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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아우구스티누스와 국가 권력1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e, 354-430)는 라틴 기독교를 체계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중세 천년의 사상적 기틀을 마련하고 종교개혁의 정신적 원류가 된다는 점에서 그의 사상은 신학논의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특히 그는 은총의 교리를 확립하여 ‘은총의 박사’(Doctor gratiae)라는 칭호를 얻었고, 예정교리를 취급하여 오늘의 칼빈주의 신학의 원조로 지칭되기도 한다. 오늘 우리가 말하는 칼빈주의 신학은 이미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 속에 드러나 있으므로 워필드(B. B. Warfield)는 그를 “칼빈 이전의 칼빈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또 그는 “역사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역사의 의미를 정신사적으로 파악하는 혜안을 지니고 있었다. 20세기 저명한 교부학자인 알타너(B. Altaner)는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해 말하면서, “위대한 주교 아우구스티누스는 테르툴리아누스의 창조적 정열, 오리제네스의 영적 풍부함, 치푸리아누스의 교회적 의식, 아리스토텔레스의 예리한 논리를 플라톤의 높은 이상주의와 사변에 결합시킨 인물이다. 그리고 라틴인의 실용적 감각을 헬라인의 영적 유연성에 일치시켰다. 그는 교부시대의 가장 위대한 철학가이며, 전 교회의 가장 주요하고도 영향력 있는 신학자이다.”라고 평한 바 있다. 그래서 그는 서양 기독교 전통에서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nas, 1225-1274)와 쌍벽을 이루는 인물로 평가되어 왔고, 하르낙은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도바울과 16세기 루터 사이의 가장 위대한 기독교 지도자”라고 불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다양한 주제에 관한 광범위한 논설을 전개하였고, 그가 남기 저술은 엄청나게 많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망 직후인 431-439년에 『아우구스티누스 전기』를 쓴 포시디우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1,030개의 저서명을 열거한 바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이 말년에 쓴 『「재고론』(Retract)에서는 427년까지 저술한 93개의 저서 목록을 열거했다. 이 저서들은 교부문헌의 최대 총서인 『민뉴전집』 32-47권에 수록되어 있는데, 500쪽의 책으로 환산해도 수십 권의 분량이 된다. 흔히 그의 작품은 자서전적 저술, 성경주석에 관한 것, 변증론적 저술, 교리논쟁적 저술, 경건문학류 등으로 구별되는데, 이 작품을 통해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아 인식에서 시작하여 존재, 진리, 사랑, 하나님 인식의 가능성, 인간의 본성, 영원성, 시간, 자유, 역사, 섭리, 정의, 행복, 평화 등 철학적인 분야는 물론 신앙과 이성의 관계, 악의 문제, 하나님의 은총론과 예정론, 삼위일체론 등 다양한 신학적 주제를 취급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 중 신앙과 이성의 관계, 악의 문제, 하나님의 은총론과 예정론, 삼위일체론 등은 가장 많은 관심의 주제였다. 그 외에 또 한 가지 주제가 국가권력의 범위를 다룬 글이다. 그는 위대한 사상가이자 신학자였고 역사철학자였지만 그의 주장이 다 정당하고 다 옳은 것은 아니었다. 그의 교회관과 성례관은 중세 기독교, 곧 로마가톨릭 교리 발전에 유효한 근거가 되었다는 점 때문에 그는 개신교와 로마가톨릭 양자에 의해 존경과 칭송을 받아왔다. 그의 사상에서 한 가지 잘못된 주장이 국가권력의 한계에 대한 인식이었다. 그는 이단징벌에서 국가권력이나 경찰력을 이용할 수 있다고 보았는데 이것은 종교적 강제와 박해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후에 커다란 문제를 야기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단과 대결하면서 국가권력의 구속력과 강제력을 이용하고자 했는데, 이 이론을 꼼뻴레 인뜨라레(Compelle intrare)라고 말한다. ‘들어오라고 강요하라,’ 혹은 ‘억지로라도 들어오게 하라’라는 의미인데 ‘강제권 이론’으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신약성경 누가복음 14장 23절에 근거한 이론이었다. 즉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에 근거하여 이 논리를 폈다. 즉 아우구스티누스는 누가복음 주석에서 두 동사를 사용한다. 즉 'coge intrare'(들어오라고 강제하라. 아프리카 텍스트)와 ‘compelle intrare'(들어오라고 강요하라, Vulgate)를 사용하면서 억압의 이론을 발전시켰다(게리 윌스, 『성 아우구스티누스』, 186). 이것을 보면 아우구스티누스가 활동했던 5세기 당시 교회와 국가가 분리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콘스탄틴의 기독교 공인(313) 이후 황제는 교회와 신앙문제에 대한 사법권을 행사했고, 공의회를 소집하고(325) 정통과 이단 시비를 가리기도 했다. 이단자들에 대한 벌금, 재산몰수, 고문, 사형 등의 형벌을 가하는 것을 정당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핍박받았던 도나티스트들(Donatists) 조차도 이단을 반대하는 법과 강제력에 도전하지 않았다. 단지 이런 법이 자기들의 집단에 적용되는 것을 반대했을 따름이다. 교회 규율문제(권징의 문제)에 있어서만 정통신앙과 다르다는 입장이었고, 그 결과로 분리주의적인 자기들의 집단이 이단이 될 수 없다는 인식이었던 것이다. (다음 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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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6-01-30
  • [은혜의말씀]기적을 부르는 일상감사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한 본문 말씀을 살펴본다. 날은 저물어 먹을 것을 얻고자 하되 거기는 아무것도 없는 빈 들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다. 네가 문제를 해결해 보라는 것이다. 안드레가 한 아이에게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왔다. 남자만 오천 명이었으니 여자와 어린이를 합치면 거의 2만 명이었다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50명씩 앉히라고 하셨다. 모든 것은 질서가 있다. 사랑에도 질서가 있다고 한다.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경천애인).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나누어 주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만 열두 바구니시에 거두었다. 예수님께서는 버리는 것이 없이 모으라고 하였고 열두 광주리는 완전수이다. 그만큼 주님의 은혜는 풍성하고 넘치는 것이다. 오병이어 기적은 4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믿는 자에게는 누구에게나 기적이 일상이 된다. 건강의 기적, 자식 농사의 기적, 날마다 말씀 안에서 기적같은 일상에 감사하고, 기적의 연속을 원하고 바라고 기도해야 한다. 다들 안 된다고 포기하는 순간에 안드레와 한 아이의 헌신은 기적의 마중물이 되었다. 작은 것에 감사할 때 큰 것이 온다. 소박한 데서 대박이 나고 평범한 데서 비범한 것이 나타난다. 한낱 어린아이의 감사라도 약육강식,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세상에서 힘없고 가진 것이 없지만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게 한다.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사용되는 사람은 잘난 사람, 예쁜 사람이 아니다. 성경을 보면 주께서는 소자, 약자, 빈자를 들어 쓰신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미천한 종, 작은 자로 여겼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존귀하게 들어 쓰셨다. 달란트 비유에서는 적은 일에 충성하면 많은 것을 주신다. 안드레는 그저 보잘것없는 음식을 내놓는 어린아이를 앞으로 인도했고, 본인이 믿는 대로 형 베드로를 전도하는 순수함이 있었다. 먼저 믿었다고 텃세를 부리지 않고 형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게 하였다. 오병이어 기적은 민생고를 해결하였다. 주님은 말씀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실제로도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사랑하는 자녀들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다. 기적 이후에도 예수님께서는 버리는 것이 없게 하셨다. 부족함이 없고 틀림이 없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 교회는 다양성 가운데 일치를 이루는 다일공동체이므로 어린아이와 어른, 약자와 강자가 공존한다. 열두 광주리가 남은 것은 하나님이 쩨쩨한 분이 아니라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는 영광의 주님이기 때문이다. 일상의 감사를 회복하라. 일용할 양식을 감사하라. 하루 삼시 세끼에 감사하라. 잠언의 말씀처럼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바울처럼 내 은혜가 족하도다, 다윗처럼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박국처럼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리로다 하는 것이 진정한 성도의 모습이다. 비록 신통치 않더라도 내게 있는 작은 것에 감사하고, 기꺼이 주님께 올려 드릴 때 기적이 일어난다. 매일 감사의 깃발을 높이 들 때 하루하루 일상의 기적이 나타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내게 있는 작은 것을 들 때 기적이 일어난다. 다윗의 물맷돌, 모세의 지팡이, 라합의 붉은 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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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30
  • [교회법특강]장로직의 시무 기간에 대해
    한국교회는 교파를 불문하고 장로직의 시무 연한을 대부분 만70세까지로 정하고 있다. 그런데 역사에서 교회법은 장로의 시무(봉사) 기간에 대해 어떻게 말할까? 우선 성경은 장로의 시무가 종신인지 한시적인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 장로가 종신으로 선출되었다는 인상을 성경에서 받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많은 교회가 직분이 종신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종교개혁가 칼빈의 원리를 따라서 형성된 개신교회는 다음 이유로 한시적 봉사를 더 선호했다: 교회 내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독재와 교권주의를 예방하기 위해, 둘째, 교회 치리에 교인의 영향을 더욱 늘이기 위해 셋째, 교회에 잠재한 다양한 능력과 은사가 가능하면 더 많이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16세기 종교개혁 당시를 보면 교회마다 장로 시무 기간이 조금씩 달랐다. 제네바교회는 임기 1년이 원칙이었다(1541년). 제네바는 시의원처럼 매년 12명 장로를 2월에 임명하고(한 해의 시작 이전) 임기는 1년으로 정했다. 재임명 될 수도 있었으나 시무가 끝날 수도 있었다. 프랑스 교회 역시(1559년) 칼빈의 노선을 따라 장로의 봉사가 종신이 아니라고 규정했다. 네덜란드 교회는 엠던 총회(1571년)와 돌트 총회(1619년)에서 장로 임기를 2년으로 정했다. 한편 유럽의 신앙 박해로 영국 런던과 인근에 거주하면서 세워진 난민교회(불어, 네덜란드어,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난민교회)에서는 장로 임기를 종신으로 규정했다(1555년). 교회에 유익하고 성경에 더 가깝고 직분에 합당하는 등 11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사도들이 장로를 임시로 세웠다는 성경적 근거가 없다는 점,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임기제를 시행할 경우 양을 모르는 목자, 목자를 모르는 양이 나오는 상황을 우려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는 처음에는 장로 임기를 1년으로 정했으나(1560년), 1578년 교회법에서는 기본적으로 장로 시무를 종신으로 규정하면서도 윤번제를 도입했다: “장로들은 그 직무를 행하기에 적합한 하나님의 은사를 가지고서 그 직분에 한 번 부름을 받았다면, 다시는 그 직분을 떠날 수 없다. 일정한 수의 장로들이 각 회중에 의해 선출될 수 있으나, 그들 중 일부는 적절한 기간 다른 사람으로 교체할 수 있다. 마치 율법 아래에서 성전을 봉사할 때 규례를 따랐던 레위인처럼 말이다. 회중마다 장로들의 수는 제한될 수 없으나, 사람들의 범위와 필요를 따라서 이루어져야 한다.” 바로 이 윤번 제도가 미국 장로교회에 영향을 끼치고, 한국장로교회에 도입된다. 미국장로교 총회는 우여곡절 끝에 1857년 임기제나 다름없는 장로 윤번제(rotary eldership)를 도입한다. 장로직은 항존이나 시무 기간은 개체교회 재량에 맡겼다. 개체교회가 공동의회를 통해 장로의 시무 기간을 종신으로 혹은 임기를 정해 세우고, 임기제 경우에는 3년으로 규정했다. 현재 이 전통을 이은 교회는 미국정통장로교회다. 윤번제 규정은 핫지(J.A. Hodge) 목사가 쓴 “교회정치문답조례”(1882년)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이 책은 1917년 곽안련 선교사가 한글로 번역하여 1919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참고서적으로 채용되었다: “치리장로는 임기를 정하여 선출할 수 있는가? 지교회가 무흠입교인 투표에 의하여 일정 기간 시무할 치리 장로를 선출하는 것이 가능하다. 장로직은 항존이나 직분과 직무의 이행과는 엄연히 구별이 있고 시무장로와 직무를 이행하지 않은 장로와의 구별도 있다. 얼마 동안의 임기를 가지고 선출하는가? 장로의 임기는 3년을 넘지 못한다”(541-542문답). 한국장로교회는 1960년 초반까지는 장로 윤번제를 시행했다. 그러다가 이후 대부분 만70세로 시무 연한을 정했다. 지금까지 본대로 역사에서 장로의 시무 기간은 다양하게 이해되었다. 시무 기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장로의 항존 직무를 우리가 어떻게 바르게 알고 봉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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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법특강
    2026-01-30
  • [성서연구]길 떠나는 사람들
    2026년에 아름다운 시작이 있길 원합니다. 이스라엘은 사백삼십 년 동안 살던 애굽을 떠나 위대한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노예로 노역을 하던 라암셋(고센의 다른 이름)을 떠나 숙곳을 거쳐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쳤습니다. 20절입니다. <그들이 숙곳을 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그들은 마라톤 출발선에 선 선수들 같았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을 향해 광야로 접어들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광야가 초행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광야를 경험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살던 고센은 기름진 나일강 유역의 삼각주 지역이므로, 광야와 전혀 다른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노예였지만, 풍요로웠습니다. 그러나 광야는 거주지도 없고, 척박한 곳입니다. 광야를 경험한 유일한 사람은 모세였습니다만, 그가 경험한 미디안 광야는 이스라엘이 통과할 광야와 여러 상황이 전혀 달랐습니다. 미디안에서 모세는 이드로의 사위로 정착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수백만 명이 함께 먹고 자고, 이동해야 했습니다. 모세가 경험한 광야 생활과는 전혀 다른 광야 생활일 게 뻔했습니다. 미지의 세계였고, 백성들은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우리도 미래를 모릅니다. 두렵습니다. 2026년을 시작했지만, 한 치 앞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의 형편을 잘 아셨습니다.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라고 하시는 분이 그들을 방치하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무책임하신 분이 아닙니다. 반드시 길을 인도하시고, 도우십니다. 이스라엘을 도우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아는 것보다 하나님깨서 우리를 더 잘 아십니다. 본문은 광야로 나가는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도우셨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본문에서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 가셨습니다. 2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까지 도우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미래를 위해 미리 준비하시는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모리아 산에 먼저 오셔서 아브라함과 이삭을 위해 숫양을 준비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도 우리보다 먼저 가셔서 준비하실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형편에 꼭 맞게 인도하셨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2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광야의 낮은 뜨겁습니다. 햇볕을 가릴 구름이 필요하기에 구름 기둥으로 차일을 펴셨습니다. 광야의 밤은 캄캄하고 춥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기둥으로 따뜻하고 밝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낮에 불기둥, 밤에 구름 기둥을 보내는 일은 없습니다. 정확하게 처지에 맞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다른 이가 우리보다 더 좋아보여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의사는 밥을 먹어도 될 환자에게는 밥을, 죽을 먹어야 할 환자에게는 죽을 주십니다. 죽에 감사하며 살면, 후에 더 좋은 것을 먹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맞춤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22절은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낮에도, 밤에도 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되어 주셨습니다. 백성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낮에도, 밤에도 전진할 수 있었습니다. 2026년도에 한국기독신문의 독자 여러분 모두에게 이러한 하나님의 선한 인도가 함께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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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09
  • [소강석목사 칼럼]고립(孤立)을 잘하면 고립(高立)이 된다.
    장재열 님이 쓴 『리커넥트- 누구나 한 번은 혼자가 된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인생은 한 번쯤은 혼자가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고립의 상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고립된 상태라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저자에 의하면 노년과 중년을 제외하고도 사회적 고립에 처해 있는 청년만 54만 명이 넘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고립자들은 갈수록 늘어갈 추세라고 합니다. 고립무원의 상태는 얼마나 고통스럽고 쓸쓸한 삶이겠습니까? 그토록 꿈이 많던 아이가 청년이 되면 은둔형 고립 상태가 될 때도 있다고 합니다. 아니 은둔형 외톨이가 아닌 또 다른 차원의 고립을 느낄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는 여러 사례를 들며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혼자가 되고 고립 상태가 된다고 하는데요. 저는 이 글을 읽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아무리 생동감이 넘친다 하더라도 어쩌면 사각지대에서 고립 상태로 존재하는 분들이 있을 거야. 올 한 해는 사각지대에 성도들을 더 잘 돌봐야 하겠구나.” 그런데 저자는 결론 부분에서 고립(孤立)을 잘하면 오히려 고립(高立)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봤다는 것입니다. 창의적 고독, 창조적 고립을 긍정적으로 축적하고 생산적으로 농축을 하다보면 어느새 고립(高立), 즉 오너러블 스탠딩(Honorable Standing)의 위치에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 성경에도 보면 고립, 아니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황을 경험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모세, 야베스가 그랬고 바울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고립을 하나님과 함께 긍정적이고 생산적으로 축적했을 때 그들은 고립, 오너러블 스탠딩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완전히 고도가 다른 삶을 산 것이죠. 저도 누구보다 고립과 고독을 많이 겪어본 사람입니다. 광주신학교를 다닐 때의 고립, 특별히 5.18 광주민주화항쟁 속에서 거의 완벽한 고립무원 상태를 경험했죠. 백암교회 시절의 고립…. 아니, 새로운 설교를 준비하고 이곳저곳에 새로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스스로 고립 상태에 들어가죠. 그런데 그 고립을 생산적이고 창조적으로 맞을 때 저만의 글이 나오고 저만의 설교를 준비하고 저만의 시를 쓰곤 합니다. 이번 송구영신예배와 신년축복성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 아래 새것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그러나 성경을 더 새롭게 보고 깊이 보고 넓게 보면서 성경신학과 교의신학의 틀 안에서 새로운 내러티브를 발견하고, 그 내러티브를 스토리로 창작하여 말씀을 전한다는 게 그냥 되는 일이 아닙니다. 반드시 고립이나 고독의 시간을 가져야 됩니다. 그럴 때 부족하지만 오너 러블 스탠딩을 하며 참으로 격조가 있으면서도 새로운 설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삶이 윤택하고 모든 것이 풍요하다 할지라도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혼자가 되고 고립을 맞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립(孤立)이 고립(高立)이 되게 하고 오너러블 스탠딩이 되게 하고 오너러블맨과 우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올해는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어쩔 수 없이 고립과 같은 상태를 맞는다 할지라도, 그 고립을 창조적이고 생산적 고립으로 맞으셔서 정말 고립(高立), 고도가 다른 차원의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사무엘 베케트가 쓴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작품에서는 고도를 쳐다보기만 했지만,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고립을 맞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고립을 경험할 때 어느새 우리는 고립(高立)의 상태가 되며 고도 위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2026년 새해에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다른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아니 작년과도 차원이 다른 고도의 삶을 사시기를 기도합니다. 특별히 신년소원헌금 봉투에 기록한 5가지 기도제목, 그리고 받은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차원 높은 고도의 고립(高立)과 고도의 삶을 사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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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칼럼
    2026-01-09
  • [교회법특강]칼빈의 제네바교회법령(1561년)과 시찰
    교회에는 여러 단계를 따른 회의가 있다. 곧 당회, 노회, 총회이다. 교회는 이 회의들로 말미암아 관리된다. 특별히 노회가 하는 일 중 하나는 구역을 나누어 ‘시찰’회를 조직하고 ‘시찰’위원을 두어 관내 교회를 ‘시찰’(視察)하는 것이다. 교회 <교회정치>에서 이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노회의 시찰 기능이 사실상 중단되었다. 시찰은 언제 어떻게 생겨났을까? 없어도 되는 것일까? 있어야 한다면 어떤 목적을 위해서일까? 성경의 원리로 돌아간 16세기 종교개혁은 이신칭의 복음을 통해 교리 개혁을 이루었다. 나아가 중세교회를 거치면서 변질된 교회시찰을 회복했다. 개혁가 루터가 가장 먼저 교회시찰을 회복했다. 그런데 개혁가 칼빈은 교회시찰을 어떻게 했을까? 칼빈(1509-1564) 역시 자신이 목회하는 스위스 제네바교회에 시찰을 도입했다. 1561년 교회법령을 개정하면서 “제네바에 속한 교구와 목사 시찰에 관한 질서”(Orde sur la visitation des Ministres et paroisses dependantes de Geneve) 이름으로 실었다(31-38). 시찰규정은 크게 둘로 나눈다. 하나는 시찰의 목표를, 다른 하나는 시찰 방법을 다루었다. 시찰을 하는 목표는 제네바 전체 교회의 몸, 도시와 시골 교구에서 선한 질서와 교리의 하나됨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시찰위원으로 시의회에서 2명을 선출하고 목사회에서 2명을 선출했다. 시찰위원은 1년에 한 차례 교구 시찰 임무를 맡았다. 선한 질서와 교리의 통일성을 위한 시찰임무를 위해 다음 다섯 가지 질문으로 정리했다. 시찰 대상은 무엇보다 목사였다. 첫째, 목사들이 복음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새로운 교리를 가르치지 않았는가? 둘째, 목사들이 설교를 통해 교회를 세웠는지, 혹은 모호하고 쓸데없는 문제를 다루고 혹은 적절하지 않고 충격을 주는 방식으로 가르치지 않았는가? 셋째, 교인들을 공예배에 참석하도록 권면해서 예배를 기뻐하고 여기서 유익을 얻어 보다 더 기독교적 방식으로 살게 하는지, 또 목사직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서 이를 어떻게 사용할지를 배우도록 하고 있는가? 넷째, 목사들이 설교뿐 아니라 환자 심방에서, 또 곤경에 처한 자들을 권면하고 주님의 영광을 훼손하는 모든 일을 막고 있지 않는가? 다섯째, 목사가 좋은 본을 보여주며 진리 안에서 영예롭게 생활하고 있는가? 혹은 경거망동한 처사로 가족을 소홀히 대하지 않는지, 회중과 화평하게 생활하고 있는가? 시찰의 방법도 규정했다. 시찰을 위해 파송된 목사는 먼저 설교를 하고 이어서 회중을 권면했다. 목사의 교리와 생활, 목사의 가르치는 열심과 방법에 대해 교구 장로와 집사에게 물었다. 시찰 위원은 보고서를 작성하여 목사회에 보고해서 해당 목사가 권면을 받거나 책벌을 받도록 했다. 그러나 시찰은 법적인 조사가 아니며 재판이 될 수 없음을 강조했다. 시찰은 재판과정을 막을 수 없으며, 목사도 정부에 대한 순종 의무에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시민 생활이나 법률과 관계해서 또는 범죄행위에 책임지는 것에서 목사는 일반 시민과 같았다. 시찰은 걸려 넘어지게 하는 모든 것을 예방하고 도구였다. 특별히 목사가 부패하고 타락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규정과 달리 실제는 약간 달랐다. 우선 시찰이 매년이 아니라 격년마다 이루어졌다. 본래 목사 2명이 선출해야 했지만 실제로는 1명만 임명되었다. 목사가 주일을 세 번씩이나 빠질 수가 없었다. 목사 시찰 위원은 주로 도시 교회 목사가 맡았기에 시찰은 시골 교구 목사들에게는 불편한 일이었다. 이로써 도시 목사와 시골 목사 사이에 갈등이 깊어져 가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교회시찰은 당시 제네바 교회는 물론 종교개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늘날 교회가 이 중요한 유산을 등한시하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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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09
  • [시사칼럼]훌륭한 사람이 그립다
    지난 11월 25일 이순재 배우가 돌아가셨습니다(1934-2025). 현역 최고령 배우로 많은 사람의 존경과 신망을 한몸에 받았던 인물이었기에 연예계 종사자들 뿐만 아니라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그와 함께 울고 웃었던 많은 국민들이 깊은 슬픔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런 대배우도 결코 완전하지는 않았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천상 배우를 자처했지만 50대 정계에 입문하여 민정당 소속으로 한 차례 낙선한 후 민자당 소속으로 마침내 지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당 부대변인까지 역임한 이력도 가졌습니다. 수년 전에는 뜬금없는 갑질 논란에 휩싸여 적잖은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작년 연말 KBS 연기대상에서 드라마 <개소리>로 깜짝 대상을 받으며 마지막으로 극적인 반전을 선사했는데,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두고두고 회자될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수상 소감을 남기셨습니다. “평생 동안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일세를 풍미했던 대배우의 마지막 대사같았던, 시청자들에게 남긴 깊은 감사의 인사는 그간 존재했던 그 모든 오점을 다 지워버렸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해 들자마자 우리는 소중한 또 한 분을 잃었습니다. 안성기 배우입니다(1950-2016). 아역으로 출발해서 이순재 선배와 데뷔 연도가 거의 같은 점도 놀랍지만(1957, 1956년), 전쟁둥이로 태어나 평생 남긴 작품들을 보면 – 만추(1980),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81), 고래사냥(1984), 겨울나그네(1986), 칠수와 만수(1988), 남부군(1990), 투캅스(1993), 태백산맥(1994),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 그야말로 격동과 청춘의 한국 현대사 그 자체라 새삼 감탄과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인물입니다. 특히 박중훈 배우와 함께 열연한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마지막 격투 장면은 헐리우드는 물론 전세계에서 수없이 오마주(hommage)되며 오늘날 한국영화 세계화의 초석을 낳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의 ‘영화력(映畫力)’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더군다나 단 한 번의 구설수도 없이 또한 오직 영화 한 길만을 팠던 모습도, “광고 많이 찍으면 체한다”며 한 브랜드(커피)와만 38년을 지켰던 의리도 멋졌습니다. 갑질도 교만도 고인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동료들은 물론 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분들을 살갑게 챙겼다는 후일담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이 모든 정황을 한 마디로 정리라도 하듯 누군가의 한 마디가 또한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사람 자체가 훌륭한 분이다.”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이지만 최근 정치계는 여당 인사들마저 각종 논란에 휩싸이면서 여간 어수선한 모습이 아닙니다. 계엄 정국에서 맹활약하는 바람에 국정원 출신으로 일약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가 된 의원에 대해 최근 경향신문은 ‘특권 의식 끝판왕, 9가지 의혹 총정리’라는 기사를 게재했습니다(2025. 12. 29). 물론 ‘의혹’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른바 정치개혁을 주도해야 마땅한 자리에 앉아 있는 인물에게 왜 그렇게 많은 ‘의혹’이 따라다니는지 국민들은 답답해 합니다. 정치인치고는 비교적 청아한 이미지를 구축해 오던 여당의 한 여성의원은 지난 지방선거 당시 서울시당 공천관리위원으로 있으면서 받았던(사무국장 수령) 금품수수가 문제가 되어 스스로 탈당하였으나 결국 제명 처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현대판 탕평책(蕩平策)의 일환으로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전격 발탁된 국민의힘 3선 의원 출신의 경제통을 자처하던 여성의원에게서 드러나버린 작태들은 달리 거론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입니다. 문화예술계뿐만 아니라 돌아보면 곳곳에 우러러볼 만한 분들이 그래도 많이 있는데, 도대체 우리 정치판에는 왜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 없는 걸까요? 그러다가 문득 이런 말 자체가 ‘누워서 침뱉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술하는 사람들이야 괴짜들의 일탈이라 치부하는 측면이라도 있겠지만, 정치하는 사람들이야 어차피 정치란 게 다 그렇고 그런 거 아니냐며 체념하는 측면이라도 있겠지만, 누구보다도 선한 양심과 정직한 행실과 성결한 생활을 보여주어야 할 기독교계가 만일 일탈의 행렬에 합류한다면 어떤 변명이 통하겠습니까? 더구나 목사를 비롯한 지도자들이라면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한국 교계에서 그간 혁혁한 명성을 쌓아왔던 한 원로목사에 대한 논란이 불거져 대단히 유감입니다. 유독 성화를 강조하며 많은 성도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분이기에, 공공연하게 번영신학을 추종하고 힘의 기독교를 과시했던 그런 인물들의 행태를 보면서 가졌던 마음과 차원을 달리하는 서글픔이 느껴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요? 안성기 배우와 친형제나 다름없던 박중훈 배우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고인이 화를 안 내는 분인데, 골프를 칠 때면 승부욕 때문인지 예민하시기에 고언을 한 적이 있다. 몇 개월 지나 다시 만났는데, 갑자기 지갑에서 종이를 꺼내 보시더라. <1. 골프가 안 돼도 화내지 말 것, 2. 골프 칠 때 예민하지 말 것.> 얼마나 많이 보셨는지 구깃구깃해졌더라, 안성기라는 사람은 이걸로 설명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인간은 없습니다. 다만 반성과 노력이 훌륭한 사람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런 훌륭한 사람이 우리 주변에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내가 그런 훌륭한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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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09
  • [위드애]더 늦기 전에, 우리 교회에 ‘장애 인식’의 빛을 밝히자
    2025년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보내고, 2026년 새해를 맞이했다. 2026년에도 각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넘치기를. 2025년에는 총 여섯 번 지면을 통해 ‘교회와 장애’에 대한 글을 썼다. 올 해도 이 지면을 통해 ‘교회와 장애’에 대한 글을 쓸 수 있어서 감사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마음이 무겁다. 몇 교회가 이 지면에 쓰여 있는 글을 보았을지 모르지만 그동안 써 온 글 안에는 공통적으로 ‘교회 내 장애인식개선’에 대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고, 내포되도록 썼었다. 올 해로 3년 째 쓰게 되는 데, 지난 2년 동안 이 글을 본 그리스도인들이 장애인을 향한 시선과 생각이 얼마나 전환되었는지 궁금하다. 장애인을 향한 시선과 생각에 변화가 왜 중요할까? 첫째, 장애인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 기독교인 가운데 장애인이 몇 %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비장애인들도 여러 이유로 교회를 떠나 가나안 성도가 되는 경우가 잦다. 그렇다면, 교회를 떠나는 장애인들은 더 많지 않을까? 물론 장애인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도 있다. 감사한 일이고, 더 많아 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교회를 떠나고 있다. 떠나는 이유가 뭘까? 교회는 여전히 보수적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 예배시간에는 엄숙함을 강조한다. 물질을 많이 소유한 자, 좋은 직업을 가진 자, 헌금을 많이 내는 자, 모든 예배에 참석하는 자, 교회에 봉사하는 자 등등 이런 사람들을 좋아하고, 오길 바리고, 정착하길 바란다. 왜 그런가? 교회 건물을 키워야 하니까. 이런 환경에서 장애인들은 어떻게 비춰질까? 엄숙함과는 거리가 멀고, 물질도 적어 헌금을 기대하기는커녕, 보태줘야 할 것 같고, 모든 예배에 참석하라고 하면 교회에서 이들을 위해 환경을 고쳐야 할 것 같고... 교회에 바람과는 반대인 속성을 지닌 것이 장애인이라 생각해서 장애인은 사랑부(장애인부)라는 외딴 섬에 모아놓는 것은 아닌지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묻고 싶다. 둘째, 장애인이 교회를 떠나는 것은 교회 안에서 받은 상처 때문이다. 즉 장애인식에 대한 부족함 때문이다. 장애는 질병이 아니다. 질병이 아니기에 장애인에게 발급되어지는 복지카드에는 ‘유효기한이 제한 없음’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장애를 질병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질병으로 장애를 갖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장애가 질병은 아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병을 갖고 있길래...”, “얼른 낫기를 기도할게요” 라고 말한다. 여전히 장애를 질병이 계속되어지는 상태로 보기도 하고, 열심히 기도하면 장애에서 해방되는 줄 알고 있다. 그리고 교회 내 어르신들은 장애인들을 보면 “쯧쯧쯧쯧” 하며 혀를 차신다. 그리고 거기에 한 마디 더 덧붙이신다. “이쁜 사람이 어쩌다가”, “잘 생긴 사람이 어쩌다”, “젊은 사람이 어쩌다”. 어떤 의미로 이런 말을 하는지는 안다. 그러나 이 말들은 장애인 당사자 뿐 아니라, 가족이 옆에 있다면 가족에게도 큰 상처를 안겨 준다. 공감을 해주고 응원을 해줘도 힘들어 하는 장애인에게 이런 말들은 큰 상처가 된다. 또 말은 이렇게 하지 않지만 불쌍하게 바라보는 시선과 장애를 갖고 있다고 무조건 도와주고 배려하는 일련의 행동들이 장애인으로 하여금 교회를 떠나게 만들었고, 현재도 진행중이다. 예수님이 보시면 얼마나 슬퍼하실까? 그래서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나이가 들어서든,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서든 누구나 장애를 겪게 된다. 그러니 더 많은 장애인들이 교회를 떠나기 전에 장애인식개선교육을 하기를 바란다. 작년에는 한 교회에서만 불러주셨는데, 올해는 작년보다 더 많은 교회에서 장애인식개선강사로 불러주기를 바란다(연락처 010-4758-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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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09
  • [은혜의말씀]2026 이륙하라
    어느새 2026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내 인생만 고달프고 우리 집구석만 어렵고, 아무리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침묵하신다고 생각하는가? 잠시 세상에 살다 가는 나그네 같은 인생이지만 하나님은 영원무궁하시다. 사람은 때로 오판을 하고 어리석은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은 끝이 없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도 한치의 틀림 없이 정확무오하다. 그러한 능력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삼중축복을 주신다고 하였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신다. 그리고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지치지 않는 열정을 누리게 된다. 천 길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순간에도 힘차게 날갯짓하며 오히려 맞바람과 골바람을 타고 높이 날아오르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왜 내 기도는 안 들어주시고 나만 힘드냐고 불평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시간의 주관자 되시며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이 새 힘을 주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엘리야도 그 일생을 보면 실상은 매우 어려웠다. 선지자를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았던 악한 왕 아합의 때에, 도무지 농사가 안되는 오랜 가뭄까지 힘겨웠던 당시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절이었다. 아슬아슬 조마조마 위태위태한 시대에 사역을 했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불로 응답을 해주셨고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라 일컫는 대표적인 선지자로 불리게 되었다. 우리의 인생도 그러하다. 다사다난하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시간을 지나며 때로는 벼랑 끝, 절벽 끝에 선 듯 한계점을 느끼게 되지만, 바로 그때 건너가라. 한계를 뛰어넘어 도약하라. 임계점을 훌쩍 넘어가면 된다. 성령의 불을 받아 식어버린 가슴을 뜨겁게 데우고 시동을 걸고 탄력을 받아 독수리의 날개 침 같이 힘있게 날아오르면 된다. 해마다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철새들을 보라. 서울-부산 거리 정도는 쉬지도 않고 날아간다고 한다. 바람을 타고 V자 대형을 유지하며 온 힘을 다해 날아간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힘껏 날갯짓을 하며 날아가야 한다. 바람이 불어야 연이 떠오르듯이 무슨 일을 만나도 자빠진 김에 쉬어가고 문제를 디딤돌 삼아서 벌떡 일어서면 된다. 성령의 불을 받아 이열치열 힘을 내면 된다. 저온에서 증식하는 암처럼 사탄마귀가 틈타도록 가슴이 식어버리면 안 된다. 엔진이 식고 시동이 꺼지면 심각한 문제가 된다. 한번 휘청거리면 회복하기가 힘들고 한번 큰 상처를 받으면 가슴이 식어버린다. 가슴의 불꽃이 사그라들기 전에 은혜 위에 은혜를 구하며 몸부림쳐야 한다. 성령의 은혜로 가슴에 불꽃이 일어나고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탄력을 받아 더욱 달려가야 한다. 잠자는 영성을 깨우고 야성을 깨워라. 살다 보면 무사안일, 편의주의에 빠지기 쉽고 익숙한 것에 안주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적극적으로, 공격적으로 뛰어들어라. 소극적인 것이 비극적이라고,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감동케 할 정도로 정성을 다하라. 차원이 다른 역대급 사역을 펼치라. 모든 얽매이기 쉬운 죄와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는 새해가 되기를 바란다. 당장 눈앞의 일에만 파묻혀 죽네 사네 하지 말고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며 독수리같이 날개 치며 날아오르라. 자빠진 김에 쉬어가고 힘든 만큼 도약하는 2026년, 이륙해서 고공비행하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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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09
  • [교회건축칼럼]시대성의 반영과 굴절로서 교회건축
    과거 풍요와 기술적 혁신의 아이콘이였던 뉴턴적 세계관의 기계론적 사고와 인과관계의 원리는 20세기를 지나면서 우리에게 새로운 사고방식으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로서 절대적인 진리라고 여겨져왔던 과학적 이론들은 이러한 이론과 반대되는 현상이 발견되지 않는 동안만 잠정적인 진리로 인정받고 있다. 이것을 ‘잠정적 진리’라 하는데 지금까지 인간이 발명하거나 개발하여 온 모든 이론이나 법칙들은 이 잠정적 진리에 속한다. 아인슈타인의 이론도 그것을 넘어서는 법칙이 존재할 가능성이 이미 예견되고 있다. 양자물리학도 기존의 과학진리체계를 다시 바라보게 하고있다. 현대교회건축도 지금까지 정형의 공간만을 추구해왔다. 정형의 공간이란 지구중력에 순응하는 안정적형태를 뜻한다. 그러나 그 공간에서 생활하는 우리는 복잡성의 시대속에 살고있다. 소위 기계론적사고처럼 인과관계로만 우리사회를 설명할 수 없다 나비날개이론처럼 서울에서 작은 나비의 날개짓이 내일 뉴욕에 거대한 폭풍우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어찌보면 전혀 비현실적 사실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기후학자 로렌츠는 기상을 결정짓는 습도, 바람의 방향, 온도등의 인자를 프로그래밍하여 슈퍼컴퓨터에 입력했는데 이 인자의 작은 원인의 결과값이 쓰나미나 허리케인같은 폭팔적 변화로 귀결되어짐을 발견했다. 입력과 출력의 정형식 시스템에 의한 구조가 인과관계를 벗어난 사실을 발견하고 그는 이것을 나비이론이라 명명했던 것이다. 현대사회는 이처럼 인간이성에 의한 인과응보의 사유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으며 예측불허의 복잡성을 동반한다. 강남은 왜 아파트값이 전국에서 제일 비싼가 이것은 단하나의 요인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성을 띤다. 그것은 교육여건, 문화인프라, 교통, 정보의 편리성, 쇼핑과 같은 여러 요인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교회건축은 시대성의 반영이 이루어져야되며 동시에 시대성의 굴절(파동이 매질의 경계에서 속도차이로 인해 방향을 바꾸는 형상)로서 이루어져야된다. 시대적 고립자, 지극히 열악한 환경과 소외된 사람들, 치유가 절실히 필요한사람, 중독자, 노숙자, 이념적 갈등과 같이 굴절되어버린 것에 대해 방향을 전환시켜야하는 소명에 건축이 어떤 기여를 할까. 건축과 공간에서 정형적 패러다임을 비정형패러다임으로의 변환장치가 대두되어지고있다. 건축의 사고에서 이것을 해체주의적 경향이라 불린다. 교회가 꼭 정형화되고 안정적조형을 구축해야만 교회답다는 생각을 한다면 교회는 그이상의 메세지를 낼 수 없고 시대의 복잡성을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뉴욕한인장로교회는 리모델링건축으로 완성되었는데 교회형태는 정형의틀을 제거하는 작업으로 표현되었다. 또 2000년 교회는 로마의 상징적 교회가 되었는데 외부의 형태는 비정형적 구조체의 중첩에 의해 건축되어졌다. 2000년 교회는 국제공모로 진행되었는데 제출된 4개의 응모만이 전부 정형을 거부하고 기계론적 사유를 배척하는 비정형적 교회형태로 제안되었다. 우리에게 또다른 교회건축의 패러다임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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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건축칼럼
    2026-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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