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1-25(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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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임중칼럼] 光水風의 교훈
    나는 어릴 때 부모님의 종교를 따라 증산도에 심취했었다. 태을주, 오주, 절후주, 운장주, 갱생주, 칠성경, 진법주, 개벽주, 천지불주를 다 암송하면서 주문을 낮밤으로 외웠다. 이것이 상제님의 가르침에 따라 인류가 相生과 福樂의 지상낙원을 건설해 나가는 진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불교의 經典에 심취되어 한 때 성철, 법정스님의 저서를 탐독했다. 그럼에도 내 삶의 환경은 상생과 복락의 체득은커녕 느낌조차 없는 가난과 질고의 세월이었다. 이런 삶을 이겨내지 못하고 삶을 포기할 즈음에 알지도 못하는 힘에 이끌려 교회로 갔고 처음 예배당에 앉았을 때 그토록 추구하던 상생과 복락을 무의식적으로 온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마흔 살에 목사가 되어 오늘도 목사의 길을 행보한다. 그 옛날 상생과 복락과 더불어 사는 삶을 교회를 통하여 내가 느끼고 경험하고 체득했기에 내가 교회를 통해 체득한 그 기쁨을 전하는 복음의 삶이 나의 삶의 전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교회에서 相生의 아름다움이 아닌 相剋 相衝의 어둠이 짙어지는 것을 보며 느낀다. 무엇인지 모를 濁함으로 영혼이 숨을 쉬지 못하는 영적 고통이 심령폐부까지 밀려들기도 한다.얼마 전 원주 구룡산 중턱에 눈이 부시는 것보다는 마음이 더 부시는 뮤지엄 산(SAN)을 다녀왔다. 일본 건축의 철학자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의 작품이다. 2013년에 개장한 뮤지엄 SAN(Space, Art, Nature)은 자연과 예술이 있는 공간의 머리글자를 딴 이름이 <SAN>이다. 그리고 우리 말 ‘산(山)’이기도 하다. 빛과 물과 바람의 건축가로 알려진 ‘안도’의 교회 작품으로는 오사카의 <빛의 교회>, 홋카이도의 <물의 교회>, 고베의 <바람의 교회>가 있다. 한국에도 ‘안도’의 작품이 몇 개 있지만 특히 제주도 <글라스 하우스>가 있다. 오래 전 자연과 예술이 조화된 공간 글라스 하우스의 <민트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이다. 원주에 세워진 해발 275m에 걸터앉은 뮤지엄 <산>에는 빛, 물, 바람을 재료로 쓰는 안도의 건축 철학이 담겨 있다. 웰컴센터에서 시작해 플라워가든, 워터가든, 본관, 스톤가든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다보면 세상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천국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자연과 하나 된 미술관, 오솔길 지형을 그대로 살린 미술관, 7만여 평의 부지가 자연에 안긴 거대한 작품이 <산>이다. 그 <산>에서 삶을 묵상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절이다. 그리고 빛과 어둠, 땅과 물을 나누고 창조하신 모든 것을 보시고 좋았더라 하시면서 여섯째 날 사람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다스리라 하신 후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창세기 1장이 마무리 된다. 빛과 물과 바람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이다. 어딘들 아름답지 않은 곳이 있겠는가만 원주 <SAN>에서 다시금 하나님의 창조하신 자연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겨보았다. 단절된 하나님과 인간을 이어 주기 위하여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로 인해 단절의 담이 무너지고 수직으로 하나님과 수평으로 인간과의 관계가 이어졌다. 그 십자가 은혜를 깨닫는 사람은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사랑을 마음에 담고 살아간다. 그 삶 자체가 오늘의 천국이다. 역설하면 사람과 사람의 이어짐이 멈추고 단절된다면 하나님과의 이어짐도 단절된다. 하나님과 단절 되는 사람은 사람과의 이어짐도 멈춘다. 그것이 오늘의 지옥이다. 빛과 물과 공기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모양과 질량은 다르지만 속성은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빛은 따뜻해서 사랑으로 표현한다. 빛은 차별 없이 모든 곳을 비춘다. 그래서 진정한 평등이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 겸손으로 표현한다. 上善若水가 그래서 명언이다. 물의 흐름에는 삶의 지혜가 담겨있고 그 이치가 내재되어 있다. 바람은 공기의 흐름이다. 공기는 생명의 원동력이다. 이르는 곳마다 생명을 준다. 그런데 빛은 지하에 들어가지 못한다. 물은 높은 곳에 오르지 못한다. 바람은 막힌 곳을 지날 수 없다. 빛은 생명을 주지만 빛이 가열되면 火가 된다. 화가 이르는 곳에는 살아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물은 만물의 생명을 살리지만 물이 濷이되면 생존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바람은 濁함을 정화하지만 颱가 되면 모든 것을 휩쓸어 초토화 시킨다. 그래서 過猶不及이 명언이 된다. 나는 목사로서 사람을 많이 만난다. 목사이기에 예수 믿는 사람을 많이 만난다. 예수 믿는 사람은 십자가 道를 통해 빛처럼 사랑으로, 물처럼 겸손하게, 바람처럼 淨化 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종종 火와 濷과 颱의 사람을 만난다. 그들이 이르는 곳곳마다 水魔가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火魔가 할퀴고 지나간 것처럼, 颱風이 휘몰아치고 지난 것처럼 폐허가 되는 것을 본다. 그들의 삶은 한 마디로 貪瞋癡, 곧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과 노여움과 어리석음 그 자체다. 불가에서는 이를 三毒이라 했고, 탐진치를 벗어남이 열반이요 해탈이라고 가르쳤다. 삶의 이치가 다를 바 있겠는가.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연주하는 자연의 이치 光水風의 교훈을 통해 내려놓음, 낮아짐, 물러섬, 그리고 때로는 멈춤의 삶을 사는 아름답고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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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5
  • [성서연구] 말세에 들어야 할 예언
    시대가 혼란스러울 때 <말세>, 세상의 끝이란 규정합니다. 세상 끝에는 어떤 일이 있을까요? 마태복음 24장 3절에 이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님의 답은 몇 가지로 요약됩니다. 우선 대결과 갈등이 심화되어 민족과 나라가 서로 대적합니다. 대결과 갈등은 개인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하셨습니다. 또 기근과 지진 같은 자연재해가 있을 것이라 하셨고, 이에 더해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받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불법이 성하고 사랑이 식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말세의 모습을 말씀하실 때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은 소문입니다. 마태복음 24장 6절을 보면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말세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우선 말세란 영적이고 실존적 개념임을 알아야 합니다. 말세란 주후 몇 년부터 몇 년까지로 정해진 게 아닙니다. 예컨대 1899년까지는 말세가 아니었고, 1900년부터 말세였다는 식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말세는 모든 시대 사람의 마음에 있습니다. 남 왕국 유다의 선지자였던 하박국, 황충을 비롯한 메뚜기 류의 침입으로 모든 것이 황폐화된 고통을 경험한 선지자 요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임 당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시대를 살았던 사도들은 모두 그들의 시대를 말세라고 여겼습니다. 본문은 오순절 성령 강림을 경험한 사도들이 방언했을 때, 사람들이 새 술에 취했다고 비난한 데 대한 베드로의 대답입니다. 베드로는 요엘서 2장 28~32절을 인용하여 자신들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몇 가지 확인할 게 있습니다. 첫째로, 현재의 형편이 아무리 좋아도 그 다음에 올 말세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엘서 2장 28절의 첫 단어는 <그 후에>입니다. 무엇의 후일까요? 요엘 시대에 메뚜기 류의 습격으로 황폐하게 되는 고통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 고통에서 건지신다고 하셨습니다. 요엘 2장 24~25절을 보면 <24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25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라고 했습니다. 28절의 <그 후에>는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는 좋은 때 후를 말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 말씀을 인용할 때 <말세에>란 단어를 추가하여 인용했습니다. 본문 17절에서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주리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영이 임하실 때가 말세입니다.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친다고 해서 방심하면 안 됩니다. 그 후에 말세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풍요롭고 평화로워도 우리는 늘 그 다음에 올 말세에 대비해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면 예언하고, 환상과 꿈을 볼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것들은 미래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은 말세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남은 것은 세상이 끝나는 일뿐인데, 무슨 미래가 있습니까? 마치 임종하는 사람에게 십 년 후를 말하는 것과 같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끝 그 후에 미래가 있다면, 그것은 단 하나, 세상이 끝난 후에 시작될 다음 세상, 즉 하나님 나라뿐입니다. 그러므로 말세에 예언을 한다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뿐이지요. 그래서 21절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로 끝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교회와 성도가 예언하고, 환상과 꿈을 본다면 그 초점은 구원에 맞춰져야 합니다. 세상이 악하고 혼란스러울수록 성도는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하나님 나라를 꿈 꾸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시대에 성령님을 보내셔서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구원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오직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렇게 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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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5
  • [시사칼럼] 아재상법(我在上法)
    ‘신필(神筆)’로 불렸던 홍콩의 김용이 쓴 「신조협려」에 보면 사랑하는 이를 살리기 위해 절벽 아래로 투신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여주인공이 벌의 날개에 “아재곡저(我在谷底)”라는 글씨를 써서 날려 보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글자 그대로 ‘나는 골짜기 아래(바닥)에 있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중국 명문 가문 출신으로 “명보(明報)”를 창간한 탁월한 언론인이었던 저자(본명 사량용)가 신문의 홍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대중소설을 연재하면서 느꼈던 남다른 소회를 담아 살짝 흘려보내는 고백이 아닐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갑자기 이 문구를 떠올린 이유는, 최근 이와는 반대로 “아재상법(我在上法)” 곧 ‘나는 법 위에 있다’는 대담무쌍한 선언을 노골적으로 쏟아내는 듯 행동하는 무리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가 바로 서울 성북구 소재 사랑제일교회 사건에서입니다. 합법적인 재개발지역에 포함된 이 교회는 보상 문제로 조합 측과 다투다가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 끝에 최종적으로 패소하고 말았지만 몇 차례의 명도집행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방해하여 마침내 조합 측의 굴복을 이끌어 냈습니다. 양측이 협의보상금 500억과 대체 부지에 합의하여 이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해당 교회의 자칭 목사는 “그래, 나는 대법원 위에 있어”라는 망발을 공공연하게 내뱉기에 이르렀습니다. ‘직접적 아재상법’입니다. 물론 법이라 해서 모두 정당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신앙은 때로 악법에 대해 혹은 자의적인 해석과 집행에 대해 분연하게 떨쳐 일어서야 합니다. 더군다나 ‘프로테스탄트’라면 더욱 그러하겠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신앙도 법치주의 앞에 겸허해야 합니다. 법치주의란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도 “아재상법” 같은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혹시 예수님보다 자신이 위에 있다(我在上主) 여기지는 않겠지요? 두 번째도 서초동 소재의 한 교회를 둘러싸고 일어난 사건에서입니다. 한국교회사상 가장 많은 돈을 들여 건축했다는 이 교회는 세상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본당을 지하에 두고 아동시설 등을 만들어 기부하는 등의 행보를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세계최대규모의 예배당 일부가 공용공간을 침범하여 지어졌다는 사실을 덮을 수는 없었습니다. 결코 고의로 그런 일을 벌였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결국 공공도로 점용허가를 내준 구청에 대해 주민소송이 제기되었고, 지난 2019년 10월 17일 대법원은 교회 측의 도로점용은 불법이므로 원상회복하라는 최종 판결을 내렸습니다. 불법으로 건축된 예배당 일부를 헐어서 공공도로부분을 반환하라는 취지였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곧바로 집행정지 및 행정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합니다. 예배당 헌당식에 참가했던 해당 지역 구청장은 “영원히 예배당의 점용허가를 해드리겠다”는 말을 해서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영적제사장법이 세상법보다 우위에 있다”, 평소 교회 측에서 자주 언급해 왔던 신묘한 화법입니다. ‘간접적 아재상법’입니다. 세 번째는 서울 강동구 소재의 초대형교회에서 일어난 사건에서입니다. 소속 교단은 수년 전 목회자세습금지법을 제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교계를 넘어 세상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던 이 교회는 부자세습을 시도하고 말았습니다. 교회 안팎으로 상당한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엄연히 존재하는 법을 무시하고 이루어진 일이라 더욱 반발이 컸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교단 재판부가 세습무효판결을 내렸으나 총회는 화해수습이라는 명목으로 재차 탈법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지금도 세상법정에서 대표자지위의 존재 여부를 둘러싸고 엇갈린 판결이 오가는 혼란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 교회의 설립자 목사는 빈궁과 가난을 벗 삼았던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마을 형의 손에 이끌려 나갔던 교회에 훗날 큰 선물을 하면서 “주님께 바치나이다, 2003. 11. 30. 작은 종 드림”이라고 수줍게 고백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교단의 법 위에, 교단의 재판 위에 서 있습니다. 말은 안 해도 ‘묵시적 아재상법’입니다. 차세대 지도자로 주목을 받고 있는 한 사람이 “그 누구도 법 위에 있을 수 없다”고 일갈하여 화제가 되었습니다(6. 16). 그러나 이후의 행보를 통해 그 자신만은 법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들 교회가 무슨 말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스스로가 곧잘 법을 경시하며 유월하니 말입니다. 전술한 “아재곡저”는 원래 “아재절정곡저” 즉 ‘나는 절정곡 아래에 있다’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소설 속 골짜기가 하필 “절정곡(絶頂谷)”입니다. 높은 절정과 낮은 골짜기의 합성입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다 내려놓고 쓴 글 때문에 김용은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다 갔습니다. 그는 한 때 기독교계열의 학교를 다녔다 합니다. “아재상법”이 아니라 “아재곡저”야말로 예수께 그리고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이라는 사실을 그도 깨달았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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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5
  • [은혜의말씀] 감사가 답이다(출 23:14-17, 골2:6-7)
    오늘 말씀에 보면, 일 년에 세 차례 절기(무교절(유월절-고난주간 부활주일), 맥추절(오순절-맥추감사주일), 수장절(초막절-추수감사주일))를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추수감사주일을 수장절[收藏節]이라고 하는 것은 가을에 추수하여 곡식을 저장한 후, 한 해 동안 햇빛과 비를 주셔서, 풍성한 추수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또, 초막절[草幕節]이라고 하는 것은 풀로 지붕을 만들어 조그맣게 지은 막집인데, 이스라엘은 나뭇가지로 집을 지으며 그 안에서 7일동안 지내며, 그들의 조상들이 출애굽하여 광야 초막에 거주하던 것을 기념하며,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셨음을 떠올리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자,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며,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감사해야 하겠습니까? 1. 무엇을 감사해야 합니까? 받은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골 2:6) 우리는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을 주로 받았다’는 것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는 말씀인데, 이 말씀 속에는 몇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1)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원자’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죽음, 지옥의 심판밖에 없던 우리들을,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죄 씻음과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 2)이제는 내가 예수님 안에 살고, 예수님께서 내 안에 계시므로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놀랍고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을 때, “하나님, 제가 이런 은혜를 받았습니다.”하고 감사하는 것은 마땅히 우리가 해야 할 일인 줄 믿습니다. 2. 어떻게 감사해야 합니까? 믿음으로 감사해야 합니다.(골 2:7) 감사는 환경이나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입니다. 환경이 남달리 좋아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7절은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과 감사는 언제나 정비례합니다. 믿음이 약해지면 감사도 줄어지게 됩니다. 감사는 믿음의 척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 제목이 분명해 졌습니다. 우리의 환경이 변화되고,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도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오는 어떤 문제도 감사하며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을 하나님께 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감사는 반드시 표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1)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골 3:16) 하나님께 감사하는 표현 중 하나는 감격하여 드리는 찬양입니다. 우리의 찬송이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2)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출 23:15)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작은 것이라도 정성을 다해서 감사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3)작은 일 하나라도 감사하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면 할수록 더욱 늘어납니다. 매일 매일 감사를 선택하고, 감사가 우리를 지배하도록 훈련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 어려운 경기에 감사가 힘드시지요? 예수님을 힘입어 감사하십시오. 감사하려고 머리에 의존하지 말고 주님께 의존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감사의 찬송을 부르고, 감사의 제단을 쌓을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의 편이시며, 감사하는 자에게 새로운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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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5
  • [교회와세금] 교회의 자동차세 납부기준 이해
    자동차세(automobiles tax)는 자동차의 소유와 주행에 대해 과세하는 지방세이다. 자동차의 소유에 대해 과세하는 ‘소유분’과 주행에 대해 과세하는 ‘주행분’으로 구분된다. 소유분 자동차세는 자동차의 배기량과 적재정량을 기준으로 부과한다. 주행분 자동차세는 2000년에 주행세로 도입되어 운영하다가 2011년부터 자동차세 주행분으로 편입되었다. 주행분 자동차세는 휘발유, 경유 등에 부과되는 교통・에너지・환경세의 부가세(surtax)이다. 자동차 종류는 승용・승합・화물・특수・3륜 이하 소형자동차로 구분되며, 용도에 따라 영업용과 비영업용으로 구분된다. 승용자동차의 과세표준은 배기량이며, 내연기관이 없어 배기량 개념을 적용할 수 없는 전기자동차의 경우에는 비영업용 10만원, 영업용 2만원의 정액을 부과하고 있다. 자동차세 주행분의 과세표준은 휘발유나 경유 등에 대해 과세되고 있는 교통・에너지・환경세액이며, 기본세율은 36%이다. 다만 30%의 범위 안에서 탄력세율을 적용할 수 있으며, 2022년 현재 26%가 적용되고 있다. 자동차세 소유분의 납기는 6월과 12월 2회이며, 자동차 소유자를 기준으로 관할 지방자치단체에서 징수한다. 국회예산처의 2022년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2020년 자동차세 징수액은 8.1조원으로 전년대비 5.3% 증가하였으며, 전체 지방세 수입 102.0조원의 8.0%를 차지한다. 또한 지방세 대비 비중은 감소하는 추세로 2011년 12.4%에서 2020년 8.0%까지 하락하였다. 그리고 주행분에 포함되는 교통・에너지・환경세 징수액은 2021년 16.6조원으로, 국세수입 344.1조원 대비 4.8%의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동차 관련 세금을 교회(Church)에 적용할 경우,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교회의 자동차 관련 세금은 차량을 구입하는 경우 취득세와 등록세, 부가가치세를 납부하여야 하며, 소유 및 운행 시에는 위에서 설명한 자동차세와 교통‧에너지‧환경세를 납부하여야 한다. 교회가 고유목적을 위해 토지나 건축 등을 구입할 경우 과세가 면제되는 비과세 규정이 없다. 차량을 구입하면 약 7%의 취등록세는 물론, 거래금액의 10%에 해당하는 부가가치세를 소비과세로 국세기관에 납부하여야 한다. 둘째, 자동차 소유분에 해당하는 자동차세를 배기량과 적재정량에 따라 지방세로 납부하여야 한다. 셋째, 주행분 자동차세로 휘발유, 경유 등에 부과되는 교통・에너지・환경세를 납부하여야 한다. 자동차는 교회의 사역에 있어 운송을 담당하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또한 교회의 규모에 따라 여러 대의 차량 및 버스와 같은 대형차량을 보유하는 사례도 있다. 그럼에도 다른 조세와 달리 비영리법인이 고유목적의 업무를 하는 경우 주어지는 비과세 혜택이 없는 것이 자동차와 관련한 조세 시스템의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1월말이다. 한해의 결산을 준비해 가는 시기이다. 교회마다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리며, 감사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교회가 지켜야 최고의 윤리는 무엇일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복음 13:34)’, 예수님은 모두를 사랑하라 하신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법칙이다. 또한 개인은 물론 국가의 질서를 위해서도 교회와 성도가 그 공동체를 사랑할 것을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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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와 세금
    2022-11-25
  • [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 코로나 이후 설교에도 변화가 필요하다2
    우리는 지난 호에서 코로나 이후 설교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나누면서 그 대안으로 이미지 전개형 설교를 제시하면서 새로운 설교 형태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오늘은 이미지 전개형 설교의 구조를 알아보자. 이미지 전개형 설교는 서론과 본론, 적용과 결론의 과정을 거치면서 진행된다. 이미지 전개형 설교는 설교 제목 이미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설교자는 처음 화면에 보이는 제목 이미지에 이 설교의 메시지에 대해 관심을 끌 수 있는 이미지와 제목을 선정해서 회중들에게 보여주면서 설교를 시작한다. 이 때 너무 직접적인 주제를 담는 이미지보다는 회중들이 적절히 기대감을 가질 수 있는 정도의 관심을 끌만한 이미지와 제목이 좋다. 설교를 시작하면 화면에 나타나는 이미지와 질문, 문구 등을 보면서 회중에게 간단한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주제의 필요성을 부각시키는 서론 단계를 갖는다. 또한 이 서론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설교 제목을 은유적으로 정하는 것이다. 이미지 전개형 설교는 회중들의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시작해서 주제로 들어가는 귀납적인 형태의 설교이기 때문에 설교 제목에 주제가 모두 드러나서는 안 된다. 오히려 궁금증을 유발하는 제목으로 하되 결론까지의 과정을 다 거치고 나면 비로소 그 의미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제목을 정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어서 오늘 회중들이 겪고 있는 문제와 현실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성경 본문의 말씀을 선포하고 그 내용을 해석하여 의미를 분명하게 알아보는 본론 단계를 거치게 된다. 청중의 필요를 충분히 듣고 성경 본문에 귀를 기울일 때 살아있는 말씀이 실제 상황에 파고들어 회중들의 삶을 변화시킬 것이다. 이 때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역할을 잘 인지하고 회중을 향하여 말씀을 전한다. 물론 이 단계에서도 이미지나 영상을 활용하여 본문의 내용을 더 확실히 전달할 수 있다. 이 단계를 지나면 다시 회중과의 교감을 통해서 그날의 본문 말씀을 어떻게 실천하면 좋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적용단계를 거치게 된다. 이 때 설교를 듣고 결단할 내용을 텍스트로 정리해서 화면에 띄우고 온 회중이 함께 읽으면서 오늘의 말씀에 대한 실천할 사항들을 다같이 다짐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어서 설교자와 회중이 함께 설교의 주제와 연결되는 가사의 찬양을 함께 부르며 결단의 기도를 드리는 결론 단계로 마무리된다. 이 때 함께 부르는 찬양의 가사를 회중들이 고백하는 것은 이 설교를 완결하는 주체가 설교자가 아니라 회중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설교는 설교자의 능숙한 메시지 전달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회중의 응답과 결단으로 마무리된다. 따라서 설교자는 설교를 마무리하는 찬양을 선곡할 때 가사의 의미를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이미지 전개형 설교의 장점 이미지 전개형 설교는 설교자가 전하고 있는 이슈에 대한 도표나 연구 결과물을 한 눈에 이미지로 보면서 설교에 참여하기 때문에 모든 회중이 설교에 더욱 신뢰를 가지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이 방식의 설교는 설교자가 전하려는 내용을 청각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전달하기 때문에 회중들은 설교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더 신뢰할 수 있게 되어 설교의 효과가 배가된다.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인터넷을 접하고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관련 내용을 즉시 확인할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설교의 내용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설교를 들으면 설교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고 설교의 메시지를 더욱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이미지 전개형 설교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설교 형태이다. 상상력이야말로 우리를 위해서 언어에 있어서 새로운 창문들을 창조해주고 우리의 믿음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세상을 보는 데에 새로운 안목을 갖게 하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하는 데에 사용될 새로운 언어들을 제공해 준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미지를 직접 보여주면 언어로만 전달하는 방식보다 회중들의 상상력을 제한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설교자가 단순히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회중들의 상상력을 북돋는 방법으로 이미지를 바르게 사용하면 회중들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할 수 있다. 다음세대에게 있어서 상상력만큼 위대한 스승은 없다. 다음세대가 얼마든지 자기의 상상력을 펼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여행할 수 있도록 이미지 전개형 설교를 준비해서 전하는 시도를 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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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2-11-25
  • [다음세대칼럼] 돌아갈 집이 없는 둥지 잃은 새
    저는 사법형그룹홈으로 법원에서 보호처분을 받은 여자청소년들과 한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 둥지청소년회복센터장 둥지아빠입니다. 저희 부부가 입양한 막내를 포함해 아내와 아이들 4명, 그리고 둥지센터에서 함께 생활하는 흔히 비행(非行) 청소년이라고 말하는 여자보호소년 8명이 한 식구입니다. 아이들이 많을 때는 12명까지 되기도 합니다. 사법형 그룸홈인 청소년회복센터가 시작된 것은 14년 전 창원에서 소년보호재판을 담당하던 천종호 판사가 보호력이 약한 위기청소년들에게 보호환경인 가정을 제공해주어 재비행을 막고자 시작된 것입니다. 현재는 부산에 5개를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18곳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2014년 봄부터 시작된 둥지센터는 지금까지 200명이 가까운 아이들이 거쳐 갔습니다. 누군가는 비행 청소년들이라고 손가락질 하지만, 알고 보면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생일을 맞은 아이를 위해 생일상을 차렸는데 그 아이는 자신만의 생일 밥상을 처음 받아본다고 했습니다. 밥상 주위에 동그랗게 모여 앉아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자신을 향한 진심어린 축하에 난감해하며 불편해하는 아이에게 결국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부분만 겨우 부르고 노래를 끝까지 불러주지 못했습니다. 생일상을 앞에 두고 다들 목이 메여 노래를 마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진심어린 축하를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한 이 아이들,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보듬어줄 수 있을까요? 아내와 저는 넷째를 입양했습니다. 저희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셋만 해도 사실 버거웠을 수 있지만 넷째로 인해 즐거움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저희 막내는 청소년미혼모가 낳았습니다. 임신 사실을 알고 가출하여 미혼모시설에서 아기를 출산하고 키우려고 했지만 남자친구와 갈등으로 헤어지고, 자기 혼자서는 아기를 키울 수가 없어 결국 아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아기가 저희의 넷째가 되어 가족을 이루고 있습니다. 피 한 방울 안 섞였어도 함께 만나서 식탁공동체를 이루면 가족이 됩니다. 저희 넷째는 장기입양하였고, 둥지센터의 아이들은 단기로 입양하여 가족을 이루고 있습니다. 저는 가족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가족이 되어 주고, 부모가 되어주는 것일 뿐입니다. 둥지 아빠인 저에게 오랜 고민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돌아갈 집이 없다!”는 것입니다. 6개월이란 법원의 의무적인 처분기간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갈 가정이 없는 아이들 때문입니다. 아빠엄마의 역할을 할 보호자가 없는 경우가 많고, 보호자가 있어도 그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아이에게는 자신을 심하게 학대하고 폭력을 행했던 아버지, 성추행했던 삼촌 또는 알코올 중독 상태인 아버지를 피해 가출했기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들에게 악몽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조금씩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변하는데, 정작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면 걱정이 앞섭니다. 아이들과 달리 부모님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집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데, 부모가 거부하며 난색을 표합니다. 사랑받고 보호받고, 가르침을 받아야 할 아이들을 위해 부모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둥지센터에서 지내는 동안 아이 자신은 회복을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하고 좋은 변화를 보였지만, 가정으로 돌아가서 반복되는 문제로 인해 또 다시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고야 마는 것을 종종 보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마음껏 꿈을 펼치고 날아올라야 할 아이들이 가정형편과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날개를 접고 있거나 날개를 다쳐 혼자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그 날개에 다시 힘을 실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더불어 이제는 날기를 시도할 생각조차 못하도록 둥지를 잃어 방황하는 아이들을 따뜻하게 품을 수 있는 둥지를 제공하고 날개의 힘을 키워주고 싶습니다. 아이들에게 가정을 제공하고 품을 수 있는 둥지가 되고 큰 꿈을 가지고 비상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아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싶습니다. 둥지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비행(⾮⾏)청소년의 아름다운 비행(⾶⾏)을 위해 지역교회와 성도들의 관심이 모아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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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5
  • [목회자칼럼] 원 팀, 엘리야와 엘리사
    1.엘리야와 엘리사는 둘이 하나가 된 원팀이다. 바통터치가 좋았다. 콤비 플레이어가 되었다. 역사의 단절이 아닌 연결이다.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달랐지만 자라게 하시는 한 하나님의 두 종이었다. 두 사람이 마치 한 사람처럼 시작과 마무리를 하는 것을 성경 속에서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세트 플레이에 능하시다. 구름기둥과 불기둥, 만나와 메추라기, 이른 비와 늦은 비,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 지팡이와 막대기처럼 맞춤형으로 역사하신다. 2.엘리야와 엘리사는 사역했던 시대적인 배경이 결코 명랑하지가 않았다. 엘리야는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을 합하여 가장 악한 왕이었던 아합왕 시대에 활동을 한 정치 환경과 시대적인 배경이 최악이었지만 최상의 사역을 하였다. 3년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은 가뭄의 때였기에 기후가 악조건이었다. 엘리야는 멘탈이 약하여 이세벨의 말 한마디에 극심한 영적침체를 당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간절히 기도하여 하늘 문을 열었다. 쓰임 받은 사람들의 특징은 결코 환경을 탓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3.역사에 등장하는 장면이 특이하다. 엘리야는 족보와 스펙이 없이 부름 받았다(왕상17:1). 부모 이름도 모르고 경력사항이 없는 디셉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이력서가 필요 없다. 주께서 부르시고, 들어 쓰실 때에는 지혜와 건강과 물질과 용기도 함께 주시기 때문이다. 엘리사는 농사꾼으로 소로 밭을 갈다가 엘리야가 불러서 소를 버리고 따라나섰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베드로와 안드레가 생업도구인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듯이 엘리사도 지체하지 않고 소를 잡아 잔치하고 따라나섰다. 그들은 양을 치던 현장에서 부름 받은 모세, 다윗처럼 일터에서 부름 받았다. 현실에 최선을 다할 때, 주께서는 일마다 때마다 인도하신다. 4.충분한 준비과정이 있었다. 사람은 준비된 만큼 쓰임 받는다. 엘리사는 처음에 엘리야를 돕는 일을 하다가 나중에 후계자가 되었다.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가자 비로소 선지자 사역을 하였다. 마치 여호수아가 모세의 수종자로 오랜 세월을 보냈던 것처럼, 마치 디모데가 바울의 후계자요, 믿음의 아들이었던 것처럼... 좋은 학생이 좋은 교사가 되고, 좋은 선수가 좋은 감독이 된다. 준비하는 과정이 복이다. 허황된 꿈을 꾸며 비현실적인 삶을 살아가는 몽상가가 아니라 세컨드 리더십을 잘 감당하는 자가 리더가 된다. 5.인수인계를 위한 기도회가 있었다(왕하2:9~14). 엘리사는 후계자가 되고자 갑절의 영감을 구하고, 엘리야의 겉옷을 주워 가지고 요단강을 치며 스승의 흉내를 내었다. 배우기를 힘썼다. 두 사람의 강을 건넌 형태가 비슷하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기도와 기적의 사람이었다. 기도보다 앞서지 말고, 성령보다 앞서지 말아야 되는 이유이다. 엘리사는 갑절의 영감을 구하므로 후계자를 자청하였다. 그는 어려운 기도를 하였다. 부담이 안 되는 것은 사명도 아니다. 어쩌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일이지만 주의 일에 기꺼이 헌신한 것이다. 성경에는 숫자가 중요하다. 은혜 위에 은혜, 갑절의 영감, 칠배의 권능, 백배의 결실, 천대까지 축복이 있다. 6.구약 최고의 선지자가 엘리야이고, 구약에서 가장 많은 기적을 행한 선지자가 엘리사다. 엘리야는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였다(왕상18:30). 문제를 문제 삼지 않고 대안을 제시한 사람이다. 문제를 문제 삼으면 문제만 되지만 어떤 문제이든지 기도제목으로 삼을 때 기적이 일어난다. 눅1장에서는 세례요한을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사역한 자라고 말한다. 엘리야는 일당백이었다. 나만 홀로 남았다고 했지만 혼자서 바알과 앗세라 선지자들, 850명을 상대하였다. 엘리사는 빈 그릇에 기름을 채웠다. 기름병이 떨어졌을 때 부끄러워하지 말고 기름 그릇을 빌려오고, 그 빈 그릇을 채우고, 그것을 내다 팔라고 하였다(왕하4:1~7).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렸다(왕하4:32~37). 아람 장군 나아만의 나병을 고쳤다(왕하5:1~14). 사마리아 성이 아람 군대에 포위되었을 때에 구했다(왕하7장). 그야말로 정치, 경제, 외교, 보건, 종교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였다. 7.성경에서 이 두 사람에게만 사용된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을 볼 때 큰 영향력을 끼친 사람이었다. 나라를 보호하고, 가정을 수호하고, 교회를 지키고, 신앙을 파수했다. 엘리야가 혼자라고 탄식할 때 하나님께서는 칠천 명을 남기셨다(왕상19:18). 나아만 장군의 나병을 고칠 때 엘리사가 한 말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였다(왕하5:8). 한 사람의 막대한 영향력을 말하는 것이다. 8.엘리야 엘리사,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완성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하사엘을 아람왕으로, 예후를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엘리사를 후계자로 기름 부으라고 명령하였다(왕상19:15~16). 앞의 두 가지는 오히려 엘리사에 의해서 완성이 되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의 최종 목적지인 언약의 땅, 가나안의 정복은 모세가 아닌 여호수아 때에 비로소 완성이 되었다. 다윗의 평생의 소원이었던 예루살렘 성전건축은 그가 아니라 그의 아들 솔로몬 때에 마침내 완공되었다. 바울의 세계선교는 그의 후계자들과 동역자들에 의해서 땅 끝까지, 끝 날까지 세계 열방으로 확산되었다. 9.엘리야와 엘리사는 죽는 순간에도 위대하였다. 엘리야는 에녹과 같이 죽지 않고 하늘로 들려 올라갔다. 아름다운 사람은 그 떠난 자리도 아름답다. 엘리사는 이스라엘 요아스 왕 때에 죽었는데 죽는 순간에도 요아스 왕에게 모압을 세 번 칠 것을 예언하였고 죽은 사람이 엘리사의 뼈에 닿자 다시 살아났다(왕하13:14~21). 그야말로 뒤끝이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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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5
  • 무엇이 ‘개악’인가?
    복음병원 2022년 임단협은 사실상 노동조합의 승리라는 평가가 병원 안팎에서의 목소리다. 임금 4% 인상에다, 사측이 요구한 단협안도 1년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기 때문. 민주노총 집행부는 그동안 사측의 단협안에 대해 ‘개악안’이라는 비판을 계속해 왔다. 사측은 단체협약 15조(조합전임자 상근의 처우) 3항(전임해제와 동시에 병원은 1호봉 승급하여 원직에 복귀시킨다)과 7항(지부장의 대우는 부장급으로 하고, 기타 전임자는 과장급으로 한다)의 삭제를 주장해 왔다. 하지만 노동조합은 이 안이 ‘개악’이라는 주장이다. ‘개악’은 ‘고쳐서 도리어 더 나쁘게 함’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사측은 과도한 처우를 제자리로 되돌리고, 법에 나와 있는 것을 규정대로 하자는 주장인데, 노동조합은 개악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 안을 삭제하면 어떤 점이 더 나쁘다는 것인지 노동조합 집행부의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자신의 밥그릇은 움켜쥐고, 상대방의 양보만 강요하는 민주노총 복음병원 지부의 모습에서 ‘돈보다 생명을’(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슬로건)이라는 슬로건이 무색해 보이는 것이 과한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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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5
  • 임단협 잠정 합의안도 통과, 90.5% 찬성
    복음병원 노사가 파업 4시간 만에 극적으로 잠정합의안을 도출해 병원의 막대한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노사는 임금 4%인상, 단협안은 1년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노동조합은 잠정합의안을 두고 지난 11월 15일과 16일 이틀동안 ‘2022년 임단협 잠정합의안 찬/반 투표’를 실시했다. 전체조합원(1,469명, 한국노총 포함) 중 1,074명(73.1%)이 투표에 나서 찬성 972명(90.5%)으로 잠정합의안이 통과됐다.(반대 100명, 무효 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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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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