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60년 전 부산교계(3)
한국교회의 분열과 부산교회들의 분열
60년 전 당시 부산교회의 모습은 한국교회의 분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먼저, 1960년대 부산교계는 한국교회 분열기의 여진을 보여주고 있다. 고려신학교를 중심으로 교회쇄신운동을 전개하던 경남(법통)노회가 1951년 장로교 총회(제36회 총회)에서 추방되었다. 1907년 독노회 조직과 1912년 총회를 구성했던 장로교 총회는 단일 총회였던 것이 교회쇄신운동 과정에서 분열되기 시작했다. 고신측(1951)이 총회에서 추방되어 대한예수교장로회총노회를 구성했고(1952), 자유주의 신학 문제로 기장측(1953)으로 나뉘어 졌으며, WCC 가입 문제와 박형룡 교장의 3,000만환 사기 사건으로 인해 다시 승동측과 연동측으로 분열되었다(1959). 60년 전 부산은 장로교회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통합측 63교회, 합동측 62교회, 고신측 43교회로 삼분되어 있다. 신설된 성경장로회의 모습도 볼 수 있다. 해방 후 교회쇄신운동 과정에서 부산진교회에서 성산교회가, 구표교회에서 구포제일교회가 분리되었다.
명감에는 이러한 교회분열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같은 이름의 교회가 분리된 채로 다른 두 교단에 속한 교회들이 등장한다. 제2영도교회가 고신측의 환원으로 인해 두 교회로 분열되어 합동측과 고신측에 존재하고, 또 평양성 중심 52교회의 피난민들이 세운 ‘평양교회’도 1959년 장로교 대분열 때 나뉘어져 통합측과 합동측에 각각 같은 이름을 올리고 있다.
평양교회는 전쟁이 끝나고도 무려 17년이 되기까지 ‘평양교회’ 이름을 달고 있다가, 평양 출신 한부선 선교사의 제안으로 1970년에야 지역의 이름을 따 합동측 평양교회는 지역 이름을 따 대청교회로 이름을 바꾸었고, 금정구로 이전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9교회였으며 산정현교회(장상선 목사)와 서부교회(백영희 목사)는 독립교회로 존재했다. 재건교회는 4교회, 감리회는 22교회, 침례교회는 9교회, 기독교대한성결교회와 예수교대한성결교회로 양분된 성결교회는 기성이 6교회, 예성이 11교회였고, 수정동성결교회와 중앙성결교회는 1965년까지 중립을 유지하였다.
이 《부산 기독교 명감》은 고신측과 합동측의 환원의 여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고신측은 1960년에 이미 590교회였는데, 3년이 채 되지않는 환원으로 큰 손실을 보았다. 환원 과정에 함께하지 않은 교회가 145교회, 경기노회 보류파까지 합치면 177교회가 되었다. 북부산교회에서 고신계가 분립 부산북교회를 설립하였다. 성산교회 목회자가 환원에 동참하지 않으면서 성서교회가 설립되었다. 부민교회는 합동측과 중립 양쪽에 이름을 올렸다가, 훗날 고신측으로 돌아왔다. 김창인 전도사가 개척한 동일교회도 환원 당시 합동측에 속해 있다가 뒤늦게 고신측으로 돌아왔다. 이 시기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은 교단이 고신측이었다. 합동측과 합동과 환원 과정에서 고신측이던 송도, 북부산, 해운대제일, 충일, 범일 등 여러 교회들이 환원하지 않았다. 교단 통합과 환원의 성급한 판단이 얼마나 아픈 상처를 가져다 주었는가를 알게 한다. 고신측이 합동 당시에 590교회였는데, 600교회를 회복한 것이 1977년도였다. 한국교회 성장기에 고신측은 20년을 제자리 걸음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