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7-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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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 앨봄(Mitch Albom)이 쓴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란 책이 있습니다. 모리 슈워츠는 브랜다이스 대학에서 사회학과 사회심리학을 가르친 교수입니다. 미치는 모리 교수의 제자입니다. 미치는 대학을 졸업한 후 정신없이 바쁘게 사느라고 교수님을 찾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TV에서 모리 교수의 인터뷰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교수는 많이 늙었을 뿐 아니라, 루게릭병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중이었습니다. 미치는 교수님을 찾아갔고, 그 후 교수님이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화요일마다 찾아가서 인생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화요일의 인생 강의는 모두 열 네 번에 걸쳐 이루어졌고, 책으로 출판되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이 책에 인상적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몸이 서서히 굳어가던 어느 날 모리 교수는 친구의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거기서 교수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친구의 죽음 때문이 아니라, 조문객들이 관 위에 꽃을 놓으며 작별의 인사를 해도 정작 그 친구는 하나도 듣지 못한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돌아온 교수는 자신이 아직 살아있을 때 자신의 장례식을 앞당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정다운 이들을 불렀고, 사람들은 그가 아직 지각이 있을 때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나누면서 눈물로 포옹하였습니다. 모리 교수는 미리 죽은 사람이고, 그의 장례식은 산 사람의 장례식이었습니다. 그 후 모리는 다가오는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그 소중한 시간을 새롭게 살았습니다. 이 책은 떠나는 자와 남는 자, 삶과 죽음에 대한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모리 교수만 미리 앞당겨 죽은 사람이 아닙니다. 바울 사도도 미리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갈라디아 2장 20절을 보면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바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함께 못 박혔고, 거기서 죽었습니다. 거기서 죽은 것은 바울의 옛사람이었습니다. 한때 그는 복음의 원수요, 핍박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옛사람은 죽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20절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고백합니다. 그 이후의 삶은 새로운 삶이었습니다. 옛사람은 십자가에서 죽었고, 이제부터는 새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때는 <바울>이란 이름으로 사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는 계속 고백합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과거의 바울은 죽고, 새로운 바울이 생겨난 것입니다. 사실 그는 과거엔 <사울>이었습니다. 그 사울은 이미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젠 바울로 새롭게 사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도 앞당겨 죽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자신에게 사망 선고를 내려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망 확인을 해야 합니다. 무엇이 죽어야 할까요? 욕망, 교만, 세상에 붙은 모든 것들이 죽어야 하고, 죽었음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옛사람의 삶에 대한 장례식을 거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정과 욕심을 다 죽이고,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야 합니다.

 

중세의 베네딕트 수도원에서는 수도사가 되려는 사람에게 산 사람의 장례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수도사가 되기로 서원한 사람이 관속에 눕습니다. 그 위에 하얀 관보가 덮입니다.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무겁게 울려 퍼집니다. 사방은 캄캄하고, 침묵만 흐릅니다. 한 사람이 죽는 순간입니다. 얼마 후 침묵을 깨고 말씀이 울려 퍼집니다.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그 후 부활절 찬송이 울려 퍼지면서 관보가 벗겨집니다. 관속에 들어가 있던 사람이 나옵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 무슨 말일까요? <이제 나는 죽었다가 다시 살았으니, 이제부터는 주님만 위해서 살겠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그 후 수도사의 옷을 입힙니다. 그 후 그는 <나는 그때 이미 죽었다. 이제부터는 주님을 향하여, 생명을 향하여, 천국을 향하여 산다>고 확인하고 평생을 살게 됩니다. 죽고 다시 사는 삶이 우리 모두에게 있길 기원합니다. 이게 장차 누릴 부활을 내다보는 성도가 땅에서 미리 누리는 진정한 부활의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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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산 자의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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