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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칼럼] 우리 함께 귤 따러 가요
    우리 총회에서 10년 전에 제주도에 수양관을 지으려고 사 놓은 땅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어찌해서 수양관을 짓지 못하고 귤밭으로 남아 있습니다. 작년에 저는 제주도에 가서 그 귤밭을 보고 반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총회장이 되면 꼭 귤 따러 오겠다”고 이야기를 해 놓았습니다. 물론 제가 총회장이라고 해서 그냥 따는 것이 아니라 경작 수고비를 다 지불하고 성도들에게 좋은 추억도 선물하고 싶어서 같이 간 것입니다. 정말 총회장이 된 이후로 두려운 영광, 영광스러운 두려움에 싸여 긴장의 나날이었고, 총회 세움과 한국교회 세움의 사명 때문에 강박증에 시달릴 정도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총회 제주도 귤밭에 귤 따러 간다고 생각하니까 비행기를 타는 순간부터 가슴이 설레였습니다. 제주도를 수없이 왔다 갔다 했지만, 귤밭을 눈으로 보기만 했지 한 번도 직접 따보지는 못했거든요. 마침내 우리 총회 귤밭에 도착하였는데 정말 얼마나 탐스러운 귤들이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려 있었는지요. 제주노회 목사님들이 총회장의 방문을 환영한다고 현수막도 걸어주고, 삼겹살도 구워 놓았는데, 저는 바로 귤나무로 달려가서 정신없이 귤을 12개나 따 먹은 것입니다. 귤을 따 먹는데 얼마나 과즙이 상큼하게 터지는지 향기가 진동하였습니다. 저와 함께 동행한 성도들은 정신없이 귤을 따서 정말로 사랑하는 분들에게 택배로 보내드렸습니다. 그 순간 지금까지 달려온 시간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상큼한 감귤을 따 먹는구나.” 십수 년 전부터 이슬람 스쿠크, 동성애, 포괄적 차별금지법, 종교인과세 등 한국교회를 위태롭게 할 수 있었던 역사의 결정적 순간마다 부족하지만, 하나님께 쓰임을 받아 많은 재정과 시간과 힘을 바쳐 눈물로 씨를 뿌렸습니다. 그 일의 가치와 성과를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릅니다. 그러나 같이 일했던 분들은 다 압니다. 그때 김영진, 전용태, 김승규 장로님, 이혜훈, 김진표 의원님, 측면에서 박지원 현 국정원장님 등이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그분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지금은 이슬람 스쿠크, 동성애, 포괄적 차별금지법 등의 문제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알고 있고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코로나19로 인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한 번도 취업을 못 해본 청년들이 29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내하며 눈물로 씨를 뿌리면 반드시 열매를 딸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미래의 어딘가 제주도의 감귤처럼 하나님이 예비하신 꿈의 열매, 축복의 열매가 익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포기하면 모르지만, 포기하지만 않으면 반드시 영혼의 감귤, 삶의 성공이라는 감귤을 딸 수 있습니다. 제주도의 감귤 뿐만이 아니라 우리 삶에도 영혼의 감귤, 축복의 감귤이 있습니다. 그 감귤은 포기하지 않는 자만이 딸 수 있습니다. 끝까지 인내하고 눈물로 씨를 뿌린 자만이 거둘 수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돌아와, 저는 또 정신없이 총회와 한국교회 연합과 세움 사역을 위해 질주하고 있습니다. 시대적 사역을 하다 보면 오해도 받고 힘든 일도 겪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면 제 삶의 또 다른 내일 어딘가에 제주도의 감귤처럼 상큼한 축복의 열매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끝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어딘가에서 축복의 열매들이 익어가고 있으니까요. 우리 함께 귤 따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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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02
  • [통일칼럼] 북한이해 방법
    미국 조지타운대학 국제정치학교수인 빅터차는 북한을 ‘불가사이한 국가’라고 불렀다. ‘불가사이한 국가’라는 별명에 걸맞게, 북한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접근방법을 사용한다. 첫째는 내재적 접근법이다. 이 연구법은 북한을 연구할 때, 북한체제가 설정해 놓은 이념과 논리를 기준으로 삼고, 북한의 특수한 현실을 고려하여 그들 사회현상을 분석하자는 접근방법이다. 즉, 북한 사람의 입장에서 북한을 이해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접근방법은 북한체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북한사회의 비민주적이고 부정적인 면에는 줄곧 침묵해 왔다는 점에서 오류를 범해왔다는 지적과 비판을 받아왔다. 둘째는 외재적 접근법이다. 내재적 접근법의 제한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개발된 연구법이다. 이 방법은 서구 사회주의 및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기초한 인류 보편적 시각에서 북한사회 전반을 이해하는 연구이다. 외재적 접근법으로 수행된 연구들에서는 북한사회가 폐쇄적이고 위험한 국가의 모습으로 그려져 왔다. 셋째는 내관적 접근법이다. 북한을 내재적 접근법으로 연구하면서 동시에 외재적 접근법적 비판을 함께 가하는 연구방법이다. 즉, 북한사람의 입장에서 북한의 체제와 사회문화 현상을 수집하고 분석하여 서술한 뒤, 다시 자유민주주적 자본주의 보편적인 가치로 북한사회를 분석 평가하여 이해하는 접근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북한연구에 내재적 접근방법을 적용하여 최초로 국내에 소개한 사람은 재독학자 송두율교수였다. 송두율은 북한연구에 새롭게 도입한 내재적 접근방법에서,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북한사회를 작동시키는 내부적 원리인 주체사상을 먼저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말하는 내재적 접근은 비유해서 말하자면 아이가 울 때, 왜 우는지의 원인을 찾아 배가 고파서 우는지, 배가 아파서 우는지를 진단해서 처방을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내재적 접근방법의 연구결과물들은, 북한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지지하는 편향된 결과물을 이끌어 내는 경향을 보여 왔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국내 북한학자들로부터도 비판을 받아왔다. 진보성향의 학자들은 내재적 접근의 연구를, 보수적 성향의 학자들은 외재적 접근의 연구를, 중도적 입장에서 북한을 이해하려고 하는 학자들은 내관적 접근방법의 연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북한선교를 염두에 둔 교회와 기독교인은 북한을 이론적 시각이 아닌,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북한동족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과, 저들에게 진리를 알게하여, 진리로 자유하게 하는 성육신적, 섬김의 선교학적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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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02
  • [성서연구] 겨울을 사랑하는 마음
    남산자락을 돌 때마다 제각기 물들어 찬란하게 빛나는 나뭇잎에 기쁨을 느꼈습니다. 바람에 멋들어지게 떨어지는 은행잎에도 매료되었습니다. 떨어지는 것까지 아름답다니, 인생은 저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은행잎이 밤새 떨어져 비단 양탄자처럼 깔린 모습은 정말 환상이었습니다. 일부러 한밤중에 나와 그 위에 혼자 가만히 서 있었던 적도 있습니다. 정호승님의 시의 한 구절인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는 대목을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나도 멋지게 살다가 멋지게 떨어지리라고 다짐하면서. 그런데 그 아름다움이 짧게 지난 후에 찾아오는 것은 아픔입니다. 제 단순한 생각으로는 일생을 마친 나뭇잎들을 그냥 두었으면 좋겠습니다만, 노란 조끼를 입은 이들이 노란 은행잎들을 가차 없이 쓸어버리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같은 노란색인데 관용은 없었습니다. 쓸려가는 나뭇잎들이 우리인 듯 아팠습니다. 찬란한 가을의 자리를 빼앗는 겨울이 미웠습니다. 겨울은 사랑하기 어려운 계절입니다. 우선 춥습니다. 앙상합니다. 음산합니다. 거리에 사람도 적어집니다. 그런데 최근에 불현듯 겨울을 사랑하는 마음이 성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겨울을 견디는 마음, 겨울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따스한 봄이 온다는 것을 떠올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겨울을 잘 견디셨습니다. 예수님께 다가온 겨울은 십자가였습니다. 나뭇잎들이 떨어지듯, 사람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갔습니다, 삭풍이 살을 에듯, 채찍과 조롱이 예수님의 몸과 마음을 할퀴었습니다. 겨울이 가을에게 붙어있는 한 모금의 숨마저 죽이듯,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겨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겨울을 사랑하셨습니다. 전능하신 예수님께서는 얼마든지 십자가에서 내려와 원수들을 무릎 꿇릴 수 있었지만, 가장 무능한 자처럼 십자가에 높이 매달려 계셨습니다. 그건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가장 강한 분이 가장 약한 자처럼, 가장 귀한 분이 가장 천한 자처럼, 가장 거룩한 분이 가장 추한 죄인처럼 매달려 계셨습니다. 겨울을 사랑하는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의 겨울을 봄으로 바뀌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세상에 탄생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겨울이 있었음을 아십니까? 죄와 고통, 사망이 우리의 겨울입니다. 그 겨울에 우리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라는 겨울을 사랑하여 감당하심으로 우리의 겨울은 따스한 생명의 봄으로 바뀌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21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고 합니다. 바울은 겨울을 앞두고 있었는데, 계절상의 겨울만 앞둔 게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순교라는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6-7절에서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했는데, 봄부터 늦가을까지 농부가 모든 것을 다 마친 것과 흡사합니다. 남은 것은 겨울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겨울을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들고 겨울 한복판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구원의 꽃이 피는 봄이 오게 했습니다. 바울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동역자들도 온 힘을 다해 겨울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20절을 보면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 드로비모는 병들어서 밀레도에 두었노니>라고 했는데, 어려운 처지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최선을 다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분들은 자신들의 겨울을 회피하지 않았고, 사랑했습니다. 겨울을 사랑하는 마음이 봄을 가져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마음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코로나 19 사태, 우리 사회의 혼란, 한국교회의 어려움은 우리가 사랑해야 할 겨울입니다. 좋았던 한때인 가을을 빼앗은 겨울을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교회와 성도는 단 한 번도 다수였던 적이 없습니다. 늘 소수였습니다. 믿음을 지키며 사는 것은 늘 추웠고,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선배들은 겨울을 피해 도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방한복처럼 입고 겨울을 향해 달려가야 하겠습니다. 겨울을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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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02
  • [시사칼럼] 파기만 하면 나오네
    지난 11월 중순 아테네에서 하수도 공사 중 거리 표지석으로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헤르메스 신의 조각상이 발굴되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언론들은 이를 두고 “땅만 파면 나오네”라는 재미있는 기사 제목을 붙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어디 아테네뿐이겠습니까? 최근 몇 년 동안 로마도 그렇고 성경에도 나오는 데살로니가에서도 지하철 공사 중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서양의 전유물만도 아닙니다. 최근 경주에서 다시 한 번 신라 시대 유물들이 잇달아 발굴되었지요. 불과 몇일 간격으로 ‘쪽샘 L17호’라 불리는 목곽묘(木槨墓·덧널무덤)에서는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에 제작되어 신라에 수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허리띠 장식과 마구, 투구, 토기 등이 발견되었고, 황룡사지 서회랑 서편 터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다른 유물들과 함께 금동봉황장식 자물쇠 몇 점이 발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오래 전 경주에서 나타난 기이한 유물이 떠올랐습니다. 1956년, 경주 불국사를 대대적으로 보수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불가사의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정말 기이한 유물이 출토된 것입니다. 바로 ‘돌십자가’와 ‘마리아’로 보이는 상이었습니다. 불국사는 통일신라시대인 751년에 건립되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상이라니, 그렇다면 이는 고대 기독교가 우리나라에까지 전파되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왜냐하면 신라와 동시대인 발해의 고토에서는 이미 기독교 유물이 여러 점 발견된 바 있기 때문입니다. 발해의 솔빈부 아브리코스 절터에서 십자가가 출토되고, 한때 수도였던 동경 용원부(현 훈춘)에서는 삼존불의 왼쪽 협시보살이 십자가를 목에 걸고 있는 상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1926년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한반도와 인접한 중국 만주지방의 안산(鞍山) 부근에서 요대(遼代) 성종 때(11세기 초)의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로 만든 7점의 십자가가 출토되고, 동방박사의 아기 예수 경배도를 방불케 하는 암각화도 발견된 바가 있다고 합니다. 중세시대에 유럽에서는 아시아에 프레즈비터 또는 프레스터 존이라 불리는 기독교 주교가 살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로마 교황은 그를 찾기 위해 사절단을 파견했고, 수년 후에는 프랑스의 루이 9세도 사절단을 파견했으나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독교의 분파라고도 할 수 있는 ‘네스토리우스파’를 발견했는데, 이 사실은 프레스터 존이 동양 어느 곳에 실재한다는 신념을 굳혀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5세기에 이르러 페드로 코빌람이라는 포르투칼의 탐험가가 홍해에서 그리 멀지 않는 아비시네스(아비시니아, 에디오피아를 말함)에 크리스트교를 믿는 왕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이 국왕이야말로 진정한 프레스터 존임에 틀림없다고 단정하고 그곳을 찾아가 네구스(왕의 칭호)라고 부르는 왕의 궁정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토마스 불린치, The age of fable). 한편 근대에 이르러 처음으로 티베트에 부임한 기독교 선교사들은 아시아의 오지에 로마 가톨릭교회와 유사한 주교의 궁정과 그 밖의 여러 사원들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여기에는 승려와 여승의 수도원이 있었으며, 화려한 종교적 행렬과 의식이 있었으므로, 여러 선교사들은 라마교를 타락한 기독교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기독교로부터 종교적인 제례나 양식들을 수입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복음이 인도를 건너 티베트에, 그리고 중국으로 전파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서유럽에서 이단으로 정죄 받은 네스토리우스교는 동진하여 중국에 도착해서 활발한 포교 활동을 벌였습니다. 당시 당나라는 세계 제일의 제국으로 국제적 문화를 자랑하고 있었으며 네스토리우스교는 이러한 기류에 편승하여 “경교”로 토착화된 후 상당한 세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동시대 신라에서 발굴된 돌십자가는 바로 이러한 복음 전파의 결과물이 아니었을까요? 이름도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주신 거룩한 지상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2000년 전 유대 땅에서 사방으로 땅 끝을 찾아 떠났을 것입니다(행 8:1). 그 중에는 미지의 동방세계를 향해 떠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복음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전했는지 우리는 아주 일부 밖에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한 가운데 그들이 전한 복음은 마침내는 대륙의 끝인 우리나라에까지 그 흔적을 남기고야 말았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어둠을 뚫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온 누리에 빛의 자국을 남깁니다. 오래 전 경주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그 빛을 묵묵하게 받아내었던 이들을 생각하며, 어수선한 시대에 다시 한 번 복음의 그 밝은 빛을 사모하며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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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02
  • [교회학교를 살린다] “최고의 교육과정, 성경을 알자2”
    지금 한국교회와 교회학교는 위기에 놓여있다. 먼저는 외부적으로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한 파도로 인해 교회에서 모이는 것 자체가 위협을 받고 있다. 정말 큰 위기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교회의 위기상황은 외부적인 요인보다 내부적인 요인으로 인해서 더 심각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대개는 신앙공동체가 순수한 신앙을 잃어버리고 부수적이고 지엽적인 것에 주목할 때 위기가 찾아왔다. 그렇다면 순수한 신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인 복음에 기초한 신앙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따르며, 세상적 가치인 물질과 명예, 쾌락을 따르는 것을 단호하게 거절하는 신앙이다. 그러나 중세시대에는 기독교가 전 세계를 지배하는 지배자의 종교가 되면서 교회 안에 세속적 가치가 침투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성경적 가치에 기초한 순수한 신앙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교회의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거대한 성당을 짓기 위해 성직을 매매하고 면죄부를 판매했고, 그러기 위해서 성경에도 없는 연옥과 같은 교리들로 성도들을 옭아매었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중세시대 부패한 로마 카톨릭 교회를 향하여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사제이자 신학대학 교수였던 루터는 순수한 신앙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삶 이전에 성경에 기초한, 성경에 헌신한 삶이라는 것을 성경을 연구하면서 강하게 깨달았다. 오늘날 교회와 교회학교의 위기 속에서 우리 신앙인들이 지향해야 할 신앙의 기초, 순수한 신앙을 회복하는 길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있다. 신앙인으로서 누누이 들어왔던 성경은 위인전도 아니고 윤리책도 아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 삶의 유일한 기준이다. 오늘날 교회안팎으로 많은 대안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 때에, 여전히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가장 핵심적인 대안이다. 기독교교육의 최고의 교육과정인 성경을 바로 아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회복과 부흥의 열쇠이다. 다음세대 신앙교육을 위한 제일 좋은 대안 역시 부모를 비롯한 성인교사가 성경을 꾸준히 배우고, 다음세대가 성경을 배우는 자리에 있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초대하고 함께 배우는 것이다. 코로나19사태 이후로 성민교회는 현재 성도들이 가장 열심히 신앙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어린아이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교회 전체가 성경을 배우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다. 11월 초부터 시작된 종교개혁특강 때문이다. 종교개혁은 외부로는 흑사병, 내부로는 교회의 타락이라는 위기 속에서 500여 년 전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돌아가자고 소리 높였던 성경학자 루터의 목소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일반 평신도들을 일깨웠고 전유럽 교회가 개혁에 동참하게 되었으며, 오늘날 우리 개신교가 태동하는데 도화선이 되었다. 종교개혁의 역사를 배우면서 많은 성도들이 신앙과 성경에 대해 질문하고 사색하는 계기가 되었노라고 고백하고 있다. 동시에 이 강의를 오프라인 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 참여하면서 온 가족이 함께 듣고 과제를 제출하면서 가정에서도 신앙교육의 장을 열어가고 있다. 부모님들의 열의로 인해서 다음세대들까지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는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섯 살 아이로부터 청년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다음세대들이 부모님과 함께 참여하며 서로 신앙과 성경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며 대화와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접하면 참으로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이 종교개혁특강을 성민교회 뿐만 아니라 외부의 성도들도 2천명 가량이 온라인을 통해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름도 모르는 익명의 성도들이 그렇게나 많이 성경과 순수한 신앙에 대해 관심을 갖고 배움의 열망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건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다. 연말이 다가온다. 어떤 이에게 이 한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절망의 빈칸처럼 느껴질 것이다. 올 한해가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순식간에 사라져가도록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위기의 순간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음성, 성경으로 돌아가 우리의 살 길을 찾을 것인가? 우리는 지금 가장 중요한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그 옛날 종교개혁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다시 성경으로 돌아갈 것을 결단해야 할 것이다. 위기의 때에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는 신앙의 개혁이 우리와 우리의 다음세대에게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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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학교를 살린다
    2020-12-02
  • [의학칼럼] 라식-라섹-스마일라식 회복기간 얼마나 다를까?
    최근 검사부터 수술까지 하루 만에 끝날 수 있는 원데이 시력교정술이 바쁜 직장인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라식, 라섹, 스마일라식으로 대표되는 레이저 시력교정술의 경우 수술 후 일정 회복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수술 전 환자 본인이 개인의 생활 패턴이나 수술 후 회복기간 등을 고려하여 수술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 라식 각막절편이라고 불리는 플랩을 만든 후 각막 실질에 레이저를 조사하여 각막을 절삭함으로써 굴절이상을 교정하는 라식은 수술 후 벗겨낸 각막절편을 다시 덮어준다. 이때 각막 자체의 자연적인 유착력에 의해 회복되기 때문에 통증이 적고 수술 후 정상 시력까지 회복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개인차가 있지만 1~3일 내 목표 시력의 70~80%까지 회복이 가능하다. 그러나 각막절편을 만드는 과정에서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으며 중심 이탈, 각막 혼탁 등이 발생할 경우에 시력 회복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 라섹 라섹은 각막상피를 제거한 후 노출된 실질부에 레이저를 조사하고 치료용 콘택트렌즈를 덮어 각막표면을 재생시킨다. 수술 후 각막상피가 다시 재생되기까지 1~2주 정도의 회복기간이 필요하며 이 과정에서 심한 통증이 발생하기도 한다. 또한 수술 후 2~3일간 눈물 흘림, 이물감, 눈부심 등이 있을 수 있고, 각막상피가 회복될 때까지 3~5일 정도 치료용 콘택트렌즈를 착용해야 한다. 하지만 각막절편을 만들지 않아 물리적 충격에 비교적 강하며 최종 시력은 라식과 차이가 없다. 스마일라식 기존의 라식, 라섹과 다르게 스마일라식은 통증이 거의 없고 회복이 빨라 별도의 회복 기간 없이 수술 후 하루 만에 일상생활로 복귀가 가능하다. 이는 스마일라식이 각막 내부를 통과하는 레이저를 사용하여 각막 실질을 분리하기 때문인데 이렇게 분리한 각막 실질은 2mm의 최소절개만을 통해 제거된다. 이처럼 각막 손상이 적기 때문에 부작용이나 건조증 발생률이 적고 초고도근시나 각막이 얇은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의료진의 기술력과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병원과 의료진을 선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술력의 발전으로 나에게 꼭 맞는 시력교정술을 선택할 수 있게 된 만큼 수술 전 올바른 시력교정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또한 컴퓨터나 스마트 폰의 잦은 사용으로 눈 건강을 해치는 생활 습관을 자제하고 평소 눈 관리를 위해 정기적으로 안과를 찾아 시력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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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학 칼럼
    2020-12-02
  • [노상규 목사] 잘 주고, 잘 받자!
    연말이 되면 교회에서 하는 일 중의 하나가 선교후원, 미자립 개척,농어촌교회, 기관 후원을 재설정하는 것이다. 도시 중대형 교회는 매년 연말이 되면 많은 후원요청서가 답지한다. 미자립 농촌교회인 우리 교회에까지 선교후원요청서가 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후원받는 농촌미자립교회의 목회자들은 후원하는 교회의 담임목사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라고 쓰고, 잘 보이기 위해?라 읽는다.) 선물을 준비하느라 바쁜 계절이다. 코로나19(COVID-19)로 많은 교회들이 정상적인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그 결과 헌금이 줄어 재정적 압박을 받고 있다고 한다. 올해에는 후원하는 교회들이 후원 결정을 하기가 더욱 어려운 해가 될 것 같다. 주는 교회나 받는 선교사, 교회, 기관이 함께 어려운 상황인 이런 때에 어떻게 잘 주고 잘 받을 것인가?를 생각해 봄이 좋을 듯하다. 어떻게 줄까? 첫째, 줄 대상을 잘 살피고 선정하자. 눈물의 편지를 보고 감동을 받아 결정하거나, 인간관계에 얽혀 대상을 정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 연말이 되면 눈물의 편지를 잘 쓰는 사모를 동원하여 전국의 교회에 후원 요청 편지를 뿌리고, 그래서 도시목회자 못지않게 사례를 받는다고 자랑하는 철이 없는 전도사를 본 일도 있다. 둘째, 한 번 정하면, 지속적으로 주자. 처음 선정을 잘하고, 정하였으면 어렵더라도 끝까지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득이한 사정이 생겨 계속하여 후원하기가 어려울 때는 정중하게 설명을 하는 것이 예의이다. 후원을 시작할 때 몇 년의 기간을 정하고, 기간이 끝날 때 점검을 하고 계속 후원을 하거나, 후원을 중단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셋째, 받는 자의 필요를 헤아리며 주자. 받는 자의 필요를 헤아리지 않고, 주는 것으로 만족해 하는 경우가 있다. 선교지에 맞지 않는 한국식 예배당(?)을 지어주고, 사진 찍고, 홍보했는데 몇 년 지나서 동네 창고로 전락한 경우들처럼... 몇 명의 선교사를 후원하고, 몇 개의 교회와 기관을 후원한다고 하며... 충분한 소통을 통해 제한된 자원으로 그들의 필요를 채움으로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어떻게 받을까? 첫째, 감사함으로 받자. 처음에는 감사함으로 받다가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지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나중에는 더 많은 주는 데도 있는데...라고 하며 무시하기도, 불평하기도 한다. 옳지 않다. 적절한 감사를 표할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둘째, 주는 자에게 유익이 되는 것을 찾아 힘쓰자. 받는데 만 몰두 해서는 안된다. 주려고 하면 줄 수 있는 것이 보인다. 주는 자의 형편을 살피며 기도로 시작할 수 있다. 셋째, 주는 자가 되도록 힘쓰며 받자.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가장 빠른시간 안에 받는 자에서 주는 자가 되도록 힘쓰자. 구조적으로 지속적인 후원이 필요한 곳이 있다. 교단 차원의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곳이 있다. 필자는 1996년 대전에서 선교지에서 교회를 시작하듯이 한다며 아내 혼자 앉혀 놓고 “주는교회 Giving church”를 개척하여 12년 6개월을 담임하였었다. 그때 주는 것에 대해 나름 많은 연구와 경험을 하였었다. 개척하는 달부터 선교후원을 시작했었다. 받으면서도 줄 수 있는 일이 있다. 주는 것은 어려운 사역이다. 주고 나서 주는 자와 받는 자가 망하는 경우가 있다. 주고 나서 주는 자는 흥하고, 받는 자는 망하는 경우도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주고 나서 주는 자와 받는 자가 함께 흥하는 경우도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모두는 마지막 경우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리하여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되다.”하신 주님의 말씀을 체험하는 삶을 사시기를 기원한다. 조선 선교를 위해 거액의 후원금이 든 봉투를 건네주며 “주는 내 기쁨은 받는 당신의 기쁨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크다.”라고 했던 세브란스의 말이 깊이 울리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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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02
  • [부산기독교이야기] 부산 무료 소아과 병원
    2012년 6월 5일자 부산일보에 이런 기사가 있었다. “1951년 6월 11일 부산의 소아병원 해피 마운틴(Happy Mountain). 병원 입구로 가는 가파른 계단을 한 어린이가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목발에 의지한 아이의 오른 쪽 발은 자려나가고 없다. 병원 입구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다른 모든 위대한 나라처럼, 한국의 미래는 오늘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교육과 복지에 달려 있다.’ 해피 마운틴은 소아전문병원이자 고아원이었다. 미군은 해피 마운틴을 한국최초의 소아과 병원으로 기록했다. 해피 마운틴은 그 동안 부산향토사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설로, 병원의 위치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기사와 함께 해피 마운틴 관련 두 장의 사진이 소개되어 있었다. 미군이 주둔했던 하야리아 기지를 시민공원으로 조성하고 있는 부산시 시민공원추진단이 2012년 1월 미국문서관리청(NARA)이 보관해 오던 기록 사진 400장을 입수하여 공개했는데, 여기에 포함되어 있었던 사진이었다. 이 기사와 사진이 흥미로웠으나 다른 분주한 일로 그냥 지나치게 되었는데 6.25 전쟁기 부산에서의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면서 다시 이 기사를 읽게 되었고, 이 무료병원의 이력을 추적하게 되었다. ‘부산지역 의료 130년사’를 쓴 정규환 신경정신과 의사는 부산지방 의료 혹은 의학사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는데, 나는 연산동에 위치했던 그의 병원에서 만난 일이 있다. 그에 의하면 ‘부산무료소아과 의원’(Pusan Free Pediatric Medical Clinic)은 1950년 가을 부산시 서구 아미동의 제2병참기지 사령부 소속 ‘행복산 육아원’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제2병참기지 사령부 소속인 메컨 대위가 전재 고아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행복산 육아원 일부를 의무실로 만들어 운영한 것이 그 시작이라고 한다. 행복산을 미군은 ‘해피 마운틴’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이 작은 시작이 1951년 3월에는 재 부산 메소닉 클럽의 원조로 메소닉 클럽과 합동으로 운영하기로 하고 소아과병원으로 확장되었고, 이때부터 ‘부산무료소아과병원’으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병원 입구에는 국한문 병원이름(Pusan Free Pediatric Medical Clinic, 부산 무료소아과병원)을 내 걸었고, 진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라고 밝히고 있다. 병원 입구 목재 담벼락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The Future of Korea, like any other Great Nation, is dependent on the Education and Welfare of its children Today. 1952년 1월에는 다시 ‘부산아동 자선 병원’으로 개칭되었고, 부산시, 경상남도 사회사연엽합회, 메소닉 클럽, 그리고 일반 유지들이 연합하여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부산시 소유의 완월동 원사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1953년 12월에는 사단법인을 구성했는데 중심 인물이 장기려 박사였다. 1955년 8월에는 메소닉클럽 주관 하에 기독교세계봉사회 원조로 AFAK의 자제로 부산대학교병원 구내에 100병상 규모의 원사를 건립하였다. 그러다가 1971년 1월 29일 서구 암남동 18번지, 곧 고려신학대학 맞은편의 기독교아동복리회(CCF) 회복병원과 병합하여 ‘부산아동병원’으로 개칭되었다. 그런데, 해피 마운틴 곧 행복산 육아원에서 소아과 병원을 시작했을 대의 첫 위치가 어디일까? 아미동이라는 점만 알려져 있기에 아미동의 아름다운교회 김용로 목사를 통해 그 지역 유지들의 자문을 받아보니 그곳은 다름 아닌 지금 아미동의 ‘아미농악단’ 건물 있는 아미로 24번길 이라고 한다. 본래의 흔적은 사라졌으나 아픔을 치료했던 아름다운 손길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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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02
  • 총회 재판국이 시벌 받아야 한다(?)
    총회 재판국이 유죄 판결을 내렸고, 총회가 재판국 보고도 받았지만, 부천참빛교회 담임목사는 정책당회 소집과 지난 주(22일) 설교도 강행한 상태다. 담임목사를 지지하는 참사모라는 단체는 “(재판이 잘못되었다는 총회 임원회의 판단에 따라)치리권자인 총회장이 30일 내에 집행을 하지 않아 재판효력이 상실된 상태”라며 “10월 10일부터 담임목사 설교권과 당회장 권한이 회복된 상태”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노회는 교회에 (담임목사)사례비를 지급하라는 공문까지 보냈고, 총회화해중재위원회는 박원택 목사를 분리개척 시키려고만 하고 있다. 상황만 보면 박원택 목사가 총회재판국을 이긴 듯. 실제 총회장은 부천참빛교회 모 집사와의 통화에서 “총회 재판국이 시벌받아야 한다”는 발언까지 하면서 박원택 목사를 분리개척 시킬 수 있도록 당회가 소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부천참빛교회 모 관계자는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총회가 (총회재판국 판결을)집행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교회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총회와 노회”라고 말했다. 다른 모 관계자는 “현 상황만 지켜보면 고신총회가 사회법에 간 사람 편을 들고 있다. 앞으로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사회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좋은 예가 될 듯”이라며 비꼬았다. 총회 내에서도 말들이 무성하다. 총회장이 총회 권위(총회재판국)를 누구보다 지켜야 하는데, 지금은 특정인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정치적 해결에 앞장선 느낌이라는 주장이다. 총회 모 관계자는 “총회재판국이 정직 2년, 담임목사 해제라는 판결을 내렸는데, (화해조정위가)분리개척을 시도하고 있다. 이것은 벌이 아니라 면죄부를 주는 것과 같다”고 주장하면서 “대법원이 판결을 내렸는데, 대통령이 뒤집을 수 있나? 사회에서도 못하는 짓을 지금 고신총회가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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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27
  • 고신천하네...
    내년 부산지역 연합기관의 수장이 고신천하가 될 전망이다. 최근 부산기독교총연합회 법인 이사회는 금년 말 총회(12월 28일 예정)에서 새 대표회장에 포도원교회 김문훈 목사를 내정했다. 그동안 대표회장직을 고사해왔던 김문훈 목사도 마음을 바꿔 대표회장직을 수락한 상황이다. 부산성시화운동본부도 총회(12월 10일 예정)에서 새 본부장에 수영교회 유연수 목사를 선출할 예정이다. 유연수 목사는 합리적이고 원만한 성품의 소유자로 성시화운동본부를 잘 이끌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부산복음화운동본부도 총본부장 윤종남 목사가 12월 13일 은퇴식을 거행한다. 아직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지만, 고신측 금사교회 정명운 목사가 유력하다는 소식이다. 현재 부교총의 경우 고신 개금교회 김경헌 목사가 대표회장으로 수고하고 있다. 부교총 총회 일정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총회가 늦어지거나, 김 목사가 연임할 경우 내년 부산지역 대표적인 연합기관의 수장은 모두 고신측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일부에서는 분열된 부산의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드는 적기가 될 수 있다며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김문훈 목사와 김경헌 목사는 같은 노회이고, 친분이 있기 때문에 부기총과 부교총이 하나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부산교계가 분열을 끝내고 화합을 만들 수 있을지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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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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