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4-25(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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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의 《죽음사회 너머》

- 거룩한 노년을 위한 생사학 -

 

죽음은 인간이 대처해야 할 가장 큰 과제이나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말하기를 불편해한다. 그래서 회피하고 부정하며 금기시한다. 저자는 죽음을 부추기는 위험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죽음은 회피할수록 역설적으로 생명이 감춰지고 죽음의 문화가 확산된다며 죽음을 피하지 말고 바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내 삶을 의미 있고 아름답게 가꾼다는 뜻이고, 죽음이 끝이 아닌 삶의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 문이므로 준비된 죽음으로 존엄성을 지키며 아름다운 삶을 마무리할 것을 권면한다. 대학원에서 생사학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생사교육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그의 결론은 ‘죽음은 결국 생명의 열매를 맺기 위한 토양’이라는 것.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 하고픈 이들에게 드리는 기독교 생사학 매뉴얼.

   

◇ 저자소개 ∥ 김 성 민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 . 미국 미시오 신학교(구 비블리컬 신학교)에서 선교적 교회론으로 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뉴욕과 필라델피아에서 이민목회를 하였고, 귀국하여 나들목교회와 광주소명교회에서 사역했다. 현재는 한림대학교 대학원에서 생사학 박사 과정에 있으며 생사교육문화연구소의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안식》 /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 / 복있는 사람 / 2007

《나이듦의 신학》 / 폴 스티븐스 / CUP / 2018

《죽음과 부활의 신학》 / 김균진 / 새물결플러스 / 2015

《현대생사학 개론》 / 찰스 A 외 / 박문사 / 2018

 

 

   

기독교인문학 〈57〉

 

                                                                          죽음은 고통스럽지만 복 있는 관문

                                                                                    - 죽음을 기억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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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본질적으로 죽음에 이르는 존재이다” 폴 투르니에

 

 

죽음을 직면하라

“이제 죽음을 편하게 이야기하면 좋겠다. 불편한 대상을 피할수록 진실은 멀어진다. 우리는 죽음을 직면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의도적으로 죽음의 진실을 파헤쳐야 한다. 죽음을 모른 채 생명을 제대로 누릴 수 없고 영원한 생명인 부활을 소망할 수 없다.”

 

'죽음'은 금기어?

김길구 며칠 전 휴대폰에 부고가 떴어요. 작년에 뵈었던 박만교수가 안타깝게도 소천하셨다는 거예요. 66세의 아까운 나이에… 순간 은퇴 후의 취미생활을 위해 배우고 있다며 연구실 한편에 세워둔 클래식과 일렉트릭 기타를 번갈아 치며 좋아하시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저며왔어요. 이처럼 죽음은 우리 곁을 서성이고 있는데 늘 잊고 살아요. 박만교수의 마지막 저서가 되겠네요. 고인을 추모하면서 《인생의 질문 신앙의 답변》 중에 죽음에 관한 얘기 중 생각나는 대목이 있다면?

류지원 역사학자 필리프 아리에스의 《죽음의 역사》를 인용한 대목인데, 죽음은 보편적이지만 서구 기독교 문명 속에서 죽음에 임하는 태도는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르게 변해왔단 거예요. 중세 초기에는 공동체의 품에서 ‘우리의 죽음’으로 함께 했다면 중세 말기에는 공동체 의식의 약화로 ‘나의 죽음’으로 바뀌더니, 바로크 시대에는 ‘멀고도 가까운 죽음’으로 점차 객관화하고, 낭만주의 시대로 와서는 ‘타인의 죽음’으로 타자화하더니, 현대사회에 와서는 죽음이 ‘아주 낯설고 두려운 것’으로 최대한 숨기고 금기시해야 할 ‘반대물’로 전화해 왔다는 거지요.

 

죽음학, 생사학의 발자취

김현호 저자는 ‘생사교육문화연구소’ 소장인 김정민 목사입니다. 우리에겐 생소한 생사학(生死學)은 처음에는 죽음학(Tanatology)으로 시작했는데 1903년 메치니코프가 노인학을 연구하면서 처음 사용했다고 해요. 그러다 1963년에 미네스타 대학교에서 최초의 정규과목을 개설한 후 여러 대학으로 확산되었는데, 아시아에서는 죽음에 대한 기피 때문인지 생사(生死學), 또는 사생학으로 재정의하여, 한국에는 1997년 한림대학교에서 처음으로 죽음교육 과정을 개설하였고, 2004년에 ‘생사학연구소’를 설립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해요.

류지원 우리는 기대수명 100세 시대를 기대하고 살지만 OECD 자살률 1위에서 보듯이 노인들의 질병, 빈곤, 돌봄문제를 비롯한 연명치료, 존엄사, 고독사 등 주음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요. 삶의 가치와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프로그램은 필요합니다. 급속한 노령화를 맞고 있는 교회는 웰빙(well-being) 못지않게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죽음의 지배아래 있는 인간

김길구 불편한 진실은 우리 모두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지만, 죽음을 잊고 살아간다는 거예요. ‘거룩한 노년을 위한 기독교 생사학’이라는 부제가 말하듯, 이 책은 기독교적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라고 할 수 있어요.

김현호 고대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외치게 했다죠. ‘메멘토 모리!’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으로, 너무 우쭐대지 마라.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의미인데, 생명이며 부활의 종교인 기독교는 죽음이 종착지가 아닌 영원의 문으로 들어가는 길이기에 사는 동안 삶의 의미를 찾아 최선을 다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류지원 그렇죠. 기독교에서의 죽음은 죄에 대한 형벌로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는 것과 이 죽음의 권세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극복되었으며 사후 다른 차원의 몸으로 창조주 앞에서 죽음이 지배할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회복한다는 의미에서 죽음은 부정과 긍정의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고 봐야지요.

 

늙어 간다는 것

김길구 나이듦에 대하여 얘기해 보죠. 폴 스티븐스는 모세의 서사에서 살아온 날을 ‘세는 것’(시90:12)을 ‘시간의 성화’라고 했어요. 비록 우리의 신체는 날로 노쇠해 가지만 그동안 우리가 걸어온 삶의 여정이 값지고 의미 있게 잘살아왔다는 자존감 속에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한’(시편 92편) 삶으로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지요?

김현호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분류하고, 초기노인은 65-74세, 중기노인은 75-85세, 후기노인을 85세 이상으로 분류하지만, 저자의 경험에 의하면 65세 이상이면 가능한 노인 일자리 200여 명의 평균 연령이 75세가 약간 넘었고, 최고령자는 92세였다고 해요. 노인들의 빈곤 문제도 문제이지만, 대가와 무관하게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존감을 유지하는데 일자리는 꼭 필요합니다.

류지원 기대수명 100세 시대를 기대하며 흔히 ‘9988234!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병원에 입원하고 편안하게 죽는 것이 바람이겠지만, 통계를 보면 평균수명 84세, 건강나이 평균 약 67세로 약 17년 동안 각종 질병으로 골골거리며 살다 죽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령에 맞는 영양과 운동 그리고 마음의 평안이 필요합니다.

김현호 더 치명적인 것은 치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2022년도 통계를 보면 치매 환자가 거의 100만 명을 돌파했군요. 중앙치매센터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21년도 기준 전국 추정 65세 이상 노인 인구 총 857만여 명 중 치매환자는 약 88만 명으로 유병률은 10.33% 노인 10명당 1명은 치매에 걸리고, 점점 증가하다가 80세 이상이 63%였다니 안타깝군요.

 

자살에 대하여

김길구 자살한 사람이 2023년 통계를 보니 13,978명으로 10만 명당 27.3명으로 나타났습니다. 월 1,000여 명이 사망한 거예요.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아노미적 자살, 숙명적 자살로 분류한 사회학자 뒤르켐은 ‘자살의 동인이 심리적 조건보다는 사회적 관계로 이해해야 한다’고 했는데, 우리는 가톨릭보다 경직되어 있는 것 같아요. 1983년 가톨릭에서는 자살을 가리켜 ‘교회가 자비를 베풀어야 할 절망에 빠진 사람의 표지’라고 하여, 목회적 차원에서 자살 유가족들을 위해 장례를 허용한 반면 우리는 그렇지 못하죠.

김현호 자살은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해요. 책에는 빅터 프랭클의 명저 《죽음의 수용소에서》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책은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는데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으로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여러 수용소를 전전하면서 죽음의 극한 상황에 직면한 자신을 포함한 수용자들을 관찰한 결과보고서로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의 비결은 ① 고통 자체는 의미가 없지만, 우리가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고 극복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과 ② 니체의 말처럼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③ 외적인 상황은 바꿀 수 없어도 인간에게는 어떠한 상황 속에도 자신의 태도와 선택을 결정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류지원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그는 정신과 의사로서 logos+therapy의 합성어인 ‘로고테라피-의미치료’라는 삶의 의미를 찾고 이를 통해 내면적 충족을 이루게 하는 심리기법을 고안하였는데, 의미를 찾는 방법으로는 일이나 예술활동 같은 창조적인 활동을 하라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 그리고 고통을 견디며 성장하라는 것입니다. 그의 사상은 전후 세대에 큰 호응을 얻었고 현대인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는 그의 저서는 철학적·심리학적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김길구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결산’입니다. 저자는 인생여정의 마무리는 네 가지에 초점을 맞추라고 제언합니다. 첫째로 나의 유산과 서사 남기기, 둘째로 화해하기, 셋째로 나의 존엄지키기, 마지막으로 나만의 장례식 계획하기입니다.

긴 시간 수고하셨습니다. 헨리 나우웬의 “죽음이란 하나님의 얼굴을 맞대고 볼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주는 고통스럽지만 복 있는 관문이다”란 말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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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문학] 죽음은 고통스럽지만 복 있는 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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