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9-23(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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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대학교 이병수 교수

 최근 박사 과정 학생 수업 중 한 학생이 우리 기독교인은 미얀마 사태를 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지난 2월 1일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지 80여 일이 된 현재 누적 사망자 738명, 언론인 영화배우 시위 지도자 등 대거 체포로 3152명이 구금되었다고 한다. 체포영장이 발부된 717명은 도피 중이며 그중 일부는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다. 심지어 이들의 무차별 총격으로 40명 넘는 어린이와 여성, 임신부 등 수많은 고귀한 여성들이 비참하게 목숨을 잃었다. 성경은 한 생명이 천하보다 더 귀하다고 했는데 이런 고귀한 수많은 생명이 총탄에 사라졌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들을 우리의 가족으로 생각한다면 도저히 참을 수 없다. 필자도 그 곳에 당장 가서 그들의 아픔을 싸매고 보듬고 싶고 그들과 같이 군부들에게 저항하고 싶은 마음이다. 죽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군부들은 이런 고귀한 생명들이 수없이 잃는다 하더라고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일들을 자행할지 모를 악마적 세력이다. 지옥에서 출장 나온 악마들!!!

 언론과 방송에 나타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1980년대의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의 모습이 생각났고 미얀마의 사태가 바로 우리의 모습이요 우리의 아픔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필자는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 영화와 음악과 한류를 사랑하고 태권도 사범이었던 19세 여성이 군경이 발사한 총알에 머리에 맞아 사망하는 순간에도 다른 동료들의 안전을 고려하면서 소리쳤다는 기사를 보고 참 많이 울었다. 그의 희생이 헛되지 않고 미얀마의 민주화의 할 알의 밀알이 되기를 기도하면서 그 날 이후 필자의 모든 수업시간마다 마칠 때 미얀마의 민주화와 복음화를 위해서 기도하게 되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아무것도 없지만 가장 할 수 있는 것은 기도하는 일이다. 기도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필자는 대한민국의 민주화의 성취는 수많은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분들의 피와 땀도 있었지만 그것을 위해서 기도한 교회와 개인들 때문에 가능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도가 더 절실히 필요한 것은 이런 참극에 유엔과 국제사회는 별다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이 중국의 외교정책을 봉쇄하기 위해 쿼드(Quad)의 네 나라(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동맹으로 중국의 남방정책을 가로 막는 가운데 중국이 남방으로 나아가는데 주요한 국가가 미얀마이기 때문에 중국은 미얀마의 군부를 지지하고 미얀마는 중국의 보호를 유지하는 가운데 있기 때문에 국제관계가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국제적 제제조치를 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남북통일이 인간의 노력으로 최선을 다하지만 우리의 어떤 노력들도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처럼 미얀마의 민주화도 인간의 노력을 최대한 기울여야 하지만 불가능한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유일한 대안이다. 또한 전문가에 의하면 미얀마의 군부가 약 5만에 이르고 무장한 군인들이 시민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때문에 내전으로 치닫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만을 바라 볼 수 밖 에 없는 것이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스가랴 4:6). 성령의 능력으로 기도하는 것이 우리가 미얀마를 도울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 대안이다. 특히 주기도문의 기도 내용처럼 악의 세력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도록 더욱이 미얀마에 수 백 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있는데 그들을 악의 세력으로부터 보호받도록 기도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정의의 하나님께서 하박국에서 나오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심판이 폭력을 자행하는 군부들에게 임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마을을 짓밟고 성읍마다 쳐들어가 주민들을 무찌른 탓이다. 화를 입으리라”(공동번역 하박국 2장 8~9절).

 지금 미얀마 시민들은 누가복음 10장에 나타나는 강도만난 사람들이다. 군사 반군 세력의 강도 떼 들에게 피해를 본 사람들이다. 거의 죽게 된 상황이다.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다. 예수님의 비유처럼 도움을 줄 이웃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웃은 공간적으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도움이 필요하고 그 도움을 채우는 사람이 이웃이다.

 그런데 그 비유에 보면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가는 두 부류가 있다. 바로 제사장과 레위인 이다. 왜 피하여 지나갔을까? 너무 바빠서? 일에 중독이 되어서? 나는 그 구절을 볼 때 마다 예수님께서 제사장과 레위인 등 가장 종교적인 사람이 가장 자비와 긍휼이 많아야 할 사람인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의도적 보여주는 예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오늘날 자비와 긍휼을 상실한 교회를 지적하기 위한 예로 볼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는 경구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어려움과 고통 속에 거의 죽어가고 있는데 그들에 대해 지연된 자비와 긍휼은 자비와 긍휼이 아닌 것처럼. 주님께서는 형식적인 경건과 종교를 가장 미워하시고 싫어하신다. 회칠한 무덤이라고 비판하시고 책망하신다. 대신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을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약 1:27)는 것으로 여기셨다.

 최근 저가 봉사했던 교회 청년회 회장이 이 멜로 연락이 왔다. 내용은 청년들이 선한 곳에 사용하기 위해서 헌금을 모았는데 어디에 사용하면 좋겠는지 자문을 구한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미얀마 사태로 수많은 미얀마 시민들이 목숨을 잃고 희생되던 시기라 그 돈을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서 사용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더니 청년회 회장이 회원들과 의논한 뒤 답을 주겠다고 하면서 답이 왔는데 그 재정을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고 해서 그 재정을 미얀마 민주화 시위 단체에게 전달하게 되었다. 정말 이 시대에 멋진 쿨 한 젊은 그리스도인들이다.

 저가 몸담고 있는 기독교 윤리실천운동본부도 성명서를 발표하고 재정을 모아서 미얀마 민주화 시위에 재정을 보냈고 많은 회원들이 참여하였는데 참여회원들이 더 많이 발생하여 2차 까지 재정을 모아 보내기도 했다. 부산 YMCA도 함께 참여하고 수많은 기독교회들이 참여하고 재정을 보내고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부산 CBS가 주최하여 양문교회(사상구 소재 강동현 담임목사)에서 미얀마를 위한 기도회를 가졌다. 그 기도회에 필자와 함께 참석한 고신대 재학 중 미얀마 학생에 의하면 한국 젊은이들과 시민사회와 교회의 성도들이 미얀마를 위해 기도하고 성금을 보내주고 응원해 주는데 미얀마 사람들이 감격해하고 힘과 용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바로 이런 분들이 오늘의 미얀마에서 강도만난 사람들을 돕는 선한 사마리아 인들이다. 대한민국은 일제의 참혹한 지배와 군사독재의 엄혹한 시련을 극복하고 복음화와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나라이다. 이제는 명실상부한 도덕성에서 탁월한 선진화와 세계화의 가장 모범적인 국가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복음화 산업화 민주화 선진화의 수출국가가 되기를 바란다. 특히 아시아와 중동과 아프리카와 제 삼 세계를 위해.

 1980년 학살을 겪은 광주시민들은 쿠데타에 반대하고 미얀마 인들의 민주주의 시위를 지지하는 ‘미얀마 광주연대’를 만들어 주말마다 집회를 열고 시인들은 시를 써 읊고 있다고 한다. 우리 부산도 미얀마의 복음화와 민주화를 위해 공존과 연대의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서 정기적으로 모여서 기도하고 선한 사마리아인의 삶을 실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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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미얀마 사태와 선한사마리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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