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9-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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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모이면 필연이 되고 필연이 모이면 역사가 된다”고 한 말은 대한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김구가 사형 집행 사흘 전 고종 황제에만 부여된 낡고 처음 설치된 전화기로 사형 집행을 정지하라는 고종의 한 통의 전화가 그의 일생을 바꿔 놓았다.

생전에 언론이란 낱말도 생소한 언론과는 거리가 먼 맨땅에서 헤딩하는 것이나 다름없이 첫 발을 딛고 시작한 교계 언론 초년생이었던 1969년 8월 초여름 날 삼복 더위 속에서 우연한 교계 지인(이관동씨)의 소개로 광복동 입구에 위치한 작은 3층 자리 건물 안에 마련된 ‘교회연합신보 부산지사’ 수습기자로 들어 갔다가 6개월 만에 현재 동서대학의 전신인 부산실업전문학교 교장 장성만 목사에게 학교 탐방 취재 목적으로 방문하여 취재한 다음 차를 나누는 시간에 장 목사님이 잘 아는 김연준 장로(한양대학 설립자이자 그의 부인 백경숙 여사가 교회연합신보 이사장 겸 발행인)에게 소개 추천장을 써 준 관계로 서울에 직접 본사 방문 후 지금의 (주)기독교신문 사장 장충협 장로로부터 부산 주재 기자 발령을 받은 것이 첫 교계 기자의 출발점이었다. 정말 우연한 계기가 필연으로 역사의 현실적인 삶의 변화로 55년 세월의 오늘까지 이어 온 것이다. 지자제로 지방화 시대 열었던 1995년 4월 11일 ‘부산기독교신문’으로 첫 교계 지방지 신문 발행으로 부산 코모도호텔에서 지금의 명예이사장 박선제 목사를 창간 축하 예배 설교자로 장충협 교회연합신문 사장의 축사와 당시 부산시장 문정수 시장의 축사, 부산교계 인사 150여명 내빈들이 참석하여 거창하게 지방화 시대를 열었던 부산 교계신문 창간호를 발행했다. 그 후 몇 년 뒤 신문 제호를 부울경을 커버할 뿐아니라 한국교회 전 지역을 배포하는 의미에서 신문 제호를 ‘한국기독신문’으로 바꿔 발행하여 지금은 인터넷 신문과 종이 신문을 동시에 발행한지 무릇 29년이 흘렀다.

이제 나이도 80세를 넘겨 한계가 와서 아들(신상준 국장)에게 회사 운영권을 넘겨주고 조용히 지나간 교계의 역사 현장 칼럼만 쓰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연재 된 ‘역사의 현장’ 1권, 2권과 ‘부산예수’란 연재물을 책으로 출판하였다.

 

은성교회 장로 시무 18년 은퇴 후 주일 날은 1부 9시 예배 드리고 2부 11시는 집 근처 개척교회나 다름없는 작은 교회(부민드림교회)를 은퇴장로로서 조용히 출석하며 자리를 메우며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 7월 마지막 주일은 ‘시련과 성숙’(야고보 1:1~4)이란 제목으로 8월 4일 첫째 주일 주기철 목사(고신대 신학 교수)가 맡아 설교하는 제목은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야고보 1:5~8) 제목으로 설교하시는데 주목사 자신이 10년 동안 영국 유학 생활동안 온갖 고생과 알바로 시련을 겪어 온 과정을 지낸 젊은 시절을 연상하면서 “시련은 헛된 것이 아니고 믿음을 테스트하는 것이며 이를 통과하면 성숙과 인내가 주어 진다”는 메시지가 나의 과거 힘들었던 생각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듯했다. 보편적으로 교계신문 발행은 종합대학 기독교 대학이나 대형교회에서 운영을 하는 경향이 있어도 일개의 개인이 운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는 일인데도 용하게 29년의 세월을 견디어 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요 뒤에서 헌신과 숨은 뒷바라지를 한 아내 김해옥 권사의 지원과 가족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늦은 70대에 우연히 부산디지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전공을 배운 결과 요양보호사 자격증과 상담심리자격증을 취득한 덕에 척추 협착증 수술로 아픈 아내를 케어하는 일과로 보내고 있는 것도 하나님께 감사한 일이고 우연이 필연이 된 역사의 현실이 담겨있는 것이다.

시련은 야고보가 말해듯이 기쁨으로 여기며 성숙단계로 이어 간다는 것이 진리인 것을 여든이 되었어야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지혜’가 아니겠는가?

모 일간지에 실린 기사 중에 기자와 나눈 대화가 인상 깊었다. 코로나 백신으로 노벨 생의학상을 2023년 받은 커털린 커리코 헝거리 세게트 대학 교수는 “실험을 통해 단서를 찾아가는 과학자는 마치 형사 콜롬보처럼 계속 질문하고 추적하는 것이 과학자 직업과 같다” 말한 것처럼 그는 코로나19. 모더나, 화이자 백신을 개발하기 전까지 미국 페실메니아대에서 주임 교수로부터 괄시 받고 교수에서 연구원으로 강등 되어 실험실에서 강제 폐쇄되는 수모를 받아가면서도 원망도 후회도 없이 기쁨으로 견디어 왔다는 그의 진실한 고백이 감동을 주었다.

비전공자로 교계 언론에 몸담아 온 지난 55년은 보잘것없은 도전 정신이었고, 앞만 바라보고 작지만 꾸준한 인내와 습관이 인생을 바꾸어 준다는 교훈을 인생 후반절에야 알았지만 기자 생활을 하면서 각계 각층에서 목회에 성공한 대형교회 목사와 기업에 성공한 기독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교계 언론 생활에서 쳐진 것은 물질이 아니고 교계의 인맥이었고 그들의 열정으로 확실한 목표를 갖고 시간과 인맥을 관리하면서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주인공들을 추적하며 역사의 현장에 담기로 마음 먹고 써 온 것이 29년 세월이 흘렀다. 비록 물질은 벌지 못해도 한국교계의 역사적인 과거와 현재를 보면서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안목이 나에게 주어졌던 것이다.

그 흔적들을 담은 ‘부산노회 장로 70주년사’(통합)를 집필할 수 있었고 여러 교계 인사들의 자서전, 회고록을 쓸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만이라도 감사할 수 있었다.

한번 뿐인 내 인생 이제까지 소홀했던 가정과 가족을 돌보며 잘못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새벽제단에서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과 한국교회가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데 꾸준히 기도하는 길 밖에 없었다. 원망도 후회도 없이 무서운 현실의 삶 속에서 남은 인생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 밖에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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