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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고난주간, 아이들과 함께 새벽을 환하게 열기!
    3월 마지막 주 첫 월요일, 봄은 왔지만 아직 공기가 찬 이른 아침 4시 10분. 평소 같으면 아이들이 한창 꿈나라에 있을 시간이지만 그 날은 엄마인 나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아이들 이름을 하나 하나 부르며 깨우고 있다. “은성아, 일어나야 해. 오늘부터 고난주간 특새 기간이야. 일어나기로 했지” 첫째가 부스스 일어나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다. 눈이 떠지지 않아 몸은 따뜻한 이불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지만,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은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아는 첫째는 꾸역꾸역 아침을 깨운다. 둘째는 어젯밤부터 요란하게 새벽을 기대하고 있었다. 워낙 교회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라 새벽기도에 가면 친구들이 많이 올 것이라 기대해 전날부터 알람을 맞춰놓고 옷도 미리 다 입고 자는 등 만반의 준비를 다했다. 물론, 일어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알람이 울리자, “엄마, 오늘 고난주간 맞지? 지금 바로 일어날게” 라며 대견스럽게 스스로 준비하며 눈을 감은 채 거실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문제는 셋째와 넷째이다. 아직 어린 두 아이는 몇 번을 흔들어 깨워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한참을 깨워도 반응이 없자 급기야는 “새벽기도 갔다 오면 젤리 사줄게. 아이스크림도.”라며 겨우겨우 달래서 차에 태웠다. 아직도 어둑어둑한 새벽 4시 40분. 아이들은 잠이 덜깬 채 몽롱한 상태로 무작정 아빠 엄마를 따라 교회로 나선다. 비록 이 아이들이 평소와 달리 일찍 일어나 새벽기도를 간다고 해서 갑자기 성령의 은혜가 부어져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도 아니고, 고난주간의 의미를 엄청 깊이 생각해 스스로 십자가를 묵상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닌데 남편과 나는 왜 힘들게 아이들을 깨워 새벽 기도회에 참석하게 할까?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아이들에게 남기고픈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이미지’고 ‘추억’이다. 물론,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이맘때를 기억할 때,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봄날에 고난주간을 맞아 엄마 아빠와 함께 간 특별새벽기도회 때 들었던 목사님의 말씀이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어요!”라고 생각해주면 가장 보람되고 좋을 것이다. 그런데 나도 신앙생활을 통해 여러 경험들을 해 보니 그런 일은 극히 드물고, 어릴 때 아이들에게 남는 것은 ‘이미지’와 ‘추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비록 아침에 눈뜨기가 버겁고, 일어나기 위해서는 수만번의 다짐과 각오가 있어야 하지만 그 힘듦을 꺾고 나가는 것이다. 어린 시절, 고난주간에 아빠와 엄마와 함께 새벽에 일어나 온 가족이 교회에 갔다는 이미지와 스토리를 남겨주기 위해서이다.(물론, 고난주간과 부활절의 의미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알려주기 위함도 있다.) 매해 고난주간에 새벽기도를 간 경험이 쌓이면 먼 훗날 아이들이 자랐을 때, 고난주간만 되면 아주 자연스럽게 이 장면이 떠오르게 될 것이다. 교회에 대한 좋은 이미지와 함께. 일주일 동안, 새벽기도를 완주하기까지 많은 장애물이 있었다. 목요일 새벽에는 우리 부부도 일어나기가 버거웠으며, 아이들은 첫날의 호기로움은 사라지고 ‘자고 싶다’며 1분이라도 더 이불 속에 있으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마지막 날, 새벽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며 남편과 나는 아이들에게 완주했다는 기쁨과 성취를 주기 위해 햄버거를 아침으로 사주었다. 아이들은 좀처럼 아침에는 먹을 수 없는 햄버거를 손에 쥐며 일주일의 힘듦과 괴로움은 다 잊은 채 “엄마, 너무 좋아. 언제 또 새벽기도 가는 거야? 나 또 갈래”라며 내년을 기약한다. 그래, 어렵게 생각할 게 있을까? 아이들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주며 하나님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 지금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뿐임을 또 한번 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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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1-04-09
  • [신앙교육 나침반] 믿음의 부모를 일으켜라3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에베소서 2장 8절 말씀은 믿음이 인간의 조건과 노력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시는 선물임을 명시하였습니다. 자녀세대의 미성숙한 발달이 신앙의 미성숙함과 비례한다는 논리는 이제 우리의 머릿속에서 지워야 합니다. 구원은 신앙의 연령과 지적수준과 능력을 초월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운 선물입니다. 자녀세대는 교회와 가정이 지금 당장 복음의 생명으로 시급하게 살려내어야 할 실제적 성도입니다. 그렇다면 인지수준과 언어능력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어린 자녀들에게 교회와 가정은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교회와 가정은 학교식 교육체제의 영향으로 인하여 지식전달 위주의 교육과정과 방법으로 자녀세대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2019년에 연구자로 참여한 신앙교육 실태조사에서(예장 고신교단 21개 교회 대상) 교역자, 부모, 교사 모두 동일하게 교육과정의 개선점에 대해 ‘교육과정의 수준적합성’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하였습니다. 교육과정의 방법을 분석한 결과 80%이상이 단답식 문답과 조형활동의 인지적 활동중심으로 이루어져있었습니다. 과연 이러한 언어적, 논리적 정보전달 방법을 통해서 어린아이들이 제대로 배울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자신이 속한 환경으로부터의 경험을 통해서만 세상을 배울 수 있습니다. 세상을 향한 아이의 이해는 오로지 직접 경험하는 지각과 대상에 한정됩니다. 이 아이들은 감각처리기계인 오감각을 통해서 세상을 보고, 맛보고, 듣고, 접촉하고, 냄새 맡으며 주변의 정보를 흡수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교회와 가정현장은 이런 아이들에게 책상에 앉아서 공과책을 펼쳐놓고 빈칸을 채우고 암기하고 설명을 듣게 하며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엄숙하고 딱딱한 교실환경에서는 결코 하나님 말씀이 제대로 마음밭에 뿌리내리기 힘듭니다. 신앙교육현장은 자녀세대들이 자신만의 오감을 사용하여 하나님 말씀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는 생기 넘치는 놀이터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비로소 아이들은 하나님 말씀 속으로 신나는 여행을 떠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신나고 즐겁게 흡수하면서 “우와!” 탄성하며 빠져들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감각과 놀이를 통로로 그 어느 때보다 즐겁게 몰입하면서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교회와 사랑, 희생에 관한 설명이나 가르침을 언어와 논리로 이해시키려하기보다 그것을 온 몸으로 경험할 수 있는 감각적 놀이 경험이 일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녀세대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맡고, 맛보는 오감을 활용한 다양한 놀이 경험을 제공해야 합니다. “놀다보니 하나님!” “놀다보니 예수님!” “놀다보니 성령님!”이 될 수 있는 신앙교육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합니다. 현재 소수의 교회가 방역지침을 준수하면서 주일학교 문을 조심스레 개방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자녀세대들은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코로나로 인해 매주일 가정에서 온라인예배를 시청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미디어 시청에만 의존하는 신앙교육환경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온라인 예배를 마친 후에는 반드시 가족이 마주하며 온 몸으로 하나님 말씀을 경험하는 시간이 뒤따라야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마주하며 복음을 경험하는 시간은 평생 잊지 못할 생명의 자극이 되어서 자녀들의 영혼을 일으켜 세울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다음 시간에 좀 더 구체적인 방법을 중심으로 나누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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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09
  • [다음세대 칼럼] 청소년 사역은 나이가 아니라 마음이다
    미션스쿨에서 교목(목사)들에게 1학년들의 종교과목 첫수업은 아주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 시간입니다. 첫인상이 3년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수업에 대한 첫 느낌이 안 좋으면 ‘종교’라는 수업 시간은 버리는 시간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지난 14년동안 3월 새로 입학한 신입생들에게 첫 수업은 사활을 걸다시피 승부를 거는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갔습니다. 역시 교실에 들어가면 ‘종교’라는 교과목 앞에서 아이들의 표정이 그렇게 좋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교회를 다니는 아이들 조차도 ‘학교에서 무슨 종교 수업이야?’하는 마음으로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런 아이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는 것은 정말 벽에 대고 고함을 치는 그런 느낌입니다. 그래서 1학년들의 종교 시간 첫 수업은 목사나 학생이나 서로가 긴장을 하는 시간입니다. 종교가 기독교가 아닌데 종교 수업이라니... 올해도 162명의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한 주간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수업은 들을만 했어?” “목사님, 종교 수업을 그렇게 하실 줄 몰랐어요. 지금까지 수업 중 제일 재미있었어요.” 아이들은 ‘재미있고, 감동있는 수업’이었다고 말하지만 이 첫 수업을 위해 현장에 있는 교목들은 3월 첫 수업에 모든 것을 걸어 놓고 교실에 들어갑니다. 다른 교과목 수업은 다음 시간에 만회할 기회가 있고, 평가를 위해서는 반드시 들어야 하기에 어떻게든 수업에 참여하지만, 종교라는 교과는 학교에서 없어도 그만인 교과이기에 3년의 첫 시간을 그렇게 준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올해도 수업 전 긴장했던 아이들의 얼굴이 호감의 얼굴로 바뀌는 것을 보면서 또 책임져야 할 녀석들이 늘어남을 느낍니다. 지금 학교 현장은 교육과정상 종교와 철학, 종교와 심리학, 종교와 교육학 중 택1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몸부림은 아이들이 교과목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나타납니다. 99%가 종교 수업을 선택합니다. 간혹 철학이나 심리학을 선택한 제자들이 “목사님, 종교 수업 거부가 아니라 정말 철학과 심리학을 배우고 싶어서 선택한거에요. 목사님이 수업해주시면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요”하고 미안해하며 갑니다. 올해로 열네번째 3월을 보냈습니다. 30대 후반에 부임해서 이제 50중반을 보고 가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청소년 사역에 유통기한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던 나로서는 여전히 이 아이들과 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할 뿐입니다. 그래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청소년 사역은 나이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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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09
  • [다음세대 이야기] 다음세대를 육성하기 위한 선제조건
    (Local community church; 지역공동체교회) 다음세대를 육성하기 위하여 먼저 선제되어야 할 조건은 단연코 Local community church; 지역공동체교회이다. 이는 교회가 미래에 지향할 방향이기도 하다. 교회는 지역에서 이제 생존의 문제를 넘어서 지역을 복음적 가치로 선도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역동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이 교회의 가치를 따를 수 있도록 이에 대한 납득할 만한 영향력을 보여 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Local community church; 지역공동체교회의 가치이고 방향이다. 이를 위해 교회는 지역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함께 공유하여 지역이 복음적 가치로 나아갈 수 있는 다양한 가치관을 제시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로 지역의 필요성을 연구하고 데이터화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어떤 가치로 무엇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 어떤 것일 선행적으로 갖추어지고 필요한지를 정확히 시장조사하여 이를 수치로 데이터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로 지역의 필요성 조사가 계획대로 끝나고 데이터화 하면 이를 바탕으로 교회가 복음적 가치를 수밀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준비한다. 이것이 바로 프로그램이다. 즉 지역의 필요성을 하드웨어라고 한다면, 이를 실현하기 위한 소프트웨어를 준비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교회의 복음적 가치를 담되, 오히려 교회의 중요성만 강조한 나머지 복음사역에 역행하는 지역의 반대를 가져올 수 있기에 정말 신중하고도 함께 융화 될 수 있는 방법을 고려해야한다. 셋째로 협의 혹은 공유(swearing)이 필요하다. 지역의 대표부터 지역민 개개인에 이르기까지 함께 논의하고 협의하여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지역은 교회에 대한 색안경을 제거하고 교회는 정말 지역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교회가 지역에 속에서 어떠한 사명을 감당해야 할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거침없는 실현이다. 모든 계획이 완벽히 준비되었다 할지라도 교회가 이에 대하여 거리낌을 가지거나 율법주의적으로 해석을 하면 되는 일도 되지 않는다. 따라서 소신을 가지고 지역공동체 교회로서의 사명을 완수하여 정말 다음세대를 위한 초석을 다지기 위해서는 거침없는 실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충분한 교회내의 홍보, 교육, 설득이 필요하고 이에 교회는 적극적자세로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이상의 내용은 다음세대를 위한 선제적 조건인 Local community church; 지역공동체교회에 대한 이론적 도입부분이다. 다음호에서는 Local community church; 지역공동체교회에 관한 정의와 적용점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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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09
  •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에게 기독교 세계관을 심겨줄 수 있을까?
    “왜요? 그거 맞아요? 네이버 지식에서 그렇게 말해요?” 순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중학생이 되면 초등학교 때와는 완전히 다른 아이로 변한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막상 내 아이가 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엄마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뜻의 말을 하자 머릿속이 멍해졌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부모의 말에 큰 거부 없이 “알았어요” 혹은 “하기 싫은데.... 그래도 알겠어요”라고 말하던 아이가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왜요?”라는 말을 하루에도 수십번씩 한다. 그리고 뒤따라 오는 말은 “친구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던데요” “내가 읽은 책에서는 이렇게 쓰여져 있던데…” “엄마, 말이 맞아요?” 등의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 혹은 책의 표현을 대신해 이야기한다. 일주일 정도 중학생이 되어 갑작스럽게 달라진 아이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자아가 생기고 사고가 넓어지면서 겪는 자연스런 성장과정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내 시각에서는 아이가 좀 버릇 없어진 것 같고, 따박따박 엄마 말에 반론하는 것 같아 당황스럽지만 아이는 지금 밀착되어있던 엄마의 생각에서 나름대로의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단계인 것이다. 아이가 내 품에 있을 때는 언제든 나의 가치관을 아이에게 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아이의 생각이 자라고 독립할 시간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니 당장 신앙 부분에서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 우리 아이는 아직 신앙이 어린 아이 수준인데 혹시 믿지 않은 친구들을 만나서 세상적인 것에 마음을 다 뺏기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물론, 부모로서 아이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은 있기에 엄마 품을 떠나 약간의 방황을 하더라도 큰 걱정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의 세계관, 가치관, 사고 부분에서는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중학생이 된 아이에게 어떻게 하면 기독교 세계관을 자연스럽게 알려줄 수 있을까?’가 나의 큰 숙제가 되었다. 미디어를 비롯한 세상에서는 “혼자살아라. 너가 편한대로 행동하라”고 끊임없이 이야기 할 때, “우리는 공동체를 이뤄야 한다. 이웃을 생각하며 함께 살아야 한다”는 정서를 심어주는 것, “어차피 세상은 금수저 흙수저로 나뉘어졌어. 이 세상에서는 물질이 최고야”라고 말할 때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 있고, 나에게 맞는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들이 있다”는 사상을 새겨주는 작업을 시작할 때가 된 것 같다. 이에 대한 첫 작업으로 아이에게 책을 한 권 선물했다. 아주 쉬운,(이건 내 생각일까? 아이는 이 책을 지겨워할까?) 청소년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기독교 사상에 관한 책을 조심스럽게 건네며, 엄마와 함께 읽고 2주 후에 이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했다. 물론 아이는 그리 반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수긍하며 책을 펼치는 모습에 한결 안심이 되었다. 가만히 두면 세상의 기류에 휩쓸려 가기 쉬운 청소년 시기에, 아이와 함께 읽고 생각하고 나누면서 천천히 기독교인의 길을 찾고, 더불어 함께 성장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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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1-03-29
  • [신앙교육 나침반] 믿음의 부모를 일으켜라2
    예수님 당대의 사람들은 어린 아이들(παιδίον)들을 복음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이는 제자들의 모습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제자들은 어린자녀를 예수님께 데리고 온 부모들을 꾸짖었다. 어린아이들은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지 못한 존재로 여겨졌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에 대해 성경적 인식론으로 반박하셨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의 신앙에 대해 회의적인 제자들을 꾸짖으시며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마가복음 10:14)”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어린아이가 비록 인지와 언어능력이 미숙할지라도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자녀들은 정말 복음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형상자(image of God)로 창조되었다. 창세기 1장 27절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기록하였다.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하여서 하나님을 드러내도록 지음 받은 존재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으로 채워야만 형통하도록 지음 받았다. 그런 우리에게 죄가 들어왔다. 시편 51편 5절은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기록한다. 우리는 죄와 함께 잉태되었다. 하나님이 함께해야만 형통할 수 있는 존재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이 함께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아직 뱃속에 있는 태아도, 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영유아도, 고차원적인 사고능력이 완성되지 못한 초등학생도, 방황하는 사춘기 자녀들도 모두 죄로 인한 고통과 죽음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므로 자녀들의 연령은 중요치 않다. 이들에게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필요하다. 우리 자녀들에게 구원은 어떻게 주어지는가? 언어적 유창성과 추상적 사고능력이 발달하면 구원이 주어질까? 에베소서 2장 8절 말씀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라고 기록하였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푸시는 구원은 인간의 발달 조건과 그 어떤 노력도 자격요건이 되지 못한다. 믿음을 갖는 것은 인지능력과 언어적 유창성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연령과 지적 수준과 능력을 초월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운 선물이다. 그러므로 우리 자녀들의 미성숙한 발달이 복음의 대상에 적합하지 않다는 논리는 분명한 오류이다. 현재 많은 가정과 교회가 어린 자녀들을 향한 세상적인 인식론에 사로잡혀서 그들의 영혼을 방치하고 있다. 자녀들을 지금 당장 예수님께 데리고 가야 할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펜데믹 시대에 태어나고 자라는 우리의 자녀들은 이러한 가정과 교회 울타리 속에서 점차 하나님을 잊어버린 채 세상의 문화에 침식당하고 있다. 믿음의 부모들이여, 죄에 짓눌려 고통당하는 우리 자녀들의 손을 잡고 예수님 앞으로 지금 당장 나아가야 한다. 펜데믹 시대에 교회학교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는 상황이 장기화될지라도, 우리는 그 어떤 환경에 굴하지 않고 자녀들을 복음의 생명 앞으로 인도해야 한다. 자녀의 영혼을 살리려는 절박함과 긴급함으로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에 뿌리를 내리고, 그러한 일상이 일생이 되도록 달려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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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29
  • [다음세대 칼럼]오천명을 먹이는 사람
    2008년 브니엘고등학교에 교목으로서 존재감을 갖도록 길을 열어준 것은 다름 아닌 초코파이와 건빵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매점으로 달려가는 아이들을 보았다. 학교에만 오는 배가 고파지는 특이한 현상을 보고, 군인들과 비슷한 특징을 가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초코파이를 샀다. 처음 구입한 것이 30만원어치였다. 그런데 그 30만원어치의 초코파이는 쉬는 시간 4번을 넘기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하지만 이 초코파이는 아이들 마음의 문을 열기에 최적화된 도구였다. 하루에 교목실을 찾는 아이들의 숫자가 매일 200명은 족히 넘었다. 그러면서 아이들과 거리는 점점 좁혀져 갔다. 그런데 아이들과의 마음의 거리는 좁혀졌지만 경제적인 데미지는 제법 컸다. 부임 후 첫달 초코파이 카드 결재금액이 150만원이 나왔다. 아이들을 먹이는 것도 좋지만 선을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성비에 맞는 간식을 찾게 되었다. 이때 발견한 간식이 건빵이다. 큰 포대자루에 들어있는 대용량의 건빵을 구입해서 교목실에 쌓아두고 마음껏 먹게 했다. 집에서는 쳐다보지도 않는 건빵을 학교에만 오면 애들이 미친 듯이 먹기 시작했다. 포대에 들어있는 건빵을 먹는 아이들도 과자를 먹는 것이 아니라 사료를 먹는 느낌이 들었는지 건빵을 건빵이라고 부르지 않고 사료라고 불렀다. 건빵은 아이들의 마음을 여는 하나의 도구가 되었다. 남자아이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간다. 군대에 가면 훈련소에서 처음 받는 간식이 건빵과 초코파이다. 그래서 군 입대를 한 제자들이 전화로 이런 말을 했다. “건빵을 보는 순간 목사님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종교 활동 시간에 교회로 가게 되었습니다. 근데요, 목사님. 교회에 가니까 또 초코파이를 주던데요. 그래서 그 뒤로 쭉 교회에 가게 되었고요. 그러다 보니 세례도 받았습니다. 목사님 저 잘했지요? 그러니 휴가 나가면 술 한잔 사 주십시오.” 얼마든지 콜이다. 이 녀석들은 교회의 목사와 성도로 만난 것이 아니라 선생과 제자로 만났으니, 선생이 제자에게 술 한잔 못 사 주겠는가?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가 술을 마시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다만 선생 된 자로 제자에게 격려의 술 한잔 사 주며 세상을 이겨 나갈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것이다. 아이들은 작은 것에 반응을 했다. 내가 무엇을 가르치느냐에 관심을 가지기보다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관심을 가지고 나를 지켜본 아이들은 드디어 내가 무엇을 가르치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나는 미션 스쿨에서의 종교 교육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보여 주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것은 미션 스쿨뿐만 아니라 교회와 가정과 사회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를 본다. 그래서 부담스럽다. 하지만 그 부담스러움을 안고 살아가면서 복음대로 실천해 나간다면, 100여 년 전 신앙의 선배들의 영향력을 회복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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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29
  • [다음세대 이야기]‘기독교 신앙을 이어받아야 할 자녀세대’
    다음세대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는 ‘부모세대를 이을 자녀세대’라고 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기독교 신앙을 이어받아야 할 자녀세대’로 볼 수 있다. 사전적 의미로 세대(世代)란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부모의 일을 계승할 때까지의 기간을 말하는데 평균적으로 30년정도의 기간을 한 세대(世代)라고 한다. 쉽게 말해 세대(世代)란 부모의 것이 계승될 수 있는 기간을 말하는 것이다. NIV에 사용되는 ‘Generation’도 의미는 비슷하다. 주로 비슷한 연령층을 말하거나, 30년 단위로 하는 시대를 구분하기 위해 쓰이며 한가문의 역사적 단계를 이루는 기간을 말한다. 이러한 다음세대에 대한 이해는 가정신앙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는 일에는 효과적인 접근을 유도할 수 있으나 교회안에서의 교회교육과는 구별짓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성경에 나타난 다음세대에 대한 기본적 용례를 살펴보는 일은 너무도 중요한일이 될 것이다. 개역개정에서는 ‘다음세대’라는 표현은 ‘후손’, ‘자손’, ‘대대’, ‘후대’, ‘너희 자녀’등으로 표현되었다. 이 용례들은 아래에서 더 자세히 살펴 볼 것이나 중요한 것은 성경의 원어에는 일관되게 등장하는 용어가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상황에 따라 다른 언어로 표현되었기에 상호간의 공통점을 연결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한글이 가지는 특수성으로 인한 것이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구약성경은 일관되게 ‘세대’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세대’는 사전적 의미와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일반적으로 한 그룹을 묶고 지칭할 때 ‘세대’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면, 성경은 주로 ‘계승’의 의미를 담아 ‘세대’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음(Next)’라는 표현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가르쳐야 할, 대상인 ‘다음(Next)’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가? 성경에 나타난 용례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다음세대(Next Generation)란 용어는 구약 특히 시편에 집중되어 있는데 히브리어 ‘도르(לַדֹּֽור)’는 시간, 기간, 세대, 거주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대부분 ‘집단’이라는 세대의 의미를 사용하고 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세대(לַדֹּֽור)’와 ‘전하다(ְסֻפַּ֖ר)’가 항상 함께 온다는 것이다. 즉 시편기자가 말하고자 하는 ‘세대(לַדֹּֽור)’는 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전달받은 사람들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그 어떠한것도 전달받지 못한 세대들은 비록 ‘혈족’이라 할지라도 ‘다른세대(Another Generation)’라 불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삿2:10). 또한 원수들로 인하여 괴로워하며 쓴 시편 109편에 올린 시인의 탄원에는 후대에 악인들의 이름이 지워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을 볼 때 구약에서 ‘다음(Next)’세대를 규정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혈육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전달받느냐 받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가장 고귀한 지식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 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라고 하신것처럼 말이다. 우리 주님 또한 아들이 아버지를 아는 것 같이 양 또한 목자를 알아본다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야 말로 ‘다음 세대’에 전달되어야 할 핵심 메시지이다. 여리고에 살고 있던 라합은 모두에게 무시 받던 창녀였으나 소문으로 들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고 다음(Next)세대에 포함될 수 있었다. 이방여인이었던 룻은 어머니가 섬기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윗의 계보에 들어갈 수 있었고 이는 예수님의 계보가 되는 은혜를 누린다. 즉 다음(Next)세대란 복된 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리 잡고 쓰임받을 ‘잠정적’ 하나님의 백성을 일컫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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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29
  •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자녀의 상처를 닦아주는 부모의 사랑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교회 주일학교(초등부)에서 지난 1월에 튤립 구근을 나눠주었다. 튤립 구근을 1월 즈음에 심으면 3~4월에는 예쁜 튤립 꽃이 활짝 핀다. 아이들과 함께 튤립 구근을 심고 따뜻한 곳에 놔두고 물과 정성을 함께 주면서 자라는 모습을 보았다. 한창 싹이 나고 잎에 영글기 시작할 때, 아이들이 “엄마, 튤립 구근에 곰팡이가 피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저 튤립은 다른 것보다 키가 작아요”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이들 말을 듣고 튤립을 심은 화분을 보니 정말로 몇몇 튤립은 깨끗하게 잘 자라는데 구근에 곰팡이가 생긴 튤립은 일반 튤립에 비해 키가 1/3밖에 되지 않고 줄기의 색도 짙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곰팡이가 핀 튤립 구근을 조심히 흙에서 꺼내 살살 닦아내고 그래도 깨끗해지지 않으면 그 부분을 칼로 도려내 주어 다시 화분에 심었다. “구근의 일부를 도려냈는데, 과연 잘 자랄까? 혹시, 영양분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해 꽃을 피우지 못하면 어쩌지?” 한번도 해보지 않는 일을 하기에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아이들이 기쁨의 찬 소리로 나를 불렀다. “엄마, 엄마, 지난번에 곰팡이 났던거 봐요. 저렇게 빨리 자랐어요. 이제 건강한 튤립과 키가 비슷하게 되었어요” 정말이었다. 일주일 전만 해도 키도 작고 흐물흐물 했던 튤립이 일주일 만에 건강한 튤립과 비슷한 속도와 모양으로 자라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튤립 구근을 심고 자라는 것을 보면서 자녀를 양육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뿌리가 깨끗해야 튤립이 바로 자라듯 아이들이 바른 신앙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본질적인 부분이 바르게 되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숱하게 상처가 나고 분별력을 잃은 채 살아갈 수 있지만, 그때마다 튤립 구근에 핀 곰팡이를 깨끗하게 닦아주듯 아이의 상처를 낫게 해주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게끔 코칭 역할을 부모가 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어렸을 때는 아름다운 꽃처럼 조심조심 정성껏 키우다가, 사춘기가 되어 엄마 말을 듣지 않을 때면 그만 다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튤립을 보며 헝클어진 마음을 다시 잡는다. 금방이라도 시들 것 같았던, 너무 키가 작아 전혀 열매를 맺지 못할 것 같은 튤립 뿌리의 더러움들을 닦아내고 상처를 도려내니 다시 쑥쑥 자라며 아름다운 꽃을 피운 것처럼, 아이들의 마음 깊은 곳에 보이지 않는 아픔과 상처를 보고 닦아줄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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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1-03-10
  • [다음세대 칼럼]매일 다른 하나님
    저희 둘째 딸 예나는 일반 학교가 아닌 탈북자 대안학교 장대현학교에서 중등 3년 과정을 마치고 고등학교 2학년 과정으로 학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둘째딸 예나와의 일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예나가 2017년 12월 25일 성탄절에 교회에서 입교 문답을 앞두고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예나야, 내일 아침에 교회 당회 장로님들 앞에서 너의 신앙을 고백하고 대답하는 시간을 가져야해. 원래는 4주간 교회에서 문답공부를 하고 문답을 받아야 하는데, 장로님들이 예나가 기숙학교에 있다는 이유로 아빠에게 너의 신앙을 잘 점검해서 문답받도록 준비시켜 달라고 하셨어. 그래서 아빠가 오늘 예나의 신앙고백을 먼저 확인하고 내일 교회에서 입교 문답을 받도록 하자” “입교 문답은 엄마와 아빠가 예나가 2004년에 태어났을 때 교회에서 우리 가정에 맡겨주신 선물인 예나를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잘 키우겠습니다고 고백하면서 유아세례를 받았어. 유아세례를 받은 예나가 이제 열다섯살이 되어서 스스로 엄마아빠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믿음으로 살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예식이 입교문답식이라는거야. 그래서 예나는 이미 아기때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세례를 받진 않을 거야. 신앙을 고백하는 것으로 교인이 되는거지. 그래서 아빠가 지금부터 몇가지 묻도록 할게.” “1. 예나는 예나가 죄인이라는 것과, 예나의 죄를 위해서 예수님이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니?” 그러자 예나가 “그러면 안 믿나? 당연히 믿지”라고 대답을 하면서 당연한걸 왜 물어라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2. 예나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고, 그 하나님이 예나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지금도 나와 함께 계셔. 그리고 그것은 뭐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느끼고 살어”라고 답을 이어 갔습니다. “3. 아빠가 하나만 더 묻자. 방금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을 느낀다고 답을 했는데, 예나에게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니?”라고 재차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나가 “그게뭔말인데? 아빠한테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데? 그걸 어떻게 짧게 말할 수 있어?”라면서 저에게 질문을 하는겁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가 하나님을 표현할 때 ‘사랑의 하나님’, ‘위로의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이런 식으로 표현하잖아. 그래서 예나한테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 묻는거야”라고 답을 해주었습니다. 예나가 저를 참 한심한 듯 쳐다보더니 “아빠, 아빠는 하나님을 한가지로 표현이 가능해? 나는 하나님이 매일 매일 달라. 어떤 날은 하나님은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셔. 어떤 날은 나한테 약속을 해주시기도 해. 어떤 날은 위로도 해주셔. 어떤 날은 나를 부담스럽게도 하셔. 또 어떤 날은 기다려주시기도 해. 매일매일 달라”라고 답을 했습니다. 기숙사에서 딸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차 안에서 “저 녀석은 하나님을 진짜 만났다”라는 확신과 함께 감사의 눈물이 운전 중 흘러 내렸습니다. 하나님을 만난다고 하는 것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은혜도 있지만 믿음의 가정 안에서, 부모의 등을 보고, 부모의 믿음의 선택들을 보면서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만들어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신앙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것을 내 딸 아이를 통해서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매일 다르게 다가오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삶의 현장에서 매일 증명하는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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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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