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 하루 만에 돌아보는 성지순례(부산)
도보로 이동 가능할 정도의 접근성과 한국교회 역사적 상징성 높아
본보가 소개하는 국내 성지순례 두 번째 시간은 부산편이다. 부산은 경남(주기철 목사 기념관 - 호주선교사 기념묘원 - 손양원 목사 기념관)에 비해 변변한 기념관도 없고, 경남 같은 퀄리티를 자랑하지 못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역사적 가치나 접근성은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
첫 기착지 표지석
부산은 1884년 9월 14일 알렌과 1885년 4월 2일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첫 발을 디딘 기착지다. 알렌의 일기에는 “부산은 완전한 왜색(倭色) 도시이다…”로 시작하는 기록이 존재한다. 또 부산에 잠시 머물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내용들도 담고 있다. 아펜젤러 역시 미국 북감리교회 해외선교부에 보낸 1885년 4월 9일자 편지에는 ‘4월 2일 부산에 먼저 도착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이처럼 초기 선교사 3인은 모두 부산에 첫 발을 내딛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한 ‘첫 기착지 표지석’이 남포역 인근 쌈지공원(부산시 중구 광복동 1가 40-3)에 조성돼 있다. 표지석은 ‘기독교선교사 이 곳에 첫발을 딛다’는 문구와 함께 알렌 선교사와 언더우드 선교사, 아펜젤러 선교사의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은 표지석 외 특별히 볼 것은 없지만, 140년 전 20대 중반의 초기 선교사들이 처음 발을 내딛은 곳, 한국 기독교의 복음 선교역사가 시작된 곳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호주선교사 묘지 7기가 있던 복병산
‘첫 기착지 표지석’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복병산(부산시 중구 대청동 1가 8)은 초기 선교사들의 묘지들이 안장된 곳이다. 이곳에는 호주선교사 묘지 7기가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현재는 유실된 상태다. 역사학자들은 묘지가 안장된 장소를 현재 남성여고 주차장 아래쪽 언덕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곳에는 첫 호주선교사 헨리 데이비스가 부산에 도착한 뒤 다음날 숨져 묻힌 곳이기도 하다. 호주장로교회는 헨리데이비스의 순교 소식을 듣고 이후 100명이 넘는 선교사를 파송하기도 했다. 또 대구제일교회와 부산초량교회 등 지역의 첫 교회를 세운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배위량)와 부인 애니 베어드 선교사(안애리)의 딸 낸시로즈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낸시로즈는 4살 때 뇌수막염에 숨져 이곳 복병산에 묻혔고, 슬픔에 잠긴 애니 베어드 선교사가 이때 작사한 찬송이 ‘멀리 멀리 갔더니’ 찬송이다.
한강 이남 최초 설립된 초량교회
복병산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영주동으로 가면 한강 이남에서 최초로 설립된 초량교회(1892년)가 위치해 있다. 교회는 ‘초량교회 역사관’을 운영하고 있는데, 부산의 기독교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설립자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를 통한 초기선교사들의 이야기와 주기철 목사(3대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한 3.1운동, 한상동 목사(6대 담임목사)를 통한 한국전쟁 및 구국기도운동 등 다양한 역사 자료들을 살펴 볼 수 있다.
부산진교회와 부산진일신여학교
초량교회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에는 초량교회와 더불어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부산진교회(부산시 동구 정공단로 17번길 16)가 위치해 있다. 헨리 데이비스 목사의 순교(1890년)로 호주장로교회는 1891년 5명의 선교사(매카이 목사부부, 멘지스, 페리, 퍼셋)를 2차로 파송했다. 이들은 1891년 10월 12일 부산에 도착했고, 이후 주민들과 형식을 갖춰 예배를 드린 것이 부산진교회의 시작이다. 부산진교회는 호주선교사들의 영향으로 최초의 서양식 결혼식을 진행했고, 최초의 찬양대가 만들어지는 등 일찍부터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교회로 유명하다. 특히 여성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는데, 최초의 여전도사가 부산진교회에서 배출됐으며, 1905년도에는 부산진일신여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부산진교회 맞은편에 위치해 있는 부산진일신여학교는 근대사적으로 크게 3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건축사적으로는 서양식 건물로 남아 있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물이고, 한강 이남 지역에서 가장 먼저 근대 여성 교육이 시작된 곳으로 유명하다. 또 부산지역 3.1 만세 시위가 처음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부산시는 2003년에 3.1운동과 관련해 부산진일신여학교 건물을 ‘기념물 55호’로 지정했다. 이곳에는 초기 교육자료들과 선교사들의 활동, 그리고 3.1운동관 관련한 다양한 자료들이 소장되어 있다. 부산시는 매년 ‘3.1운동 재현 행사’를 이곳 부산진일신여학교에서 하고 있다.
단일병원으로 출생아 숫자가 가장 많은 일신기독병원
부산진일신여학교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일신기독병원(부산시 동구 정공단로 27)은 1952년 맥켄지 선교사 딸 헬렌과 캐더린에 의해 세워졌다. 당시 산모와 영아 사망률이 높았는데, 일신기독병원은 여성전문병원으로써 여성과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되어 왔다. 7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신기독병원은 단일병원 중 출생아 숫자가 가장 많은 병원으로 알려져 있다. 8월 1일 현재(정오) 300,390명의 아이들이 출생했고, 한때 운영에 어려움을 겪던 병원은 현재 부산시 동구 본원인 일신기독병원과 북구 화명일신기독병원, 맥킨지일신재활병원, 기장군 정관읍에 있는 정관일신기독병원 총 4곳이 운영되고 있다. 병원내에는 맥켄지 역사관이 위치하고 있는데, 초기 진료기록과 병원 역사와 관련한 다양한 볼거리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처럼 부산지역 기독교 유적지들은 타 지역과 달리 도보로도 순례가 가능하다. 차로 이동 할 경우 4시간 이내 유적지들을 전부 돌아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초기 교회들의 역사에서 근대 한국 역사를 살펴볼 수 있으며, 선교사들의 희생과 헌신이 담긴 선교지들을 눈으로 느낄 수 있다. 다만, 부산교계의 오랜 숙원사업인 ‘부산기독교근대역사박물관’ 건립이 지지부진하다는 점이 안타깝다는 지적이다. 현재 남아있는 역사자료들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근대역사박물관이 건립이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