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이탈리아의 뭇솔리니 파시즘 정권에 의해 투옥되어 20년 형을 받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1937)에게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물음이 하나 있었습니다. ‘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삶을 갉아먹는 자본주의 체제를 무너뜨리지 않고 동조하는가?’ 기존의 마르크스주의가 대답할 수 없었던 질문입니다. 그리고 고심 끝에 그가 나름대로 찾아낸 답이 바로 ‘헤게모니’였습니다. 체제의 지배는 ‘강제’(coercion)뿐만 아니라 ‘동의’(consent)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억압적 기구가 아니라 교육·언론·예술 등을 통해 이데올로기를 유포하고 이를 자발적으로 수용하게 하는 일종의 ‘문화적 지배’가 바로 ‘헤게모니’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이를 ‘패권’이나 ‘주도권’을 상징하는 말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그리스 도시국가의 ‘맹주권’을 가리켰던지라 본래 의미로 회귀한 셈이기도 합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이 헤게모니를 얻기 위해 수 세기 동안 아테네와 스파르타와 테베 등이 서로 얼마나 경쟁했습니까? 그런데 현대에 와서 이러한 ‘헤게모니 쟁탈전’이 유독 치열한 전장이 있습니다. 바로 ‘진보’를 자처하는 진영입니다.
진보의 뿌리는 프랑스 대혁명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국민의회(Assemblée nationale)가 소집되자 의장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성직자와 귀족을 중심으로 한 보수파가 앉았고, 왼쪽에는 왕정 타파와 신분제 폐지를 부르짖던 개혁파들이 앉았는데 이들을 ‘좌파’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혁명을 주도했던 진보 진영에서 정치의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치열한 다툼이 벌어집니다. 먼저는 온건한 지롱드파와 과격한 자코뱅파가, 나중에는 급진파 내부에서도 로베스피에르와 당통이 주도권을 두고 싸웠습니다. 엎치락뒤치락하던 끝에 최종 패권은 아이러니하게도 나폴레옹에게 돌아가 버리고 말았지요. 1917년 혁명 이후 러시아에서도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치열한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레닌의 후계 자리를 두고 일어난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살벌했던 헤게모니 쟁탈전은 결국 망명지(멕시코)까지 쫓아온 암살자에 의해 트로츠키가 죽임을 당함으로써 막을 내렸습니다. 1960년대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 벌어졌던 헤게모니 쟁탈전도 엄청났지요. 실용주의 노선으로 마오쩌둥(毛澤東)의 헤게모니에 도전했던 류사오치(劉少奇)도 결국 감옥에서 비참하고 쓸쓸하게 죽었습니다. 이후 덩샤오핑(鄧小平)이 중국의 패자가 되기까지에도 더욱 치열하고 살벌했던 헤게모니 쟁탈전이 있었습니다.
물론 어떤 체제든 주도권을 둘러싸고 헤게모니 쟁탈전이 벌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유독 진보 진영의 헤게모니 쟁탈전이 치열해 보입니다. 그람시도 말했듯이 ‘진보’는 기득권과 맞서 싸워야 하기에 정치적 유전자 속에 헤게모니를 향한 투쟁심이 더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 한국의 여당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위 ‘명·청 갈등’ 내지 ‘친명과 반명’의 대립도 이런 관점에서라면 얼마든지 해석이 가능한 현상입니다. 이제 출범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신정부 내에서 개혁의 과제들이 산적해 있고 게다가 숨 가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에 고유가와 환율급등 및 부동산가격의 도전이라는 민생 현안과 무엇보다 젊은 층의 신(新) 참정권 운동으로 혼란이 가중되는 이 시점에 도대체 여당 내부에서 저리도 다투는 이유는 무엇인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기에 ‘그들의 피에는 헤게모니가 흐른다’라는 수사적 표현으로 조심스레 답을 제시한다면 무리한 해석일까요?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한 후 대선 정국에서 진보 진영이 동교동파와 상도동파로 분열하여 결국 보수파에 승리를 내어주었던 역사 역시 외부를 향했던 투쟁심이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내부로 역행한 결과라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헤게모니’는 성경에도 여러 번 등장합니다. 즉, 명사로는 “다스리는 자”(마 2:6), “말하는 자”(행 14:12), “인도하는 자들”(히 13:7), 동사로는 “여기고”(빌 2:3), “여길, 여김”(빌 3:7, 8), “여기라”(약 1:2)로 나타납니다. 그람시의 ‘헤게모니’가 사람들의 의식과 상식을 지배하는 힘이듯, 성경 속 개념 역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가치관에 끌려다니지 않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주도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헤게모니에 관련하여 무엇보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중요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 10:43-44), 여기서 “크고자 하는” 혹은 “으뜸이 되고자 하는”이 바로 헤게모니를 좇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들(그리스도인)의 핏속에는 어떤 헤게모니가 흘러야 하겠습니까? 섬김과 종이라는 역설적 헤게모니가 아닐까요? 목숨까지도 오직 나라와 국민을 위해 내놓을 수 있는 그런 예수적 헤게모니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