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다음세대
실시간 다음세대 기사
-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엄마가 너희의 정서적 지지 기반이 되어 줄게!”
-
-
“엄마,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초등학교 4학년 딸이 학교에 갔다 와서는 친구들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조잘조잘 이야기한다.
“내 친구가 그 일 때문에 엄마한테 엄청 혼나고 벌도 섰대. 진짜 슬펐을 것 같아. 내 친구 너무 불쌍해. 그 엄마 너무 했어.”
“친구한테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런데, 이야기를 들으니 은별이 친구도 이런저런 부분에서는 잘못한 것 같은데, 그 엄마도 딸이 그렇게 행동해서 기분이 나빴을 것 같아.”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의견도 말하려는 순간, 아차 싶었다. 아이는 이미 100% 자신의 말에 공감하지 않은 나를 향해 불신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나도 “그냥 잠잠히 듣기만 할걸…”이라는 후회가 밀려올 때는 이미 늦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부분적 공감’
결혼을 하고 아이를 양육하면서 깨달은 나의 한계 중 하나는 “나는 누군가를 온전히 100%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그 상대가 내가 사랑하는 남편이나, 내가 낳은 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나의 가족은 내게 ‘온전한 공감’ 받기를 원하며 감정을 쏟아 대화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온전히 공감해주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부분적 공감’만 하며 대화의 종착지로 가면 갈수록 내 이야기만 하는 어리석음을 수없이 많이 저지른다.
특히,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정서적 공감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머리’로 알기에 공감하는 척, 마음을 이해하는 척, 100% 경청하는 척 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내 것을 아이들에게 주입’ 시켜야한다는 속셈이 꿈틀거리고 있다.
사람의 내면을 건강하게 만드는데 필요한 결정적인 요소 중 하나는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받는 ‘정서적 지지’이다. 내 편이 되어주는 단 한 사람,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나의 정서를 100% 공감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 내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 언제든 기댈 수 있는 단 한사람만 있어도 사람은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특히 내면이 막 자라기 시작한 아이들에게는 가장 가까운 엄마, 아빠로부터 받는 절대적 공감과 수용이 인생을 건강하게 펼쳐갈 평생의 거름이 된다.
그런데, 난 사실 공감과 수용이 쉽지가 않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에게는 말처럼 그들의 정서적 지지 기반이 되어주고 싶은데, 실제 삶 속에서는 나의 정서를 읽고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아이들의 마음을 100% 온전히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래서 오늘부터 연습하기로 했다.
먼저, 아이가 나를 부를 때는 하는 일을 멈추고 아이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나를 기다리는 것은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싱크대에 쌓여있는 그릇들, 건조기 속에 들어있는 빨래들, 거실 여기 저기 널려 있는 책들 등 모두 나의 손을 거쳐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빨리 집안일을 끝내고 아이들 저녁 준비를 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면 아이들이 “엄마”라고 불러도 그 일을 하면서 대충 “어, 무슨 일이니?”라고 흘려보낼 때가 많았다. 아이의 요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이 훈련부터 시작해보았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어도 아이가 부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즉각 반응하기. 물론 쉽지 않았다. 거품이 잔뜩 묻은 고무장갑을 쉴 새 없이 빼다 끼다를 반복했으며 두부 한 모를 온전히 다 써는데 20분이 걸리기도 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절충점을 찾아 처음보다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요구를 먼저 들어주는 일은 시간과 희생이 필요했다.
또한,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하루 10분 정도 대화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아이들이 많아서 엄마와의 둘만의 대화 시간이 필요한데 지금까지는 실천하지 못했지만 지금부터 한 걸음이라도 내딛어 보는 것이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어서 아이들의 온전한 정서적 지지 기반이 되어 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아이들에게 버팀목이 되는 존재,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들 편이라는 정체성을 내가 먼저 인식하고 행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가치를 마음 속에 담고 노력할 때 아이들에게 나의 진심이 조금이나마 전달되리라 기대한다.
-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6-06-26
-
-
[다음세대 칼럼]기도할 때 일어난 일
-
-
기도는 우리 신앙 생활의 중요한 기초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맺고,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을 하나님께 의탁할 수 있습니다. 특히, 다음 세대에게 기도의 의미와 그 힘을 알려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먼저, 기도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사도행전 12장에서 우리는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 교회가 간절히 기도한 이야기를 접합니다. 베드로의 친구이자 제자였던 야고보는 칼에 맞아 죽었지만, 베드로는 기도 덕분에 구출됩니다. 이 사건은 기도의 응답이 항상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지만, 그 응답은 오직 그분의 뜻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다음 세대에게 이 사실을 가르쳐, 기도의 결과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번째,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일하신다’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단순한 요청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베드로가 감옥에서 구출된 것처럼, 우리의 기도도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시는 통로가 됩니다. 다음 세대가 기도를 통해 기적을 경험할 수 있도록, 그들이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도를 통해 변화되지 않을 것 같던 상황이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다면, 그들은 기도의 힘을 깊이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세 번째, 기도할 때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가 구출된 후, 기도하던 사람들은 그의 소식을 듣고 믿지 못했습니다. 기도를 드리면서도 응답될 것이라는 믿음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기도할 때,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의심과 두려움을 내려놓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크신 분이며, 그분의 능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다음 세대가 기도할 때 의심이 아닌 믿음으로 나아가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네 번째, 기도는 신앙의 특권입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특별한 특권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과 직접 소통하며, 그분의 응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다음 세대가 기도의 소중함을 알고,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께 간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고, 그들이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는 단순한 의식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중요한 길입니다. 우리의 다음 세대가 이러한 기도의 힘을 깨닫고,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기도하며 인도하며 본을 보이는 어른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
2026-06-26
-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가정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
-
유명한 이사야 41장 11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하십니다. 이 말씀은 나라를 잃고 이방 땅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고향도, 성전도, 미래도 보이지 않던 그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오늘날 우리의 가정도 역시 지금 두려움에 충만해요.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다시 한 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럼 오늘날 우리의 가정은 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까요?
1. 하나님의 임재가 문제보다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족은 항상 문제가 많아 보여요. 그래서 우리는 늘 우울해요. 내 문제가 너무 크니까. 우리는 항상 남의 아버지, 어머니가 부럽고 남의 자녀들이 예뻐보여요. 내게도 저런 가족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그런데 주님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고 말씀하는 건 가족이 되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또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라고 하세요. 우리 인생에서 가장 놀랄만한 일은 우리에게 찾아온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내 하나님이 되어 주신다는 진짜 사건이에요. 내가 뭐라고, 우리 가정이 뭐라고 하나님은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 가정을 찾아오셔서 문제투성이, 아픔투성이인 우리를 끌어안으십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은 문제가 커지는 순간이 아니라 내가 작아지고 혼자라고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문제가 사라지고 해결되는 것보다 더 큰 은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이 시간이 너무 좋아서 문제가 주는 아픔이 줄어들고 문제를 견뎌낼 힘이 생겨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니까 조금 불편하고 부족한 내 삶이 견딜만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가정은 문제가 없는 가정이 아닙니다. 두려움보다 하나님의 임재가 더 큰 가정입니다.
2. 성령님이 우리를 도우심이 가장 큰 보장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안정형 가정보다 역기능적 가정이 참 많습니다. 가정 안에서 상처를 받고 서로 아픔을 주면서 살아요. 그래서 가정을 떠나 벗어나는 게 꿈인 자녀들도 많아요. 계속 흔들리며 사는 거에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로 걸어 들어오셔서 무엇을 하실까요? 우리가 이 세상의 풍파가운데서 굳세어지도록 참으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성도는 환경이 나아질 것을 기대하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을 기대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돕겠다고 약속의 실체는 바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보혜사라는 말의 뜻이 바로 '곁에서 돕는 분'입니다. 성령님은 단순히 우리 곁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때 대신 간구하시고, 진리로 우리를 인도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해 주십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불어넣어서 더 많은 물건을 사게 하고 더 많은 보장을 준비하게 합니다. 더 큰 집을 사고 더 빛나는 명품을 사면 나의 두려움이 사라질 거라고 말해요. 더 많은 사람을 사귀고 더 힘을 기르면 나의 미래는 든든할 거라고 말해요. 하지만 성령충만한 가정은 그렇게 준비되지 않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오시도록 매일 매일 성령님을 초대하는 거에요.
3. 예수님이 우리를 끝까지 붙들어 주심이 가장 귀한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가 하나님을 잘 믿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내가 하나님을 잘 붙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이미 붙들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날은 믿음이 좋습니다. 어떤 날은 기도도 잘 됩니다. 그러나 어떤 날은 낙심하고, 흔들리고, 기도조차 나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를 놓쳐도 나는 너를 놓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을 놓고 뿌리쳤을 때에도 예수님은 우리를 놓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까지 가셨습니다. 우리가 붙들 만한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끝까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늘 당장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자녀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병이 금방 낫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 충만한 가정은 결과보다 하나님의 동행을 붙드는 가정입니다. 아픔가운데 두려워하기보다 주의 임재를 바라보는 가정, 하나님이 도우심을 믿고 의지하는 가정, 하나님의 붙잡아주심을 기대하며 감사하는 우리 가정이 바로 두려워하지 않고 승리하는, 성령 충만한 가정입니다.
-
2026-06-26
-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잠시 멈추니, 다시 보이는 소중한 것들
-
-
5월 5일 어린이날이 지났다. 첫째가 14살이니 14년 동안 5월 첫주가 되면 올해는 또 아이들과 함께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에 들어간다. 특히 우리 가족은 주말과 주일에는 교회로 인해, 주중에는 여러 상황들로 인해 제대로 된 여행을 가지 못한 기간이 오래 되어서 2021년 어린이날에는 “어디든 나가야만” 했다.
길게 늘어선 줄이 겁이 나기도 하고, 혹시 ‘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 어쩌지’ 라는 염려가 밀려왔지만 우리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어린이날이면 아이들이 가장 좋아할만한 곳, 꿈과 환상의 공간, 바로 ‘놀이공원’이다.
4일 저녁 아이들에게 “내일은 놀이공원에 가자.”라고 말하니, 큰 아이는 엄청 좋지만 사춘기다보니 절제해서 빙긋 웃는 수준이고, 둘째와 셋째는 춤을 추고, 막내는 뭣도 모르고 노는 거냐며 무조건 좋아한다.
밤새 천둥번개가 쳐서 엄마인 나는 마음을 졸였지만, 5일 새벽부터 파란 하늘이 펼쳐지고 날이 맑아지면서 아이들의 부푼 기대는 더욱 높아지고, 부산에서 경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아이들끼리 노래를 부르며 오랜만에 나들이에 흥이 최고조로 올라 신나했다.
도착하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긴 입장줄을 보며 나와 남편은 입이 쩍 벌어지게 놀랐지만 아이들은 이것쯤은 아랑곳하지 않다는 듯 신나게 기다리고, 기분 좋게 입장했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디즈니가 판타지의 정점인 놀이동산을 배경으로 삼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알았다. 현실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입장하는 듯한 놀이동산의 넓은 문을 지나면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은 동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화려하면서도 웅장한 건물들이다. 그 건물들의 아름다움에 빠질 때 즈음, 현실 세계에는 없는 짜릿함을 선사해 줄 놀이기구들이 등장한다.
우리 가정은 4명의 아이들의 나이가 다 다르기에 팀별로 나누어 다녔다. 아빠와 함께 다니는 아이들은 바이킹, 롤러코스터 등 고난이도의 놀이기구, 엄마와 다니는 아이들은 가족 열차, 회전 목마 등 유아들이 탈 수 있는 것으로 구분했다.
어린이날이라 오후에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평소 같으면 짜증내고 화를 내야 할 아이들은 그 때는 자기들끼리 즐겁게 이야기하고 놀면서 잘 기다렸다. 또한 놀이동산에 있을 때는 아이들에게 다그치거나 큰 목소리로 이야기해야 할 경우가 없을 정도로 말을 잘 들었다.
“엄마, 11년 동안 살면서 오늘이 가장 즐거운 날이에요.”라는 말을 둘째가 했을 만큼 아이들도 좋은 시간이었음에 틀림없었다.
그러고 보니, 남편과 내가 아이들에게 하루 온종일 집중해서 시간을 보낸 적이 많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에는 주일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으로 바빴고, 평일에는 각자 해야 하는 일 때문에 즐길수가 없었다. 물론 틈틈이 여유가 있을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는 썼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늘 부족했을 것이다.
겨우 하루, 아침부터 오후까지 우리의 일들을 멈추고 아이들을 위해 에너지를 쏟으니 힘이 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들에 대한 소중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도 깔깔대고, 긴 줄을 기다리면서도 장난을 치고, 놀이기구를 탈 때는 가슴이 콩닥콩닥 거린다고 서로 이야기하고…
함께 웃고, 함께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니 부모가 부모의 일을 멈추어야 아이들의 소중하고 귀함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달 이렇게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겠다, 혹은 두 달에 한 번 여행을 가겠다는 등의 지킬 수 없는 약속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의식적으로 나의 일을 멈추고 아이들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내야겠다는 결심을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잠든 아이들을 바라보며 했다.
잠시 나를 멈추니 우리 아이들의 소중함이 더 깊게 와 닿는다.
-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6-05-29
-
-
[다음세대칼럼]건강한 경계선을 가지도록 하는 방법 2/3
-
-
건강하지 못한 경계선 전반에 대해 지난 호(4월 5일, 제 967호)에 말씀을 드렸다. 이어서 경계선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의 특징과 회복하게 하는 방법을 말씀드리려고 한다. 경계선 인격장애까진 아니더라도 대부분 건강하지 못한 경계선의 특징 일부라도 점검하고 도와주면 되겠다.
◉ 교회 안에 청소년도 어른도 많다는 경계선 인격장애(BPD) 어떤 특징이 있나?
1)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경계선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기분이 좋다가도 갑자기 깊은 슬픔이나 분노로 바뀌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마음의 중심이 매우 불안정하다.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버림받음이다. 혼자 있을 때는 심한 외로움과 허전함, 우울감을 느낀다. 반면에, 갑자기 충동적으로 행동해서 필요 이상으로 돈을 쓰거나, 성적으로 문란한 행동을 하거나, 술이나 약물에 의지하기도 한다. 이런 불안정한 마음은 자신과 타인을 모두 지치게 만든다.
2) 관계에서 갈등이 잦다. 경계선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처음엔 누군가를 너무 좋게 보다가도, 작은 실망으로 인해 금세 등을 돌리고 적대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관계를 유지하는 게 어렵다. 가까운 사람과의 갈등이 반복된다. 그렇다 보니 모순된 인간관계를 하게 된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사랑과 관심을 매우 갈망한다. 하지만 정작 가까워지면 불안해져서 스스로 관계를 망치기도 한다. 상대방이 기대만큼 반응하지 않으면 깊은 상처를 받게 된다. 그 상처가 분노로 터져 나오며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갑작스럽게 차단하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두려움이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관계가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
지나치게 잔소리가 많거나 과도한 기대를 하거나 상대에게 집착하는 부부나 부모, 자녀도 결국 갈등을 많이 일으킨다. 나 혼자는 불행하여 기대하는 타인의 사람으로만 의미 있기에 집착과 과도한 의지와 과도한 요구나 잔소리를 많이 하게 된다.
3) 자아 정체감이 불안정하다. 경계선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에 대한 생각이나 정체성이 자주 바뀐다. 특히 자존감이 낮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정확하게 내리기 어렵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가치를 따라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자신에 대한 혼란과 갈등과 불만이 높아진다. 이렇게 되면 상황에 따라 말이나 행동, 기분이 자주 바뀌게 된다. 자기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뚜렷하지 않다. 자기주장도 약하거나 없다. 부당한 경우에도“싫어요”라고 말하지를 못한다. 죄책감과 거절 받을 것에 대한 것 때문에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항상 남에게 맞춘다.
이처럼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바른 중심이 없으면, 다른 사람의 평가나 반응에 쉽게 휘둘리게 된다. 남의 눈치를 많이 보게 된다.
4) 충동적인 행동이나 예측하기 어려운 행동을 한다. 경계선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감정의 고통을 참지 못해 자해, 낭비, 무분별한 성생활, 약물 남용, 무모한 운전 등 충동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런 행동은 순간적으로 감정을 해소하려는 시도지만, 후회로 이어질 때가 많다. 예측하기 어려운 행동을 자주 한다. 그러다 보니 행동도 일정하지 않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날은 단정하고 멋지게 차려입지만, 다른 날은 지저분하고 무관심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날그날 기분이나 관계 상황에 따라 외모나 행동이 확 달라진다.<계속>
-
2026-05-29
-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억울한 부모에서 사랑받는 자녀로
-
-
가정의 달 5월 잘 보내셨습니까? 부모가 되어 보면 자녀를 위한 기도가 얼마나 간절한지 알게 됩니다.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며 눈물로 기도하고, 때로는 가슴을 치며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 마음속에 억울함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나는 누구보다 많이 기도했는데 왜 우리 아이는 변하지 않을까?” 오히려 다른 집 아이들이 먼저 응답받는 것처럼 보이고, 내 기도는 뒤로 밀린 것 같은 답답함이 찾아옵니다.
마가복음 5장에 나오는 회당장 야이로도 바로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그의 어린 딸이 죽어가고 있었고, 그는 예수님 앞에 엎드려 간절히 간구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요청을 들으시고 함께 집으로 가기 시작하셨습니다. 야이로는 이제 곧 응답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고통받던 한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 여인은 사람들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낫겠다”는 믿음으로 뒤에서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병이 나았습니다. 문제는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며 그 여인과 대화를 시작하셨습니다.
야이로의 마음은 얼마나 타들어 갔겠습니까? “주님, 지금 제 딸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왜 지금 다른 사람을 돌보십니까?” 아마 그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 왜 우리 집 문제는 뒤로 미루십니까? 왜 다른 사람들은 쉽게 응답받는 것 같은데 우리 가정은 이렇게 힘듭니까?” 그런 억울함이 찾아옵니다.
결국 그를 찾아온 소식은 딸의 죽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야이로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예수님은 야이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막5:36)
주님은 상황을 믿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가능성을 믿으라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믿음은 상황이 좋아 보일 때 생기는 확신이 아닙니다. 모든 가능성이 끊어진 자리에서도 예수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울고 통곡하며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이제 다 끝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끝난 인생처럼 보였지만, 예수님께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아이의 손을 붙드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 (막5:41)
그러자 소녀는 곧 일어나 걸었습니다. 죽음도 예수님의 손에서는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 속에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야이로의 딸은 열두 살이었고, 혈루증 여인도 열두 해 동안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야이로에게는 기쁨의 열두 해였지만, 어떤 여인에게는 눈물과 수치의 열두 해였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만 보지 않으셨습니다. 오랫동안 아파하던 또 다른 “딸”도 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딸아”라고 부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자녀 문제만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지쳐버린 부모의 마음을 보십니다. “네가 내 딸이다. 네가 내 아들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자녀만 살리시는 분이 아니라, 상처 입은 부모의 마음도 먼저 회복시키시는 분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억울한 부모가 아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자녀다. 내가 너를 먼저 붙들고, 네 자녀도 내가 책임질 것이다.”
우리의 힘으로는 자녀를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죽은 소녀를 일으키신 예수님께서 오늘도 우리의 가정과 자녀를 붙드시고 다시 일으키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주님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의 손을 잡고 말씀하십니다.
“부모들이여, 내 사랑하는 자녀여, 일어나라!”
-
2026-05-29
-
-
[좌충우돌크리스천자녀양육기]공동체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
-
-
“엄마, 나 이번 겨울 방학에는 친구 집에서 돌아가며 놀거에요. 걔네들이 우리집에도 올거고. 방학 내내 친구들과 그렇게 놀거에요”
아이들이 친구집에서 놀겠다는 말을 자주하는 것 보니 방학이 오긴 왔나 봅니다. 학기 중에 자주 가지 못했던 친구 집을 방학 때는 허용해주니, 방학이 되자마자 친구들과 함께 이미 다 계획을 세운 모양입니다. 사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학교를 마친 후나 방학 때, 엄마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이 바로 “나가서 놀아라”였습니다. 집 대문을 열고 나가면 항상 친구들이 골목길에서 놀고 있어서, 함께 술래잡기도 하고, 고무줄놀이도 하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습니다. 엄마에게 용돈이라도 받은 날에는 과자를 잔뜩 사서 골목 평상에 앉아 친구들과 하하호호 거리면서 해가 늬엿늬엿 질 때까지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우리 아이들에게 “나가서 놀아라”고 하면 당장 “나가서, 어디서 놀아요?”라는 말이 돌아올 것입니다. 아이들끼리 나가서 놀 장소가 없습니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 수 있지만, 미끄럼틀 시소 등 놀이 기구가 한정돼 있어 마음껏 창의적으로 놀아야 하는 초등 고학년들은 시시해 하기도 합니다(물론, 초등 고학년들은 학원 다니느라 아파트 놀이터에서 잘 볼 수도 없지요). 요즘에는 골목문화가 없어져서 주택에 사는 아이들도 문밖에 잘 나오지 않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가서 놀아라”는 옛말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격언을 자주 생각합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가정에서 아이를 잘 양육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완전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사회적, 인격적으로 잘 자라기 위해서는 공동체 속에서 어울리며 다양한 것들을 배우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골목문화가 사라지고 가족 안에서 형제의 수가 적어지면서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인간관계’를 배울만한 기회가 줄어들었습니다. 다양한 이유로 학교는 이미 그 기능을 점점 상실해가고, 또래 집단에서 관계를 형성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익힐만한 곳을 찾는 것이 점점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럴 때, 눈을 들어 교회 공동체를 보면 지금 세상에서 결핍된 것을 채워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방학 때만 되면 친구들과 계획을 세워 돌아가면서 놀고, 자고, 함께 하는 것. 교회 주일학교 마다 각종 프로그램을 만들어 아이들을 교회로 오게 하고, 교회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다양한 활동을 통해 공동체를 경험하게 하는 것, 그래서 세상이 줄 수 없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 바로 지금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고,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용납, 수용, 사랑의 공동체 속에서 마음껏 자랄 수 있도록 교회가 문을 열고 준비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져가는 이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소중한 가치가 다음세대에게 흘러가기를 소망합니다.
-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6-05-04
-
-
[다음세대칼럼]강한 세대인가, 흔들리는 세대인가?
-
-
한국교회의 주일학교 감소는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다음 세대의 신앙이 더 이상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신호다. 교회 안에서 신앙은 여전히 가르쳐지고 있지만, 삶 속에서 그것이 유지되지 않는 단절의 현상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성경 속 삼손의 이야기를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삼손은 하나님께 구별된 나실인으로 태어난 인물이다. 그는 분명한 정체성과 사명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그 정체성을 지켜내지 못한 과정으로 기록된다. 강한 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끊임없이 세상의 유혹에 끌렸고 결국 자신이 지켜야 할 경계를 무너뜨렸다.
삼손의 모습은 오늘의 다음 세대와 묘하게 겹쳐진다. 오늘의 청소년들은 교회에서는 신앙을 배우지만, 학교와 사회에서는 전혀 다른 가치관 속에서 살아간다. 이들은 두 세계 사이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요구받는다. 문제는 그 선택의 기준이 점점 신앙이 아닌 현실의 기준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데 있다.
실제 한국교회 관련 조사들에 따르면, 지난 10여 년간 주일학교 학생 수는 큰 폭으로 감소해 왔으며, 일부 교회에서는 다음 세대 공동체 자체가 유지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또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여러 조사에서는 상당수가 “신앙이 약해졌다”라고 응답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종교 참여 감소가 아니라, 신앙 정체성 자체의 약화를 의미한다.
삼손의 실패는 한 번의 결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작은 타협이 반복되면서 점진적으로 무너졌다. 나실인으로서 지켜야 할 기준을 하나씩 허물어가는 과정 속에서, 그는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했다. 이 구조는 오늘의 다음 세대가 겪고 있는 신앙의 위기와도 유사하다. 신앙은 알고 있지만, 삶의 선택에서는 다른 기준이 작동하는 이중적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가정에서의 신앙 전수 약화다. 자녀와 신앙에 대해 깊이 대화하는 가정이 줄어들면서, 청소년들은 신앙을 삶의 기준이 아닌 ‘선택 가능한 하나의 요소’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는 삼손이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세상과의 관계에 더 깊이 영향을 받았던 모습과 닮아있다.
그러나 삼손의 이야기는 단순한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잃은 자리에서 그는 비로소 하나님을 찾는다.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
이 장면은 분명한 신앙의 원리를 보여준다. 하나님은 강한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참된 강함은 능력의 크기에서 나오지 않고, 방향에서 결정된다.
이제 한국교회는 다음 세대를 바라보는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 다음 세대는 ‘약한 세대’가 아니라, ‘경계 위에 선 세대’다. 그렇기 때문에 더 강한 통제보다 더 분명한 정체성이 필요하다. 더 많은 정보보다 더 깊은 신앙의 뿌리가 필요하다.
교회와 가정은 다음 세대가 스스로 질문하도록 도와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
“내가 가진 능력은 무엇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분명해질 때, 다음 세대는 흔들림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게 된다. 삼손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분명히 말한다. 강함은 능력에서 나오지 않는다. 강함은 하나님을 향하는 방향에서 시작된다.
한국교회의 미래는 결국 다음 세대의 방향에 달려 있다. 이제 우리는 그들에게 더 많은 것을 주기보다, 어디를 향해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가르쳐야 할 때다.
-
2026-04-30
-
-
[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사람은 어떻게 변화되는가?
-
-
우리는 누구나 변화를 꿈꿉니다. 달라지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지독히 안 바뀝니다. “내가 이제 공부해야지!” “운동할 거야!” “나 살 뺄 거야!” 아무리 결단을 해도 이게 진짜 안 바뀌지요. 왜 안 바뀔까요? 알란 도이치먼이라고 하는 미국의 기자이자 작가인 분이 ‘변화’에 대해서 연구를 많이 해서 책을 썼는데 제목이 ‘CHANGE OR DIE’예요. 우리 말로는 “안 변하면 죽는다.” 제목이 좀 세죠. 이 책에서 그는 이런 예를 듭니다. 심장병 환자들에게 “당신 생활 습관을 안 바꾸면 이제 죽습니다!”라고 의사가 경고를 했답니다. 그랬는데도 결과는 어땠을까요? 90%의 사람들은 살던 대로 살더라는 겁니다. 안 바뀌더라는 거죠. “아니, 이제 당장 이거 안 하면 죽어요!” 라고 사실을 알려주고 겁도 줘보고 강압적으로도 해봤는데 그런데도 사람들은 안 바뀌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가 도대체 왜 그럴까를 고민하고 연구했습니다. 그랬더니 드디어 우리가 왜 안 바뀌는지를 찾아냈어요.
우리가 바뀌지 않는 이유 – 3F (Facts, Fear, Force)
보통 우리가 바뀌려고 노력하는 세 가지 F라는 방법이 있다는 거예요. F가 뭐냐 하면 처음엔 Facts입니다. 사실을 알려주는 거예요. “아! 저 사람은 몰라서 저럴 거야. 사실을 알려주면 바뀔 거야.” 그리고는 정확한 정보를 준대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알면 바뀌나요?. “얘들아! 공부가 제일 쉽단다. 너희는 지금 제일 행복한 거야.” 말해줘도 애들은요 “뭐라구? 우린 어른들이 더 쉬운 것 같아.” 안 믿어요. 정보를 줘도 안 바뀌어요. 팩트를 아무리 전달해도 안 바뀌어요.
두 번째는 Fear입니다. 겁을 주는 거죠. 말 안 들으니까 “그러면 너 큰일 나! 너 이러다가 그냥 쫄딱 망한다.” 하는데도 그래도 안 바뀌어요. 물론 겁을 먹으면 잠깐은 바뀌는 것 같지만 그걸로 안 바뀌어요. 사람은 공포심으로 바뀌지 않아요.
세 번째는 Force입니다. 그냥 힘으로 밀어붙이는 거예요. “야! 그냥 좀 하란 말이야.” “야! 엄마 말 들어! 해!” 이렇게 밀어붙여요. 그래도 우리는 바뀌지 않아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이 밀어붙이고 있어요? 그래도 생각대로 안 돼요. 안 바뀌어요.
여러분, 세 가지 F로는 안 바뀝니다. 그래서 알란 도이치먼은 “이 세 가지 방법은 다 실패했다!”라고 선언하고 여기에 새로운 방법을 소개합니다.
우리가 바뀔 수 있는 조건 – 3R (Relate, Repeat, Reframe)
이 세 가지 R이 뭐였냐면 첫 번째 Relate입니다. 관계를 맺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혼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바뀌더라는 거예요. 운동을 가려고 해도 둘 이상이 같이 가야 그래야 눈치라도 보고 운동을 하죠. 그리고 돈을 내야 관계를 맺는 거잖아요? 그래야 운동을 하지 혼자는 안 되더라는 겁니다. 또한 우리들 중에는 좋은 아내, 좋은 남편을 만나서 인격적으로 성숙해진 분들이 많을 거예요. 많은 분들은 주변 사람들을 잘 만나서 지금 여기까지 온 거예요. 관계가 정말 중요해요.
두 번째는 Repeat. 반복하는 거예요. 학교 다닐 때 많이 해보셨죠? Listen and repeat. 계속해서 해봐야 해요. 해 봐야 늘어요. 후회되시죠? “그때 내가 Repeat을 좀 할걸! 그러면 영어 공부를 잘했을 텐데!” 여러분, 반복을 해야 해요. 느리더라도 확실하게 계속 반복하면요. 반복의 힘은 놀랍습니다. 처음에는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하겠죠. 하지만 계속하면 언젠가는 내가 왜 실수했나를 알게 되고 내가 어떻게 하면 실패하지 않을 수 있나를 깨닫게 되요. 그렇게 하면서 내가 달라져요.
세 번째는 Reframe입니다. 이게 제일 중요해요. Reframe은 틀을 다시 짜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우리가 우리의 욕망으로 살았어요. 내 욕망으로 사는 인생은요. 정말 안 바뀝니다. 이건 내가 욕망에 끌려가는 인생이기 때문에 나에게 주도권이 없어요.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의 의로움이라고 하는 새로운 나의 삶의 틀을 만들면, 의로움을 따라가는 삶은 변화될 수 있습니다. 욕망을 따라가면 제 자리지만, 후퇴하지만 의로움을 따라가면 전진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바로 이 변화의 자리입니다!
저는 알란 도이치만이 이 세 가지 Relate, Repeat, Reframe을 제시한 내용을 읽다가 “이거 교회인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잖아요? 여러분, 우리가 혼자라면 열심히 믿겠냐고요. 함께하니까 찬양대도 서고, 함께하니까 교사도 하죠. 가족 단위로 믿는 분들이 많은데 엄마 아빠가 가자고 그러니까 할 수 없이 가주다 보니까 교회 안에서 익숙함을 느끼는 거에요. 관계가 중요합니다. 또한 Repeat, 반복해서 매주 예배드리는 것이 중요하죠. 남들이 보면 신기해해요. “어떻게 매 주일, 일요일마다 가서 예배를 드리죠?” 반복의 힘이죠. 그리고 세 번째, Reframe. 틀을 다시 짜는 거예요. “아! 내가 나의 욕망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따라 살아간다!”라고 하는 내 삶의 틀을 새로 짜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우리 모두와 우리의 자녀들에게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
2026-04-30
-
-
[좌충우돌크리스천자녀양육기]고난주간, 아이들과 함께 새벽을 환하게 열기!
-
-
3월 마지막 주 첫 월요일, 봄은 왔지만 아직 공기가 찬 이른 아침 4시 10분. 평소 같으면 아이들이 한창 꿈나라에 있을 시간이지만 그 날은 엄마인 나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아이들 이름을 하나 하나 부르며 깨우고 있습니다. “은성아, 일어나야 해. 오늘부터 고난주간 특새 기간이야. 일어나기로 했지” 첫째가 부스스 일어나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습니다. 눈이 떠지지 않아 몸은 따뜻한 이불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지만,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은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아는 첫째는 꾸역꾸역 아침을 깨웁니다.
둘째는 어젯밤부터 요란하게 새벽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워낙 교회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라 새벽기도에 가면 친구들이 많이 올 것이라 기대해 전날부터 알람을 맞춰놓고 옷도 미리 다입고 자는 등 만반의 준비를 다했습니다. 물론, 일어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알람이 울리자, “엄마, 오늘 고난주간 맞지? 지금 바로 일어날게”라며 대견스럽게 스스로 준비하며 눈을 감은 채 거실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닙니까!
문제는 셋째와 넷째입니다. 아직 어린 두 아이는 몇 번을 흔들어 깨워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한참을 깨워도 반응이 없자 급기야는 “새벽기도 갔다 오면 젤리 사줄게. 아이스크림도”라며 겨우겨우 달래서 차에 태웠습니다.
아직도 어둑어둑한 새벽 4시 40분. 아이들은 잠이 덜깬 채 몽롱한 상태로 무작정 아빠 엄마를 따라 교회로 나섭니다. 비록 이 아이들이 평소와 달리 일찍 일어나 새벽기도를 간다고 해서 갑자기 성령의 은혜가 부어져 와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도 아니고, 고난주간의 의미를 엄청 깊이 생각해 스스로 십자가를 묵상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닌데 남편과 나는 왜 힘들게 아이들을 깨워 새벽 기도회에 참석하게 할까요?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아이들에게 남기고픈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이미지’고 ‘추억’입니다. 물론,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이맘때를 기억할 때,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봄날에 고난주간을 맞아 엄마 아빠와 함께 간 특별새벽기도회 때 들었던 목사님의 말씀이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어요”라고 생각해주면 가장 보람되고 좋을 일입니다. 그런데 나도 신앙생활을 통해 여러 경험들을 해 보니 그런 일은 극히 드물고, 어릴 때 아이들에게 남는 것은 ‘이미지’와 ‘추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아침에 눈뜨기가 버겁고, 일어나기 위해서는 수만 번의 다짐과 각오가 있어야 하지만 그 힘듦을 꺾고 나가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고난주간에 아빠와 엄마와 함께 새벽에 일어나 온 가족이 교회에 갔다는 이미지와 스토리를 남겨주기 위해서입니다.(물론, 고난주간과 부활절의 의미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알려주기 위함도 있습니다) 매해 고난주간에 새벽기도를 간 경험이 쌓이면 먼 훗날 아이들이 자랐을 때, 고난주간만 되면 아주 자연스럽게 이 장면이 떠오르게 될 것입니다. 교회에 대한 좋은 이미지와 함께.
일주일 동안, 새벽기도를 완주하기까지 많은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목요일 새벽에는 우리 부부도 일어나기가 버거웠으며, 아이들은 첫날의 호기로움은 사라지고 ‘자고 싶다’며 1분이라도 더 이불 속에 있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새벽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며 남편과 나는 아이들에게 완주했다는 기쁨과 성취를 주기 위해 햄버거를 아침으로 사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좀처럼 아침에는 먹을 수 없는 햄버거를 손에 쥐며 일주일의 힘듦과 괴로움은 다 잊은 채 “엄마, 너무 좋아, 언제 또 새벽기도 가는 거야? 나 또 갈래”라며 내년을 기약합니다.
그래, 어렵게 생각할 게 있을까요? 아이들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주며 하나님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 지금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임을 또 한번 새겨봅니다.
-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6-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