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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칼럼]“저는 마지막까지 꽃을 든 목사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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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열린 부활절연합예배에서 환영사를 했는데 처음에는 경직된 분위기였습니다. 사실 저는 환영사를 안 하겠다고 여러 번 고사를 했는데 이영훈 목사님과 엄진용 준비위원장님이 계속 권유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도 소 목사님이 와야 합니다. 와서 분위기 좀 살려주셔야 합니다. 특별히 대통령 내외분과 여야 대표를 비롯한 여러 정치 지도자들, 재계 지도자들이 오시는데 빵 터지게 환영사를 할 분은 목사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억지 춘향이 식으로 약속을 했습니다. 준비된 원고를 보냈는데 어떻게 100% 원고대로만 할 수 있습니까? 현장 분위기에 따라서 제가 추가를 하고 또 애드리브를 넣을 수밖에 없죠. 아니나 다를까, 제가 환영사를 시작하는 초두부터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라는 표현은 흔히 쓰지만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죽음의 권세를 박살 내버리시고 무덤 문을 여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찬양과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그러자마자 박수 소리와 아멘이 터져 나왔습니다. 또한 “세계 최대의 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부활절연합예배를 개최하게 된 것도 감사합니다. 저도 한교총 대표회장을 하고, 부활절연합예배 대회장을 했지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닙니다. 우리 존경하는 이영훈 목사님께 박수를 보내 드립시다. 제가 뒤에서 보니까 존경하는 김정석 감독님이 약간 긴장하신 것 같은데 긴장을 푸시라고 좀 여유를 갖으시라고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그랬더니 우렁찬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오면서 장내 분위기가 완전히 열려 버린 것입니다. 그 이후에 대통령을 환영하는 인사를 전했습니다. “누구보다도 뼈저린 절망을 경험하셨던 이재명 대통령님, 그렇지만 이 시대에 어렵고 힘든 자들에게 소망을 불러일으켜 주시고, 실개천 출신이지만 결코 그 개천을 잊어버리지 않으시며 국민 화합과 실용 정치에 올인하는 모습이 한국교회가 보기에도 참 아름답습니다. 더구나 이 대통령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한국교회를 사랑하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이 자리에 오셨다고 믿습니다. 오늘 이 예배를 통하여 한국교회가 생명과 부흥, 반전의 에피센터 즉 진원지가 되며 국민 화합과 한반도 평화의 시원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랬더니 장내 분위기가 뜨거워지면서 박수와 웃음, 아멘 소리가 계속 연달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의 환영사에 이어서 대통령께서 축사를 하시는데 원고에 없는 얘기를 하신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은 잘 모르시겠지만, 소강석 목사님이 제 오랜 친구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또 장내가 빵 터지면서 웃음과 감탄사가 나온 것입니다. 저는 그게 기쁨이기도 하지만 기쁨보다 앞으로 더 자제하라는 메시지로 다가왔습니다. 사실 이 대통령님과는 인권 변호사와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때부터도 잘 알고 지낸 사이입니다. 잘 알고 지냈다고 해서 제가 무슨 청탁을 하거나 부탁을 한 것도 아닙니다. 또 청탁을 한다고 들어주는 분도 아니고요. 다만 그분이 어렵고 힘들고 고독한 길을 갈 때 제가 진짜 가까이 다가가서 기도해 주고 또 전화로 기도해 주는 사이였습니다. 제가 아는 한 그분은 법과 원칙을 지키며 사익이 아닌 약자와 소외계층을 돌보신 분입니다. 그런데 오래된 친구라고 하는 순간부터 저는 쫄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더 언행을 자제해야지, 더 조심해야지...” 대통령과 친하다고 사사롭게 생각하거나 사사로운 관계로 이어가면 절대로 안 됩니다. 대통령께서 오래된 친구라고 언급하신 만큼 저는 더 몸가짐, 마음가짐을 추스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독교는 거의 300년 동안 로마에서 엄청난 박해를 받았는데 오히려 그때 부흥을 했습니다. 그런데 콘스탄티누스 때 기독교를 공인하고 데오도시우스 황제 때 기독교를 국교로 삼을 때부터 본질을 잃어버리고 타락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독교가 힘을 가지니까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제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 것입니다.
“나는 힘 있는 목사가 아니라 더 낮아지는 목사, 몸과 마음을 더 다스리는 목사가 되어야 하겠다.” 다만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반기독교 악법을 막아내는 데는 목숨을 걸고 지켜낼 것입니다. 언제부턴가 한국교회가 전도와 기도, 성령 운동을 하는 것보다는 이념의 카르텔에 갇혀서 서로 정죄하고 분노와 증오, 분열과 다툼, 폭력의 언어들이 난무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이런 환영사를 하고 나니까 저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전화를 하고 또 사무실로도 전화가 왔다는 것입니다.
“현 정부가 한국교회를 말살하고 무너뜨리려고 하는데 소 목사는 왜 그런 환영사를 하느냐?” 저도 그렇고 남수현 장로님도 다 설명을 했습니다. “그것은 이단 종교의 영리법인을 해체 시키려고 하는 것이지 건전한 한국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전혀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비영리 단체로 정말 순수한 기독교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면 절대로 그럴 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신천지나 통일교 같은 종교로 전락하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최근에 제가 이사장으로 섬기고 있는 한국교회 법학회에서 만약의 사태를 향한 우려의 표명을 정부와 국회에 전달했습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제가 종교소득과 세를 막아내고 종교인소득과세로 대체한 것은 제 역사에 지울 수 없는 불멸의 궤적이고, 포괄적 차별금지법도 전략적으로 막아냈습니다. 지금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주장하는 의원들이 어디가 있습니까? 정부의 국무위원들이 누가 있습니까? 진보적인 몇 분들이 종교단체 해산법을 발의했으나 이 또한 계류 중에 있고 한국교회와는 전혀 관계가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제가 살아 있는 한 결코 한국교회가 해체되는 법안이 통과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스팔트 집회를 하는 것도 가끔 필요하지만, 너무 자주 하다 보면 국민들에게 피로감을 주고, 우리만의 이너서클이나 카르텔로 여겨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본질과 기독교의 원래 가치로 돌아가서 반기독교 악법을 아주 전략적으로 막아야 합니다. 제 생명이 살아 있는 한은 목숨을 걸고 막을 것입니다. 또 누구라고 밝힐 수 없지만 수많은 의원님들과 소통을 하면서 나름의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우리가 다시 복음의 시원으로 돌아가서 기도운동, 전도 운동, 성령 운동을 재개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한국교회가 살길입니다. 그리고 저는 마지막까지 사랑과 용서, 화해와 평화의 길을 열어가는 꽃을 든 목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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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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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경영학개론]자본주의와 기업윤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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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가 1776년에 저술한 『국부론』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서 유래한다. 사유재산의 인정을 기초로 각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며, 시장을 통해 자원을 배분할 때 전체의 생산성이 더 높아지고 효율적이라는 것이 그 특징이다. 또한 이는 마르크스 공산주의 계획경제가 인간의 기본적 욕구 본성을 반영하지 못해 실패한 것을 극복하며 경제 주류로 등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를 탐욕과 비교하고, 부익부 빈익빈, 소득 불평등의 예를 드는 비판도 아직 많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공의, 도덕적 가치가 부족하다 비판하는 논자도 있다.
그러면 이러한 비판적 견해는 기독경영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일까? 1905년 막스 베버(Max Weber)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통해 근대 자본주의를 일으킨 원동력이 탐욕이 아닌, 개혁주의 신앙에 기초한 구원 교리에 있음을 제시하였다. 세속적 노동을 하나님이 부여한 ‘소명’으로 격상시켰다. 성도들은 구원을 위해 정직하게 일을 하고 금욕적 생활을 했다. 이윤을 산업에 재투자하고 사치를 멀리하였다. 즉 기독교적 교리가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는 상황을 분석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기업의 존재 이유와 가치는 무엇일까? 1976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기업의 유일한 책임은 주주의 이익 극대화’라 주장하며 주주중시 경영을 강조했다. 반면 홀푸드 마켓 창업자인 존 맥케이(John Mackey)는 ‘고객, 직원, 지역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를 중시하는 경영을 내세웠다. 두 주장은 평행선을 달렸다. 주주의 재산권과 사회적 책임(CSR)의 논리가 충돌한 것이다. 인간의 세속적인 이기심으로는 결코 해결할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 경우 법적 기준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지만, 완전한 처방은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기독교적 신앙은 위기에 처한 현대 자본주의와 경영에 통찰력 있는 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 필자는 가능하다고 본다. 성경은 기업의 소유개념을 하나님으로부터 위탁받은 수탁자산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경영자와 주주, 종업원 등 기업의 구성원을 모두 청지기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하나님 나라와 언약 관계에서 바라본다면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기업윤리를 바라보는 기독경영인의 자세, 본 칼럼은 다음을 권면하고자 한다.
첫째, 베버의 눈으로 자본주의를 이해한다. 자본주의는 단순히 돈을 버는 기술이나 탐심의 대상이 아니다. 정직과 근면이라는 윤리적 토대 위에 세워졌다. 이윤 창출 자체가 코람데오(Coram Deo) 하나님 앞에서 예배가 되어야 한다. 정직한 재무제표와 투명한 거래는 기독교 경영의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이다.
둘째,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는 기업윤리 경영을 한다. 세속적 영역을 넘어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고 의를 구하는 경영을 하여야 한다. 비즈니스 전쟁터에서 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나님 나라의 성공의 기준은 소유가 아니라, 기업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의 통치(Shalom)를 경험했느냐이다.
셋째, 기업을 ‘언약적 공동체’로 생각한다. 세속적인 계약(Contract)은 파기되기 싶지만, 성경에 기초한 하나님과의 언약(Covenant)은 어려운 상황중에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경영자와 주주, 노동자, 소비자의 관계를 단순한 고용과 피고용, 거래 관계를 넘어 ‘언약적 파트너십’으로 본다. 그리고 각 언약 공동체가 상호 존중하고 협력하며 나아갈 때, 갈등이 해결되고 그리스도께서 그 언약을 완성시켰듯이 세상을 변혁시키는 기업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오는 5월 16일(토), 필자는 ‘성경적 기반의 로고스 창의 경영’이란 주제로 학회(부산외대)를 준비하고 있다. 또 ‘2026 로고스경영인상’을 수여할 기독경영인을 찾고 있다. 바람직한 자본주의와 기업윤리의 상, 돌아보면 우리 주변에도 베버와 같이 생각하는 신실한 기독경영인이 많음을 발견할 수 있음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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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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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서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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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6일, 오랫동안 인류 역사에 기록될 날입니다. 케냐의 사바스티안 키마루 사웨(Sabastian Kimaru Sawe)가 인류 최초로 마라톤 2시간의 벽을 뛰어넘은 기념비적인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날 열린 영국 런던마라톤에서 그는 마라톤 풀코스(42.195km)를 1시간 59분 30초 만에 주파했습니다. 사실 이 거리를 ‘서브(sub) 2’ 즉 ‘두 시간 아래’로 달린다는 건 신체적 한계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여긴 세월이 길었습니다. 그러다가 2023년 시카고마라톤에서 역시 케냐의 켈빈 킵툼(Kelvin Kiptum)이 2시간 39초를 기록하면서 2시간 돌파도 시간 문제로 여기는 분위기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아마도 먼저 서브 2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었던 킵툼은 교통사고로 안타깝게도 2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번 런던 대회에서 에티오피아의 요미프 케젤차(Yomif Kejelcha)도 1시간 59분 41초로 역사적 기록을 세웠으나 고작 11초 차이로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2위를 했습니다만, 1997년생으로 사웨보다 두 살 아래니 어쩌면 다음 신기록의 주인공은 그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마라톤 기록의 인간 한계치는 얼마일까요? 1991년 미국의 의사 겸 운동생리학자 마이클 조이너(Michael Joyner)는 ‘인간 마라톤 최고기록 모델링’이라는 논문에서 인간의 최대산소섭취량(VO₂max), 젖산역치 및 런닝효율성 등을 감안해서 1시간 57분 58초를 제시했는데, 지금까지도 이를 뒤집는 학설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단순히 숫자로만 제시하니 실감이 안 날 수도 있는데, 이 기록을 달성하려면 1km를 2분 47.8초 속도로 유지하면서 2시간을 뛰어야 합니다. 일반인은 사실 6분대로 뛰는 것도 상당히 힘듭니다. 100m로 환산하면 더 놀라운 기록임을 체감할 수 있는데, 사웨 선수는 100m당 평균 16.5-17.6초대로 줄곧 뛰었습니다. 보통사람이 힘껏 달릴 때보다 더 빠를 수 있는 기록입니다. 한계 돌파는 우연히,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사웨는 일주일 간 200km를 연습했다 합니다. 달리기 애호가들 ‘러닝 마일리지’에 따르면 보통 한 달 동안 달리는 거리를 일주일 만에 뛴 셈입니다.
그렇게 노력하면 어떤 한계든지 돌파할 수 있을까요? 이번에는 100m 달리기 기록을 살펴봅시다. 이 분야에는 ‘서브 10’이 존재했습니다. 인간이 과연 100m를 10초대로 주파할 수 있는가에 대해 오랜 세월 동안 회의적인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미국의 짐 하인즈(Jim Hines, 1946-2023)가 9초 95로 그 벽을 넘으면서 인간 한계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1988년 미국 잡지 ‘US 뉴스 & 월드리포트’는 모든 변수를 고려할 때 100m 한계는 9초 58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3년 후인 1991년 미국의 칼 루이스(Carl Lewis)가 9초 86을 달성하면서 예언은 쉽게 이루어지나 싶었는데 20년의 세월이 더 필요했고, 자메이카 출신의 우사인 볼트(Usain Bolt)가 2009년 베를린세계선수권대회에서 마침내 9초 58을 달성했습니다만 거기까지였습니다. 하지만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현실적인 기록들을 참고하면 9초 44가 최선이라고들 했지만 볼트의 출현으로 현재는 9초 35까지라고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스포츠채널 ESPN의 제작자인 존 브렌커스(John Brenkus, 1971-2025)는 자신의 저서『퍼펙션 포인트』에서 8.99라는 새로운 수치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인간은 자기 몸무게의 얼마까지 들 수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3배까지만이라던 통념은 ‘작은 거인’이라 불렸던 튀르키예의 나임 슐레이마놀루(Naim Süleymanoğlu, 1967-2017)가 1988년 60kg 몸무게로 188.5kg을 들어 올리면서 여지없이 깨졌습니다. 인간은 공중에서 얼마나 오래 머물 수 있을까요? 미국의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은 1988년 미국 NBA 덩크콘테스트에서 0.92초의 체공을 시전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 다리우스 클락(Darius Clark)이란 선수가 드디어 1초대를 기록했습니다. 도움닫기를 활용한 뜀틀의 양학선 선수는 1.06초 동안 공중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메이저리그는 시속 100마일을 던지는 투수가 단 한 명도 없던 시절이 훨씬 많았지만 지금은 평균 100마일을 넘는 강속구를 뿌려대는 선수가 즐비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과연 어느 정도의 시속까지 가능할까요? 인간에게는 분명히 한계가 존재합니다. 유한하기 때문에 무한한 존재를 경배하게 만드셨습니다. 하지만 그 한계 속에서 발전하게 하셨습니다. 날지 못하던 인류가 언제부터인가 우주로까지 진출하고 있고, 깊은 바다속을 헤아릴 수 없던 인류가 어느새 심해 밑바닥까지 탐험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은 인간의 발전을 질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귀하게 여기시고 이룩해 낸 성취를 기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주저 없이 안주하지 말고 앞으로,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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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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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건축칼럼]융복합공간과 경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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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지역사회와 연합되어지고 지속성장을 위한 핵심가치인 융복합개념은 한국사회의 변화와 건축트렌드에서 중요한 사항이 되었다. 지역사회의 허브로서 선한영향력을끼치는 교회의 모습은 단순히 성도들만의 공간개념을 변화시키고 있다.
현대시대의 교회는 주일만 활력적인 교회가 아니라 오히려 주중내내 더 역동적인 교회가 되어야한다.
이것은 교회가 시대와 그 지역과 융복합적으로 연합되어야 가능하다. 노인인구의 점진적증가는 교회가 웰니스 시니어 센터의 기능과 역활을 감당할 때 새로운 거점교회로서 성장될 것이다.
청소년과 재택근무자들이 부담없이 근린센터로서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교회는 공유오피스와같은 기존 교회의 공간을 복합적으로 연계시킬 수 있다. 영유아부실은 키즈도서관의 복합공간으로 이용될 수 있다. 엄마와 함께하는 교회의 이미지는 평일교회를 더 젊게 변모시킨다. 교회가 경제적으로 자립해 나가는 방안으로 교회의 공간을 활용하는 것도 필요한 시대이다.
수도권 재개발단지나 도심지 교회 건축시 저층부에 카페나 근린휴게점은 수익성을 창출시킬 수 있다. 일부 교회들은 약국, 근린음식점등의 시설을 자체운영하거나 임대로 대여하여 교회의 고정 수입을 만들고 있다. 대출로 건축 후 대출이자등을 이부분으로 극복하며 교회가 성장하고 자립되어 가면서 임대공간은 교회의 교육공간이나 부속공간으로 복귀시켜 가고 있다.
이 경우 제도적 법적내용과 세금에 대한 사항을 검토해야한다.
건축법상 교회는 종교시설이다 임대공간은 근린생활시설로 분류된다. 재개발 지역의 경우 종교시설에 근린시설을 복합적 용도로 건축하려면 사전에 구청에 부속용도의 비율을 확인해야한다.
주 용도는 50% 이상 용도가 되어야한다. 근린시설용도가 어느정도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 검토해야한다. 일부 지자체는 허용되기도 하나 일부는 아예 기타용도를 불허하기도 한다.
서울이나 수도권의 재개발지역은 허용하는 구청이 더 많다.
두번째의 세금부과 문제이다. 교회는 비영리 종교법인이라 수익사업이 안된다 따라서 복합시설로 건축시 임대 부분은 완전히 제 3자에게 임대하는 경우가 있고 교회에서 직영시에는 별도 사업주체를 만들어서 운영해야한다.
융복합시설로 건축시에 건축법은 종교시설보다는 완화되어있다. 주차장 설치기준도 완화되어있고 피난 기준도 수월하다.
외국의 경우 교회시설의 융복합 건축의 유형은 국내보다 더 적극적이다. 교회내에 주민센터, 우체국, 크리닉센터, 대안학교, 휘트니스와 같은 복합형태의 교회가 생겨나고 있다. 교회건축에 소요되는 막대한 재정을 경감시키는 다양한 연구는 현실적 문제이기도 하나 교회의 지속성장에 필수적인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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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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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교수의역사탐색]기독교가 이방 종교와 다른 4가지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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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3년간의 사역은 하나님 나라의 선포였고, 그는 구원과 영생의 길을 가르치셨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셨으나 그의 가르침을 따라 주후 30년경 예루살렘에서 최초의 교회가 탄생했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은 교회 설립의 기초가 되었고,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교회 설립의 직접적인 시작이 된다. 예수님의 사역과 십자가, 부활 그리고 승천을 목격했던 제자들은 감람산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이들은 한곳에 모여 십여 일간 간절히 기도했을 때 성령의 강림을 경험했고, 성령충만을 받았다. 이때 다른 방언으로 말하고 듣는 이적을 체험했다. 베드로는 모인 무리들에게 설교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24개의 강화 중 첫 번째 강화였다. 설교의 반응은 분명했다.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를 거부했던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우리가 어찌할꼬” 하며(행2:37) 상한 심령으로 몸부림칠 때, 사도들은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고 세례를 받으라고 했다. 이때 3천 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 이렇게 되어 예루살렘교회가 탄생했고, 이 교회는 세계교회의 모체가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교회의 첫 30년의 역사가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고, 바울은 서신서는 초기 기독교회의 실상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시작된 기독교는 당대의 이방종교 혹은 헬라-로마의 종교와는 확연히 다른 4가지 특징이 있었다. 첫째, 다른 모든 종교는 신상(神像)이 있고 신전(神殿)이 있었으나 기독교는 처음부터 그런 조각이나 건물이 없었다. 지금도 헬라도시에는 신상이 남아 있다. 로마에는 기원전 2년에 건축된 판테논 신전이 있고, 그리스 아테네에는 기원 5세기에 건축된 파르테논신전이 있다. 에베소는 아데미(Artemis) 신전의 중심지였고, 이곳의 아데미 여신은 로마제국 시대에 가장 숭배 받았던 여신이었고 이 여신상은 풍요를 상징했다. 아데미는 로마에서는 다이애나(Diana), 이집트에선 이시스(Isis) 라고 불렸다. 그러나 기독교에는 이런 신상이나 신전이 없었다. 제2계명에서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출20:4, 신5:8)고 하셨다. 별도의 집회공간으로서 교회당 건물이 처음 발견된 것은 예루살렘교회가 설립되고 200여년이 지난 256년이었다. 둘째, 당시의 모든 종교는 제의를 행하는 의식만 있었으나 기독교는 의식은 없었지만 처음부터 책을 가진 종교였고 말씀과 가르침이 있었다. 그 책이 바로 구약성경이었고 신약성경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기독교는 ‘텍스트 공동체’(text community), 곧 ‘책의 종교’(Religion of the Book)였다. 초기 성도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고(행2:42), 바울은 가르치고 권면했다. 그러나 이방 종교에는 가르침이나 권면, 교훈이 없었다. 셋째, 당시의 모든 종교는 정기집회가 없었고 어느 특정한 날에 제물을 바치고 제의에 따라 신에게 경배했다. 그러나 기독교는 처음부터 모이기를 힘쓰고(행2:46), 정기 집회가 있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 이른 새벽”을 기념하여 매 주일 집회가 개최되었다. 처음에는 날마다 모이기도 했지만 곧 주일집회가 정기집회가 되었다. 이 집회를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께 경배하고 가르침을 받은대로 살며 실천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10:24)고 권면했다. 정기집회는 기독교의 독특한 관행이었다. 이 집회를 통해 기르치고 가르침을 받았다. 넷째, 다른 모든 종교에는 전도가 없었으나 기독교에는 전도가 있었다. 기독교는 강력한 전도 혹은 선교하는 종교(a missionary religion)였다. 고대사 연구가인 마틴 굿먼(Martin Goodman)은 고대 이교(異敎)와 유대교에 대한 연구를 통해 기독교의 전도활동은 다른 종교와는 비견할 수 없는 일이며 이는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고 지적하면서 “그런 전도 목적의 선교 활동은 고대 세계에서 놀랍도록 희귀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전도 혹은 선교는 기독교의 특징이었다. 바울은 세계를 무대로 전도활동에 나섰는데, 로날드 혹(Ronald Hock)은 전도자 바울이 일생동안 여행했던 거리는 약 1마 마일에 해당한다고 보았는데, 이는 16,100km에 해당하는 거리였다. 그런가 하면 호주의 메멋 타스리알란(Mehmet Taslialan)의 연구에 의하면 바울이 이동했던 거리는 약 2만km에 달한다고 보았다. 지구 한바퀴가 4만km이므로 바울이 이동한 거리는 지구 절반 거리를 이동한 샘이다. 바울 외에도 초기 전도자들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이 온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음을 온 세상에 선포하고자 했다.
기원 30년경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기독교가 소아시아와 유럽으로 그리고 18세기 근대선교운동의 결과로 북아프리카와 아시아로 전파되고 세계적인 종교로 자리잡게 된 것은 비록 신전이나 신상을 세우지는 않았으나 정기집회를 통해 말씀을 가르치고 권면하고 전도하고 선교하는 일을 통해 이룬 결실이었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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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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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쓸모없어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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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냉정하다. 사람을 평가할 때 언제나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이 사람은 쓸모가 있는가?” 쓸모가 있으면 환영받고, 쓸모가 없으면 밀려난다. 회사는 생산성을 기준으로 사람을 정리하고, 사회는 효용을 기준으로 약자를 평가한다. 노인과 장애인, 병든 사람들까지도 점점 “부담”이라는 이름으로 분류된다. 심지어 전염병 상황 속에서 동물은 살처분되는데, 사람은 왜 그렇게 하지 않느냐는 극단적인 질문까지 등장한다. 이 질문은 비인간적이지만, 동시에 오늘 우리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우리는 점점 더 사람을 “존재”가 아니라 “기능”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시선은 종교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예수 시대의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앞에서도 사람을 구분했다. 세리는 버려야 할 자였고, 창녀는 가까이해서는 안 될 존재였다. 그들이 말하는 거룩은 구별과 격리였고, 결국 그것은 쓸모없는 사람을 밀어내는 논리로 작동했다. 하나님조차 효용의 기준으로 이해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시선은 전혀 달랐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아흔아홉 마리를 들판에 두고 나서는 목자의 이야기는 비효율의 극치다. 잃어버린 동전 하나를 찾고 기뻐 잔치를 여는 여인의 모습도 계산으로 보면 손해다.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아들을 위해 다시 모든 것을 내어주는 아버지의 행동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 이야기들은 모두 하나의 메시지를 향한다. 사람의 가치는 계산으로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탕자의 비유는 이 점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모든 것을 잃고 돌아온 아들은 스스로를 평가한다. “나는 더 이상 아들이 아니다. 품꾼으로라도 써 달라.” 그는 이미 자신을 쓸모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평가를 단호히 거부한다. 조건을 묻지 않고, 과거를 따지지 않고, 다시 아들로 받아들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태도다. 아들은 여전히 쓸모없는 상태였지만, 아버지에게는 여전히 사랑의 대상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큰아들은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쓸모 있는 존재라는 확신 속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동생의 귀환이 불공평하게 느껴진다. 그의 눈에는 관계조차 계산의 문제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말한다. “그는 네 동생이다.” 이 한 문장은 관계의 본질을 드러낸다. 관계는 쓸모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유지된다. 사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사람을 도구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한 사람을 희생해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상황에서도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의 생명이 계산의 대상이 아니라는 직관이 우리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효용의 논리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사랑은 다르다. 값싼 물건 하나와 비싼 물건 하나가 있을 때, 그 물건에 담긴 마음이 다르다면 선택은 달라진다. 우리는 가격이 아니라 관계를 선택한다. 이것이 인간이 가진 또 하나의 본능이다.
사랑은 효율을 따지지 않는다. 사랑은 결과를 계산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 가지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한다 “쓸모가 없으면 정말 가치도 없는가?” 그렇지 않다.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더라도, 병상에 누워 있더라도, 누군가에게 부담이 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존재는 여전히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가치는 기능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존재의 가치는 누군가의 사랑 속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신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세상과 갈라진다. 하나님은 인간을 쓸모 있는 도구로 보지 않는다. 사랑하는 자녀로 부르신다. 그래서 인간의 가치는 성취가 아니라 관계에서, 기능이 아니라 사랑에서 드러난다.
세상은 여전히 묻는다. “쓸모가 있는가?” 그러나 신앙은 이렇게 답한다. 쓸모없어도 된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소중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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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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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법특강]개신교회 는 어디서 왔을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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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장로교회 교회정치, 아니 개신교회 교회정치는 어디서 왔을까? 역사적으로 보면 지금부터 약 500년 전에 일어난 종교개혁을 통해 완성되었다. 복음을 다시 발견하고, 교회 조직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성직자 중심의 직분, 또 서열을 세우는 직분(hierarchy) 시스템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종교개혁가 루터와 츠빙글리를 중심으로 한 독일과 스위스 지역교회에서 변화가 먼저 일어났다. 그러나 완전하지 못했다. 말씀의 사역자인 목사는 세웠으나 장로와 집사 직분은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위스 제네바와 스트라스부르와 같은 독일 북부지역에서 개혁가 요한 칼빈과 마틴 부써를 중심으로 활동한 교회는 달랐다. 교회는 참된 신자로 이루어지는 곳이기에 교회와 국가를 구분하고, 교회는 교회가 직접 세운 직분자를 통해 영적 권징(勸懲)이 행사되어야 함을 주장했다. 그 결과 교회에 목사와 함께 권징을 행사할 장로를 세우고 나아가 구제를 담당할 집사를 세웠다.
부써와 칼빈이 제시한 이 새로운 교회정치 모델은 즉시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당시 교회들은 모두 나름대로 생각하고 공부하고 토론하면서 성경적인 교회정치를 세워갔지만, 특별히 스위스 제네바교회가 보여준 교회정치 모델의 핵심원리를 받아들였다. 부써와 칼빈이 보여준 교회정치 모델은 두 가지 노선으로 퍼졌다.
첫째 노선은 요한 아 라스코, 발레란두스 폴라누스, 말턴 미크론 목사 등이다. 이들은 모두 당시 영국의 런던, 글라스톤버리,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 적을 둔 피난민교회에서 사역한 목사들이다. 이들이 사역한 교회는 신앙 박해로 인해 자기 나라를 떠나 피난한 교인들로 구성되었다. 그래서 정부(국가)의 간섭 없이도 제네바교회가 보여준 모델을 따라서 교회정치를 실행할 수 있었다. 1550-1554년 사이에 이들 교회는 교회정치를 책으로 만들어서 자세하게 분명하게 설명하였다(라틴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요한 아 라스코는 “Forma ac Ratio”를, 폴라누스는 “Liturgia Sacra”를, 미크론은 “기독교 법령”(Christelijke Ordinacieen)을 각각 저술했다. 요한 녹스(John Knox)는 제네바에 있는 영국인 피난민교회를 위해 영어로 책을 저술하였다. 따라서 칼빈이 제네바에서 장로를 세운 지 20년이 채 되지 않아서 개신교회의 교회정치 모델이 무려 4개 언어로 소개되었다!
둘째 노선은 칼빈의 동료이자 계승자인 베자(Beza)다. 그는 <프랑스신앙고백서>(1559년)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교회와 직분을 상세하게 다루는 이 책은 5년 만에 라틴어, 이탈리아어, 네덜란드어, 독일어, 영어로 번역되어 여러 차례 출판되고, 1562년에는 헝가리 교회가 약간 수정해서 신앙고백서로 채택했다. 베자는 프랑스 개혁주의 교회 형성에 깊이 관여했다. 그리고 개신교회의 교회정치가 탁월함을 입증했다. 에라스투스(Thomas Erastus,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교수)에 대해서는 교회는 국가와 별도로 자체적으로 권징을 행사할 권리가 있음을 입증했고, 사라비아(Saravia, 영국의 신학자)에 대해서는 주교(감독) 직분을 논박했다. 그가 영향을 끼친 프랑스교회 교회정치인 <프랑스교회권징서>(1559년)는 <제네바교회법령> 원리를 따라 작성되었으나 제네바보다 더 잘 시행될 수 있었다. 프랑스교회는 노회와 총회를 제시했다(2-5조). 지역교회가 목사와 장로, 집사를 동등한 자격으로 대표로 파송하도록 했다. 이는 지역교회의 독립성을 전제하면서도 교권주의로 흐르지 않고, 교회들의 연대를 통한 교회 일치를 목표로 한 것이었다. 노회와 총회는 지역교회 당회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받아서 다루었다. 이로써 1580년 전후로 개신교회 교회정치 모델이 서유럽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되고, 바로 이 개신교회의 모델이 미국교회를 통해 우리나라 개신교회에 영향을 끼쳤다. 16세기 후반을 지나면서 개혁주의 직분론이 아주 빨리 그리고 괄목하게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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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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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말씀]거듭 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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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질문을 받습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던지시는 질문은 그 어떤 질문보다도 중요합니다. “여러분, 거듭나셨습니까?”,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는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바리새인이었고, 유대인의 지도자였습니다. 종교적으로 보면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에게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하지만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묻습니다.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그러자 예수님은 거듭남의 비밀을 더 분명하게 설명해 주십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오늘에도 거듭남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교회는 다니지만 거듭나지 못하고, 거듭남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오늘 본문의 니고데모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에 대해서 깨닫게 하셨듯이, 오늘 거듭남의 비밀을 모르는 분들에게 깨달음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 5절에서 니고데모에게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여기서 “물”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성경은 여러 곳에서 “물”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설명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늘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죽은 영혼이 살아나는 순간은 언제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들릴 때입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을 기억하십니까? 그 뼈들이 살아나기 시작한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니고데모도 처음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계속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요? 요한복음 7장을 보면, 예수님을 변호한 사람이 되었고, 요한복음 19장에서는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니고데모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점점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지금 당장 변화되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들어가면 반드시 변화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다시 태어나는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둘째, 성령의 바람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의 씨앗이라면, 그 씨앗을 자라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고, 성령의 바람이 불면 생명은 다시 살아나고 자라게 됩니다. 바람에는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야 생명이 살아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성령의 바람을 사람이 불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니고데모도, 그 누구도 이 성령의 바람에 대해서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바람을 불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만이 성령님을 보내셔서 그 바람을 불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이처럼 자유롭게 바람처럼 역사하십니다.
셋째. 예수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수님을 쳐다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삽니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입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장 2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우리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믿음이 생깁니다. “병든 자, 뱀에게 물린 자, 죽어가는 자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온전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거듭난 사람만이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거듭나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의 바람이 불면 그 사람은 거듭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십시오. 성령의 바람이 불 때, 마음을 활짝 열고, 여러분의 영혼 깊은 곳에 말씀의 역사,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날마다 예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아직 구원의 확신이 없는 분들에게 마지막으로 권면합니다. 지금 마음을 여십시오. 지금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이 시간 이후로 우리 모두가 이렇게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나는 거듭났습니다. 나는 구원받았습니다.” 이 고백이 여러분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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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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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법특강]개신교회의 는 어디서 왔을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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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장로교회의 교회정치는 어디서 왔을까? 역사적으로 보면 지금부터 약 500년 전 교회(로마천주교회)의 교회정치, 특히 직분론을 배경으로 나왔다. 당시 교회 조직의 특징은 ‘계급적’이고 ‘성직자 중심’이었다. 그런데 16세기 종교개혁을 통해 교회 조직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 교회의 성직자 중심, 서열 제도(hierarchy)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종교개혁가 루터와 츠빙글리를 중심으로 한 독일과 대부분 스위스 지역 개신교회의 교회정치는 완전하지 못했다. 교회에서 목사 외에 장로와 집사 직분은 아직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위스 일부와 스트라스부르와 같은 북부 독일은 개혁가 루터와 츠빙글리의 교회들과는 전혀 달랐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1530년부터 먼저 교회에 대한 개혁주의적인 고백이 나타났다. 특별히 다음 두 가지를 주목해야 한다: 첫째, 교회는 참된 믿음을 가진 신자의 교회로 세워져야 한다. 그래서 권징이 행사되어야 한다. 둘째, 교회는 사회(국가)와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교회에 합당한 통치가 별도로 있어야 하며 정부 공직자가 아니라 교회 직분자에 의해 권징이 행사되어야 한다.
바로 이 두 가지는 교회 제도(조직)와 관련해서 종교개혁을 통해 개혁된 교회에서도 볼 수 없던 새로운 견해였다. 스위스 바젤에서 사역한 요한 외콜람파디우스를 시작으로 마틴 부써, 요한 칼빈 두 사람이 1530년 이후 개혁주의 직분론을 발전시켜갔다. 이들은 모두 성경 연구와 설교를 통해 이 작업을 해나갔다. 이들은 특히 교회는 사회(국가)와 구분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설교와 성례, 나아가 권징과 가난한 자 구제라는 항존하는 직무를 맡을 항존 직분이 각각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 직분들은 설교자와 전임(풀타임) 사역자가 아니라 일반 교인 중에서 선출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 결과 교회에서 성직자-평신도의 구조가 붕괴되고, 교인 중에서 일부 사람이 자신의 직업 외에 장로와 집사 같은 영적인 직분을 별도로 가지게 되었다.
특히 마틴 부써는 1538년에 쓴 『참된 목양』이라는 책을 통해 최초로 개혁주의 직분론을 확립했다. 요한 칼빈은 특히 『제네바교회 교회법령』(1541년)과 『기독교강요』(1543년)을 통해 부써의 직분론을 체계화시키고 이를 계속 이어갔다. 그리고 자신이 목회하는 제네바교회에서 이를 실천했다. 그래서 칼빈은 부써보다 훨씬 더 많은 추종자를 얻었다. 특히 1543년의 『기독교강요』는 교회질서를 근본적으로 다룬 좋은 모델을 제시하였다. 물론 칼빈이 쓴 주석이나 설교, 서신에서도 교회질서에 관한 내용을 일부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의 교회정치는 순탄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세상 정부인 시의회 당국자들로부터 끊임없이 저항을 받았다. 이들은 교회가 임명하는 “윤리 징계 위원”(censores morum)만을 허용하고 이를 시에 보고하기를 원하였다. 당시 기독교국가(사회)라는 배경에서 정치인들은 교회가 독자적으로 사람을 세우고 독자적인 잣대로 당회가 권징(勸懲)을 시행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랬을 때 한 나라 안에 교회와 정부(시의회)라는 두 세력이 서로 경쟁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럼에도 부써, 특히 칼빈은 교회가 독자적인 권징을 가질 것을 계속 고집했고, 결국 1536-1551년 동안 이루어진 사역을 통해 다음과 같이 서로 구별되는 세 직분에 근거를 둔 독자적인 교회 조직이 생겨났다: 목사(설교자), 장로, 집사.
이 교회 조직은 처음에는 1538년 이후 칼빈이 제네바교회에서 추방한 이후 독일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프랑스인으로 구성된 소규모의 이민 교회를 목회할 때, 그리고 1541년 이후에는 다시 청빙을 받은 제네바의 교회들에서 목회할 때 실행에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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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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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왕과 함께 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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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같은 OTT의 확산으로 영화관의 힘이 예전 같지 않다고들 말합니다. 그런데 지난 2월 개봉한 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그런 예상을 뒤집고 3월 초 1,00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이 영화는 폐위된 단종의 마지막 시기와 그의 곁을 지켰던 엄흥도의 이야기를 대중에게 다시 불러냈습니다. 영화 흥행 이후 단종, 사육신, 생육신, 청령포 같은 이름들에 대한 관심도 눈에 띄게 높아졌다고 합니다.
물론 영화는 영화입니다. 역사적 사실 위에 상상력이 더해진 작품입니다. 실제 엄흥도의 역사적 모습과 영화 속 설정 사이에도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좋은 영화는 우리에게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질문을 남깁니다. 이 영화가 남기는 질문은 분명합니다. “당신은 누구를 왕으로 섬기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1456년, 세조 2년에 일어난 단종 복위 운동은 바로 그 질문 앞에서 갈라진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성삼문, 박팽년 등 사육신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정당한 왕을 외면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들에게 충성은 계산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김질은 처음에는 뜻을 함께하다가 끝내 그 일을 밀고했습니다. 그는 살아남았고, 높은 자리에 올랐습니다. 세상 기준으로 보면 성공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그를 충신이 아니라 변절자로 기억합니다. 우의정과 좌의정이라는 그가 얻은 높은 직위가 그의 이름을 빛내 주지는 못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은 결국 자기가 섬기는 왕을 따라 자기 인생의 색깔이 결정됩니다. “누구 곁에 섰는가?”가 그 사람의 존재를 드러냅니다. 사육신은 죽었지만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시대를 건너 존경을 받습니다. 반대로 김질은 살아남았고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오히려 부끄러운 이름으로 남았습니다. 눈앞의 안위와 출세를 붙든 사람은 잠시 살 수 있어도, 영원히 사는 이름을 얻지는 못합니다.
영화 속 엄흥도는 귀양 온 이가 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그와 함께 살고, 함께 밥을 먹고, 마침내 왕의 시신을 목숨 걸고 수습합니다. 이것이 제 마음을 강하게 붙들었습니다. 왕을 안다는 것은 멀리서 박수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왕과 함께 사는 것이었습니다. 왕의 슬픔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왕이 버림받았을 때에도 등을 돌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신앙도 그런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을 내 인생의 장식품처럼 두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왕좌에 모시는 일입니다. 주일에만 왕이시고 평일에는 내가 왕이 되는 신앙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참된 신앙은 그분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에게 환영받으셨지만, 결국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갈라졌습니다. 끝까지 주님 곁에 남은 자들이 있었고, 이익과 두려움 때문에 등을 돌린 자들도 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사육신의 길과 김질의 길은 먼 옛날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오늘도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선택입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진리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나의 유익을 위해 신앙을 접어둘 것인가?” “사람들의 눈보다 주님의 시선을 두려워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의 평안과 자리를 더 소중히 여길 것인가?”
고난주간을 지나고 부활절을 맞으며 우리는 다시 묻게 됩니다. “나는 어떤 왕을 섬기고 있는가?” 교회 안에서는 그리스도를 왕이라 부르지만, 실제 삶에서는 돈이 왕이 되고, 평판이 왕이 되고, 성공이 왕이 되고, 내 욕심이 왕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잘못된 왕을 섬기면 잠시 편할 수는 있어도 영혼은 망가집니다. 반대로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면 때로는 좁은 길을 걸을 수 있어도, 그 길 끝에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영광이 있습니다.
왕과 함께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살고, 주님과 함께 먹고, 주님의 길을 함께 걷고, 세상이 외면한 자리에서도 주님 곁에 머무는 사람 말입니다. “사육신의 길을 갈 것인가, 김질의 길을 갈 것인가?” 결국 신앙은 이 질문 앞에서 판가름 납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왕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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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