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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다음세대와 단기선교를 떠나라
    저희 교회는 매년 여름 캄보디아 캄풍스프 지역으로 단기선교를 떠납니다. 그런데 항상 절반 이상의 인원을 다음세대가 채웁니다. 초등학교 3학년만 되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이 단기선교를 위해 저희 교회 아이들은 초등학교 3학년이 되기를 소망하며 성장합니다. 그렇다면 그 자리에 왜 우리 단기선교팀이 갈까요? 이것은 바로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곳에 가서 우리가 무엇을 할까요? 마태복음 9장 35절 말씀에 예수님이 하신 3대 사역이 나옵니다. 단기선교는 이렇게 예수님이 온 모든 성과 모든 마을에 가서 하신 사역을 우리가 재현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회당에서 가르치시며’입니다. 바로 교육 사역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첫 번째 사역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이 알고 깨닫고 믿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우리가 들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 가르치셔서 누구라도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믿을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단기선교를 가면 먼저 가르치는 사역에 힘을 씁디다. 특히 캄보디아에는 국어, 영어, 수학은 가르치는데 예체능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예체능 교육을 전혀 받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서 아이들을 데리고 신체를 움직이는 체육 활동을 합니다. 야외에서 체육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이 운동회를 합니다. 그리고 또 미술을 합니다. 아이들이 파우치에 색칠도 하고, 메달에 그림도 그리면서 자기만의 작품을 만드는데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그곳 아이들에게 자기 작품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특별한 경험이자 기쁨입니다. 애들이 얼마나 좋아하면서 자랑하며 가져가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저희가 가서 소품도 준비하고 배경그림도 걸고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연예인처럼 꾸며주어서 예쁜 사진도 찍어줍니다. 자기 인생에 가장 좋은 선물을 받는 것입니다.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그 아이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대로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이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입니다. 천국 복음전파 사역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자신이 죄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진 이 땅의 사람들에게 찾아오신 천국이었습니다. 그래서 천국은 인간의 노력으로 가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가는 곳임을,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직접 찾아오셔서 천국이 되어주셨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저희들이 단기선교에서 이 사역을 어떻게 할까요? 가서 이미용선교를 통해서 아이들 머리를 만져줍니다. 머리를 잘라줍 니다. 그럼 못 도망갑니다. 그럼 머리하는 동안 계속 이야기해 주는 거예요. 캄보디아어로 “쁘레아 예수 쓰롤라인 네악, 여응 크뇸 마오 삐 꼬레” 번역하면“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국에서 왔습니다. 그 사랑을 기억해 주세요.” 계속 이야기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얼굴에 페이스페인팅을 해주고, 손에 네일아트를 해주면 예뻐지잖아요? 그걸 하면서 “쏨 브로띠언 쁘레아뽀” “당신을 축복합니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고, 당신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누가 그 얘기를 해주겠어요? 평생 듣지 못한 이야기를 그 아이들과 그 주민들이 듣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입니다.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사역입니다. 예수님은 몸과 마음이 아픈 병든 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찾아다니시면서 그들의 질병에 마음아파하시고 그들을 손수 고쳐주셨습니다. 이 치유는 천국을 보여주는 모델과도 같고 예수님이 오신 이유를 보여주는 복음의 메시지와도 같았습니다. 저희 캄보디아 단기선교 의료팀이 가서 건강검진을 해주는데 거기 있는 아이들은 평생 한 번도 건강검진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불편하고 힘든데 내가 어디가 왜 아픈지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병원을 한 번도 안 가본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저희가 건강검진을 해주고, 눈이 안 좋은 아이는 안경을 맞춰주고, 필요한 아이들은 병원에 데려갑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하신 사역에 우리가 동참하는 것입니다. 또한 설비팀이 가서 그 학교에 선풍기를 달아주고, 필요한 벽화를 칠해주고, 필요한 것들을 저희들이 보수해 줍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하신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는 그 사역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선교는 우리가 가진 것, 이만큼 우리가 너보다 더 가졌다고 자랑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선교는 우리가 너보다 좀 낫다고 우쭐대는 자리가 아닙니다. 선교는 하나님이 하신, 예수님이 하신 그 사역을 우리가 이 시대에 동참하는 것이고 꼭 필요한 영혼에게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는 참 중요합니다. 특히 어린 다음세대 아이들이 선교에 참여하게 되면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을 품을 수 있고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많은 아이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되어 선교사의 사명을 확인하게 됩니다. 저는 우리나라 모든 교회들이 다음세대를 중심으로 단기선교 떠나는 그 날을 소망해 봅니다. 선교가 우리 모두를 살리는 소망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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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4-09-13
  • [다음세대칼럼] 청소년들에게 하는 성교육, 3가지를 지키자
    성교육을 청소년들에게 성경적으로 바르게 교육하자. 크게 3가지이다. 부부의 밝은 성을 먼저 교육하자. 성의 4요소를 정확히 알자. 성교육을 당겨서 초등학교 1-3학년에는 깊이 있고 바르게 교육하자. 1. 부부의 밝은 성을 먼저 교육하자. 지금의 성교육은 금지하는 위주이거나 부정적인 성의 교육이 매우 강하다. 하지만 성경적인 성은 밝은 부부성을 먼저 알아야 한다. 부부의 성은 영혼육의 하나됨이다. 전인격적인 교제이다. 서로 섬기는 극치이다. 하나님과 나의 하나됨도 나타낸다. 하나님이 우리를 ‘안다’고 하실 때 단어를 부부의 성적인 연합에도 사용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ידע)! 힘써 여호와를 알자(ידע)…’(호 6:1), 영생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했다(요 17:3). 그래서 히브리어로는 야다(ידע), 헬라어로는 기노스코(ginwvskw)라고 하나님과 우리의 하나됨을 표현했다. 영어로는 부부의 성을 knew(알다)라고 했다. 대신 부부외의 성, 괘락이 핵심 뜻인 단어인 ‘섹스’(Sex)는 부부의 성에서 말하지 않았다. 부부 외의 모든 성관계를 구분하여 칭했다. 히브리어도 ‘솨카브’(שׁכב)라고 하여 부부의 성이 아닌 강간, 간음, 교합에 사용하여 구분했다. 2. 성의 4요소를 정확히 알자. 부부 성의 4가지 요소를 알면 전인격적인 교제로 성을 바로 이해하게 하자. 첫째는 영혼의 교제가 부부의 성이다. 부부의 성은 단순한 즐거움을 너머 전인격적 교류와 하나됨이다. 이를 모르거나 결핍된 부부 외의 성은 영혼도 오염이 된다. 쾌락이 우상이다. 동성애를 지지하거나 행하게 된다. 사람과 성을 수단시한다. 자신이 신이 된다. 둘째는 진정한 사랑이다. 예수님과 교회의 사랑이 부부 성관계의 즐거움과 온전함과 섬김에서도 드러난다. 하지만 이런 사랑이 결핍되면 강간, 매매춘, 외도, 거짓의 성, 야동, 포르노를 탐닉하는 어두운 성이 된다. 성폭력이 된다. 수단으로 전락한다. 동물과 같아진다. 셋째는 생명을 품고 존중하는 성이다. 임신해도 잘 양육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임신과 출산을 기뻐하고 축복하는 전제하에 즐거움을 추구하는 부부의 성이 진정한 복이다. 생명을 경시하는 성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불임, 낙태, 미혼모 문제가 생긴다. 고아가 생긴다. 넷째는 즐거움과 쾌락이다. 부부의 성은 즐거움과 쾌락도 있다. 성의 즐거움을 무시하면 자율성이 결핍된다. 허무함이 생긴다. 퇴행적이 된다. 가짜 즐거움을 찾게 된다. 변태적이다. 상대의 인격을 모독하게 된다. 마약이나 다른 약물 중독, 성중독, 스마트폰 중독 등으로 빠진다. 건강한 스트레스 해소가 안 된다. 부부관계가 소원해지고 친밀해지기 어려워진다. 3. 성교육을 초등학교 1-3학년에는 깊이 있고 바르게 교육하자. 성경적인 부부의 밝은 성을 초등학교 1-3학년부터 적극적으로 교육하자. 초 4-6학년에 자위행위나 음란물 등을 이미 70% 이상 접한다. 지금의 성교육은 교회도 가정도 학교도 너무 늦다. 월경도 축하해 주어야 한다. 어른이 되는 몸이 된 것을 잔치하고 축복하여야 한다. 성교육은 일찍 초 1-3때 교육하여야 한다. 고립된 성(자위행위)도 바로 알려주어야 한다. 결혼 전에는 혼전 성은 지켜 줌이 사랑이고 결혼 후는 성은 서로 소유함이 바른 사랑임을 교육해야 한다. 이와같이 밝은 부부의 성을 먼저 청소년에게 교육해야 한다. 그러면 잘못된 성을 수정하고 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단순히 금지하고 피해만 말하는 식의 교육은 청소년들에게 맞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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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13
  • [신앙교육나침반] 2025년에는 3040 HUG FAMILY!
    폭발적 성장기에 사회적결핍의 펜데믹을 경험한후, 마음의 구멍을 안은채 살아가는 2010-2024년에 태어난 알파세대에게 복음이 시급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합니까? 3040세대 밀레니얼세대 부모는 어릴 적부터 교육부서의 학생으로 교회를 다니면서, 무려 35년이상을 교회공동체를 경험하지 못한 채 장년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현재 교회를 향한 강력한 소속감이 없이 어린 자녀를 치열하게 양육하며 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연령별 프로그램 중심 사역에 익숙한 3040세대는 부모와 자녀를 연결하는 신앙훈련에 무관심한 교회속에서 기독부모의 소명과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교회 안팎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3040세대 부모들이 교회공동체를 떠날 위기에 있습니다. 이들이 떠나면, 알파세대도 떠납니다. 알파세대가 떠나면, 그들의 자녀인 감마세대는 다른세대가 됩니다. 하나님은 한국교회가 3040세대 가정을 결단코 잃어버리지 않길 간절히 열망하십니다. 3040세대 가정을 한 영혼도 잃어버리지 않기 원한다면 세 가지의 패러다임 시프트를 실천해야 합니다. 향기나무 교육개발원이 제안하는 세 가지 패러다임 시프트는 HUG입니다. 첫째, Harmony| 순수하게 사랑하라! 둘째, Unity |온세대가 함께하라! 셋째, Growth | 복음을 놀이하라! 수많은 세미나가 3040세대를 위한 목회방향을 제시하면서, 심리학이나 통계수치를 기반으로 문제점과 해결책을 논하지만, 구체적인 컨텐츠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3040세대 가정의 리부트를 위한 2025년 목회전략 컨텐츠는 <복음놀이리부트50>입니다. 향기나무가 제안하는 온세대 복음놀이는 단순히 어린아이들만 데리고 진행하는 성경게임이나 레크레이션이 아닙니다. 저희가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다음세대 가정과 복음놀이로 씨름했던 5년의 현장은 향기나무 복음놀이가 무너진 가정을 다시 일으켜세우는 놀라운 복음자체임을 증명합니다. 온세대 복음놀이는 가정을 교회로 세우고, 교회 공동체를 가장 성경적 본질에 가깝도록 만들어주는 강력한 복음입니다. 재미있어서 단순히 깔깔 웃는 웃음소리를 넘어서서, 무너진 부모의 성벽이 웅장하게 세워지고, 무너진 가정의 성벽이 교회로 회복되어져서 복음으로 인한 뜨거운 회심과, 회복으로 인한 탄성이 가득한 자리! 그것이 바로 저희가 직접 보고 경험한 향기나무복음놀이의 파워입니다. 이번에 2025 HUG FAMILY 세미나에 오시면, 온세대 복음놀이를 활용하여 3040세대 가정을 교회로 세우기 위한 방법을아낌없이 전수해드리겠습니다. 세미나에 참여하시는 분들에게는 2025년 3040세대 가정을 위한 사역메뉴얼 자료집과 [복음놀이리부트50] 도서에 수록된 온세대 복음놀이 샘플 패키지를 제공드립니다. 문의| 향기나무교육개발원(031 305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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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교육 나침반
    2024-09-13
  • 전쟁 중인 이스라엘에 입국한 Y교회 180명 성도들
    최근 전쟁이 한창인 이스라엘에 종교행사차 출국한 시흥시 소재 Y교회 성도 180명에 대해 국민적 지탄이 쏟아지고 있다. 모두 같은 교회 성도들로 알려졌으며, 외교부의 잇따른 권고에 현재 상당수가 귀국했지만, 아직 일부 성도들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회 담임목사는 지난 2006년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제91회 총회가 교류 및 참여금지 결의를 한 바 있다. 당시 통합은 비성서적치유사역, 투시능력과시, 위협, 귀신신앙, 의료행위거부 등으로 사이비성이 있어 보인다는 이유를 들었다. Y교회 홈페이지에 공개된 영상에 따르면 담임 K목사는 출정예배에서 ‘이스라엘은 영원하다’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종말이 임박했음을 경고하고, 마지막 때 이스라엘 회복에 앞장서기 위해 목숨을 걸고 가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세대주의 종말론과 신사도운동, 백투예루살렘운동 류의 주장을 답습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이스라엘-레바논 접경지역에 대해 여행경보 4단계(여행금지)를 발령했으며, 이외 이스라엘 전역에는 3단계 적색경보(출국 권고)를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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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4-09-13
  • 정명석, 항소심에서도 30년 구형 받아
    JMS 정명석이 항소심에서도 징역 30년을 구형받았다. 지난 6일 대전고등법원 제3형사부에서 열린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1심과 동일한 징역 30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정씨의 범행이 누범 기간 중 발생했으며, 종교적 세력을 이용해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피해자들이 직접 녹음한 증거의 신빙성을 주장하며, 정씨가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 또는 메시아로 지칭하며 신도들을 세뇌했다고 설명했다. 1심에서 정씨는 징역 23년을 선고받았으며, 신상 정보 공개 및 고지 10년, 아동·청소년 및 장애인 관련기관 취업제한 10년, 전자발찌 부착 명령 15년도 함께 명령받았다. 검찰과 정씨 측 모두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재판부는 다음 달 2일 오후 2시에 정씨에 대한 선고를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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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13
  • 청빈, 정직, 섬김이 고신대 복음병원의 오늘이 있게 했다
    지난 2024년 9월 1일 주일 이웃 작은 교회인 부민드림교회 담임이 공석이라 말씀을 전하기 위해 고신 증경총회장이자 송도제일교회 원로인 주준태 목사가 왔다. 주목사는 2만권이 판매된 자신의 책 ‘야곱의 식탁, 가문에 축복이 흐르게 하라’(저자 주준태 목사)는 책 제목 따라 메시지를 전하였다. 핵심 포인트는 자신들의 자녀나 손자, 손녀들에게 매달 혹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기도를 하면 반드시 그 가문은 장미꽃과 같이 피어나리라는 터닝 포인트를 강조하였다. 송도제일교회(담임 김형렬 목사)와 고신대 복음병원은 이웃사촌 격으로 병원 바로 옆에 위치한 교회이다. 고신교단 안에서도 지도자를 많이 배출한 교회로 소문이 나 있으며 실지 리더쉽 뛰어난 인재가 많았던 곳이기도 했다. 송도제일교회 출신으로 고신교단 총회장을 역임한 분은 원종록 목사(증경총회장, 송도제일교회 제3대 담임), 이용호 목사(증경총회장, 송도제일교회 제4대 담임), 주준태 목사(증경총회장. 송도제일교회 현 원로) 세분이다. 또 교회 안에 박영훈 장로(작고, 30년간 외과과장에서부터 병원장 역임), 정기상 장로(작고, 병원 검사실장에서 행정처장 역임), 이승도 장로(세계로병원 원장), 서판수 장로(전 병원 행정처장, 현 원로) 이 분들은 모두 설립자 장기려 박사의 청빈. 정직과 섬김의 정신을 이어 받아 병원을 확장하거나 고급 의료장비를 도입할 때에는 건설업자나 의료장비 판매업자들이 의례히 주는 인센티브를 결코 받지 않고 병원에 보탬이 되는 선에서 거절하며 병원 요직에서 정직하게 살아왔다. 어느 날 박영훈 장로 병원장은 해외에 공무로 출장 다녀왔는데 병원에서 주는 여비 및 출장비가 얼마 남으면 반드시 병원에 도로 반납한다는 말을 당시 행정처장을 오래했던 서판수 장로가 필자에게 이야기 해주었다. 그리고 고 이충환 병원장 당시 박영훈 원장은 이충환 병원장으로부터 명예원장 사무실마저 비워 달라는 요구에 병원에 매일 출근하다싶이 했던 박원장은 병원에는 가지 않고 부평교회 옆 ‘명성다방’에 출근하면서 여기에 단골로 오는 정기상 장로, 윤은조 장로가 오면 근처에 사무실이 있던 필자에게 전화하여 점심하자는 연락을 잊지 않고 이들과 동석을 했다. 근 2년 동안 명성다방이 제2의 캠프장이 되다시피 했다. 어느 날 모이면 병원에 지난 역사와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곤 했는데 박원장의 부탁으로 자기가 경험했던 병원 역사를 책으로 엮어 달라고 하여 책을 출간하여 출판비 비용이 5백만원이었는데 이 출판비용이 없어 병원 안에 신협에 대출을 받아 비용을 충당했다. 어느 날 박원장 사모 목권사가 필자에게 전화로 “병원 신협에서 온 이자 납입 독촉 통지서가 날라 와서 하는 말인즉 ‘혹시 신장로에게 물어 보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박원장이 평소 오랜 세월동안 병원장하시면서 이런 눈 먼 비자금이 어디에 숨겨 놓았을 것인데 한 푼도 없이 신협 신용대출로 책 출판비로 대신 대납한 사연을 알려 주었다. 얼마나 평소 청빈하게 살았으면 이런 적은 돈을 못 구해 대출로 갚아 주는 것을 그때에야 알았다. 고급 의료장비를 구입할 때는 꼭 정기상 행정처장에게 의뢰하여 맡긴다는 것이었다. 정기상 장로는 몇 푼이라도 병원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자기에게 주는 감사의 리베이트를 꼭 병원에 도로 넣는다고 하여 병원장 귀에 들어가 박원장은 그때부터 정기상 장로를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것을 알았다. 서판수 장로 역시 행정 처장자리에 오랫동안 있으면 약품 도매상이라든지 어디에서 리베이트 뭉칫돈이 들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초대 원장 장기려 박사의 청빈사상이 평소 생활 습관이 되어 그런 검은 돈은 당연코 거절하거나 마지못해 봉투를 책상에 두고 가는 경우가 있으면 돈 봉투는 가난한 이웃이나 불우한 환자들의 병원비에 보탬이 되도록 지원하는 것이 몸에 밴 지도자의 리더쉽이었다. 평소 박영훈 장로는 은퇴 후 자신의 하루 생활 여비를 자신의 아내 목권사에게 매일 타 쓰고서 그 돈으로 차값이며 점심값을 꼭 먼저 지불하는 습관이 있다. 이런 선배들의 청빈과 정직, 섬김의 정신은 초대 원장 장기려 박사의 무소유 사상이 아니었나 사료된다고 병원 몇몇 간부들은 한결같이 말하고 있다. 그래서 고신대 복음병원은 상급병원으로서 자리를 이어가면서 어려운 이웃을 위한 섬김이 가난한 세계 어려운 나라에 가서 의료봉사를 해 마다 다녀 온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 오고 있다. 선대 선배들의 선행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평소 몸에 배여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광복절 기념식날 윤대통령으로부터 건국 훈장 애족장을 고 전영창 선생의 아들 전성은 선생에게 수여하였다. 전영창 선생은 복음병원 초창기 기초를 닦아 놓기 위해 크리스마스씰을 하야리아부대 장병들에게 팔아 그 수입금을 적자나는 병원 운영비에 보태는 사랑의 실천이 선대부터 내려오고 있었던 산 증거이었다. 외과 과장과 병원장 30년간을 거쳐 오면서 비자금 없이 은퇴 한 박원장과 이승도 장로(세계로병원 원장), 정기상 행정처장 장로, 서판수 장로 모두가 송도제일교회 출신이었다는 사실과 한 교회에서 교단 총회장 출신이 3명이나 배출한 것이 오늘날 송도제일교회를 빛나게 한 밑거름이 되고 자양분이 되어 그 지도자의 정신이 계승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런운지 교우들은 믿음의 선배들의 지도력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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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13
  • [목회자칼럼] 성도들이여! 어깨를 활짝 펴라!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한국교회 성도들의 어깨는 내려가고 자신감은 상실되었다.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주눅 들기 시작했고 자신이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을 감추게 되었다. 어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도 학교나 자신의 공동체에서 신앙적 정체성을 말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다. 한때는 전 국민의 25%가 성도라고 당당하게 자랑했고 자신의 신앙이 기독교라고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는데 말이다. 불신자들이 말한다. 성경도 좋고, 예수도 좋은데,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싫다고. 이유인즉, 잘못은 사람에게 하고, 회개는 하나님께 하고, 기도를 마치면 용서받았다고 말하고, 삶은 여전히 변화되지 않으니까 그런 교리 체계나 신앙의 자세가 싫은 것이다. 성경도 많이 알고, 예배도 열심히 드리고, 말도 참 잘하는데, 삶은 평범 그 이하인 모습을 보면서 교인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자란 것이다. 그 이미지 위에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세상 문화에 대해서 끊임없이 반대하고 정죄하는 교회와 성도의 모습 또한 또 다른 부정적 이미지로 새겨지게 되었다. 그래서 성경과 하나님을 잘 모르면서, 또 그것을 떠나서 그냥 성도들을 싫어한다. 이러한 연유로 성도들이 점점 세상에서 미움과 배척과 혐오의 대상이 된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상이 성도들의 자긍심을 떨어뜨렸고, 사회로부터 소외되었고, 스스로의 자랑스러움과 당당함을 잃어버리게 했다. 나아가 소신을 펼치고, 당당하게 말하고, 정체를 드러내야 하는 상황에서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비굴하게 자신을 숨기게 되었다. 제10대 국가인권위원장으로 취임한 안창호 위원장은 인사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로부터 날 선 질문들을 받으면서도 신앙인으로서 아주 당당했다. 성공 가도에 손해를 볼 수도 있고, 임명자에게 누를 끼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는 자신의 가치관과 신앙관에 대해서 너무도 분명한 주관을 가지고 소신있게 대답했다. 창조론과 진화론은 둘 다 증명할 수 없는 비과학적인 것이기에, 법칙의 영역이 아니라 믿음 즉 신앙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현 상태의 차별금지법은 분명히 반대한다.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합리적인 비판까지도 법적제재를 가할 수 있는 법안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다수의 인권을 압제하는 것은, 법적 타당성을 잃어버린 모순적 법안이다. 현실의 상황과 사실적 현실에 대한 비판의 영역까지 법으로 통제하는 것은, 인권을 무시하는 처사다. 정치적 이익과 사상적 논리와 진영의 무력에 의해 법적 폭력들이 기독교인들의 신앙과 가치를 억압하고 압제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기독 신앙을 가진 성도가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반기를 들고 모순의 현상들을 지적한 것이다. 투자의 달인 워런 버핏의 기업 자산이 1조 달러를 넘어섰다. 얼마 전, 그는 자신의 94번째 생일 잔치 자리에서, 자신의 인생과 특히 먹거리에 대해 아주 당당하고 자신만만하게 자랑했다. 의사들이 깜짝 놀랄, 의사들이 하지 말라는 것은 다 했다. 햄버거와 감자 스틱을 자주 먹고 코카콜라는 하루에 5캔을 마신다. 간식으로 사탕과 초콜릿과 체리 시럽을 올린 아이스크림을 자주 먹는다. 스스로 자신의 입맛은 6살 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행복해했고 당당했다. 인간은 완벽하게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 진리의 명제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믿는다. 신 앞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회개하는 사람이 신의 존재를 무시하는 자보다는 거룩하고 성결하다고. 흉내라도 내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변화의 희망이 있다고. 성도들이여! 우리 모두 서로 부족한 사람들이기에, 어깨를 활짝 펴고, 삶의 자리에서 좀 더 당당하고, 좀 더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고, 좀 더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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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13
  • [최병학 목사] 메두사의 웃음은 아름답다!
    ‘프랑스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세 학자가 있습니다. 뤼스 이리가레(벨기에 출신), 줄리아 크리스테바(불가리아), 그리고 엘렌 식수(알제리)입니다. 글쓰기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 포스트 구조주의자들입니다. 특히 식수는 『메두사의 웃음』(1975)을 통해 여성적 글쓰기를 페미니즘 실천 전략으로 제시합니다. 그녀의 말을 들어볼까요? “메두사를 보기 위해서는 정면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메두사, 그녀는 치명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녀는 아름답다. 그리고 그녀는 웃고 있다.” 프로이트는 여성이 거세되었다는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페르세우스와 메두사의 신화를 선택합니다. 그의 논문 「메두사의 머리」에서 그는 몸부림치는 뱀으로 이루어진 머리카락이 달린 메두사의 머리는 거세된 여성 성기의 상징이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여성은 남근이 거세되었기 때문에 공포를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남성이 여성에게 거세의 상상적 힘을 부여했기 때문에 여성을 공포스럽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닌가요? 이를 위해 식수는 해체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로고스중심주의’ 논의를 받아들여 거꾸로 뒤집습니다. 로고스중심주의가 남근중심주의를 낳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남근중심주의가 로고스중심주의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식수가 보기에 남근중심주의는 ‘여성성’이라는 미지의 대륙에 대해 남성이 느끼는 두려움의 산물입니다. 따라서 『메두사의 웃음』에서 식수는 메두사의 얼굴을 보는 자를 모두 돌로 만드는 ‘메두사 신화’가 남성의 두려움을 보여준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두려움이 남근중심주의를 낳고 이 남근중심주의가 로고스중심주의를 낳는 것입니다. 결국, 이 로고스중심주의적 이분법을 깨뜨려야만 여성이 남성의 식민지 상태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식수는 여기에 라캉에게서 얻은 ‘상징계(언어로 이루어진 상징적 질서, 곧 우리가 사는 세계)’라는 통찰을 더 합니다. 결국, 로고스중심주의는 상징계의 언어 구조 안에서 작동합니다. 따라서 남근중심주의/로고스중심주의를 깨뜨리려면 상징질서, 언어 질서를 바꿔야 합니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여성적 글쓰기’입니다. 이러한 여성적 글쓰기는 남성적 언어 구조를 바꾸는 실천 전략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성적 글쓰기의 구체적인 모습은 무엇인가요? 식수가 보기에 여성적 글쓰기에는 남성적 글쓰기가 지탱해온 억압적인 질서를 해체하는 해방의 힘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기존 전통과 다른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는 글쓰기입니다. 자기 안에 있는 타자성, 곧 여성성을 발견하는 글쓰기입니다. 성서에 나오는 예언자들의 예언이 여성적 글쓰기라고 할 수 있겠죠? 따라서 이때 식수가 말하는 여성성과 남성성은 생물학적으로 규정된 성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여성적 글쓰기를 감행한 남성 작가로 식수는 셰익스피어를 거명하기도 합니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전통과는 다른 것을 해낸 시인들이 있다. 사랑을 사랑할 수 있는 남성들, 그래서 타자들을 사랑하고 타자들을 원할 수 있었던 남성들이 바로 여성적 글쓰기를 실천한 남성들이다.” 셰익스피어의 글쓰기는 관습에 저항한 주인공들을 보여줍니다(물론, 이것을 욕망으로 볼 수 있겠지만). 이 남성들은 자기 안에서 타자 곧 여성성을 발견해 회복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보면 식수의 여성적 글쓰기는 여성과 남성을 모두 인간으로 해방하는 실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 아름다운 메두사가 있습니다. 잃어버릴 것이 많은 이들은 메두사를 똑바로 보지 못합니다. 무수한 권력자, 남성들이 그렇습니다. 무언가가 너무 소중하면 그것을 잃을까 두려워 다른 것을 똑바로 ‘보지 않기/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성적 글쓰기를 감행하는 남성은 보기 싫은 것도 열심히 봅니다. 보기 거북하면 물러서서 보고 그리고 또 생각해야 합니다. 결국, 그것은 고대 세계의 위대한 어머니 여신이자 지혜의 여신인 메티스의 딸 메두사를 제대로 보는 것입니다. 돌이 될까 두렵나요? 아닙니다. 마음을 비우고 남근중심의 상징계를 벗어버리면 돌이 아니라, 참 지혜를 얻을 것입니다. 똑바로 보고 편견 없이 보고 제대로 보세요. 놀라운 세상이 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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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론
    2024-09-13
  • 횡령과 직권남용으로 ‘정직 6개월’
    A노회 B교회 담임목사가 ‘횡령’과 ‘직권남용’으로 노회 재판국으로부터 정직 6개월을 처분받았다. 노회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교회 부속건물의 임대료 및 관리비 명목으로 7년 2개월 동안 1,450만원을 받았는데 이 사실을 교회에 알리지 않고 임의로 관리하고 지출하였으며 코로나 지원금 잔액 135만원도 재정부에 반환하지 않고 임의로 지출하였다. 비록 사무간사를 통해 관리해 왔고, 선한 목적을 위해 사용했다고 하나 이는 횡령에 해당하며 교회법에 위배되는 일”이라고 판결했다. 또 “직원 퇴직금을 당회와 제직회의 허락 없이 연금상품에 가입하고, 당회나 제직회가 알지 못하는 통장을 개설하고 관리하였으며, 회계 전산 프로그램에 접근하여 항목을 조정하고 1,875,100원 송금을 지시하는 등 목사로서 본연의 직무를 벗어나서 교회 재정관리 전반을 직접적으로 관리하였는데 이는 담임목사로서 직권을 남용한 일”이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외 ‘소송당사자 관계인 피고가 두 번의 당회를 소집하고, 임시당회장을 청한 것’과 ‘(교회 부속건물의 임대료 및 관리비)통장을 임의로 해지 한 것이 증거인멸의 의도가 없다고 보기 어렵다’며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목사라는 점을 감안 할 때 중벌을 면키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횡령한 대부분의 금액을 선한 목적으로 사용한 점과 늦게라도 직원 퇴직금을 지급하기 위해 187만원을 교회통장에 입금한 점, 그리고 선처를 요구하는 220명의 자필 탄원을 고려하여 주문(정직 6개월)과 같이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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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수첩
    • 광야의 소리
    2024-09-09
  • [서임중칼럼] 지도자의 헤드십과 리더십
    파리 올림픽이 끝났다. 올림픽 역사상 대한민국은 이번 파리대회에서 금메달을 가장 많이 획득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대회에서 한국은 금메달 1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1개로 총 33개의 메달을 획득했는데 파리 올림픽에서는 예상을 뛰어넘은 금메달13개, 은메달 9개, 동메달 10개로 32개의 메달을 땄다. 한마디로 국위선양과 체육인들은 물론 국민 축제다. 폭염과 장마보다 더 짜증나는 정치권 뉴스를 날마다 들으면서 불편했던 국민에게 올림픽 금메달 소식은 얼음냉수를 마시는 기분이다. 그런데도 배드민턴 세계 1위의 안세영 선수의 협회를 향한 작심 발언으로 뒤숭숭한 어두운 면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최고 성적을 내고도 개운하지 않다. 협회와 선수의 갈등이 잘 해결되어 한국 체육 문화가 한 단계 발전되기를 바라면서 이즈음에 훌륭한 지도자의 리더십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언제부터인가 양식(良識)있는 사람이라면 오늘의 이 나라 정치지도자에 대해 회의(懷疑)한다. 그 발원지를 대부분 국민은 여의도 1번지를 지목한다. 선량(選良)들의 시정잡배만도 못한 언행을 우리는 날마다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되면서 뉴스 시간이면 TV 채널을 돌려 마음이 구겨지지 않는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무엇인가 한참 잘못되어 가는 현상이다. 어디 정치지도자뿐이겠는가 교회 지도자에 대한 신뢰와 존경도 옛이야기로 들리는 아픈 시대를 우리는 살아간다. Ph. D. 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 교회 지도자의 지도력에 관한 내용을 조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조사된 바에 의하면 교회 성도들의 공통점 하나가 교회 지도자의 지도력에 대한 회의(懷疑)였다. 여기서 말하는 지도자란 목사와 장로에 국한 시켰고 지도력의 회의(懷疑)란 목사와 장로의 지도력에 대한 이해를 헤드십(headship)으로 인식을 하고 리더십(leadership)으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목사로서 자괴지심(自愧之心)에 아파하면서 보다 더 바람직한 목회 지도자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었다.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안세영 선수가 한 말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내가 목표를 잡고 꿈을 이루기까지 원동력은 제 분노였다.”는 아픈 말을 지도자들은 새겨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헤드십을 정해진 의무의 강제적 이행을 구하기 위하여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명령하며 또한 이와 같은 작용을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리더십은 상대방의 진보와 향상을 도모하며 공동체의 목표를 달성하며 공동체 구성원들이 우리라는 공동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다. 공동체는 말할 것 없이 이와 같은 리더십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지도자들에게서 리더십이 아닌 헤드십이 발휘된다면 이는 참으로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오늘의 교회 지도자들이 예수의 리더십이 아닌 헤드십을 발휘하는데서 오늘의 교회가 갈등과 무질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교회의 평안과 부흥은 올바른 리더십에서 가능하며 그로부터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향하여 성장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워지게 됨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모든 분야의 지도자도 다를 바 없다. 신학적 인간론에서 인간을 Being이 아닌 Becoming으로 정의한다. 즉 존재가 아닌 존재화, 곧 되었다가 아니라 되어져 간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지도자들의 약점이 무엇이 ‘되었다’라는 의식에서부터 걸음이 잘못되어 가고 있기에 그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공동체의 아픔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게 되는 것을 본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되어있지 않는 지도자의 지도력의 문제인 것이다. 여기서 발생되는 것이 지배자로서의 자기 모순에 빠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직분을 마치 계급사회의 직무로 오해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지도자가 아닌 지배자로 전락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정직한 이해의 부족에서 오는 현상이며 그로 인하여 공동체 전체가 아파하고 결국에는 파멸에 이르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도자는 항상 이론과 실제, 그리고 가르치는 것과 실제로 행동하는 것의 차이로 고민하게 된다. 정치나 사회교육이나 종교 등, 모든 분야의 공동체는 지도자의 행동철학을 보고 싶어 한다. 이론으로서가 아니라 실천으로서의 지도자를 요구한다는 말이다. 파리 올림픽에서 양궁이나 탁구의 경우 지도자의 헤드십이 아닌 리더십을 언론은 조명한 것을 공감한다. 말할 것 없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배울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리더십은 긍휼이었고 겸손이었고 섬김이었다. 그것이 훌륭한 지도자의 리더십이다. 논어 위령공편(衛靈公篇)에 보면 살신성인(殺身成仁)의 가르침이 있다. 자신을 죽여서라도 인(仁)을 이룬다는 뜻인데 “높은 뜻을 지닌 선비와 어진 사람은 삶을 구하여 ‘인’을 저버리지 않으며 자신을 죽여서라도 ‘인’을 이룬다‘(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고 했다. 이 가르침으로 우리의 선조들은 공(公)을 위해 사(私)를 희생하는 것은 최고의 삶의 가치로 알았고 이를 수행하는 것이 지고한 군자의 길임을 가르쳤던 것이다. 좁쌀만 한 힘이 있어도 그 힘을 못 써먹어 안달하는 소인배, 명예와 권력을 가지게 되면 별별 희한한 짓을 당연한 듯 행사하는 졸부들,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가 아니라 ‘내가 있기에 네가 있다.’는 자가당착의 병리적 현상에 젖어있는 사람이 지도자로 있는 한 공리(公利)는 요원한 것이다. 세월이 그래서인가? 요즘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서 ‘내 탓이오’가 없고 하나같이 너의 잘못으로 돌리면서 ‘나는 소크라테스요 너는 돼지’라는 논리로 예수님이 그렇게 경계했던 바리새인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으니 걱정스럽기만 하다. 대한배드민턴협회 국가대표 운영지침에 ‘선수들은 지도자의 지시와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와 ‘담당 지도자의 허락없이는 훈련에 불참하거나 훈련장을 이탈할 수 없다’는 조항이 대한양궁협회 국가대표 운영지침과 비교되고 언론에 조명되는 이유는 헤드십과 리더십을 통한 결과가 어떤 것인가를 파리 올림픽 경기에서 배드민턴 선수와 양궁 선수의 결과를 통해서 확인되면서 훌륭한 지도자의 리더십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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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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