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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회째를 맞이한 ‘기독교문화대상’
- 한강이남 최대 상금(각 분야 일천만원)을 자랑하는 ‘기독문화대상 모집공고’가 발표됐다. 18회째를 맞이하는 금년 기독문화대상의 일정과 심사방법, 그리고 문화대상을 주관하는 21세기 포럼에 대한 다양한 궁금증을 직접 들어보았다. 지난 6일(금) 21세기 포럼을 실제적으로 이끌고 있는 실행이사들을 만나 인터뷰 해 보았다. 기독교문화대상이 18회째를 맞이했습니다. 금년 기독교문화대상 일정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 21세기 포럼은 기독교 문화창달과 차세대 지도자육성 그리고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분들을 발굴하고 시상해 왔습니다. 금년에도 문화예술, 교육, 봉사 부분에서 귀감이 되고, 헌신하고 계신 분들을 찾고 있습니다. 10월 31일(목)까지 접수를 마감하고, 11월 18일(월) 발표를 통해 12월 5일(목) 18시 부산롯데호텔에서 시상식을 가질 예정입니다. 심사과정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금년 기독교문화대상 수상자 심사는 어떻게 진행됩니까? - 최근 몇 년 동안 3개 분야(문화예술, 교육, 봉사)에 대한 추천을 받아 심사를 통해 수상자를 발표해 왔습니다. 그런데 수상자를 한명씩 뽑다보니 추천한 분들께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추천한 분들이)다들 훌륭한 분들이지만 그해 각 부분에 한명씩만 선정해야 하는 미안함 때문에 금년에는 초창기 해 왔던 방식인 ‘모집 공고’를 통해 심사를 할 예정입니다. 심사위원은 실행이사회에서 선정 할 예정인데, 심사위원에 대한 것은 보안이 필요하기 때문에 밝힐 수 없습니다. 기독교문화대상 지원자가 초창기 보다 숫자가 적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올해 18년째입니다. 그동안 발굴도 하고, 추천도 받고, 응모도 해 보았는데 초창기에는 지원자가 너무 많았고, 지금은 그 숫자가 (초창기보다)줄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원자가 감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는 기독교문화의 불모지라고 할 수 있는 부울경 지역을 대상으로 매년 수상자를 발굴해 왔습니다. 지역의 한정성이 지원자 감소로 이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상황속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을 계속 발굴해 나가겠습니다. 기독교문화대상은 ‘봉사’, ‘교육’, ‘문화예술’ 세 분야에 시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육과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간혹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교계 안에서는 ‘목회자, 선교 같은 다른 분야에 대한 시상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는데요. 새롭게 변화를 모색할 계획은 없으십니까? - 설립자인 고 장성만 목사님과 여기계신 실행이사님들께서 고심해서 정한 분야입니다. 지원자가 적다고 기존 분야를 바꾸는 것은 설립자님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자상의 경우 비슷한 상을 시상하는 해도 있었습니다. 설립자인 장성만 목사님의 호가 ‘민석’입니다. 그래서 ‘민석 지도자상’을 제정해서 몇 년에 한 번씩 시상을 갖기도 했습니다. 선교상은 없지만 선교를 위해 헌신하시는 분들이 ‘봉사’ 부분에 수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숨은 인재 발굴을 위해 기독문화대상을 제정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역대 수상자를 살펴보면 숨은 인재라고 보기에는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사람들도 꽤 많았습니다. 초창기 취지에서 벗어났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이러한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상의 취지가 ‘숨은 인재 발굴’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우리도 그런 분들을 발굴하기 위해 노력중입니다. 그래도 상이라는게 어느 정도 두각을 나타내고, 보이는 것이 있어야 주는게 상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인지도가 있는 분들이 상을 받는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부울경이라는 한정된 범위 내에서 숨은 인재를 발굴하는게 쉽지는 않습니다. 취지에 맞게 노력중이라고 말씀드립니다. 문화대상과는 좀 다른 질문이지만 늘 해 오시던 프로그램(문화대상, 정례포럼) 이외 다른 프로그램이나 사업을 구상하는 것은 없으십니까? - 포럼 내에 비전 100인위원회가 있습니다. 20년 전 장 박사님께서 부산교계의 미래를 위해 비전100인위원회를 만드셨지요. 이분들의 역량을 키워서 앞으로 부산교계를 이끌어 갈 지도자로 만드시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박사님께서 돌아가시고 이 분들이 크게 활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2025년부터 비전100인위원회를 활성화 시키기 위해 본격적으로 노력할 생각입니다. 비전100인위원회가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과 노력을 아끼지 않을 생각입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포럼이 20여년의 행적을 통해 이제는 부산교계의 권위있는 기관으로 자리매김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교계연합사업을 주도하거나 관여하실 의향은 없으십니까? - 여기 계신 분들도 한때 연합운동에 관심이 있었고, 각자 활동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느꼈던 생각은 ‘기대’보다 ‘실망’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연합기관마다 각자의 역할과 사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명이 있고, 부산교계가 필요할 때 지원하고 기도하는 역할을 감당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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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회째를 맞이한 ‘기독교문화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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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 제74회 총회, ‘선교, 일상으로 보냄 받은 교회’ 주제로 개막
-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초회 제74회 정기총회가 10일 오후 3시 고려신학대학원 강당에서 ‘선교, 일상으로 보냄 받은 교회’라는 주제로 개막했다. 첫날 개회예배에서는 총회장 김홍석 목사의 사회로 목사부총회장 박영호 장로의 기도와 부총회장 정태진 목사가 ‘선교, 일상으로 보냄 받은 교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정 목사는 “지금 교회의 위기는 복음이 흐르지 않고 멈춰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일상에서의 복음적 삶을 통해 다음세대와 이웃들과 열방으로 흘러 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고 강조했다. 이후 성찬식과 직전총회장 권오헌 목사의 축도로 개회예배를 마무리했다. 사무처리 시간에는 회원 564명중 563명 출석으로 개회선언이 이뤄졌다. 절차보고와 선거관리위원회 보고 후 임원선거에 들어갔다. 총회장으로 출마한 정태진 목사(경남진주노회, 진주성광교회)는 510명 찬성으로 총회장에 선출됐고, 관심을 모은 부총회장 선거에서는 최성은 목사(서울서부노회, 남서울교회)가 359표를 얻어, 193표에 그친 정은석 목사(부산서부노회, 하늘샘교회) 제치고 목사부총회장에 당선됐다. 3명이 출마한 장로부총회장 선거에서는 김승렬 장로(울산남부교회, 울산한빛교회)가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넘는 288표를 얻어 당선됐다. 이외 단독 출마한 나머지 총회임원은 찬반투표를 통해 당선됐다. 총회유지재단 선거에서는 출마한 전원이 당선됐고, 학교법인 이사 선거에서는 김영일 목사(경남남부노회, 통영시민교회)와 서일권 장로(부산노회, 제5영도교회), 김문명 장로(경북중부노회, 한일교회), 신호상 장로(서울중부노회, 서울보은교회)가 각각 당선됐다. 다음은 총회임원 및 유지재단, 학교법인 이사 선거 결과다 총회임원 총회장 정태진 목사(경남진주노회, 진주성광교회 목사부총회장 최성은 목사(서울서부노회, 남서울교회) 장로부총회장 김승렬 장로(울산남부노회, 울산한빛교회) 서기 박성배 목사(부산동부노회, 용호중앙교회) 부서기 김종민 목사(전남동부노회, 여수수정로교회) 회록서기 구빈건 목사(경북중부노회, 사랑일꽃피는교회) 부회록서기 권태욱 목사(부산노회, 자성대교회) 회계 김수중 장로(경남노회, 명곡교회) 부회계 양현식 장로(경남진주노회, 진교교회) 총회유지재단 이사 목사이사 전통엽 목사(대구동부노회, 신평교회), 김종욱 목사(경기서부노회, 정언교회) 장로이사 서준원 장로(부산서부노회, 은혜로교회), 노경철 장로(서울남부노회, 서울시민교회), 진종신 장로(경남마산노회, 마산동광교회) 학교법인 이사 목사이사 김영일 목사(경남남부노회, 통영시민교회) 일반장로이사 서일권 장로(부산노회, 제5영도교회) 교육장로이사 김문명 장로(경북중부노회, 한일교회), 신호상 장로(서울중부노회, 서울보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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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 제74회 총회, ‘선교, 일상으로 보냄 받은 교회’ 주제로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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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교계 언론 55년 ..
- “우연이 모이면 필연이 되고 필연이 모이면 역사가 된다”고 한 말은 대한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김구가 사형 집행 사흘 전 고종 황제에만 부여된 낡고 처음 설치된 전화기로 사형 집행을 정지하라는 고종의 한 통의 전화가 그의 일생을 바꿔 놓았다. 생전에 언론이란 낱말도 생소한 언론과는 거리가 먼 맨땅에서 헤딩하는 것이나 다름없이 첫 발을 딛고 시작한 교계 언론 초년생이었던 1969년 8월 초여름 날 삼복 더위 속에서 우연한 교계 지인(이관동씨)의 소개로 광복동 입구에 위치한 작은 3층 자리 건물 안에 마련된 ‘교회연합신보 부산지사’ 수습기자로 들어 갔다가 6개월 만에 현재 동서대학의 전신인 부산실업전문학교 교장 장성만 목사에게 학교 탐방 취재 목적으로 방문하여 취재한 다음 차를 나누는 시간에 장 목사님이 잘 아는 김연준 장로(한양대학 설립자이자 그의 부인 백경숙 여사가 교회연합신보 이사장 겸 발행인)에게 소개 추천장을 써 준 관계로 서울에 직접 본사 방문 후 지금의 (주)기독교신문 사장 장충협 장로로부터 부산 주재 기자 발령을 받은 것이 첫 교계 기자의 출발점이었다. 정말 우연한 계기가 필연으로 역사의 현실적인 삶의 변화로 55년 세월의 오늘까지 이어 온 것이다. 지자제로 지방화 시대 열었던 1995년 4월 11일 ‘부산기독교신문’으로 첫 교계 지방지 신문 발행으로 부산 코모도호텔에서 지금의 명예이사장 박선제 목사를 창간 축하 예배 설교자로 장충협 교회연합신문 사장의 축사와 당시 부산시장 문정수 시장의 축사, 부산교계 인사 150여명 내빈들이 참석하여 거창하게 지방화 시대를 열었던 부산 교계신문 창간호를 발행했다. 그 후 몇 년 뒤 신문 제호를 부울경을 커버할 뿐아니라 한국교회 전 지역을 배포하는 의미에서 신문 제호를 ‘한국기독신문’으로 바꿔 발행하여 지금은 인터넷 신문과 종이 신문을 동시에 발행한지 무릇 29년이 흘렀다. 이제 나이도 80세를 넘겨 한계가 와서 아들(신상준 국장)에게 회사 운영권을 넘겨주고 조용히 지나간 교계의 역사 현장 칼럼만 쓰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연재 된 ‘역사의 현장’ 1권, 2권과 ‘부산예수’란 연재물을 책으로 출판하였다. 은성교회 장로 시무 18년 은퇴 후 주일 날은 1부 9시 예배 드리고 2부 11시는 집 근처 개척교회나 다름없는 작은 교회(부민드림교회)를 은퇴장로로서 조용히 출석하며 자리를 메우며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 7월 마지막 주일은 ‘시련과 성숙’(야고보 1:1~4)이란 제목으로 8월 4일 첫째 주일 주기철 목사(고신대 신학 교수)가 맡아 설교하는 제목은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야고보 1:5~8) 제목으로 설교하시는데 주목사 자신이 10년 동안 영국 유학 생활동안 온갖 고생과 알바로 시련을 겪어 온 과정을 지낸 젊은 시절을 연상하면서 “시련은 헛된 것이 아니고 믿음을 테스트하는 것이며 이를 통과하면 성숙과 인내가 주어 진다”는 메시지가 나의 과거 힘들었던 생각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듯했다. 보편적으로 교계신문 발행은 종합대학 기독교 대학이나 대형교회에서 운영을 하는 경향이 있어도 일개의 개인이 운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는 일인데도 용하게 29년의 세월을 견디어 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요 뒤에서 헌신과 숨은 뒷바라지를 한 아내 김해옥 권사의 지원과 가족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늦은 70대에 우연히 부산디지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전공을 배운 결과 요양보호사 자격증과 상담심리자격증을 취득한 덕에 척추 협착증 수술로 아픈 아내를 케어하는 일과로 보내고 있는 것도 하나님께 감사한 일이고 우연이 필연이 된 역사의 현실이 담겨있는 것이다. 시련은 야고보가 말해듯이 기쁨으로 여기며 성숙단계로 이어 간다는 것이 진리인 것을 여든이 되었어야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지혜’가 아니겠는가? 모 일간지에 실린 기사 중에 기자와 나눈 대화가 인상 깊었다. 코로나 백신으로 노벨 생의학상을 2023년 받은 커털린 커리코 헝거리 세게트 대학 교수는 “실험을 통해 단서를 찾아가는 과학자는 마치 형사 콜롬보처럼 계속 질문하고 추적하는 것이 과학자 직업과 같다” 말한 것처럼 그는 코로나19. 모더나, 화이자 백신을 개발하기 전까지 미국 페실메니아대에서 주임 교수로부터 괄시 받고 교수에서 연구원으로 강등 되어 실험실에서 강제 폐쇄되는 수모를 받아가면서도 원망도 후회도 없이 기쁨으로 견디어 왔다는 그의 진실한 고백이 감동을 주었다. 비전공자로 교계 언론에 몸담아 온 지난 55년은 보잘것없은 도전 정신이었고, 앞만 바라보고 작지만 꾸준한 인내와 습관이 인생을 바꾸어 준다는 교훈을 인생 후반절에야 알았지만 기자 생활을 하면서 각계 각층에서 목회에 성공한 대형교회 목사와 기업에 성공한 기독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교계 언론 생활에서 쳐진 것은 물질이 아니고 교계의 인맥이었고 그들의 열정으로 확실한 목표를 갖고 시간과 인맥을 관리하면서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주인공들을 추적하며 역사의 현장에 담기로 마음 먹고 써 온 것이 29년 세월이 흘렀다. 비록 물질은 벌지 못해도 한국교계의 역사적인 과거와 현재를 보면서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안목이 나에게 주어졌던 것이다. 그 흔적들을 담은 ‘부산노회 장로 70주년사’(통합)를 집필할 수 있었고 여러 교계 인사들의 자서전, 회고록을 쓸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만이라도 감사할 수 있었다. 한번 뿐인 내 인생 이제까지 소홀했던 가정과 가족을 돌보며 잘못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새벽제단에서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과 한국교회가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데 꾸준히 기도하는 길 밖에 없었다. 원망도 후회도 없이 무서운 현실의 삶 속에서 남은 인생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 밖에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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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교계 언론 55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