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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서연구] 우리의 기준, 하나님의 말씀
    오래 전에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운동장에서 전교생이 모여 조회를 했습니다. 애국가와 교가를 불렀고, 교장선생님의 훈시를 들었습니다. 조회를 위해서는 줄을 서야 했는데, 가장 가운데, 혹은 오른쪽 끝 맨 앞 학생이 손을 들고 <기준!>이라고 외치면, 그 학생을 기준으로 일정 간격을 벌려 줄을 섭니다. 인생에도 기준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소설 <성의>의 작가인 <로이드 C. 더글라스, 1877-1951>가 학생 기숙사에 살 때, 아래층에 은퇴한 음악교수가 살았습니다. 그 교수는 휠체어를 의지하고 살았는데, 아침에 인사를 나눌 때마다 휠체어를 두드리면서 <기본음은 도야!>라고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기본음은 도야. 위층 테너는 소리가 쳐지고, 건너편 피아니스트의 피아노는 조율도 제대로 안 되어 있어. 어제도 기본음은 도고, 오늘도 그렇고, 천 년 후에도 기본음은 도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성도에게 기본음 도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기본음을 잘 알고 살았던 모델을 시편 1편에서 만납니다. 그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이 사람 저 사람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본문 1절은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합니다. 그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미 그에게는 확고한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그는 <노!, No!>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의 기준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율법, 말씀입니다. 2절을 보면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2절의 <오직>, <주야로> 등의 표현은 그에게는 이미 다른 타협의 여지가 없음을 보여 줍니다. 이미 그는 뜻을 정했습니다. 그가 갈 길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길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다른 유혹들에 대하여 거부를 선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기준 없이 흔들렸던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르호보암은 왕이 될 무렵 원로대신들의 충고와 젊은 동료들의 충고 사이에서 번민했습니다. 그에게 기준이 없었으므로, 그는 결국 젊은 동료들의 충고를 따랐고, 그 결과 열 지파를 여로보암에게 내 주는 비극적 결과를 가져왔고, 나라가 분열되었습니다. 르호보암에게는 그런 말씀의 기본이 없었기에 동료들의 말에 흔들린 것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온 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교회는 공공성 논쟁에 휘말리고 있습니다. 절대다수의 교회가 당국의 방침에 따라 방역을 하고, 온라인 예배로 전환했음에도 비난이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자 교계에서는 비난을 줄이고,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방역 물품을 후원하거나, 수련원 등을 격리 내지 치료 시설로 제공하고, 생필품 세트를 준비하여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하고, 교회 주변의 시장이나 상가를 대상으로 물건 사주기 운동을 벌이는 등의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아쉽게 여기는 점은 이 모든 것이 소위 공공성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현 정부는 ‘공공’이란 개념을 정책의 여러 분야에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공공의 목적,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정책을 수립합니다. 부동산 정책, 의료 정책도 그렇습니다. 교회가 사회를 섬기는 일은 마땅하지만, 공공성 때문에 섬긴다면 문제입니다. 교회는 공공성 때문에 억지로 섬겨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공공성이라는 이념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서야 합니다. 행동의 근거를 세상 논리가 아닌 말씀에서 찾아야 합니다. 교회는 단순한 사회 구성원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공동체이므로, 우리의 기준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말씀에 입각해야 합니다. 이데올로기를 위해 봉사하는 교회가 아니라, 말씀에 수종드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직 말씀만이 기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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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5
  • [서임중칼럼] 끝에서 시작되다
    코로나19 pandemic으로 자유롭지 못한 일상이 되면서 부흥사경회 말씀사역도 멈춰져 ‘집콕’생활이 계속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는 집콕생활은 힐링 시간이다. 마음은 청년이나 세월을 거스를 수 없는 즈음에 운전을 하여 농어촌 산골 개척교회들로 다니면서 말씀사역을 하는 것이 영적으로는 사명수행의 감사행진이지만 육신적으로는 지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잠깐의 집콕생활은 쉼의 은총을 누리는 시간이다. 묵상과 독서도 하며 종종 영화감상도 한다. 몸에 밴 삶이 원망 불평이 없는 일생이라 코로나19로 인한 일상이 좀 불편해도 짜증을 내기 보다는 수용하고 긍정적인 쪽으로 적용하며 늘 감사로 하루를 열고 닫는다. 집콕을 하면서 <끝에서 시작되다>라는 영화 한편을 감상했다. 오래 전 이미 책으로 읽어 내용은 아는 것이었지만 영화를 통해 내 삶의 트랜드를 다시 한 번 다짐하며 목사로서의 소명과 사명을 새롭게 정화시키는 시간이 되어 소개한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한 여인의 헌신을 통한 사랑의 기적이다. 부부 ‘론’과 ‘데비’의 삶의 중심에 흑인 부랑자 ‘덴버’가 있다. ‘덴버'는 어린 시절 문명이 주는 이기와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오로지 노예처럼 목화밭에서 일만 하며 자랐다. 노예시대가 아니었음에도 그는 그 외 다른 세상이 있는 줄은 알지도 못했다. 10대가 되어 농장을 탈출하여 눈을 뜨고 보니 흑인도 차를 타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다른 세상이 있었다. 그러나 덴버는 그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모른 체 총기 사고를 저지르게 되어 청춘을 교도소에 잡힌다. 덴버의 의식 저변에는 한 번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은 세상과 상황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가득 차 있었다. 항상 야구방망이를 들고 다니며 누구든지 걸리기만 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그의 태도는 보는 이로 하여금 소름을 돋게 한다. 덴버가 교회 무료급식 제공 선교회에서 봉사하는 주인공 ‘데비’와 그의 남편 ‘론’을 만나면서 메시지를 보여준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자신을 피하고 혐오스러워 하는 시선을 보낼 때 그의 어떤 험악한 언행에도 친절한 미소를 잃지 않고 대하는, 자기를 무서워하지 않는 유일한 한 사람 데비에게 그는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그렇게 덴버는 또 다른 세상을 보기 시작한다. 데비의 남편 론은 미술 경매사로 성공한 삶이 그려지지만 결혼생활에 문제가 많았다. 그런 자신의 부정직한 결혼생활에 대한 반성과 자성의 방법으로 그의 아내 데비가 제안한 노숙자 보호소에서 봉사를 시작하게 되고 그곳에서 한때 범법자였던 떠돌이 덴버를 만나면서 그의 삶을 바꾸기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그러나 전자레인지에 잠깐 잘못 돌린 음식처럼 겉은 따뜻하지만 내면은 여전히 한기가 가시지 않은 생활이다. 그는 아내 데비의 삶의 목표가 세상에서 깨어지고 상한 사람들이 마음과 정신이 치유되어 삶이 변화되고 마침내 가정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공원을 거닐며 거룩한 주일을 보내게 되도록 돕고자 하는 것임을 안다. 그 일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사는 아내를 보며 론은 불평과 불만도 있다. 그럼에도 아내 데비의 아름다운 헌신을 통해 어느 새 자신이 변하고 있음을 경험한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처럼 덴버와 론은 세상의 끝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감동적인 이 영화는 세상의 끝이 어디임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OST가 끝날 때까지 넋 빠진 듯 화면을 바라보면서 다시금 내 마음을 적신 장면들이 떠올랐다. “백인들은 낚시를 할 때 고기를 잡고는 다시 풀어준다. 내가 당신과 친구하고 싶지 않은 것은 나 같은 흑인을 백인 당신이 마치 재미로 낚시 하듯 나를 친구하다가 버릴까봐 친구하지 않는다.” 친구 하자고 제안하는 론에게 덴버가 던지는 말을 듣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이런 인간관계가 얼마나 많은가. 자기 필요에 따라 다가왔다가 필요가 다하면 헌신짝처럼 버리고 돌아서는 인간관계를 생각한다. “데비가 하는 일은 중요한 일입니다. 신이 눈여겨 볼 일입니다. 신이 눈여겨보면 악마도 관심을 둡니다.” 암으로 시한부를 살고 있는 아내 데비의 삶이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귀한 삶이었던가를 론에게 일깨우는 영적 메시지는 내게도 정신이 번쩍 들게 했다. 소명에 응답하여 사명의 삶을 살아가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만 마귀도 그만큼 관심을 가지고 고통과 좌절감을 갖게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데비가 죽고 예배당에서 진행된 장례식에서 덴버의 추도사는 영화의 주제이기도 했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트랜드를 일깨우는 메시지이다. “사람들이 나를 돌아보지 아니할 때 데비는 편견없이 나를 봐 주었고, 심령 주머니 깊숙이 손을 넣어 신이 주신 열쇠로 자물쇠를 열어 저를 꺼내 자유롭게 해 주셨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저를 사랑해 준 유일한 사람입니다. 나는 이제 다른 사람이 되어 이 자리에 있습니다. 우리가 부요하든, 가난하든, 그 중간지점에 있든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집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집으로 가는 중입니다.” 순간 지난 몇 해 동안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여정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소명에 응답한 사명수행의 시간들이 떠오르며 영화를 통해 나를 어루만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꼈다. 지난 해 출간 된 <교회오빠 이관희>의 암과 투병하면서 순간마다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믿음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집으로’ 간 이관희 집사가 남긴 말이 생각이 났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이 하루가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가정을 하면 나에게 주어진 이 하루를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하면서 보내고 싶지 않다. 그 시간을 사랑하고 축복하는 시간으로 채우고 싶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응접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주님, 지금까지 뚜벅뚜벅 걸어온 것처럼 오늘도 한걸음 한걸음 집으로 향해 갑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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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5
  • [통일칼럼] 자유를 갈망하는 북한주민들과 연대해야 한다
    금세기 자유민주주의로 통일을 이룬 동서독의 통일은 단순한 국제사회의 협조와 정치적인 타결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긴 세월동안 서독은 서독대로 동독 안에 민주화 바람을 불어 넣었고, 동독 안에서 민주화 운동을 이끄는 시민들과 연대하여 이룬 통일이다. 동독 내 라이프치히 니콜라이교회(1981년부터 시작)와 겟세마네교회의 평화기도운동이 서독 교회들과 연대하였고, 동독 내 “뉴포럼(Neues Forum)”, “민주주의 지금(Demokratie Jetzt)”, “민주봉기(Demokratischer Aufbruch)”, “원탁회의(Runder Tisch)” 등의 시민단체들이 서독과 은밀히 연대하면서 통일운동을 주도했음을 주목해야만 한다. 당시 동독 청년단체 “민주봉기”의 대변인이었던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은 현재 통일독일의 총리로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다. 동서독의 통일은 민족적 시민운동 연대가 이룩한 무혈혁명이었다. 남북하나재단 이사장을 역임한 정옥임씨가 2014년에 제시했던 ‘메르켈프로젝트’도 이러한 관점에서 탈북청년들에게 통일한국의 메르켈이 될 수 있다는 꿈을 심어주기 위해 만든 프로젝트였다. 북한은 구동독보다 극도의 폐쇄 사회이기 때문에 사정이 좀 다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내에서도 그동안 반정부 운동이 지속적으로 일어났다는 보고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외부에 잘 알려진 사건으로서는 6군단 구테타 사건(1994.1.2.), 용천역폭발사건(2004.4.22.) 등이 있다. 뉴욕타임즈는 지난 90년대 중반, 북한의 열차와 육교, 공장 담벼락 등에는 ‘김정일 타도’와 같은 구호들이 나붙어 있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으며, 김정일 가족들의 사치를 비난하는 전단지들이 북한 곳곳에 나돌았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즈는 또 베이징에서 활동하는 영국인 제스퍼 베커(Jasper Becker) 기자의 책을 인용해 북한의 공장과 군부대 등은 이미 여러 차례 김정일 정권에 대해 들고 일어난바 있다고 전했다. 2.16부대로 불리는 450명의 경호부대원 중에서도 지난 90년대 중반 김정일을 암살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으며, 또한 98년에는 황해북도 송림의 제철공장에서도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봉기가 일어났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리버티코리아포스트지는 김정은정권 8년 동안 반정부범죄가 9,000건이나 발생했다는 인용보도를 낸 적이 있는데(2019.10.28), 이는 북한 내에서 주민들에 의한 민주화 반정부운동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풍선기구를 통하여 자유한국 소식 전단지가 북한 내로 들어오는 것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독재자가 자유세계와 정상적인 거래를 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것은 역사적 교훈이 말해 주듯이 헛된 망상에 불과하다. 독재자에게는 독재자들에게 특화된 처방이 있을 뿐이다. 그 지혜와 처방을 우리들은 하나님께 간구해야만 할 것이다. 동시에 자유세계는 자유를 갈망하고 있는 용기있는 북한주민들과 은밀한 접촉점을 만들고, 과감하게 연대해야만 한다. 통일독일에서 볼 수 있었듯이, 무혈혁명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어느 날 어떤 길을 통해서 통일의 물꼬가 터질지 하나님만 아실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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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5
  • [시사칼럼] 자식이 웬수다
    여당 대표를 역임하고 지금은 검찰 개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현직 법무부장관이 자식 문제로 곤경에 처했습니다. 이번에는 군 복무 중인 아들의 휴가 문제가 빌미가 되었습니다. 당사자는 수술로 인해 병가를 얻었으나 막상 귀대해야 하는 날 복귀하지 않았고, 이후에 추가로 휴가 연장 허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군대를 생각할 때 다소 이례적인 상황입니다. 그가 속한 부대가 카투사(KATUSA, 주한 미군 한국군 지원단)라서 일반 부대와는 조금 다르다는 반론도 있었지만, 추가적인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복귀해야 하는 당일 당시 당대표로 있던 어머니의 보좌관이 부대로 전화를 걸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부모들 역시 직접 민원을 제기했다는 의혹이 보도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처음부터 사실을 인정하고 잘못이 있다면 솔직하게 고백했으면 좋았으련만, 언제나 그러하듯 모르쇠와 부인으로 일관하다가 사태를 더 키웠습니다. 한국판 잔다르크로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여걸의 정치 인생이 일대 위기를 맞았습니다. ‘자식이 웬수’라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이번 일이 더욱 우리를 안타깝게 만드는 이유는 불과 얼마 전 현 정권을 깊은 수렁에 빠뜨렸던 전직 법무부장관의 사례와 판박이같이 똑같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서울법대교수를 거쳐 청와대 민정수석을 역임하면서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로부터도 두터운 신망과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며 차기 대선 주자로까지 거론되던 그가 급전직하했던 이유 역시 자식 문제가 아니었습니까? 발단은 장학금 특혜 시비였으나 점차 자녀의 대학 및 의전 입학 과정에서도 이례적으로 많은 혜택들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권력자 부모로서 이러한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는지 여부를 강력하게 부인하던 전 장관의 도덕성이 치명타를 받았던 사건입니다. 자식 잘 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서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러한 부모로서의 마음이 권력의 오용이나 일탈 행위를 묵인하고 합법화하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아무튼 일순간 대권가도에서조차 낙마하게 만드는 자식, 이쯤 되면 웬수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지 않겠습니까? 오해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문제가 집권층에만 특유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전직 야당 대표 자녀의 부정 입학 문제, 현직 국회의원 자녀의 음주운전 사고 무마, 전직 야당 위원장 자녀의 입사 특혜 등등 이런 일들은 얼마든지 비일비재합니다. 반드시 세도가 집안에서만 일어나는 일만도 아닙니다. 이년 전 발생한 ‘S여고 시험지 유출 사건’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날 갑자기 2학년 재학 중이던 쌍둥이의 성적이 수직상승했는데, 같은 학교에 근무하며 교무부장이라는 보직을 차지하고 있던 아버지가 시험지를 사전에 유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해당 학교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를 들끓게 했던 이 사건으로 결국 아버지는 실형을 선고 받고 현재 복역 중에 있습니다. 두 딸에 대한 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인데 아직도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하니, 어쩌면 자식 앞길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뒤집어쓰기로 한 아비의 어긋난 부정(父情)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대관절 자식이 무엇이기에, 교단에 서 있어야 할 스승을 옥에 갇히게 한단 말입니까? 일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 부부를 만났습니다. 부인의 수술을 위해 잠시 귀국했다가 감염병 사태 때문에 현장에 복귀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국내에서 공부 중인 자녀들이 함께 했는데, 딸은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그리고 아들은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에 재학 중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훌륭하게 키우셨냐고 질문했다가 뜻밖의 답변을 들었습니다. 에이즈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큰 딸은 내가 의사가 되어서 살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너무나 안타까운 주거환경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작은 아들은 내가 건축가가 되어 저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리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는 얘기였습니다. 가난한 선교사 부부가 자식들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었겠느냐며 껄껄 웃는 두 분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문득 다시 한 번 되묻게 됩니다. 자식이 정말 웬수입니까? 우리가 진정으로 자녀들에게 보여주고 물려주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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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5
  • [부산기독교이야기] 부산에 온 밥 피얼스 목사
    6.25 전쟁기 부산을 방문했된 전도자이자 구호사회가는 로버트 윌야드 피얼스[Robert Willard Pierce, 1914-1978] 목사였다. 애칭 밥(Bob) 피얼스로 불리는 그는 한국의 전쟁고아들을 돕기 위해 1950년 민간구호단체인 월드비전을 창립한 인물인데 3년 후 한국 선명회(宣明會)라는 이름으로 한국지부가 조직되었다. 처음에는 고아들을 구호대상으로 여겼으나 곧 고아들만이 아니라 전쟁미망인, 상이군인 등 전화의 아픔을 안고 사는 이들에게도 도움을 베풀었다. 월드비전의 창시자인은 밥 피얼스 목사는 1914년 10월 8일 아이오와주 포트 도지(Fort Dodge)에서 목수의 아들로 출생했다. 1920년대 중반에는 남켈리포니아로 이사하여 나사렛교회에 다녔다. 후에는 파사데나 나사렛대학(Pasadena Nazarene College)에서 신학수업을 받고 목회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 재학 중에 목사의 딸린 로레인과 혼인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1937년부터 1940년까지는 순회 전도자로 활동했고, 1940년에는 침례교 목사로 안수 받았다. 그 이후 십대선교회(YFC: Youth for Chris) 창립과 청소년 운동에 관여하였는데, 1945년부터 1949년까지는 이 선교회 부총재였다. 1947년 집회 인도차 중국 아모이로 갔는데, 거기서 네덜란드계 미국인 여선교사 티나 홀케보어(Tena Hoelkeboer)의 초청을 받고 그가 사역하는 학교에서 집회를 인도했는데, 백옥(白玉)이라는 이름의 소녀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 일로 이 소년은 집에서 쫓겨나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밥 피얼스는 그가 가진 마지막 5달러를 주면서 매달 5달러씩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것이 평생 자매결연을 맺어주는 결연사업이 되었다. 그는 중국에서 버림받은 아이 백옥에 대한 가슴 아팠던 일을 기억하고 성경 갈피에 이렇게 써 놓았다고 한다.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들로 인하여 제 마음도 상하게 하소서!”(Let my heart be broken by(with) the things that break the heart of God). 밥 피얼스가 처음 한국을 방문한 것은 1949년 9월이었다. 이 때 서울 남대문교회에서 그 교회 담임인 김치선 목사와 함께 전도집회를 개최했다. 당시 김치선 목사는 300만 구령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는데 이 운동의 일환이었다. 밥 피얼스는 1950년 봄 다시 한국을 방문하고 서울과 대구와 부산 등지에서 대대적인 전도 집회를 개최했다. 이때 밥 피얼스는 옥호열(Harold Voelkel)의 소개로 한경직을 만나게 된다. 그의 주선으로 남대문 옆 공터에서 대중 집회를 열었다. 그런데, 그가 귀국한 후 두 달 후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했음을 알고 한국을 구체적으로 돕기 위해 1950년 9월 22일 미국 오레곤 포틀랜드에서 ‘월드비전’이라는 민간 구호단체를 조직했다. 그리고는 바로 그 다음 달 ‘크리스찬다이제스트’의 종군기자 신분으로 한국에 왔다. 전쟁 중이었음으로 민간인 신분으로 내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한한 그는 영락교회 담임목사였던 한경직 목사와 함께 전국을 순회하면서, 특히 부산을 방문하고 피난민들의 처절한 삶의 현장과 전쟁고아들의 참상을 필름에 담아 전 세계에 알리며, 전쟁고아들을 미국의 기독교인 가정에 연결하는 결연사업을 시작하였는데, 이 일을 지원하며 동역했던 이가 한경직 목사였다. 이렇게 되어 밥 피얼스 목사는 한경직 목사와 한마음이 되어 수많은 한국전쟁 고아들과 전쟁미망인, 그리고 한센병 환자들, 맹인, 농아, 장애자와 이들을 위한 의수족 사업, 그리고 상이군인들에게 도움을 베풀었다. 그런데 피비얼스가 부산에 왔을 당시 부산에는 전란을 피해 300여명의 목사들이 부산에 체류하고 있었다. 이들은 집도 교회도 잃고 영적으로도 침체되어 있었다. 이들에게 영적 쇄신이 필요했다. 그래서 부산에서 밥 피얼스를 강사로 첫 번째 목회자수양회가 개최된 것이다. 통역은 한경직 목사가 맡았다. 이런 목회 수양회는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이처럼 밥 피얼스 목사는 대중 집회를 인도하는 등 한국복음화를 위해서도 헌신하였다. 그는 진실로 복음주의 신앙을 가진 부흥사이자 선교사였고 구제사업가(relief worker)이자 기독교 사회운동가였다. 전쟁 이후에도 여러 차례 내한하여 한국교회를 섬겼다. 그가 한국을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가 1975년 10월 2일이었다. 한국의 전쟁고아들과 한국 복음화를 위한 그의 기여와 공적을 감사하는 예배가 그날 저녁 이화대학교 강당에서 개최되었다. ‘선명회’는 한국전쟁기 창립된 민간구호기간으로 큰 기여를 했는데, 1998년에는 모든 지부의 명칭을 월드비전으로 통일한다는 국제본부의 방침을 따라 한국선명회는 한국월드비전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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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기독교이야기
    2020-09-15
  • [목회자칼럼] 코로나를 담대하게 대응하라
    코로나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르게 장기화 되니 사람들이 무기력증에 빠지고 영적으로 많이 위축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모든 것이 어려워졌다. 대면 예배가 중단되고 교회가 문을 닫고 한주 한주가 지나면서 끝모를 불안과 우울이 밀려온다. 참으로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라는 탄식이 저절로 나온다. 그렇다고 코로나 사태가 끝나기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수만은 없다. 요즘은 해가 뜨면 폭염이고 비가 오면 폭우이고 바람이 불면 태풍이고 눈을 뜨면 코로나라는 말이 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복잡다난한 현실에서 무탈하게 하루하루를 지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믿음의 선배들은 위기의 때를 어떻게 감당했을까? 동방에서 가장 훌륭한 자였던 욥은 하루아침에 전 재산이 날아가고 다 큰 열 자녀들이 죽었지만 비보를 듣고 즉시 하나님 앞에 엎드려 예배하며 주신 자도 여호와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이심을 찬송하며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였다. 끔찍한 소식을 듣고 자포자기하지 않았으며 사람 앞에 넋두리 하지 않고 사람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예배하였으니 참으로 대단한 신앙인격이다. 구약 성경에서 가장 예수님을 닮은 요셉은 어려운 일들을 너무나 많이 겪었다. 인간관계를 한번도 성공해 보지 못하였다. 어릴 때 어머니가 동생을 낳다가 돌아가셨고 열 명의 친형들이 그를 미워하여 죽이려다가 돈을 받고 팔아버렸다. 보디발의 집에서 십년 동안 충성을 다한 후에 억울하게 누명을 쓱고 옥살이를 하였다. 감옥에서도 친구를 사겼지만 끝내 배신을 당하고 잊혀졌다. 성경은 그러한 요셉을 불통, 먹통, 막통이 아니라 형통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 마디로 요셉은 적응력이 뛰어났다. 어릴때부터 예기치못한 돌발사태가 거듭 발생했지만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고 닥치는대로 감당하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감당치못할 시험은 없으니 일마다 때마다 감당했다. 세월이 흐른 후에 그의 얼굴은 일그러진 영웅이 아니라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답게 되었다. 현실에 최선을 다하고 현장의 달인이 되고 현재에 감사하면 현저한 클라스의 삶을 살수가 있다. 그런 사람은 현역에 은퇴가 없이 오래오래 길게길게 곱게곱게 넓게넓게 쓰임받는 것이다. 구약 성경에서 대표적인 선지자가 엘리야이다. 열심이 특심이었던 그도 한계 상황이 오고 탈진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을 피해 달아나다 기진맥진한 채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치유하시는 단계가 특이하다. 극심한 영적인 침체에 빠져서 자살을 하려고 하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크고 강한 바람 가운데 계시지 않고 지진 가운데 계시지 않고 불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고 세미한 소리로 오셨다. 엄청난 문제 앞에서 위대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그를 구원하실 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의외로 크고 강한 바람이나 지진이나 불이 아니라 속삭이듯이 부드러운 소리로 다가오셨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법이나 시간에 맞춰 오지 않고 세미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그 세미한 소리를 듣고 엘리야의 마음속에 근심과 고통, 두려움과 불안이 사라지고 다시 사명자가 되었다. 사도 바울은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하였다. 어떤 목사님은 회장을 만나거나 노숙자를 만나거나 누구를 만나든지 맞춤형 대화를 한다고 한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단계별로 대처해야 된다. 큰 수술을 할때는 단번에 할 수가 없고 1차, 2차로 나누어서 원기를 돋우어 가며 해야 환자가 체력적으로 감당할 수가 있다. 모든 문제는 복합적이고 다중적인 면이 있다. 임시방편적으로 땜방을 한다거나 꼼수를 둔다거나 단세포적으로 반응해서는 안된다. 정신세계의 깊이와 넓이가 의식분화가 안된채로 단순무식해서는 복잡한 현실을 감당할 수가 없다. 좀더 촘촘하게 단계별로 선제대응해 나가야 된다. 인생은 단답형이 아니다. 어느 순간 길을 잃고 방황하기 쉽다. 한순간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피아간에 적을 구분하지 못하고 자중지란, 내부갈등, 내우외환에 빠질 수가 있다. 여러 요인을 찾아서 심층적이고 입체적으로 분석을 하고 다각도로 살펴본 후에 다양한 방식을 가지고 단계별로 대응하다보면 맞춤형의 대안이 도출되는 것이다. 지도자는 다섯개의 안경이 있어야 된다. 망원경을 가지고 십리 밖을 내다보고 쌍안경을 가지고 현실을 클로즈업해서 정확하게 분석하고 백미러를 통하여 뒤를 볼줄 알고 사이드 미러를 가지고 좌우를 살피고 현미경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볼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이다. 현실은 시시각각 변한다. 정치는 생물이라고 하지 않는가? 역사는 수많은 돌발변수가 생기고 예측불허의 상황이 수시로 전개된다.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하다보면 원칙이 생기고 세월이 지나면 매뉴얼이 만들어진다. 시차적응을 해야 된다. 골든타임, 하프타임, 파이널타임, 인저리타임이 있는데 어느 한 시간도 방심할 수가 없다. 결과보다 준비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열매만 따먹으려면 풋과일을 먹기 쉽지만 충실한 준비과정을 거치면 무르익은 과일을 먹을 수가 있다. 무슨 일이든지 속단하지 말고 성급하게 처리하지 말고 기도하며 기대하고 기다릴 때 기적이 일어난다. 수시모집에는 수시로 은혜를 받아야 된다. 후계자가 되기 위해서는 엘리사처럼 갑절의 영감을 받아야 된다. 약할 때는 백배의 결실을 얻어야 이삭처럼 마침내 왕성, 창대, 거부가 될수 있다. 코로나 블루가 와서 무기력해지고 우울할 때에는 속수무책으로 코로나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떨치고 일어나서 담대히 나아갈 때 동서남북, 전후좌우가 다 막혀 있어도 하늘문이 열리는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믿음의 선배들은 최악의 상황에서 최상을 살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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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5
  • [성경인물탐구] 바울의 동역자요.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 빌레몬
    빌레몬은 바울로부터 복음을 들은 뒤 복음 사역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 사역이라면 그의 집을 예배 처소로 제공한 것입니다. 이리하여 골로새 교회는 빌레몬의 집에서부터 첫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마치 예루살렘 교회가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빌립보 교회가 루디아의 집에서, 에베소 교회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부부의 가정집에서부터 시작된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복음을 듣고는 자기의 집을 예배 처소로 제공하는 것에서부터 신앙생활을 실천하였습니다. 실로 복음을 들은 자로서 마땅한 섬김과 헌신의 삶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섬김과 헌신, 자기희생과 봉사의 삶이 바로 우리들의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빌레몬은 사랑과 믿음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을 향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그 감사의 내용은 빌레몬이 이웃에게 풍성한 사랑을 베풀고 또한 믿음의 선행이 뛰어나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실로 빌레몬은 바울을 통해 주님의 크고 풍성하신 사랑과 은혜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몸소 피부로 체험하고 행동하였습니다. 이런 말할 수 없는 주의 사랑을 입었기에 빌레몬은 그 사랑을 증거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이 바울의 귀에 들렸고, 바울은 이로 인해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정녕 주의 사랑을 입은 자는 이렇게 그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고 실천하게 마련입니다. 또한 이것이야말로 그 사람의 참된 믿음을 증명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빌레몬은 골로새에서 이름난 갑부였습니다. 이런 사실은 그가 저택과 노예들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그렇지만 그는 이런 자신의 물질적 풍요를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만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의 마음이 평안과 위로를 얻었다고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즉 빌레몬이 이웃을 구제하는 일에 앞장섰다는 말입니다. 그 구체적 내용은 언급되지 않지만 믿음과 사랑의 사람 빌레몬은 틀림없이 이웃에게 구제를 베푸는 일에 인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주의 복음을 들은 자는 세상 모든 것이 주의 것임을 깨닫고 재물을 자기 것이라 고집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소유를 가난한 이웃과 나누고 구제하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성도들은 이런 구제와 자선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또한 빌레몬서를 보면 바울은 대부분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용서하라는 당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당시 도망자 노예는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바울은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따뜻하게 대우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빌레몬 역시도 틀림없이 자신의 노예로서의 도망자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따뜻하게 영접했으리라 짐작됩니다. 주님으로부터 사죄의 은총을 입고 그 은혜에 감격한 자는 이렇게 용서의 삶을 살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원수 갚을 자격도, 원수를 미워할 자격조차도 없기 때문입니다. 주의 사랑을 입은 자가 원수를 향해 할 일이라고는 용서밖에는 없습니다. 빌레몬은 오네시모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그를 친구로, 동역자로 여겨 바울을 영접하는 심정으로 영접해야 했습니다. 이는 원수를 용서하는 차원을 넘어 오네시모를 자유인으로 인정하며, 완전한 화해를 이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주님께서 죄의 종 된 우리를 구원하여 자유케 하시 사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시고 또한 신령한 교제를 나누게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화해를 도모하는 화해의 사신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고후 5:18절 말씀입니다.<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빌 2:3절 말씀입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이 말씀을 붙들고 우리도 빌레몬처럼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람을 실천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당당하게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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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5
  • [교회학교를살린다] “세상을 바꾸는 힘”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며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너나할 것 없이 힘들어하고 있다. 전무후무한 시절을 무려 7개월 넘게 보내고 있는 동안 이러한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수많은 분야의 지성인들이 다각도로 현실을 분석하고 미래를 내다보며 다양한 대안을 쏟아내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과거를 바탕으로 나온 현실적인 분석들과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가기 위한 여러 방법들은 모두 다 의미 있고 소중한 통찰을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특히나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사람들이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가정의 중요성과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기독교교육 분야에서도 코로나이후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신앙의 장으로 부각되는 가정에 대한 대안들을 많이 내놓고 있다. 가정에 대한 강조는 이전에도 계속해서 있어왔지만 교회에서의 모임이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요즘 더욱 부각되고 있다. 교회에서의 신앙교육이 어려운 이 시점에서 어떻게든 신앙의 대 잇기를 하기 위하여 부모가 교사가 되어 더욱 적극적으로 신앙교육에 참여할 것을 제안하고, 자녀 세대도 오직 주일, 교회, 한 시간이라는 공식을 깨고 일주일 내내 언제든지 가정을 비롯한 온 세상을 교육의 장으로 여기고 신앙적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갈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쏟아지는 가정에 대한 지적인 이론들, 대안들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요즘 가정은 많이 아프고 힘들다. 코로나 블루의 직격탄을 맞은 가정은 경제적인 어려움과 정신적인 우울감, 가정폭력과 같은 부정적인 모습도 많이 보인다. 실제로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 요즘, 부부사이의 갈등, 부모와 자녀 사이의 갈등은 더 증폭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이전에 잠재적으로 존재해왔던 위기와 갈등을 터트리는 도화선이 되었고, 없던 위기와 갈등도 유발시키게 되었다. 사실, 우리는 모르는 게 아니다.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함께 가정예배도 드리고, 말씀도 읽고, 찬양도 부르며 천국과 같은 삶을 꿈꾸지만 현실은 가족끼리 서로 맞서고 할퀴는 갈등의 연속인 것이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부부가 서로 부딪히는 일이 더 많아지고 부모와 자녀 사이에 못마땅한 점은 더 많이 보이게 된다. 그러면서 함께 있지만 불행한 시간은 더더욱 길어질 수도 있다. 이러한 와중에 어느 사이트에서 어린 두 아이를 키우는 한 엄마의 고군분투기를 읽은 적이 있다. 재활용 박스를 활용하여 이런 저런 것을 만들어 같이 활동적인 놀이를 하고, 과일을 재미있게 깎아 먹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좁은 집에서나마 물놀이를 하는 등 그야말로 애를 쓰는 모습은 참 많은 감동을 주었다. 가정에서 자녀들과 보내는 시간이 언제나 즐겁지만은 않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궁리하고 실천하는 모습이 참 존경스러웠다. 신앙교육도 그렇다. 이런 저런 이론과 분석을 내놓는 것은 쉽다. 그러나 현실 가족으로서 살아가며 신앙적인 활동을 하고 믿음을 지키며 세상 속에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쏟아지는 코로나19시대에 대한 대안 속에서 오롯이 자신의 길을 걸으며 믿음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한 사람의 신앙인의 노력이 그립다. 내 신앙 지키기도 힘든데, 자녀들 신앙까지 돌아보고 어떻게든 뭐라도 함께 신앙적인 실천 하나를 해보려고 애쓰는 부모들을 응원하고 싶다. 그들로 인해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사실 인간에게는 없다. 다만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은혜를 힘입어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모여서, 그리고 신앙인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사랑의 실천들이 쌓이고 쌓여서 작은 1mm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짧은 하루를 살면서 신앙인으로서 그리고 신앙의 부모로서 살아낼 작은 실천을 이리저리 궁리해본다. 말씀 앞에 앉아 하루에 한 장이라도 읽고 그 말씀을 삶에 적용하기 위한 작은 실천 하나를 정하고 하루 동안 노력하는 것, 불성실하게 온라인 수업에 참여하는 청소년 자녀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간섭과 잔소리를 잠시 참아주는 것, 가족들과 하루에 한번은 긍정적이고 따뜻한 대화를 나누는 것, 그동안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루었던 자기계발 활동을 꾸준히 하는 것, 가정과 세상을 위해 시간을 내어 잠시라도 기도하는 것 등등. 생각하다보니 여전히 생각이 행동보다 앞선다. 그러나 오늘 하루 꼭 실천하리라 다짐해본다. 오늘 우리가 하는 하나의 신앙적인 실천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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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5
  • [은혜의말씀] 창조적 믿음(창 1:1-7)
    사람은 자기의 믿음에 따라서 운명이 달라집니다. 그 사람이 성공에 확고한 믿음이 있으면 반드시 성공하고, 그 생각과 믿음이 패배적이면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파괴적인 생각, 부정적인 생각, 소극적인 믿음을 버리고 <창조적인 믿음>안에 서시기를 바랍니다. 창조적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1. 창조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여기서 ‘창조 하시니라’의 ‘창조’는 ‘빠라’(무에서 유를 만드심)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무슨 일이든 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면 만사형통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믿음을 가진 자도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막9:23, 빌4:13) 아브라함은, 100세에 창조의 하나님을 믿고 이삭을 얻었습니다. (롬4:19-21) 전능하신 창조의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분이 여러분의 삶에 새로운 기적을 창조하십니다. 오늘도 창조의 역사가 그분을 통해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2. 절대긍정의 믿음입니다. 절대긍정의 믿음은 어떤 경우라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확신한 믿음을 끝까지 견고하게 붙잡는 것입니다. 잘되고 있으면 잘되었으니 감사하고, 잘못되었으면, 곧 잘 될 것이기 때문에 모든 일에 긍정적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실패의 최대원인은 쉽게 단념하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절대긍정의 믿음을 가지고 믿으십시오! 신앙의 금맥이 곧 터질 것입니다. 조금 더 기도하면 응답이 곧 나타날 것입니다. 조금 더 인내하면 하나님의 치료와 기적이 임할 것입니다. (마15:22-28) 3. 창조적 말씀을 선포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창조하셨고(창1:3)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수없이 많은 문제들을 말씀으로 해결하셨습니다. 가) 마귀와 대적할 때 3번이나 말씀으로 물리치시고, 나) 말씀으로 바람과 파도를 잠잠하게 만드셨으며(마8:) 다) 말씀으로 죽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리셨습니다. 우리도 꿈과 믿음을 말을 통해 선포해 놓아야 합니다. (잠18:20-21) 지금 이 시간에도 당신의 입술의 선포를 통해 창조적인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나는 성공하고 있다고 말하십시오!’ ‘내 병은 나았다고 선포하십시오!’‘우리 도시, 우리 국가는 잘 되고 있다고 말하십시오!’ 4. 어둠을 버리고 빛을 따라 살라 하나님의 최초의 역사는 분리(Separate)였습니다. (창1:4-5) 먼저, 어둠을 분리하십시오! 죄악을 버리고 거짓을 버리고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밤의 일을 좋아하는 헛된 일을 버려야 합니다. 성경은 온갖 더러운 일을 버리고 빛의 열매를 맺으라 명령하십니다. (엡5:3-11) 그러므로 어둠을 버리고 빛을 따라 사셔서 창조적인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5. 계속적인 창조의 사역을 하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번 창조한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연속적으로 창조의 역사를 계속하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을 완성하시며, 성령을 부어주셔서 지상에 있는 동안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하시고, 우리와 동행하시며 주의 사역을 시키십니다. 천국 가서도 영원히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구원받고 은혜 받고 사명 받은 주의 종과 성도들은 계속적인 창조의 사역을 힘써 감당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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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15
  • 고도비만환자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대사비만수술센터 전담간호사 김고은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을 해칠 정도로 지방조직에 비정상적인 또는 과도한 지방이 축적된 상태를 비만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늘어나는 추세인 비만에 대해 21세기 신종 전염병이라고 규정하였다. 2018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시행한 비만에 대한 국민인식도 조사에 따르면, 비만이 질병임은 알고 있으나 그 관리의 책임 주체를 환자의 본인으로 인식하는 정도가 높다는 분석결과를 알 수 있다. 특히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고도비만 인구는 1.6배, 초고도비만 인구는 2배가량 증가하였으며, 부의 상징이던 비만이 어느새 빈곤층의 대표적 질병 중 하나로 꼽히면서, 정신적 질환까지 동반하는 점점 더 치료가 어려운 병이 되었다. 사실 비만의 원인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과도한 영양공급과 운동부족 외에도 유전적 요인, 스트레스, 질병 등 다양하지만, 그들은 단지 뚱뚱한 사람이 아닌 치료받아야 된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그저 의지 약하고 식탐 많은 게으름장이라는 무지와 편견이 만연하다. 2012년부터 시작된 고신대병원의 비만수술은 올해 보험 급여화가 되면서 수술의 수가 점차 늘고 있다. 위장관외과의 전담간호사로 5년째 일 하면서 보아온 위암환자들은 암에서의 해방과 생명연장에 대한 간절함으로 수술하는 분들인데, 고도비만 환자들은 움직이기 귀찮으며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살찐 게으름장이들이 살 빼기 위해 수술하는 일명 가짜환자들처럼 보였다. 그러던 2018년 어느 날 온몸에 문신이 가득했던 당뇨, 고혈압, 천식을 앓고 있고, 심장혈관스텐트도 두 개나 넣었다던 50대 남자환자가 외래진료실에서 교수님께,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건데 수술이라도 한번 받아보렵니다. 교수님이 나좀 살려달라”고 간절히 빌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 사람들도 환자구나, 정말 절실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들은 마취에 대한 어려움과 위험이 일반환자보다 더 크기 때문에 수술에 거의 목숨을 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는 말은 지금 생각해도 참 슬프고 암담한 말이었다. 고도비만 환자들에 대한 첫 애착과 달라진 시선은 아마 여기서 시작되지 않았나 싶은 정도, 당시 나는 정말 충격을 받았다. 그전까지 나는 수술하고 퇴원하면 당연히 알아서 살이 빠지겠지, 심지어는 저렇게 살이 찔 때까지 뭐하고 살았을까.. 하는 한심한 시선을 바라본 적도 없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요즘은 숫자상의 체중감량 뿐 아니라, 동반질환의 많은 약을 끊고 삶의 질이 향상된 그들의 밝게 웃는 모습을 보면서 아주 묘한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 사실 비만 환자들의 대부분이 수술을 받는 이유는 단순한 체중감량이 아니며, 미용적인 성형은 더더욱 아니다. 바로 삶을 위협하는 다양한 동반질환의 개선이 주목적이다. 감기에 걸리면 감기약을 처방받고, 위암에 걸리면 위를 잘라내는 것이 당연한 치료인 것처럼, 고도비만이라는 질환에 걸린 환자들에게 이 수술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효과가 좋은 치료인 것이다. 지금 찾아오는 환자들은, 그나마 주변인의 지지로 용기를 낸 분들이 많지만, 아직도 외래에 처음 오는 비만환자들은 병원에 들어서면서부터 병원을 나갈때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을 견뎌야만 하며, 그속에는 편견에 휩싸인 의료진의 시선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아픈 사람을 보고 비웃거나, 멸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픈건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으름장이에서 치료가 절실한 환자로 나의 관점이 바뀐 것처럼, 사회 구성원들의 부정적 시선이 바뀌게 된다면, 그들의 병원을 찾는 첫 발걸음이 조금 더 가벼워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고도비만은 스스로 치료하기 어렵고, 반드시 의사의 처방과 치료가 필요하며, 고도비만인 유발하는 다양한 질환 중에서 무호흡증, 천식, 심뇌혈관질환의 경우 그 즉시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아주 위협적인 질환이다. 그런 환자들에게 이 수술은 창피해서 또는 누군가에게 폐가 될까봐 세상밖에 나오지 못하는, 언제 죽을지 몰라 늘 조마조마한 삶은 사는 그들을,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하고 또 병이 나을 수 있게 하는 유일하고도 매우 효과적인 치료법이라는 것에 더 이상의 부연설명은 필요 없다. 다양한 질환을 동반한 고도비만 환자들에게 전담간호사 혹은 코디네이터는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 줄 수 있는 친구이자 동생, 가족 같은 역할이어야 하며, 학문적 고민을 하는 많은 의사선생님들과 같이 의료진의 관점에서, 한편으론 가족의 관점에서 환자를 관리하고 지킬 수 있어야 한다. 환자 뿐 아니라 가족구성원까지 교육대상자로 포함하여 수술 준비과정과 치료과정, 수술 후 변화된 생활에 대해 환자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그들이 주체적이고, 긍정적이며 능동적으로 바뀔 수 있도록 이끌어 내는 것이 비만수술 전담간호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인 것 같다. 미국에 bariatric nursing이라는 분야가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당장은 어렵겠지만, 앞으로 우리나라도 공인된 학회의 체계적 수련을 받은, 비만환자와의 면담기술을 충분히 익히고 공감할 수 있는 감성을 지닌, 검증된 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이러한 발전은 고도비만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있어 매우 긍정적인 질적향상을 가져올 것이다. 고도비만치료에 있어 유일하게 장기적으로 효과가 있는 것은 수술뿐이다. 고도비만환자들은 그런 유일한 치료법을 찾아 창피하고 두렵지만, 살기위해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이곳을 찾아온다. 그렇게 그들이 손을 내밀었을 때 좁게는 의료진들만이라도, 넓게는 사회구성원들 모두가 잘못된 편견을 버리고 비만은 질병임을, 그리고 그들은 치료가 매우 시급한, 고도비만이라는 매우 위협적인 질병에 걸린 환자들이라 생각하고 따뜻한 시선을 보낼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인식이 변화되기를 기대한다. Obesity is not a sin, obesity is a dis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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