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9-23(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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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중재법 개정안 지금이라도 폐기하라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제약하는 위헌적 법률이 될 것이라고 각계각층이 우려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언론학회, 국제언론인협회, 세계신문협회, 시민단체, 외신기자들, 국민의 힘을 비롯한 야당과 심지어 여당 성향의 정의당도 반대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국회 과반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정부여당이 칼을 쥐고 있다. 이 법은 잘못된 보도로 인한 피해액의 최대 5배까지 언론사에 징벌적 손해 배상을 물릴 수 있고, 소송에서 피해입증을 피해자가 아닌 언론사가 부담하도록 하면서, 해당 언론사 매출의 1만분의 1 수준으로 배상 기준 금액의 하한을 설정하도록 하는 등 ‘과잉 입법’의 소지가 다분하다. 문제는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람 대부분은 일반 시민이 아닌 공권력이나 경제 권력을 쥔 사람들이다. 따라서 개정안이 통과되면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이들에 대한 취재 활동이 제한될 수밖에 없어, 언론의 비판 기능을 옥죄겠다는 비겁한 발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개정안의 핵심내용 중에는 독립 민간기구인 언론중재위원회를 정부 소속 기관의 언론위원회로 만들어 언론 보도 내용을 상시적으로 조사·심의하여 시정명령과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정부 권력을 감시 비판해야 할 책임이 있는 언론에 재갈을 물려 국민의 알 권리를 중대하게 침해하는 것이며 과도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무기로 권력이 언론을 검열하여 통제하겠다는 언론독재법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언론중재위원회를 독립된 민간기구로 두는 것은 중립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개정안처럼 언론 전반에 대한 정부의 심의기구를 창설하여 소속 위원장 및 상임위원을 대통령이 임명하게 된다면, 완전한 정부 통제하에 있는 기관이 되어 언론은 본연의 기능인 정부에 대해 감시 비판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다. 국민은 언론위원회의 통제 하에 걸러진 정보만을 접하게 되어 알 권리가 중대하게 침해되고 헌법상 보장된 언론의 자유가 파괴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헌법에 근거도 없는 기구가 국민의 헌법상 자유를 파괴하는 개정안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재적 악법이다. 그리고 언론에 대한 심의를 통해 시정명령과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제도는 위축효과와 자기검열의 결과를 낳아 언론의 자유를 짓밟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제재를 받지 않기 위해 정부를 감시 비판하는 보도를 하지 않으려는 위축효과와 자기검열을 초래하여 언론에 재갈을 물리게 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언론을 감시 통제함으로서 언론의 자유에 중대한 제약을 가하는 것이다. 특히, 사실이 아니라 추정으로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하겠다는 것은 사법권 침해이자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개정안은 비방의 목적이 있는 경우를 추정하는 규정을 두어 징벌적 손해배상의 근거로 삼고 있다. 비방이라는 개념 자체가 불명확해 자의적 해석의 여지가 있는 것은 물론, 예컨대 “언론 보도로 인한 이익이 부담하게 되는 손해배상액 보다 많을 것으로 예상한 경우”를 비방의 목적이 있다고 규정하는 것은 사실 판단 이전에 법정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다. 이는 사법부의 재판권을 침해하는 것이자 법원에 의해 재판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헌법 질서에 위배되고 언론의 자유를 중대하게 침해하는 등 현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언론통제 악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내년 대통령 선거가 있고,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도 마무리된다. 여론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 이 개정안을 무리하게 내어 놓았다는 오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법률가들은 이 개정안은 설령 국회를 통과해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더불어민주당은 발의된 모든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지금이라도 폐기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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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03
  • 다시 세상을 향한 사랑을 실천할 때
    만덕교회가 북구 보건소에 커피차 응원을 보낸 미담이 코로나19 시대 교회가 다시 세상을 향한 사랑을 보여준 사례가 되어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혹독한 비난과 질타를 받았다. 코로나의 주범이 마치 교회인냥 세상은 교회를 향해 손가락질 하기 시작했고, 교회는 예배는 물론 모임, 봉사까지 멈추며 위축된 자세로 1년 6개월이 넘는 시간을 보내왔다. 물론, 이런 상황 속에서도 각 교회나 단체별로 어려운 이웃을 향해 사랑의 손길을 내밀기도 했지만 여론의 시선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복음이 이 땅에 들어온 이후 사회발전과 수많은 봉사들이 다 아무 소용없는 일들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교회는 이웃을 향한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각 교회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이웃을 섬겼고, 만덕교회 커피차 응원을 비롯 조금씩 세상 사람들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구서동에 있는 모 교회에서는 코로나19와 무더위 속에서도 독거 노인들에게 반찬을 나눠주는 봉사를 쉬지 않고 있으며, 노숙인들을 돌보는 단체도 사정이 어렵지만 사역을 쉬지 않고 이어가고 있다. 또한, 교회는 그 어느 단체보다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키며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대부분의 활동은 줌이나 아주 소수의 인원들(방역 수칙 범위 내에서)이 만나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다. 기독교는 하나님 사랑과 더불어 이웃 사랑이 필수적인 종교이다. 위축된 기독교가 다시 세상을 향한 사랑을 실천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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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13
  •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왜 잠잠한가?
    미래는 부정적으로 봐도 안 된다. 그렇다고 긍정적으로만 봐서도 안 된다. 미래는 ‘객관적’사고로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위기이든 기회이든 다가 올 미래는 ‘반드시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만다’ 미래의 위기를 알리는 경고 신호가 발신되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계속 질주하면 위기와 습관은 그대로 받아드려지고 안주하며 퇴보의 길을 걷게 된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라는 이유로 4단계 거리두기가 발동됨으로 수도권은 19명만 모이고 비수도권은 99명 이하로 한정된 예배를 드려야 한다. 교회도 철저한 방역 수칙을 지켜 방역당국에 최대한 협조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교회라는 영역의 특수성이 고려되지 못한 부분은 아쉽다.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못할 경우 교회 그 자체의 의미가 상실하게 되고, 교회의 존재의미가 사라진다. 그래서 교회나 타 종교 역시 권력기관의 간섭이 최대한 지양되어야 한다. 세상 권력에 침묵하며 소리도 못내면서, 국가가 정해준 기준에 고분고분 따르는 순한 양이 된 느낌이다. 물론, 코로나로 인한 전세계적 팬데믹이라는 특수성 속에 있지만, 이 팬데믹이 끝이 난다고 해도 국가권력의 종교간섭은 멈추지 않을 것 같고, 이번 경우가 나쁜 사례가 될 것 같아 우려된다. 한국교회 대표적인 지도자나 교단들이 앞장서서 분명한 기준과 원칙을 세워주었으면 한다. 코로나 시대 예배와 신앙생활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정부당국이 아닌, 한국교회 대표들의 입을 통해 듣고 싶다. 비대면예배를 드리더라도, 타의가 아닌 우리 스스로가 알아서 드리는 모습이 더 은혜롭지 않은가?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먼저 앞장서서 분명한 원칙과 방향을 설정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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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13
  • 선택의 순간,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
    코로나 확산이 심상치가 않다. 서울과 수도권은 이미 거리두기 4단계로 들어섰고(최대 19명까지 허용) 부산도 지난주 3단계로 강화했으며 확산세가 꺾이지 않을 경우 4단계로 갈 것이라 말한다. 이미 지난해부터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이해 몇 차례의 변곡점을 지나와서 알고 있지만, 이런 추세로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면 교회는 또 다시 비대면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고 실제로 서울은 지금 비대면 예배 중이다. 그런데 비대면 예배라는 단어만 나오면 민감하게 반응하며 정부 방역 체계에 저항하는 무리들이 있다. 실제로 지난 7월 18일 주일에 서울은 전면 비대면 예배임에도 불구하고 전광훈 목사의 사랑제일교회는 대면예배를 고집하며 시민 및 정부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물론, 성도들이 교회에 오지 못하고 비대면으로 예배를 드리는 상황은 말할 수 없이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정부의 방역 수칙을 위반하는 근거는 찾을 수 없다. 지금은 전 세계가 비상 사태이고, 의료진 및 국민들이 하루빨리 코로나를 종식시키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희생을 감수하며 노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이웃들을 나몰라라하고 내 갈길을 가는 대면예배를 주장하는 것은 기독교가 추구하는 사랑의 실천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코로나 시대에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선택의 기로에 선 순간이 많았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 어떤 교회는 예수님의 사랑을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떤 교회는 아집과 독단에 둘러싸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 코로나로 인해 모두가 고통 받는 이 때, 교회가 바른 선택을 해서 다시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또 사랑을 받는 공동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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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23
  • 여성가족부 폐지 논란
    정치권에서 여성가족부 존폐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정치권 내에서 다양한 문제제기와 여기에 대한 반론들이 제기되고 있다. 그 문제들을 일일이 언급하고 싶지 않다. 다만 교계내에서도 과거부터 여성가족부에 대해 불편한 감정이 쌓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 여성가족부는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안)’을 수립하면서, 그 동안 ‘양성평등’으로 되어있던 것을 슬그머니 ‘성평등’으로 고치는 작업에 들어갔다. ‘양성평등’과 ‘성 평등’은 글자 한 자차이 같지만, 엄청난 사회적 문제를 야기 시킬 수 있다. 즉 여가부가 여성들의 여권 신장을 위하여, 사회 각 분야에서 남녀 간에 ‘평등’을 주장해 왔는데, 이것을 ‘성 평등’으로 바꾸면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50여 가지의 사회학적 성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되므로,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현행 우리 헌법이 가진 ‘양성’(남녀)에 대한 절대적 부정이며,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성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필연적으로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유발시키는 것은 물론,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세계 어느 나라 정부 조직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여성가족부’가 이 나라에서 헌법 위에 군림하려는 발상으로, 일시에 대한민국을 ‘성 평등 국가’와 ‘동성애 국가’로 만들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렇듯 ‘양성 평등’이 ‘성 평등’으로 바뀌게 될 때, 수 많은 사회적 혼란과 혼선이 올 것은 뻔하다. 우리 사회는 ‘남’과 ‘여’로 2개의 생물학적 성을 가지고 있는데, ‘성평등’ 상황에서는, 약 50여 개의 사회학적 성을 갖게 되므로, 우리 사회는 뒤죽박죽의 사회로 돌변하고 말 것이다. 또 모든 성관계를 인정해야 하므로, 동성애, 근친상간, 수간 등 이루 헤아리기 어려운 성 정체성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거기에다 남녀의 결합에 의한 결혼만이 인정되던 것이, 다양한 성의 결합으로, 엉망진창이 되는 것을 막기 어려워진다. 여가부가 이렇듯 동성애를 지지하고 변형된 ‘차별금지법’을 만들려는 정책을 즉각 폐기하고, 종전의 양성 평등정책을 추진하던지, 아니면 국민들의 건강과 사회적 질서와 가정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일을 즉시 멈춰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교계도 여성가족부 해체운동에 돌입할 것이며, 그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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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23
  • 청소년 신앙, 가정이 우선이다
    예장통합 총회한국교회연구원과 안산제일교회, 목회데이터연구소에서 조사한 청소년들의 신앙실태에 대한 보고서가 흥미롭다. 코로나19로 인해 신앙 생활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집단이 바로 청소년들이고, 이 어려운 시기에 신앙의 영향을 받은 대상이 바로 부모(어머니-54%, 아버지-33%)라는 점에서 신앙 생활의 기본 터전인 ‘가정’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사춘기에 들어선 청소년 사역을 하는 목회자들의 말을 들으면 “청소년들은 자기 부모들의 말은 듣지 않는다. 또래 집단이나 청소년 담당 목회자들의 말은 들어도 부모 말은 절대 안듣는다”고 말하곤 했다. 사실, 설문 조사를 보더라도 코로나19 이전에는 신앙생활을 할 때 목회자들에게 영향을 받는 비율이 높았다. 하지만 코로나19를 겪으며,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들의 영향을 받는 비율이 증가해버린 것이다. 비록 부모님들에게 반발하고픈 마음이 큰 청소년 시기라 할지라도 부모가 신앙으로 잘 이끌어주면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은 코로나를 지나면서 신앙의 본질과 기본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대두되고 있다. 자녀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부모. 이들이 바로 서면 한국 교회의 다음세대는 자연스럽게 바른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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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09
  • 여름 수련회 안전사고 예방이 필수
    7월이다. 때늦은 장마와 코로나19로 인해 예년의 7월을 만끽하기는 힘들지만, 휴가의 계절이며 교회학교 여름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달이다. 7월은 교육기관 각 부서별 여름성경학교 혹은 여름수련회 등이 일제히 개최된다. 물론 코로나로 인해 과거처럼 대면수련회가 아닌 비대면(온라인) 수련회가 증가하고, 예전처럼 단기선교, 교회 전교인 수련회 등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위축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다음세대 위기감에 사로잡힌 한국교회가 교회학교 여름 수련회 만큼은 포기할 수 없고, 수련회를 통해 다음세대 신앙 성장을 도모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대면수련회를 준비하는 교회의 경우 여름철 안전사고에 유념해야 한다. 수련회는 아무래도 교회를 떠나 산으로, 바다로 떠나는 경우가 많다보니 교통사고, 물놀이사고, 질병사고 등 해마다 사건사고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학생들을 태우고 고속도로를 주행하다 교통사고로 사상자를 내거나, 물놀이사고로 학생이 사망하는 사건이 몇 년동안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현상이다. 영혼 구원을 위해 기획한 수련회에서 생명을 잃는 참사가 일어나서는 결코 안된다. 안전사고는 예방이 필수다. 수련회 앞서 교회 소유 승합차를 점검해야 한다. 교회 차량의 경우 여러 사람이 운전하다보니 일반차량보다 빨리 고장이 나는 편이다. 그래서 학생들을 싣고 수련회를 떠나기 전 교회가 소유한 승합차, 버스 등 차량을 점검해야 한다. 가정에서도 휴가를 떠나기 전 차량점검을 하듯이 교회는 여러 기관들이 계속해 수련회를 떠나며 차량을 사용하기에 더욱 안전점검이 필요하다. 또 여행자보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대형교회의 경우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여행자보험에 가입하지만 아직도 중소형 규모의 교회들은 여행자보험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물론 사고가 나지 않으면 버리게 될 돈이라 아까울 수 있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특히 어린 생명들과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아까워하지 말고 다른 경비를 줄이더라도 여행자보험을 꼭 들길 바란다. 그래서 이번 여름은 모두가 안전하게 은혜받는 수련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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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09
  • 기독교언론은 부정적 사실을 보도하면 안된다?
    교회내 문제를 취재하는 기자에게 그 교회 담임목사가 이런 말로 항의한다. “왜 신문사가 우리 교회 일에 관심을 가집니까?”, “보도를 해서 우리교회를 우사시키려고 합니까?”(우사 : 부끄럽게 만들다, 경상도 사투리) 그리고 취재지에서 만난 다른 목사는 “신문이 좋은 것만 보도 해야지”, “그러니 교회가 욕을 먹지”라고 말한다. 마치 한국교회가 욕먹는 것이 교계언론 때문이라는 듯이. 교계언론으로써 한 가지는 인정한다. 한국교회가 욕먹고 있는 것에 책임감을 통감한다. 하지만 그 목사들이 생각하는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다. 그동안 교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점들을 지켜보면서 ‘좋은 게 좋다’는 생각에서 침묵했거나, 어떤 사안에 대해 친분있는 교회 지도자들의 부탁으로 슬그머니 넘어갔던 점 등 교계언론사라면 모두가 경험했을 것이다. 결국 이런 일들이 곪아서 터져 일반언론들이 보도하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던 일들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 결과로 교회의 신뢰도가 크게 추락했고,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언론의 사명은 사실을 신속하게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 언론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드러나야 한다. 덕스럽지 않다고 그냥 못본체 한다면 그게 진정한 사랑일까?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것을 왜 모르는가? 사실을 왜곡하는 것 만큼 사실을 숨기는 것도 교회와 교인들을 기만하는 행위라는 것을 왜 모르는가? 또 언론은 감시와 견제의 기능이 있다. 일반 언론들이 정부의 정책을 감시하고 견제하듯이, 교계언론도 교회가 바르게 갈 수 있도록 견제하고 감시하는 기능이 있어야 한다. 얼마전 모 여론조사 기관에서 조사한 결과가 발표됐다. 우리나라 종교 중 가장 믿을 수 없는 종교를 개신교라고 발표했다. 왜 이지경까지 되었을까? 자정능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교계 언론이 언론의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교계언론)는 책임감을 통감한다. 그런데 목회자들은 그 책임에서 자유로운지 묻고 싶다. 당신들 책임이 더 크지 않는냐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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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25
  • 다시 기도, 다시 말씀으로
    “코로나 때문에 새벽기도를 쉰 게 벌써 1년이 넘었습니다. 큰 교회야 방역에 신경쓴다고 하면 어느 정도는 교인들이 모이지만 저희처럼 규모가 작은 교회들은 사람들이 모이지 않습니다. 이제 코로나도 잠잠해져서 다시 회복해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어떻게 할지…” 코로나 후유증이 만만치가 않다. 1년 6개월 동안 대면, 비대면을 거듭하고 제대로 모이지 못한 결과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대형교회들은 예배 순서를 늘이며 방역 홍보도 하는 등 만발의 준비로 어려운 시기에도 예배를 이어나갔지만 오히려 개척교회를 비롯한 작은 규모의 교회들은 주위의 시선과 여건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나라도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고 코로나 기세도 한 풀 꺾인 것 같아 이제는 교회도 기지개를 켤 때가 되자 막상 어려움을 호소하는 교회들이 늘어나고 있다. 너무 오랫동안 제대로 예배를 드리지 못했기에 신앙 근육이 점차 소멸된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성도의 기본은 기도이자 말씀이다. 넘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기도와 말씀으로 회복해 여름 사역들을 활발히 해 나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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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25
  • 결국 신앙은 예배로부터
    목회데이터연구소에서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가 흥미롭다. 자녀의 신앙 교육이라면 다른 어느 나라보다 관심을 갖는 한국 교회의 부모들이라면 눈여겨 볼만한 사항들이 있다. 먼저, 주일예배를 드리는 자녀가 그렇지 않는 자녀보다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에서 모두 긍정적 지표를 보인 것은 결국 신앙의 기본이자 중심은 예배가 되어ㅑ 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해 대면예배의 횟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다. 평소에 부모 성화에 못 이겨 교회 문턱만 밟는 아이들이 많다고 할지라도 결국 예배를 드린 자녀들은 일주일의 생활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더 나음을 알 수 있듯 기독교인 부모가 자녀들에게 예배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해야 할 것이다. 또한 가정에서 신앙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도 자녀들의 신앙생활 및 관계개선에 큰 유익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기독교인 가정에서 가족 모두가 함께 믿음의 대화를 나누는 것은 큰 축복이다. 이 축복을 누리는 가정은 부모와 자녀 모두 신앙 성장을 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할 경우는 믿지 않는 가정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신앙생활이 위기라고 말하는 이 때, 예배의 회복과 가정에서의 믿음 생활을 통해 신아이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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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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