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7-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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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나 폴리스의 동화 ‘꽃들에게 희망을’에는 두 마리 애벌레가 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 그려져 있다. 줄무늬 애벌레와 노란 애벌레는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를 몸으로 체험하며 마침내 아름다운 나비가 된다. 애벌레였던 그들이 어둠과 고통의 시간을 지나 꽃들에게 희망을 주는 나비로 변화했다는 이 작품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들은 더 이상 어제의 애벌레가 아니라, 새로운 존재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어두움에서 빛으로의 전환이며, 부활의 은총이자 부활 신앙의 삶이다.

 

어두움이란 무엇인가? 앞을 보지 못하니 분간할 수 없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아름다움과 추함도 판단할 수 없다. 혼란이며 죄악이고, 사망이며 무덤이다. 미움, 갈등, 원망과 불평, 불의와 더러움, 타협… 이 모든 것은 마귀가 지배하는 영역이다. 그러나 빛은 어떠한가? 앞을 볼 수 있기에 모든 것을 분별할 수 있다. 따뜻하며 생명을 살린다. 죄와 불의를 죽이고 질서를 세운다. 빛은 사랑이고 용서이며 기쁨이고 생명이다.

부활은 바로 이 어둠에서 빛으로의 전환이다. 불안의 어둠에서 평안의 빛으로, 근심의 어둠에서 기쁨의 빛으로, 미움의 어둠에서 사랑의 빛으로, 죽음의 어둠에서 생명의 빛으로, 절망의 어둠에서 소망의 빛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이것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주어진 주님의 부활의 은총이며,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지는 은혜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약육강식의 국제 정세 속에서 세계는 혼란에 빠져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미국과 이란의 충돌로 세계는 어두움 속에 있다. 국내 상황도 마찬가지다.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당리당략에 치우쳐 백성의 고통을 듣지 못한다. 경제는 불투명하고, 교육 현장은 혼란스럽고, 사회는 부패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 질서를 외치지만 혼란은 반복되고, 권력은 하나님을 얽매려 하며, 불의는 하나님의 뜻을 훼손하려 든다. 교회조차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인간의 소리가 높아지고, 사역자들은 선지자적 삶이 아니라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탄식이 들려온다. 이 어둠의 역사를 밀어내고 빛이 비추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바로 어둠에서 빛으로의 전환이다. 교회의 어둠이 빛으로 바뀌면 사회도 빛으로 전환된다. 사회가 밝아지면 역사가 밝아진다. 이것이 부활의 은총이다.

 

사울 왕은 다윗을 미워했기에 그의 마음은 악신으로 인해 늘 괴로웠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을 사랑했기에 오히려 그를 치료하는 사람이 되었다. 사울은 어둠 속에 살았지만, 다윗은 어둠에서 빛으로 전환된 삶을 살았다.

사도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신의 그림자를 보지 못했다. 그림자가 없다는 것은 어둠 속에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는 비로소 자신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을 보게 되었고, 만삭되지 못해 난 자요 죄인 중의 괴수라는 고백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이 빛과 그림자의 신비로운 이치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사울처럼 자신의 그림자를 보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그림자는 빛이 있을 때만 보인다. 그 빛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이 없는 마음과 삶은 이미 어두움이며, 그 속에서는 온갖 불의와 악이 드러날 뿐 아니라 그러한 행위를 옳다고 여기는 왜곡까지 나타난다(롬 1:28~32). 예수님이 계셔야 나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 나의 그림자를 볼 수 있어야 빛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다.

 

옛날 최희준 씨의 유행가 ‘빛과 그리고 그림자’가 있었다. <사랑은 나의 행복, 사랑은 나의 불행, 사랑하는 내 마음은 빛과 그리고 그림자> 허스키한 목소리로 눈을 지긋이 감고, 표정 하나에 메시지를 담아 노래하던 그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빛이 있어야 그림자가 있다. 빛과 그림자는 공존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사랑을 하게 된다. 사랑을 함으로써 보잘것없는 풀잎 하나, 나뭇잎 하나, 무심코 맞았던 바람에도 관심을 갖게 되며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랑은 덧니처럼 감출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사랑의 의미를 명쾌하게 설명한 것은 ‘에리히 프롬’ (Erich Fromm)이다. 프롬은 <사랑의 기술, The art of loving>이라는 명저를 쓰면서 다섯 가지의 사랑의 속성을 정의하였는데 곧 관심, 존중, 책임감, 이해, 그리고 먼저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랑이 우리를 활동적인 인간으로 만는다. 곧 변화의 시작은 사랑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무관심했던 사람이 따뜻한 관심의 사람으로 변화되고, 남을 무시하던 사람이 존중하는 사람으로 변화되고, 무책임하던 사람이 책임 있는 삶으로 변화되고, 이해심이 부족하던 사람이 이해심이 많은 사람으로 생활하게 되고, 이기적인 삶에 길들여 살던 사람이 주는 자의 삶을 살게 된다. 이것이 부활신앙이고 어두움에서 빛으로 전환된 삶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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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칼럼]어두움에서 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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