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9-23(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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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의신 목사

 지난 3월 14일 주일, 유의신 목사는 33년간 사역했던 믿음찬교회에서 마지막 설교를 전하고 내려왔다. 목회 일선에서 은퇴한 유의신 목사는 “아들만 두 명이지만 결혼식장에서 딸을 시집보내며 눈물짓는 아빠의 심정을 알 것 같다”며 은퇴를 하면서 교회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으로부터 교회를 떠나보내는 마음이 더 크다고 밝혔다. 은퇴 후 늘노래문화전도연구소에서 문화전도에 대해 더 집중해서 연구하며 사역할 계획이라는 유의신 목사를 연구소가 있는 이사벨고교 강당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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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공동체

유의신 목사는 1974년 미국 사우드웨스턴성서대학(기독교교육)을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와 이사벨여고(당시) 교사로 복귀했다. 그리고 평신도를 위한 목견운동이라는 제자훈련을 시작했다. 그 훈련의 일환으로 ‘늘노래음악전도단’이 구성됐다. 국내 최초 전업 음악전도 보컬 그룹이었던 늘노래 사역을 활발히 하며 교회뿐 아니라 교회 밖, 교도소, 군부대, 병원 등 집회를 다녔다.

늘노래 사역을 왕성하게 하면서 기존 교회의 문제점을 인식하게 됐다. 유 목사는 “1986년, 너무 무리한 탓에 늘노래 필드를 쉰 적이 있다. 그때 하나님께서 ‘로컬처치를 비판한 네가 교회에서 목회를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교회를 하겠다고 하면서 먹고 살기 위한 교회는 안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1988년 믿음찬교회를 개척했다. 정춘애 사모가 운영하던 유치원을 주일에는 예배처소로 사용했다. 50여명의 교인들이 모이기 시작했을 때 유 목사는 교인들에게 자신을 담임목사로 청빙해 줄 것을 요청했고, 1993년 청빙투표를 거쳐 7년간 시무를 하게 됐다. “개척을 하고 5년이 지났을 때, 문득 교인들이 손님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청빙을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이 7년마다 재신임투표를 거쳐 교회에서 시무하게 됐다” 교인들은 총 4번의 신임투표를 가졌고, 유의신 목사는 올해 77세로 은퇴를 했다. 유 목사는 “이미 7년 전에 은퇴할 것이라고 했지만 교회에서 마지막이라며 투표를 했다. 그리고 원로목사나 공로목사 같은 타이틀과 은퇴식은 필요없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교회의 규모에서 최선을 다해서 나에게 은퇴식을 해줬다. 너무 좋다”며 교인들을 향해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믿음찬교회의 특징이라고 하면, 재정을 퍼센트로 관리하며 예산서가 없다는 것이다. 교회 홈페이지에서 ‘믿음찬성도의 약속’으로 교회규약을 볼 수 있다. 규약에는 교회 재정에 관한 내용이 있는데, 교회의 수입 10%가 교역자사례비, 40%는 대외선교비, 50%는 대내 교육 관리비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예측 불허한 내일을 위해 오늘 불러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믿음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이 이유다. “수입과 지출을 정한다는 것은 예측을 한다는 것이다. 내가 예측하고 그것에 맞춰 사는 것은 믿음이 아닌 것 같다”는 유의신 목사는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이지 종교 공동체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믿음찬교회가 교단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 교회로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앙 공동체라는 것을 잊지 말고, 교단 법이 아닌 성경이라는 법 밖에 없다는 마음가짐이다.

“‘먼저 그의 나라의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대로 복음을 우선으로 뒀을 때 하나님께서 부족한 것을 채워주셨다. 사실 작년부터 은퇴 전까지 처음으로 안식년을 가졌다. 내가 아니라 장로님들과 성도들이 다시 교회를 세워간다고 생각하라고 했다. 내가 떠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떠나보내는 심정으로 은퇴를 준비했다. 현재 후임 목사님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믿음찬교회와 함께할 사람을 보내주실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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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4일(주일) 은퇴식에서 정춘애 사모와 함께
 
목자장이신 주님을 따르는 목견운동

목견운동은 주님의 목장에서 목자장이신 주님을 따르는 충성된 개들을 양육하는 제자훈련 프로그램이다. 유의신 목사가 미국에서 돌아와 가장 먼저 시작한 사역이다. 3년 과정인 목견운동은 현재 늘노래문화전도연구소가 위치한 이사벨고교 강당에서 시작됐다. 목견운동의 정신은 훈련을 받은 성도들이 각자의 처소로 흩어져 훈련받은 대로 삶을 사는 것이다. 유 목사는 “목견운동을 수료하는 사람들이 회관이나 단체를 만들자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사람들을 규합해서 단체를 크게 만드는 것은 목견운동의 정신이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제자훈련의 생명은 훈련받고 교회로 돌아가서 그곳을 섬기며, 배운 대로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목견운동을 시작하면서 유 목사는 1976년 노문환 목사, 이광무 목사를 만나 늘노래보컬그룹으로 음악전도 사역을 하게 됐다. 늘노래 늘노래Ⅰ, 늘노래Ⅱ, 늘노래뉴젠으로 활동했지만 2007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하게 됐다. 그러나 문화사역은 계속 됐다. 음악으로 전도를 했던 유 목사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장르의 문화가 전도에 사용되어야 한다는 마음을 주셨다. 지역의 문화사역자들이 자신들이 가신 전문성으로 전도할 수 있다는 인식과 도전을 주기 위해 늘노래문화전도연구소를 개소하면서 늘노래 사역을 새롭게 전환했다.

유의신 목사는 “문화전도연구소에서 문화전도사역을 위한 세미나, 모임, 기도회 등을 해왔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할 수 없지만, 교회사역을 내려놓은 앞으로는 문화전도에 대해 더 연구하고 사역을 하고자 한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허락해주신다면 말이다”며 바람을 전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문화사역, 죽음 문화를 살림의 문화로

 

유의신 목사는 문화전도라는 말을 강조하면서 교회가 성장을 위한 전도에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도는 생명을 살리는 사역이다. 죽은 문화를 살림의 문화로 전환시키는 혁명적인 운동이 바로 문화전도운동”이라면서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했다. 그 말은 즉, 천하를 주고도 한 생명을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전도를 많이 하면 상을 받는 것 등 전도를 교회의 성장으로 연결하다보니 전도가 이기적이게 됐다. 이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핵심은 복음이다”고 힘줘 말했다.

코로나19로 맞은 비대면 시대에 미디어 저변확대가 이뤄지고 있다. 교회도 온라인예배 등 미디어를 활용한 새로운 예배의 방향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급격한 변화는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대형교회가 아닌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전문적으로 미디어를 다룰 인력이 부족하다. 또 미디어를 다루는 세대 간 격차도 크다. 동서대학교 교목인 유의신 목사는 이러한 격차를 현장에서 경험한다고 말했다. “MZ세대를 디지털 원주민이라고도 부른다. 미디어 속에서 태어났다고 할 수 있는 그들에게 우리는 외계인 같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내가 IT에 관심이 많아 예전부터 혼자 계속 공부해왔다. 하나님께서 준비시켜주신 것 같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젊은 교수나 목사들이 이런 미디어를 다루는 것에 힘들어 하고, 지금 세대와 문화차이가 급격한 속도로 커지고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다”면서 “그러나 중요한 것은 콘텐츠다. 화려하게 보이는 미디어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복음이라는 콘텐츠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유 목사는 미디어를 그릇에 빗대며 “목마른 사람에게 그릇의 종류가 중요하지 않다. 그 안에 담긴 것이 사람이 마실 수 있는 순수한 물이냐는 것이다. 미디어라는 그릇보다 그 그릇에 무엇을 담느냐,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콘텐츠가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유의신 목사는 전도에 비즈니스가 섞이지 않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크리스천들이 기독문화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하면서 예수를 믿어 천국에 간다고 하면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들과 똑같이 사니까. 성경말씀이 실효성이 없어지고 설득력이 떨어질 뿐이다. 교회 성장시대에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한다. 손해를 보더라도 먼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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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문화를 생명으로 전환하는 것이 문화전도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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