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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2022 재개봉/2023.03.01. 장르/액션/코미디 국가/미국 등급/15세이상관람가 러닝타임/150분 감독 :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출연 : 양자경(에블린 왕), 스테파니 수(조이/조부 투파키), 키 호이 콴(웨이먼드 왕) 1. Everything 모든 것이 엉망이다. 삶이 뒤엉켜 버렸다. 미국으로 이민 와서 온갖 고생을 다 겪으며 살았다. 세탁 일을 하는 동안 별의별 일을 다 겪었다. 세탁이 맘에 안 든다며 돈을 내지 않는 손님, 옷감이 상했다며 물어내라는 손님, 이런 저런 일을 다 겪었다. 게다가 지금은 세무서, 이 깐깐한 직원은 온갖 잔소리를 하며 서류를 보완해 내라고 요구한다. 어쩌란 말인가? 그래도 살만했다. 에블린은 가족을 생각하면서 견뎌냈다. 다소 융통성이 없이 착하기만 한 남편, 가끔 속을 뒤집어 놓지만 사랑스런 딸 그리고 묵묵히 자리를 지켜 준 아버지 때문에 견뎠다. 가족은 그녀에게 희망이었고 삶을 견뎌내는 힘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착하기만 한 줄 알았던 남편이 이혼 소송 장을 내민다. ‘당신하고 더 이상 못 살겠다, 당신은 일 밖에 모른다. 나에게 관심도 없다.’고 같잖은 이유를 들이댄다. 딸은 미국 여자 아이를 데려와서 굳이 가족들에게 소개하겠단다. 자기는 동성애자라고, 여자 친구랑 결혼하겠다고 한다. 잘 지켜왔던 세탁소는 세무관련 법적으로 몇 가지 문제가 생겨서 골칫거리다. 한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첩첩산중이라더니 내 삶이 그렇다. 이렇게 모든 것이 한 꺼 번에 내려앉다니. 2. Everywhere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려는 시점에 이상한 일이 생겼다. 세무서에 앉아 있던 에블린에게 이상한 모습을 한 남편이 등장한다. 분명 소심한 남편인데 무언가 다르다. 알 수 없는 괴한들이 공격을 가하는데 남편이 다 물리친다. 그리고 에블린은 남편의 손에 이끌려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 남편의 말에 의하면 그는 다른 멀티버스에서 왔고, 엉망이 되어 버린 세상을 구하는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에블린 당신이 그 세계의 희망이라고 한다. 순간 다른 세계의 악당이 등장하는데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딸 조이 아닌가? 조이 라고 부르지만 그녀는 조부 타파키라면서 사정없이 에블린을 공격한다. 알고 있던 세상이 모두 달라졌다. 남편 에드먼드가 하라는 대로 엉뚱한 짓들을 하자, 에블린 역시 대단한 능력자로 변신한다. 그녀는 다른 세상에서 굉장한 실력자다. 어찌 되었건 그녀는 조부 타파키를 물리쳐야 한다. 에블린은 이 세상, 저 세상, 다양한 멀티 버스를 오간다. 에블린이 오가는 세상에서는 그녀의 과거가 펼쳐진다. 다른 세상에서 그녀는 다른 선택을 한다. 그녀는 멋진 영화배우며, 남편 에드먼드 역시 멋진 미남 배우다. 또 다른 세상에서 에블린은 화려한 무술 실력을 발휘하는 여 전사다. 멋진 투사가 된 에드먼드가 에블린에게 말한다. “당신은 스스로를 투사로 생각하겠지. 당신은 항상 긍정적인 내가 나약하다고 생각할 거야. 그런데 말야, 그게 내가 싸우는 방식이야. 부드러움은 살아남기 위한 내 전략이야. 내 삶에서는 나도 투사야.” 에드먼드의 말에 따라 에블린도 다정하게 싸우는 법을 익힌다. 억척스럽게 투사처럼 살아야만 하는 것이 아님을 배운다. 그렇게 모든 곳을 다니며 삶을 지켜나가는 에블린에게 최강의 빌런이 등장한다. 딸인 줄 알았지만, 그녀는 조부 투파키 – 우주의 최강 빌런이다. 조부 투파키는 베이글 모양의 블랙홀을 만들어 모든 것을 집어 삼키며 파괴해 나간다. 조부 투파키는 죽어 버리고 싶어서,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리고 싶어서 베이글(블랙홀)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실은 사랑 받고 싶었다는 고백이다. 일을 좀 내려놓고 나를 바라봐 주면 안 되냐고 외치는 딸의 투정이다. 3. All at Once 다시 삶이다. 멀티 버스에서 돌아온 에블린의 삶은 바뀌었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달라 보인다. 후회와 한숨으로 살아온 자신의 세탁소는 아름다운 곳으로, 답답하게만 느껴졌던 남편은 다정한 사람으로, 속 썩이는 딸은 사랑스런 아이로 다가온다. 꿈을 꾼 듯 멀티버스의 경험이 에블린의 삶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다. 모든 것이 달라졌고 새로워졌다. 달라진 것은 결국 에블린의 내면이다. 그녀는 진짜 투사로 거듭났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장착한 진짜 투사다. 가정을 지켜 온 그녀가 세상을 구한 영웅이다. 죽음의 포로수용소에서 지냈던 빅터 프랭클 박사는 말했다. “삶은 의미입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작은 빵 한 조각을 건네주던 동료에게서 그는 진정한 삶을 배웠다. 죽음은 희망의 상실이지만, 희망은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다. 빅터 프랭클은 삶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 가족 때문에 죽음을 이겨냈다. 월터 브루그만은 예언자적 상상력을 가지자고 역설한다. 현실은 불의와 악이 가득하다. 강대국에 의해 침략당한 채 포로 생활을 하는 중이다. 하지만 예언자들은 현실 너머의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었다. 그 나라에서는 사자와 어린 양이 함께 뒹굴며, 독사 굴에 어린 아이가 손을 넣어도 물지 않는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하지 않으며, 대립과 반목은 사라진다. 불화와 오해는 사라지고 사랑만이 존재한다. 그 나라는 나의 상상에서 현존한다. 아니, 믿음은 지금의 현실을 뛰어 넘어 그 나라를 살아가게 한다. 천국은 멀리 동떨어져 있는 곳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멀티 버스로 존재한다. 언젠가 그 나라로 충만해 질 때, 모든 것, 모든 곳이 한꺼번에 새롭게 될 것이다. 그 나라를 소망한다. 추신 : 멀티 버스는 존재하는가? 요즘 멀티 버스가 화두다. 영화사들이 앞 다투어 멀티 버스를 소재로 제작하고 있다. 마블은 일찍이 멀티 버스를 자신들의 세계관으로 채택하고 있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제목이 멀티 버스의 혼란이고, 스파이더맨에서는 다른 지구에서 온 주인공을 소개하고 있다. 로키라는 시리즈에서도 멀티 버스를 오가며 그들이 설정한 타임-라인을 혼란시키는 존재로 그린다. 그럼 멀티 버스(Multi-verse)라는 개념은 어디에서 왔을까? 갑자기 튀어나온 용어일까? 그렇지 않다. 콜럼비아 대학의 브라이언 그린은 자신의 저서 멀티 유니버스를 통해 이 이론을 소개하고 있다.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힘들지만, 어쨌든 이들 물리 천문학자들이 멀티 버스라는 개념을 도입한 이유는 빅뱅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빅뱅이 일어나 오늘날까지 우주가 서서히 팽창하면서 존재해 왔으나 그 원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론적으로 확증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꺼낸 것이 멀티-유니버스다. 즉 다중우주론이다. 우주는 유니버스(Universe)가 아니라 멀티버스(Multi-verse)라는 이야기다. 그 중 하나가 우리가 확인하고 존재하고 있는 이 우주라는 말이다. 다중우주를 설명하기 위해 이들은 우선 인플레이션 이론을 가져왔다. 빅뱅 이후 우주 초기에 공간이 엄청난 속도로 팽창했는데, 현재의 공간을 창출한 폭발 이외에 또 다른 폭발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고, 그 결과로 멀티 버스가 발생했다고 한다. 또한 끈 이론으로 다중우주를 설명하는데, 끈 이론은 한 마디로 우리가 살아가는 4차원 이외에 여분의 차원이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어쨌든 이러한 가설을 영화는 스크린에 녹여 내고 있다. 이들은 멀티 버스를 실재로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럼 정말 멀티 버스는 존재할까?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이를 증명하기 위한 가설을 가져오지만, 여전히 확인할 가능성은 없다. 또한 어떤 천문학자들은 말도 안 되는 공상 과학이라고 일축하기도 한다. 그럼 신학적으로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멀티버스가 신학적으로 가능할까? 그럼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 외에 또 다른 우주가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 외에 또 다른 메시야가 필요한 것인가? 그들은(만약 있다면) 죄를 지었을까? 아닐까? 복잡한 문제다. 다만, 성경을 읽어갈 때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차원과 다른 영역에 있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발견한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존재한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영역에 계시고 우리는 보이는 영역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땅으로 오신 존재다. 또한 성경의 인물들은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보좌가 있다는 것을 환상으로 보았다. 야곱은 하늘과 맞닿은 사다리를 보았고, 다니엘은 하늘 보좌를 보았으며, 예수께서 세례 받으실 때에 하늘 문이 열리고 성령이 임하셨다. 사도 요한은 하늘이 열리고 거기 하나님과 어린 양이 있는 것을 보았다. 또한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천사들의 존재를 인정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멀티버스에 존재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현 시점에서 말할 수 있는 정도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유니버스(Universe)의 다른 차원(Dimentions)이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더 높은 차원에 존재하시며 우리를 지켜보실 것 같다. 일찍이 에드윈 A. 애벗이 쓴 플랫랜드에서 그린 것처럼, 우리보다 높은 차원, 그것을 우리는 영원, 영적 차원이라 부를 수 있겠다. 정리하면 멀티버스라기보다 유니버스의 다른 차원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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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7
  • [기독교인문학] 작은교회에 보내는 위로와 연대
    이재학 지음 《우리는 날마다 교회가 무엇인지 묻는다》 이 책은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교회의 전성기가 저물고 교회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이때, 교회의 본질에 충실한 작지만 강한 교회를 표방하며 혁신적인 목회사역으로 작은교회의 롤모델이 된 하늘땅교회 이재학 목사의 육필 수기로 그의 성공비결은 말씀이 실제가 되는 건강한 교회론에 기반한 교회에 있다. 부름받은 공동체, 세움받은 공동체, 보냄받은 공동체의 3부로 구성된 본서에는 개척부터 현재까지의 목회 노하우가 240쪽에 빼곡이 수록되어 있다. 삶의 감동을 전하는 유쾌한 ‘소풍목회’, 하늘땅교회의 뼈대가 된 교회본질 목회와 공동체목회 이야기, 성도 100명이 되면 교회를 분리 개척시키고, 300명의 사역자를 훈련시켜 41개의 교회를 개척한 작은교회연구소의 사역을 통해 우리는 이제 한국교회의 희망을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 저자소개 ∥ 이재학 저자는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를 졸업하고,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에서 선교와 문화학교를 전공했다. 건강한 교회, 바른신학을 추구하는 목회자이자 개혁현장에 신학을 다시 써 가는 실천신학자이다. 오산에서 하늘땅교회를 개척하고 기존의 틀을 깬 혁신적인 목회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런 실험적 목회를 바탕으로 교회의 위기 시기에 교회가 교회를 세우고, 목회자가 목회자를 세우는 작은교회연구소를 설립, 작은교회의 멘토로서 목회에서의 경험을 나누며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다. ◇ 저서∥《큐틴즈》공저, 《베스트 다니엘서》, 《심방설교 핵심파일》 등이 있다.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교회, 다시 봄》 유재춘 지음 / 세움북스 / 2023 《하나님의 나그네 된 교회들에게》 김승환, 강영안 / 비아토르 / 2023 《센터처치》 팀 켈러 / 두란노 / 2016 《누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두려워 하는가》 제임스 K. A. 스미스 / 도서출판 100 / 2023 기독교인문학 〈52〉 작은교회에 보내는 위로와 연대 - 삶의 감동을 전하는 유쾌한‘소풍목회’이야기 - 교회의 사명 “교회의 사명은 사해가 아니라 갈릴리 바다처럼 주께 받은 사랑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교회는 기꺼이 축복을 유통하는 삶, 축복의 통로로 존재한다. 교회는 흘려보내는 존재다. 생명이 생명이 되도록 흘려보내는 주님의 사역이 선교다.” 하늘땅교회 이야기 김길구 한목협의 통계에 따르면 그동안 꾸준히 감소세를 이어 오던 한국 기독교인의 수가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2017년 기준으로 2023년 현재 15.0%인 275만명이 감소한 771만명으로 나타났고, 미래학자인 미래목회전략연구소의 최윤식 박사에 의하면 2050년이면 한국 기독교인 수는 400만으로 줄 것이라는 충격적 예측도 있습니다. 교회의 위기가 더욱 심각해 지고 있는 이때 올 1월 출간된 ≪우리는 날마다 교회가 무엇인지 묻는다≫의 저자이신 이재학 목사님을 모시고 개척교회 체험담을 중심으로 건강한 교회가 무엇인지를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이재학 경기도의 작지만 젊은 도시 오산에서 개척한 지 20여년 된 ‘하늘땅교회’를 섬기고 있는 이재학 목사입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현호 몇 가지 더 소개 드리면 목사님은 종손으로 치악산 절을 다녀 태어났다 하여 공양하는 불교 집안에서 자랐답니다. 부친을 따라 소를 돌보던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를 좋아해서 문학도를 꿈꾸는 청소년기를 보냈는데, 지금은 교회목회와 더불어 작은교회연구소 소장으로 계시면서 작은교회의 멘토로 활동 중이며 글쓰기와 강연 등으로 매우 바쁘신 분인데 내부해 주셨습니다. 개척 교회를 세우다 류지원 목회 얘기로 들어가 보지요. 목사님의 교회 이름이 재밌어요. ‘하늘땅교회’? 이재학 이름을 대면 교회의 위치가 지평선 끝에 하늘과 맞닿아 있는 곳인지 물어보곤 해요. 그런 공간적 개념보다는 ‘땅에서도 하늘을 지금, 여기서, 나부터 품고 살자’는 의미입니다. 김현호 개척교회를 하기 전에 교회론에 천착하셨는데 그 이유는? 이재학 선교와 문화학과를 공부할 때 학위논문의 주제가 교회론이었습니다. 김길구 책의 구성이 칼 바르트의 교회론의 부름받은 공동체, 세움받은 공동체, 보냄받은 공동체의 삼중구조로 되어 있군요? 이재학 내용은 전문가들의 신학적 서술한 것이 아니고 교회 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서로 꿈꾸는 교회가 다르더라도 교회의 본질과 씨름하며, 거기에 맞는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여,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하늘땅교회’의 속 사도행전의 여정 말입니다. 소풍목회 류지원 1부 중 흥미로운 대목은 ‘목회는 소풍이다’는 대목입니다. 목사님이 말하는 소풍목회는 어떤 것이죠? 이재학 저는 늘 감동이 메마른 이 세대에 삶의 감동을 이야기로 전해주는 목회를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어요. 날마다 성도들과 함께 나그네처럼 소풍을 떠나는 자유로운 목회를 하고 싶었던 거예요. 교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제가 바쁜 성도들을 다그치지 않아서 좋고, 나 또한 사색하고 글을 쓰고 읽는 것이 사역의 일부고, 여기저기 목회이야기를 나눠 달라는 곳에 설교하고, 교회를 다시 세워야 할 곳에 강의하거나 부흥회를 인도하느라 바쁘기도 해서죠. 그러나 소풍의 목적지는 항상 천국을 향해야지요. 땅에서 하늘을 품고 살아가는 소풍을 지금, 여기서, 나부터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 아닐까요? 본질 목회와 공동체 목회 김현호 목회에 있어서 목사님이 강조하시는 본질 목회와 공동체 목회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죠? 이재학 목회에 있어 교회론의 주요 뼈대는 중 하나는 본질 목회입니다. 교회의 기원이 무엇인지를 되새겨 보는 거예요. 가령 예수의 삶과 사역과 죽음과 부활을 보았던 초대교회는 다른 것 때문에 모인 것이 아니라 예수 신앙, 예수 정신 때문이지요. 이를 위해 그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이 첫 교회였습니다. 교회의 본질을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저희는 적어도 본질 목회라고 할 때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것을 자랑하지 않고 예수의 신앙, 예수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공동체 목회 이재학 그리고 또 하나는 공동체 목회입니다. 공동체를 뜻하는 community는 com+munus 즉 ‘함께’라는 com과 ‘선물’이라는 munus의 합성어로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이 되어 주는 의미를 담고 있죠. 지체로서 한 몸을 이뤄가는 공동체 목회를 뜻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 중에 하나가 공동체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공동체 목회는 생명의 예수 이야기, 신앙 이야기를 가까운 가족부터 지역으로, 자녀들에게 계승하여 나누는 데 있습니다. 건물이 아니라 우리가 배우고 나누었던 삶의 감동을 누군가에게 이야기로 들려주는 서사가 있는 교회, 희노애락의 사소한 것이라도 서로가 공감하고 공존, 공생하는 교회 말이죠. 작은교회연구소 김길구 목사님의 사역 중에 2009년에 작은교회연구소 설립이 인상적입니다. 교회가 교회를 세우고 목회자가 목회자를 세운다는 표어가 가슴에 와 닿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사역을 소개해 주시죠? 이재학 오래 전부터 저는 하나의 사명이 있었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일이죠. 그런데 교회는 혼자 세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하나님나라 관점에서 모든교회가 서로 손을 맞잡고 세워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지요. 제가 여기 저기 강의하고 돌아오면 우리교회에서 훈련을 받고 싶다는 분들이 생기고 이들을 외면할 수 없어 공동목회를 표방하며 동역자로 세워 주2회 정도 설교와 구역을 맡깁니다. 자신감이 들 때까지 하지요. 이러다 보면 우리교세보다 많은 인원과 재정이 들지만 성도들이 이해해 주시고, 동역자들은 자신의 목회처럼 훈련하다 독립하게 됩니다. 그동안 300명 이상이 참여하고 41개 개척교회가 세워졌지요. 이런 사례들이 알려지자 동남아를 비롯 일본 사역자들의 교류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현재는 초교파적으로 스무 분이 모여서 교회론을 연구하고 나눔을 통해 서로 연합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김현호 이들이 훈련을 마치고 교회를 개척하게 되면 연구소 회원들이 십시일반 인테리어 공사를 지원하고 필요한 성구와 장비, 비품들을 마련하는 등 뜨거운 연대의식을 자랑합니다. 귀한 사역이지요. 류지원 ‘하늘땅교회’는 성도가 100명 이상이 되며 매번 교회를 분리 개척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이재학 제가 개척할 당시는 교회세습, 대형교회의 비리 등 한국교회의 변질을 목격하던 시기였어요. 그래서 성도가 100명 이상이 되면 분리 개척시킵니다. 건물에 돈을 투자하거나 건물 관리를 위해 교회가 존재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려는 것이죠. 그렇다고 건물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김길구 시간이 없어 주마간산식으로 훑어보다 말았네요. 목사님의 조근조근한 목소리에 작지만 강한 혁신적인 목회활동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오는 5월15일은 석탄일입니다. 이웃종교를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자와 감수자가 대단한 분입니다. 정성민 교수가 짓고, 김영한 교수가 감수한 두란도 출판사의 최신작 《인간 붓다와 神 예수》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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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9
  • [영화] 부활 Risen
    부활 Risen, 2016 드라마 미국 107분 2016.03.17 개봉 감독 : 케빈 레이놀즈 주연 : 조셉 파인즈(클라비우스), 톰 펠튼(루시우스), 클리프 커티스(예슈아)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은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십자가와 부활이 기독교의 모체며 이로 인해 세상이 새롭게 되었다고 바울은 강력히 주장한다. 이 기초 위에 기독교가 세워졌다. 따라서 오늘 우리도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삶에 새기고 그 복음을 전하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예수님 당시에 십자가와 부활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우리 시대의 감상적 느낌과 달리, 십자가는 고대 사회, 특히 로마 사회에서는 수치 그 자체였다. 주지하듯 십자가형은 로마가 살인이나 무엇보다 로마 제국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킨 자를 처형하는 방식이었다. 십자가는 극심한 고통 및 수치를 주기 위해 행하던 방식이었다. 예수님만 십자가 형을 당한 것이 아니라 당시에 십자가 형은 빈번하게 이뤄졌다. 게르트 타이센 등의 신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주후 6년 경 갈릴리의 세포리스 지역에서 로마 제국에 대한 반란군이 일어났고, 시리아 주둔 로마군이 진격해 와서 반란군을 제압했고, 당시 반란에 가담한 유대인 남자 약 2천명을 십자가 형에 처했다고 한다. 따라서 십자가는 끔찍함이자 저주의 상징이다. 하지만 바울은 십자가가 우리의 자랑이라 말한다. 왜 그런가? 예수님의 십자가형은 다른 죄수들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자들이 자신들의 죄에 대한 형벌로 십자가형을 받았다면 예수님은 자기 죄가 아닌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형을 받았기 때문이다. 누가는 자신의 복음서에서 이 사실을 정교하게 묘사한다. 십자가형을 집행한 로마의 백부장의 증언을 기록한다. “이 사람은 정년 의인이었도다.” 마가는 그 백부장이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했다고 기록한다. 로마 백부장이 보기에도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다. 자신이 집행하던 그 어떤 죄수와도 달랐음을 그는 눈여겨 보았을 것이다. 십자가 형틀 위에서 자신과 타인을 저주하는 대신 예수님은 용서를 선언하셨다. 그 남다름, 그 위대한 선언에 백부장은 자신도 모르게 신의 아들로 인정하고야 말았다. 하나님의 아들, 이 부분이 중요하다. 로마 사람들도 ‘신의 아들’을 숭배했다. 어떤 이는 황제 가이사가 죽지 않았다고 했고, 네로가 부활했다고 믿기도 했다.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이 신의 현현이라 말했다. 만약 누군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다면 그는 진정한 신의 아들이자 세상의 통치자로 증명된다. 이것이 로마 사회의 중요한 인식이다. 이런 맥락에서 영화는 예수님의 부활을 추적한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활의 증인으로 등장하지만, 영화에서는 제자들이 아닌 제 삼자, 로마의 호민관 클라비우스를 부활의 증인으로 등장시킨다. 클라비우스는 총독 빌라도의 요청에 따라, 예수가 부활했다는 헛소문을 잠재우라는 명령을 듣고 조사에 나선다. 그는 예수님의 무덤부터 꼼꼼히 조사한다. 무덤을 지키던 병사들을 조사하고, 이어 부활을 증언하는 제자들의 비밀 공동체를 추적해 들어간다. 또한 클라우비스는 로마의 관료로써 골고다의 다른 시체들과 무덤들까지 정밀하게 조사한다. 혹시나 시신을 유기하고 거짓말 한 것이 아닌지를 검토하기 위함이다. 클라우비스의 목적은 분명하다. 예수의 부활은 엉터리며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후 영화는 클라우비스의 극적 체험을 다룬다. 제자들을 쫓던 클라우비스는 제자들 사이에 보이는 예수님으로 인해 놀라고, 자신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에 놀란다. 적을 적으로 여기지 아니하는 그들의 사랑에 놀란다. 결국 클라비우스 자신의 세계관이 무너진다. 그가 든 칼 뿐 아니라 그의 가치관 자체가 무장해제 된다. 로마의 정신 PAX ROMANA의 허상을 깨닫는다. 진정한 평화는 자기희생이요 사랑임을 체화해 간다. 그 과정은 영화를 통해 직접 보면 좋을 듯 하다. 영화 ‘부활’은 오늘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예수님의 부활을 꼼꼼하게 추적해 보았느냐고 묻는다. 의심의 터널을 거쳐서 확신의 빛에 이르렀냐고 묻는다. 이 과정이 중요하다. 우리는 예수님을, 예수님의 부활을 무작정 믿어서는 안 된다. 분명한 자기 확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바 부조리의 신앙의 과정을 거쳐야한다. 또한 영화 ‘부활’은 묻는다. 만약 부활을 의심 없이 믿는다면 당신은 클라우비스처럼 인생 전체를 걸 수 있냐고, 클라우비스처럼 칼을 버리고 사랑의 길로 갈 수 있냐고 묻는다. 로마의 장교였던 클라비우스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사도 바울 역시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삶이 극적으로 바뀐다. 사도 바울도 부활을 믿지 않았다. 그는 부활이란 마지막 날에 하나님이 온 세상을 심판하고 유대인을 세계 위에 세울 날 이루어질 일이라고 확신했다. 그 전에 누군가 부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분명히 죽었다고 여겼던 그 분을 만났다.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그 만남으로 인해 바울은 변화되었다. 그리스도인을 박해하고 부활을 전하고 다녔던 자들을 감옥에 가두었던 그가 도리어 십자가와 부활을 자랑하는 사도가 되었다. 오랜 후 예수님의 부활을 제대로 믿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소설 [죄와 벌]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전한다. 자신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고리대금업자 노파를 살해하고 자신의 죄를 숨긴 채 살아가지만, 결국 하숙집 소녀 소냐가 읽어준 요한복음 11장으로 인해 새롭게 태어난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라는 말씀 앞에 엎드렸다. 그의 양심이 살아나고 내면에서 새로운 삶이 살아났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즉시 경찰서로 향하여 자수하고 시베리아 형무소로 가는 길에 오른다. 하지만 그는 변화되었다. 죽었던 양심이 살아났다. 살았으나 죽었던 삶에서 거듭난 사람이 되었다. 시베리아 행을 오히려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라스콜은 부활의 사람이 되었다. 그는 죄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가 된 것이다. 부활의 주님을 믿는 삶은 죄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다. 얼마 후 또 한 명의 위대한 작가 톨스토이 역시 자신의 마지막 장편 소설 제목을 [부활]로 정한다.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는 소설에서 톨스토이 자신의 대역인 네흘류도프 공작은 복음서를 읽던 중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접한다. 그리고 네흘류도프의 내면은 부활의 주님에 대한 감격으로 벅차오른다. 네흘류도프는 자신의 영지를 소작농들에게 분배할 계획을 세운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은 자신의 종이 아니라 형제다. 형제 자매가 된 자들에게 네흘류도프 공작은 땅을 상속한다. 분배한다. 왜냐면 예수 안에서 하나 된 형제, 자매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내면의 부활은 외적인 변화로 이어진다.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자들은 극적인 삶의 변화를 경험한다. 클라비우스처럼 칼을 버리고, 사도 바울처럼 부활의 증인이 되고, 라스콜니코프처럼 진정한 회개에 이르게 되고, 네흘류도프처럼 형제애가 살아난다. 삶의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자. 나는 부활의 주님을 믿는가? 나는 부활의 주님을 만났는가? 그렇다면 나는 변화되었는가? 삶의 열매가 맺어지는가? 부활은 결코 형용사가 아니라 동사라는 것을 명심하면 좋겠다.
    • 문화
    • 영화
    2024-03-25
  • [기독교인문학] 포스트모더니즘과의 대화는 가능한가?
    제임스 K.A. 스미스의 누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두려워하는가? - 데리다, 리오타르, 푸코를 교회로 데려오기 - 20세기 후반부터 합리성에 기반한 근대적 사유를 비판하면서 예술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일기 시작한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단어가 한동안 맹위를 떨치다 요즘은 조금 잦아들고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영향력은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내려 우리 삶의 일부로 일상화된 느낌이다. 저자는 포스트모던적 근대성 비판에서 일종의 동료의식을 가지고 기존의 질서와 토대를 해체해 가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거두 삼인방의 핵심논제(텍스트 바깥에는 아무 것도 없다-데리다, 메타내러티브는 모두 사라졌는가?-리오타르, 권력/지식/훈육 –푸코)를 예리한 통찰력으로 소개, 분석하고 대화를 모색하고 있다. 딱딱한 주제를 매 장 서두에 소주제에 맞는 영화를 선정하여 해설함으로써 이해를 높이고 있다. ◇ 저자소개 ∥ 제임스 K. A. 스미스 James K. A. Smith 캐나다 출신으로 워털루대학교와 엠마우스성경대학을 졸업하고 기독교학문연구소(철학 석사)와 빌라노바대학교(철학박사)에서 수학했다. 현대프랑스 사상을 연구하고 아우구스에서 칼뱅, 에드워즈와 카이퍼에 이르는 신학적 문화 비평의 전통에서 영향을 받은 그는 철학, 신학, 윤리학, 미학, 과학, 정치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학계와 사회와 교회를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통해 이 분야의 선구적 사상가로 평가를 받는 등 대중 지식인이자 문화 비평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 저서∥《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라》, 《왕을 기다리며》, 《습관이 영성이다》 등이 있다.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철학한다는 것》 표정훈, 강영안 / 홍성사 / 2021 《현대사상입문》 지바 마사이 / 아르테 / 2022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우치다 타츠루 / 갈라파고스 / 2010 《포스트모더니즘의 이해》 스탠리 그렌치 / WPA / 2010 기독교인문학 〈50〉 포스트모더니즘과의 대화는 가능한가? - 열린대화와 비판적 전유 - 근대성에 대한 포스트모던적 비판에 주목 “그리스도인이 근대성에 대한 포스트모던적 비판에서 동맹을 찾을 수 있으며, 이러한 비판은 교회가 인간 번영에 대한 성경의 비전과 일치하지 않는 근대성과 공모해 온 방식을 깨닫도록 돕는 치료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포스트모더니즘은 다가올 왕국을 갈망하는 고대의 하나님 백성이 되는 방법을 기억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김길구 저번 호에 다룬 R.C. 스프로울의 ≪서양철학 이야기≫는 사상가들의 이름만 나열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어 죄송하기도 하고 아쉬웠는데, 다행히 이 논의를 이어갈 책이 눈에 띄어 급하게 선정했습니다. 작년 8월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와 도서출판 100이 우정의 연대를 통하여 새롭게 재번역하여 출간된 ‘데리다, 리오타르, 푸코를 교회로 데려오기’란 부제가 붙어있는 ≪누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두려워하는가?≫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책입니다. 김현호 이 책은 2006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서는 2009년에 살림출판사에 의해서 소개되었으나 최근 탄탄한 인문학적 훈련과 사유를 겸비한 종교개혁자 에라스무스의 전통을 이어 인문학과 신학 양자 간의 자유로운 대화와 비판적 전유를 목표로 한 에라스무스 총서 중에 하나로 최근 기획 출간된 책입니다. 류지원 이 책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역사적 그리스도교 및 정통의 역사와 양립될 수 없다는 선입견을 가진 복음주의 교인들에게 포스트모더니즘의 비판적 분석을 통하여 그 위험성을 지적하면서도 그리스도인이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근대성과 탈근대성 사이에는 상당한 영속성이 있지만 탈근대성과 포스트모던니즘 사이에는 불연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화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 책은 그 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김길구 우선 용어의 정의부터 얘기해 보죠? 우선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은 계몽주의 이후에 나타난 모더니즘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나타난 철학의 흐름이요, 문화적 현상을 말합니다. 주로 1960년대부터 1990년대의 프랑스 철학자들이 주축이 된 현대사상을 말해요. ‘포스트’라는 접두어에는 ‘후기’나 ‘탈’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 연속의 의미와 단절의 의미가 같이 있어요. 류지원 현재 두 가지 맥락에서 사용된다고 보면 됩니다. 하나는 새로운 예술 사조를 지칭하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합리성에 기반한 근대적 사유를 비판하면서 여기에 맞선 개념으로 등장한 사상적 흐름을 말해요. 이 둘은 모두 근대성에 대한 반성이라는 점에서 같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여러 갈래도 많고 너무 복잡하고 난해합니다. 김현호 저자는 이 책에서 탈근대성은 문화현상의 집합을 가리키는 반면 포스트모더니즘은 20세기 후반의 철학적 흐름을 가리키는 용어로 구분해서 쓰고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거장들 김현호 제가 맡은 철학자는 2장에 나오는 ‘텍스트 바깥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핵심적 명제를 남긴 데리다 입니다. 데리다는 텍스트를 작성한 저자의 정체성과 의도는 그 텍스트의 해석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며 나아가 그 텍스트 속에는 어떤 식이든지 불변의 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는 ‘해체이론’을 펼쳤습니다. 텍스트 독해에 있어서 작가의 전기적 사실과 작품의 역사적 사회적 배경 등, 텍스트 외부를 일체 고려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텍스트만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 텍스트가 지닌 모순, 다의성 등을 드러내어 하나의 의미로 독해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텍스트의 한계를 드러내고, 텍스트에 편입하지 않은 타자성과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데리다의 텍스트의 해석과 연결되는데 텍스트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주장은 모든 것이 다 텍스트라는 말로, 이 말은 모든 것이 책이라거나 우리가 거대한 모든 것을 에워싼 책 안에 살고 있다 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은 경험하려면 모두가 다 해석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성경텍스트 너머에 있는 역사적 사실의 객관성을 확신할 수 없으므로 성경 중심성을 강조하는 교회의 입장과 다르며, 따라서 교회는 그 텍스트를 통한 성경의 내적 역사에 치중해야 합니다. 류지원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던의 조건>이란 책에서 근대이성이 기반하고 있는 ‘큰 이야기’(거대담론)의 효과가 상실됐음을 선언했는데요. 그의 핵심 명제 ‘메타내러티브를 불신하라’는 것의 참 의미는 이념이나 이데올로기, 자유, 구원, 계급, 진리 같은 큰 이야기를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포스트산업사회에서는 한 가지의 진리, 한 가지의 이념에 기반한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고 유효하지도 않다는 주장 때문입니다. 근대이성이 구축한 서양철학은 그 큰 이야기 속에 보편성과 절대진리를 표방함으로써 이성 그 자체에 내재하는 폭력성을 은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념의 이름으로 치러진 전쟁, 종교의 이름으로 치러진 전쟁을 우리는 자주 보았기 때문이죠. 이에 반해 저자는 서사와 내러티브를 구분하면서 기독교를 보편적 이성으로 입증 가능한 진리와 사상의 체계로 간주하는 근대적 기독교 이해에 반대하여 기독교의 계시는 본질상 서사라며 계시가 이야기의 형태로 주어진 것은 신앙의 핵심적 과제가 진리에 대한 입증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 속에 참여하여 세상을 향해 복음의 이야기를 살려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포스트모던 교회는 성경의 내러티브를 중심으로 이야기 하는 교회일 뿐 아니라 살아내는 것입니다. 우리의 스토리텔링은 우리가 이야기를 살아냄으로서 뒷받침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진정한 예배는 구도자에게 다가가는 것과 성도를 세우는 것입니다. 김길구 푸코가 말한 ‘권력은 지식이다’라는 주장은 근대사회의 기반에는 그물망처럼 촘촘한 권력관계가 작동하고 있으며, 이런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힘은 지식체계라는 거예요. 국가는 법률이나 규칙 등 외부의 제도뿐만 아니라 훈련으로 형성된 도덕과 윤리로도 국민을 지배한다는 것이죠. 우리는 자율적으로 그것이 좋은 일이므로, 혹은 도덕적임으로 자연스레 행동한다지만 그것도 훈련을 통해 학습된 새로운 지배형태라는 것입니다. 마치 정상인이지만 정신병원에서 길들여지는 과정과 권위주의에 맞서서 자유를 찾아 탈출하는 내용을 다룬 영화 <뻐꾸기 둥지 위를 날아간 새>처럼 이러한 담론을 생산하고, 통제하고, 선택하고, 조직화하고 배분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은 스스로 ‘규율의 내면화’와 보이지 않은 권력을 통하여 자율적인 순종을 강요하는 체계에 숙련됨으로써 권력의 체계를 받아들이고 이때 지식의 주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저자는 그리스도인은 훈육을 통한 통제와 형성을 인정하면서도 권력의 부정적인 측면인 억압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소비문화의 훈육에는 거부하고, 성경적인 대안, 전통적인 교회의 훈육방법인 영성훈련과 봉사활동 등은 활용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적인 대안문화를 실천하는 제자도의 삶을 살려면 성화의 연습을 통해 훈육되어야 합니다. 훈육을 통한 형성이 구조적으로 선함을 인식하고 기도와 금식, 묵상, 검약, 단순한 삶의 영적 훈련 전통을 회복하고 몸의 의례를 통하여 영혼을 빗어내는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고 합니다 김길구 이머징교회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책의 마무리인데 아쉽습니다.그동안 두 차례에 걸쳐서 ≪서양철학이야기≫, ≪누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두려워 하는가?≫란 책을 통하여 철학과 신앙에 대한 문제를 다루어 봤습니다. 이를 통해서 지금 여기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상을 둘러보고 사유하는 힘을 길러보았습니다. 낯선 경험이었습니다. 3월은 사순절 기간이라 경건한 삶을 실천한 열여덟 분의 일대기를 다룬 이정후 교수님의 ≪기독교 영성이야기≫란 책을 선정했습니다. 신앙과지성사가 10년전에 발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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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4
  • [영화] 크리에이터
    크리에이터 The Creator, 2023 개봉 2023.10.03./ 장르 SF/액션/국가 미국/등급 12세이상관람가/러닝타임 133분 감독 : 가렛 에드워즈 출연 : 존 데이비드 워싱턴(죠수아), 젬마 찬(마야), 와타나베 켄(하룬), 매들린 유나 보일스(알피) 멀지 않은 미래, 미국 LA에 핵폭탄이 터졌다. 100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일은 인공지능 로봇이 저지른 것으로 알려지고, 국방부는 인공지능 로봇과의 전면전을 선언한다. 무엇보다 인공지능 로봇의 설계자인 니르마타를 찾아 제거하는 일이 급선무다. 이 특별 임무에 죠수아 병장이 투입된다. 죠수아는 니르마타의 근거지로 예상되는 마을에 잠입하고 거기에서 마야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어느 날 특수 부대가 쳐들어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마야는 생명을 잃는다. 실의에 빠져 있는 죠수아에게 앤드류 대령이 찾아오고 마야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마야는 니르마타의 측근이며 그들은 인류를 멸망시킬 가공할 무기인 A. I. 로봇을 개발 중이라고 전한다. 마야를 살리고 싶다면 니르마타를 제거하고 그들이 개발 중인 로봇도 제거하라는 명령을 죠수아는 받아들인다. 죠수아는 다시 한 번 이들의 본거지로 침투하고 거기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던 비밀을 듣게 된다. 인류를 멸망시킨다는 무기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로봇 알피였고, 니르마타가 설계한 로봇 알피는 오히려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것을 위해 만들어진 평화의 상징이었다. 가렛 에드워즈의 신작 크리에이터의 내용이다. 영화 크리에이터는 우리에게 몇 가지 생각거리를 던진다. 우선, 크리에이터는 올해의 화두였던 챗 GPT의 연계선상에 있다. 세계는 인공지능의 등장과 발달과정을 눈여겨보고 있다. 아울러 인공지능과 로봇의 결합에 온통 관심이 쏟아진다. 일찍이 터미네이터라는 영화가 던졌던 스카이 넷의 세상이 올지 모른다는 우려가 쏟아진다. 이 영화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다. 기술은 발전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결합한 형태, 영화 크리에이터에 등장하는 로봇들이 멀잖아 우리 삶에 공존할 가능성이 있다. 영화가 던진 질문은 이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형태의 로봇은 인류에게 이로운가? 해로운가? 그들은 인류의 친구인가? 적인가? 우선 영화에서 앤드류 대령으로 대표되는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이들을 적으로 규정한다. 인공지능 로봇은 장차 인류를 멸망시킬 대상으로 여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생각, 이런 설정을 할까? 일찍이 칼 세이건은 자신의 책 [코스모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구 문명이 악의에 찬 외계 문명과 만났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걱정할 필요조차 없다. 그들이 살아남았다는 자체가 동족이나 다른 문명권과 잘 어울려 살 줄 아는 방법을 이미 터득했음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다스리고 남과 어울려 살 줄 모른다면 그렇게 오랜 세월을 견뎌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외계 문명과의 만남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의 후진성에서 유래한 것이다. 우리의 공포감은 우리 자신의 죄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잘 알고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한 문명이 그보다 약간 선진적인 또는 약간 후진적인 문명에게 철저하게 파괴당하는 야만적 상황을 우리는 여러 차례 목격했다. 콜럼버스와 아라와크 족의 만남이 그랬고, 코르테스와 아즈텍이 그랬다. 우리는 저들도 우리와 같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외계 문명과의 조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외계인의 성간 함대가 우리 하늘에 나타났을 때 우리가 그들과 잘 화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칼 세이건의 우려처럼,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가상의 적을 선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의 눈에 낯선 존재들은 잠재적 적으로 규정된다. 비단 외계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미국인들은 자신들과 다른 제3세계의 사람들을 잠재적 적, 잠재적 악으로 여긴다. 그리하여 과도한 방어기제를 발동한다. M. D.전략(미사일 방어체제)도 그 중 하나이지 않은가? 여전히 흑인들이나 동양인들은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에드워즈의 영화에 등장하는 앤드류 대령과 특수부대원들은 로봇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악의 씨앗 자체를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 반면 죠수아 병장은 중립지대에 있다. 그는 앤듀류 대령의 명령을 따라 로봇들을 파괴하기 위한 작전을 펼친다. 하지만 로봇들과의 조우, 대화를 통해 그의 생각에 전환이 일어난다. 특히 미국이 가공할 무기라 여겼던 로봇 알피와의 조우는 죠수아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실제로 알피는 평화의 상징이었고, 알피는 모든 적대적 생각을 극복하는 힘을 가진 로봇이었다. 그렇게 설계되어 있었다. 죠수아 병장처럼 우리에게도 이런 접촉이 필요하다. 다른 문명 혹 타인에 대한 대부분의 적대적 생각은 직접 대면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의 우려에서 비롯된다. 만나보면 달라질 수 있다. 가다머의 주장처럼 우리는 우리만의 선입견에서 비롯된 선이해구조를 가진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가다머는 지평융합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평융합은 만남과 대화를 통해 일어난다. 이슬람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인 ‘인샬라’( In Sha Alla)처럼, 긍정인지 부정인지는 상대방이 아니라 나의 내면에서 일어난다. 내가 긍정으로 여기면 상대는 긍정으로 다가오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또 하나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영화 크리에이터가 보여주는 로봇들은 하나님의 창조물인가? 아닌가? 유발 하라리가 말한 호모 데우스인가? 호모 마키나인가? 신학자 페트릭 세리는 위고의 말의 빌려 이렇게 말한 적 있다. “자연은 하나님의 즉각적 창조물이고, 예술은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을 통해서 창조하시는 일이다.” 부언하면 자연이 하나님의 직접 창조물이라면 예술 혹 기술은 인간을 통한 간접 창조물인 셈이다. 이마미치 도모노부는 단테의 신곡을 강의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요컨대 진정한 시인은 자기가 아니고 신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어로 ‘신 안으로 들어간다’는 말을 ‘엔토우시아모스’라고 한다. ‘엔 en’은 영어 ‘인 in’, ‘토우 thou’는 ‘테오스 theos’에서 유래했으므로 ‘신 god’이다. 시인이 시를 창조할 때는 ‘신 안의 존재 das – In – dem – Gott – Sein’다.” 이렇게 볼 때 로봇은 신의 영감을 받은 인간의 창조물이라 할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신의 2차 창조물이자 간접 창조물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따라서 신의 창조 자체는 선하므로 신의 2차 창조물인 로봇도 선하다 볼 수 있다. 문제는 이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태도 아닐까? 영화 크리에이터에 등장하는 장면처럼 알피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알피를 이용해 오히려 세계를 통합하려는 앤드류 대령이 문제 아닐까? 또한 우리는 생각해 볼 거리가 있다. 이러한 인공지능 로봇에게 영혼이 존재할까? 물론 현대 뇌과학의 담론은 인간에게조차 영혼이라는 실체는 없다고 주장한다. 단지 뉴런의 현상일 뿐 정신이나 영혼도 화학 작용일 뿐이라는 주장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신학 전통, 특히 아우구스티누스를 따르는 전통에 의하면 신은 두 가지 방식으로 세상을 창조하신다. 재료를 창조하셔서 그 재료가 물질을 형성하게 하신다. “신이 처음 원질료(재료)를 창조했다. 그러한 질료로부터 갖가지 힘에 의해 물(物)이 형성되었다. 따라서 일체는 신에 의해 창조된 것과 신에 의해 창조된 힘으로부터 형성된 것이다. 여기에 창조와 형성의 기본적인 구별이 행해진다. 다시 말해, ‘밖에 드러나는 현상’과 ‘그 배후에 있는 것’ 두 가지가 있다는 사고방식이 여기에 드러난다. 그러므로 질료 materia와 형상 forma 는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이런 가르침에 따르면 인공지능 로봇, 크리에이터에서의 알피는 질료와 형상을 가진 셈이다. 신의 일차적 창조와 이차적 창조의 산물이다. 하지만 인간의 영혼은 부모를 매개로 태어날 때 신이 부여하신 것이라고 신학은 가르친다. 이런 신학 전통에서 볼 때 실제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과 유사한 정신 활동을 할지라도 그들에게 영혼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인공지능 로봇은 구원의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영화 크리에이터가 보여주는 알피의 창조자 니르마타가 하나님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영화 크리에이터는 이처럼 우리에게 질문들을 던진다. 우리는 인공지능 로봇의 등장에 지나친 우려를 할 필요가 없다. 그것 또한 하나님의 선한 창조물에 속하기에 우리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또한 인공지능 로봇은 하나님의 직접 창조물인 인간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도 기억하자. 오직 인간만이 영혼의 담지자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러하기에 인간인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와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창조하신 사물들을 잘 관리하고 보존하고 지켜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구원받아야 할 궁극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타락한 죄성은 창조세계와 창조물을 자신의 욕망의 도구로 변질 시킬 것이기에. 구원받아 회심한 영혼이어야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잘 관리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창조물이자 동시에 하나님의 창조물을 관리할 사명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잘 기억하는 것 – 이것이 영화 크리에이터가 우리에게 던지는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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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2
  • [기독교인문학] 세상을 보는 틀, 철학
    R.C 스프로울의 《서양철학 이야기》 거대담론이 사라지고 가벼움이 판치는 철학이 홀대받는 이 시대에 고대의 철학자부터 현대의 다윈과 프로이트에 이르는 인류에게 큰 영향을 끼친 사상가와 철학자들의 삶과 사상을 평신도들이 알기 쉽도록 안내하는 서양철학 입문서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삶의 자리에서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대부분의 사상을 진지한 검증 없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의 발자취를 함께 걷다 보면 우리의 사고와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뒤돌아 보게 된다. 현대철학의 신들은 ‘기독교의 살아있는 신을 철학적으로 분해해서 태어난 단순한 부산물’이라는 에티엔 질송을 지지하며, 칸트와 아퀴나스의 손을 들어 주고 있다. ◇ 저자소개 ∥ R.C. 스프로울 개혁주의 신학계를 이끈 저명한 신학자로 딱딱하게 들리는 성경교리를 명쾌한 논리와 적절한 예화로 풀어내는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 낙스신학대학교 등 여러 주요 신학교에서 신학과 변증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오랫동안 플로리다주 세인트 앤드루 채플에서 말씀을 전했다. 평생을 각종 강의와 콘퍼런스, 방송과 저술 활동으로 교회를 섬겼다. 1994년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비평가들이 뽑은 ‘신앙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학자’ 3위로 선정되었으며, 리고니어 선교회를 통하여 많은 사람에게 기독교 진리를 알리려고 노력했다. ◇ 저서∥《모든 사람을 위한 신학》와 《구원》, 《성령》 등 90여권이 있다.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강교수의 철학이야기》 강영안 지음 / IVF / 2001 《철학한다는 것》 표정훈, 강영안 / 홍성사 / 2021 《현대사상입문》 지바 마사이 / 아르테 / 2022 《푸코,바르트,레비스트로스,라캉 쉽게 읽기》 우치다 타츠루 / 갈라파고스 / 2010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주현성 / 더좋은책 / 2013 기독교인문학 〈44〉 세상을 보는 틀, 철학 - 사상의 흐름을 검증하고 분별해야 - 현대 철학의 정의 “에티엔 질송은 현대 철학의 신들을‘기독교의 살아있는 신을 철학적으로 분해해서 태어난 단순한 부산물’이다.’” 철학에 얽힌 이야기 김길구 오늘은 「생명의 말씀사」가 2002년에 첫판을 낸 이후 21년 만에 개정판을 낸 《R.C. 스프로울의 서양철학 이야기》입니다. 개혁주의 대표 신학자가 꿰뚫어 본, 우리 세계를 형성한 사상의 본질이란 수식어가 제호 위에 있습니다. 이 책과 함께 2001년도 출간된 근대 철학자 9명을 조명한 강영안교수의 《강교수의 철학이야기》도 함께 참조하시면 좋겠습니다. 20년이 넘은 오래된 책이지만 국내에서 두 책의 초판이 거의 같은 시기에 나왔던 책입니다. 김현호 서두에 있는 1959년 여름방학 때의 아르바이트 경험담이 인상적이었어요. 이과를 전공하는 친구들은 쉽게 괜찮은 일자리를 잘도 얻는데 철학전공자인 그가 겨우 얻은 직장은 한 병원의 관리원으로 최저 시급의 비숙련 노동자였어요. 하루는 주차장을 청소하던 중 같은 일을 하는 50대의 청소부를 만나서 통성명을 하다 자신이 철학을 전공한다고 했더니 반색을 하며, 철학자들에 대한 질문을 쏟아놓더라는 거예요. 그 질문들이 예사롭지 않아 알아보니 그는 독일 출신으로 베를린에서 철학교수로 있다가 히틀러가 이끌던 나치당에 붙잡혀 해직된 후 ‘위험한’ 사상을 가진 반체제 인사로 찍혀 아내와 아들은 처형되고 자신과 딸은 간신히 미국으로 망명을 했다는 거예요. 왜 강단에 서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와 그의 가족은 히틀러의 사상이 위험하다는 것을 예견했고 그들 역시 나의 철학이 그들의 체제를 위협한다고 생각하고 취한 조치로 우리 가족의 삶이 송두리째 망가져서 다시는 강단을 포기하고 딸만을 위하여 살고 있다며 눈물을 흘리더라는 거예요. 류지원 책을 읽으면서 철학과 신앙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어요. 한 예로 초대교회 시대에는 신앙을 정당화하기 위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고대 헬라철학을 활용하여 교리의 뼈대 세우는데 공헌한 예라든지 스토아 철학은 기독교 윤리를 정교하게 이론화하는데 도움을 줘 안셀무스는 논리학,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활용하여 이 시기를 신학대전을 집필 중세철학과 신학의 거두가 된 예 같이 지금도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고대 그리스 사상 김길구 책속으로 들어가 보죠. 독일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를 ‘축의 시대’라고 했어요. 이 시기에 멀리 떨어져 교류도 없던 지역에서 미래의 철학자와 종교에 영향을 미친 사상가들이 나와 사람들의 관심을 신화에서 자연으로 돌리고, 자연과 도덕의 보편성을 추구하기 시작해 그때부터 인간은 '이성'과 '인격'을 가진 존재로 바꿔가기 시작했는데, 야스퍼스는 이러한 변화를 '정신화'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비로소 정신적 존재로 변화했다는 뜻입니다. 고대시대의 대표적 철학자는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현호 서양의 모든 철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플라톤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는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추구한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에 대한 믿음을 ‘관념’ 즉 이데아 사상을 통해 변화하는 현실과는 다른 영원불변성을 구현해 냄으로써 현실주의자이자 이상주의자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류지원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을 집대성한 인물로 철학자라는 호칭을 받는 인물로 부동의 원동자라는 개념의 신 이해는 훗날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에 영향을 주나 윌 듀란트는 이에 대해 그의 신은 ‘군림은 하되 통치하지 않는 왕’이라는 비아냥을 주기도 했습니다. 근대의 철학가들 김길구 중세는 서양이 그리스도교로 통일된 시기입니다. 고대와 중세, 중세와 근세의 시대구분은 서로마와 동로마제국의 멸망을 기준으로 나누는데 이 시기에 활동한 철학자는 이 책의 별명을 제목을 따라 은총의 박사 아우구스티누스와 천사 박사인 토마스 아퀴나스인데요, 뒤에 다루기로 하고요, 근대의 철학자부터 해보죠. 본문에는 데카르트부터 프리드리히 니체까지 7명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류지원 소크라테스부터 시작된 철학은 플라톤에 이르러 보편이란 실재론을 만들고 진리를 이성으로 이해하고 신과 이성이 하나로 보던 관점이 오컴의 면도날에 의해 유명론이 힘을 얻으면서 신학과 철학이 분리되는 시기가 근대입니다. 신학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철학, 신앙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이성이 근대의 시작을 알린 것입니다. 새로운 철학적 사유의 모색은 인간의 이성을 중시하는 합리론과 실험과 관찰을 중시하는 경험론으로 갈라집니다. 김현호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란 말로 유명한 근대합리론의 아버지 데카르트는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이로 이어지는 근대과학의 철학적 의미를 최초로 포착한 철학자들로 전통적인 종교와 도덕을 유지하면서 전혀 새로운 과학. 새로운 과학적 삶의 태도를 확립하려 했다면, 국가 안에서 인간의 행복을 추구한 홉스와 이성을 확고히 믿으면서 신 없이 신 안에 사는 삶을 찾으려 했던 스피노자는 전통을 완전히 포기하고 새로운 과학적 세계관에 따라 삶과 세계를 해석하려 했던 혁신적인 철학자로 분류됩니다. 합리론과 경험론 김길구 베이컨이 경험론의 길을 열자 그 길 위로 존 로크가 경험철학을 들고 나타나고 버클리에서 흄으로 이어지며 경험론이 완성됩니다. 혁명적인 철학자인 이마누엘 칸트는 직관(경험) 없는 개념(이성)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라며, 합리론과 경험론을 통합하여 철학사의 거목으로 우뚝 서고 그가 그려놓은 그림에 헤겔이 정반합이라는 변증법적 원리를 집어넣어 독일관념론이라는 근대철학이 완성됩니다. 김현호 헤겔이 칸트의 이원론을 변증법을 통하여 극복하려 했다면 쇼펜하우어는 의지를 통해 극복하려고 하였고, 덴마크의 골칫덩어리 키르케고르는 한 개인의 실존이 더 중요하다고 외칩니다. 여기서 실존이란 단순히 존재하는 개인적 인간이 아닌 어떤 상황 속에 놓인 ‘나’로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결정해야 하는 동적인 나입니다. 이런 양자택일적 상황을 실존적 상황이라고 말하는데, 기독교 실존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실존이 철저히 개별적이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신 앞에 선 단독자’라는 말로 주체적 삶을 표현합니다. 류지원 단독자란 개념은 당시의 부패한 기성교회의 반발에 묻혔으나 두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되살아나 마르크스의 사상에 견줄만한 철학은 실존주의 밖에 없을 정도로 맹위를 떨치게 됩니다. 쇼펜하우어에 영향을 받은 무신론적 실존주의자인 프리드리히 니체는 서유럽의 모든 지적 전통에 반기를 듭니다. 비겁자와 노예의 도덕인 기독교의 도덕을 부셔야 한다며, 신의 죽음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주인의 도덕을 가지고 권력의 의지를 불태우는 초인을 불러냅니다. 그런 그의 사상은 망치를 든 철학자란 별명과 함께 실존철학의 하이데거와 사르트르로 이어지고 현재까지 데리다 푸코 등에게 영향을 미쳐 프랑스 현대철학을 지탱하고 있어요. 김길구 오랜만에 고등학교 윤리시간이 생각납니다. 계획은 현대철학, 구조주의와 후기 구조주의도까지 다뤄볼까 했는데, 결론도 못내리고… 주마간산식으로 훑어만 봤는데도 책의 2/3도 못했습니다. 지면도 지면이지만 그 어려운 철학의 2,500여년의 여정을 비전문가가 불가 2시간 만에 끝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정리 김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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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15
  • [영화] 위대한 탄생(내티비티 스토리) 2017
    위대한 탄생(내티비티 스토리) 2017, 감독 : 캐서린 하드윅, 주연 : 오스카 아이작(요셉), 케이샤 캐슬 휴즈(마리아)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놀라운 일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다.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셨고, 하늘의 자리를 버리고 땅으로 오셨고, 주인이 종으로 오신 사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탄은 역설이다. 이 역설이 우리의 구원을 가능하게 했다. 우리와 같이 되시고,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시고, 우리와 거주하기 위해 그 분이 오신 날이다. 하지만 세상은 이 날을 인간들의 축제로 변질시켰다. 연인들의 날로 바꾸고 선물 꾸러미로 대체했다. 이번 호에 소개하는 영화를 통해 성탄의 참된 의미, 본질을 묵상하면 좋겠다. 영화 위대한 탄생은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스크린에 담았다. 예수님은 약 2천 년 전 로마 제국이 온 세상을 통치할 때 유대 땅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셨다. 우리가 익히 들어온 스토리다. 잘 알고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어쩔 수 없는 역사적, 시공간적 간극이 있다. 우리는 21세기 대한민국에 살아가고 있기에 당시의 문화, 분위기,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위대한 탄생은 역사적 고증을 통해 그 시대의 분위기를 우리에게 알려준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은 정확무오 한 것은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당대의 사회, 문화, 스토리를 이해하는 것에 상당한 도움을 준다. 우선 영화는 예수의 모친이 되실 마리아에게 집중한다. 그녀가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 친척 엘리자베스를 찾아가는 것, 자신에게 일어난 놀라운 임신의 사실을 묘사한다. 사실 당대의 문화와 사회적 분위기에서 결혼도 하지 않은 처녀가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오늘날과 같은 익명성의 사회도 아니다. 마리아가 살았던 곳은 작은 마을이었고 온 마을이 일가친척으로 구성된 집성촌이다. 어느 집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훤히 아는 시대다. 그러한 때에 처녀의 몸으로 잉태를 했으니 그녀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영화는 이러한 마리아의 고뇌, 당시 주변 인물들의 반응, 그녀를 비난하는 것에서 인정하기까지의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수님의 탄생에 있어 한 여인의 위대한 믿음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녀는 사람들의 비난을 감수하고자 했다. 자칫 목숨의 위험까지 있을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그녀의 믿음에 있다. 성령님의 역사에 민감했고,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녀의 경건한 기도 생활은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하였다. 만약 마리아가 세상의 기준, 세상의 가치관이 더 강했다면 그녀는 순종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순종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을 믿었다. 불가능한 일이 가능할 수 있음을 믿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역설을 믿었고, 믿음의 조상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으리라는 담대한 믿음으로 믿었다. 이 믿음이 있었기에 예수님의 탄생이 이루어졌다. 또한 마리아와 정혼한 남자 요셉의 혼란도 잘 보여준다. 약혼녀가 아이를 가졌으니 어찌 당황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인간으로서의 고뇌, 분노, 당혹감은 당연하다. 우리는 성경을 너무 쉽게 읽기에 그 행간에 있는 감정, 분위기, 혼란을 간과하기 쉽다. 영화는 친절하게 이러한 일련의 모습들을 잘 보여준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그녀를 받아들이기까지의 요셉의 마음 상태를 잘 보여준다. 요셉 또한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 그의 믿음, 그의 결단, 그의 다짐은 당대의 윤리를 뛰어넘는다. 요셉 역시 성령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자기 머리로, 자기 상식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대하여 순종했다. 하나님의 뜻은 자기의 뜻과 다를 수 있음을,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일과 다를 수 있음을 믿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었다. 요셉은 마리아가 아기를 낳을 때까지 동침하지 않았다고 성경은 말해준다. 요셉의 신실함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영화를 통해 우리는 이런 믿음의 사람들의 이면, 고뇌, 결단을 볼 수 있어 좋다. 또 하나 이 영화의 장점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극복하게 해 준다. 우리는 그 동안 르네상스 이후의 유럽 사람들이 그린 성화를 통해 예수님의 모습을 보아왔다. 우리가 본 예수님은 긴 머리에 비단 옷을 입고 있는 서양의 잘 생긴 남성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것은 심각한 이미지의 오류임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태어난 동양인이셨다. 당연히 예수님의 부친 요셉과 모친 마리아도 중동인이다. 영화 위대한 탄생은 이 점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예수님의 혈통은 유대인이시다. 유럽인이 아니시다. 로마인이 아니시고 유대인이시며, 서양인이 아니라 동양인이시다. 영화를 통해 이러한 오류를 교정할 수 있다. 아울러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의 내방, 헤롯의 반응, 헤롯의 군사들의 만행을 스크린 속에 펼쳐놓는다.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피난 가는 생생한 현장을 보여준다. 이러한 면에서 이 영화는 우리에게 장점이다.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그 느낌, 분위기, 위기를 잘 보여준다. 따라서 영화 위대한 탄생은 아기 예수의 탄생이 그저 몇 줄 성경의 기사로 끝나지 않고 대신 긴박하고 극적인 스토리라는 것, 그러하기에 더욱 위대한 스토리이며 우리의 구원 이야기임을 잘 보여준다. 자 그렇다면 이제 예수님의 성육신이라는 주제를 조금 생각해 보면 좋겠다. 영화를 통해 감동을 받을 뿐 아니라, 성육신이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자. 서두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성육신은 경이로운 사건이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자가 되셨다. 무한하신 분이 유한의 몸을 입으셨다. 자기 부정의 절정이다. 성육신, 즉 예수님의 탄생은 철저한 자기 비움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신 그 분이 왜 인간으로 오셨는가? 왜 우리와 같아지셨는가? 그것은 우리의 잘못된 본성을 치유하기 위해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처음 만드시고 세상을 맡기셨을 때 아담과 하와는 결정적으로 시험에 빠졌다. 사탄의 유혹은 한 가지였다. 이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이 하나님이 된다는 유혹이다. 다른 말로 상향성의 욕망이다. 이 욕망은 사람들 사이에 시기심과 질투를 낳는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일을 낳았다. 바벨탑의 핵심도 하나님처럼 높아지려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시도였다. 이후 수많은 인간들, 왕들은 하나님이 되려고 했다. 성육신은 정확히 이것과 반대다. 인간이 신적 존재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신이 인간이 되셨다. 상향성이 하니라 하향성의 극치를 보여주셨다. 인간의 본성이 상향성을 향하기 때문에 이것을 치유하기 위해 가장 높은 곳에 계셨던 그 분이 낮아지심으로 하향성이 살 길임을 보여주셨다. 그리하여 그 분을 영접함으로 우리는 상향성의 본성을 극복하고 하향성을 배운다. 필립 얀시는 이렇게 말했다. “권력의 사다리는 위로 향하지만, 은혜의 사다리는 아래로 향한다.” 따라서 성육신, 즉 성탄의 본질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낮아짐이다. 자기 비움이자 자기 부정이다. 낮은 곳에 임하는 은혜다. 그래서일까? 성탄의 기쁜 소식은 들판에 있던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알려졌다. 성탄을 축하한다면 우리 또한 낮은 곳으로 가야 할 것이다. 소외된 자들, 가난한 자들, 외로운 자들에게 이 기쁜 소식은 전해져야 한다. 가장 높으신 그 분이 가장 낮아지셨기에 그 분을 영접하는 가장 낮은 자들이 역설적으로 이제 가장 높은 자가 된다. 그래서일까? 아타나시우스는 말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로 오셔서, 사람의 아들들을 하나님의 아들들로 만들어 주셨다.” 올해의 성탄은 이 본질을 잘 이해하면 좋겠다. 영화 위대한 탄생을 통해 우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는 것에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면 좋겠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의 믿음을 통해 다시 한 번 이 땅에 예수님의 임재를 증거하며, 우리의 본성인 높아짐을 극복하고 예수님처럼 낮아짐을 실천하는 성탄절이 되면 좋겠다. 이 기쁜 소식이 교회당 뿐 아니라 온 세상에 널리 널리 퍼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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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20
  • “ 기독교 변증가가 말하는 인생의 질문과 신앙의 답변"
    박만 교수의 《인생의 질문 신앙의 답변》 거대 담론이 사라지고 가벼움이 판치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기독교 신앙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제거할 수 있다’고 감히 나선 이 시대 기독교 변증가 조직신학자 박만교수의 600쪽 대작 변증서이다. 저명한 C.S 루이스와 팀 켈러에 빚진 바 있다는 그는 시대를 넘나들고 동·서양을 아우르는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들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목회자는 물론 평신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쓰여진 이 책은 신앙인이라면 물어볼 수밖에 없는 10가지의 인생의 질문과 17가지의 교리에 대한 변증을 20쪽 내외로 요약 정리하여 답하고 있다. 각 장이 끝나면 내용을 정리한 세 줄 요약과 주제를 서로 나눌 수 있는 토론문제를 두어 묵상과 그룹별 성경공부가 가능하다. 좀 더 진지한 신앙생활을 원하는 분께 이 책을 권한다. ◇ 저자소개 ∥ 박 만 현 부산장신대학교 조직신학 교수이며, 부산대학교 심리학과(B.D),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및 대학원(Th.M.),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신학대학교(Th.M.)를 거쳐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 신학부에서 현대 삼위일체론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 저서∥ 《최신 신학연구》, 《현대 삼위일체론 연구》, 《폴 틸리히: 경계선상의 신학자》, 《현대신학이야기》 등이 있다.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순전한 기독교》 C.S. 루이스 / 홍성사 / 2018 《팀 켈러의 센터처치》 팀 켈러 / 두란노 / 2016 《예수와 하나님 나라》 김균진 / 새물결플라스 / 2016 기독교인문학 〈47〉 “ 기독교 변증가가 말하는 인생의 질문과 신앙의 답변" - 그리스도인을 위한 가이드북 - “신학자 더글라스 존 홀은 ‘참다운 기독교 변증은 신앙에 이르는 지적인 오해를 제거함으로써 성령께서 자유롭게 역사하도록 돕는 일이라고 말했다.’그렇다 성령 외에는 이 세상 그 누구도 예수를 알고 믿게 할 수 없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제거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일하시게끔 도울 수는 있다.”(서문 중에서) 질문에 대한 명쾌한 해설의 변증서 김길구 오늘 저자와의 만남은 올 6월에 새물결플러스에서 출간한 《인생의 질문 신앙의 답변》의 저자이신 박만교수님의 캠퍼스가 있는 김해시 구산동에서 갖게 되었습니다. 우선 책에 대한 소개부터… 박 만 신앙인이라면 알아야 할 주제 27가지를 선정하고 각 장 20쪽 내외의 설명과 논문 3편을 더해 총 30장을 하루 1장씩 한 달에 다 읽게한 기독교 변증서입니다. 사실 주제 하나하나를 놓고 보면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하겠지만 핵심사항들을 요약 정리해서 목회자들의 설교나 강의를 준비하는데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류지원 책을 들면서 600쪽의 두께와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묵직한 신학적 주제들의 무게에 주눅이 들었는데 막상 읽다 보니 동과 서,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인생의 질문과 신앙의 답변을 신학과 철학, 사회, 경제 등을 넘나드는 통섭적인 학문의 깊이와 높이로 독자들을 설득하되 평신도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이 책의 장점 같아요. 김현호 그동안 한국교회의 건강성에 대한 우려가 많았지만 이를 극복할 의지가 부족해요. 하향식 문화에 길들여진 결과입니다. 도구가 아닌 행위자로 부상한 AI시대의 도래는 제대로 질문하는 인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제대로 질문하고 성실하게 연구한 성과들로 독자들을 설득하고 토론과 묵상을 통하여 결단하는 쌍방향식 구성의 친절함이 돋보이는 책이라 호감이 갑니다. C.S. 루이스와 팀 켈러에 영향 커 김길구 이 책의 서문에 C.S 루이스와 팀 캘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셨는데 두 분의 어떤 점에 영향을 받았습니까? 박 만 두 분 다 정통적인 복음주의자요 저명한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점입니다. 그들은 수준 높은 지성과 논리를 무기로 기독교를 옹호한 거장들입니다. C.S 루이스는 1, 2차 세계대전과 세속주의의 등장, 자유주의의 거센 파고로 유럽이 정통신앙에 대한 회의에 빠져들 때 신앙의 합리성과 도덕성을 명료하게 변론했다면, 작년에 별세한 팀 켈러는 자본주의의 심장 뉴욕 맨해튼의 리디머교회를 통해서 도시의 젊은이들과 지성인에게 복음, 도시, 문화, 사회정의와 교회개척 중심의 목회로 교인 평균연령이 29세인 역동성 있는 교회로 성장시켜 도시교회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혁신성 때문이지요. 류지원 내가 과문한 탓인지 〈순전한 기독교〉 등 제가 읽어본 책들은 그의 명성에 비해 감동이 덜한 것 같습니다. 이에 비해 교수님 책에는 한국적이고 깊이 있는 정보들이 가득해 설득력을 더하는 것 같습니다. 박 만 개인의 취향과 환경의 차이겠지요? 사실 루이스는 너무 압축해서 제가 봐도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어요. 60여 년 전이라는 시대의 간극과 당시의 상황에서 이성적으로 경험해 봐야 믿는 영국사람 특유의 심성에 루이스의 호소력 있는 설교와 작품들이 맞아떨어진 결과 많은 감동을 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팀 켈리의 경우 ‘나의 책 매 페이지 마다 루이스의 영향을 볼 수 밖에 없다’고 술회했던 그는 이 시대의 가장 핫한 첨단의 도시 뉴욕 맨해튼에서 세속주의화 된 뉴요커들에게 정통적인 신앙을 카페에서 마주보고 ‘그래 우리 한번 따져 보자’는 식의 쉬우면서도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변증으로 도시를 변화시켰어요. 교회설립 당시 복음화율이 1%에 불과한 뉴욕시를 5%까지 끌어올렸으니까요. 그래서 ‘그리스도인을 포위된 소수에서 확신에 찬 소수로 이끌어 내었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지요. 저는 그의 도시목회에서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의 희망을 봅니다. 자본주의 - 어떻게 볼 것인가? 김길구 본문으로 들어가 보죠. 1부 인간편에는 고통의 문제부터 빈곤과 죽음에 대한 문제 등 10장의 주제들이 있고, 2부에서는 성경, 구원에서부터 기독교의 절대성 등의 교리의 문제뿐 아니라 정치와 자본주의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입장 등 일상에서 부딪치는 현실적인 문제도 다루고 있어요. 다 다룰 수는 없고 그중 몇 꼭지만 다뤄보죠. 김현호 소련의 붕괴와 동구권의 몰락이후 자본주의는 오늘날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계정신이 되어 버렸습니다. 과연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는 가능한지,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자본주의를 대하는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박 만 저 역시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살고 있으니까 물질적인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제가 그렇게 살고 있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옳다고 여기니까 말한다는 점을 이해해 주세요. 단순하게 말해서 자본주의가 주는 달콤함보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주는 행복을 우리 교회가 더 붙잡을 때 자본주의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본주의가 주는 개인의 자유, 주체성, 창의력 등의 강점과 인간소외와 물신숭배, 개인주의, 환경 파괴 등의 폐해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금의 자본주의가 변할 수 없는 절대의 가치가 아니라 장점은 늘이되 단점은 줄여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하고 이를 추구하는 정책을 지지하여 반영하게 하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성경은 보는 두가지 입장 김현호 뒤쪽 논문편에서 성경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지에 대한 물음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케빈 벤후저의 하나님의 화행으로서의 성경론을 소개하셨는데 간략하게 말씀해주신다면? 박 만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목사이면서 교수인 캐빈 벤후저는 ‘성경은 영감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라는 정통적 성경관을 가진 복음주의자입니다. 성경관에 대한 논란은 장로교 안에서도 조금씩 입장이 달라요. 보수주의 입장에 선 찰스 하지, 위필드 등은 ‘성경은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말씀’ 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은 성경이 쓰여진 특정한 시대 안에서의 제약과 문화적인 옷으로 입고 나타난 부분을 제대로 반영치 못하는 한계가 있어요. 이에 반해 칼 바르트는 참된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늘도 말씀하신다며 그런 점에서 성경은 참된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를 들어내는 도구 내지 수단이요 증인’이라는 입장입니다. 케빈 밴후처는 이 두 진영의 입장을 다 같이 받아들여서 화행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지요. 하나님의 ‘화행’(speech-Act)으로서의 성경론 박 만 ‘말씀이 행하게 하는 것’이란 뜻이죠. 쉽게 예를 들어보죠. “야 비 온다”라고 누군가 말했다면 그 말이 단순히 비가 온다는 사실만을 전하는 것이라 게 보수적 장로교회의 문자주의적 입장이라면 “야 비온다”란 말을 들었을 때 그러면 어떻게 하지? 라고 묻고 행동하는 것이 K.Barth 입장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여기에 영국의 언어론자의 영향을 받은 캐빈 밴후처는 “야 비온다”란 말의 의미에는 문을 닫고, 빨래 걷고, 비 안 젖도록 하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성경도 그런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캐빈 밴후처는 이 두 입장을 다 수용해서 문자적인 것 중 진리인 것은 진리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갖고 오는 결과도 열린 자세로 받아주자고 입장입니다. 저도 이 견해에 동의합니다. 특히 한국장로교가 합동, 고신, 통합, 기장으로 분열된 이유 중에 하나로 성경관의 차이도 있었던 만큼 한국교회의 특수성을 극복하자는 생각에서죠. 성경의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 류지원 한국교회가 지금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부정하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교수님께서는 그 해법으로 교회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인 하나님 나라의 선포에 집중하는데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입니까? 박 만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영적 구원을 위한 조직체 정도로 제한하여, 성령의 능력 아래서 인간과 세계를 총체적으로 해방하기 위한 하나님의 전위부대라는 자각이 없어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은혜로 가져오는 전혀 새로운 나라이고, 모든 인위적 차별을 극복하고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존중받는 세계이며, 물질이 아니라 사랑과 생명이 가장 소중하게 여겨지는 곳이고, 기쁨과 행복이 있는 곳이며, 모두를 향해 열려있는 개방적 공동체이자 진리와 사랑과 상호 이해에 근거하여 폭력과 차이를 해결하는 곳’ 입니다. 김길구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즐거운 만남이었습니다. 오랜만에 600쪽의 대작을 읽으시느라. 수고하셨는데 교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집에서 다시 한번 하루에 한 장씩 정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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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1
  • 최윤갑 교수, '모든 슬픈 자들을 위한 위로' 출간
    모든 슬픈 자들을 위한 위로 최윤갑 지음 / SFC출판부 / 2023.11.23. / 248쪽 / 14,000원 최윤갑 교수(고신대)의 신간 『모든 슬픈 자들을 위한 위로』가 출간됐다. 이 책은 참된 위로가 필요한 이들을 향한 성경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모든 사람은 본성적으로 위로를 추구한다. 교회에 출석하는 대부분의 성도 역시 세상을 이기는 참된 위로를 경험하기 위해 예배에 참석한다. 세상에 지친 사람들이 교회를 찾는 것도 세상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진정한 위로를 찾기 위함이다. 그만큼 세상은 교회가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위로가 있는 풍성한 위로 공동체이길 기대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단단한 앎의 지식에 기초하여 참된 위로를 말할 뿐 아니라, 그 위로를 구현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연구서는 좀처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은 그런 안타까움과 필요를 채우기 위해 이사야서와 몇몇 신약성경에 천착하여 위로의 담론을 탐구했다. 곧 하나님께서 고통과 슬픔 가운데 있던 그분의 백성을 위해 성취하신 위로의 토대, 요소, 방편, 전망, 그리고 성취를 다루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위로와 그 방식을 면밀히 살필 때, 비로소 우리도 좋은 위로자가 될 것이다. 견고하고 단단한 지식 체계로서 위로를 이해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를 정확히 말할 수 있고 개인의 삶에서나 공동체 속에서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지식 체계와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슬픔과 고통 가운데 있는 가족이나 성도를 위로하지 못했던 그 막막함과 안타까움을 시원하게 해소하고, 그들을 참되게 위로할 수 있는 해법을 제공받을 것이다. 저자 최윤갑 교수는 고신대학교와 고신대학교 대학원(고려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한 후, 고든콘웰에서 석사학위를,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고신대학교 신학과에서 구약을 가르치고 있고, 부산동교회에서 협동목사로 섬기며, 설교목사로서 여러 교회에서 설교하며 복음전파에 전력하고 있다. 최근 2022년에는 한국연구재단 신진연구자 사업을 수주하여 국가연구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윤갑 교수는 “이 책은 하나님의 위로를 깊이 알고 경험하고자 하는 성도, 하나님의 위로의 토대와 요소, 방편, 전망 등 그 위로를 단단한 앎의 지식 체계로서 알고자 하는 성도와 연구자, 기독교 신앙이 말하는 초월적이고도 영속적인 위로를 알고자 하는 일반인, 언젠가 경험하게 될 고통과 슬픔을 대비해 하나님의 위로를 미리 알고 견고하게 경험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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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28
  • [영화] 오펜하이머 -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오펜하이머 Oppenheimer, 2023 개봉: 2023.08.15./ 장르: 스릴러/드라마 /국가: 미국, 영국/ 등급: 15세이상관람가 / 러닝타임: 180분 감독 : 크리스토퍼 놀란 주연 : 킬리언 머피(J. 로버트 오펜하이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루이스 스트라우스), 맷 데이먼(레슬리 그로브스), 에밀리 블런트(키티 오펜하이머), 플로렌스 퓨(진 태트록)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명을 따라 인간을 만들었다. 신들과 인간이 나뉘어 질 때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를 속인 채 인간에게 불을 전해 주었다. 인간들은 프로메테우스가 전해 준 불로 문명을 이루었지만,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미움을 받아 쇠사슬에 결박당한 채 독수리가 간을 쪼아 먹는 벌을 받아야 했다. 프로메테우스에게 불을 전수 받아 문명을 이룬 인간들은 어떠했을까? 그들은 자신들의 문명으로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을 해 왔다. 따라서 불은 이중적이다.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도 했으나 파괴하기도 했다. 문명,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고 풍요롭게 한다. 플라스틱의 발견은 인간의 삶을 정말 편리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플라스틱의 남용은 결국 환경재앙을 낳는다.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했다. 다이너마이트는 도로를 닦거나 공사를 진행할 때 참으로 편리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으로 가공할 무기를 만들어 상대를 죽이는 데 사용한다. 다니어마이트의 가공할 힘은 끔찍한 살상을 낳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오펜하이머]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진다. 우선 오펜하이머는 2차 대전 당시 미국의 맨하탄 프로젝트를 이끈 책임자다. 오펜하이머는 하버드를 졸업하고 영국, 독일 등지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가 교수로 있었던 1930년대 말은 물리학의 전성기였다.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빛이 파동이자 입자라는 놀라운 발견을 이루었다. 소위 양자물리학의 시작을 알린 인물이다. 당시 화두였던 양자물리학은 세상을 보는 관점을 새롭게 했다. 과학자들은 점점 더 마이크로 세상을 알게 되었고, 세상은 원자라는 아주 작은 단위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원자는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어 있었고, 양성자와 중성자는 핵력이라는 힘으로 서로 끌어당기는데 이것이 분리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문제는 이런 과학적 발견이 한참일 때 하필 유럽은 아니 전 세계는 히틀러가 추동한 전쟁 중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히틀러의 지원 하에 그 유명한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가 원자 폭탄을 연구 중이었다. 2차 대전 참전을 결정한 미국은 급했다. 무엇보다 독일 나찌 정권보다 우선적으로 원자 폭탄을 개발해야 했다. 만약 히틀러 정권이 먼저 성공한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전 세계의 파멸, 미국의 파멸이다. 이러한 급박함 가운데 군 장성 레슬리 그로브스의 지휘 아래 원자폭탄 완성을 위한 맨하탄 프로젝트가 추진되었고, 그로브스는 총 책임자로 칼텍의 오펜하이머 교수를 지목했다. 오펜하이머는 막 유럽의 양자물리학을 공부하고 온 뒤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었고, 미국에서 양자물리학의 전도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일에 가담하게 된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뉴멕시코의 로스 알라모스의 목장 지대에 거대한 단지를 만든다. 즉,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물리학자들과 그들의 가족들, 행정요원들과 군인들을 끌어 모은다. 그로브스 장군이 행정적 책임자라면 오펜하이머는 개발 책임자로써 그 임무를 수행한다. 마침내 이 프로젝트는 성공하는데 독일보다 앞서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한다. 하지만 원자폭탄 개발 성공과 상관없이 히틀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독일을 패망하게 되었다. 어쩌면 쓸모없게 된 원자 폭탄, 하지만 트루먼 대통령의 생각은 달랐다. 이 프로젝트에 상상을 초월하는 돈을 투자했고 국민들은 그 결과를 기대했다. 트루먼은 여전히 저항중인 일본에 이 폭탄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각각 원자 폭탄은 투하되었고 그 가공할 위력에 일본은 즉각 항복을 선언하고 전쟁은 끝이 난다. 하지만 원자폭탄의 가공할 위력에 가강 놀란 사람은 오펜하이머였다. 그는 이 개발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였지만 폭탄을 사용했을 때 그 엄청난 위력, 살상, 되돌릴수 없는 재앙에 충격을 받았다. 이후 오펜하이머는 오히려 원자 폭탄 개발을 중지할 것을 요청했고 이런 끔찍한 무기들의 개발 및 사용을 반대했다. 미국 정부는 오펜하이머의 이런 주장에 당황했고,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았으며, 2차 대전 후 새로운 냉전의 시대가 열릴 때 소련의 스파이로 몰아갔다. 오펜하이머는 이후 정부 혹은 루이스 스트라우스와의 지난한 싸움을 해야 했고,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하기 위해 싸워나가야 했다. 영화는 이런 과정을 잘 다루고 있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영웅 전기가 아니다.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을 개발해서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의 영웅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원자폭탄 개발 후에 겪는 내면적 갈등을 다룬다. 아울러 원자폭탄이라는 가공할 힘, 핵이라는 위험, 그것이 사용되었을 때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재앙과 환경위기에 대하여 고민하게 한다. 1986년에 일어난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건은 원폭의 끔찍한 재앙을 인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체르노빌의 환경 파괴 및 인간 피폭의 위험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또한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더욱 끔찍한 재앙이었다. 지진과 그로 인한 해일로 인해 후쿠시마 원전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이어졌다. 레베카 솔닛은 자신의 책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분명히 말한다. 사람들은 폐허가 될 때 까지 그 위험을 잘 모른다고. 하지만 폐허가 된 상황에서 정말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달을 수 있고 또 깨달아야 한다고. 뉴욕을 강타한 끔찍한 9.11 테러 현장에서 레베카는 알게 되었다. 우리가 편리하게 사용하는 비행기가 얼마나 끔찍한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또한 그 재앙이 우리의 가족, 형제, 자매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를, 그래서 폐허 더미에서 우리는 폭주하는 문명의 발전, 기술의 무차별 개발에 대하여 생각하고 멈출 줄 알아야 한다고 그녀는 강조한다. 더 발전된 기술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낫는 것이기에. 오펜하이머의 각성 이후 미국은 달라졌을까? 아니다. 오히려 이어진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은 앞 다투어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고, 현재 전 세계가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는 지구를 수십 번 사라지게 할 만한 가공할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만약 하나라도 사용이 된다면 불가항력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재앙을 파생할 것이다. 오래전 칼 세이건은 탄식했다. 로켓 기술로 우주개발에 힘쓰면 좋을 텐데 오히려 핵탄두를 싫어서 인류 전체를 멸종시키려는 일에 사용하다고 그는 안타까워했다. 오늘 우리는 칼 세이건보다, 오펜하이머보다 더 심각하게 고민하고 논의해야 마땅하다. 우리의 편리를 위한 기술은 지구를 점점 더 병들게 하기 때문이다. 인간 편리를 위해 만든 자동차, 항공기 등이 내 뿜는 이산화탄소 등으로 지구의 대기는 몸살 중이다. 지나친 육식은 지구온난화를 가중시킨다. 편리한 전기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원전은 핵 폐기물 처리에 곤혹을 겪고 있다. 대수롭지 않게 사용하는 플라스틱 제품들로 인해 바다와 땅, 동식물이 시달리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시점에 멈출 줄 알아야 한다. 전 지구적 대 전환이 필요하다. 톱다운 방식으로 각국의 리더들은 핵무기 감축 및 원전의 축소, 또한 이동수단의 대 전환을 이루어 내야 마땅하다. 지구는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고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끔찍한 재앙을 물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의 전환, 생활 방식의 대 전환이 필요하다. 지구 생태를 향한 신학적 고찰도 필요하다. 생태도 하나님의 선한 창조물이다. 우리는 이 창조물을 보호하고 보존할 사명을 부여받았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여기에서 이루어진다는 각성이 필요하다. 편리보다는 불편을, 현재보다는 미래를 생각하는 전환이 필요하다. 오펜하이머의 뒤늦은 후회가 우리의 것이 되지 않도록, 지금 여기에서 결단하고 전환해야 할 것이다. 바로 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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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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