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2-12(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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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에 아름다운 시작이 있길 원합니다. 이스라엘은 사백삼십 년 동안 살던 애굽을 떠나 위대한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노예로 노역을 하던 라암셋(고센의 다른 이름)을 떠나 숙곳을 거쳐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쳤습니다. 20절입니다. <그들이 숙곳을 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그들은 마라톤 출발선에 선 선수들 같았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을 향해 광야로 접어들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광야가 초행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광야를 경험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살던 고센은 기름진 나일강 유역의 삼각주 지역이므로, 광야와 전혀 다른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노예였지만, 풍요로웠습니다. 그러나 광야는 거주지도 없고, 척박한 곳입니다. 광야를 경험한 유일한 사람은 모세였습니다만, 그가 경험한 미디안 광야는 이스라엘이 통과할 광야와 여러 상황이 전혀 달랐습니다. 미디안에서 모세는 이드로의 사위로 정착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수백만 명이 함께 먹고 자고, 이동해야 했습니다. 모세가 경험한 광야 생활과는 전혀 다른 광야 생활일 게 뻔했습니다. 미지의 세계였고, 백성들은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우리도 미래를 모릅니다. 두렵습니다. 2026년을 시작했지만, 한 치 앞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의 형편을 잘 아셨습니다.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라고 하시는 분이 그들을 방치하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무책임하신 분이 아닙니다. 반드시 길을 인도하시고, 도우십니다. 이스라엘을 도우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아는 것보다 하나님깨서 우리를 더 잘 아십니다.

 

본문은 광야로 나가는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도우셨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본문에서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 가셨습니다. 2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까지 도우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미래를 위해 미리 준비하시는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모리아 산에 먼저 오셔서 아브라함과 이삭을 위해 숫양을 준비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도 우리보다 먼저 가셔서 준비하실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형편에 꼭 맞게 인도하셨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2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광야의 낮은 뜨겁습니다. 햇볕을 가릴 구름이 필요하기에 구름 기둥으로 차일을 펴셨습니다. 광야의 밤은 캄캄하고 춥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기둥으로 따뜻하고 밝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낮에 불기둥, 밤에 구름 기둥을 보내는 일은 없습니다. 정확하게 처지에 맞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다른 이가 우리보다 더 좋아보여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의사는 밥을 먹어도 될 환자에게는 밥을, 죽을 먹어야 할 환자에게는 죽을 주십니다. 죽에 감사하며 살면, 후에 더 좋은 것을 먹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맞춤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22절은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낮에도, 밤에도 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되어 주셨습니다. 백성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낮에도, 밤에도 전진할 수 있었습니다.

 

2026년도에 한국기독신문의 독자 여러분 모두에게 이러한 하나님의 선한 인도가 함께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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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길 떠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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