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9-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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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이십년도 더 지났다 세월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한인교회연합회가 주관하는 부흥성회 강사로 다녀온 것이 1998년도니 말이다. 강산이 두 번도 더 변한 세월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잊지 못할 성회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만 해도 별 볼일 없고 젊기까지 한 지방도시 목사가 그런 대형집회 강사로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골백번을 생각해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였다. 마치 하늘 문이 열리고 단비가 내리 듯 집회현장은 성령의 단비가 내렸고 사도행전의 역사가 재현되는 속에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통한 기적을 체험하며 기쁨으로 충만했었다. 집회를 마치면 그토록 보고 싶던 이과수폭포 관광 일정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리던 관광을 취소했다. 예정에도 없던 목회자 세미나를 2차 부흥회처럼 이어 3일을 인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여행은 할 수 없었지만 그날 그 시간의 감동은 내게 남은 여러 소중한 추억 가운데 참으로 거룩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그 때 아르헨티나에 걸렸던 플레카드는 <때밀이 목사 아르헨티나에 오다>였다. 어느 목사님이 궁금했던지 가만히 내게 묻기를 “서목사님, 혹시 목사되기 전에 때밀이 했습니까?”라고 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때밀이하고 있습니다.” 하고 조용히 답했다. 그 분의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에 97년도에 출간한 <우리 목사님은 때밀이> 책을 소개하며 그곳에 답이 있다고 했다. 목사의 목회와 목욕탕 때밀이(한국 표준 직업분류상으로는 목욕관리사이며, 세간에서는 세신사(洗身士)로 통용되지만 표준 국어대사전에서는 ‘때밀이’가 표준어다)의 상관 관계를 생각하면서 목회 현장 이야기를 엮어 출간한 책이다.

 목욕탕에 갔던 어느 날 하도 힘이 없어 목욕관리사에게 때를 밀었던 때 겪은 일이 내 목회현장을 가꾸는 참고서처럼 적용되었다. 순서를 기다리던 나는 내 앞의 어르신 한 분이 때를 미는 것을 가만히 살펴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관리사가 콩죽 같은 땀을 흘리면서 때를 밀고 있는데 갑자기 손님이 벌떡 일어나더니 “야, 임마! 살살 밀어. 아프잖아!” 한다. 순간 청년 때밀이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아! 예, 예, 사장님” 하는데 상기되어 별 말은 없었지만 기분이 상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그 손님이 미운 생각이 들면서 때밀이 청년이 안쓰러웠다. 땀을 흘리는 때밀이의 상한 마음이 그대로 표출되는 팔에 힘이 더 들어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손님이 다시 벌떡 일어나더니 “야! 임마, 살살 밀라 안하냐! 내가 돼지인 줄 아냐 임마!” 하고 소리를 치는 것이다. 놀란 때밀이는 연신 허리를 굽히면서 “아, 예, 예” 하면서 다시 때를 미는데, 말 한 마디 없었지만 “그래! 살살 민다, 이 돼지야!” 하는 기분상한 표정으로 때를 밀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던 나는 불현 듯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 분이 자기 입으로 무심코 내뱉는 “내가 돼지인 줄 아냐?”라는 말을 듣고 보니 체구가 정말 돼지를 연상하게 하는 거구였다.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 손님 다음이 내 차례였다. 아프기는 아팠다. 그래도 참으면서 그 손님이 이해가 되었다. ‘내가 경험하지 않고는 섣불리 판단할 일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너무 아파서 안 되겠다 싶어 나도 벌떡 일어났다. 흠칫 놀란 청년의 손을 잡고 “그렇게 땀 흘리면서 힘들게 밀지 않아도 돼요. 어이구, 이 땀 좀 봐...그냥 편하게 밀어요.”했더니 얼굴이 밝아지면서 “아! 예, 예, 사장님”하는 것이다. “내가 사장이 아니고 목사인데, 나도 당신 같은 동생이 있다. 얼마나 수고하시는가.”라고 했더니 때밀이의 팔에 힘이 조절 되면서 얼마나 살살 잘 밀어주는지 잠이 올 지경이었다. 때를 다 밀고 음료수 한 병을 사서 건넸더니 수없이 절을 하면서 고맙다고 하던 그 청년 때밀이를 생각하면서 목회와 때밀이의 상관 관계성을 담아 책으로 출간했다.

 어쩌면 때밀이가 겪는 목욕탕에서의 희로애락이 목회자의 목회 현장과 흡사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목욕탕 운영이 교회의 목회경영과 흡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이유로 첫째, 때밀이는 목욕탕 문을 열고 하루를 시작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목회도 마찬가지다. 둘째, 탕 안의 물은 항상 깨끗하게 관리해야 한다. 오후 늦은 시각에 가 보면 관리가 안 되는 탕 안의 물은 머리카락과 때 등으로 지저분한 것을 본다. 출입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목사의 설교는 목욕탕 안의 물과 같다. 셋째, 지저분한 목욕탕 내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관리해야 한다. 목사의 심방관리가 이와 같다. 넷째, 목욕탕 안에서 유일하게 팬티를 입고 있는 이는 때밀이다. 목사는 항상 성도들의 눈에 띄게 자리매김을 해야 한다. 다섯째, 때밀이는 손님과의 관계에 반응한다. 많은 것을 참으면서 일하지만 손님이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그 반응은 손님에게 그대로 돌아간다. 목사의 목회 현장 교인과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 여섯째, 때밀이는 주인의 뜻에 순응해야 한다. 목사의 목회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것이 때밀이와 목사의 공통점이다.

 교인들은 자신의 감정과 자신의 생각으로 목사를 바라본다. 그래서 쉽게 이렇게도 정의하고 저렇게도 정의하는 목사의 모습은 교인들에게 천태만상으로 비쳐진다. 어떤 이에게는 미가엘처럼 보이고 어떤 이에게는 루시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이에게는 선한 목자처럼 보이고 어떤 이에게는 삯꾼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교인들은 자신이 보는 대로,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목사를 정의한다. 그래도 목사는 대꾸하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을 주님 앞에서 속으로 다스린다.

 목사도 한 인간이다. 목사에게도 인간이 보편적으로 겪는 사생활의 희로애락이 있다. 그러나 그 희로애락을 목사 자신의 마음대로 나타낼 수 없다는 것이 성도와 다른 점이다. 지도자의 표현은 그 자체가 메시지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두고 어떤 이는 위선적인 삶이라 힐난하고, 또 어떤 이는 지도자로서 얼마나 힘든 삶인가 하여 격려를 보내기도 한다. 목사는 지도자로서 기쁨이든 아픔이든 그 자체를 또 속으로 모두 관리해야 한다. 어느 목욕탕이든 주인은 쉬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때밀이는 항상 보인다. 교회는 주님이 보이지 않고 목사가 보인다. 때밀이의 좋은 관리로 목욕탕 운영이 잘 되는 것처럼 목사의 하나님 앞에서의 순종으로 교회가 평행감축이 되기도 한다. <우리 목사님은 때밀이>의 목사도 교인도 이것을 헤아릴 때 교회는 좋은 교회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는 더욱 왕성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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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칼럼] 우리 목사님은 때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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