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2(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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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고 탁명환 소장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시점에 불쑥 등장하곤 한다. 지난 해 말부터는 최태민 행적과 관련해 자주 언론에 등장했다. 선친이 최태민을 조사하고 남긴 자료들이 최태민이 누구였는지를 밝히는 가장 중요한 일차자료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에게 아픈 기억이고 현실(現實)인데, 세상은 진실(眞實) 규명이라는 명분으로 최태민을 조사했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와 자료를 집요하게 요구한다. 물론 진실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 가족에게 선친은 평범한 가장일 뿐이었다. 이단단체에 속한 한 괴한의 칼에 돌아가신 선친의 이야기를 해야 할 때 마다, 선친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려야하기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에 무덤덤해지기까지는 아마도 아주 오래고 오랜 시간이 흘러야 할 것 같다.
김포공항을 갈 때 마다 멈춰서 생각에 잠기곤 하는 장소가 있다. 국내선 출국장 앞이다. 필자가 20여 년 전 유학을 떠나는 날 아버지와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눴던 곳이다. 나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의미 있는 장소이다. 그리고 일 년 뒤에 아버지는 우리 가족 곁을 떠나셨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아버지의 미소 띤 얼굴이 떠오른다. 아버지의 널찍한 품이 생각난다. 아버지의 체취도 아련하게 느껴진다. 그렇기에 아버지처럼 이단 강의를 위해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그곳에 가게 되면 (물론 내가 하는 일이 결코 아버지와 비교할 수 없이 미미하나) 잠시잠깐 아버지의 심정이 어땠을지 짐작하게 된다. 남들에게는 평범한 곳이지만, 나에게는 선친과의 마지막 포옹의 애틋한 기억이 있는 특별한 장소이다.
단 두 차례 꿈에서 만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20년이 훌쩍 넘었는데. 두 번 모두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한번은 돌아가신지 10년 정도 되었을 때였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건강이 많이 힘들어, 설교를 하다가 몇 차례 쓰러지기도 했을 때였다. 두 번째는 지난 해 초였다. 이런저런 이단관련 문제로 마음이 힘들 때였다. 이 꿈 역시 생생하다. 아버지는 특유의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멀리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말을 걸었는데도 대답이 없으셨다. 급한 마음에 얼른 뛰어가 아버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예전처럼 변함없이 따뜻했다. 그 손을 한참 바라보니, 내 손과 똑같이 생겼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한 마디도 안 하시고, 그냥 미소 띤 얼굴로 나를 바라보기만 하셨다. 내가 많이 힘들 때마다 꿈속으로 찾아오시는 것을 보면, 아직도 부족한 아들을 많이 염려하고 계시는 것 같다. 인생의 힘든 순간이 다시 찾아오면, 아버지를 다시 만나 또 위로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된다.
중년의 나는 아버지처럼 주름도 많다. 배도 나왔고, 머리숱도 적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나이 몇 해 더 있으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연배에 이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가 참 젊어서 하나님 품에 안기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아버지를 따라 나도 이단연구를 한다고 버둥거리면서, 피해자의 눈을 통해 이단문제를 바라보려고 애쓰고 있다.
‘이단 바로알기’는 ‘이단피해자 바로알기’로부터 시작된다. 아버지로 인해 등 떠밀려 시작한 이단연구는, 이제 우리 가족을 포함한 이단 피해자들의 가정을 지키고, 그 피해를 알리기 위한 절박한 싸움이 되었다. 그렇기에 물러설 곳도, 물러설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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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지일 교수의 이단바로알기] 진실과 현실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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