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에 잡은 것이 많아서 손이 아픕니다.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온 몸을 아프게 하고, 매일 해결해야 하는 일 때문에
내 시간도 없이 살다가 평생 바쁘게 걸어 왔으니 다리도 아픕니다…’ - 노사연, 바램 중
어디선가 노사연의 ‘바램’이라는 곡이 나오는데,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아닌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니, 누가 이렇게 노래를 불렀지?” 바로 미스터트롯의 임영웅이라는 가수였습니다. 미스터트롯은 최근 최고의 시청률을 올린 새로운 트롯 오디션 형식의 예능 프로그램입니다. 그 순간 저의 머릿 속에는 새로운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저 노래는 노사연의 노래인 걸로 아는데..?”
분명 가사와 멜로디는 중년 여자 가수인 노사연의 곡 ‘바램’인데 귀에 들리는 남자 가수의 트로트 ‘바램’은 완전히 다른 형식에 새로운 옷을 입고 젊은이들의 귀에 속삭이듯 부르는 노래였습니다. 트로트의 새 영웅, 임영웅을 배출한 프로그램 미스터트롯이 제작되기까지 50~60명의 방송 인력이 투입되고, 3개월을 준비했으며, 참가자를 면접하는 기간 역시 3개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미스터트롯을 통해 자신의 노래 실력을 검증받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약 12,000명 정도이며, 이 중 100명만 선발되어 노래와 함께 눈물겨운 사연이 전파를 탔습니다.
특히, 이 프로그램의 최종 결선에서는 7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시에 실시간 문자투표를 해 서버가 다운되기도 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저는 소위 말하는 미스터트롯 현상을 지켜보며 다음세대를 향한 새로운 도전을 받았습니다.
뉴트로(New-tro)가 무엇일까요? 새로움(New)이 복고(Retro)가 합쳐진 신조어로 옛 것을 새롭게 즐기는 경향을 말합니다.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처럼 실제로 과거에 유행했던 노래,디자인, 패션 등이 현대에 맞게 다시 돌아와 새 옷을 입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뉴트로는 문화 부분에서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 감성을 최첨단 기술과 접목하여 중, 장년층에게는 추억과 향수를 전하고 다음세대인 젊은이들에게는 새로움과 재미를 안기며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미스터 트롯’이라는 형태로 보여준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도 코로나19의 어려운 시기에, 뉴트로(New-tro) 현상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먼저 우리는 지금을 진단하고 가야 합니다. 현 시대에 신앙의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첫째, 개인주의와 자기중심적인 문화로 대면적인 관계 단절이 심한 시대에 더욱 심화되어 나타나는 경향입니다. 둘째, 오랫동안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집단 공동체성이 약해지고 온라인이나 SNS과 같은 가상공간이 활성화 되므로 현장성이 약해졌습니다. 셋째, 정신적·예술적·종교적 부분에서 육신적·건강 우선주의로 변화되는 현상입니다. 넷째, 나눔과 돌봄이 어려워지고 개인과 집단 우선주의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뉴트로(New-tro) 신앙의 방향을 잡을까요?
첫째, 다음세대의 입장에서 교회다운 교회로 연습해 봅시다. 기성교인 중심의 신앙에서 다음세대를 위해 새로운 표현과 문화, 습관을 적용시켜 봅시다. 한 달에 한번은 다음세대를 위해 영화 예배를 드리거나 찬양 콘서트를 하며 다음세대가 예배를 친근히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둘째, ‘새로운 창조적 교회 경험하기’입니다. 코로나19로 현장예배가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나를 이곳으로 부르신 하나님, 이곳에서 공동체를 만드신 하나님, 이 공동체에서 예배를 드리는 나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롭게 인식하면서 하나님이 만드신 공동체를 뉴트로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교회의 이미지를 리뉴얼해야 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교회는 이기적인 집단이라는 프레임이 씌어졌습니다. 지금까지 잘못한 것들은 과감히 반성하며 지금부터 다시 본질로 돌아가 교회의 이미지를 바꿔야 합니다. 이를 위해 온,오프라인을 활용하여 교회의 본질적 요소를 알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교회가 교회다울 때, 교회가 복음을 안고 공동체를 살릴 때 다시 세상이 교회를 찾게 될 것입니다.
미스터트롯의 인기와 뉴트로라는 시대적 흐름으로 인해 트로트가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한 것처럼, 코로나19를 통해 한국교회가 위축되는 것이 아닌 우리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교회 밖을 사랑으로 섬기며 뉴트로의 신앙을 회복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어려운 말 같아 보이지만 그럼에도 한 번 더 오늘 다시 뉴트로(New-tro)를 꿈꿔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