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7-07(화)
 

홍석진 목사.png

점입가경(漸入佳境)입니다.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말입니다. 2월 말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에 기습공격을 감행하면서 시작된 전선(戰線)이 사우디, 아랍에미레이트, 레바논 등 인접국들까지 확산일로에 있습니다. 대부분 산유국들이다 보니 유가가 급등하면서 세계경제가 휘청거리는데, 핵무기보유국까지 포함되어 있어서 자칫 핵전쟁이라도 일어나면 어떡하나 하는 심각한 우려까지 커져갑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왜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는 존재가 하나도 없을까요? 1973년 10월에 이집트와 시리아가 연합해서 이스라엘을 침공했던 제4차 중동전쟁은 발발한 지 16일 만에 휴전협정을 체결하고 끝났습니다. 당시 전쟁당사자들 사이에서 맹활약했던 인물이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1923-2023) 미국 외무장관이었습니다. 미국이 중재자로 나선 까닭은 여럿 있었겠지만 그래도 명실상부 세계최강대국으로서 평화를 위한 거중조정자(mediator for Good)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번 전쟁은 미국 자신이 평화의 파괴자(destructor of peace)로 나섰으니 일인자의 중재를 기대하기도 어렵지 않겠습니까?

 

역사적으로 보면 의외로 이러한 중재자 역할을 교황이 감당하곤 했습니다. 제국 간 투쟁이 본격화되면서 세계분할을 두고 스페인과 포르투칼이 당시 교황 알렉산드르 6세에게 중재를 요청할 정도였으니까요(1493년). 하지만 1, 2차 세계대전은 그런 중재력마저 무력화시키고 말았습니다. 최근 들어서도 미국과 쿠바 간 협정이라든지 특히 한국과 쿠바의 수교를 로마교황청이 중재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만, 그러나 이번 중동전쟁을 둘러싸고 평화를 위한 전쟁 종식과 생명을 위한 살상 금지를 호소하는 교황의 목소리는(그래도 연일 호소하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큰 힘은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립이라는 점, 교황의 출신 자체가 미국이라는 점 등이 더한 악재로 작용하겠지요.

 

국제연합은 무얼 하고 있을까요? 이럴 때 활동하라고 그래도 인류가 집단지성을 사용해서 만들어낸 단체가 아니었습니까? 제2대 유엔사무총장(1953-1961)이었던 스웨덴 출신의 다그 함마르셸드(Dag Hammarskjöld, 1901-1961)는 몸을 사리지 않고 지구촌 곳곳의 분쟁 지역을 직접 방문해서 중재를 시도한 사실로 유명합니다. 결국 아프리카의 콩고 사태에 뛰어들어 해당 지역을 지나다가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그의 존재는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서 분노와 복수의 총칼을 내려놓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유엔의 중재도 빛을 잃었습니다. 이번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벌써 4년째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하나를 감당하지 못한 유엔의 역할을 기대하는 자체가 하나의 낭만일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국내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가져 보았습니다. 굴곡진 한국현대사의 고비마다 중재의 고초를 마다하지 않았던 종교계의 어른들이 계셨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중재를 부탁드릴 분들을 찾기가 어렵고, 중재를 자처하고 나서는 분들마저 만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문득 욥의 고백이 떠오르는 이유겠지요. “우리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욥 9:33). ‘변론하다’(사 1:18)라는 의미도 있기 때문에 ‘중재자’라 해도 좋을 그런 존재를 사람들 사이에서 찾을 길이 없다는 푸념 섞인 목소리였습니다. 그래서 욥은 하늘을 바라봅니다.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욥 16:19). 그러면서 하늘에 계신 분이 우리 사이를 “중재”해 주시면 좋겠고(욥 16:21), “나의 대속자”(욥 19:25)가 되어 주시면 좋겠다는 소원을 피력합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사 59:16), 마침내 우리 가운데 진정한 중재자를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약속을 이렇게 이루시지 않았습니까?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그러니 ‘주여, 우리 사이를 중재해 주소서, 평화의 중보가 되어 주소서’ 이렇게 기도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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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우리 사이에 중재자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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