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황동혁
출연 : 성기훈(이정재), 프론트맨 황인호(이병헌), 이명기(임시완), 강노을(박규영), 김준희(조
유리), 황준호(위하준), 장금자(강애심),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고, 현실은 영화를 따라간다. 인기 있는 영화일수록 그 반향은 크다.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현실을 잘 반영한다. 달리 말하면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었다는 뜻이다. 문제는 감독이 영화의 스크린에 펼쳐 놓은 어떤 장면, 스토리, 가치관은 즉시 모방 효과를 낳는다는 데 있다. 한 때 조폭 시리즈 영화들이 인기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 즈음을 지나면서 청소년들의 입이 거칠어 졌다. 욕설이 난무했다. 우스개소리로 욕을 빼면 말이 안되는 지경이 되었다. 일본 학원 폭력물이 무분별하게 들어오던 시점에 학원 폭력도 더해졌다. 이른바 왕따 현상, 학원 폭력이 훨씬 증가했다. 영화가 현실을 반영하여 그 반향이 크면현실은 그 영화를 따라간다.
전 세계를 뒤흔든 오징어 게임이 드디어 대결말을 장식했다. 시즌 1에서 엄청난 글로벌 흥행을 이룬 뒤 시리즈 2와 3을 제작하여 개봉했다. 오징어 게임은 일종의 신드롬을 낳았다. 전 세계 시청률 1위를 찍은 것 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놀이를 따라하고 관련 상품도 메가 히트를 쳤다. 그야말로 신드롬이었다.
오징어 게임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자. 이런 저런 이유로 빚을 진 사람들,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이 상금에 눈이 멀어 게임장에 들어왔다. 456명의 참가자들, 게임을 해서 최종 승자가 되면 456억의 상금을 차지할 수 있다. 하지만 첫 게임을 하고 난 뒤 참가자들은 일대 혼란에 빠진다. 게임에 진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설마 했던 것이 현실로 다가
왔다. 게임에 탈락하면 죽는다. 공포와 전율이 이들을 사로잡는다.
하늘이 무너져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고 했다. 프론트 맨은 한 가지 탈출구를 제시한다. 참가자들이 투표를 통해 게임의 진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명이라도 더 게임 정지를 결정하면 현재의 상금을 나눠서 나갈 수 있다. 하지만 투표 결과는 충격이다. 게임을 계속 하자는 편이 더 많다. 여기에는 두 가지 심리가 담겨 있다. 우선 내가 어떤 게임이든지 이길 수 있다는 착각이 깔려 있고, 또 하나 다른 사람을 죽여서라도 돈을 차지하겠다는 욕망이 내포되어 있다. 잔혹한 부조리극이다.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후 지속적으로 이어져 온 거대한 부조리다. 이기적 욕망이 싸움을 낳고 전쟁을 낳고 제국을 낳았다. 제국은 이런 인간 심리를 선동한 독재자가 독차지하는 구조다. 대부분은 희생의 제물이 되고 비참한 삶을 영위했지만, 그들은 나도 언젠가 제국의 최상위 포식자가 될 것이라는 착각과 내 자녀가 사다리의 맨 윗자리에 오를 것이라는 자기기만을 해 왔다. 이런 자기 기만과 거대한 착각 속에서 죽고 죽이는 만인의 만인에 의한 투쟁이 이어져 왔다. 결국 극소수외에 다 죽고 마는 게임인데도 깨닫지를 못한다.
오징어 게임은 작금의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1980년대부터 이어져 온 신자유주의라는 물결 속에서 일어난 금융자본주의의 욕망을 펼쳐 보인다. 누구든지 게임에서 최후 승자가 되면 슈퍼 리치가 될 수 있다는 신화가 판을 치고 있다. 그런 신화의 주인공들이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대학의 롤모델이 되고 사회의 영웅이 된다. 잘 생각해 보면 전 세계에서 겨우 몇 명 뿐인데, 나도 그 사람이 될 것이라 착각을 한다. 토마 피케티의 잘 정리된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 부의 50%이상을 전 세계 인구의 단 1%가 차지하고 있는데 말이다. 99%의 사람은 이 거대한 게임의 법칙에서 탈락하고 1%의 부자들을 위해 부를 제공하고 있지만 이욕망의 매카니즘은 끝이 나지 않는다. 나도 1%의 마법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메시지가 더 크기 때문이다.
다행히 감독은 예언자적 인물을 다시 게임판에 넣었다. 성기훈이다. 그는 지난 게임의 최후 승자가 되어 막대한 부를 획득했지만, 그 돈이 누군가의 피의 대가라는 것에 마음이 편하지 않다. 친구가 죽었고, 이런 저런 사연의 사람들이 죽은 대가를 도무지 누릴 수 없었다. 그는 이 게임을 중지시키려 한다. 다시 게임판에 들어간 성기훈은 지속적으로 말한다. “이러다 다 죽습니다” “이제 게임을 멈추어야 합니다” “누군가를 죽이고 돈을 차지할 것이라 하지만 자신이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성기훈은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 놓을 각오가 되어 있다. 비록 자신이 죽을지라도 이 게임을 멈추어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면 족하다고 여긴다.
성기훈은 예언자의 목소리다. 일찍이 월터 브루그만이 말한 예언자적 상상력의 사람이다. 브루그만은 앗수르, 바벨론, 이집트 제국의 각축장 한 가운데서 외쳤던 예언자 이사야를 소개한다. “ 사자들이 어린 양과 뛰놀며, 독사 굴에 어린아이가 손을 넣어도 물지 않는 세상 ” 은 예언자가 소망하는 곳이다. 제국에 던지는 폭탄 선언이자 대안 세상에 대한 청사진이다. 맞다. 새로운 세상은 새로운 생각에서 시작된다. 오징에 게임에서 프론트맨 황인호가 당황해 하는 지점은 성기훈의 선지자적 면이다. 그곳에서 거대한 게임판의 균열이 일어난다.
아울러 성기훈의 진정성에 감동한 소수의 무리들이 대안이다. 비록 자신은 인생에 실패했지만 태어날 아기는 새로운 세상에서 살기를 소망하며 희생을 각오하는 김준희, 자식 교육에 실패해서 끔찍한 게임판에 들어왔으나 각성한 장금자, 게임진행요원으로 들어왔으나 거대한 구조에 맞서는 강노을 등이다. 성기훈의 예언자적 목소리에 반응한 사람들이다. 역사
는 이런 소수의 각성자들에 의해 진보해왔다. 흑인노예의 인권을 대변했던 윌리엄 윌버포스와 그의 생각에 동의하고 도왔던 ‘클래펌’ 공동체, 존 울먼 목사의 사상에 동의하고 해방 노예들을 북쪽으로 데려다 준 ‘지하철도’ 조직원들, 이런 사람들의 헌신으로 역사는 발전해 왔다.
이제 우리들이 움직일 때다. 오징어 게임이라는 드라마에 일희일비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감독이 던진 구조적 문제에 응답할 때다. 칸트가 일찍이 말한 바 “머리 위 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우리의 마음에 살아있는 도덕 법칙” 에 응답할 때다. 나 혼자의 욕망에 끌려 사는 삶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헌신이다. ‘다 죽을 것이냐? 다 살아남을 것이냐?’ 그것은 나의 각성과 의지에 있다. 오징어 게임을 우리 아이들에게 다시 돌려주자. 해 지면 훌훌 털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동심의 세계를 물려주자.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 체 게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