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개혁교회 신자를 가리켜서 위그노라 부른다. 16세기 종교개혁 때 프랑스의 위그노는 신앙 때문에 심한 박해를 받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572년 성 바돌로매 축일에 프랑스 전역에서 약 7만 명의 위그노가 순교당했다. 그런데 그 위그노가 박해 중에 만든 교회정치가 있다. 곧 <프랑스교회권징서>(Discipline ecclésiastique des Églises réformées de France)>이다.
16세기 중엽 프랑스교회는 프랑스 출신 종교개혁가 칼빈의 영향을 받아 개혁신앙이 빠르게 확산했다. 마침내 1559년 프랑스 파리에서 최초의 총회가 열려 신앙고백서와(갈리아 신앙고백), 교회권징서를 채택했다. 박해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음에도 곳곳에 세워지는 지역교회들은 예배와 교리, 질서 등에서 하나가 될 필요를 느꼈다. 그렇게 해서 교회권징서가 작성되었다.
40조로 구성된 프랑스개혁교회의 교회권징서는 도대체 어떤 내용을 담았을까? 혼인을 다루는 34-38조를 제외하면 모두 직분과 치리회, 권징을 다루고 있다. 위그노는 이를 통해 어떤 교회를 꿈꾸었을까? 이는 오늘 우리 한국교회에 어떤 교훈을 주는 것일까?
첫째, 반(反)교권주의를 선언했다(1조). 교회권징서 제1조는 이들에게 하나의 선언과 같다. “어떤 교회도 다른 교회 위에 군림하지 못하며, 어떤 목사가 다른 목사 위에, 어떤 장로도 다른 장로 위에, 어떤 집사도 다른 집사 위에 군림하거나 부당한 교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이는 명백히 당시 로마천주교회는 물론 교회 안에 있는 모든 형태의 교권주의를 반대하는 고백이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유일한 머리요, 어떤 직분도 다른 직분 위에, 어떤 교회도 다른 교회 위에, 어떤 치리회도 다른 치리회 위에 군림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 1조는 여러 나라 교회정치에 영향을 끼쳤다.
둘째, 감독정치를 거부하고, 장로회 정치를 채택했다. 각 교회는 목사나 유력한 개인이 아니라 장로들의 회인 치리회에 의해 다스려짐을 천명했다. 그 치리회는 당회, 시찰회, 노회, 총회로 불린다. 이 네 개 치리회를 온전히 둔 것은 프랑스개혁교회의 교회권징서가 최초이다. 칼빈이 목회한 제네바교회의 교회법령에도 총회는 없었다. 제네바는 국가가 아니라 하나의 도시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치리회를 다룰 때 총회가 가장 먼저 나오고 이어서 대회, 그리고 노회, 당회로 열거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순서는 지역교회와 당회의 역할을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박해 중에도 공동의 질서를 통해 하나의 공교회를 지향한 것을 잘 보여준다.
셋째, 지역교회의 당회에 목사와 장로는 물론 집사가 들어가 있다(24조). 제네바교회와 다르게 집사를 당회원으로 여겼다. 직분의 동등을 아주 강조했다. 집사는 심지어 시찰회, 노회, 총회에 총대로 갈 수 있었다.
넷째, 프랑스교회권징서는 전체 40개 조항 중 무려 8개 조항에서 권징(勸懲)을 다루고 있다. 위그노들은 권징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들의 교회질서를 ‘권징서’라고 이름을 붙였다. 특히 직분자, 그중에서 목사의 범죄에 대한 권징을 강조했다. 행실은 물론, 다른 교훈을 가르치거나 당회가 말씀에 근거하여 제시하는 권면을 지키지 않을 때도 권징을 했다. 사회적 추문을 일으켜서 사회법을 따라 형벌을 받은 자는 목사직을 박탈했다. 그러나 최종 판결은 노회에 맡겼다.
다섯째, 목사의 호칭을 “말씀의 봉사자”(Minister of the Word)로 했다(10조). 목사의 주된 직무를 말씀으로 교회를 봉사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