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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이야기] “평화와 친환경의 길”
    오늘날 독일 사회는 급격한 변화에의 요구에 직면해 있다. 1970년대 빌리브란트수상으로부터 시작된 동방정책이 종결을 고하고 있다. 동독을 포함한 동유럽과 소련과의 화해와 평화를 지향한 이 동방정책이 그 후에 통일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리고 냉전종식이후에도 이 정책의 차원에서 러시아를 끌어들여 적이 아닌 파트너로 삼고 정치 경제등의 다방면에서 밀착관계를 가졌다. 자연히 자원부국인 러시아에 대한 자원의존도가 높아지게 되었다. 특별히 독일은 석탄과 석유 그리고 핵에너지를 친환경에너지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가스의 가치를 높이 보았고, 그래서 러시아가스를 직접 수송 받는 노르트스트림II에 많은 자본을 투자해 최근에 완공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전쟁은 러시아와의 단절을 가져왔고 러시아가스 의존도가 높았던 독일은 에너지문제에서 가장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면서 모든 산업에 빨간불이 켜지고 올 겨울 나는 것이 서민들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한시적으로 석탄발전소가 재가동 되고, 올해 마지막으로 폐쇄할 예정인 핵발전소를 연장하자는 논의가 일어나고 있다. 또한 과거 서유럽국가들은 공산권의 몰락으로 평화시대가 도래했다 생각하고 군비를 축소하였다. 독일은 더더욱 그러해서 국방비가 GDP의 1.5%에도 미치지 못했고 국방이 허약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을 계기로 독일은 국방비를 연내에 2%로 늘릴 것을 선언했고, 약 134조원의 특별방위기금조성안도 의회를 통과했다. 2010년 나토정상회담에서는 러시아를 ‘나토의 전략적 파트너’라 불렀지만, 이번 2022년 회담에서는 ‘나토에 가장 크고 직접적인 위협’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신냉전의 시작이다. 혹자는 독일이 재무장하여 군사강국이 됨으로 미래 유럽안보에 또 다른 위협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미래는 아무도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위기와 시련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차곡차곡 평화와 친환경정책의 길로 갈 것이라 예측한다. 올해 7월 이 위기 가운데서도 독일 의회는 2030년까지 태양열, 풍력등의 재생에너지를 전력의 80%로 끌어올리기 위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더 신속히 친환경에너지의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이것은 이런 정책을 견지하는 정치인들이나 정당에만 달린 것이 아니다. 그들을 뒷받침하는 시민들의 높은 의식과 적극적인 참여가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친환경뿐 아니라 평화에 대한 독일국민의 의식도 분명하다. 나는 슐레지엔 출신의 한 교인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소련은 전후 영토 야욕을 갖고 폴란드 동쪽의 방대한 땅을 빼앗으면서 폴란드에게는 서쪽의 독일 땅 슐레지엔을 넘겨주었다. 이는 독일 전 국토의 20%나 되는 어마어마한 면적으로 조상대대로 수백 년간 살아온 그들의 땅이었다. 내가 만난 교인은 이 슐레지엔에서 서독으로 피난 온 수백만 명의 사람 중 하나였다. 내가 “당신은 옛 고향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없느냐?”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물론 고향에 대한 아쉬움은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땅보다 평화가 더 중요하다.” 영토 확장을 위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인 과거의 역사에서 얻은 소중한 교훈이다. 땅보다 평화가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통일당시 콜 수상이 옛 영토에 대한 미련을 갖지 않고 폴란드와의 현 국경을 정한 오데르나이세 조약을 준수하겠다고 했을 때에 독일국민들은 이를 지지했다. 이웃나라 일본과 비교하면 독일시민의 철저한 평화의식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그들은 어떤 값을 지불하고라도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확고한 의식 속에 있다. 그리고 이런 시민의식이 정치의 방향키를 붙들고 있기에 독일은 평화와 친환경정책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고 제 길을 갈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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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2
  • [시사칼럼] 각자도생
    근간에 “각자도생(各自圖生)”이란 말이 유행입니다. 이른바 ‘과학방역’ 논란으로 급격히 퍼지기 시작한 듯한데, “각자도생 방역 오해, 의미 전달 부족했다”는 질병관리청장의 공식적인 해명이 나올 정도가 되었습니다(7. 26). 115년 만이라는 최악의 폭우로 한강 이남이 물바다로 변한 며칠간의 혼란상 속에도 “직장인들은 알아서 각자 도생하라는 말로 들려 씁쓸하다”는 반응이 터져 나왔습니다(세계일보, 8. 10). 사실 이 말은 코로나 시대에 진입하면서 심심찮게 등장하곤 했는데, 이제는 정치판에서도 집권여당의 난맥상을 두고 “정부 힘든데 당까지 각자도생”이라 하고, 연예계에서도 “뿔뿔이 흩어진 걸그룹 출신들이 각자도생하며 연예 활동의 2막을 열고 있다”고 썼으며, 어느 목사는 “이제 크리스천은 각자 도생해야 한다”고까지 했습니다(cafe.daum.net/s.shool). 벌써부터 ‘각자도생 사회’라는 개념을 제시한 이도 있었는데, 이년 전 발간된 책의 제목이기도 합니다(전영수, 2020. 3). 놀랍게도 각자도생은 순수한 우리말 사자성어라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다음과 같은 실례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殺戮之禍 使之各自圖生也(살륙지화 사지각자도생야)’ 곧 ‘살륙지화(에) 각자 자기 살기를 도모하게 하라’는 임진왜란 기간의 기록입니다(선조 27년 9월 6일, 1594년). 다음으로 ‘臨亂遺君 各自圖生 罪實非細(임란유군 각자도생 죄실비세)’ 곧 ‘난리를 맞아 임금을 버리고 각자 살기를 도모하는 것은 실로 작은 죄가 아니다’, 이는 병자호란 때의 기록입니다(인조 5년 10월 4일, 1627년). ‘今焉離井去里 各自圖生(금언이정거리 각자도생)’ 곧 ‘지금은 정리(마을)를 떠나 각자 살기를 도모합니다’는 흉년의 실상 속에 올린 상소문에 등장하는 문구입니다(순조 9년 12월 4일, 1809년). 이들만 보아도 각자도생이란 말을 어떤 경우에 사용했는지 금방 알겠습니다. 전란 속에서 기근 속에서 각종 고난 가운데 정부를 비롯한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우리네 선조들은 각자도생이라는 인생판의 외통수에 내몰리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각자 살기를 도모해야 하는 사람들은 저들만이 아닙니다. 각자도생이란 작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어렴풋하게라도 느끼고 있는 필연적인 좌우명일지도 모릅니다. 케임브리지에서 수학하고 가르쳤던 노리나 허츠(Noreena Herts)는 『고립의 시대(The Lonely Century)』(웅진, 2021)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그 결과 오로지 승자만을 위한 이 사회에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은 남에게 뒤처진 패자라고, 결국에는 우리 모두 각자도생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이제는 전통적으로 일과 공동체를 단단히 묶어주던 밧줄이 썩어가고 있고 사회안전망이 잠식되어 사회적 중요성이 축소되고 있다.”(29) 코로나 광풍전야였던 2019년 연말을 맞아 직장인들이 선택한 올해의 문구가 벌써 각자도생이었습니다(인쿠르트 설문조사).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노후를 책임지는 각자도생의 길로 빠질 것이다”, 일찍이 경제학자 로버트 머튼(MIT)이 했던 말입니다. 여기서 잠시 한번 자신을 돌아보기 바랍니다. ‘그래, 나밖에 없어, 나를 도와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이런 생각을 한번쯤 해보지는 않았습니까? 그렇다고 각자도생이 무조건적으로 해롭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시 방역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근자에 질병관리청장이 남긴 말의 일부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필요하다. 다만 정부의 조치로 갈 것이냐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갈 것이냐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자발적”이란 말은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각자도생이란 결국 자발성이나 자율성의 극성이라 볼 여지도 있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극성’이라고 했습니다. 공동체적인 돌봄과 온정으로 보완해야 할 절대적인 필요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신앙적으로는 더욱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4). 신자가 각자도생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물론 신이 방관하고 침묵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각자도생해야 하는 건가, 이런 의문이 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막스 피카르트(Max Picard)의 이 말을 기억합시다. “신의 침묵은 인간의 침묵과는 다르다.. 신의 침묵은 사랑을 통해서 말씀으로 변한다. 신의 말씀은 스스로를 비치는 침묵, 인간에게 스스로를 바치는 침묵이다.”(침묵의 세계, 266-26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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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2
  • [교회음악칼럼] 교회음악의 새로운 이해 1
    오늘날 예배와 찬양의 갱신에 대한 절박함을 개괄적으로 제법 긴 시간을 통해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감당해야할 현실이 너무나 어렵고 무거워서 생각하기조차 힘들었을 수 있다. 이를 잠시나마 위안으로 삼았다면 이제 다시금 일어나 나를, 가족을, 교회공동체를 생각하며 재정비를 시작해야 한다. 나는 부족하여 전혀 가능하지 않지만 성령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힘을 내어 보는 것이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듯이 우리의 영적무장의 핵심은 성경 말씀이다. 즉 올바른 지식에 대한 이해는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이정표가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교회음악, 예배음악에 대한 바른 이해는 예배자로서의 삶을 바르게 인도해줄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은 부정한 입술을 회복 시키셔서 영화로우신 하나님을 찬송케 하신 것이 아닐까? 예배에서 분리할 수 없는 음악이 영감 있고, 열정과 감격으로 충만할 때 예배의 새로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제 보다 구체적인 관점에서 교회음악의 새로운 이해를 통하여 예배음악의 비전을 제시하고 변화를 모색해 보고자 한다. 교회음악을 조금 장황하게 정의해보면 모든 장르와 연주형태를 통하여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주제로 하거나 복음과 성경 말씀을 소재로 한 음악 그리고 선진들이나 성도들의 삶을 통해 경험한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에 대한 감사를 노래한 모든 음악을 우리는 교회음악이라 부를 수 있다. 여기에 제시한 교회음악의 정의는 앞으로 계속해서 이야기할 찬양에 대한 폭넓은 이해에 중요한 잣대이자 기준이 될 것이다. 사실 음악사를 이야기할 때 교회음악을 빼 놓을 수 없다. 하나님을 찬양한 것에서 음악은 시작되었고, 변화하고 발전해 왔기에 그렇다. 음악은 시대와 나라, 문화 그리고 민족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변화하고 발전해 왔다. 물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인류의 모든 역사가 그렇듯이 새로움에는 늘 힘든 갈등과 고통이 수반되었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과정 속에서 나름의 방법과 치유의 성숙함도 함께 진행된 것 같다. 뒤를 잠시만 돌아보아도 알 수 있을 만큼 나와 우리의 주변은 큰 변화를 격으며 나아왔다. 변화는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이다. 물론 신앙의 본질인 성경 말씀은 조금이라도 변할 수 없고, 변해서도 안된다. 그러나 비본질적인 것은 변할 수 있고 또 변하며 발전해야 한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은 구약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쉼 없이 이어져왔고, 변화를 거듭해 왔다. 찬양의 방식 또한 각 시대와 지역, 전통과 신학에 따른 다양한 변화가 있어온 것도 사실이다. 기독교 리더들은 시대의 흐름을 민감하게 읽고 본질을 흐리지 않으면서 새롭게 변화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다시 한번 더 강조하자면 음악을 통한 변화, 변화를 통한 새로움 이러한 진행은 끊임없이 힘있게 반복되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그 생명력으로 인해 놀라운 역사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이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고 창조적으로 하여 보다 아름답고 거룩함으로 주님을 높이는 일에 열심을 다하여야 한다. 우리의 부족과 무지, 안일함으로 관습과 문화에 젖어서 우리들이 만들어 놓은 울타리 안에 갇혀 빠져 나올 생각조차 못하고, 아집과 교만으로 승부한다면 이것은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것들로 다양하고 무한한 영광과 칭송을 받으시기 원하시는 광대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제한하는 우를 범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된다. 이제 우리는 겸손하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렬한 헌신으로 생명의 주를 지치지 않고 찬양하며, 존귀케 하기를 원한다. 더불어 특별히 바라기는 그 옛날 교회음악이 모든 음악을 주도하고 이끌었듯이 이러한 부분의 회복도 이뤄지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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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2
  • [은혜의말씀] 유월절을 지키라(출 12:1~14)
    마지막 10번째 재앙이 애굽에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밤중에 애굽에 들어가셔서 사람이든 짐승이든 처음 난 것은 다 죽이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은 개의 혀도 움직이지 않는 평안함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특별한 일을 지시하십니다. 바로 유월절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 유월절을 지킴으로 죽음에서 구원해 주시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유월절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유월절을 지키는 방법을 통하여 유월절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1. 유월절은 어린 양을 준비합니다.(3,5절) 한 가족이 하나님께 바치기에 가장 적합한 일 년 된 어린 양을 취하여 4일 동안 보관하며, 양이 흠은 없는지 충분히 살핍니다. 나아가 양을 바라보면서 나 대신 ‘희생제물’이 될 ‘대속’의 의미를 새기며,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더욱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 대신 피 흘려줄 하나님의 어린양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어린양을 친히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양' 이십니다.(요 1:29, 벧전 1:19) 2. 유월절은 어린양을 죽여 피를 문에 바릅니다.(6,7절) 14일 저녁 어린 양이 죽습니다. 죽음의 값을 치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죄를 그냥 넘어가지 못하십니다. 그 값은 생명은 생명입니다. 죽음으로 죄의 값을 치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피를 바른다는 것은, 죗값으로 죽어야 할 나 대신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의 은혜를 깨달아, 마음으로 십자가 보혈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애굽을 심판하실 때에 넘어가겠다고 하십니다.(13절)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 Passover, 이것이 바로 유월(逾越)입니다. 따라서 이 유월절 어린 양의 피는 죽음을 통하여 생명을 탄생시키는 구속의 피입니다. 구원을 결정하는 것은 죄의 크기가 아니라 피의 유무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 어떤 일을 했던 상관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예수님의 보혈의 피가 있는가, 없는가에 있습니다. 3. 유월절은 고기를 먹습니다.(8절) 왜 고기를 먹으라고 하실까요? 애굽에서 나오면 바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광야를 지나가야 합니다. 광야를 지나가려면 힘이 있어야 합니다. 고기를 먹으면 힘을 얻습니다. 광야를 지날 힘을 얻습니다. 이 고기는 예수님의 몸을 의미합니다.(요 6:51-56) 우리가 성찬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기념하는 떡과 잔을 나누지요. 우리가 예수님을 먹는다는 것은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님과 연합되고 하나 되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셔야 영적인 힘을 얻습니다. 그래야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을 승리의 찬송을 부르며 지나갈 수 있습니다. 4. 마지막으로, 유월절은 새로운 시작입니다.(2절) 하나님께서는 기존의 날짜 계산법을 초월하여 새로운 월력을 제정하십니다. 왜냐하면, 이 유월절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과 더불어 새로운 삶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우리 인생의 시작은 예수님을 만난 날인 줄 믿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시간에 새로운 피조물로 살게 되시길 바랍니다.(고후 5:1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앙의 유월절을 갖게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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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2
  • [다음세대칼럼] 위기청소년들의 가족이 되어주세요
    저는 사단법인 보물상자를 통해 복지사각지역에 있는 위기 청소년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하다가 2014년 봄부터 소년보호재판을 받은 여자 아이들을 위한 둥지청소년회복센터를 직접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매주 크고 작은 범죄나 비행을 저질러서 법정에 들어서는 아이들을 만나면 대부분은 어릴 때 가정의 문제로 사랑받지 못해 자신의 삶을 돌보지 않고,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줘 결국 법정에까지 서게 된 상황을 봅니다. 재판이 열리는 날은 때때로 가슴시린 사연을 가진 아이들로 인해 이른 아침부터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합니다. 소년법정에서 처분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참혹한 현실, 부모들의 무력감, 안타까움, 탄식과 한숨, 흘러내리는 눈물… 꿈도 희망도 사라진 것 같은 아이들… 어떠한 처벌이나 조치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기세의 안타까운 현장 가운데 순간순간 저의 사명을 확인합니다. 지금까지 200명 가까운 아이들이 둥지를 거쳐 갔습니다. 반복된 가출과 절도, 폭행, 사기, 성매매 등 각종 비행에 노출된 아이들부터 떠들썩하게 언론에 보도되어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사건의 주인공도 있었습니다. 보호자 없이 보육원에서 성장한 돌아갈 가정이 없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입양가정에서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방황한 아이도, 모르는 가운데 탈선하여 입양부모의 애를 태우는 아이도, 둥지에 들어와서 자신이 입양된 사실을 알게 된 아이도 있었습니다. 정신과의 치료를 요할 만큼 분노조절장애, 행동장애, 자해 등의 문제를 가진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아직 비행청소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린 초등학교 6학년부터 21살의 성인이 되어 자립지원을 해야할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각기 다른 상황과 사건으로 재판을 통해 저와 둥지를 만나게 되지만 모두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이라는 것은 똑같았습니다. 그리고 나쁜 아이들이 아니라 아픈 아이들이었습니다. 바로 변하지는 않지만 아이들은 점점 자라고 있었습니다. 저와 함께 아이들의 가족이 되어주시길 기대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마음 아픈 이야기들은 안 읽고 안 보는 것이 마음 편하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아픈 현실이 아니기에 직면하여 그들의 아픔을 보고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둥지의 따따이-아빠로서 아이들을 계속 사랑하며 품어가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마음껏 꿈을 펼치고 날아올라야 할 아이들이 가정 형편과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날개를 접고 있거나 날개를 다쳐 혼자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그 날개에 다시 힘을 실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더불어 이제는 날기를 시도할 생각조차 못하도록 둥지를 잃어 방황하는 아이들을 따뜻하게 품을 수 있는 둥지를 제공하고 날개의 힘을 키워주고 싶습니다. 아이들에게 가정을 제공하고 품을 수 있는 둥지가 되고 큰 꿈을 가지고 비상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아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싶습니다. 둥지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함께 비행(⾮⾏)청소년의 아름다운 비행(⾶⾏)을 응원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또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주변의 마음이 힘들고 방황하는 아이들을 이해하고 품어 저와 함께 이 아이들의 큰 아버지, 삼촌, 고모, 이모가 되어 주십시오. 이 사회가 학교가 모든 아파하는 아이들을 품고 사랑하는 한 가족이 되길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이 아이들의 대리 부모가 되어 가정환경을 만들어 보호하며 함께 생활할 분들이 꼭 필요합니다. 특히 부산과 경남지역 법원에서 더 적극적으로 운영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운영자가 직접 환경을 마련하고 법원교육비와 후원금으로 운영해야 하는 열악하면서도 상처와 비행으로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을 돌보는 고된 일이지만 가치 있는 현장입니다. 이 땅의 수 많은 교회들이 각 지역의 위기청소년들을 사랑하고 품을 수 있는 마음과 실력이 있기를 그리고 신앙과 인경으로 아이들을 품을 수 있는 헌신자가 일어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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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2
  • [신앙교육나침반] 시골 교회도 여름성경학교 할 수 있다!
    "전도사님, 주일학교 없는 시골교회친구들에게 여름성경학교 해주고 싶어요! 향기나무가 해주세요! “ 경남 하동에 위치한 고남교회 담임목사님의 전화한통에 향기나무 대표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하나님의 분명한 부르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그때까지는 향기나무 연구원과 내가 시골교회 성경학교를 소박하게 돕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꿈꾸시는 그림은 그것보다 훨씬 큰 그림이었다. 하나님은 하동 고남교회 뿐 아니라, 인근 1시간 거리에 위치한 사천 곤양교회, 남해 성남교회 친구들도 초청하셨다. 그리고 이 아이들을 최고로 섬기기 위해 탁월한 은사를 지닌 전문가들을 보내어주셨다. 어린이 전문 찬양팀(UDC), 성경놀이전문가(향기나무팀), 인형극팀(용용이 선생님)까지 총 18명이 시골교회 성경학교를 섬기겠다고 자원하였다. 사는 곳도 다르고, 교회도 다른 20여명의 스텝들은 3주간 온라인 기도회를 열어 함께 기도했다. 기도회를 할 때마다, 우리는 얼굴도 모르는 60여명의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자체로, 말로표현하기 힘든 긍휼함과 사랑의 마음을 느끼며 눈물로 기도했다. 고남교회의 담임목사님은 성경학교를 며칠 앞두고 비장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전도사님, 이렇게 일이 커질줄 몰랐어요. 하나님이 이 아이들에게 이번 여름성경학교를 통해 귀한 선물을 주고 싶어하심이 느껴집니다.” 코로나 펜데믹 시대에, 시골교회 친구들은 그 어느 아이들보다 불행했다. 깨어진 가정과 주일학교가 없는 교회는 이 아이들을 더욱 아프게 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누구보다 이 아이들을 은혜의 자리로 불러, 손잡아 일으켜 세우기 원하셨다. 드디어 2022년 7월 29일과 7월 30일, 약 60여명의 아이들이 모였고, 아이들은 예배와 성경놀이시간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온 몸으로 경험하여 즐거워하였다. 성경학교의 주제와 모든 프로그램은 향기나무교육개발원에서 개발한 “하나님의 열마디 사랑의 외침, 십계명” 우리집 성경놀이터로 진행되었다. 성경학교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친구들은 가족의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 불신 가정에서 홀로 교회에 나오는 아이들이었다. 이 아이들에게 십계명의 말씀은 ”나“라는 존재가 아무 쓸모없고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가 아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귀한 존재, 하나님이 너무나도 열렬히 사랑의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존재임을 경험하게 하였다. 향기나무 성경놀이는 모든 세대 연령을 하나 되게 하는 컨텐츠이다. 이러한 특징은 시골교회 친구들을 대상으로 한 성경학교에서 더욱 빛을 발하였다. 시골교회 특성상 2세 영아부터 13세 초등학생까지 참여하였지만, 모든 성경놀이 프로그램 안에서 어떤 문턱도 느낄 수 없었다. 2세부터 13세까지의 어린이와 20-40대 진행팀, 그리고 50-60대 교사들은 우리집 성경놀이터에서 한 가족이 되어 함께 큰 소리로 웃으며 땀 흘렸다. 함께하는 성경놀이 안에서 우리는 어느새 하나의 가족이 됨을 경험하였다. 길고긴 외로움의 터널을 통과하는 아이들에게, 교회 선생님, 장로님, 권사님, 20-40대 남녀 진행팀과 함께 놀이하는 시간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선물하신 최고의 가족이 여기에 있음을 온 몸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은혜 가득한 예배와 성경놀이와 식탁교제 속에서, 어두웠던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정적이 흘렀던 예배당이 어느새 감탄과 웃음소리 가득한 축제의 장이 되었다.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아이들은 진행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미소를 보여주며 장난을 치기 시작하였다. 향기나무교육개발원은 이번 사역을 계기로 특별한 소명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이 부르신다면, 주일학교가 없거나 약한 지역에 있는 시골교회 친구들에게 사랑과 생명 가득한 우리집 성경놀이를 선물하고자 한다. 슬픔이 가득한 곳에, 아픔이 가득한 곳에 우리집 성경놀이의 생명보약밥을 꼭 먹이고 싶다. 아이들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과 열정이 있다면, 주일학교가 없는 시골교회도 얼마든지 아이들을 위한 성경학교를 할 수 있다! 고남교회와 같이 귀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부터 시작한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가 계획하는 것 그 이상의 놀라운 사역을 펼치실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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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2
  • [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 “담임목사가 성경학교 주제강의를 직접 한다구?”
    필자가 사역하는 성민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평북노회에 속해있습니다. 이중 영남시찰에 속한 교회학교 교사들이 매년 여름성경학교를 앞두고 성민교회에 모여서 교사강습회를 열어 그해 여름성경학교의 주제부터 공과, 프로그램, 찬양, 환경구성, 컨셉 등을 배우고 익히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런데 독특한 것은 담임목사인 분홍목사가 부임이후로 7년째 매년 직접 주제강의와 기획특강을 직접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흔히 성경학교 강습회에서 담임목회자의 역할은 개회예배 설교나 격려사, 또는 축사나 축도 정도일 때가 대부분인데요, 그런데 왜 분홍목사는 담임목회자이면서 매년 교사강습회의 주제강의를 직접하는 걸까요? 거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1. 담임목사가 이해하는 만큼 여름행사가 준비되기 때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학교에 있어서 여름행사의 중요성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흔히들 1년 농사가 걸려있다고 할 정도로 여름행사를 통한 다음세대 교육과 어울려 함께하는 시간들, 은혜 받고 그 은혜를 나누는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교회교육의 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총회교육자원부에서는 매년 여름성경학교를 앞두고 1년 전부터 주제를 연구하고 공과학습과 프로그램을 만들 필진을 구성하여 교재 제작에 들어갑니다. 이를 위해서 그해의 총회의 주제를 아동부와 청소년부, 유치부 등 각 부서에 맞게 변형하고 구조화하여 다음세대에게 효과적인 교육을 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춥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교회학교의 여름행사가 과연 총회에서 준비한 대로, 공과 집필진이 고민하며 제작한대로, 그해 교회학교 현장에 보급되고 전해져야 할 내용대로 각 교회의 현장에 전해지고 그만큼의 효과를 거두고 있을까요?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각 부서의 교역자의 역량에 따라, 또는 부장이나 총무 교사의 경험치에 따라서 여름행사의 주제를 이해하고 교육내용을 소화하는 정도가 너무나 천차만별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총회에서 아무리 좋은 주제를 내놓는다고 해도 현장에서는 형식적으로 사용되거나 그 깊은 의미를 놓치기 쉽습니다. 여름행사는 그냥 잘 먹이고 잘 놀게 해주면 그만이라는 식의 교육관을 가진 현장 사역자들이나 교사들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분홍목사는 담임목회자임에도 매년 총회에서 주최하는 여름지도자강습회에 참여해서 올 여름 교회학교가 중점을 두고 있는 주제가 어떤 내용인지, 그리고 그 주제를 각 부서는 어떻게 소화하고 이해해서 교재에 반영했는지를 배우고 함께 연구하면서 이를 교회 현장에 전해주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담임목사의 역할은 교회 전체의 여름행사 분위기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그해의 여름행사의 주제를 숙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해서 각 부서의 교역자들이 더 좋은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고 전체의 의견을 조율할 수 있기 때문에 담임목사는 그해의 교육주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민교회의 강습회 현장은 이미 그해 여름의 환경구성을 모두 마친 상태에서 진행됩니다. 이는 담임목사가 직접 나서서 교회 전체를 그해 주제에 맞게 꾸미고 준비하는 일에 선두에 서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2. 담임목사가 나서야 온 교인이 나서기 때문입니다. 각 교회의 여름행사가 지향하는 바는 교회에 나오는 다음세대들의 신앙을 복음과 성경 말씀, 찬양과 기도, 하나되는 시간을 통해 향상시키고 그들이 교회공동체의 모든 멤버들에게 충분히 사랑받고 존중받고 있음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다음세대는 교회에 더욱 애정을 가지고 그 교회의 중심멤버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서 중요한 것은 다음세대 여름행사에 온 교회 교인들이 모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각 교회의 여름행사는 각 부서의 교사들이나 학부모들에게는 중요한 행사지만 그 외의 성도들에게는 별로 관심이 가는 행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담임목사의 관심과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담임목사가 주제 강의를 하면서 관심을 보이고 깊숙이 관여되어 참여할 때 성도들도 이 일을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할 일로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교회학교만의 일로 외면하거나 버려두지 않고 각 선교회와 자치단체도 참여해서 후원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협력해서 행사가 잘 진행되도록 돕습니다. 교회 안에서 담임목사의 한 마디가 갖는 무게감은 참으로 큽니다. 앞으로 모든 교회가 담임목사가 주일예배 시간 사이에 교회학교를 방문해서 아이들을 만나고 교사들을 축복하는 교회, 담임목사가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고 불러주며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 교회, 담임목사의 집무실 벽을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이 가득 채우고 있는 교회, 담임목사가 여름성경학교 주제강의를 하는 교회의 모습을 만들어가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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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2-08-12
  • 공무원들도 걱정하는 부산교계
    지난 10일 한호기독교선교회 이사장 인명진 목사가 교계 기자간담회를 갖고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부산기독교근대역사박물관 건립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선교회 입장 등을 밝혔다. 인 목사는 “(땅을 기증하는 것이) 우리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이 기회에 부산교계가 기독교역사관을 꼭 건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정 교회나 기관이 땅을 기증해서 역사관을 건립할 생각이 있다면, 우리는 지금이라도 발을 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인 목사는 “나는 서울 사람이다. 그런데 솔직히 부산교계가 걱정이다. 부산시장과 부산시 문화예술과 담당 공무원들은 이번 역사관 건립의 변수를 다른 곳(타 종교)이 아닌 부산교계로 꼽고 있다”고 걱정했다. 실제 박형준 시장은 인 목사를 만난 자리에서 (역사관 건립을 위해서는)부산교계가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고, 지난 달 6일 수영로교회에서 열린 부산성시화운동본부 관계자들과의 조찬모임에서도 “부산 기독교계가 하나 되어 건축의 진행과정이나 운영에 잡음이 없어야 한다. 이런 점이 염려가 된다”고 우려한 바 있다. 또 인 목사가 최근 만난 부산시 담당 공무원들도 "서로 자기들이 주도권을 가지려고 싸울 것"이라는 추측도 있었다며, “어떻게 공무원들이 교회를 걱정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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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2-08-12
  • 업무상 배임 논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부산지역 A 교회가 교회내 보수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업무상 배임 문제가 붉어졌다. A 교회는 당회와 제직회를 거쳐 보수공사(도색 및 방수)를 결의한 바 있다. 이때 결의한 비용은 5천만원. 그런데 지난 6월 공사대금 지불에서 250만원이 초과하여 지출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당시 관리부장은 재정부장에게 제직회가 결의한 5천만 원과 추가비용 250만 원을 더 청구했는데, 재정부장이 이를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추가비용을 당회는 허락 했지만, 제직회에서는 논의조차 없었던 것. 이 때문에 일부 성도들은 “사과와 환수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재정부장이 성도들에게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일부 성도들은 “진정성이 없고, 형식적인 사과”라며 “진정성 있는 사과와 환수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업무상 배임으로 고소를 진행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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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2-08-12
  • 부산 교계 연합기관, 분열의 상처 이제 끝날 때도 되지 않았나?
    한국교회 연합기관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오늘날도 하나되지 못하고 허욱적거리고 있다. 대표적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일명 한기총)은 고 한경직 목사(서울 영락교회 원로)가 만들어 KNCC(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진보적이고 WCC(세계교회협의회) 가입된 교단에 반대 입장을 취해 온 보수교단과 연합을 위해 만든 매우 상징적인 대표기관으로 17개 교단연합체로 대표해 왔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이단 교단을 가입시켜 한기총에 탈퇴하는 교단이 늘어 새로운 기관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을 새로 만들어 영역을 확대하여 왔다. 한국교회 분열의 DNA는 교회 깊이 흐르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수치스런 자아상으로 외부 기관에서는 가장 치부적인 요소로 노출 되어 왔다. 장로 교단도 그렇고 연합기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금년들어 한기총과 한교총이 하나로 합치자고 서로 합의하게 되어 차츰 합의를 위한 워밍업을 시도하고 있어 다행이다. 한편 한국의 제2 도시 부산 교회는 어떠한가? 근 40년의 역사를 자랑할만큼 부산기독교총연합회(부기총)가 유일했다. 부활절연합집회 외엔 거의 하지 않고 순수하게 오다가 10여년 전 부터인가 부산시 중심지였던 중구 광복동 거리의 크리스마스트리축제를 시작하게 됐다. 거리를 장식하여 볼거리를 만들수 있도록 부산시와 중구청에서 6억5천만원 가량 축제 장식 비용을 지원 받기 위해 부기총이 자체적으로 사단법인을 만들었다. 이 법인 추징비용은 20여 명의 목사, 장로들이 자비로 일인당 2백만원씩 각출받아 법인을 구성해 부산시로부터 기부금 지원을 받아 트리축제 장식을 하여 전국에서 가장 크리스마스 트리 축제 볼거리가 많은 곳으로 만들어 놓았다. 사람의 속성은 탐심이란 맘모니즘이 사탄으로 유혹하는 바람에 집행부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독선과 아집이 기존 증경회장단들을 축출하기 시작하여 그만 퇴출을 당하는 바람에 새 기구인 부산교회총연합회(부교총)를 만들어 서울과 같은 분열의 역사를 쓰게 되었다, 부산교회의 분열의 씨앗은 순전히 트리축제라는 맘모니즘 돈의 악령 때문이었다. 두 기관이 존재하게 되자 부기총의 오랜 악습과 비리가 터지기 시작하여 몇몇분들이 부기총 관계자 총 7명을 상대로 부산 경찰 부패 조사단에 진정을 하게 되었고 현재는 조사가 근 한두달포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마침 대선과 부산시장, 교육감 선거란 바람을 타고 새로 조직한 부산기독자유총연합회(부자연)가 임시로 탄생하여 선거에 한몫 했다, 부기총, 부교총 두기관이 부산교계로부터 신뢰를 잃어가게 되자 넌지시 부자연이 법인을 만들어 부산 교계를 대표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여기에 반대 목소리로 부산기독교장로총연합회(부기장총) 증경 대표회장모임(회장 김상권 장로)에서 반대입장을 취했다. 부자연에서 관계한 분들은 탈퇴하고 나오도록 결의하여 거의 장로들은 나올 수밖에 없게 되었다. 부기장총 증경회장단이 결의한 부교총 지지 결의와 유일한 기관이 부교총이라고 결의한 것은 너무 앞서나간 것으로 결의 자체를 유보하고 싶다고 증경대표회장 김상권 장로가 말했다. 현 부기장총 대표회장 강치영 장로는 “우리는 어느쪽도 지지결의는 할 수 없고 다만 회개만이 길”이라고 말했다. 부산에 연합기관으로 지금 활동하고 있는 부산복음화운동본부와 부산성시화운동본부는 그야말로 날로 발전하고 흠도 없이 부산교계의 연합체로서 잘 나가고 있는데 반해 부기총을 하나로 만들기위해 만든 부교총 마저 흐지부지되고 있을까? 이 책임은 해당 관계기관에 일차있지만 두기관에 해마다 도움을 주는 부산 교계 중진 교회 목사와 장로들에게도 공동 책임이 없을 수가 없다. 두기관을 지금이라도 하나로 만들수 있는 힘은 부산 1800교회 뿐아니라 적어도 큰 교회 20여곳 교회들만이라도 단합되어 이들 기관에 일체 지원을 하지 못하도록 문을 닫아 버린다면 한시라도 하나 되는 길은 열려 있지 않을까? 두기관을 지탱하도록 광고 스폰서로 도와주고 있기에 이 두기관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트리축제를 광복동 기독포럼 상인들에게 지금이라도 넘겨 주고 만다면 하나 되는 길은 가능할 것이다. 그 놈의 돈 맛을 보지 못하도록 단절시킬 수 있어야 한다. 부산기독자유총연합회는 해체보다는 존속시키되 부산교계 제3의 기관으로 오해 받는 것보다 기독 시민운동 단체로 등록하는 것이 좋겠다고 이재완 목사와 윤종남 목사가 개인적 의견을 피력했다. 한 목소리로 교계의 당면한 문제 동성애, 재개발로 교회가 이전되는 문제, 대정부 투쟁에 나서야 한다. 이것이 바로 돌들이 소리쳐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에서 “저희도 다 하나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여 세상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소서.”(요한복음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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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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