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본당위에서.JPG▲ 양산교회 본당 내부
 
△111년 전에 세워진 지역 최초의 교회
1906년 양산읍교회로 출발한 양산교회가 올해 111주년을 맞았다. 양산 지역 최초의 교회로, 양산 지역을 순회하던 호주 장로교 소속 선교사 손안로(Andrew Adamson) 선교사의 전도로 시작됐다. 손안로 선교사의 전도로 양산 지역 인사 정준모 씨가 기독교로 개종했고, 그의 영향으로 입신하게 된 10여 명의 기독교 신자들이 경상남도 양산군 북부동에 양산읍교회를 설립하게 된 것이다. 이후 양산읍교회는 해방될 때까지 양산 지역의 중심 교회로서 지역 교회들의 모체 역할을 감당해왔다.
양산교회는 한국교회사의 유명한 인물들과 직·간접적으로 많이 관련돼 있다. 뛰어난 한학자였던 정준모 장로는 1915년 양산교회 첫 장로이자 양산 지역 최초의 장로가 됐다. 그가 집필한 <경제사율(經題詞律)>은 정 장로가 평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느끼며 깨달은 영감을 근체시 형식으로 창작된 성경 한시집으로, 한국 교회의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또 양산교회에서 사역한 교역자로는 주기철, 이약신, 김형윤, 강용한, 차영배 목사 등이 있으며, 정준모 장로 외에도 금석호 장로, 이영호 집사, 조용학 집사, 김두천 장로, 강판녕 장로 등이 양산교회 출신 인물들이다.
양산읍교회는 1915년 당회를 구성하며 교회 체계를 갖추고 교세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1922년 양산시 물금면 물금리 459번지에 물금교회를 개척·설립해 정준모 장로를 전도자로 파송했다. 1927년 5월에는 양산시 남부동에서 현재의 중부동 158번지(일동2길 15)로 교회당을 신축·이전하고, 1972년 지금의 양산교회로 이름이 변경했다.
한 세기가 넘는 긴 세월동안 어려웠던 순간들도 있었다. 1929년부터 1932년까지 일본 무교회주의의 영향을 받은 신진리파운동으로 교회가 혼란을 겪었으며, 1957년 양산중앙교회가 분립됐다. 이단들로 인한 어려움도 겪었다. 신수인 목사는 “교회 주보를 보면 111년 동안 말씀을 지켜온 교회라는 모토(신조)가 있다. 어려운 시기들마다 우리의 구원자 되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말씀의 철저한 원리를 따라서 신앙의 동역자들과 기도하며 자신들의 자리를 지켰을 때, 하나님께서 감당할 힘을 주셨던 것 같다”면서 “앞으로도 변함없이 말씀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선한영향력을 미치는 교회가 되도록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양산교회의 주요 사역은 영혼구원과 다음세대양육, 그리고 사역확장이다. 신 목사는 “영혼구원은 모든 구원받은 주님의 자녀들이 감당해야 할 당연한 책임과 의무이자 본분”이라면서 “영혼구원을 위한 사역자 훈련과 배출을 위해서 전도폭발을 28년동안 진행해 오고 있다. 전도폭발을 수료한 훈련생들은 전도단으로 합류해 매주 수요일과 주일마다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수요일에는 11곳으로 지역으로 나뉘어 포인터 전도방법으로 지속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 또 매년 한차례 생명나눔 전도축제를 통해서 이웃들에게 복음을 들려주는 시간도 가진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사역인 다음세대양육을 위해서는 총 4단계로 제자훈련반을 진행하고 있다. 매 단계별마다 수료시 국내선교지 탐방과 국내 비전트립, 국외비전트립, 국외단기선교 등 다양한 훈련들을 실시하고 있다. 단기선교는 중고등부 제자훈련을 수료했을 때, 청년대학부와 장년층들은 격년제로 다녀온다. 양산교회는 성도들이 훈련프로그램을 통해서 훈련되고, 단기선교를 통해서 복음의 확장에 참여하면서 필리핀 부나온선교교회를 설립(100주년 기념), 미얀마 따만지 양산교회 건축(110주년 기념) 등 지속적인 선교 사역을 하고 있다.
세 번째, 사역확장 사역은 학습반, 세례반, 양육5단계, 성경개론, 바이블키, 부부학교, 어머니학교, 아버지학교, 결혼예비학교, 전도폭발훈련, 그리고 다양한 성경공부를 개설해 성도들의 신앙증진을 도모하고 그것을 통해서 사역의 범위를 확대시켜 나가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전교인 탁구대회.jpg▲ 전교인 탁구대회
 
전교인 한마음 걷기대회.jpg▲ 예비신자와 함께 전교인 한마음 걷기대회
 
전도폭발 수료식.jpg▲ 전도폭발수료식
 
어머니학교 수료식.jpg▲ 어머니학교수료식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교회
양산 지역 교회들의 모체로서 지역을 위한 봉사를 꾸준히 해오며 지역과 함께 하는 교회로 알려진 양산교회는 지역사회 자녀양육을 위해 1961년 샛별유치원을 개원해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2000년 4월부터 지역 사회의 가난한 이들이나 독거노인, 결손 가정 등을 위해 ‘사랑의 쌀·사랑의 빵 나누기 운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계속 진행해 오고 있는데, 첫 해에 80여 가정, 12개 경로당을 지원했다. 2003년 1월에는 무료이발소를 개원했고, 2005월 3월에 노인대학을 개설했다. 8년 동안 노인대학을 통해서 이웃 어른들을 정성으로 섬기다가 교회건축관계로 휴교한 상태다. 신 목사는 “교회가 신축이 되고, 이전을 하게 되면서 더 이상 샛별유치원을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역민을 위해 계속해서 운영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교회가 신축이 되고 새로운 곳에서도 지역민을 향한 지속적인 섬김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현재 건축 중인 양산교회의 새 성전은 기도하는 손 모양의 건물로, 2018년 2월 완공을 앞두고 있다. 교회건축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은 구도심과 신도시를 이어지는 곳이다. 양산시청과 연계돼 있어 주차시설을 주일이면 이용할 수 있는 편리성을 확보했다.
“111년 동안 한 지역에서 복음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해 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를 드린다”는 신수인 목사는 “양산시가 인구가 33만이나 되는 도시로, 나아가 50만 인구를 바라보고 있는 도시다. 다음 세대를 세우는 교회로써 다음 백년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신도시와 구도심을 이어주는 곳으로 교회 위치를 변경하는 것이 좋겠다는 전교인들의 공감대가 형성됐고, 미래 세대들을 양육하는 시스템으로써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확보했다. 다음 100년 준비하는 양산지역의 중심적인 교회로 세워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수인 목사.jpg▲ 신수인 담임목사
 
신수인 목사는 1987년도에 양산교회 부목사로 부임해 5년을 섬기고 1992년 위임 목사가 돼 지금까지 사역해오고 있다. 양산교회의 사역들은 신 목사가 늘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역들이다. “평소 어린이 교육과 청소년 문화, 노인복지에 관심을 가지고 지금까지 목회해 왔다. 이제 새 예배당에 입당하게 되면 좀 더 폭넓게 구체적인 계획과 실천이 추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 신명구 목사(고신 증경총회장)의 아들인 신수인 목사는 “운동을 좋아해서 운동을 전공하려고 했지만 부모님의 권유로 목사가 됐다. 본 교회의 배려로 1994년에 맥코믹 신학교에서 D.min 학위를 취득하게 됐는데 지금까지 30년간 양산교회에서 목회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했다. 신수인 목사는
고신 총회 은급재단 이사장, 총회 서기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총회 선관위위원, 양기총회장, 양산성시화 차기회장, 양산기아대책 이사회장 등으로 섬기고 있다.
 
신수인 목사는 “양산에서 최초로 세워진 교회로서, 지역의 영적기류를 주도해 나가는 장자로서의 마중물 역할을 하고자 한다”면서 “북부동에서 시작해 남부동 351번지에서의 21년, 중부동 158번지에서의 90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중앙로 19번지에서 새 역사의 장을 열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양산의 모체 교회로 양산 성시화와 하나님 나라 확장의 비전을 품고 열방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 하는 교회, 복음의 가교역할을 하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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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양산 지역 최초의 교회, 양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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