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2-08(수)
 
고 김희택 목사.JPG
故 김희택 목사

우리는 1975년 봄 고려신학대학 신학과에서 만났다.

 

-부름받아 나선 이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주 인도 따라 살아 갈 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그 때는 재수 삼수는 보통이었고 10살 20살 위형님들도 있었는데

자네와 나는 현역. 제일 동생이라서 친하게 되었지.

흙먼지 나는 운동장을 누비며 같이 축구하고 자네는 부산 지방 나는 경안 지방. 나중에는 전국sfc위원 활동으로 더욱 친하게 되었고.

강도사 이후에는 선후배가 되어 SFC간사로서 학원의 복음화를 위해서 열심히 뛰었지.

QT집-날마다 주님과가 막 발간되고 시와찬미가 시중 서점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순진한 우리가 뭣을 알아야 장사하지.

수고가 컸었다.

 

김 목사는 학교 다닐 때 성실한 서기관이라 불렀다.

강의실에서 메모하고 집에 가서 그 날 강의록을 노트에 반듯하게 다시 정리하였으니 모든 학생들의 텍스트였지. 그 노트를 서로 복사하려고 했으니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존경을 받았다.

SFC 위원 간사 시절에도 무슨 모임이든 반듯반듯한 글씨로 정리하였기 때문에 영원한 서기관이라 캤지. 성실한 신학도였다.

 

목회현장에서 영성 개발의 절실함으로 함께 치유사역을 배우기 위해서 부지런히 서울. 부산을 왕래했던 기억이 나네.

 

성실한 신학도. 서기관답게 교회 행정. 노회 행정. 교단 헌법에 관해서 상담하면 답을 척척 내 뱉던 친구.

 

터키가 좋다고 수 십 번을 다녀오면서 터기 선교에 헌신했던 친구.

 

평소 설교하다가 부름받길 원했는데

치료 중이던 10/17주일에도 설교했다면서 대단하다.

책상 앞에는 ‘새벽기도 쉬는 날 내 인생 끝난다’고 붙여 두고는 쉬지 않고 기도하던 기도의 사람.

친구의 이 땅의 삶이 끝나는구나.

 

친구야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일찍 갔으니

생명수 강가. 근사한 곳에 기도의 제단을 만들고

‘새벽기도는 영원하라’는 현수막도 달고

못 다 이룬 개혁주의 신앙과 생활을 확립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도록. 개혁주의 신앙의 대한교회 건설과 국가와 학원의 복음화. 개혁주의 신앙의 세계교회 건설과 세계의 복음화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게

남은 이들이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으로 살게 기도해 주시게.

 

사모님과 두 아들.

주님께서 위로하시고

인도해 주시길 기원합니다.

 

- 황수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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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故 김희택 목사님. 제8영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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