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3-12(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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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삼진 목사/미국 에반겔리아대 교수. 총회교육원장 역임, 저서로 《재미고신총회 40년》, 《고신교회 정신사 연구》 등이 있다. 《부산기독교 명감》 발굴

지금부터 꼭 60년 전 부산교회와 교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책자가 발굴되었다. 1965년 대한예수교전국평신도회 경남연합회(회장 김용옥)에서 부산의 각 교회를 전수조사하여 처음으로 발간한 《부산기독교 명감》이다. 이 책은 46판 양장 173면으로 구성되었는데, 60년 전 부산교회와 교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몇 가지 특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온천제일교회를 시무하던 교회사가 이찬영 목사가 ‘부산의 기독교’를 개괄하여 정리했는데, 부산의 위치, 부산의 천주교와 기독교 전래, 초기 설립 교회들, 그리고 부산기독교계의 특징을 미온적, 평화적, 소교회주의를 들었다. 둘째, ‘(부산의) 기독교 현황’을 한 페이지의 표에 담았다. 책의 서두에 부산의 인구 현황, 인구와 주택 현황, 각 교회 현황, 종교단체 현황을

실었다. 셋째, 각 교단별로 예장통합측, 예장합동측, 예장고신측으로 구분하여 노회 임원, 상비부 및 시찰 조직, 연합회 명단을 실었다. 각 교단에 각 교회의 명부를 교회명, 주소, 담임목회자를 포함하여 구별하고, 각 교회의 이름, 주소, 목사. 장로, 장립집사, 청년회장 등 중요한 사항을 포함하였다. 그 외에도, 기독교계 학교, 구제기관, 각 기구 현황 등을 포함하고, 교회

별 교인 전화번호부, 광고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 책이 출판된 지 꼭 60년, 당시의 부산의 교회와 교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네 차례에 걸쳐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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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기독교명감

  

60년 전 부산 교계와 오늘

명감에 의하면 1963년 12월 말을 기준으로 부산의 인구는 중구, 서구, 동구, 영도구, 부산진구, 동래구 등 6개 구에 91개 동, 1,351,630명이었다. 초등학교 79개, 중학교 46개, 고등학교 40개, 전문학교 1, 대학교 10개였는데, 미인가 공민학교가 72개나 되었다. 가난해서 학교에 가지 못하던 청소년들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민학교에서 중등교육을 받는 주경야독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당시는 고등성경학교에서 성경을 주로 공부를 하면서 중등학교 과정을 마친 경우도 많았다. 초장동교회는 지역 특성상 1970년대까지 공민학교를 운영했다.

 

1960년대 중반에는 ‘토착화 신학’ 논쟁을 벌일 정도가 될 정도로 신학적인 성숙을 추구하던 시기였지만, 한국신학대학을 제외하고는 정규대학으로 인가받기 전이었다. 60년 전 부산에는 장로교 통합측, 합동측, 고신측 외에도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예수교재건장로회, 독립장로교회, 예수교대한성결교회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성결교회는 교단 분리 이후 중립측도 두 교회가 되었는데 수정동성결교회는 중립측에 속하였다. 1963년에 대한성경장로회는 독립교단이 되었다. 해방 후 부산에 입국해 고신교회와 협력하던 마두원 선교사는 성경장로회를 창립하면서 고신측과 멀어졌다. 당시 부산에는 기독교대한감리회가 22교회, 침례교회가 9교회였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장성만 목사가 제일그리스도교회를 시무하였는데,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 지원으로 경남공업전문대학를 설립하였고, 그것이 기반이 되어 동서대학교로 성장하였다. 설립자 장성만 목사는 정계에 진출,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구세군이 세 교회였고, 안식교가 일곱 교회, 안상홍의 ‘새안식교’는 이 시기에 출석 수가 100명이 되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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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60년 전 부산교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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