처음으로 책을 출간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혼 앞둔 예비부부들에게 어떻게 하면 성경적인 부부를 이룰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Q. 독자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A.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우리의 삶과 신앙이 하나가 되어 세상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 좋겠다고 전해드리고 싶다. 그것을 위해 신앙의 여정을 밟아온 것 아닌가. 그런데 신앙을 깊이 들어갈수록, 말씀을 깊이 알수록 느껴지는 것들을 우리 삶속에 녹여내는 것은 어렵다. 삶과 신앙이 일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저도 마찬가지라서 조심스럽게 말씀드린다. 다르지만 하나 되는 과정으로 가는 것, 그게 삼위일체신앙이다. 서로 달라 보이지만 하나인 것처럼 세상과 교회가 달라 보이지만 하나다. 그 신앙으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도로 살아가면 좋겠다.

[좌담회] “미얀마의 민주화와 한반도의 평화, 우리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

일시 : 2021년 6월 4일(금) 오후 2시 장소 : 프라미스랜드 사회자 : 이병수 교수(고신대) 참석자 : 에스더 학생(고신대 미얀마 유학생) 강동현 목사(양문교회) 전현구 목사(통일소망선교회 부산지부장) 이병수 : 오늘은 미얀마의 민주화와 한반도의 평화를 주제로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6절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말씀이 생각납니다. 미얀마가 직면한 어려움과 남북한이 대치된 상황에서, 우리가 십자가로 하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좌담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먼저, 에스더 학생에게 최근 발생한 미얀마 사태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에스더 : 미얀마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기엔 너무 깁니다. 간략하게 말하면, 미얀마는 다민족국가입니다. 크게 8개의 종족이 있는데, 저는 친족입니다. 친족은 대부분 기독교인들입니다. 미얀마에서 가장 많은 종족이 버마족인데, 버마의 종교는 불교에요. 여러 민족이 각각 불교, 기독교, 이슬람, 힌두교 등 종교를 가지고 있고 언어와 문화도 다릅니다. 그래서 역사가 복잡합니다. 영국과 일본의 식민지배에서 민족들이 힘을 합쳐 독립을 했습니다. 독립 이후 버마를 대변하는 군부가 형성되고 군부독재가 시작되면서 민족탄압이 더 심해졌습니다. 거의 60년 동안 군부독재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총선에서 아웅산 수지가 있는 집권당이 군부가 있는 정당을 이기자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2월 1일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군부독재에 저항하기 위해 미얀마 국민들이 평화적으로 시위를 했는데, 군에서 사람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죽이고 있습니다. 이병수 :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미얀마 시민들이 싸우면서 지금까지 인명피해가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현지 상황을 어떻습니까? 코로나19와 음식 부족의 어려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에스더 : 지금까지 800명 이상이 사망했고 5천명 이상이 체포됐습니다. 연락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서 실제로는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게임을 하는 것처럼 사람들을 죽입니다. 저격수들이 사냥을 하듯 아이들에게 총을 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출전했던 미얀마 대표가 ‘미얀마를 위해 기도를’이라는 팻말을 들었습니다. 그때 그가 입은 전통의상이 우리 민족, 친족의 전통의상입니다. 군부가 친족이 있는 지역에 계엄령을 내리고 포탄을 퍼붓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폭탄이 언제 떨어질지 몰라서 위를 쳐다보면서 밥을 먹는 사진도 있습니다. 제 동생의 친구들도 잡혀갔고, 저의 삼촌도 숨어있다고 합니다. 부모님과 통화를 했을 때 도청의 위험이 있다고 말을 조심히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SNS 메신저도 조심해야 합니다. 미얀마 밖에 있는 저와 같은 사람들은 미얀마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공항을 다 막았습니다. 그런데 중국 비행기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군부의 뒤에 중국이 있습니다. 사실 지금 미얀마는 코로나19에 큰 관심이 없어요. 신경 쓸 겨를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음식 부족은 심각한데, 군인들도 음식이 부족하다고 할 정도입니다. 이병수 : 지난 4월 1일 양문교회에서 언론사와 함께 미얀마를 위한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강 목사님께서 미얀마 민주화를 위한 기도회에 앞장서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강동현 : 에스더 자매가 말한 이 일들이 언론에 보도된 것을 보고, 미얀마 상황이 성경(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강도 만난 사람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작은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할 때, 직접적으로 도울 방법은 찾기 어려워 크리스천으로서 할 수 있는 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관심을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혼자보다는 부산교계가 관심을 가지는 게 좋겠다 싶어 언론사와 함께 기도회를 하게 됐습니다. 언론사와 함께 하게 된 것은 미얀마의 일이 국제적 여론으로 확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미얀마와 과거 민주화운동을 했던 우리나라가 오버랩 됩니다. 우리나라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국내 언론이 차단돼 외신 기자들에 의해 알려졌습니다. 미얀마의 문제도 국제여론이 중요합니다. 요즘 기독교가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기보다는 스스로 하나님의 명예를 땅에 떨어뜨리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으로, 현실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관심과 기도입니다. 기도회 이후 기독교방송 라디오를 통해 미얀마를 위한 1분 기도회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아니라 청취자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기도회에 모였던 목사님들과 1분 기도문을 만들었습니다. 작은 불꽃이 큰 불을 일으키듯이 기도회가 불씨가 되어 부산 교계를 넘어 각 지역에서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병수 : 어려움에 놓인 자들을 위해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한반도의 평화입니다. 우리나라도 남북으로 분단 된지 70년이 넘었습니다. 지금 북한의 정치 및 경제상황 그리고 북한 교회는 어떤 상황인지 전 목사님께 말씀 부탁드립니다. 전현구 : 하나님의 시간과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은 다른 것 같습니다. 올해 6.25 사변이 발발한지 71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금 북한이 당면한 문제를 두 가지로 생각하면 유엔에서 대북제재를 계속 가하고 있다는 것과 코로나19 문제입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경제상황이 올해도 어려웠지만 내년이 더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또 코로나19로 북한 스스로 장벽을 치면서 어려움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사회적으로 고립되고, 그 영향으로 내부단속이 심해지면서 탈북조차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기독교 박해 지수를 보면 단연 북한이 1위입니다. 북한의 지하교회에서 어렵게 신앙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지하교회 성도들이 북한 여러 지역에 나뉘어져 있습니다. 북한 1세대 성도들로부터 신앙이 내려온 그루터기 성도들, 살기 위해 탈북했다가 중국에서 선교사를 통해 복음을 듣고 신앙을 가지고 다시 강을 건너가 은밀하게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약 22만 명이 수용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중 5만~7만 명이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수용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수용되어있는 선교사님들 있는데 이들을 위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병수 :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서독이 통일이 된 것처럼 남북한도 평화롭게 하나가 되고, 또 미얀마도 평화롭게 하나 되길 바랍니다. 한국사회와 교회가 미얀마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강동현 : 에스더가 제일 잘 알지 않을까요. 한국교회가 미얀마에 선교사를 많이 파송했습니다. 지금은 선교를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 안에서 밀정처럼 남은 선교사들이 있습니다. 그런 선교사들에게 교회를 통해 실제로 도움이 되는 지원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국제사회 문제이기 때문에 국가적으로는 할 수 없는 일에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교회가 도울 수 있는 루트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 반짝 관심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합니다. 또 다른 이슈가 생기면 지금의 이슈는 관심 밖으로, 기도 제목 밖으로 밀려날 수 있습니다. 누군가 계속 불을 지펴야 합니다. 우리의 도움이 정확하게 전달되어 필요한 곳에 사용된다는 확신이 있다면 많은 교회들이 참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사실 미얀마를 어떻게 도울지 막막한 것은 있습니다. 저도 미얀마를 도울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봤는데, 미얀마의 민간정부를 돕기 위한 방법이 굉장히 복잡했습니다. 그래서 더 관심을 가지고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번의 이야기로 끝난다면 불씨는 꺼지게 됩니다. 지속적으로 관심을 유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병수 : 미얀마의 사태와 연결해 국내에 들어와 있는 이주민들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또 탈북민을 생각할 때, 이들을 위해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강동현 : 근로자나 결혼을 위해 들어온 이주민 등 부산시에는 5%의 이주민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0만 명 이상의 이주민이 부산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좀 더 배려한다면, 그들이 우리나라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런데 교회가 이들에 대해 무례할 정도로 개종시키려고 합니다. 우리는 너무 노골적이고 급합니다. 이런 접근들이 그들을 더 경계심을 갖게 하고 겁을 먹게 합니다. 기독교가 참사랑이고, 좋은 사람들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좋은 영향을 준다면 그들이 본국에 돌아갔을 때, 적어도 그 땅의 기독교인들을 핍박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장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더라도 우리가 좋은 영향력을 주고 기도한다면 본국에 가서도 예수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지 선교사에 대한 배려도 필요합니다. 넓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외국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어 안아야 합니다. 우리가 외국으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심정으로 이미 한국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물질과 기도로 마음을 쏟는다면 분명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보내야만 선교가 아닙니다. 지금 한국에 들어와 있는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좋은 관계로 친해져야 합니다. 이미 언어가 통하지 않습니까. 물론 부정적인 면도 있고, 국민의 안전과 정서적인 안정을 위한 접근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면만 본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문화가 다른데 한 번에 맞춰지지 않죠. 서두르지 않고 넓은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서로 이해하고, 선교단체와 협력해서 이미 한국에 들어와 있는 이주민들을 이해하고 함께 해야 합니다. 전현구 : 강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이 통일한국을 위해, 탈북민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남한에 3만 3천명의 탈북자가 있습니다. 자유와 신앙을 찾아 온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보듬어주면서 좋은 이웃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경계하고 이것은 해봤는지, 저것은 해봤는지 신원 조사하듯 묻습니다.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을 분리해서 생각해주면 좋겠습니다. 아까 강 목사님이 미얀마를 강도 만난 자라고 했는데, 북한 사람들도 21세기에 강도 만난 자 아닐까요. 우리가 그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고통 받는 북한 사람들을 위해 사랑과 인내를 가지고 기도하면서 인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평화통일, 복음통일을 바라보면서 한국교회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는 말을 생각납니다. 북한에 대해 많이 안다고 하지만 들여다보면 지식적으로 부족합니다. 북한에 대해 많이 배우고, 알고 깨닫고 기도해야 합니다. 역사를 움직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말로는 통일을 원한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연약한 모습을 참 많이 보게 됩니다.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야 한다거나 내가 땀을 흘려야 한다면 물러나는 모습을 보입니다. 교회의 책임이 큽니다. 우리도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았던 것을 기억할 때, 이웃을 돕는 일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깨어 기도하고 섬기고, 물질 이전에 영적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병수 : 지금 한국에 있는 미얀마인들이 미얀마 사태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한국교회도 미얀마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에스더 학생, 한국교회에 요청하는 기도제목이 있나요? 에스더 : 미얀마의 일에 대한 가짜 뉴스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미얀마를 보고 있다고 느낍니다. 서로 끝까지 같이 애쓰고, 싸울 수 있도록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미얀마가 더 이상 전쟁터가 되지 않게 기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미얀마에 있는 사람들은 군부와 싸워서 힘들고 미얀마 밖에 나와 있는 사람들도 어렵습니다. 한국에 있는 미얀마인 중 학생이 많은데 비자문제나 생활적으로 어려움이 있습니다. 저도 학교를 그만두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휴학을 해도 집으로 갈 수도 없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에 있는 미얀마인들 대부분은 기독교인들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말로라도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로도 도움이 됩니다. 감사하게도 한국교회에서 미얀마를 위해 계속 기도해주고 있지만, 기도제목이 또 있다면 우리도 한국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사태가 평화적인 변화를 가져오길 바랍니다. 지금 마치 다윗이 골리앗과 싸웠던 것 같습니다. 미얀마뿐 아니라 전 세계가 앞으로 우리 후손을 위해, 미래를 위해 좋은 변화가 생기기를 바랍니다. 이병수 : 6월은 우리가 더 하나 됨을 기억해야 하는 달인 것 같습니다. 미얀마와 한국이 평화로 하나가 되고, 또 온 인류가 복음 안에서 하나 됨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미얀마 민주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좌담회에 함께 해주신 에스더 학생과 강동현 목사님, 전현구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정리 : 최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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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문학]‘한 사람에 대한 관심과 배려 그리고 존중

박 양 규 《인문학은 성경을 어떻게 만나는가》 한국의 대형교회의 교육현장에 있던 그의 고민은 하나님의 말씀이 정작 필요한 갈급한 이들에게 성경은 왜 생동감 없이 격리된 언어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물음의 답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그의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모세와 함께 출애급한 200만명의 히브리인, 베드로가 전도한 3,000명의 결신자, 오병이어의 기적과 5,000명의 군중처럼 ‘영웅’만 기억하고, 그 뒤에 감춰져 숫자로만 기억되는 ‘아무개’들의 재발견이다. 이를 위하여 문학, 역사, 철학, 예술의 인문학을 끌어드린다. 인문학의 정신이 ‘영웅’이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관심과 배려, 그리고 존중이라 믿기 때문이다. 지적 과시가 아닌 밀레와 고흐의 시선처럼 아래로의 관심과 환대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때문이다. ◇ 저자소개 박 양 규∥ 총신대와 동 대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고려대학교 서양사학과에서 헬레니즘 분야로 석사과정을 마쳤다. 영국 에버딘대학교에서 중간사 분야로 박사 과정을 수료, 삼일교회에서 교회학교를 총괄했다. 목회자로서 저자의 오랜 고민은 목회와 교육현장에서 왜 성경이 현실에 와 닿지 않는가, 왜 성경은 격리된 언어로 존재하는가였다는 그는 현재 대형교회의 울타리를 벗어나 성경과 인문학을 연결한 교회교육 콘텐츠를 제시하기 위하여 유튜브 채널 <교회교육연구소>와 <큐리랜드TV>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유럽비전트립》, 《청소년들을 위한 하이델베르크》, 《중세교회의 뒷골목 풍경》 등이 있다. 샘솟는 기쁨 / 2021. 1. 21. / 16,5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인문학으로 읽는 성경》 김주철 / CLC / 《설교자는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김도인 / 글과 길 / ‘ 지식’이 아닌 ‘시선’ “한국의 기독교 집단이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이 인문학과 관련해서 대담하게 던지는 질문이다, 성경적이지 않다면 인문학으로 성경을 읽는 ‘태도’가 필요한 이유이다.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인간을 향한 ‘시선’이지 인문학 ‘지식’이 아니다.” 바르게 믿기 위하여 인문학 필요 김길구 우리 코너 이름이 기독교+인문학입니다. 서로 앙숙 같은 신본주의냐 인본주의냐를 가르는데 익숙한 우리 풍토에서 용어에 대한 오해가 꽤 있는 것 같아요? 김현호 그것은 오해지요. 중세는 물론 종교개혁을 선도한 이들의 학문적 배경에는 인본주의자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보수적이라는 미국도 1980년대부터 기계문명의 발달로 인한 인간성 상실에 대한 반성으로 대부분의 기독교 학교들이 고전교육 등 인문학을 강화하는 추세입니다. 박영규 말씀하셨듯이 원래 인문학은 기독교 세계 속에서 성경을 뿌리에 두고 태어났어요. 하나님이 주신 이성을 통하여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사고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함이었으니까요. 김길구 인문학 Humanities 은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그런 인문학이 성경과 만나면 어떻게 될까? 오늘의 주제입니다. 김현호 ‘수십 년간 기독교인으로 살아오면서 안타까운 점은 여전히 한국 교회에는 질문과 토론이 없고 자구 하나에 집착하며 바벨탑 같은 성경 지식만 쌓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공허한 설교와 맹목적 아멘만 넘쳐나는 것도 여전하다. 이를 극복하려면 관성으로 굳어진 시각의 틀을 깨고 성경을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경향신문 기자인 저자의 누나가 쓴 추천사의 일부입니다. 우리 교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지요. 박영규 저자는 학문과 일상, 성경과 삶이 분리되고, 교회 교육의 안팎이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습관과 관성의 틀을 깨는 인문학적 시각으로 성경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김길구 최근 출판계의 흐름 중에 하나는 인문학을 주제로 한 출간이 꾸준히 느는 현상이 아닌가 싶은데, 기독출판계 역시 이러한 흐름에 예외가 아니죠? 어때요? 김현호 그렇지요. 저희 모임에서도 이정일 교수의 〈문학은 어떻게 신앙을 더 깊게 만드는가〉란 책으로 독서 나눔을 가진 적이 있는데 참가자들이 성경을 인문학적 배경을 통해 다양한 시각으로 이해하려는 것을 보고 저도 놀랐습니다. 교인들의 수준이 높아졌다고 봐야 하나요? 박영규 성경도 잘 모르는데 인문학까지? 라는 부정적 시각도 있고요. 자칫 19세기의 ‘살롱문화’처럼 신분과 계급, 지적 허영을 과시하기 위한 일종의 ‘귀족적 문화’로 변질 될까 우려되기도 합니다. 김길구 책으로 들어가 보죠.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가들의 주제 의식과 명작이 된 시대적 배경에 대하여 예를 들고 있지요? 김현호 「데미안」에서 묘사된 인생의 고뇌, 「걸리버 여행기」에서 말하는 부조리한 현실, 밀레와 고흐의 작품이 전하는 ‘한 인간에 대한 연민’ 같은 투철한 주제 의식이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유로, 러시아 정교회의 극심한 타락과 프랑스 사회의 가득한 부조리가 톨스토이와 까뮈를, 영국사회의 부도덕과 스페인의 부패한 사회상이 톨스토이와 돈키호테라는 캐릭터를 창조한 시대적 배경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박영규 한마디로 시대를 꿰뚫어 보는 작가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을 얘기하고 있어요. 예를 든 작품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기독교가 지배했던 유럽의 얘기들이잖아요.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 우리 교계 기독교인의 삶도 점점 ‘살롱문화화’ 되고 있지 않은지 성찰해 봐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작품들은 우리에게 많은 통찰을 주고 있지요. 이것이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겠죠. 주인공이 아니 보통 사람들에 주목해야 김길구 이제 이 책의 주제로 들어왔어요. 먼저 성경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는데, 이 책의 또 하나의 주제는 성경에 나오는 ‘주인공’이 아닌 이 책에서 ‘아무개’라고 불려지는 이름 없는 작은 이들에 주목하라는 것입니다. 김현호 인문학이 신학을 전달하는 통로라면 그것을 잘 아우를 수 있는 장르가 문학 같아요. 서점에 있으면 신학책들이 많이 들어와요. 자칫 과잉교리와 신학의 전달로 성경 말씀이 실생활과 괴리된 공허한 설교가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박영규 저자는 성경의 주인공들의 스토리에 가려진 동시대의 ‘아무개’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 말씀을 적용할 때 말씀에 생명력이 생겨 아무개들이 살아갈 지혜와 영감을 얻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 아무개들이 바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이죠. 김길구 이 책은 270쪽에 어떤 믿음을 가졌는가?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등 흥미로운 12개의 주제로 나눠 각 주제마다 벤치마킹, 공감하기, 인문학적 성경읽기라는 3단계 과정을 두어 성경공부의 깊이를 더하는데요,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는 장면을 다룬 ‘떠날 것인가, 머물 것인가?’를 통하여 인문학과 성경이 어떻게 만나는가를 알아보죠. 김현호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이해하려면 우선 「우르」에 대한 선이해가 필요합니다. 우르는 세계사에 등장하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도시죠. 인류 최초의 서사시 <길가메시 서사시>나 성문법 함무라비 법전은 우르를 중심으로 꽃을 피웠던 이 메트로폴리스를 고려치 않으면 그의 ‘순종과 결단’의 의미가 빛이 바래죠. 당시 우르는 문명과 법 제도가 완비된 완벽한 주거공간이었습니다. 저자는 주인공의 아브라함의 결단에 주목합니다. 공감하기, 그리고 인문학적 성경읽기 박영규 1단계인 벤치마킹하기에서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들어가 ‘영웅’인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 직접 듣지 못하고 전언을 듣고 그의 명령에 따라야 했던 그 많은 주변부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 말씀을 재해석하고, 고심 끝에 따라나서야 했던 이들의 처지를 되돌아보고 그들의 결단에 우리도 공감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매일 매일을 크고 작은 선택을 해야 하는 수많은 ‘아무개’ 속에 한 명인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김현호 다음 단계인 공감하기 단계에 이르면 사걀의 <이삭의 희생>을 보면서 당시 사회적 약자였던 사라의 입장이 되어 보고, 고심 끝에 내린 그녀의 믿음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롯이 나그네를 환대하는 장면에 이르면 ‘선한 영향력’이란 고지를 점령해야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설정된 태도에서 나옴을 상기시킵니다. 3단계인 인문학적 성경읽기에서는 창세기 12장1절의 야웨께서 명령하셨다. ‘너 자신을 위해서’ 네 고향, 즉 네 친척, 네 아버지의 집을 떠나~(창12:1, 히브리어 원본)의 성경본문을 통해 번역본에 빠진 ‘너 자신을 위해서’란 부분을 통해 아브라함과 함께했던 아무개들을 살펴보면서 우르를 떠난 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아무개들 자신을 위한 것인가?란 물음에 우리가 스스로 답하도록 인도합니다. 박영규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인문학이 하나님과 다른 길을 가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이성을 통하여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김길구 정리하자면 저자의 인문학적 성경읽기의 특징은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등장인물 중 몇 사람으로 기억되는 ‘영웅’들의 위인전이 아니라 주변부의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관심과 배려, 그리고 존중의 시선으로 잃지 않는 따뜻함이 있다는 점이고, 저자는 이것이 인문학의 정신이라고 합니다. 이를 위하여 시대를 넘나드는 해박한 문학, 역사, 예술을 아우르는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텍스트인 성경이 고대 중동의 케케묵은 박제화된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삶의 현장인 바로 지금 여기의 콘텍스트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다가오는 감동을 느꼈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 호인 7, 8월에는 여름휴가 관계로 연재를 쉽니다. 비정상이 정상이 되어버린 코로나19 시대 독자 여러분의 건강한 여름나기를 성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정리 : 김길구 】

[기독교인문학]4차 산업혁명시대, 스마트 선교가 시작되다

이동영의 《4차 산업혁명과 그리스도인의 삶》 - 교회, 플렛폼 경쟁에 놓이다 - 2016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가 처음 사용된 이래 일반화된 이 말은 기존의 컴퓨터와 인터넷 기반 위에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결합하여 IoT, CPS, 인공지능 등의 기술혁신의 쓰나미를 통해 만들어질 사회시스템 전반적인 대변혁을 일컫는 것으로 이에 대한 교회의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경영학자 출신으로 조직신학자가 된 저자는 가까운 미래 패러다임을 바꿀 혁명의 실체와 그리스도인의 대응을 풀어내고 있다. 총 11장 120 쪽의 이 책에는 각 장별로 토론을 위한 자료가 있어 스타디 그룹용으로 유용하다. 인간이 드디어 자신의 형상을 창조하는 호모데우스의 시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명을 준비하는 이에게 권하는 필독서 ◇ 저자소개 이 윤 석∥ KAIST에서 경영학 석, 박사 후 삼성SDS와 포스코 경영연구소에서 근무. 30대 중반에 목회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고 총신대에서 조직신학 전공으로 신학석, 박사 등을 마치고 충남 아산에서 아산시민교회를 개척 담임목회를 하였다. 현재는 독수리기독학교에서 연구소장으로 사역 중이다. 저서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관점으로 본 조나단 에드워드의 성화론》, 《성도의 삶에 나타나는 미덕의 특징에 대한 연구》, 《4차산업혁명 시대 코딩 기술과 교회교육》 등이 있다. CLC 간 / 2018.9. / 10,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기술의 불안한 미래》 에그버트스 휴르만 / 비아토르 / 2019 《기술체계》 자크엘륄 / 대장간 / 2013 4차 산업혁명의 문화적 사명 “ 저자는 교회라는 플랫폼에 스마트한 선교/목회/연합을 도입함으로써 기술을 축복으로 변혁시키는 문화적 소명을 신학과 경영학이라는 양날의 검으로 그 누구보다 탁월하게 열 어간다. ”(추천사에서 김준성) 성큼 다가온 4차 산업혁명 김길구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이 처음 사용된 뒤 세계적으로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박영규 사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요. 그 실체에 대한 논쟁이죠. 기존의 컴퓨터와 인터넷 기반의 3차 산업혁명인 지식정보혁명의 연장선상에서 보는 견해도 있으니까요. 김현호 세기의 대결이라는 이세돌과 딥 런닝으로 학습된 인공지능인 ‘알파고’와의 대결이 4대1로 인간이 일방적으로 패하자 멀게만 느껴졌던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을 전 세계인이 체감하는 계기가 되었지요. 김길구 제4차 산업혁명을 정리하면 IoT, CPS, 인공지능 기반의 만물초지능의 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이에 대한 교계의 대처는 어떤가요? 김현호 우리교계도 활발치는 않지만 4차산업혁명에 대한 논의들이 꾸준히 있어 왔어요. 「Be Connected-4차산업혁명과 선교」 (FMnC선교회), 「4차 산업혁명과 기독교학문」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4차 산업혁명과 기독교 포럼」, 「4차 산업혁명 이해와 대응전략」 (새세대아카데미) 와 「4차 산업혁명과 교회」 (한국복음주의조직신학회) 등이 개최되었습니다. 박영규 사실 우리 교계 현실은 거창한 4차 산업혁명이란 이슈보다는 당면한 교인 감소와 대사회적 이미지의 실추, 코로나19로 인한 위기 등에 대한 현안이 더 시급한 실정이지만, 4차 산업혁명이 초래할 특징 중에 하나인 초연결, 비대면으로 인한 극단적 개인화 등이 코로나19 영향으로 더 빨리 촉진될 수 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비정상이 일상화 된 뉴노멀시대에 살고 있잖아요. 인간은 신이 된 동물 김길구 그럼 책의 본론으로 들어가 보죠? 이 책은 4차 산업혁명의 특징과 함께 베스트셀러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후속작 《호머 데우스》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김현호 그도 그럴 것이 사피엔스에서는 과거 인류의 조상이 영장류의 일원으로 유인원으로부터 진화되어 오던 여러 종 중에서 유일하게 사피엔스종이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 이 능력으로 세상의 지배자가 되었는데 이 ‘인지혁명’의 시기가 대략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라는 주장입니다. 박영규 그의 후속작인 호모 데우스는 미래 인류 진화에 대해 전망하면서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데우스’로 업 로드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즉 인간은 신이 된 동물로 단어의 뜻 그대로 호모 속에 속하지만 신과 같은 종의 출현을 예고합니다. 김길구 여기서 유발 하라리는 현재 인류가 추구할 핵심 의제로 ‘불멸’, ‘행복’, ‘신성’이라는 세가지를 제시하는데 이를 추구하는 방법이 종전의 종교나 철학의 영역이 아닌 고도로 발전된 현대의 첨단과학기술에 의존할 것으로 보고 있어요. 김현호 작년에 번역된 하버드의대 수명혁명 프로젝트팀의 싱클레이박사가 저술한 ‘노화의 종말’에서 엿볼 수 있듯이 노화는 질병으로 치료할 수 있으며 앞으로 생명과학의 발달로 생명연장을 넘어 ‘불멸’을 추구한다는 주장이지요. 2013년 구글의 벤처투자회사인 구글벤처스 같은 회사는 생명연장과 관련된 프로젝트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어요. 박영규 두 번째 의제는 ‘행복’ 추구인데 종전의 명상이나 종교적 행위, 또는 철학적 숙고가 아닌 생명공학, 사이보그공학, 인간이 갖고 있는 유기체 부분이 아예 없는 비유기적 존재를 설계하고 이 존재에 인간의 의식과 지능을 이식하는 것으로 인공지능과 신경과학의 획기적 발달로 가능하다는 주장입니다. 미래 인류의 핵심의제 불멸, 행복, 신성 김길구 마지막 의제인 ‘신성’인데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데우스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은 아니어도 그리스 신들처럼 초능력을 가진 일종의 신성을 획득하는 존재의 출현이죠. 유발 하라리가 말한 데이터교의 출현 같은 것이죠. 김현호 이것이 가능한 것은 인공지능의 발전과 사물인터넷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으로 온 세계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면 막강한 지능과 거대한 데이터를 가진 강력한 권력의 출현이 가능하니까요. 박영규 저자는 이런 입장에 대하여 4차 산업혁명의 주요기술들이 인간의 모습을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준 것은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의 창조질서을 거스리는 부분에 대해서는 분별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김길구 교회도 일종의 플랫폼으로 플랫폼 경쟁에 놓여있다는 주장이 재미있네요. ‘플랫폼’(platform) 비즈니스는 어떤 형태의 비즈니스 모형을 구상하고 그 모형이 돌아갈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해 놓고 그 안에 많은 사용자를 끌어들이고 나가지 못하게 하면서 수익을 내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최근의 세계 10대 기업 안에 새로운 플랫폼을 제공하는 기업들이 대거 약진하고 있잖아요. 김현호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에이비엔비 등이 이에 속합니다. 박영규 교회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다른 모든 신자는 그 몸의 지체가 되어 전체의 몸을 이루는 공동체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한 네트워크 에 속해 있는데, 이러한 영적 연합 외에도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들을 도구로 활용할 수 있어야 플랫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교회와 문화와의 관계 김길구 로버트 베버의 문화를 보는 관점 3가지 구분에 중에 아미쉬처럼 분리모형의 입장을 취한다면 산업혁명의 기술 수용에 소극적이면서 선교 또는 전도를 위해서만 기술을 활용하게 될 것이고, 루터처럼 교회와 세상을 동일시 하는 모형이라면 각 기술분야에 그리스도인들은 탁월성을 추구해야 하며, 하나님나라와 세상의 나라가 중첩되면서도 구분되는 경우 어거스틴의 신국론처럼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세상 나라의 각 영역에 침투하여 문화전체를 변혁시켜야 하겠죠. 박영규 긍정과 부정의 양날의 검처럼 양면성을 가진 4차 산업혁명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의 발전으로 일자리를 잃고 저임금 아르바이트나 프리랜서로 내몰려 야기되는 부의 양극화와 불평등의 현상에 대한 균형된 문제의식이 필요하고, 로봇과 인공지능의 경우 기독교 윤리적 입장에서 숙고한 후 개발과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며, 사물인터넷의 경우 사람을 돈벌이 수단과 대상으로 전락시키지 않도록 엄격한 도덕적 기준이 필요하고, 의·생물학 분야 역시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치 않도록 신앙적 분별력이 있는 선한 창조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충고합고 있습니다. 김현호 4차 산업혁명이라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회를 맞게 되는 기술혁명의 쓰나미 앞에 모두가 ‘두려움’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나 세상에 대해 두려워 말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며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되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김길구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 호에는 멈출 듯 멈추지 않는 코로나19를 보면서 일상으로의 회귀를 생각해 보는 CLC에서 펴낸 박동식 저 《코로나 일상 속 신앙, 교회, 삶》을 주제로 얘기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정리 : 김길구 】

[기독교인문학] 공동체의 정의는 하나님의 선을 통해서 온전해 진다

‘호통판사’ 천종호의 《선, 정의, 법》 - 정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완성된다 - 소년범의 대부로 호통판사의 애칭이 더 어울리는 저자가 그리스도인들이 도덕적으로 지탄받는 위기의 때에 《선, 정의, 법》이란 책으로 찾아와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작년에 출판한 이래 1년이 안 돼 6쇄를 넘어섰다. 각주만 봐도 12장에 달하는 공들인 책이다. 저자가 윤리학, 정치철학, 법철학은 물론 신학도 넘나들며 법문제에 천작했다. 우리의 생활과 떨래야 뗄 수 없는 법, 가깝고도 먼 법 이야기를 통하여 기독교적 시각에서 친절하게 그리고 꼼꼼하게 풀어놓았다. 법의 목적인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기 위하여 정의로운 공동체를 넘어 예수가 보여준 사랑의 공동체를 제안한다. 그의 결론은 ‘도덕성의 회복은 선의 회복이며, 선의 회복은 정의로운 신의 귀환’이라는 것. ◇ 저자소개 천 종 호∥ 부산에서 흙수저로 태어나 부산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석·박사를 마쳤다. 1994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1997년 부산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24년간 법조인의 길을 걷고 있고, 현재는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재직 중이다. 가정의 문제로 비행을 저지른 청소년들에게 대안가정인 ‘청소년지원센터’를 제공하여 재비행을 줄이는데 기여한 공로로 2020년 ‘옥조근정훈장’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호통판사 천종호의 변명》, 《이 아이에게도 아버지가 필요합니다》,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등이 있다. 두란노 간 / 2020.5. / 16,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덕의 상실》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 / 문예출판사 /1997 《정의론》 존 롤스 / 서광사 / 2010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센델 / 김영사 / 2010 《회복적 정의는 무엇인가》 하워드 제어 / KAP / 2015 사랑은 정의의 최대화 “그리스도인들은 ‘정의의 공동체’에 발붙이고, ‘사랑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람들이다. 정의의 공동체를 무시한 채 사랑의 공동체를 지향할 수 없다. 정의는 사랑의 최소화이고, 사랑은 정의의 최대화이다.” 김길구 오늘은 ‘호통판사’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선, 정의, 법》의 저자 천종호 판사님을 모셨습니다. 작년에 펴낸 책이 이 불황 속에서도 6쇄를 거듭했어요. 내용이 쉬운 책도 아닌데… 박영규 대중적 인기도 한몫했을 거예요. 요즘처럼 도덕적으로 교계가 비난받던 때도 없었잖아요?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현호 이 책에서도 언급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이 당시 영미권에서는 10만부밖에 안 팔렸는데 우리나라에선 200만부가 넘게 팔렸습니다. 법조인으로서 마이클 샌델의 견해에 어떤 입장이신가요? 우리 국민들은 왜 이 ‘정의’ 문제에 그토록 예민할까요? 천종호 우리 사회는 선이 없는 정의론인 ‘자유주의적 정의론’에 크게 치우쳐 있어 ‘공동체주의’를 주장하는 마이클 샌델이 인기가 많다는 것이 저에겐 의외였어요. 우리 사회가 공정과 공평을 다루는 ‘정의’ 문제에 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김현호 ‘사회가 불공정합니까?’란 물음에 미국인들은 30%, 한국인들은 70%가 그렇다고 답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조국 딸 입시 특혜, 인천공항 비정규직 전환, 의대생 국시 재응시 문제, LH 사태 등에서 보여준 공정성에 불신이 지지율뿐만 아니라 이번 선거의 결과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천종호 공정성 여부는 객관적 데이터보다 국민의 정서와 관련이 깊겠죠. 우리 사회 정의의 수준이 국민의 정서를 어루만져 주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이죠. 언급한 사례들은 이런 감정을 증폭시킨 예라고 봅니다. ’같은 것은 같게‘라는 공평과 ’다른 것을 다르게‘라는 공정이 우리 사회에 빨리 뿌리 내려야겠습니다. 정의와 공의 김현호 정의의 문제에 성서의 예를 드셨어요? 천종호 사회나 학계에서는 정의라는 단어 하나만 쓰는데 비해 성경에서는 공의(체다카)와 정의(미쉬파트)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사회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공의와 정의를 묶어 ‘정의’라는 한 단어를 활용하여 정의의 개념을 말해보죠. 정의는 동태적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근로를 제공하여 급여를 받았습니다. 이를 ‘분배적 정의’라고 합니다. 그 사람이 휴대폰을 사서 자녀에게 준다고 해도 그 누구도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습니다, 이를 ‘향유적 정의’라고 하지요. 그런데 그 자녀가 휴대폰을 이른바 일진에게 빼앗겼다면, 이를 그냥 두어서는 안 되고 돌려받아야겠지요. 이를 ‘시정적 정의’라고 합니다. 그리고 휴대폰을 빼앗은 아이에게는 형사법상의 조치(형벌 또는 소년보호처분)가 이루어집니다. 이것도 시정적 해당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그 아이의 딱한 사정이 밝혀졌는데, 주위에 아무도 휴대폰을 사 줄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이런 경우 그 아이로 하여금 재범을 방지하려면 그 아이에게 휴대폰을 사 주어야 합니다. 이것을 ‘재분배적 정의’라고 합니다. 이 네 가지 정의를 다시 두 가지로 압축하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배분적 정의(분배와 재분배)’와 ‘시정적 정의(향유와 시정)’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배분적 정의를 이루려면 사회제도가 구축되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개인이라도 선의(호의)를 베풀어야 합니다. 이렇게 국가나 사회가 하지 않는 일을 개인이 선의를 다해 정의를 이루는 것을 성경에서는 ‘공의(체다카)’라고 합니다. 이에 비해 정의(미쉬파트)는 주로 법정에서 어긋난 정의를 시정하는 것을 의미하죠. 김길구 우리가 눈여겨볼 대목은 아모스, 이사야, 예레미야 등의 예언서에는 정의와 공의라는 단어를 쌍으로 같이 쓰고 있다는 거예요. 이를 두고 어떤 분은 ‘정의의 무자비함과 정의 없는 사랑의 무력함을 극복하기 위함’이라고 했는데, 공감이 가더군요.. 박영규 판사님도 비행청소년들의 아버지로 명성이 높으신데 1900년 캐나다에서 비행청소년들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교정복지 프로그램으로 ‘회복적 정의운동’을 시작하여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하시는 사역과 비교해 보면? 천종호 회복적 정의는 크게 세 가지로 접근해야 합니다. 피해자와의 관계 회복, 재비행을 막기 위한 공동체(가정)의 회복, 전과자라는 낙인효과 방지를 위한 사회와의 회복입니다. 제가 주로 활동하고 있는 바는 두 번째로, 가정의 문제로 비행을 저지른 아이들에게 대안가정인 ‘청소년회복센터’를 제공한 다음 재비행을 막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있어서는 회복적 정의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첫 번째, 세 번째의 것은 저 혼자만으로는 벅차요.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이지요. 기독교공동체는 성품의 공동체 김현호 순서가 바꿨습니다만 정의의 실현을 위하여 이 책의 핵심이기도 한데 ‘선’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왔어요? 천종호 줄여 얘기 드리면 기독교에서 선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최고선이고, 본래적 선입니다. 인간에게 있어 선이 무엇인가에 관해서는 저는 로마서 8장 28-30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선을 이루느니라’는 ‘미리 아신 자들을 미리 정하셨으니,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다’와 같은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최종적으로 영화롭게 되기까지의 단계{미리 아심, 미리 정하심, 부르심, (중생) (회심) 칭의, (성화) (견인) 영화}를 보여줍니다. 그 중 ‘미리 아심에서 칭의’까지의 단계는 잃었던 생명을 회복하는 구속(속량)의 성취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고, 성화에서 영화에까지 이르는 단계는 성품과 인격의 완성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을 이룬다는 것은, 생명을 구원하여 하나님과 예수님의 성품과 인격을 닮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할 선은 구속의 확신을 나날이 더해 가는 것과 하나님과 예수님의 성품과 인격을 닮아가는 것이죠. 그래서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기독교 공동체를 ‘성품의 공동체’라고 합니다. 그리고 성품의 공동체가 이루어 내는 선을 ‘공동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이 없는 정의론’에서는 ‘공동선’이라는 개념보다는 ‘공익’이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정의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여러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지만,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정의로운 성품이 필요합니다. 김길구 수고 많으셨습니다. 천판사님의 매력에 폭 빠진 시간이었습니다. 격무로 알려진 판사직을 수행하시면서 그 바쁜 와중에서도 전문가 못지않은 다방면의 독서와 그 해박한 식견, 그리고 무엇보다 뜨거운 열정이 돋보인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호에는 멈출 듯 멈추지 않는 코로나19를 보면서 일상으로의 회귀를 생각해 보는 CLC에서 펴낸 박동식 저 《코로나 일상 속 신앙, 교회, 삶》을 주제로 얘기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정리 : 김길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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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한국영화가 사회문제를 다루는 두 가지 방법

영화,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말하다 지난 7월 2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전 세계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경제 규모로는 세계 10위에 올랐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에서도 이탈리아를 추월하는 등 선진국으로서의 면모가 확인된 까닭에 이번 발표는 예상된 일이었다. 특히 의미가 있는 것은 대한민국이 개발도상국 범주를 벗어나 선진국에 진입한 최초의 국가라고 유엔이 공인한 일이다. 그렇다면 한국영화 속에 나타난 한국 사회는 과연 선진국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을까? 증권이나 금융사기와 같은 선진국형 범죄가 소재로 등장하는 현실은 분명 경제력을 갖춘 한국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해결방법이 극히 사적인 고통과 이에 따른 복수로 끝을 맺을 뿐 제도적인 개선에 이르지 못한다면 무늬만 선진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나기 어렵다. 특히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현실을 다룬 영화라면 영화를 보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림을 감출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과연 우리는 선진국인지를 자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김창주 감독의 영화 <발신제한>과 김정인 감독의 <학교 가는 길>은 우리 사회에 일어난 갈등이 선진국형인지 아니면 아직도 개도국 수준에 머물고 있는지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발신제한>은 드라마로 제작된 상업영화인 반면 <학교 가는 길>은 다큐멘터리다. 드라마는 스릴러나 액션 등과 같은 대중이 선호하는 방법을 동원하여 사회문제를 부각시키는 장점이 있다. 과거의 시간 속에 잊혔던 문제를 새롭게 인식시키는데 매우 유용한 방식이다. 그에 비해서 다큐멘터리는 소재주의를 선택한다. 즉 원래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사건이나 문제를 깊이 파고들며 연출자가 제시하는 새로운 이해를 촉구받는 형식이다. 은행의 불완전 판매에 대한 복수 드라마 타입의 스릴러 장르를 표방한 영화 <발신제한>은 자본주의의 꽃인 금융업의 비리를 지적하고 그로 인해 희생당한 사람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돈 많은 고객을 관리하는 PB(프라이빗 뱅크) 센터장 성규(조우진)는 두 아이를 자신의 고급 SUV에 태우고 출근하는 길에 테러범(지창욱)으로부터 걸려온 발신 번호 제한표시의 전화 한 통을 받는다. 거액의 돈을 마련하지 않으면 자동차 시트 밑에 설치한 사제폭탄을 폭파시키겠다는 협박 전화는 성규를 대혼란에 빠뜨리고 그는 어떻게든 아이들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VIP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의 돈을 유용하려 한다. 전후 사정을 알지 못하는 경찰은 성규를 테러범으로 오인하여 그를 뒤쫓기 시작하고 지뢰 위에 걸터앉은 모양새의 성규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된다. <발신제한>은 2016년에 국내에서 개봉한 스페인 영화 <레트리뷰션: 응징의 날>을 각색한 작품이다. 자동차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만큼 연기력이 출중한 배우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주연을 맡은 조우진 배우는 합격점을 받고도 남음이 있다. 특별히 이 영화를 <더 테러 라이브>와 <끝까지 간다> 등 작품성 있는 스릴러 영화들을 편집한 편집 감독 출신의 김창주 감독이 연출했다는 점은 이 영화의 전개가 매우 빠르고 간결하여 요즘 젊은층의 성향에도 잘 맞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외국영화를 각색했다지만 범행의 이유가 은행의 잘못된 투자로 인해 손실을 입고 가족이 파괴된 상처 입은 사람들의 복수란 점까지도 동일한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데 한국영화를 본 관객들은 은행의 불완전 판매로 인해 큰 손실을 입은 범인의 복수극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개연성 있는 이야기로 보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태는 1조 원이 넘는 피해액에 3만8천 명에 이르는 서민 피해자들을 낳았지만, 아직도 보상은 요원한 상태다. 금융기관들이 이익에만 몰두한 채 고위험 금융상품을 제대로 안내 없이 판매하는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발신제한>은 금융계에 윤리적 경고장을 날린 셈이다. 지역이기주의를 극복한 어머니들의 용기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에 개봉한 <학교 가는 길>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인 ‘서진학교’ 개설을 둘러싼 지역사회와 장애아 학부모들과의 갈등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다. 특수학교 설립문제로 학부모와 지역사회가 큰 갈등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김정인 감독은 2017년 9월 5일에 진행된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2차 주민토론회’부터 카메라를 들고 직접 당사자들을 인터뷰하며 장애인 가정이 겪는 현실을 모으기 시작했다. 슬프고 어두운 모습만 있을 것이라는 예측은 빗나갔다. 웃음과 기쁨 그리고 자녀와의 갈등이 있는 모습은 여느 비장애인 가정과 다를 게 없었다.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에 대해 가진 편견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함께 어울려 살지 않기 때문이란 사실을 영화는 가르쳐 주고 있다. <학교 가는 길>에는 국민을 안타깝게 만들었던 어머니들이 학교를 짓게 해달라고 지역주민 앞에서 무릎 꿇고 사정하는 바로 그 장면도 등장한다. “집에서 2시간 전부터 학교를 가려고 나와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부모이시고 저도 부모입니다. 단지 장애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이들의 학교를 여기에 지을 수 없다고 하시면... 그럼 어떻게 할까요? 여러분들이 욕을 하시면 듣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모욕을 주셔도 저희 괜찮습니다. 여러분들이 지나가다가 때리셔도 맞겠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장애아들도 교육받을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 지역사회와의 갈등을 줄이기 위해 서진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지역주민들에 대해서 몸을 낮추고 이해하려는 어머니들의 언행은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특수학교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나 우리 지역에는 안된다’ 혹은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몇몇 주민들의 발언에 분노하는 사람은 관객들뿐이다.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짓는 일이라면 모든 것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어머니들은 역시 위대했다. 특수학교 설립보다는 지역 국회의원의 공약사항이면서 생활에 편리한 의료시설 건립을 찬성하는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은 전형적인 지역이기주의가 등장했다는 판단은 피할 수 없었다.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모습 이란 이름하여 님비(NIMBY·Not In My BackYard)현상에 다름 아니었다. 님비는 ‘내 뒷마당에는 안 된다’란 뜻으로 사회에서 필요로 한 시설이나 정책을 집행할 때라도 ‘내가 사는 지역에 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화장장이나 쓰레기 매립장에서부터 핵폐기물 처리장에 이르기까지 혐오나 기피시설로 인정되는 한 자신의 지역사회에서의 건립을 반대하는 운동에 대해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지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지역이기주의에 편승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님비현상이 지역이기주의로 비판을 받는 결정적 이유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무시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 외부의 도움과 특별한 배려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회적 약자들 역시 존엄한 인간이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누려야 할 권리가 있는 법이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반대 운동을 벌일 만큼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이 도를 넘어 지역이기주의로 확산될 때 우리는 님비현상의 비인간적 행태를 문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숙제 보건사회연구원의 2020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3월 말 기준 등록장애인은 2,622,950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에 비해 약 4만2천 명이 늘어나는 등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나마 장애인이 느끼는 차별의 시선은 약간 줄어든 것이 다행스럽다. 장애인 실태조사에서 함께 시행한 설문조사 가운데 장애인 차별에 대하여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36.5%로 2017년 20.1%, 2014년 27.4%에 비해 증가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장애인 차별이 점차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아직도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월등히 많은 현실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님비현상을 극복하며 사회의 약자를 돌보는 일은 한국교회가 감당해야할 시대적 과제이기도 하다. 세속화된 사회에서 지역사회와 소통을 이루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구한말 가난한 나라 조선에 발을 디딘 선교사들은 사회에서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장애인과 소외받은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돌봄을 시작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캐나다의 의료선교사 로제타 홀(Rosetta Sherwood Hall) 선교사는 1894년 시각장애인 학교인 평양여맹학교를 세움으로써 국내 특수교육의 첫 문을 열었다.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존경받을 수 있었던 것은 세상이 편견을 갖고 하지 못했던 사회적 약자를 품었기 때문이었다. ‘소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마25:40)는 예수님 말씀은 님비현상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 되는 교회의 사회적 사명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왕 사랑을 실천하고자 한다면 지혜롭게 해야 할 일이다. ‘다툼이나 허영’(빌2:3)이 아닌 지역사회도 함께 품으며 겸손한 마음으로 이타적 존재가 누리는 기쁨을 제공하는 것이 마땅하다. 영화는 사회를 고칠 수 있을까? 문제를 알면 해결 방법도 찾을 수 있다. 영화가 한국사회의 문제를 제기한다면 그 답은 영화를 보는 관객의 마음에 있을 것이다.

[영화] 올림픽이 기억하는 신앙의 영웅

올림픽이 열리기 전에 꼭 봐야 하는 영화 도쿄올림픽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개최가 불투명한 가운데서도 올림픽을 준비하는 선수들의 심장은 뜨겁게 뛰고 있다. 만일 그 선수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영화 <불의 전차>는 자신의 심장이 요동치는 분명히 이유를 발견하게 해줄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뛰고 있다는 사실에서 금메달보다 더 높고 위대한 목표가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볼 수 있으리라. 영국이 낳은 위대한 육상선수 에릭 리델(Eric H. Liddell, 1902-1945)과 해롤드 아브라함(Harold Abrahams, 1899-1978)의 멋진 스포츠맨십이 빛나는 영화 <불의 전차>(Chariot of Fire)는 제작된 지 40년을 맞이하면서 스포츠영화로써 뿐만 아니라 기독교 영화로도 고전의 반열에 든 작품이다. 198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한 각본상, 의상상 그리고 음악상 등 무려 4개 부문을 획득했을 때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영화 <벤허>가 1960년 아카데미상 11개 부문을 휩쓴 이후로 가장 대중적인 기독교 영화가 탄생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었다. 그러나 한국의 극장가는 할리우드에서 울려 퍼진 환호성을 35년 동안이나 외면했다. 한국전쟁 이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 가운데 한국의 극장에서 걸리지 않은 유일한 영화라는 꼬리표도 따라붙었다. <불의 전차>가 한국의 극장에서 공식적으로 개봉하기까지는 세기가 바뀐 2016년에서야 가능했다. 필름 원본을 디지털 리마스터링 작업을 거쳐서 디지털 영사 시스템에 맞춘 작업을 끝낸 직후였다. 그리고 지난해 가을 코로나로 인해 극장가에 신작들의 상영이 연기된 상황에서 관객의 호응도가 좋았던 영화들을 모아서 재상영하는 행사 가운데 다시 한번 극장에 걸릴 수 있었다. 이 위대한 명작을 극장에서 볼 수 없었던 것도 그리고 이제야 극장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그리스도인들 때문이었다. 기독교 영화를 외면했던 그리스도인들이 이제야 눈을 떠서 이 영화의 가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불의 전차>는 기독교가 외면받는 이 시대에 더욱 기독교의 가치를 일깨워 주는 최고의 명작이다. 1924년 파리올림픽 육상 단거리 금메달리스트인 에릭 리델(이안 찰슨)과 해롤드 아브라함(벤 크로스)의 열정 넘치는 도전을 그린 영화 <불의 전차>가 특별한 이유는 신앙과 예술 그리고 재미라는 기독교 대중영화의 세 요소를 모두 갖췄기 때문이다. 신앙의 가치가 빛나는 영화일수록 예술성도 떨어지고 재미도 없을 것이라는 편견은 빨리 버리는 것이 좋다. 세상에서 가장 품위있는 영화 <불의 전차>는 스포츠맨들의 치열한 경쟁을 내면화시켜 품위 있는 스포츠영화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었다.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시기와 질투 혹은 음모 등은 눈꼽만치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최선의 가치를 추구하는 주인공의 내면적 갈등과 극적인 결과가 매우 느리게 표현될 뿐이다. 연출은 영국 귀족의 자세처럼 기품이 있어 보인다. 대중들의 호기심을 끌만한 자극적인 장치도 촬영기법도 보이지 않는다. 기교를 부린 점이 있다면 선수들이 달리는 장면에서 느린 동작으로 표현하며 반젤리스의 주제가를 덧입힌 정도다. 지난 2012년 제30회 런던올림픽 개막식에서 사이먼 래틀경이 지휘하는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영화의 장면과 함께 바로 <불의 전차>의 테마를 연주함으로써 이 영화가 영국의 현대사를 빛낸 사건임을 전세계에 알렸다. 특히 ‘미스터 빈’으로 알려진 영국의 코미디언 로완 앳킨슨이 코믹한 연주와 연기로 참여하는 바람에 <불의 전차>는 더욱 세계인의 머릿속에 잊을 수 없는 올림픽 영화로 남게 되었다. 이 영화의 품위는 명예를 중시하는 영국인의 고전적인 전통이 내용으로도 확인되고 있어서 주목받을 수 있었다. 1919년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신입생 환영회는 정오를 알리는 12번의 종소리가 멈추기 전까지 캠퍼스를 한 바퀴 도는 달리기 경주로 영화는 시작한다. 이 경기에 참여하고 또한 지켜보는 학생들은 도전과 패기와 열정으로 가득한 젊은이들일 따름이다. 그러나 이들은 단순히 젊다는 의미만을 지닌 학생들이 아니라 순수함과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국가와 세계를 위해 봉사하는 지도자가 될 사람들이란 점에서 세상사는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신입생 환영식에서 캠브리지 대학 학장은 강당 벽면 동판에 새겨진 이 대학 출신으로 1차세계 대전에서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전사자 명단을 보며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약속된 미래를 향해 정열적으로 학문을 탐구하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들은 한 시대의 꽃이었고 영국의 자랑이었습니다.” 이 영화 속에서 나타난 명예란 한 개인이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위해서 살지 않고 자신 보다 높은 뜻을 향해 헌신하고 노력하며 사는 사람의 모습임을 나타낸다. 국가대표 육상선수란 개인의 명예뿐만 아니라 자신이 소속된 집단의 명예를 짊어지는 사람인 것이다. 해롤드 아브라함과 에릭 리델은 모두 영국의 명예를 위해 뛰지만 아울러 이들은 각각 유대인 사회와 스코틀랜드의 기독교도라는 자신이 속한 사회의 명예를 짊어진 사람들인 것이다. 대조적인 두 주인공의 절묘한 성격묘사 스코틀랜드 출신의 선교사인 에릭 리델과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의 아들인 해롤드 아브라함을 투 톱으로 내세운 이 영화의 캐릭터 설정은 역사적 실화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절묘한 대조를 이룬다. 두 사람이 육상선수로서 시합을 준비하고 경기에 임하는 자세는 완벽하게 다르다. 한마디로 세계관이 다른 까닭이다. 해롤드는 전형적인 유대인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에릭 리델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고 판단한 해롤드는 최고의 실력있는 코치인 무사비니를 찾아가 자신을 훈련시켜줄 것을 부탁한다. 선수가 코치를 선택하는 것은 마치 봉건시대에 여자가 남자에게 먼저 청혼하는 것과 같이 너무 이례적인 일로서 당시로서는 너무도 파격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것은 어떻게든 열심히 노력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이 인정받고 최상의 자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유대교의 율법주의의 영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리델은 다르다. 그가 심장이 터질 듯 달리는 이유는 오직 한가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일 뿐이다. 중국선교를 위해 육상을 포기하라는 누이의 권유에 대해 리델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중국을 위해서 날 만드셨어요. 그분은 또한 나를 빠르게 달릴 수 있도록 만드셨지요. 난 달릴 때 하나님의 기쁨을 느껴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남보다 잘 뛸 수 있는 달란트를 주신만큼 이 재능을 주님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신념이 그를 최고의 선수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리델로부터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수용하고 사용할 줄 아는 ‘은혜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는 자는 표정도 남다르다. 아브라함은 항상 긴장된 표정으로 나타나는 반면에 리델의 얼굴에는 평안이 넘친다. 원칙있는 신앙생활에 임하는 하나님의 축복 1924년 파리올림픽에 참가한 영국국가대표선수단은 에릭이 주일성수를 이유로 그의 주종목인 100m 경기에 나가지 않기로 하자 심각한 혼란에 빠진다. 영화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임원들과는 대조적으로 예배에 참석해서 성경을 읽으며 진중한 리델의 모습을 보여준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이사야40:30) 주일에 교회에 가지 않고 축구하던 어린이를 타일렀던 에릭 리델은 말과 행동이 신앙의 원칙에 기반을 둔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은근히 가르치고 있다. 리델의 원칙 중심의 신앙생활은 주일성수문제에 대한 논란을 떠나서 관객으로 하여금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돌이키게 만드는데 큰 의미가 있다. 에릭은 동료 선수의 제안으로 자신의 주종목이 아닌 400m 경기에 나가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된다. 100m 금메달 후보였던 만큼 400m에 나가 우승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100m와 400m는 뛰는 방법도 전략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주종목도 아닌데 어떻게 우승할 수 있었을까? 에릭 리델은 달랐다. 그가 예사롭이 않다는 사실은 함께 뛰는 다른 선수들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다. 리델과 함께 경기에 출전하는 옆의 다른 선수들이 리델을 보며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면 우리는 곧 그가 금메달을 딴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속엔 뭔가 있는 것 같아. 자네나 내가 갖지 못한 뭔가 특별한 것 말야.”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 리델은 모든 행동의 기반을 신앙 위에 두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잘 뛸 수 있는 달란트를 주신만큼 이 재능을 주님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신념이 그를 최고의 선수로 만들었고 하나님은 그를 축복하신 것이다. 나는 올림픽이 열리기 전 연례행사처럼 학교에서 선교학을 배우는 학생들을 모아서 <불의 전차>를 보곤 한다. 세상의 금메달보다도 더욱 귀한 주님 주시는 면류관을 향해 열심히 공부하고 신아앙의 훈련을 받는 학생들에게 이 영화를 보는 것만큼 즐거운 교육이 없기 때문이다. 최고의 지성을 겸비한 영국 캠브리지의 학생들이 조국과 학교의 명예를 위해 달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심장이 뛰지 않을 수 없다. 중국선교사 에릭 리델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달리는 것을 보노라면 무신론이 지배하는 세속적 사회에서 우리는 은혜와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 자신보다 큰 목표를 향해 달리는 젊은이들은 아름다운 법이다.

[영화] 동성애를 향한 기독교 해법을 담은 영화

기독교 영화도 스트리밍 서비스 시대 기독교 영화 사역을 하는 ‘필름 포럼’이 배급상영권을 가진 두 편의 수입 영화를 스트리밍 서비스로 내놓았다. 하나는 신림동 주사랑교회 이종락 목사의 베이비 박스 사역을 다룬 <드롭 박스>(Drop Box, 2014)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 동성애로부터 회복된 찬양 가수 데니스 저니건(Dennis Jernigan)의 고백을 담은 영화 <싱 오버 미>(Sing Over Me, 2014)다. 이 두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상영 당시 기독교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교회 성도들에게 제대로 홍보되지 못한 채 금방 잊혀지고 말았다. 특히 한국 교회가 동성애 반대 운동에 보인 관심과 열심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를 향한 하나님의 치유와 사랑의 손길을 보여주는 <싱 오버 미> 같은 화제작을 놓친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동안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교회에서 ‘필름 포럼’에 요청하여 교우들이 함께 보는 출장 상영밖에 없었다. 이 경우 교회 안에서의 단체 관람은 가능하지만 개인적으로 영화를 깊이 감상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네이버 영화관이나 케이블 TV의 VOD 서비스를 통해 이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동성애에 대해 기독교 교리적인 접근이나 설교식의 가르침에 부담을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안성맞춤인 <싱 오버 미>는 동성애는 선천적이며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동성애 옹호론자들의 주장을 완전히 뒤집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성애에 대한 탁월한 기독교 관점을 감동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문제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관객 수가 영화진흥위원회 공식통계로는 불과 1,808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다시 한 번, 그것도 쉽고 편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코로나19로 인해 극장을 찾기보다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그리고 케이블TV로 영화를 보는 것을 선호하는 현대인들의 성향에 맞게 기독교 영화도 스트리밍 서비스나 VOD 서비스로 상영 플랫폼을 바꿨다. 이것은 언제 어디서든 기독교 영화를 손쉽게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까닭에 앞으로는 스트리밍 서비스 제공을 목표로 극장 상영이 이루어지는 변화가 기독교 영화계에도 일어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미국에서 외면한 탈동성애 기독교 영화 영화 <싱 오버 미>는 교회 안에서 동성애자로 살아왔던 데니스 저니건의 신앙적 갈등과 예수님의 사랑으로 회복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다. 마치 무용담처럼 어두운 과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다가 마지막에 가서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 빛나는 행복을 이뤘다는 간증형식의 여느 다큐멘터리 영화와는 다르다. 특히 동성애에 대한 신학적 비판을 쏟아붓기보다는 주인공이 보여주는 진솔한 고백과 눈물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은 기독교인이라면 동성애로부터 돌이킬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한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 미처 커밍아웃하지 못한 채 숨어서 신앙생활하는 동성애 기독교인이거나 혹은 동성애에 대해 세상적 시각을 가진 기독교인이라도 감동받고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깊은 상처와 혼돈 속에서도 그것을 어루만지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유명 찬양사역자의 다큐멘터리답게 그가 부른 찬양을 배경음악 삼아 그의 과거를 비추며 현재의 고백을 담았다. 어린 시절의 사진을 배경으로 진행하는 부모님과의 인터뷰와 그의 절친 척(Chuck King)이 말하는 저니건에 대한 언급 사이사이로 부모와 친구가 몰랐던 저니건의 동성애에 대한 고백이 이어진다. 다섯 살 나이에 공중화장실에서 바지를 내리고 나타난 성인 남자에 대한 경험으로부터 청소년 시절 여자아이 같다는 놀림을 피하려고 여자 친구에게 키스했지만 전혀 이성의 느낌을 받지 못한 이야기들은 일반적인 동성애자들의 과거와 비슷하다. 그러나 저니건은 하나님이 자신을 동성애자로 만드셨으니 난 어쩔 수 없다는 자포자기식의 동성애에 대한 자기합리화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갈등하고 변화를 모색해왔다는 점에서 동성애를 숙명으로 알고 사는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강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독한 갈등의 상황 가운데서 기독교의 신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동성애가 유전적 혹은 선천적인 까닭에 동성애에 대한 책임이 인간이 아닌 하나님께 돌리려는 동성애 숙명론자들의 의견이 틀렸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가 동성애에 대해 가지는 왜곡된 이해 가운데 하나는 동성애 숙명론이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동성애는 후천적이며 사회적 학습에 따른 경향이 강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왜냐하면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모든 유전자가 동일하기 때문에 만일 동성애가 선천적이라면 일란성 동성애자 쌍둥이는 함께 동성애자여야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싱 오버 미>는 데니스 저니건을 통해 동성애가 어렸을 때 경험했던 왜곡된 성적 경험으로부터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최대의 장로교 교단에서조차 동성애 목사 안수를 인정할 만큼 동성애 문화에 대해 자유로운 미국사회에서 <싱 오버 미>는 극장에서 개봉조차 하지 못한 채 DVD로만 출시되었다. 영화에 대한 각종 통계와 정보를 보여주는 IMDb(Internet Movie Database) 조차 극장 개봉 및 수입에 대한 통계가 전혀 나와 있지 않다. DVD를 통해 이 영화를 본 미국 기독교인들의 의견은 완전히 극과 극이었다. 10점 만점에 10점을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00점을 쓴 사람도 있었다. 신앙은 물론 성적 취향에 대한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동성애 지지자들이 얼마나 부정적인 시각으로 탈동성애자를 바라보는지를 알 수 있다. 세속적이고 동성애 문화가 만연한 미국사회는 이 영화를 외면했다. 이를 역으로 해석하자면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은 동성애 문화에 지배받지 않으면서도 성경의 진리를 실현시킬 기회가 남아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싱 오버 미>를 보는데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기독교인은 아직 없지 않은가!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 변증영화 <싱 오버 미>는 동성애를 자연스러운 성적취향으로 인정하려는 현대사회를 향해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을 전하고 있다. 이것은 <싱 오버 미>가 기독교 동성애자들을 향한 멋진 기독교 변증의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다. 현대의 세속적이며 상대주의적인 문화 속에서 프란시스 쉐퍼는 기독교 문화의 변증학적 성격을 강조한 바 있다. ‘변증학(Apologetics)’이란 일종의 기독교 신앙을 ‘변호’하는 것을 뜻한다. 특히 쉐퍼는 ‘변증학’의 목적을 방어(defense)와 전달(communication)이라고 말한바 있는데, 여기서 방어는 비기독교 혹은 반기독교적 메세지로부터 기독교 신앙을 보호하기 위한 논증적 방어를 뜻한다. 그러나 쉐퍼는 그의 다양한 저술과 강연, 그의 아들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이었던 프랭키 쉐퍼를 통한 영화 제작 활동이 의미하듯이 방어보다 전달에 관심이 많았다. 즉 그는 어떤 특정한 세대가 이해할 수 있는 형식으로 기독교를 전달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다. 이 때 영화 <싱 오버 미>야 말로 오늘날 영화세대에게 기독교가 동성애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 그리고 회복을 기대할 수 있음을 전달하는 훌륭한 문화변증의 실천자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싱 오버 미>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기독교 동성애자들은 교회 누군가의 도움을 기대하고 산다는 점이다. 저니건 역시 성인이 된 이후 동성애자로서 살아가는 일에 대한 죄의식에 휩싸이는 한편으로 동성을 갈구하는 육체의 정욕 사이에서 방황하는 자신을 도와줄 누군가를 찾았음을 고백한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7)는 성경말씀은 그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가 찾아간 교회의 도움은 없었고 오히려 교회 목회자는 자신을 탐하는 또 다른 동성애자였음을 알고 기겁할 수밖에 없는 과거 상황묘사에 관객들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동성애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찾아간 교회는 딱 두 부류로 나누어졌다. 동성애에 대한 신랄한 비판만으로 가득 차 있거나 아니면 그와 동성애를 나누기 원하는 목회자가 있었던 교회였다. 이때 크리스천 동성애자들이 취할 수 있는 자세란 교회에서는 이성애자인 척하며 입을 다물고 밖에서는 육체의 탐욕에 스스로를 맡겨버리는 일이다. 교회는 고민 끝에 예배당을 찾는 동성애자들을 맞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함을 의미하는 대목이다. 둘째, 예수님이야말로 동성애에 대한 갈등과 상처를 회복시키고 치유하시는 답이 된다는 사실을 영화는 보여준다. 어쩌면 이 영화 가운데 가장 명언이라 할 수 있는 대사가 저니건의 절친 척으로부터 나온다. 동성애로 살아온 친구의 고백을 들은 후 척은 매우 감동적인 말을 한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답은 안다. 답은 예수님이다. 내가 너와 함께 해줄게.” 시간은 걸릴 수 있지만 그러나 예수님이 답이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롬5:8)이라면 가능하다. 어쩌면 당연하고 기독교의 평범한 얘기처럼 들리지만 이보다 더 정확한 해답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이것을 데니스 저니건은 자신의 삶과 그가 만든 찬양곡을 통해 증거하고 있다. ‘약할 때 강함 되시네/ 나의 보배가 되신 주/ 주 나의 모든 것/ 주 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네/ 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우리의 귀에 익숙한 찬양곡 ‘약할 때 강함 되시네’는 언제 들어도 기독교인의 마음에 감동을 준다. 예수를 보고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말한(요1:36) 세례 요한의 고백을 바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고백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나옴을 느낄 수 있다. 만일 <싱 오버 미>를 보고 난 후라면 이 찬양이 주는 감동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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