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는 부산기윤실과 함께 4.13 총선 공정선거운동 캠페인을 펼칩니다. 선거를 맞이하는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자세와 후보자에 선택에 대한 바람직한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총 4회에 걸쳐 최현범 목사(부산중앙교회 담임, 부산기윤실 공동대표), 주광순 교수(부산대 철학과, 부산기윤실 공동대표), 김진영 교수(부산대 정외과, 부산기윤실 실행위원), 가정호 목사(부산기윤실 사무처장)의 글이 게제 될 예정입니다.>
정치의 빛과 소금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다. 세상의 어두움을 밝혀서 참과 거짓, 정의와 불의, 사랑과 증오를 분명히 드러내는 빛이요, 세상이 썩어가고 있을 때에 부패를 방지해서 썩지 않게 해 줄 소금이다. 물론 우리 인간 그리스도인들 개개인이 실제로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거듭 난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기회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말씀인가!
어느 덧 선거의 계절이 다가 오고 있다. 4.13 총선이다. 선거철에는 교회에도 낯 선 방문자들이 생긴다. 현역 국회의원도 있고 경쟁하는 출마자들도 있다. 그들은 교회에도 가고 절에도 심지어 동창회나 계모임에도 간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어디든 가려고 한다. 그런데 어떤 목사님들이 그들을 교회에서 인사시키는 것을 목격한다. 물론 그 목사님들이 꼭 선거운동을 하려고 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좋은 마음에서 교회를 찾아준 방문자를 환영한다는 취지에서 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조처들이 어떤 의미에서는 공정 선거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점은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것은 아마도 사회적 의식의 부족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또한 이 땅의 시민들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사회적, 정치적 의식의 부족은 우리의 결함이라고 평가해야만 한다.
좋은 그리스도인이려고 한다면, 단지 교회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에서도 올바른 판단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은 신앙 생활이나 개인 윤리에서 뿐 아니라 정치, 사회적인 면에서도 빛과 소금이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빛을 세상에 비추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세상이 우러러 보도록 해야만 한다.
이만열 선생님의 한국 교회사 연구에 따르자면 선교초기에는 우리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사회,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선두에 있었으며 이것이 또한 선교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이 한국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에 일제의 기독교 억압 속에서 저세상 주의, 정치와 종교의 분리 등이 교회에 들어왔다.
빛 대신에 모든 것을 묻어 버리는 어두움이 찾아 온 것이다. 그래서 교회에는 정치의식이 희박해지고 해방이 되고 난 이후에는 세상 정권에 끌려 다니는 일까지도 벌어졌다. 그 와중에 양적 성장은 생겼으나, 아쉽게도 교회가 세상과 함께 부패해 버리고 만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많은 젊은이들 뿐 아니라 의식이 있는 사람들에게 교회가 좋지 않은 이름을 얻게 된 계기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하늘 아버지의 영광에 누가 되었다.
빛의 속성은 분별이다. 어두움 속에서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던 것들에 빛이 비추이면 드러난다. 옳고 그름이, 진리와 거짓이, 사랑과 이기심이. 남을 정죄하는 것이 은혜가 아니지만, 두리뭉실도 은혜는 아니다. 종종 어두움이 은혜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뿐이다. 교회에 나오지도 않던 선거 후보를 예배시간에 세울 수 있는가? 정치적 공정성에 위배된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도 죄송스럽다. 그렇지 않아도 교회에 가면 하나님보다 사람들이 더 자주 눈에 들어온다.
교회의 중직자들, 세상의 권력이나 명예를 가진 사람들, 성도들의 눈. 그런데 현역 국회의원이나 사회적 명사 등을 예배시간에 소개시킨다면 하나님보다 사람이 더 드러난다. 그렇지만 어떤 특정인을 판단하려고 하기 보다는 어떤 것이 옳은지 고민해 보자. 이게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길이라고 여겨진다. 여기에 성공한다면 다시 한 번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의 빛을 위해서 몇 가지 생각해 보자. 우선 사적인 것에만 관심을 쏟지 말고 공적인 일에 신경을 써 보자. 우리의 건강, 우리의 부, 우리의 잘 됨은 사적인 문제이다. 물론 중요한 문제이다. 그리고 이 문제들 신경 쓰기에도 우리의 삶이 괴롭다. 그러나 국가의 문제, 지역 사회의 문제, 이 시대의 아픔 등은 공적인 문제이다. 선거철에만 누구를 찍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힘들지만 조금이라도 공적인 문제들에 관심을 기울여 보자.
예레미야의 경고가 무섭다!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공의를 행하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렘 7:4-6)
둘째는 자기 사업, 자기 학교, 자기 지역보다 국가 전체를 생각해 보자. 어떤 교육감 후보가 제 아들이 다니던 학교에 필요한 일을 해주면서 운영위원들의 표를 호소한 적이 있었다. 물론 아들 학교에는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전체로 보았을 때 과연 올바른 것인가 다시 한 번 물어 볼 수가 있다.
셋째는 약자의 편에서 생각해 보자. 지금 우리나라는 많은 경계들이 있다. 대학에는 학생과 교수가 있고 학생들이 약자이다. 그러나 회사나 국가에서 약자는 훨씬 어려움이 크다. 그래서 지금도 일가족이 생활고에 자살하는 기사가 신문에 난다. 구약에서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로 표현하신 약자들은 신약에서 예수님의 일차적 관심이었다. 이번 선거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기회가 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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