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5-20(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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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콘트라팍툼’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사랑하는 노래 가운데 <You raise me up>이 있다. ‘내 마음이 우울하고, 나의 영혼이 많이 지칠 때(When I am down and, oh my soul, so weary)’로 시작하는 가사는 하나님께서 나를 위로하시고 나를 들어 산정상에 세우시며 폭풍이 치는 바다 위를 걷게 해주신다는 의미로 해석되어 교회 안에서도 즐겨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 노래의 출처를 보면 누군가의 신앙고백으로 만들어진 찬송가나 복음송이 아닌 팝송이란 사실에서 다소 놀랄 수 있을지 모른다. 리듬과 멜로디가 그리스도인의 정서에 맞고 신앙적인 해석이 가능한 가사로 이루어졌을 뿐이다.

<You raise me up>은 북아일랜드 민요인 ‘Londondery Air(아, 목동아)’를 기반으로 한 노래로 2002년에 출시된 시크린 가든의 앨범 <Once in a red moon>의 수록곡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조쉬 그로반(Josh Groban), 웨스트 라이프(Westlife), 일 디보(Il Divo)등 수많은 유명 뮤지션들이 이 곡을 리메이크하면서 세상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노래가 되었다. 국내에서도 소향과 소울 등 CCM 가수들이 즐겨 불렀고 어느덧 교회 행사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인기곡으로 자리 잡았다.

<You raise me up>의 출발점이 팝송으로 시작했다는 사실에 결코 실망할 필요는 없다. 교회음악의 역사에는 <애니 로리(Annie Laurie, 찬송가 493장)>나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찬송가 280장)>과 같은 민요 선율이나 세속적인 음악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에 사용한 예들이 적지 않다. 이렇게 세속적인 리듬이나 멜로디에 기독교적인 가사를 붙여서 사용한 교회음악을 ‘콘트라팍툼(contrafactum)’이라 부른다.

기독교 영화에도 ‘콘트라팍툼’이 있다. 세속적인 영화지만 그 메시지가 매우 성경적이고 기독교 신앙을 북돋우는 역할을 할 수 있어서, 마치 처음부터 기독교 영화로 제작된 것으로 이해되는 영화를 말한다. 바로 체코의 단편영화 모스트(MOST, 2003)가 여기에 해당한다. 인터넷에서 떠돌던 편집 영상을 통해서 감동을 받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아름아름 교회에서 사용해왔지만 정작 완편을 대할 수 있었던 것은 최근 일이었다. 김상철 감독의 기독교 영화사인 ‘파이어니어21’이 정식으로 수입하여 DVD로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이 영화가 체코의 보비 가라베디안(Bobby Garabedian) 감독이 만들었고 2003년 아카데미 단편영화상 후보에도 오른 일반 작품임을 알게 되었다.

 

한국교회의 뜨거운 반응을 일으킨 영화 ‘모스트’

<모스트>가 한국교회에서 주목을 끌게 된 결정적 이유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구속의 메시지를 쉽게 읽을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었다. 강에 배가 지날 때마다 철교를 들어 올리는 도개교(跳開橋) 관리인과 그의 사랑하는 어린 아들은 하나님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로 읽힌다. 도개교가 들려있는 상황에서 기차가 달려오는 것을 본 아들이 많은 사람이 위험에 빠진 것을 직감하자 도개교를 내리는 레버를 조작하다 그만 기계장치 속으로 떨어지고 만다. 이를 본 아버지는 중요하고 심각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아들을 살리려면 기차가 강으로 추락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이고, 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다리를 내리면 아들은 죽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모스트>에 나타난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살게 되는 구속의 메시지는 부활절을 앞두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대속의 은혜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체코의 고풍스런 도시 분위기와 기차의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묻어나서 서정적이며 주연 배우들의 인간미를 물씬 풍기는 연기는 이 영화의 예술적 가치가 결코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모스트 이전에 ‘대속’이 있었다

체코 영화 <모스트> 이전에 한국 영화 <대속>(代贖, 1998)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대속>을 만든 오풍원 감독은 미국 기독교 명문 대학 휘튼 칼리지(Wheaton College)에서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한 후 한국에 돌아와 서울 강남의 사랑의 교회에 방송실에서 봉사하고 있었다. 1990년대는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서 문화의 영향력을 새롭게 인식하던 시기였고, 교회 또한 예배와 교육, 선교 등에서 영상의 활용가치가 높아지던 때였다. 오풍원 감독은 새로운 세대들의 눈높이 맞춰 신앙적으로 ‘좋고’ 또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상작품을 만든다는 취지에서 ‘조코재미’라는 제작사를 설립하여 운영하기 시작했고 <대속>은 그 첫 작품이었다.

사랑의 교회 중등부가 친구초청잔치를 통해 전도의 목적으로 상영한 <대속>은 초신자나 비신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를 통해 구원받은 사건을 조명하는데 매우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그 해 문화선교단체인 ‘낮은 울타리 문화선교회’가 연세대 총학생회와 함께 벌인 ‘신촌 문화축제’에서도 상영될 만큼 <대속>은 비기독교인에게 그들의 눈높이 맞춰 기독교의 구속 사상을 전파하는데 매우 설득력 높은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아버지와 아들의 친밀한 관계를 표현할 때는 CCM 가수인 홍순관의 ‘천국의 춤’을 사용했고 슈베르트의 ‘숭어’와 우리 가곡 ‘비가(悲歌)’를 영화에 입혀서 친근감을 더하기도 했다.

휴일을 맞아 간이역에서 근무하는 철도원인 아버지를 따라나선 아들은 철로를 변경하는 제어장치가 고장나는 바람에 직접 현장으로 나가 철로를 변경하다 기차에 치여 죽는 안타까움을 보여주었다. 만일 아들이 철로를 변경하지 않았다면 기차는 절벽으로 떨어지고 말 상황이었다. 아버지의 통곡과 아들을 잃은 슬픔이 영화의 전면에 흐르지만, 열차의 승객들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모른 채 세속적 즐거움에 살아갈 뿐이었다.

주인공이 철도원과 그 아들의 등장, 그리고 달려오는 기차 속 승객들을 구하기 위해 아들의 희생이 있었지만 정작 구원을 받은 당사자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점 등은 <모스트>를 빼닮았다. 오풍원 감독은 이 기가 막힌 구속의 모티프를 어떻게 생각해 낸 걸까? <모스트>의 보비 가라베디안 감독은 오감독의 <대속>을 봤을까? 기회가 생기면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교회 청년들이 만든 영화 <버스>

영화예배로 유명한 ‘꿈이있는교회’ 담임목회자인 하정완 목사는 청년들의 삶에 미치는 영화의 영향력에 주목하고 또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실현될 수 있도록 복음을 이해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도구로 영화를 사용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남이 만든 영화를 활용하는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영화제작에도 나섰다.

꿈이있는교회는 교회 소속의 영화사 ‘아이즈 필름’을 창설하고 2010년 5월 20일 대학로 풀빛극장에서 첫 작품으로 <버스> 시사회를 개최했다. <버스>는 십계명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데칼로그(Decalog) 시리즈의 첫 영화였다.

<버스>는 총제작을 담당한 하정완 목사가 스위스에서 공부하던 처제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각색한 것으로 버스에 탄 생각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치어 죽여야 했던 아버지의 고통스러운 의지와 결단을 통해 하나님과 아들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은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소재가 기차에서 버스로 바뀌었을 뿐 <모스트>나 <대속>의 구조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버스는 기차와 같이 세상을 상징한다. 죽음의 위기로 내몰리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 관심이 없는 것이 세상이다. 버스 안에서 신나게 노래 부르고 춤추는 청년들은 브레이크가 고장나는 바람에 내리막길을 치닫는 절체절명의 위기로부터 그들이 어떻게 살아날 수 있었는지 도무지 관심이 없다. 그들은 오직 약속 시간에 늦지 않을지를 걱정할 뿐이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먹먹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승객을 살리기 위해 아들을 죽인 아버지는 도대체 어떤 아버지란 말인가!

영화에 대한 평가는 매우 좋은 편이었다. 2010년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단편영화경쟁부문에 초청을 받음으로서 권위 있는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광을 누렸는가 하면, 그해 서울에서 열린 제8회 서울기독교영화제에서 기독교인들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버스>의 가장 큰 특징은 교회에서 제작한 영화라는 점에 있다. 꿈이있는교회의 청년 성도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아니었으면 꿈꾸기 어려웠을 것이다. 불과 21분짜리 단편 드라마에 불과하지만 2천만 원이 넘는 제작비가 들어갔고, 감독부터 엑스트라에 이르기까지 청년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돋보인 영화였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배우 가운데 주연인 버스 기사 역의 이상직을 제외한 30여 명의 출연자들 대부분이 교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연출을 담당한 장재현 성도는 이후에 <검은 사제들>(2015)과 <사바하>(2019)의 감독이 되어 한국영화계가 주목하는 흥행의 귀재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모스트>와 <대속> 그리고 <버스>를 보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들 영화의 메시지가 성경의 구속사건을 비유적으로 묘사했음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은 이 영화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기차나 버스에 탄 사람들이 한 생명의 희생으로 인해 살게 되었음을 세상의 언어로는 ‘이타적 죽음’이라 말한다. ‘이타적 죽음’은 사회의 갈등을 해소시키고 분열된 사회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보편적 가치로 인정받는다. 2001년 도쿄 지하철 역에서 일본 취객을 구하다 숨진 이수현 청년의 희생이 한일 양국의 냉각 관계 속에서도 두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단단히 잇는 끈의 역할을 하는 것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다른 모든 ‘이타적 죽음’의 원형의 역할을 한다. 누구를 위해서 어떻게 죽을 수 있는지 세상의 어떠한 이타적 죽음도 예수의 죽음보다 더할 수는 없다. 이것은 <모스트>와 <대속> 그리고 <버스>가 세상과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선한 작품이지만, 관객들을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영화 속 사건의 원형이 무엇인지를 설명할 필요를 느끼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으로 이어지는 적절한 해설이 뒤따른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이보다 훌륭한 영화선교는 없을 것이다. 이 세 편의 영화는 모두 유튜브를 통해 볼 수 있다.

 

 

 

 

강진구 교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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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구속과 은혜에 대한 은유가 빛나는 단편영화 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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