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2-0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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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자칼럼] 35년이 지난 지금, 난 사업가인가? 사역자인가?
    젊은 20대 시절,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십대 사역에 뛰어 들었고, 벌써 35년이 지났다. 35년이 지난 지금 가끔 난 내가 사업을 하고 있는지 사역을 하고 있는지 하나님 앞에 진지하게 물을 때가 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열심히 사역을 하고 있는 듯 하지만,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사업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그러면서 다시 되묻는다. “나는 청소년 사업을 하고 있나? 사역을 하고 있나?” 사업과 사역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업은 인간이 뜻을 갖고, 인간이 계획을 세우고, 인간의 노력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고, 사역은 하나님이 뜻을 세우고, 하나님이 인도하고, 하나님이 통치하며 인간이 그 일에 동참하는 것을 말한다. 사업과 사역의 의미가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주체이다. “일의 주체가 누구인가?” 사역을 하려고 할 때, 나의 죄성 때문에 사업을 하기도 했고, 사업을 하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사역의 중심으로 돌아서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 35년 간 부단히도 많은 노력을 해왔던 것 같다. 사업이 아닌 사역을 하고 싶어서… 진정한 사역자가 되고 싶어서…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진정한 사역자가 되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몸부림쳤던 나의 작은 깨달음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 나의 계획, 나의 뜻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 말이 쉬우면서도 어렵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우리의 지성과 경험을 사용하신다. 하지만 진정한 사역 속에서는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기 원하셨다. 이 한 문장을 깨닫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 둘째, 하나님과의 동행이 참 사역이 된다. 내 뜻이 얼마나 앞섰는가? 그래서 하나님의 사역이 얼마나 원했는가? 청소년의 우울, 청소년의 변화, 모두 좋다. 그러나 난 항상 주님보다 먼저였다. 셋째, 주님이 앞서고 난 동역할 때, 열매가 나타난다. 어떤 때는 그렇게 열심히 사업해도 열매가 없었다. 어느 때는 그렇게 내려놓아도 주님이 일하심에 열매가 풍성했다. 먼저, 과거에 하나님이 어떻게 일했고,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보아야 사역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 한국교회를 예로 들어보자. 북한의 경우, 1907년에 평양 대부흥을 주셨다. 그러나 공산 정권으로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함께 우상이 득세했다. 누가 더 강한 우상을 무너뜨릴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고난의 행군을 통해 우상을 무너뜨렸다. 지금 북한은 하나님이 새롭게 일하고 있다. 천천히, 천천히 지하 속에서 순수성을 가진 성도를 세우며 다시 영혼을 살리고 계신다. 남한의 경우, 경제 부흥과 동시에 교회 부흥을 주셨다. 세계 10대 교회가 한국이 있을 정도로 한국 교회는 큰 부흥을 경험했다. 그러나 세속화로 인해 교회가 힘을 잃어가고 있다. 지금 하나님은 남한 교회에 남긴 순수한 사역자를 세우고, 찾아내고, 훈련시키고 있다. 나는 과연 교회 사업가인가? 교회 사역자인가? 말은 교회 사역자, 청소년 사역자라고 하지만 나도 모르게 청소년 사업가로 변질되어 가고 있지는 않은가? 십대의벗을 하다 20년 전부터 다음세대를 외쳤지만 지금까지 변한 것은 없다. 교회마다 다음세대란 말은 그럴듯하게 하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16년 전에 개척을 했고, 교회를 통해 다음세대를 회복이라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지만, 이 사역을 하면서도 마음이 아프다. “주님께서 어떻게 일하실지? 다음세대를 위해 주님이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한국 교회의 청소년 사역자들이여! 같이 고민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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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2
  • [김기현 목사] 사울은 천천
    창을 들고 앉아 있는 사울은 고립무원이다. 사방팔방이 적들로 우글거린다. 처음에는 다윗 한 명만 적이었는데, 적 곁의 적이 하나둘 늘어난다. 듬직한 요나단은 다윗을 구명하는 탄원을 하지 않나, 신하 중에 언제부턴가 다윗에 줄을 대지 않나, 어찌 키운 내 딸인데, 그 죽일 놈을 사랑한다니. 최악은 그도 그가 사랑스럽다. 신앙 좋지, 인품 좋지, 실력 좋지, 뭐 하나 나무랄 것도 없는 그가 충성심도 단연 최고다. 사울은 만인에게서, 자신에게서 스스로 소외되었고, 그런 다윗이 밉고, 그런 자신이 미워 죽을 것 같다. 나는 오랫동안 선택받은 왕인 사울이 왜 버림받고 실패했는지, 가족과 장인과 아내에게서 홀대받던 다윗은 추앙받는 최고의 왕이 되고, 군주의 모델이 되었는지, 그 갈림길이 어디인지 퍽 궁금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자 건국자가 아닌가? 그 정도면 태조 왕건, 태조 이성계급인데, 그의 최후는 너무 쓸쓸하고 아리다. 무엇이 그를 무너뜨렸을까? 그는 지금이라도 제정신 차리고 예의 그 용감무쌍하고 총기 넘치는 초기의 사울로 돌아갈 순 없을까? 창을 들 것인가, 시를 쓸 것인가? 분노, 시기, 적대감과 열패감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둘을 갈랐다. 다윗이라고 그런 감정이 없을 리 만무하다. 시편을 보라. 폭력으로 분출하느냐, 일기장에 털어놓느냐의 차이일 뿐. 그 무언가에 들들 볶이고 미쳐 돌아버릴 것만 같을 때, 한 사람은 창을 던졌고 또 한 사람은 시를 썼다. 던진 창은 부메랑이 되어 자기 배에 꽂혔고, 외롭고 무서울 때 그 감정을 글로 남겼더니 절창이 되었다. 운명은 결정된 것이 아니라 결정한 것이다. 창을 던질 것인가, 글을 쓸 것인가, 선택하라. 그것이 그대의 데스트니다. ‘다윗과 골리앗’은 하나의 대명사요 고사성어로 인류 역사가 존재하는 동안, 내내 전달되고 전파될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그의 공적을 기리는 여인네들의 춤과 노래가 없을 수 없다. 그것이 사울의 심기를 건드린다. 다윗은 만만이고, 나는 천천이라. 그의 전공에 비해 10분의 1이잖아. 그의 인기가 날로 치솟고, 나는 바닥을 치면, 왕좌가 위험하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만은 없다. 일거수일투족을 의심하고 호시탐탐 염탐하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를 죽여야 내가 산다. 사울은 비운의 왕이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전대미문의 길, 인간 왕이 다스리는 국가의 길을 열어야 역사적 사명을 안고 태어났다. 그러나 선례가 없다. 비교 대상이 없다. 남의 나라는 모방하지 말고, 하나님을 모방하라는데, 뭔가 손에 잡혀야, 눈에 보여야 배우든, 따라 하든 할 텐데. 도무지 오리무중이다. 앞길에는 아무도 없고, 그가 맨 앞에 홀로 섰다. 뒤에서는 다윗이 맹추격하는 중이다. 나아가 길을 열 수 없다면, 돌아서 다윗을 쳐내는 수밖에. 사울은 비교 대상을 잘못 골랐다. 나와 남을 비교할 것도, 나의 최악과 남의 최고를 견줄 것도 아니다. 나의 장점을 무참히 깎아내리고, 남의 장점은 한없이 우러르고, 나의 단점에는 현미경을 들이대고, 남의 장점은 망원경으로 숭배할 일이 아니다. 남과 비교하지 마라. 내가 내게 기준이다. 나는 나다. 나는 딱 하나다. 비교 불가의 존재다. 대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를 비교하라. 어제는 백백, 오늘은 천천, 내일은 만만이 될지니. (삼상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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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2
  • [부산기독교이야기] 전쟁기 부산 교계: 군목제도
    군목제도의 시작 6.25전쟁은 한국군 내의 군목(軍牧) 병과를 설치하는 계기가 된다. 이렇게 시작된 군목 제도는 이후 한국교회 성장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에서의 군목 제도는 전적으로 미국의 것을 그대로 모방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전쟁으로 미군과 함께 군목이 복무하게 됨으로서 한국군에도 군목 제도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군 선교를 제일 처음 고려한 이는 해군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손원일(孫元一, 1909-1989) 제독이었다. 감리교 손정도(孫貞道, 1882-1931) 목사의 아들이기도 한 손 제독은 전쟁 전인 1948년 해군에서 정훈 장교 형식으로 착수하게 한 바 있으나 공식적인 병과를 고려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전쟁이 발발하여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교회지도자들의 기도운동이 일어났고, 이 기도운동과 함께 군에서의 목회 혹은 정훈활동의 필요성을 인식한 손원일 제독과 교회 지도자들은 군목제도를 청원하게 된다. 한국에서의 군목제도의 기원에 대해서는 상의한 견해가 있지만, 전쟁 기간 중 군목제도에 대한 복수의 청원이 결국 군목 병과를 시작하는 배경이 된다. 군목 제도는 1950년 11월 21일 이승만 대통령의 훈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 이전인 1950년 8월 피난지 부산에서 교계 대표들, 곧 한경직 박종율 박치순 유형기 목사 등이 모여 군목 임명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고, 이 사실을 이승만 대통령에게 진언하였다. 1950년 9월에는 선교사 신분으로 미군 군종부 문관으로 임명된 캐럴(George Carroll) 신부와 감리교 선교사 윌리엄 쇼(서위렴, William Show) 목사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군종 제도 창설을 건의하였다. 그리고 미군 극동사령부 군종과장 이븐 베넷(Ivan L. Bennett) 목사는 미군과 한국정부 사이의 가교역할을 했다. 그 결과 1950년 8월 1일부터 미군 군종부 문관으로 활동한 이들은 신성모 국방장관, 그리고 국무총리를 방문하여 군종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하여 적극적인 협력을 얻었고 9월 5일에는 이승만 대통령을 면담하고 군종제도 창설에 대해 청원하였다. 9월 18일에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구세군 대표들로 ‘군종제도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천주교의 캐럴 신부와 장로교의 한경직, 감리교의 유영기 목사를 대표로 선출하였다. 이들 대표들은 19일 대통령을 면담하고 6.25 전쟁은 사상전이므로 정훈활동이 필요하고 미군이나 유엔군과 같은 군종제도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교회 지도자들의 요청에 따라 그 필요성을 공감하고 1950년 11월 21일 육군참모총장 정일권 소장에게 군목제도 설치 훈시를 내렸다고 한다. 대통령의 훈시에 따라 정일권 육군참모총장은 군목제도를 창설하게 했고, 결국 1951년 2월 7일 군목제도가 시작되었다. 당시 군 예산이 부족하여 피복 식량 등 병참 관계는 군에서 담당하되 군종활동 경비는 파송하는 각 교단이 부담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첫 군목이 박대선, 전종옥, 박치순, 김형도, 윤창덕, 김윤승 등 39명의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목사와 천주교 신부들이었다. 이들은 4주간의 교육을 받고 1951년 4월부터 각 일선부대와 병원 등에 배치되었다. 제1기 군목인 박치순은 제주 훈련소에서 일했는데, 그가 여기서 처음으로 군인교회를 세우고 군인들의 정신생활을 지도하였다고 한다. 1951년 2월부터 군목 제도가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독립된 병과로서의 군종 병과라기보다는 민간인 목사 신분으로 전쟁 중 군선교 활동을 할 수 있는 허락을 받은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군종의 신분은 현역 군인보다는 문관이 더 바람직하다는 이 대통령의 의견을 따른 것이었다. 이와는 별도로 김영환(金英煥), 지송암(池松岩) 두 목사는 전쟁이 발발하자 광주에 있던 제3육군병원을 방문하여 전도하기 시작했는데 병원장인 장희섭(鄭熙燮) 대령은 이들에게 ‘종군 목사’라는 직함을 주었다고 한다. 정희섭 대령은 목사의 아들로서 군선교 활동을 가능하게 했는데, 김인서는 이것이 군목 활동의 시작이라고 보고 있다. 그 후 장로교의 권연호(權連鎬) 목사와 각 교파 지도자들과 주한 외국 선교부 관계자가 연합하여 외국에서와 같은 군목 제도 창설을 이승만 대통령에게 공식적으로 진언하였고, 대통령은 이를 허락하여 육군 안에 문관의 자격으로 군목 업무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종합적으로 판단해 볼 때 전쟁이 발발하자 복수의 교계 인사들에 의해 군선교를 위한 시도가 있었지만, 교회 지도자들과 외국 선교부 관계자들이 군 선교차원에서 군목 활동을 대통령에게 진언하여 민간 차원의 문관 신분의 군목 제도가 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앞에서 지적한 바처럼 처음에는 무보수 문관 신분으로 군목 활동을 시작했으나 1952년 6월에는 유급 문관으로 격상되었고, 1954년 1월 12일에는 군종을 독립된 병과(兵科)로 인정함으로서 군종감실이 설치되었고, 12월 13일에는 육군에서 군목을 현역 장교로 임관하여 이 제도가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52년 초까지 80명의 군목이 각 부대에 배치되었는데, 이중 51.9%가 예수교 장로회 소속 목사였다. 1954년 4월 당시 군목 수는 199명으로 증가했고, 1955년 8월에는 352명을 증가되었다. **혹 길면 마지막 부분 짤라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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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2
  • [서임중칼럼] Attitude (마음관리)
    세계 최초로 16M D램을 개발한 엔지니어요 삼성의 반도체 신화를 이끌어낸 탁월한 CEO이며 정보통신부 장관까지, IT시대의 핵심인재로 살아온 진대제 박사의 Mind는 Attitude다. 즉 사람, 물건 등에 대한 태도로써 마음가짐이 어떠냐가 그의 성공에 이르는 삶의 태도였다. 정보통신부 장관 재임기간이던 2005년 3월 9일 아침 그는 상공회의소 조찬 간담회에 초청되어 파워포인트를 열고 `인생을 100점짜리로 만들기 위한 조건’을 찾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 내용은, 먼저 알파벳을 순서대로 두고 그에 따라 숫자를 붙여준다. 즉 A에 1, B에 2, C에 3...과 같은 방식으로 Z(26)까지 숫자를 붙인다. 그런 다음 어떤 단어의 알파벳에 붙여진 숫자를 모두 더해 100이 되는 단어를 찾는 것이다. 진 장관은 모인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100이 되는 단어가 결코 쉽지 않음을 전개 해 나갔다. “열심히 일하면 될까요? hard work, 98점, 그렇다면 지식이 많으면? knowledge는 96점, 사랑을 하면? love 54점, 운(運)으로 될까요? luck 47점, 돈이 많으면 되나요? money는 72점, 리더십은요? leadership 89점입니다. 그럼 뭘까요? 답은 attitude입니다. ‘태도’ ‘마음가짐’ 즉 인생은 `마음먹기’에 따라 100점짜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05년 4월 15일 진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을 수행하여 터키 앙카라를 방문한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100점짜리 인생의 조건 2탄’을 추가로 공개했다. 바로 ‘스트레스(stress)’와 ‘휴식 취하기(take a rest)’였다. 100점 인생의 조건을 공개한 뒤 많은 네티즌들이 호응해 줬고 자신들이 알파벳을 조합해 100점짜리를 만들어 보내왔다고 말하는 진 장관은, 그 가운데 ‘스트레스(stress)’와 ‘휴식 취하기(take a rest)’가 있었다"고 전했다. 100점 인생엔 그만큼 스트레스도 따르기 마련이며 또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그럴듯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우연한 조합치고는 참으로 심오한 인생철학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100점짜리 골퍼가 되기 위한 비결에 대한 이야기도 마음관리와 닿아 있다. 드라이브를 잘 친다면 driver는 71점, 우드샷을 잘쳐도 wood는 76점, 아이언샷이 좋아도 iron은 56점, 웨지를 잘해도 wedge는 44점, 어프로치를 잘해도 approach는 78점이 된다. 결국 골프에서도 마지막 퍼터를 잘해야 putter(16+21+20+20+5+18)가 100점이 된다. 우연치고는 신기할 정도다. 우리네 일상에 덕담(德談)이란 것이 있다. 상대방이 잘되기를 빌어 주는 말이 덕담이다. 덕담은 실제로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른바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한다. 즉 ‘자기충족적 예언’인 것이다. ‘피그말리온’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키프로스의 왕으로 ‘아프로디테’ 여신상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베누스’ 여신이 그의 간절한 마음에 응답하여 여신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이야기에서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말이 교육철학에서 상용된다. 우리의 일상용어 중에 “내 그럴 줄 알았다.”와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라는 말이 있다. “내 그럴 줄 알았다.”는 뜻은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다는 절망언어며 “그럴 수 있지 뭐”는 다시 할 수 있다는 희망언어다. 즉 attitude다. ‘태도’ ‘마음가짐’ 즉 인생은 `마음먹기’에 따라 100점짜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원효대사는 세상의 모든 것은 그 대상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변화될 수 있는 것이라고 깨우쳤는데 그것이 불교 화엄경(華嚴經)에 기록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다. <心生故 種種法生 心滅故 龕墳不二>, 즉 사람의 행복과 불행은 마음의 생각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불행해지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해지는 것이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게 되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내 마음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한 것이다. 어느 추운 겨울 날 어떤 사람이 징검다리를 건너다가 잘못하여 물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자 이 사람은 “어떤 놈이 다리를 이렇게 놓았어?” 라고 불평을 하면서 마음의 화를 토해냈다. 다리에 발을 헛디딘 것은 자신인데 오히려 발 젖지 말고 냇물을 건너라고 징검다리를 놓아 준 사람을 욕했다.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너 때문에 징검다리를 제대로 건너지 못하고 헛디디는 것이 아닌데 우리는 종종 너 때문이라고 탓하는 경우가 많다. 얼굴에 침 뱉기지만 우리 민족의 약점은 매사를 남의 탓으로 돌리기 익숙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배가 아프면 사촌이 땅을 샀냐, 시집가서 소박맞으면 궁합 탓, 쌀독에 쌀 떨어지면 며느리 밥 많이 먹는 탓, 밥이 질면 땔나무 탓, 떡이 설면 안반(시루) 탓, 글 못 쓰는 선비는 지필묵 탓, 서툰 목수는 연장 탓, 일이 꼬이면 조상 묘 자리 탓, 가난하면 부모 탓, 조상 탓을 한다. 이런 것들을 보면 우리네 문화는 오만 가지가 남 탓이다. 한 때 김수환 추기경이 주창한 <내 탓이오>는 마음관리를 잘 하자는 천주교 생활 운동으로서 우리의 삶을 보다 아름답게 다듬었다. 그릇에 담겨진 어떤 것이 둥근 것이 아니라 그릇이 둥글기 때문에 담겨진 것이 둥글게 보인다. 네모나 세모 그릇에 무엇을 담으면 그렇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내 마음이 어떠냐에 따라 내 언어나 행동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행복과 불행은 환경과 상황이 아니라 Attitude, 마음먹기에 달렸다. 그래서 성경 잠언4:23절에는 이에 대한 근원적인 말씀이 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곧 ‘살고 죽는 것도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씀이다. 마음 관리가 가장 귀한 것이라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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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15
  • [성서연구] 내 영혼에 힘을 주어
    저는 33년째 담임 목사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설교를 참 많이도 했습니다. 심방도 많이 했습니다. 온갖 회의도 정말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사역의 종착지점이 가까워지면서 지난날의 목회를 자주 돌아보게 됩니다. 그동안 많은 목회자들이 목회의 목표를 교회의 부흥에 두었는데, 이것이 심각한 실패를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목회자를 부르신 목적은 주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의 부흥에만 매달렸습니다. 더구나 부흥이란 것이 주님의 말씀을 바르게 믿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라면 당연히 부흥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맞겠지만, 한국교회에서의 부흥이란 단지 사람이 많아지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많으면 부흥한 교회요, 부흥한 교회의 목사는 목회에 성공한 사람으로 인정 되었습니다. 교인들은 이런 목사에게 박수를 보냈고, 목사는 자신을 성공한 목회자로 자부했습니다. 이 과정에 많은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교회의 목사는 한없이 교만해졌고, 교회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했습니다. 사회적 지탄을 받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한국교회 부흥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자랑했지만, 오히려 실망한 이들이 교회를 떠났습니다. 또 사람이 많이 모이지 않는 교회의 목회자들은 깊은 좌절에 빠졌고, 자신을 실패한 목사로 여기는 열등감으로 고통 받았습니다. 성공한 목사로 자부하던 사람도 상처를 받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목회자들은 그로 인한 혜택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막상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깊은 상처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훌륭해 보이던 교인들이 갈라져 싸우는 모습을 보고 은퇴하면 주님 앞에 갈 때까지 후회하게 되는 아픔을 겪습니다. 되돌아보니 목회의 본질은 사람을 많이 모으는 부흥은 아닙니다. 목회의 초점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데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나님의 말씀만 전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만 바르게 전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주님께서는 <너 수고 많았어>라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 본문 말씀은 매우 은혜가 됩니다. 시편 138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주석가들은 본 시가 다윗이 말년에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보면서 지은 감사의 시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과거를 돌아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정말 많은 은혜를 주셨음을 알았습니다. 3절은 그 핵심입니다.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 다윗은 숱한 위기와 죽음의 사선을 넘어야 했습니다. 어려울 때가 정말 많았습니다. 그때가 <간구하는 날>이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간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도움이 되지 않거나 못할 때, 하나님께 간구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마다 다윗에게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다윗은 응답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힘과 용기를 얻어 다시 일어서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어떻게 도우셨을까요? <내 영혼에 힘을 주어>라고 했습니다. 모든 힘 중에 영혼에 주어지는 힘이 최고입니다. 어떤 이는 돈이나 지식이나 권력의 힘을 믿지만, 영혼에 힘이 충만한 사람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영혼의 힘이 최고입니다. 다윗은 비록 전쟁터를 누비고, 쫓기며 노숙을 해도 영혼에는 기쁨과 감사가 충만했습니다. 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약해 보였지만, 강했습니다. 그 모진 고난에서도 그는 강하게 버텼습니다. 하나님이 강하시기에 그도 강할 수 있었습니다. 앞에서 목회자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목회자도 본질에 충실하려면 다윗처럼 오직 하나님께 간구하여 영혼에 힘을 얻어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을 전하는 본질에 이를 수 있습니다. 성도들도 영혼에 힘을 얻어 강해져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3절이 우리에게도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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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15
  • [독일이야기] “관용과 인내”
    독일은 통일 된 후 경제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전반적으로 실업률이 높아졌다. 옛 서독지역도 10%를 상회하였으나 옛 동독지역은 20%에 육박하면서 서독 쪽의 2배나 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통일되고 나서 보니 동독에 쓸 만한 공장이 별로 없었고 그것이 서독 기업에 인수되어 제대로 돌아가고 또 새로운 일자리들이 만들어지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이다. 2류 독일인이라는 폄하에다가 높은 실업률에 내몰리면서 동독사람들의 불만은 쌓여갔다. 그런 가운데 과거 동독 공산당(SED) 멤버들을 중심으로 민사당(PDS)이라는 정당이 창당되었다. 이 당은 스탈린전제주의로부터는 탈피했으나, 반자본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 정책을 앞세웠다. 그런 민사당이 통일이 된지 불과 3년 뒤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놀라운 지지율을 얻었다. 특히 베를린을 둘러싼 브란덴부르그주에서는 21%를 득표하여 콜 수상의 기민련(CDU)를 물리치고 제 2당이 되었다. 그러면서 제 1당인 사민당(SPD)과 함께 연립주정부를 구성하니 어찌 보면 옛 사회주의정당이 다시 정권을 잡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이처럼 민사당은 동독 전 지역에서 높은 지지율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에서 반자본주의정당은 오래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민사당은 점차로 변화되면서 자본주의체제를 인정하고 친근로자적인 정당이 되면서 서독의 거대정당인 사민당보다 좌측에 자리매김을 해나갔다. 훗날 민사당은 사민당내에서 탈당한 사람들이 만든 정당과 합당하여 좌파당(Die Linke)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정당이 되었다. 그러면서 이 당은 동독지역의 한계를 벗어나 전국정당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메르켈의 3기 집권 시(2013~17년) 두 거대정당 즉 기독연합당과 사민당이 대연정을 구성했을 때에, 이 좌파당은 제 1 야당이 되어 그 존재감을 부각하기도 했다. 지금은 지지율이 좀 떨어졌지만, 가장 진보적인 정책을 내세우는 국민정당으로 독일 정치계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만약 우리나라에서 남북이 통일된 후 옛 북한 노동당의 멤버들이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을 만들고 그 정당이 북한 지역에서 큰 지지를 받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독일의 통일과정을 생각해본다면 충분히 예견 가능한 일이다. 남한국민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할 수 있을까? 대단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독일이 참 대단하다 여겨진다. 지금 누가 독일을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국가라고 생각하겠는가? 통일독일은 삼권분립의 자유 민주주주의가 세계에서 가장 잘 실현되면서 언론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된 나라 중 하나가 아닌가? 그러나 독일은 다른 여타의 유럽제국과 달리 이념으로 분단된 두 나라가 합쳐서 다시 하나로 통일하는 과정을 겪은 나라이다. 그 과정에서 옛 동독의 사람들은 오랫동안 몸에 배어있는 사회주의 이념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했고, 그러기에 민사당과 같은 정당이 일어나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이런 정치현실이 충분히 큰 갈등과 분란을 야기할 상황이었지만, 독일 사회는 그것을 포용하고 수용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서 민사당은 이념의 색깔이 옅어진 채 마침내 독일 사회가 용인하는 국민정당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그 사회와 국민들이 그만큼 나와 다른 것을 수용할 수 있는 관용과 인내의 사회였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국민들이 진영논리와 고착된 담론에 사로잡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아 토론문화가 위축되어 있었다면 동서독의 진정한 통일은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독일사회의 성숙한 모습은 통일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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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15
  • [시사칼럼] 유튜브, 당신이 바로 매체입니다
    이 달 초하루(한국 시간), 암 투병 중이던 이제 약관(弱冠)을 갓 넘긴 나이의 미국인 유튜버 테크노블레이드(본명 알렉스)가 아버지를 통해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는 동영상이 공개되어 1,300만 명이 넘는(당시) 구독자들을 슬프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 “만일 당신이 이 영상을 보고 있다면, 나는 죽은 것이다”로 시작되는 고인의 마지막 말은 “모두들 오래토록 행복하게 잘(long, prosperous, happy)” 지내라는 인사로 끝을 맺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최근 며칠 사이 한국은 한 악성 유튜버(gzss, vellado)의 형제가 청와대 행정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세상이 시끌벅적했습니다(현재 사표). 여기서 “유튜버”란 유튜브를 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유튜브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온 세상을 울리기도 분노하게도 하는 걸까요? 2005년 2월 당시 한국 나이로 27세였던 자웨드 카림(Jawed Karim), 28세였던 채드 헐리(Chad Hurley), 그리고 가장 연장자이자 29세였던 스티브 첸(Steve Chen)은 그때까지 존재하지 않던 인터넷 사이트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1년 뒤인 2006년 이들이 창업한 회사가 구글에 16억 5,000만 달러 즉 한화로 1조 5,800억 원에 팔렸습니다. 세 사람이 똑같이 나눠가져도 한 사람 당 5,000억 원 이상을 순식간에 벌어들인 셈이 되었는데, 그게 바로 “유튜브”였습니다. 그런데 이들도 자신들이 만든 이것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스티브 첸은 한 인터뷰에서 그저 보고 싶은 동영상이 있었는데 어떻게 찾을지를 몰라 궁리하다가 이런 채널을 하나 만들면 편리하겠다 싶어서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세 명의 젊은 창업자들은 처음에 회사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 무척 진지하게 고민하고 회의를 거듭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정한 원칙이 있었는데,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말하기 쉽고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제목이어야 하고, 절대로 알파벳 철자로 7자를 넘지 말아야 하며, 두 음절로 이루어지되 각각의 의미가 있어야 하는데 하나는 소셜(social) 또 하나는 미디어(media)의 의미를 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채드 헐리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홀연 튀어나온 이름이 바로 “유튜브(YouTube)”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유”는 물론 영어로 당신, 너라는 뜻이고 “튜브”는 통로나 당시 TV를 가리키는 단어였지요. 즉, 유튜브란 말은 ‘당신이 곧 튜브다’, ‘당신이 곧 미디어다’, ‘당신이 곧 매체다’ 이런 뜻을 가진 말이었다는 뜻입니다. 유튜브가 어떻게 인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었을까요? 누구나 영상제작자요 감독이 될 수 있고, 동시에 누구나 심지어 동물조차도 슈퍼스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좋든 싫든 우리는 현재 유튜브의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유튜브는 어떤 접점이 있을까요? 서울 지역의 한 교회는 찬양에 집중해서 엄청난 투자를 한 끝에 유튜브에 올린 그 교회의 찬양 동영상들이 합쳐서 1억 조회 수를 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룬 적이 있습니다. 벌써 일 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런가 하면 각종 강의와 영상으로 기독교계의 스타로 일약 발돋움한 전도사님이나 집사님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차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유튜브를 복음을 전하는 매체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성세대보다 훨씬 더 유튜브라든지 현대인터넷문명에 익숙한 세대들에게 놀라운 기회의 문이 열렸습니다. 기대가 됩니다. 하지만 유튜브는 반드시 인터넷 사이트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매체(미디어)”라는 말은 유튜브를 통해서 처음으로 등장한 개념도 아닙니다. 기독교가 시작된 이래로 언제나, ‘당신이 곧 복음을 전하는 통로다’, 즉 ‘당신이 매체(미디어)다’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튜브가 아니라 인터넷 자체가 존재하지도 않던 시절부터 우리는 늘 그렇게 복음의 전달자로 살았습니다. 그간 대면예배를 드리지 못해 우리는 유튜브에 많은 빚을 졌습니다. 이제 그 빚을 다른 각도로 갚아야 할 때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복음 전도가 어렵다고 하는 이 시대에, 물론 인터넷 유튜브를 활용해서도 힘써야 하겠지만, 바로 나 자신이 예수의 유튜브가 되어 아름다운 소식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유-튜브, 즉 당신이 바로 복음의 유튜브입니다. 우리가 바로 복음의 유튜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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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15
  • [교회와세금] 교회의 취득세 및 등록세의 납부와 면세 기준
    취득세(acquisition tax)란 일정한 자산을 매매 교환 증여 등의 방법으로 취득한 경우 납부해야 할 지방세 항목이다. 2022년 국회예산정책처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20년 취득세 납부액은 총29.5조원으로 전년대비 5.6조원(23.5%)이 증가하였다. 또 지방세 총수입 102.3조의 28.9%를 차지하고 있다. 표준세율은 주택은 1~3%, 주택외 부동산은 2.3~4%, 기타 부동산외의 경우는 2~7% 수준이다. 취득세의 세율은 대도시 등 과밀억제권역내 법인이나 사치성 재산의 취득에 대하여 중과세되며, 법인의 주택 취득과 개인의 다주택 취득도 중과세된다. 납세의무자는 과세대상의 취득일로부터 60일 이내에 취득세를 신고・납부해야 하며, 또 취득후 등기나 등록을 하는 경우 등록면허세를 납부하여야 한다. 등록면허세(registration license tax)는 각종 등기・등록과 면허에 대해 과세하는 지방세로서 2020년도 징수액은 총2.1조원이다. 등록면허세율은 부동산 등기의 경우 소유권 보존 등기 시 0.8%, 유상 소유권 이전 등기 시 2.0%의 세율이 적용된다. 차량은 영업용 차량 및 비영업용 경차는 2.0%, 비영업용 승용차는 5.0%의 세율이 적용된다. 그러면 이러한 취득세 및 등록면허세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Church)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그 특징은 크게 다음과 같다. 첫째, 취득세의 경우 교회가 고유목적에 직접 사용하기 위해 구입한 토지와 건물부동산에 대해서는 타 종교단체 및 공익법인과 동일하게 취득세가 면제된다. 즉 예배에 사용할 교회당과 교육관, 기도원 등을 취득한 경우 세금이 면제된다. 도서관도 도서관법 31조에 따라 면제된다. 그러나 고유목적과 직접 관련되지 않는 선교원, 영어유치원, 납골당, 공원묘지 등은 과세대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경우 주의해야 할 것은 교회가 고유목적을 위해 자산을 취득한 경우 그 목적에 맞게 3년 이상 사용을 하여야 한다. 둘째, 교회가 고유목적이 아닌 다른 용도로 만약 사용을 변경하는 경우 소급하여 취득세가 부과될 수 있음을 주지하여야 한다(지방세특례제한법 50조). 예를 들어 교회가 선한 목적으로 타지역에 거주하는 학생들을 위해 학사관을 만들어 숙식을 제공하거나 카페를 만들어 지역주민에게 염가로 음료를 제공할 경우 고유목적에서 벗어난 것으로 간주되어, 취득후 3년이 지난 시점에도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폭탄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셋째, 교회사택의 경우에도 담임목사가 거주하는 사택(1건)은 비과세되나 기타 부목사 등의 사택은 과세 대상이 되고, 교회 사찰 관리인이 교회 부속 건물에서 관리를 위해 거주하는 경우에도 고유목적을 벗어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취득세가 부과될 수 있다. 또 자산의 소유를 교회명의로 하지 않고, 담임목사 등 개인 명의로 할 경우 처분시 양도소득세가 발생할 수 있다. 넷째, 등록면허세는 고유목적에 사용되는 부동산의 등기는 취득세와 동일하게 과세가 면제되나, 그 외는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지방세법127조, 지방세특례제한법 50조). 예로 교회 건물과 인접한 빌라를 구입하여 교육관 등으로 사용할 경우 고유목적을 명확히 하여 등록을 한 경우 과세가 면제되나, 그렇지 않으면 세금이 부과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외에서 물품을 구입하여 반입하는 경우 관세가 부과될 수 있으나, 이 때에도 고유목적 사용인 경우 과세가 면제될 수 있다. 즉 현행세법은 취득세 납부기준으로 ‘고유목적 사용’을 중요 개념으로 하고 있다. 또 교회를 통한 예배와 신앙생활이 공익에 기여하며, 선한 기관의 모델로서 그 권위가 기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교회는 이러한 사회적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가? 유형 무형 형태의 존재를 넘어 모든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다. 따라서 교회의 고유목적 또한 그리스도를 닮아 세상을 향해 선한 빛과 같은 모습을 지속적으로 나타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세금 문제도 이러한 입장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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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15
  • [은혜의말씀] 애굽에 내린 재앙(6) - 메뚜기, 흑암(출 10:4~11)
    모세가 바로에게 들어가 만일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으면 메뚜기가 온 땅을 덮고 우박을 면하고 남은 모든 것을 먹어치울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럼에도 바로는 요지부동이지요. 그러자 이번에는 바로의 신하들이 왕을 설득합니다.(7절) 다시 바로 앞에 선 모세에게 바로는 어린 아이들은 데려갈 수 없다고 못을 박습니다.(10절) 그리고는 그 말이 이렇습니다. ‘어린 아이를 보내면 하나님이 함께 가는 것이 되기 때문에 결코 보낼 수 없다.’ 바로는 이스라엘 어린이들 마음속에 여호와의 신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아이들에게 이스라엘의 미래가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도 자녀들의 미래가 중요합니다. 영적 의미에서 우리 자녀들이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붙들고,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세속적 가치관이 팽배한 이 시대입니다. 어둠의 영 사단은 세상의 온갖 화려한 문화와 교육의 원리를 가져와 우리 자녀들을 유혹합니다. 말씀의 신앙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은 망합니다. 우리가 다음 세대를 잃으면 교회를 잃는 것입니다. 교회는 다음세대를 향한 꿈이 있습니다. 말씀으로 자란 씨앗이 영적 거목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꿈을 꿉니다. 사랑하는 부모세대 여러분, 우리 아이들이 말씀 우선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가정에서도 주의 사랑과 훈계로 양육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우리 아이들이 평생을 붙잡고 살아나갈 수 있는 말씀을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아홉 번째 재앙은 흑암입니다.(22절)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매 캄캄한 흑암이 삼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삼일 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알아볼 수 없을 만큼의 어둠이 임했습니다. 이에 애굽 사람들은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었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하는 곳에는 어둠의 재앙이 내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아무리 광명한 시대에 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빛을 잃고 어둠에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요 8:12)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는 빛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므로 빛 안에 걸어가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자, 흑암의 재앙을 견디지 못한 바로가 모세를 부릅니다. 그런데 뭐라고 말합니까?(24절) 양과 소는 안 된다. 바로가 끝까지 붙들고 늘어졌던 것은 재산, 물질입니다. 아홉 번째 재앙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몸은 설령 애굽을 떠났다 할지라도 마음만큼은 애굽에 묶어 두겠다는 것입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사단은 이 속삭임으로 뭇 성도를 유혹합니다. 오늘날 물질 만능주의시대 아닙니까? 돈이 신입니다. 돈 앞에는 다 무릎 꿇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말씀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천국 백성인 줄 믿습니다. 때론 우리 소유니까 내 마음대로 하게 합니다. 하지만 내가 가졌다고 내 것이 아닙니다. 명의는 비록 내 이름일지라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께서 쓰시겠다 할 때에 드릴 수 있다는 철저한 청지기임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물질에 자유한 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여기에 모세는 어떻게 대처합니까?(26절) 너무나 분명하고 명쾌합니다. 손해를 보고 혹 불이익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사수하겠습니다. 모세의 신앙입니다. 모세는 지금 바로를 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위에 계신 하나님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사람이나 세상을 두려워하는 자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적당히 타협하고 양보하면, 사단에게 지는 것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믿음에 굳게 서야 할 줄 믿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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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15
  • [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 가정을 교회로 만드는 가정예배(4)
    4. 가정예배, 후속조치도 중요하다 성민교회 교인들은 가정예배를 드린 후에 인증샷을 찍어 홈페이지에 올리고 주일예배 광고시간에 온 교인들이 사진을 같이 보면서 가정예배 드리는 가정들을 응원하고 격려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인증샷을 올린 숫자대로 그 가정의 이름을 적은 제비를 넣고 추첨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예배를 드린 횟수가 많은 가정일수록 추첨에서 당첨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이렇게 한 달에 한 번, 네 가정을 추첨해서 5만원 상당의 가족식사권을 그 자리에서 바로 지급하고 담임목사와 함께 기념촬영을 합니다. 이 가족식사권은 교회 교인사업체에서 사용하도록 교회가 대금을 선지급하고 발행한 것입니다. 동절기에는 해물칼국수를, 그리고 하절기에는 편의점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교인들의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특히 어린 자녀들은 가족식사권을 받아서 식사를 하거나 편의점에서 간식을 구입한 후에는 부모님이 가정예배를 드리자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가정예배 순서지를 챙겨서 예배를 주도하는 아이들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한 해에 한 번 가정예배에 참여하고 있는 가정들이 함께 모여서 가정예배의 노하우도 나누고 애환도 나누는 연합가정예배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서 서로 격려하고 더 나은 가정예배를 위한 아이디어와 힘을 얻는 기회를 삼고 있습니다. 5. 가정예배가 코로나사태 이후의 대안인 까닭 코로나19 이후에 다음 세대 신앙교육에 대한 무엇이 필요할까에 대해 약 250개 교회의 교역자들과 교사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봤습니다. 그랬더니 학부모 신앙교육을 해야 한다, 홈스쿨링이 필요하다, 기존 교회가 잘해야 한다는 등등의 다양한 의견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중 2위를 차지한 답은 바로 정기적인 가정 예배가 정착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1위는 부부와 자녀 간의 신앙적 대화, 친밀감이 다시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코로나 이후 교회교육의 축은 교회에서 가정으로 옮겨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 교회의 제일 큰 특징 중 하나는 가정에서 부모님이 자녀에게 “얘들아, 우리 하나님께서 말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스토리텔링이었습니다. 가정에서 기도할 때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을 훑어내는 그 부모님들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시던 성경의 인물들 이야기와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들이 실은 한국 교회를 지탱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것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녀들을 신앙으로 양육해야 할 30~40대가 성경을 모르고 관심이 없습니다. 자녀들이 교회학교에서 뭘 배우는지도 모릅니다. 30~40대가 이제 아이들을 교회에 던져놓고 자기 마음에 드는 모임을 하러 가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제 교회와 가정이 연계해야 할 너무나 강력한 필요가 생겼습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이런 필요는 더 멀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이것을 당겨왔습니다. 교회는 주일 중심입니다. 주일, 하루, 1시간, 대그룹 중심입니다. 선생님 한 명이 여러 명을 맡습니다. 철저히 이론 중심, 가르침 중심입니다. 이에 비해서 가정은 어떻습니까? 주중 중심, 소그룹 중심, 실천 중심, 배움 중심입니다. 훨씬 더 학습 효과가 높은 환경이 바로 가정입니다. 이제 교회와 가정 이 두 가지가 서로 융화되지 않으면 이제부터는 신앙교육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이제 신앙은 들은 풍월이 아니라 내 삶으로 정착되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귀만 키운 크리스천이 아니라 말씀으로 무장된 실제 삶을 사는 크리스천을 만들기 위해서 가정예배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 가정예배의 정착을 위해서 모든 교회가 앞장서서 노력해가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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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2-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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