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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임중칼럼] 인생의 초겨울을 느낀다
    가을 단풍이 좋다는 지인들의 노래를 따라 한나절 산행을 했다. 그렇게 가을이구나! 했는데 겨울바람이 어느 새 문풍지를 흔든다. 이제는 단풍도 빛바랜 풍광을 보며 만상(萬象)이 떠오른다. 이전엔 법주사 앞을 지나려면 통행세를 내야만 했다. 그러나 그것이 폐지된 지 반년이 지나면서 법주사 방문객과 등산객이 15% 증가했다는 보도를 듣는다. 자연이 무상으로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것은 참으로 감사할 일인데 그곳의 불법주차와 쓰레기도 함께 늘었다는 뉴스를 듣자니 우리의 문화생활은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 대한 우리 국민정서가 여전히 곱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문화생활, 공중 생활이 질서정연하다는 것을 부인할 순 없다. 35년 전 한일 역사 연구를 위해 3주간 일본에 체류할 때였다. 공중전화통 위에 지갑을 놓고 깜빡 잊고 나온 것이 생각나 4시간 만에 다시 가 보았다. 지갑은 놓아둔 그대로 있었다. 무척 감동을 받았던 터라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대중목욕탕에서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수건을 2장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다음 사용자를 위한 배려로 자기가 사용한 곳을 말끔하게 정리정돈 하는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대중식당에서나 공공장소에서는 큰소리 내는 일이 없고, 대화도 옆 사람에게 결례되지 않도록 조용조용 하는 것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본의 한 모습이다. 스위스에서 본 일례로 비가 오는 날이었다. 식당에 일본인 단체 손님이 들어오는데 우산을 순서대로 줄을 세워 보관하는 것이었다. 보기 드문 모습에 말문이 막혔다. 산행을 하며, 불법주차에 불법 쓰레기 투여, 시골 장터 같은 카페 등 얼굴이 화끈거리다 못해 속까지 참담해지는 장면들을 흔히 볼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한번 돌아본다. 가을 단풍이 아름답다는 표현처럼 우리의 삶도 아름답게 물들었으면 좋겠다. 가을이 익어간다는 말처럼 우리의 삶도 성숙하게 다듬어져 갔으면 좋겠다. 문득 내 나이를 생각한다. 인생의 초겨울을 맞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이 깊어 가면 푸름을 자랑하던 모든 식물은 그 빛을 아주 잃고 생존한 일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봄이 오면 얼어붙던 땅을 헤집고 새로운 움을 틔우며 새 생명으로 탄생한다. 그 한 포기 풀을 통해서도 내 삶을 반추한다. 내 인생 또한 겨울을 맞이하면 이 땅에서의 내 삶도 마무리될 것이다. 나는 부활의 아침을 확신하는 믿음으로 그 나라에서의 삶을 기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에서의 내 삶은 초겨울을 느낀다. 초겨울의 오늘을 나는 어떻게 보내야 할까? 계절의 겨울이 깊어 가듯 인생의 겨울도 깊어 가는데 더 많이 이해하고 사랑하며 축복하고 감사하는 말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포항중앙교회에서 시무하던 때였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퇴근할 무렵이면 예배당 마당 한켠에서 나를 기다리는 분이 계셨다. 어느 한 주일도 예외가 없다. 입고 있는 옷은 1년 365일 똑같은 옷, 역사에 관한 것이라면 천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해박한 사람, 그러나 아이들 말로는 항상 2% 부족함을 드러내는 분이다. 내가 현관에 나타나면 한달음으로 달려와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러면 나는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 그분 손에 쥐어드리고 어깨를 한 번 감싸 두드려 주며 “밥 잘 잡숫고, 항상 감사하고, 아셨지?” 하면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쏜살같이 돌아서 달음질하곤 했다. 목사를 보고 싶어 하는 그분, 손에 만원을 쥐어 드리면 금방 얼굴이 환해지면서 천진스럽게 어린아이처럼 인사하고 돌아서는 그 분의 모습은 수천만 원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인간애(人間愛), 순수함 그것이다. 나는 주일마다 그렇게 그분을 만났다. 말 한마디 없는 그 분은 수천만 마디를 눈빛과 표정으로 목사에게 말한다. 그러던 분이 어느 주일에 보이지 않았다.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혹여 늦나 싶어 차 안에서 잠깐 기다려 보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어디 편찮으신가?’ ‘설마…?’ 그러다가 다음 주일에 나타난 그 분을 보면서 괜스레 눈시울이 젖었다. “아픈 데 없지? 괜찮지?” 그러면서 그날은 2만 원을 손에 쥐어 드렸다. 목사는 그렇게 주일만 되면 만원으로 행복을 경험했다. 그분은 나에게 있어서 오늘의 예수님이었다. 그래서 그분이 나를 보고 싶어 한걸음에 달려올 때 나는 주님을 보듯 반기고, 그것이 매 주일의 행복한 시간이 되었고 나도 매 주일 그분을 주님처럼 생각하며 보고 싶어진 것이다. 은퇴 후에는 그분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당부, 갇힌 자들을 돌아보고, 목마른 자에게 한 잔의 냉수라도 내어주며, 헐벗은 자를 입히고, 아픈 자를 찾아 위로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해 주는 것은 유별난 행동이 아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따뜻한 위로의 한 마디일 수도 있고, 때로는 문안 전화 한 통화일 수도 있으며, 흔히 쓰는 문자 메시지 한 줄일 수도 있다. 내가 기도할 때 한 마디의 중보일 수도 있고, 내가 먹는 것을 함께 나누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사랑의 연주다. 그것이 나눔의 축복이다. 그것이 행동하는 믿음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유별난 계획을 세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다. 그 때 우리는 날마다 오늘의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계절의 겨울이 깊어 가듯 우리네 인생의 겨울도 깊어 간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사랑하며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언젠가 갔었던 동경의 ‘고시래’ 식당이 떠오른다. 수많은 손님이 식당 주인 배우 욘사마, 배용준 씨를 그리워하면서 ‘그분은 언제 오실까?’ 고대하는 마음으로 그 비싼 음식을 주문하여 먹고 있었다. 계절의 초겨울에 내 인생의 초겨울을 생각한다. 계절의 겨울이 깊어 가듯 인생의 겨울도 깊어 가는데 더욱 사랑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그러다가 다시 오시는 그 분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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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0
  • [시사칼럼] 디아스포라가 우리의 희망입니다
    지난 주간에 중국의 동북부에 위치한 헤이룽장성(黑龍江省)에 충격적인 한파가 밀어닥쳤습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늦여름 날씨가 지속되다가 돌연 기온이 영하 25도까지 떨어지면서 폭설이 내려 도시 전체가 마비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세간의 화제가 된 이 지역을 한민족이라면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 이곳이 ‘간도’ 지방이기 때문이고, 그 중심에 안중근 열사의 의거가 일어났던 하얼빈 시가 있기 때문이며, 지금도 많은 동포들과 그 후손들이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간도’ 땅을 향해 요즘만큼 한국인들의 관심이 집중된 적이 드문듯합니다. 홍범도 장군도 관련이 있습니다. 육사 교정에 있는 흉상 철거 문제로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엄청난 홍보 효과가 있었습니다. 1920년 6월 7일에 일어났던 봉오동 전투 말인데, 소수의 대한독립군 부대를 이끌고 일본군 제19사단 월강추격대대를 무찌르고 큰 승리를 거두었던 이곳은 오늘날 지린성(吉林省)으로 불리지만 역시 대표적인 ‘간도’ 지방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당시 이 일대에 거주하던 한인들의 규모는 『백범일지』에도 소개되어 있는데, 독립자금과 관련해서 김구 선생은 “동북3성(흑룡강, 길림, 요녕)에 250만, 러시아에 150만, 일본에 40-50만 명의 동포가 있으나 각각의 사정으로 기댈 수 있는 형편이 아니고 오직 미국 본토와 하와이, 멕시코, 쿠바를 아우르는 일만 명의 동포 성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토로한 바 있습니다. 당시 벌써 500만 명이 넘는 한인 디아스포라(diaspora)가 있었다는 얘기인데, 정확한 수치는 누구도 알 수 없으나 가난과 압제와 구직 등 이런 저런 사정으로 고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그래도 한민족의 정체성을 간직한 채 살아가던 숱한 동포들이 존재했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기념일에 관한 규정에 의거하여 10월 5일을 ‘세계 한인의 날’(World Korean Day)로 지정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미국(260만), 중국(235만), 일본(82만), 캐나다(24만) 등 현재 세계 각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은 약 730만 명이라고 합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한국인 5,100만과 비교할 때 거의 15%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올해 초에 부산 지역의 청년 인구에 관한 유의미한 통계조사 결과가 처음으로 나왔습니다(2023. 2. 22, 부산시). 이에 따르면 2011년 11월 기준 만 18세에서 34세까지의 부산 인구는 총 68만 9천 명으로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했고 전년도에 비해 2.1% 감소한 수준으로 2015년 이후에는 계속해서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이대로라면 20년 후인 2040년대에는 40만 명대가 예상됩니다. 일자리를 좇아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비율도 높지만 혼인율 자체가 낮고 특히 해당 연령대 청년 출산율은 0.476명으로 심각한 수준이라 앞으로 반등의 기대가능성조차 별로 없는 실정입니다. 물론 부산 지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날이 갈수록 인구절벽의 전망이 불안한 심리에서 기정사실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전체 인구가 감소하는 자체가 문제입니다. 이제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대신 ‘인구는 경제력이고 국력이다’라는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할 때입니다. 더군다나 생산가능연령의 인구가 줄어들고 있으니 산업현장에 인력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을뿐더러 사회 각 분야에서 ‘일할 사람이 없다’라는 아우성이 울려 펴지게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희망은 없을까요? 문제 해결의 단서를 우리는 성경 속 이스라엘을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어쩔 수 없이 거대한 디아스포라가 되고 말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느 곳에 거하든 민족과 신앙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차면 그들 중 일부는 기꺼이 다시 돌아와 조국과 성전의 재건을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주전 6세기 바벨론에 살고 있던 백성들 중 5만에 가까운 이들이 귀환하여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놀랍게도 현대에 와서도 같은 현상이 발생합니다. 1882년부터 1948년까지 유대인 디아스포라 가운데 50만 명 이상이 다시 돌아와 현대 이스라엘 국가를 건립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인 디아스포라는 그 규모와 영향력에 있어서 결코 유대인 못지않습니다. 만일 이들 중 일부만이라도 통일된 조국으로 돌아온다면, 그래서 현재 51,430,000명인 대한민국과 25,750,000명으로 파악되는 북한의 인구에 합쳐진다면 물경 8천만에 가까운 세계 20위권의 인구 대국으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더욱 고무적인 사실은 고향으로 되돌아오는 대부분의 인구는 청년을 비롯한 생산가능연령대일 거라는 점이지요. 그렇다면 소멸하는 인구 문제로 걱정하는 우리에게도 한 줄기 빛이 보이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답을 바로 이번 간도 땅 ‘디아스포라’를 통해서 바라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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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0
  • [은혜의말씀] 나귀를 타신 이유(막 11:1-10)
    유월절을 앞두고 전국에서 모여든 순례자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예수님을 보기 위해 길거리로 나왔습니다. 드디어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오십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겉옷을 벗어 길에 펴고, 종려나무 가지를 길에 깔거나 흔들며,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하며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여러분, 왜 예수님께서는 백마가 아니라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까요? 스가랴 선지자는 예수님이 오시기 500년 전에 이 일을 예언하였습니다.(슥 9 : 9) 오늘,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신 이유를 살펴봅시다. 1.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신 것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신 것입니다. 모든 것이 구약의 예언된 바에 따라 움직이고 계십니다.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말씀에 대한 순종의 본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너무 많은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말씀이 무엇이라 하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우리 삶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쓰여지는 인생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땅에 우연히 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그분의 말씀 안에 이루어지는 특별한 존재들입니다. 2. 겸손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보세요. 뒤뚱거리는 어린 나귀 위에 앉으신 주님, 얼마나 볼품없는 초라한 모습입니까? 세상의 왕은 가능한 자신이 가진 권력을 극대화합니다. 반면 그리스도는 왕이신데, 전혀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왕 중의 왕이 오히려 더 작아지고, 낮아지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의 전반적인 메시지는 능력의 길은 겸손에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오직 겸손하게 섬기고, 봉사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겸손히 섬김’의 삶을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본성이 원하는 것하고는,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의 욕망을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 삶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처럼 우리의 겸손한 섬김이 누군가에게 쉼을 줄 수 있습니다.(막 10 : 45) 마지막으로, 주의 일에 쓰임 받았던 나귀 주인의 순종을 살펴봅시다. 나귀 주인은 주께서 쓰신다는 말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여기서, ‘주’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원어로 ‘아도나이’인데, 하나님의 주권, 권한을 강조하는 단어입니다. 이 말은 나귀 주인의 것을 가져간 것이 아니고, 그동안 주님의 것을 나귀 주인이 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쓰고 있으면 착각하는 것은 이것이 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입니다. 모든 만물은 주님에게서 나왔고, 주님의 의해서 돌아가고, 주님께로 돌아갑니다.(롬 11:36) 여러분, 우리는 소유의식을 가질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을 잠시 맡았다는 청지기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는 이 음성에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그 음성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한 영혼을 작정하는 것, 내 영혼의 VIP를 가슴에 품고 기도하여, 그가 구주이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섬기는 일에 쓰임받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큰 복은 없을 것입니다. 모든 성도님들은, 겸손한 순종의 섬김을 통해, 주의 일에 귀하게 쓰임 받는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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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0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다음세대와 소통을 위해 틈을 만들라
    분홍목사를 만나면 아이들은 슬쩍 미소를 짓습니다. 왜일까요? 저는 아이들한테 모든 애교를 다 떱니다. 일종의 틈을 아이들과 저 사이에 만드는 겁니다. 그 틈으로 복음이 전달되고 아이들이 변화됩니다. 그래서 저는 분홍 자켓을 입고 분홍목사 명찰을 달고 아이들에게 다가갑니다. 어떻게든 아이들에게 잘 보이는 게 저의 꿈입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들 마음이 열려야 그 아이가 살고, 그 아이 부모가 살고, 그래야 그 부모가 우리 교회를 떠나지 않고, 그래야 그 조부모들이 그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시거든요. 그래서 부산에서는 특이한 교회로 소문이 나서 매주 방문객이 오고 매주 탐방을 오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이걸 어디서 배웠냐면 성경에서 배웠습니다. 여러분, 사무엘상 17장에 보면 그 유명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나오는데요. 누가 크죠? 골리앗이 훨씬 큽니다. 키가 3m입니다. 어마어마하게 큰데 정작 그 싸움에서 이기긴 누가 이겨요? 다윗이 이겨요. 조그마한 다윗이 이겨요. 어떻게 이겨요? 물매를 돌려서 던져요. 이마에 맞아요. 그런데 중요한 건 이 골리앗이 그냥 비무장이 아니라 온 몸에 62kg짜리 놋으로 된 철갑 갑옷을 입었고요. 이마에는 투구를 썼어요. 그런데 어떻게 이마에 물매를 맞췄을까? 제가 연구를 해 봤습니다. 그러다가 은혜를 받았는데요, 그 이야기가 중요합니다. 엘라 골짜기에 이 골리앗이 나와서 무려 40일 동안 외쳤습니다. “야! 바보 같은 이스라엘 놈들아! 한 놈만 나와라. 1 대 1로 붙자. 내가 지금 물러갈게.” 그런데 아무도 못 나와. 열흘 지나 20일 지나 30일 지났습니다. 그러다 40일이 지나고 전쟁의 막바지가 되었습니다. 골리앗이 이제 퇴근하려고 막 준비하는데 나왔다는 거예요. 골리앗이 너무 긴장이 되는 거예요. 진짜 나왔다고? 정말, 누가 나온 거야? 하고 보니까 땅에 붙었어요. 얼마나 어린 애가 나왔는지 얼굴은 빨갛게 해가지고 칼도 창도 없어요. 물매인지 뭔지를 돌리는데 얼마나 웃겨요. 그러니까 너무 웃기니까 골리앗이 어떻게 했을까요? “으하하하” 웃었겠죠. 웃는데 투구가 들린 거죠. 들려가지고 틈이 생겨서 물매에 맞은 거죠. 제가 깨달았어요. 그렇구나. 다윗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구나. 다른 전사였으면, 이 둘이 정말 제대로 싸웠으면 승패를 알 수 없죠. 골리앗이 이길 확률이 높죠. 그런데 다윗이니까, 너무 가소로우니까, 너무 애가 나오니까 웃다가 투구가 들려서 물맷돌을 맞았구나. 그걸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요. 아이들한테 저를 낮추자, 마음 먹었습니다. 그래서 홍융희라는 이름도 아이들은 몰라요. 그냥 분홍 목사님, 우리 분홍 목사님 그래요. 아이들이 본당에 오면 신이 나요. 본당에 오면 마음이 편해요. 왜? ‘저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이야. 설교하는 저분이 내가 알고 친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아이들이 마음이 편하고 하나님 말씀을 잘 들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요, 저희 교회는 본당에 함께 모여 예배할 때 참 다들 표정이 좋습니다. 그럴 때는 찬양대도 가운 벗어 던지고 같이 아이들처럼 색색으로 옷을 입고 함께해 주시는 교회고, 제일 중요한 거는 저희 장로님들이십니다. 하루는 저희 토끼 옷을 입은 유치부 목사님께서 아이들을 지도하시면서 다니시니까 이 장로님들이 “목사님! 힘드시겠어요.” 그러니까 “그럼 같이 하실래요?” 하면서 들고 나온 거예요. 유치부에 있던 공룡 옷, 백호 옷, 곰 옷을 들고 와서 이분들이 갑자기 그 옷들을 입으신 거예요. 계획이 없이. 그리고는 이분들이 예배중인 본당에 들어와 버리신 거죠. 어떻게 됐을까요? 난리가 났죠. 애들이 그냥 “와!” 하고 박수가 터지면서 갑자기 막 곰이 나오고, 공룡이 나오고, 백호가 나오고. 이분들이요. 그러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좋아졌어요. 아이들에게 풍선을 나눠주고 그러면서 제가 깨달았어요. ‘다음 세대 목회하는 기쁨과 보람이 이런 거구나!’ 그래서 이렇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의 이제 핵심적인 두 가지가 있는데 다음 세대 사역의 핵심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세요. “어떻게 애들을 데려오나?” 그러시거든요. 저희 부산 사하구가 온통 신평, 장림 등등 공단이 많아요. 애들이 없어요. 그런데 “어디서 데려오냐?”라고 물어보는데 여러분, 그게 핵심이 아닙니다. 핵심은 어떻게 잘 키울까? 하는 거죠. 여러분, 집안에 애들이 많은 건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먹기나 많이 먹습니다. 어떻게 잘 키우느냐? 하는 게 중요하죠. 여기엔 두 가지 핵심이 있는데 복음과 사랑입니다. 복음이란 다음 세대들이 교회에 와야 할 이유를 바르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게 복음이라고 저희는 믿어요. 교회에 와야 할 이유. 예수를 믿어야 하는 이유. 말씀을 순종해야 하는 이유, 그게 복음이죠.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고 저희는 그중에서도 우리 교회에 와야 할 이유, 이것을 분명히 경험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 부산의 교회가 1,800개 교회가 있는데요. 어느 교회를 가나 다 구원받잖아요. 그런데 왜 우리교회에 와야 합니까? 우리교회에서만 받을 수 있는 사랑을 애들이 경험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여러분의 교회가 바로 그 교회에서만 받을 수 있는 사랑을 가지고 있는 교회가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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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3-11-10
  • [다음세대칼럼] 내 증인이 되리라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생각납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자상하게 연도 만들어주시고, 썰매도 만들어주셨습니다. 신앙도 모범을 보여주셨고, 장로로서 40년 동안 잘 섬기시면서 교회를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도 후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제가 목사가 되길 간절히 바라셨던 분중에 한 분이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1999년 12월 소천하셨습니다. 소천하신 후에 짐을 정리하다가 누우셨던 머리맡에 말씀충만, 기도충만, 성령충만, 능력충만, 믿음충만이라는 글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글귀가 언제 기록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거의 유언과도 같은 당부였습니다. 그 글귀를 기억하며 지금도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 6절에서 8절은 예수님의 유언과도 같은 당부의 말씀이 있습니다.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남기시는 유언과 같은 당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부활과 승천 사이의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하여 열심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세례를 준비하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만났고, 대화를 나누었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미성숙하고 진리에 대하여 무지한 제자들에게 최후의 당부를 남기셨습니다. 그 최후의 당부는 모든 성도들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는 최후의 당부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 나라의 증인들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증인이 되리라.’ 당부하십니다. 요 21장에서 요한의 앞날을 궁금해 하는 베드로에게 주님은 22절에서 대답하십니다. 만약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요한을 이 땅에 살려둔다고 해도 그것은 베드로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기 때문에 베드로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 문장은 가정법 문장입니다. 종말 때까지 요한을 살려두시겠다고 단정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21장 23절은 기가 막힌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대답을 마치신 뒤에 제자들 사이에 헛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요한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주님이 말씀하셨다고 소문이 퍼집니다. 잘못된 소문이 퍼진 것입니다. 그 소문을 퍼뜨린 사람들은 철부지 어린애들이나 막 신앙에 입문한 초신자들이 아닙니다. 베드로를 비롯해서 주님을 3년 동안이나 밤낮으로 모셨던 주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23절 뒷부분에서 사도 요한은 그 헛소문을 정정해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요 21장에서 보면 제자들의 수준이 매우 한심스럽습니다. 그런 제자들이 사도행전에 이르러서는 참된 교회의 개척자로 설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주님의 증인으로 업그레이드되었기 때문입니다. “내 증인이 되리라”에서 ‘되리라’라는 동사는 헬라어로 미래형이면서 명령형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증인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면서 반드시 주님의 증인이 되라는 명령입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결코, 추상적인 관념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명령을 좇아서 구체적으로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법률 용어로서 증인이 되려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첫째, 반드시 보고 들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필요한 것을 보고 듣지 못했다면 처음부터 증인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둘째, 반드시 출석 요구에 응해야 합니다. 응하지 않을 경우 구인을 당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셋째, 반드시 진실만을 증언해야 합니다. 거짓 증언을 할 경우 위증죄로 처벌받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증인이 되라고 하신 것은 바로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제물로 돌아가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주님에 대하여 듣고 그분의 역사를 우리 삶으로 체험한 산증인들입니다. 우리는 매일 우리의 삶 가운데서 주님의 증인으로 출두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주님의 증인으로 증언해야 합니다. 세상 법정의 증인과 주님의 증인 된 우리의 차이는 세상의 증인은 말로만 증언하면 그만입니다. 그에 비해 우리의 증언은 우리의 삶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대부분 순교자로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들은 것이 분명하고 본 것이 너무도 확실했기 때문에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저버리고 위증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순교자’가 될지언정 ‘증인’임을 포기하지 않은 것입니다. 헛소문을 퍼뜨리던 연약한 제자들이 그들이 보고 들은 진실들만을 전하는 참된 주님의 증인으로 성장해 갔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결실의 계절 가을에 각 교회들마다 전도축제가 한창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도들이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행사로만 여깁니다. 우리는 진실된 증인의 삶을 살아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참된 증인이 되어서 헛소문이나 듣고 전하는 성도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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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0
  • [신앙교육나침반] 온 세대와 함께 하는 추수감사절
    120세의 노련한 리더 모세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향해 다음 세대의 양육을 책임져야 함을 절절히 외쳤습니다. 모세는 신명기 6장에서 자녀 세대들을 타락한 세상으로부터 빼앗기지 않기 위한 핵심 전략을 명령하였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그는 지금까지와 다른 차원을 강조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음’입니다. 그는 부모 세대가 내적 차원인 ‘마음’을 두고 싸워야 함을 명령하였습니다. 모세는 부모 세대가 단순히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는 백성이 아닌, 하나님과 뜨겁게 사랑하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뜨거운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보다 더 큰 영향력은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랑으로 관계 맺는 부모는, 자녀와도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관계 맺습니다. 부모가 자녀와 뜨거운 사랑의 관계 안에서 전하는 복음은 세상 그 무엇보다 강력하고 매력적입니다. 자녀의 지치고 어두운 영혼을 사랑으로 부둥켜안고 전하는 복음은, 자녀의 영혼을 일으켜 세우는 복음입니다. 수많은 자녀 세대의 마음이 상하여 굳게 닫혀 있습니다. 많은 아이가 “힘들어!”란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아이들의 먹거리에는 온통 환경호르몬과 중금속으로 가득하며, 아이들이 숨 쉬는 터전은 신종 바이러스와 초미세먼지로 인해 마스크를 벗기조차 두렵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문을 닫고 온라인 소셜 미디어와 가상의 게임 공간에서 평온함과 안정감을 느낍니다. 아이들은 고립과 단절이라는 보호막 안에서 안정감을 느낍니다. 지금도 수많은 자녀 세대가 마음의 문을 굳게 닫은 채, 세상으로부터의 단절을 스스로 선택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을 순수한 사랑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곳은 어디에도 없어 보입니다. 사랑의 테두리 바깥에서 전해지는 율법과 진리는 공허한 종교가 되어, 자녀 세대의 삶에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규율, 관습, 진리는 껍데기일 뿐인 종교가 되어, 결국에는 소멸하고 말 것입니다. 신앙의 전수가 자녀 세대의 마음을 보듬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다음 세대의 삶에 생명의 영향력을 미치는 복음이 됩니다. 올해 추수감사절에는 교회의 모든 세대가 다음 세대를 보듬는 자리를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모든 세대가 함께 마주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와 놀이시간을 마련해보십시오. 교회와 가정이 하나된 그 자리에서, 몸과 마음이 지쳐 쓰러진 다음세대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감사의 능력으로 힘차게 일어서게 될 것입니다. 온 세대가 가을 열매를 이용해서 즐겁게 감사할 수 있는 감사의 송축 놀이 세 가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❶ 앗싸! 감사!: 밤이나 도토리 등의 가을열매를 높이 던지면서 “앗싸!”라고 외치고, 다양한 크기의 그릇으로 “감사!”라고 말하며 받습니다. 혼자 받기 또는 두 사람이 주고받기를 할 수 있습니다. ❷ 감사의 파워: 불평을 상징하는 종이컵을 세웁니다. 이때 종이컵 안쪽에 1-10까지 점수를 적습니다. 감사의 가을열매를 던져서 넘어뜨리거나, 테이블 위에서 진행할 경우 손가락으로 열매를 튕겨서 불평을 테이블 아래로 떨어뜨립니다. ❸ 송축해: 빈 계란박스 안에 감사이름, 감사장소, 감사물건, 감사추억, 감사음식과 같은 주제를 적습니다. 박스 안에 작은 도토리나 콩을 넣고 흔든 후에, 뚜껑을 열어서 감사열매가 들어간 곳의 내용을 보고 감사를 고백해봅니다. 올해 추수감사절에는 이 땅의 모든 교회가 다음세대와 함께, 감사와 송축을 통한 치료와 회복을 경험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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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0
  • [양육칼럼] 아버지의 자녀양육 참여의 중요성
    전통적인 개념의 좋은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자녀를 덜 구속하며 주로 가정 밖에서 일을 하고 자녀의 양육이나 교육에 덜 개입하며 경제적인 지원을 했지만 오늘날 좋은 아버지는 자신의 발달은 물론 자녀의 발달과 사회화에 관심을 가지고 자녀의 양육과 교육에 책임을 수용하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동발달적 측면에서 볼 때 아버지의 양육행동이 어머니의 앙육행동과는 질적으로 다르며 자녀는 부모 모두에게 애착행동을 보인다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아버지의 역할과 영향력을 중시하게 되었다. 또한 여성의 사회참여가 증가하면서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21세기를 살아갈 자녀들이 반드시 발달시켜야 할 안정애착과 사회성 발달, 인지 발달, 성취동기 육성과 성 역할 학습에 아버지가 미치는 영향을 많은 연구결과들이 밝히고 있다. 먼저, 아이들이 영아기에 주 양육자와 맺는 안정애착 즉 정서적 유대감은 양육자와의 신뢰로운 관계는 물론 이후 또래관계를 비롯해 모든 대인관계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발달 영역이다. 쓰다듬어 주고, 놀아주는 사회적인 자극이 영아의 애착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아버지도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영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애착관계를 형성할 수 있으며, 이는 자녀의 대인관계는 물론 사회성 발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은 아버지는 자녀의 인지발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각 유아의 인지발달에 도움을 주지만 그 방법에서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아버지는 자녀의 놀이 상대로서 물리적인 기술을 통하여, 어머니는 따뜻한 돌봄을 통해서 자녀의 인지발달을 돕는다. 한 연구에서 아버지가 있어도 아동과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하는 아동과 아버지와 충분한 시간을 갖는 가정의 아동으로 나누어 연구한 결과 그 당시의 나이가 어릴수록, 그 기간이 길수록 지능과 학업성취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하고 있다. 많은 연구결과들은 아버지가 아동과 많은 시간을 가질수록, 그리고 아버지가 친절하며 따뜻하게 잘 놀아주고 격려해 줄수록 아동의 인지발달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끝으로 아버지들은 자녀들의 사회적 관계와 성취동기, 직업선택에 있어서 아버지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인식하고 아이들의 발달시기에 아이의 감정을 공감해주고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언어적 소통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자녀의 성취동기 발달에 필요하다고 한다. 또한 아이들이 안전하고 지지받는 환경에서 개방적인 탐색과 성취를 통해 자기주도성을 키워가도록 도울 때 자녀의 성취동기가 육성된다는 것이다. 자녀의 성 역할 학습에 있어서도 아버지의 역할은 어머니보다 좀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남아는 아버지와의 동일시를 통해 남성의 역할을 배우며, 여아는 아버지를 통해 남성에 대한 관심과 남성과의 친말한 관계형성에 대해 배우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버지의 따뜻하고 바람직한 양육과 보호는 자녀의 균형 잡힌 성장에 매우 중요하며 확고한 가치관이나 신념이 형성되지 않은 아동들은 부모의 태도와 가치를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하여 흡수하며, 동일시 대상으로 중요한 아버지가 올바른 모델이 되고 자녀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아동의 바람직한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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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육칼럼
    2023-11-10
  • 고신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의료인 박상은 원장
    박상은 안양샘병원 미션 원장이 지난 5일 베트남 의료선교 중 별세했다. 박상은 원장의 소천소식에 누구보다 놀란 교단은 고신. 박 원장은 분당샘물교회 출신으로 2015년 보건의 날 국가생명윤리 보건의료에 대한 공헌으로 국민포장을 수상한 바 있고, 2014년에는 대통령 직속 기관인 국가생명윤리 심의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돼 국가 생명윤리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해 왔다. 특히 아프리카 미래재단을 통해 아프리카 말라위, 집바브웨에 병원을 세우고 에이즈 예방사업, 모자보건 사업, 간호대학, 의과대학을 설립해 그들 스스로가 의사와 간호사가 되어 의료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자립하는 일도 진행해 왔다. 1979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재학 당시 봉사단체인 한국누가회 모임을 만든 장본인이며, 누가회를 통해 의료선교에 열정을 쏟은 인물이다. 복음병원과는 과거 1980년대 장기려 박사 밑에서 수련의 과정을 거친 바 있고, 장 박사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15년 고려학원 이사회(당시 이사장 강영안 장로)는 당시 전광식 총장이 복음병원 새 병원장 후보로 제청한 박상은 원장을 투표에 붙였지만 부결한 바 있다. 당시 임상교수들과 노동조합이 ‘외부인사 영입 반대’를 외친 것이 부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평생 환자를 섬기며, 선교에 열정적이었던 박상은 원장. 갑작스런 별세 소식에 많은 기독 의료인과 고신교단 인사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안양샘병원은 예정돼 있던 개원 기념행사 등을 전면 취소하고, 오는 12일까지를 애도 기간으로 지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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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3-11-10
  • 총신대 재단 이사 사임한 소강석 목사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가 총신대 재단 이사직을 사임했다. 소 목사는 “제104회 총회에서 총신대 재단 이사 증원(30인)을 결의했음에도 재단 이사회에서 총회 결의를 이행하지 않았고, 제108회 총회에서도 이에 대해 발언했지만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며 “총신대 재단 이사회 정상화를 이룬 105회 총회장으로서 양심상 재단 이사직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사임 이유를 밝혔다. 소강석 목사는 임기는 2025년 4월 8일까지였으나 약 1년 5개월을 남기고 사임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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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3-11-10
  • 어딜 가나 ‘말썽’인 신천지
    이단 신천지가 12일 대구에 집합한다. 신천지 114기 수료식이 대구 스타디움에서 열리는데, 약 9만명, 버스 2000대가 집결할 예정이다. 작년에도 대형버스 2,900여대가 동시에 움직여 교통체증 관련 100건이 넘는 민원이 쏟아진바 있다. 수천대의 대형버스 등이 넓은 부지를 찾아 달성군 구지면으로 이동해 주차를 했는데, 버스들이 약속한 장소를 벗어나 다른 구역에 불법주차를 하면서 교통체증이 발생하자 다수의 민원이 발생한 것. 작년과 마찬가지로 신천지 반대집회도 계획되어 있다. 신천지 반대집회는 대구 스타디움 인근 경기장 네거리 일대에서 반대집회를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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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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