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18(월)
 
 

서임중목사 copy.jpg

민수기 11:1~2절에는 아주 의미 있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백성이 여호와의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로 그들 중에 붙여서 진 끝을 사르게 하시매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는 민족이다. 그런데 그들의 영성이 잠을 자게 되니 악한 말을 하게 되고 원망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악한 말을 하고 원망하는 입술을 그대로 두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불이 그들에게 임하여 그들의 진을 사르게 하셨다는 것이다. 여기의 중요한 것은 “백성이 부르짖으매” 라는 것이고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이 “모세가 기도하니”라는 말씀이다.
 
백성이 “부르짖다”는 말은 ‘차아크’로서 이는 고통 중에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는 뜻이다. 그리고 모세가 “기도하니”는 ‘이트팔렐’인데 이는 “중재하다” “판단하다”라는 ‘팔랄’에서 유래된 말로 여호와께 절규하듯 간청하면서 그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겼다는 뜻이다. 그 다음에 “불이 꺼졌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하나님의 진노가 멈추었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온 세계가 카오스현상이다. 5월이 되어도 우리들의 일상은 불편하고 무겁고 불안과 근심, 걱정과 아픔이 뒤엉킨 혼돈이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이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역대기하 7:13~14절 말씀이다.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그리고 이어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라고 말씀 하셨다.
교회도 온라인 예배가 2개월가량 진행되면서 처음에는 예배당에서 예배드림이 얼마나 좋았던가를 돌이켜 보면서 신앙생활을 새롭게 정돈하는 듯 했는데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다보니 마치 냄비안의 개구리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을 하게 된다. 1872년 ‘하인즈만’이 실험한 내용에 따르면, 개구리를 섭씨 21도인 물에 넣은 후, 37.5도까지 90분에 걸쳐 서서히 온도를 높였을 때, 개구리가 튀어나오지 않고 죽었다는 것처럼 이제 5월부터 코로나 19 방역대응이 생활방역으로 전환되어 얼마든지 예배당에 출석하여 예배드릴 수 있는 상황인데도 가정에서 온라인 예배에 익숙해 가다보면 현실에 안주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영성이 죽어가는 것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온라인예배를 실시하고 2개월이 지나 오프라인 현장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출석율이 엄청나게 떨어지게 된 것을 토로하는 상황을 듣고 접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교회안에서 온라인예배와 관련하여 찬반론이 일어나게 되고 본질을 벗어나 원망 불평이 일어나는 현상을 듣고 보게 된다.
그렇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은 불평과 원망이다. 마귀는 지금도 우리 마음에 감사한 것은 보지 못하게 하고 끊임없이 불평하게 하고 원망하게 한다. 그것이 습관화되면 영적 지도자에게로 이어지고 결국은 하나님에게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것이 사단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다. 가룟 유다가 예수를 처음부터 팔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영성이 죽어가면서 은혜와 감사함은 잊어버리고 불평과 원망으로 인하여 주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고라가 모세를 반역한 것도, 발람이 나귀의 조롱을 받게 된 것도, 삼손이 소명도 비참한 말로를 당한 것도, 사울이 하나님에게 버림을 당한 것도, 웃시야가 말년에 나병환자가 된 것도, 서서히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하나님의 진노를 돌리기 위해 우리는 영성이 회복되어야 한다. 영성이 회복되기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거룩한 삶의 절정이다. 그러기에 사무엘은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삼상 12:23)”고 기도하기를 쉬는 것은 죄라고 역설 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영적 생활이 무기력해 진다. 신앙생활의 즐거움도 보람도 감격도 기쁨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영성이 잠들었기 때문이다. 죄는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영성이 회복되면 삶의 모든 것이 생명력이 있게 된다. 그러나 영성이 잠들면 모든 것이 무기력하게 되는 것이다. 찬송의 감동이 없다. 기도의 감격, 설교의 은혜, 헌금의 기쁨, 헌신의 열심, 예배의 행복이 없다. 억지로 찬송하고, 마지못해 기도하고, 설교를 비판하고, 돈 예기만 나오면 불평하고, 봉사하는 사람이 바보스럽게 느껴지고, 형식적인 예배가 된다.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두루 삼킬자를 찾는다고 했는데 이러할 때 마귀가 찾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가 이렇게 살아가고 싶은 사람 있겠는가만 영성이 잠들면 그렇게 되는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기 때문에 잠자는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영성이 잠들면 모든 것이 깨달음이 오지 않는다. 깨달음이 없으면 그것은 멸망하는 짐승 같다고 했다.(시편49:20)
시편 18:1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그렇다. 하나님이 나의 모든 힘의 원천이다. 기도는 항상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이 열려있는 것을 뜻한다.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이 닫힌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영성이 죽어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한다. 우리의 잠자는 영성을 회복하여 기도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축복을 노래하는 5월이 되었으면 좋겠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서임중칼럼] 하나님 진노를 돌려야 한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