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D.J. 카루소
주연 : 노아 코헨(마리아), 이도 타코(요셉), 안소니 홉킨스(헤롯)
성탄, 거룩한 분의 탄생이다. 2천여년전 하나님의 아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우리 가운데 계시면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 신학적으로 성육신이다. 기독교의 핵심은 이 것에 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 즉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아지셨다. 가장 낮아지심으로 낮은 자를 구원하신다. 아타나시우스는 이렇게 표현했다. “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로 오셔서, 사람의 아들들을 하나님의 아들들로 만드셨다. ”
하나님의 아들은 역사적으로 가장 어두울 때 오셨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즈음 세상은 로마라는 제국이 통치하고 있었다. 당시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분열된 로마를 통일했다. 원로원은 그를 신적 존재로 칭송했고, 제국의 시민들은 그를 숭배했다. 아우구스투스는 ‘팍스 로마나’ 즉 로마의 평화를 선언했다. 다시는 전쟁이 없는 상태, 평화의 제국이 세워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로마의 시민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팍스 로마나는 헛된 말에 불과했다. 로마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정복 지역을 통치했고, 높은 세금을 부과했다. 강제 부역에도 동원했다. 혹여 로마에 반기를 들면 가차없이 처벌했다. 로마의 지배 하에 살아갔던 피정복국의 사람들은 암흑 그 자체였다.
더욱이 팔레스타인 지역은 로마 황제의 호의를 받은 헤롯이 통치했다. 헤롯은 포악한 왕이었다. 그는 권력에 눈이 멀었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들조차 처형할 정도로 잔인했다. 헤롯은 성전을 재건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자신의 왕궁을 건축했다. 당연히 이스라엘 사람들은 온갖 부역에 동원되었고 높은 세금을 내야 했다.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어둠이자 절망 그 자체였다.
바로 이런 시기에 한 줄기 빛이 비취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속하기 위한 일을 하셨다.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를 보내셨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은 당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대와 사뭇 달랐다. 하나님은 화려한 왕궁에 속한 자가 아닌, 이름 없는 한 여인을 선택하셨다. 그것도 결혼하지도 않는 처녀를 선택하시고 그녀의 몸을 통해 인류의 구원자가 잉태되고 탄생하게 하셨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D.J. 카루소 감독은 이런 부분을 스크린으로 풀어냈다. 그가 만든 ‘마리아, 마더 오브 지저스’는 마리아라는 여인에게 집중한다. 감독은 성경을 바탕으로 하지만 성경이 말하지 않는 부분을 상상력으로 보완한다. 마리아의 어린 시절을 복원해 낸다. 유년시절의 마리아는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에게 친절하다. 성전에 갔다가 배고파 구걸하는 사람을 보고는 지나치지 않고 빵을 나누어준다. 이런 행동은 감독의 재구성이지만 충분히 공감이 된다. 그녀의 이런 삶, 즉 하나님을 향한 깊은 기도와 사람을 향한 사랑이 그녀가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도록 선택받은 이유가 될 것이다. 그녀의 사랑과 자비,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하나님께서 눈여겨 보신 것이다.
이어 영화는 마리아의 순종에 주목한다. 생각해 보면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선언한 계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성이 아이를 갖게 된다니, 어떻게 이런 일을 믿을 수 있겠으며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또한 마리아가 살던 시대에는 처녀가 결혼하지 않은 채 아이를 갖게 되면 즉시 마을 공동체 앞에 끌려나가 심판받을 가능성이 컸다. 마리아가 살던 갈릴리 지역은 씨족 공동체가 모여 살던 곳이므로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갈 것이다. 즉 그녀는 한 마디 변명도 하지 못한 채 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대로 마리아는 천사의 말에 순종했다. 마리아는 이해할 수 없는 천사의 말에 순종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네가 성령으로 아들을 잉태하고 낳을 것이며, 그 아들을 예수라 하라고 했을 때 마리아는 즉시 순종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이 순종이 세상을 바꾸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마리아의 신앙 고백을 통해 잉태되었고, 탄생하게 되었다.
이어 영화는 순종의 여인 마리아를 집중해서 보여준다. 마리아는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잉태하는 것에도 전적으로 순종하고, 헤롯의 학살을 피해 애굽으로 피신하는 일에도 순종한다. 자신의 뜻과 계획을 추구하지 않고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에 맡긴다. 이후에 어린 예수님을 키우는 일에도 철저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 이어 예수께서 공사역을 하시며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실 때도 그녀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 아니 아들이지만 하나님의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말씀에도 순종한다. 이런 순종은 그녀가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고 그 뜻에 헌신함을 보여준다. 바로 이것이 그녀의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다. 그 사랑이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시는 통로가 되었다. 그래서 신학은 전통적으로 그녀를 ‘신을 잉태한 자’(Theotokos)로 존중해 왔다.
이 영화는 마리아 뿐 아니라, 마리아의 부모들, 마리아의 남편 요셉, 그리고 무엇보다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예수님까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이런 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사랑은 형용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했다. 즉 사랑은 느낌이나 감정을 넘어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때 우리의 감정이나 느낌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신 분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의 삶은 순종 그 자체셨다. 그 분은 십자가를 지셔야 할 상황 앞에서도 이렇게 기도하셨다. “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
예수님의 이런 순종은 누구에게 배웠을까? 물론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하나님에게 순종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인간으로 살아가셨던 예수님은 어린 시절 어머니 마리아에게서 이러한 순종의 삶을 배우셨음에 틀림없다.
역사적으로 가장 암흑의 시기에 순종의 여인을 통해 구원자가 오셨다.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믿음으로 반응한 여인을 통해 세상에 구원이 이루어졌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순종이 아닐까? 어떻게 보면 2천년전처럼 오늘 우리 사회도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소망이 점점 사라지고 분열과 대립이 가득하다. 교회는 그 어느때보다 세상으로부터 질타와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하기에 오늘 마리아와 같은 순종의 사람이 필요하다. 어둠을 다시 비출 사람, 세상에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드릴 수 있는 사람, 그 한 사람 순종의 사람이 바로 나이길 간절히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