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2-12(목)
 

전영헌 목사(N).jpg

새해가 밝았다.

학교는 아직 조용하지만, 나는 다시 교문 앞에 선다. 이 자리에서 보내는 시간이 어느덧 열아홉 해가 되었다. 매해 새해가 되면 마음속에 같은 질문이 떠오른다.

“나는 여전히 이 자리에 부름받은 사람인가.”

미션스쿨에서 교목으로 산다는 것은 결코 화려하지도, 늘 환영받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매년 새 학기마다 다시 이 자리로 나를 부르신다는 사실이다. 교목의 가장 큰 보람은 시간을 견뎌낸 아이들의 변화에서 온다. 처음 이 학교에 왔을 때, 아이들은 기독교를 거리낌 없이 “개독”이라 불렀다. 그 말에는 상처와 불신, 그리고 종교에 대한 깊은 거리감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열여덟 해가 흘렀다. 설득보다 동행으로, 논쟁보다 일상으로 아이들을 만났다. 찾아가지 않아도 매일 마주치는 만남, 아침 인사, 복도에서의 짧은 농담, 힘든 날 말없이 함께 앉아 있는 시간이 쌓이며 아이들의 언어가 바뀌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개독”이라는 말 대신 “기독”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 변화는 교육의 성과라기보다 삶으로 스며든 복음의 흔적이었다.

 

교목의 사역은 예배당에만 머물지 않는다. 상담실에서, 교실 뒤편에서, 운동장 벤치 위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삶 속에 있다. 함께 울고, 함께 버티며,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곁에 있어 주는 시간이 쌓인다. 그 과정 속에서 아이들의 삶이 조금씩 달라진다. 포기하려 했던 아이가 다시 살아갈 이유를 붙들고, 관계 속에서 무너졌던 아이가 다시 사람을 믿어 보려는 용기를 낸다. 그 변화는 교목에게 주어진 가장 깊은 사명 확인의 순간이다.

 

아이들의 변화는 가정으로 이어진다. 한 학생과의 신뢰가 부모와의 대화로 확장되고, 학교에서 시작된 작은 만남이 가정의 분위기를 바꾸는 장면을 만난다. 그때 교목은 비로소 깨닫는다. 미션스쿨의 사역은 학교 담장을 넘어 가정의 복음화로 이어지고 있음을. 또 하나의 감사는 같은 미션의 가치를 붙들고 있는 동료 교사 공동체와의 연합이다. 교육이라는 치열한 현장 속에서도 신앙을 이유로 고립되지 않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은 새해를 다시 시작하게 하는 큰 힘이다. 그러나 이 사역에는 늘 그늘도 함께한다. 학교는 본질적으로 교사가 중심이 되는 공간이다. 그 안에서 교목은 존재감이 적으면 “미션의 기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존재감이 커지면 “선교보다 일을 많이 해서 인기 끈다”는 오해를 받는다. 필요할 때는 찾지만, 견해가 다르면 돌아서며 “정치적이다”라는 말로 선을 긋기도 한다. 그 사이에서 교목은 자연스럽게 고립감을 느낀다. 어느 날은 교사라는 기준으로 평가받고, 어느 날은 목사라는 기준으로 재단된다. 이중의 잣대 속에서 자리를 지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관리자의 성향에 따라 건학이념은 이리저리 휘둘리기도 한다. 사시시대처럼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하는 관리자들에 의해 미션의 방향성이 외면되기도 한다. 결국 하루를 마치고 돌아서면 혼자다. 그러나 새해의 문턱에서 나는 다시 고백한다. 이 외로움마저도 하나님께서 나를 이 자리로 부르신 이유 안에 있음을. 올해도 새로운 아이들을 만난다. 다시 이름을 외우고, 다시 관계를 시작하고, 다시 복음을 삶으로 건네야 할 시간이다.

 

부디 이 새해에 지역의 미션스쿨에서 사역하는 교목들이 지치지 않도록 지역교회들이 함께 기도해 주기를 바란다. 미션스쿨의 교목은 교회와 학교 사이를 잇는 다리이기 때문이다. 그 다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그 다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새해에는 더 많은 연대와 격려가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새해, 나는 다시 교문 앞에 선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께서 시작하실 일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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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헌 목사]새해, 다시 교문 앞에 서며(미션스쿨에서 교목으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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