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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복수의 세상에서 용서를 외치다
    상실을 대하는 태도가 믿음을 결정한다 현대영화에서 기독교 영화와 세속적인 영화를 결정짓는 요인 가운데 하나는 상실(喪失)에 대응하는 태도에 달려있다. 건강과 재산을 잃어버린 상황이 전개된다면 세속적인 영화는 욥의 아내처럼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2:9)라는 식의 분노로 화면을 채우기 십상이다. 그러나 기독교 영화라면 욥이 말한 것처럼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는 주인공의 고백과 함께 상실과 고난의 의미를 발견하려는 의지를 화면 가득 펼칠 것이다. 그런데 건강과 재산 정도가 아니라 부모나 자식, 형제를 불의한 자들의 손에 의해 잃어버린다면 어떨까? 드라마의 대중적 인기 요소가 ‘갈등’에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영화는 주인공의 갈등이 크면 클수록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을 가능성이 높은 까닭에 주인공을 극한의 상황으로 내모는 경향이 있다. 이때 기독교 영화가 아닌 세속적인 영화라면 갈등은 분노와 더불어 복수로 이어지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복수는 대중영화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가장 인기있는 방법이다. 관객은 복수를 보여주는 영화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영화 제작자는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아 흥행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까닭에 관객이나 제작자 모두 복수극을 마다할 필요가 없다. 특히 복수극에 자주 나타나는 폭력성에 대해서도 윤리적 비판을 비켜갈 수도 있다. 왜냐하면 액션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복수는 정의로운 심판으로 위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에 등장하는 복수의 가장 큰 위험성은 그것이 ‘인간다운 행동’으로 인식되거나 예술의 차원에서 미학의 한 부류로 취급될 때 일어날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의 소위 말하는 ‘복수 3부극’은 인간다운 행동으로서의 복수를 묘사한 영화들이다. <복수는 나의 것>(2001)과 <올드 보이>(2003)에 이어서 <친절한 금자씨>(2005)에 오면 복수는 그 잔인성이 사회의 규범적 가치를 초월하여 영혼에 대한 속죄의 방법으로 발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복수가 인간의 가장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아이들을 유괴 살인한 백선생(최민식)에 대한 집단적 복수 살해 장면은 종교의례를 방불케 한다. 그들은 일상생활을 영위하던 도시를 떠나 한적한 시골의 폐교의 한 교실 한가운데 백선생을 묶어 놓고 한사람씩 차례대로 잔인한 보복행위를 가한다. 피가 튀지 않도록 우비를 입고 연장을 손에 들고 살해방법에 대한 절차와 방법을 의논하고 들어가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신의 제단에 제물을 바치는 예식행위를 연상시킨다. 죽은 아이들을 위한 속죄 행위로서 벌이는 백선생에 대한 복수는 이미 보복살인이 인간적인 행동으로 정당화하는 수준을 넘어 경건한 예식을 통한 예술적 수준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비나 웜브란트는 달랐다 <사비나:그리스도를 위한 고난, 나치시대>(Sabina: Tortured for Christ, the Nazi Years , 2021)는 루마니아의 공산정권에서 기독교 신앙을 지키다 14년간이나 옥살이를 했던 리처드 웜브란트 목사와 그의 아내 사비나 웜브란트의 사랑과 용서를 그린 아름다운 영화다. 영화의 전반부는 유대인이었던 두 남녀가 만나서 결혼을 하고 기독교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었다. 마르크스의 책을 가까이했었던 남편 웜브란트는 결핵에 걸려 요양생활을 하던 중 성경을 접하고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다. 유대교와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적으로 기독교와 갈등 관계에 있었다는 점에서 웜브란트의 회심은 진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이 겪게 될 고난과 순교적 신앙을 예고하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영화의 후반부는 루마니아를 점령하며 유대인 사냥에 나섰던 독일군이 소련군에 의해 퇴각당하는 상황에서 일어난 일을 묘사하고 있다. 숨은 유대인을 찾아 나섰던 독일군은 상황이 역전되어 유대인이었던 웜브란트 목사 부부의 도움으로 소련군의 눈을 피해 숨을 곳을 찾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사비나 웜브란트(Raluka Botez)와 유대인 도살자로 불리며 사비나의 가족을 학살한 당사자 보릴라(Gabriel Costin)와의 만남에 있다. 어느 날 밤, 잠을 자던 사비나는 남편으로부터 자신의 가족을 학살한 바로 그 독일군이 소련군의 눈을 피해 자신의 집 거실에 있음을 듣게 된다. 학살자를 눈앞에서 마주한 사비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분노와 복수의 마음이 머리끝까지 올랐을 것 같지만 영화는 그 반대의 장면을 보여준다. 사비나는 자신의 가족을 죽인 학살자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복음의 핵심이 용서임을 말한다. “복음의 핵심은 용서입니다. 제가 용서받은 것처럼, 당신도 용서를 구하면 주님께서 용서해주실 거에요.” 그리고 배고픈 그를 위해 먹을 것을 준비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한 장면처럼 느껴져야 하지만 낯설게 보이는 것은 우리가 대중영화 속 복수의 논리에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이리라. 사비나 웜브란트는 철저히 성경적인 사람이었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잠25:21-22)는 성경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고 있지 않은가! 사비나 웜브란트는 예수님이 가르쳐 준 용서를 실천한 사람이었다. 분노와 복수가 넘쳐나는 영화세상에 기독교 영화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웜브란트와 ‘순교자의 소리’ <사비나:그리스도를 위한 고난, 나치시대>는 교회가 주목할 만한 매우 특별한 제작과정을 보여주었다. 일반적인 상업영화의 제작 수순을 밟지 않고 <순교자의 소리>라는 선교단체의 후원 속에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독교 전문 영화연출자와 교회 혹은 선교기관이 특별한 목적을 두고 극장용 영화제작에 나서는 선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연출을 맡고 스태프들을 통솔한 존 그루터스(John Grooters)감독은 ‘순교자의 소리’와 깊은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지속적인 영화제작에 나선 사람이다. <사비나:그리스도를 위한 고난, 나치시대>를 제작하기 직전에는 웜브란트 목사의 고난과 신앙을 주제로 한 책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Tortured for Christ)을 영화로 만들기도 했다.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은 공산치하의 루마니아에서 핍박받는 웜브란트 목사와 동료 그리스도인이 고난받는 충격적인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고, 한국의 경우 2020년 부활절을 앞두고 유튜브로 공개되어 2만3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관람을 한 기록을 갖고 있다. 또한 2019년에는 한국을 방문하여 북중접경지대에서 선교활동 하다 북한에서 순교한 한충렬 목사와 그의 영향으로 예수를 믿게 된 북한청년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영화 <상철:북한>(Sang-chul: North Korea, 2019)을 제작하기도 했다. 모두 제작을 지원한 선교단체의 특성을 보여주는 영화들이다. ‘순교자의 소리(The Voice of the Martyrs)’는 리처드 웜브란트 목사(Richard Wurmbrand, 1909~2001)가 공산주의 국가의 지하교회를 돕기 위해 설립한 선교단체로 출발하여 현재는 전세계 70여개국에서 핍박받는 그리스도인을 돕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풍선에 성경책을 담아 북한으로 날려 보내는 운동을 하는 단체로 알려져 있다. ‘순교자의 소리’는 웜브란트 목사 부부의 순교적 신앙을 한국교회에 전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여기서 ‘순교적 신앙’이란 자신의 가족을 학살하거나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일을 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만일 정부나 권력기관과의 갈등이 빚어진다면 처벌을 감수하더라도 성경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함을 뜻하기도 한다. 일제강점기 때 신사참배를 반대하던 그리스도인들은 옥고를 치러야 했고, 주기철 목사님 같은 분들은 순교로서 신앙을 지키기도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들은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를 누리고 살고 있지만, 차별금지법 문제나 대북선교, 코로나 시대의 예배의 자유 등 세속적 정부나 권력기관과의 갈등을 경험하고 있어서 순교적 신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실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웜브란트 목사 부부는 예수님이 가르쳐 준 용서를 실천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분열과 갈등이 넘쳐나는 시기에 이 영화를 우리가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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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03
  • [기독교인문학] 거룩한 분별력과 명확한 통찰력으로 교회의 위기 극복해야
    홍석진의 《시선》- 세상을 향한 따뜻한 통찰 - 보수교단의 중견교회 목회자인 저자가 그동안 한국기독신문에 게재한 시사컬럼을 발췌하여 한 권의 책으로 묶은 사회비평 에세이이다. 어거스틴을 전공한 저자답게 “글은 단지 소통의 필요를 채우는 데 급급해서는 안 되며 영혼을 살찌우는 유익함이 있어야 한다”는 어거스틴의 수사학에 부합하는 글이라는 은사 문병호 교수의 평대로 시대와 공감하는 시의적절한 예화와 원전에 대한 해박함, 법대 출신다운 날카로움과 정연한 논리, 무엇보다 군더더기 없는 정갈한 글솜씨가 읽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편을 갈라야 속이 풀리는 이 세태에 양심과 성서의 가르침 따라 어느 한쪽의 진영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그의 시선은 교회를 넘어 우리 사회의 작은 이들을 향하고 있다. ◇ 저자소개 ∥홍석진 목사 부산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대학교 법괴대학에서 공법을 전공했다. 사법, 행정, 외무고시를 준비 중 척추 뼈가 터져서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주님의 강권의 힘에 굴복, 뒤늦게 총신신학대학원에 입학,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는 저자는 대전 서문교회와 부산 사랑의 교회를 거쳐 현재 온천제일교회의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다. 목회 기간 중 세상과 소통하기 위하여 매주 주보에 칼럼을 쓰기 시작, 호응을 얻으면서 교계신문의 칼럼리스트로 이어졌다. 출판사의 간곡한 요청으로 출간된 이 책 《시선》은 저자의 첫 저서이다. 프로테스탄트“우리는 먼저 스스로에게 항의해야 합니다. 혹시 잘못 걸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부지불식 간에 본질에서 멀어져 버린 것은 아닌가, 성경에 투사하여 자문해 보고 고칠 부분이 있으면 과감하게 고쳐서 다시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개혁주의의 본령입니다.” 사회비평에세이김길구 이 책은 한국기독신문에 게재된 2017년부터 2020년까지의 칼럼 중에서 뽑은 50편의 칼럼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책표지에는 ‘목사가 쓴 사회비평에세이’라는 소제목이 우선 눈길을 끕니다. 읽고 놀란 것은 중견교회 목회자가 성경 원어부터 자크 라캉, 칼 폴라니 같은 사상가들을 넘나드는 박학다식함 때문입니다. 독서의 폭과 깊이를 가름해 볼 수 있는 책이라고 느꼈습니다. 김현호 저도 복음주의 목회자들이 인문학적 글이나 설교에 약해 사회와 소통하기 어렵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는데, 그 편견을 깬 책이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홍석진 우여곡절 끝에 목회를 결심하고 다시 만난 주님을 접하곤 기존의 인간과 사회, 그리고 역사를 바라보는 눈이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마치 색깔 있는 안경을 쓴듯한 느낌? 새로운 시선 말입니다. 이런 관점을 한 길가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생각을 주보와 신문에 썼는데, 책으로 이어질 줄 몰랐습니다. 이 책을 읽고 단 한 분이라도 주님 안에서 거룩한 분별력과 명확한 통찰력, 그리고 새로운 혜안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김길구 아무리 에세이라 해도 사회비평이라면, 우선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이해해야 하고 개개인의 삶의 모습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역사적 과정에 대한 관계적, 구조적인 종합적 사고가 필요할 텐데‥ 글을 쓸 때 어떤 기준으로 쓰나요?김현호 우리 사회가 극심한 진영논리에 빠져있잖아요? 그 관점에서 본다면 저자가 바라보는 시선은 중립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홍석진 우선 저는 이 방면의 전문가가 아닙니다. 말씀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는 목회자예요. 교회와 세상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극복해야지요. 그래서 제가 느낀 세상을 글을 통해 소통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같은 사물을 바라볼 때도 저마다의 시선이 다르겠지요. 저의 글쓰기 작업은 우선 양쪽의 입장을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게 소개하고, 과연 성경 원문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가를 판단한 후 글쓰기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교회의 오적(五賊)김길구 그럼 본문 속으로 들어가 보지요. 시인 김지하의 시 제목을 딴 한국교회의 오적을 얘기했는데 한국 교회가 세상을 논하기에 앞서 자성의 뜻으로 우리 문제가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보죠? 교계의 오적이 무엇인지?홍석진 편의상 오적을 ABCDE로 구분했어요. 우선 부재(Absence)의 문제입니다. 성서 텍스트 해석 부재, 공시적인 통찰력의 부재, 통시적인 역사의식의 부재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후자의 두 가지가 젊은이들이 교회로부터 멀어지는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는 독재(Bonapartisme)입니다. 권위적인 목회자와 조직, 그리고 우매한 평신도들의 맹종이 어우러진 결과입니다. 셋째는 상업주의(Commercial)입니다. 한국교회는 경건이 아닌 「돈」에 물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넷째는 이원론(Dualism)입니다. 교회와 일상을 구별하는 이중적인 삶이죠. 마지막으로 이기주의(Egoism)입니다. 우리집 뒷마당은 안된다는 님비(NIMBY)현상을 넘어 우리 교회만 아니면 된다는 개교회주의인 님시(NIMCY)현상으로 인해 교회가 위기에 처했지요.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차별금지법에 관하여김길구 살기가 각박해져서 그런지 혐오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지구촌의 중요한 화두 중에 하나인 것 같습니다. 기독교와 혐오 일견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역사를 돌이켜보면 혐오를 자양분으로 성장했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혐오의 늪에 빠진 한국 교회’라는 분들도 계십니다. 본문 중에는 차별금지법에 대한 언급도 있는데‥김현호 묻지마 반대를 외치는 우리 지역 교계의 풍토에서 이런 주장은 의외인데요?홍석진 저의 주장은 단순합니다. 한자 모순(矛盾)처럼 논리의 모순이죠. 교계의 주장은 “우리는 차별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 이런 논리로 우리 교회에 대한 차별을 반대하면서, 동시에 차별금지법에 대해 반대하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지잖아요. 성경은 차별을 조장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막힌 담을 허무신 분이시니까요. 아젠다 설정을 다시 해야 합니다. 포스트 코로나 국가김현호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사회는 분명 다를 것이라는 예측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도 대응을 잘한 편인데, 앞으로의 대응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홍석진 우리는 팬데믹의 상황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그에 대한 답을 얻었다고 봅니다. 첫째, 민주주의적 가치와 절차를 존중하는 나라가 살아남고 발전하리라고 봅니다. 둘째, 형평과 선을 실천하는 나라가 살아남고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형평과 선은 국제법상의 원칙입니다. 창18:19의 하나님 나라의 핵심 원리인 ‘의와 공도’와 무관치 않습니다. 성경은 나그네와 이방인, 고아와 과부, 가난한 잔에 대한 돌봄과 배려를 ‘공의와 정의’라고 부릅니다. 이 원리가 잘 작동되는 나라는 흥하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쇠퇴하리라고 봐요. 셋째는 신뢰를 소중히 여기는 나라는 틀림없이 생존하고 발전합니다. ‘포노사피언스’ 세대에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 나라와 비밀주의로 은폐와 조작을 일삼는 나라와는 신뢰면에서 차이가 있겠죠. 신뢰지수가 국력으로 이어질 것으로 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죠. 환경은 교회 본연의 사명김현호 이 책의 내용 중 공감 가는 것 중에 하나는 환경문제에 대한 교회의 대응에 대한 것인데요? 요즘 이상기후에 대한 위기의식이 예전에 비해 많이 높아진 것 같습니다. 기후변화가 우리가 피부로 느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라는 방증이겠죠?김길구 2019년 환경파괴로 인한 지구멸망의 위기 앞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세계 정상들에게 경종을 울린 당시 16세의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의 눈물어린 UN기후행동정상회의의 연설은 인류의 대홍수를 예언한 성경의 인물 노아를 빗대 ‘노아방주급 예언’으로 회자 되고 있습니다. 교회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홍석진 하나님이 주신 창조세계의 모습을 간직하는 일은 교회의 당연한 일입니다. 우선 기후위기를 보는 시선의 차이가 문제입니다. 인류생존의 문제이지, 좌·우 진영의 이념적 문제가 아닌데, 환경문제를 얘기하면 좌파라는 딱지를 부치는 것이 문제예요. 저희 교회가 지금 건축 중이잖아요? 생태적인 교회로 살기 위해서 세 가지를 제안했어요. 첫째는 교회 십자가 색을 붉은 것이 아닌 초록십자가로 하자, 두번째는 지붕을 태양열 집열판으로 하자. 세 번째가 교회 용수를 빗물재순환 분리시스템으로 하자는 것이었는데, 이러 저런 현실적인 이유로 무산되고 말았죠. 아쉽지요. 김길구 길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만, 저자의 진리에 대한 갈구와 복음의 진정성을 느끼기에는충분한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매 주제 하나 하나가 여운을 주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책들을 기대해도 좋을 것 깉습니다. 다음 호에는 꽤 알려진 분이죠? 나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바운더리 심리학’의 저자 정신과 의사인 문요한의 《관계를 읽는 시간》을 가지고 얘기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정리 : 김길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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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인문학
    2021-11-19
  • [최병학 목사의 AI시대 읽기]세대론과 메타버스
    1. 다섯 세대의 공존 최근 세대 간 가치관과 환경의 차이(주거는 물론, 디지털 환경)가 심각한데, 크게 보면 5세대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베이비붐세대(1955∼63년생)’와 그 윗세대, 크게 보면 60대 이상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산업화세대’가 들어 있습니다. 70대 이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 ‘N86세대(1980년대 학번·1960년대 출생)’로 현재 50대 초반부터 60대 초반입니다. 셋째 ‘X세대’는 삐삐와 워크맨을 사용했던 개성 넘치는 세대로 서울대 인류연구소에 의하면, 1974~1983년생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현재 40대가 여기에 해당이 됩니다. 급속도의 경제 발전 속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구세대와는 달리 청소년 시절 풍요로움을 누린 첫 세대에 해당이 됩니다. 최근 MZ세대로 묶어 부르고 있지만, 넷째 ‘M세대’는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 Generation)로 X세대의 뒤를 잇는 인구 집단입니다. 1980년생부터 1995년생까지, 혹은 1982년생부터 2004년생까지로 봅니다. 대부분 베이비붐세대와 N86세대의 자녀들입니다. 유소년기부터 정보통신기술(IT)의 과도기를 겪은 세대로서, IT 활용력이 다른 세대에 비해 탁월하며 대학 진학률도 높습니다. 이 세대의 특징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한 과도기 세대이며 앞뒤 세대의 특성을 모두 공유한 폭넓고 다원적인 가치관을 가진 세대입니다. 특히 이들의 가치관을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라고 합니다. ‘인생은 오직 한 번뿐!’이라고 생각하며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는 소비하는 태도를 보인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Z세대(Generation Z)’는 1995년~2010년에 태어난 세대입니다. 현재 20대 중반부터 10대들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Z세대를 가르는 기준은 모바일 네이티브 여부입니다. 곧 태어났을 때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IT 기술이 존재했던 세대가 바로 Z세대입니다. 따라서 서양에서는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2000년대 후반부터 10대 시절을 보낸 세대를 Z세대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비슷합니다. Z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어려서부터 인터넷 이용이 가능한 이동식 기기(스마트폰, 태블릿 PC)를 접한 세대라는 것입니다. 자라면서 인터넷을 자연스럽게 접했기 때문에, Z세대는 IT 기술에 익숙하고, 사교 생활에 있어서 SNS를 자유롭게 사용합니다. 물론 앞선 세대들도 모두 컴퓨터 웹사이트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는 익숙하지만, Z세대는 후자를 특히 선호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기업은 이들 Z세대가 소비 성향, 성장배경 등 많은 방면에서 이전 세대와 차이를 보이기에, 다른 마케팅 전략을 짜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 Z세대는 이전 세대와 다른 인종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삐삐와 워크맨을 사용했던 개성 넘치는 X세대, 인스타그램과 욜로로 대표되는 밀레니얼 세대, 말을 하면서부터 늘 와이파이를 찾고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는 디지털 Z세대, 이들은 모두 호모 사피엔스이지만, 각각 다릅니다. 각각 호모 파베르(노동하는 인간, X세대),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 M세대), 호모 데우스(신적인 인간, Z세대)로 구분됩니다. 따라서 이들은 모두 함께 하나의 ‘아날로그 지구’에 살고 있지만, 각기 다른 ‘디지털 지구’, 곧 메타버스 속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삶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이렇게 다섯 세대의 시민들이 만나고 접속하고 연대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니고데모의 말처럼 다시 어머니의 태에 들어갔다가 나오거나, 아니면 예수님의 말씀처럼 거듭나야 가능한 일입니다. 2. 메타버스 메타버스((metaverse)는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이자, 4차산업혁명의 종착점입니다. 온라인 속 3차원 입체 가상세계에서 아바타의 모습으로 구현된 개인들이 서로 소통하고, 돈을 벌고 소비하고, 놀이·업무를 하는 등 현실의 활동을 그 속에서 그대로 할 수 있는 플랫폼입니다. 비영리 기술 연구 단체 ASF(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는 메타버스를 ‘증강과 시뮬레이션’,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라는 두 축을 가지고 네 가지 범주로 분류합니다.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일상기록(Lifelogging)’, ‘거울세계(Mirror Worlds)’, ‘가상세계(Virtual Worlds)’가 그것입니다. 스마트폰 앱으로 책에 있는 마커를 찍었더니 책 위에 움직이는 동물이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다면 증강현실 세계를 경험한 것입니다. 자동차 앞 유리에 길 안내 이미지가 나타나는 HUD(Head Up Display)도, 포켓몬을 스마트폰으로 잡는 것도 모두 ‘증강현실’이라는 메타버스입니다.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는 것은 ‘라이프로깅’, 곧 일상기록이라는 메타버스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물론 TV프로그램 <인간극장>이나 <나 혼자 산다>를 보는 것 역시 라이프로깅입니다. 화상회의 소프트웨어로 원격수업, 원격회의를 해보셨다면 ‘거울세계’라는 메타버스를 경험한 것입니다. 배민으로 음식을 주문하거나, 네비게이션의 안내로 운전을 했다면 그것도 거울세계라는 메타버스를 경험한 것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레디플레이어원>(2017)이나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1999)를 보셨다면 ‘가상세계’라는 메타버스를 이해한 것입니다. 메타버스는 ‘세컨드 라이프’의 시작이자, 세계 시가총액 1~8위 기업 중 절반이 메타버스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텐센트(중국의 카카오톡 격인 위챗을 만든 중국 기업), 나이키 등.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오프라인 기반의 제조, 유통 기업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순천향대학교는 2021년 대학입학식을 세계 최초로 메타버스에서 진행했습니다. 김두관 의원은 메타버스에서 독도를 구현하여 실제처럼 독도를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디지털 세상이 코로나 시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국내의 경우 네이버 Z의 제페토가 대표적인 메타버스입니다. 출시 두 달 만에 글로벌 다운로드 수가 300만 건을 넘어섰고, 3개월 만에 1,200만 건, 1년 6개월 만에 누적 가입자 수 1억 3,000만 명을 넘어섰고, 현재까지 165개국 2억 명을 돌파했습니다. 해외 이용자 비중이 90% 이상이고, 10대 청소년이 8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제페토가 주목받는 이유는 강력한 아바타 구현 기술력으로 증강현실(AR)기술과 인공지능(AI) 기술을 바탕으로 사용자가 찍은 셀카를 자신과 닮았으면서도 조금 더 예쁜 3D 아바타를 만들어 줍니다. 게다가 이 아바타를 통해 사람들과 교류하고, 다양한 엔터테인먼트인 콘서트, 게임 등을 즐기고, SNS를 즐길 수 있습니다. 또한 브랜드 아이템을 만들고,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옷이나 헤어스타일을 반영한 아이템을 사고팔며, 아이돌의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활용해 2차, 3차 창작물을 공유하는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제페토는 글로벌 시장에서 K팝으로, K팝 팬들의 덕질 공간화, 곧 플랫폼 기능을 통해 수많은 글로벌 Z세대 팬층들을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글로벌 10대들의 힙한 놀이터로 성장하고 있는 제페토는 메타버스 가상현실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시나브로 MZ세대를 넘어 ‘제페토 세대’가 지금 기후 위기로 고통 받는 지구를 초월하여, 메타버스 속에서 새로운 인류로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메타버스는 문제가 없을까요? 물론 해 아래 문제없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메타버스에 메타에틱스(metaethics), 혹은 메타페이스(metafaith)를 소개해야 합니다. 사실 MZ세대들은 메타버스 세상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나갑니다. 따라서 기성세대들은 공존과 배려의 법을 통해 세밀한 틀에서 가치관의 디테일을 정립을 하고, 윤리가 큰 틀에서 사랑과 정의의 가치를 확립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메타페이스를 통해 메타버스 속에도 육화하신 그리스도, 곧 타자를 위해 자신의 아바타를 희생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해야 합니다. 가능할까요?
    • 문화
    2021-11-05
  • [기독교교양읽기]“우리는 모두 주님 앞에 서 있습니다”
    김응교의《손 모 아》 -시련 앞에서의 시 이야기- 기도하는 손의 모습을 책 제목으로 하였다. 저자 김응교 시인 겸 평론가는 활발한 매스컴 활동으로 대중에게 친근한 문학인이다. 기독교문학을 포함하여 문학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그가 2016년 겨울 KBS국제부 라디오에서 북한에 보내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소개된 시편과 2017년 《월간 목회와 신학》 세계기도시에 연재한 내용 중 팬데믹 시대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하여 수정 보완하여 엮은 시 해설서이다. 츠빙글리로부터 기형도, 칼 바르트, 릴케, 까뮈, 윤동주, 디킨스, 톨스토이 등 국내외의 유명 문학인과 종교인 등 50여 편의 시편들이 수록되었다. 중학교 졸업식 때 저금통을 깨 기타를 사줬던 저자의 누이가 팬데믹 기간 중에 죽은 개인사도 있어 질병과 슬픔 앞에서란 부제가 더 공감이 간다. 늦가을, 시가 그리운 교인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 저자소개 ∥김응교 시인, 문학평론가 문학과 종교는 본래 하나로 출발했다고 믿고 있는 저자는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7년 분단시대에 시 발표를 시작으로 1990년 한길문학 신인상을 받았다. 1991년 《풍자시, 약자의 리얼리즘》을 실천문학에 발표하면서 평론 활동으로 영역을 넓혀왔다. 1996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하였고, 1998년 와세다대학 객원교수로 10년간 강의하였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로 있으며, 트위터로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 저서∥ 《씨앗/통조림과 평론집 한일쿨투라》, 《한국시와 사회적 상상력》, 《박두진의 상상력 연구》등 많은 저술이 있으며, 번역가로도 활동 중이다. 비아토르 간 / 2021. 5.25. / 16,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그늘-문학과 숨은 신》 / 김응교 / 새물결플러스 《처럼-시로 만나는 윤동주》 / 김응교 / 문학동네 《곁으로- 문학의 공간》 / 김응교 / 새물결플러스 #기도는? “기도(祈禱)는 첫째 ‘나’를 잘라내는 영적인 도끼질이다. 내 정욕과 욕망과 고집을 쳐내는 대화의 시간이다. 둘째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깨닫게 해 달라는 말씀을 듣는 시간이다. 셋째 그 힘으로 노력하며 살겠다고 다짐하고 고백하는 시간이다.” 김길구 휴가가 예상보다 길어졌네요. 그 사이 박 관장께서는 제8대 부산복지개발원장에 취임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공직에 있어 바쁘실 텐데 이 코너를 계속하기로 하셨습니다. 참가자들의 자원하는 마음이 이 코너가 장수하는 비결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인사 한마디~ 박영규 복지개발원은 부산광역시의 사회복지정책개발과 시민에 대한 사회복지서비스를 증진시키는 일을 하는 기관입니다. 시민들의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만큼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현호 3개월을 쉬었다 다시 시작하려니 새로운 느낌이네요. 심기일전해서 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팬데믹 시대의 성찰과 위로의 메시지 김길구 오늘은 계절에 어울리는 가벼운 주제로 정했습니다. 흔히들 가을을 사색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이번 호에는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인 김응교의 《손모아》로 정했습니다. 이 책에 대해서 소개해 주시죠? 김현호 요즘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매스컴들이 팬데믹 소식을 우선해서 다루잖아요? 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는 저명한 분들의 기도문과 시편 등 50여 편을 묶어 해설한 책입니다. 박영규 그동안 코로나19는 많은 신조어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코로나 블루’는 우울한 일상을 표현하며, ‘코로나 레드’는 장기화에 따른 분노를, 그리고 분노를 넘어 폭발해 버린 현대인들의 심리상태를 ‘코로나 블랙’이라고 한다더군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인데요. ‘질병과 슬픔 앞에서’라는 부제가 상징하듯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고난에 대한 깊은 성찰과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김길구 저도 다양한 저자의 이력 그리고 시에 대한 해제까지 있어 한편 한편이 많은 것을 생각게 하여 오랜만에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월별로 4~5편씩 구성되어 있는 50여 편의 전 작품을 다 다룰 순 없고 오늘은 가을 편을 중심으로 몇 편만 소개해 보지요. 저는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마지막 시가 여운에 남습니다. 「(중략) 아버지여, 생명의 근원이시여, 우주의 영이시여, 생명의 근원이시여, 날 도와주소서. 내 인생의 마지막 며칠, 마지막 몇 시간이라도 당신에게 봉사하며 당신만 바라보며 살 수 있도록 날 도와주소서」 이 시를 읊조리다 보면 생의 마지막을 시골의 작은 역에서 객사한 노 사상가가 떠오릅니다. 그 무엇이 이 거인을 거리에서 헤매게 하였을까? 기성교회를 거부하고, 그가 배회하며 그토록 찾으려고 했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는데, 이 시를 보고 깨닫게 되었어요. 우리 교계도 거목들의 마지막 모습이 구도자로 보기 힘든 경우가 종종 있잖아요? 마지막 며칠, 몇 시간이라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봉사하겠다는 거인의 간절함이 우리를 숙연케 합니다. 김현호 그의 일대기를 보면 유서 깊은 백작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군복무 중인 24살에 작가로서 첫발을 내딛는데, 당시만 해도 그는 권위와 폭력에 길들여 있었고, 40대까지 방탕한 생활을 했어요. 결혼 후 그의 대표작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리나≫ 등을 통해서 명성도 얻었지만, 그의 인생관이 바뀐 것은 그의 나이 42세 때 시작해 50세에 마친 안나 카레리라 집필 시기인 8년여의 기간이라고 해요. 국가와 권력과 종교에 대한 깊은 회의로 자살을 생각했을 정도의 고뇌 끝에 50대에 이르러 그는 회심하게 되었고 58세 때 ≪바보 이반≫이란 작품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박영규 이 단편에서 톨스토이의 분신인 바보 이반은 톨스토이의 좌우명을 그대로 실천합니다. 영리한 사람들은 손으로 일하지 않는다는 악마의 유혹에 “손과 등은 일하라고 주어진 것이다.”라고 말하며 이반처럼 우직한 바보들이 모인 나라야말로 누구도 정복할 수 없는 건강한 나라라고 말합니다. 농노해방운동에도 기여한 그는 기독교인의 실천적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잘 보여 주고 있어요. 김길구 저자의 전작인 ≪그늘≫을 보면 톨스토이는 헨리 조지가 쓴 베스트셀러 ≪진보와 빈곤≫이란 책을 읽고 큰 영감을 받습니다. 그 결과 당시의 농노제도에 가까운 토지제도를 신랄히 비판합니다. 헨리 조지의 토지 사상을 건너뛰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그의 대표작 ≪부활≫에 서 “땅은 사람의 소유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라는 것을 보면서 이 시대 젊은이들의 좌절과 ‘대장동 사건’으로 시끄러운 우리나라를 보면서 톨스토이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요? #선한 힘들에 관하여 김현호 지난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제일 많이 읽힌 책은 알베르트 카뮈의 <페스트 La Peste>라는 소설이라고 하는데, 저는 기도문에 실린 네 명의 인물에 주목하는데 도그마에 싸인 교리의 기독교와 부조리한 세계에 맞서 예수의 삶과 변혁적 기독교에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졌던 인물들이죠. 의사 리유, 반항하는 인물 장타루, 성실한 임시직 공무원 그랑, 참혹한 현실 속에서 새롭게 깨달은 인물, 기자 랑베르를 통해 이상적인 ‘선한 사마리아인상’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김길구 책에는 널리 알려진 곡들의 일화를 소개 하고 있는데, 디트리히 본회퍼의 기도문 <그 선한 힘들에 관하여>이 가스펠 <선한 능력으로>로 번안되어 교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독재자 히틀러 암살운동에 가담한 죄목으로 체포된 후 수감, 종전을 코앞에 두고 1945년 4월 9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 죽음을 예감하고 그의 약혼자에게 전한 편지에 쓰인 기도문으로 그의 마지막 유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70년 작곡가 지그프리 트피치가 곡을 붙인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마틴 루터의 ‘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는 찬송가 못지않은 감동을 느끼곤 합니다. 전편에 흐르는 신앙의 확신과 죽음 앞에서도 당당했던,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잔혹한 낙관주의’가 가슴을 여미게 합니다. 박영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슈렉>에 삽입되어 화제가 된 곡이며, 2008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과 2010년에는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던 2016년 82세로 작고한 캐나다의 다재다능한 시인이자 싱어송 라이터, 배우인 레너드 코헨의 중독성이 강한 노래 <할렐루야>에 대한 얘기도 흥미로운데, 다윗과 밧세바의 금지된 사랑을 노래한 곡인데, 가사가 많은 것을 생각케 합니다. 「(중략) 사랑은 승리의 행진이 아니야 사랑은 차가운 것 사랑이란 부서진 할렐루야~」나 「그래서 내가 사랑으로부터 배운 것은 그대보다 총을 빨리 뽑는 사람을 먼저 쏘는 방법이었죠」라는 노랫말이 부서질 줄 알면서도 사랑하고 욕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와 성서기자의 한 인간의 실수를 눈감지 않고 굳이 다윗의 아내가 아닌 우리아의 아내로 표현한 강직한 역사관, 그리고 부정한 가계에서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 예수의 피할 수 없는 운명 등의 얘기가 흥미롭게 이어집니다. 김길구 50여 편을 다 들려드리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한편 한편이 다 귀한 글들 입니다. 이 짧은 가을날 독서삼매경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 호에는 도서출판 엠마우스에서 펴낸 홍석진 목사의 세상을 향한 따뜻한 통찰 《시선》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정리 : 김길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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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인문학
    2021-10-22
  • [신간] 임창호 목사 '기독교 교육과 통일'
    임창호 저 / 북민실 / 390면 / 2021.10.09. / 17,000원 지난 2월 고신대학교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한 저자 임창호 목사의 은퇴기념 자전적 논문모음집이다. 책은 ‘기독교교육’ 관련 논문 6편과 ‘통일과 북한선교’ 관련 논문 6편, 그리고 저자가 직접 설립, 운영 중인 탈북학생을 위한 대안학교인 장대현학교에 관한 글로, 13편의 논문이 스토리텔링으로 엮여져 있다. 연세대 김현숙 교수, 장신대 박상진 교수, 이화여대 백은미 교수 등 8명의 한국 기독교교육학회 중진들의 무게 있는 추천서가 실려 있다. 김현숙 교수는 “한국기독교교육학계와 목회현장, 우리 한국사회에 의미 있는 화두를 제공하며, 기독교교육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고 했으며, 박상진 교수는 “앎과 삶, 이론과 실천, 학문과 현장, 개인과 공동체, 남과 북이 하나로 통일이 되는 것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책”이라고 각각 추천서를 남겼다. 저자는 고신대 기독교교육과와 동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국립히로시마대학교에서 독일교육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1993년 고신대 교수로 부임했다. 도중에 미국 휴스턴에서 10년간 이민목회 담임사역을 경험하고 2006년 고신대에 재부임했으며, 2018년부터 퇴임할 때까지 고신대 교학부총장을 역임했다. 아래는 장로회신학대학교 고원석 교수의 서평이다. [서평] 기독교교육의 현장성을 제시한 앨범 -고원석(장로회신학대학교) 1. 저자의 관점에서 고신대 기독교교육과 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하고 정년은퇴하는 임창호 박사가 자신의 기독교교육 및 통일 관련 주요논문을 모아 『기독교교육과 통일』이란 제목의 은퇴기념논문집을 출간하였다. 학자로서 저자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고신대 학부와 대학원을 마친 후 일본 히로시마 대학에서 슐라이어마허(F.Schleiermacher)의 교육론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고신대 기독교교육학 교수로서 학문적 이력을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돌연 교수사역을 중단하고 미국 휴스턴에서 이민목회 사역을 10년 동안 수행하였다. 그리고 다시 고신대 기독교교육학 교수로 재부임하여 은퇴하기까지 후학을 양성하며 학문의 여정을 이어왔다. 동시에 그는 2014년 탈북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 “장대현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으로서 기독교교육 현장사역을 병행해 왔고, 교수로서의 사역 은퇴 후 장대현학교 현장교육에 집중할 예정이다. 이처럼 교수에서 이민목회자로, 그리고 다시 교수로 그리고 대안학교 교육자의 사역을 수행해온 저자는 기독교교육이란 학문이 가지고 있는 현장과의 연계성을 늘 기억하며 그것을 그의 삶의 여정에서 보여주었다. 이 은퇴기념 저서는 기독교교육을 공부하여 구체적인 목회현장에서, 그리고 미래를 만들어가는 학교현장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저자의 기독교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특히 저자가 생각하고 있는 기독교교육의 현장이 전통적인 교회현장을 넘어 이민교회의 현장, 그리고 탈북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디아스포라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총 13편의 글로 구성된 이 책의 전반부에는 기독교교육을 주제로한 여섯 편의 글이 실려있다. 기독교교육의 근본에 대한 이해로부터 기독교교육의 현장성으로 나아가는 글이다. 책의 후반부에는 기독교교육학적 관점에서 통일교육의 문제와 방향성을 제시하는 일곱 편의 논문이 수록되어 있다. 2. 기독교교육에 대하여 전반부에서 저자는 기독교교육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밝히고 있다. 기독교교육에 대한 자기 고백적 성격의 글이라 할 수 있다. 우선 기독교교육은 기독교적 인간 이해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기독교교육의 인간이해는 하나님의 형상에서 시작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으로 종결된다(1장). 아울러 기독교교육은 우리의 삶의 현실과 현장에 바탕을 두고 있어야 하는데, 우리 시대가 당면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고려하며 기독교교육의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가져올 미래 모습을 고려할 때, 우리가 요청하는 기독교교육학적 인재상(방향성)은 소통능력, 창의력, 비판능력, 협력능력을 융합할 수 있는 존재다(2장). 이러한 시대 변화 앞에서 기독교교육의 현장은 새로운 교육모델을 요청하고 있다. 저자는 슈타이너(R. Steiner)의 발도르프학교의 혁신적 이념을 소개하며 비판적 수용을 통해 기독교교육 현장의 개혁적 태도를 요구하고 있다(3장). 이어서 저자는 개혁적 태도를 우선적으로 감당해야 할 교회교육의 책임자들, 특히 교회 직분자들의 역할과 사역에 대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4장). 저자의 기독교교육 현장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고 있는 대목이다. 전반부 마지막에 실린 두 편의 논문은 최근 기독교교육학 연구동향을 분석한 논문이다(5.6장). 기독교교육의 주요 학술지를 대상으로 기독교교육이 그동안 연구한 주요 연구 주제 및 경향을 분석하여 기독교교육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있다. 마치 기독교교육자로서의 삶을 마무리하며 후학에게 기독교교육의 현상황을 분석하고 기독교교육이 나가야 할 이정표를 제시하는 듯하다. 3. 통일과 북한선교를 위하여 저자는 탈북 청소년을 교육하기 위해 장대현학교를 설립하면서 기독교통일교육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한반도의 통일과 북한선교에 대한 기독교교육학적 관점을 제시한다. 먼저 저자는 한국 교회의 통일교육에 대한 무관심과 문제점을 지적하며 통일교육에 대한 교회의 시급한 관심을 역설한다(7장). 이어서 저자는 교회의 통일교육 이론형성에 관심을 기울인다. 베르탈란피(L. von Bertalanffy)의 “시스템 이론”을 분석하여 통일교육 시스템이 필요로하는 다섯 요소(전체성, 안정성, 위계성, 적응성, 통시성)를 이끌어내는 한편(8장), 북한선교의 현황을 분석하여 그 한계를 지적하고(9장), 러셀(L. Russell)의 “선교교육론”을 바탕으로 북한선교 및 통일교육의 방향을 제시함으로써(10장) 체계화된 한국교회 통일교육 이론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이론적 노력을 저자의 관점은 자연스레 현장으로 향하고 있다.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 탈북민을 북한선교와 통일교육의 동역자로 삼아야 할 것을 목표로 제시하는 저자는 구체적인 모형을 성경 『룻기』에서 발견하고 “나오미 프로젝트”를 제안한다(11장). 저자의 관심은 궁극적으로 탈북민 어린이 및 청소년 교육으로 향한다. 저자는 탈북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받은 김일성 우상화 교육이 “종교적” 성격에 가깝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탈북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기독교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12장). 그리고 기독교통일교육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키고자 설립된 장대현학교의 실험적 통일교육 상황을 소개함으로써(13장) 통일교육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4. 독자의 관점에서 이 책은 기독교교육을 학문적으로 논하는 책이라기보다 기독교교육학자인 저자의 인생과 관점을 논하고 있는 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저자가 기독교교육 학자로서 평생을 살아오면서 고민하며 관심을 기울였던 장면 장면들을 학문적인 언어로 모아놓은 작은 앨범에 가깝다. 이 책은 기독교교육의 근본이 철저히 현장에 기초하고 있음을 역설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가 인생의 여정에서 말해주고 있듯이, 기독교교육은 제시된 규범이나 이념을 각인시키거나 응용하는 기술이 아니라 철저히 현장과 그 현장 속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봉사와 치료”의 학문임을 가르쳐 준다. 4차 사업혁명 시대의 현실 속에서 진정한 인간의 의미를 복음적으로 제시하고 돕는 학문, 통일 시대를 맞아 탈북민을 사랑으로 교육하고 복음으로 치유하며 통일의 그 날을 한걸음씩 준비하는 학문, 바로 그것이 기독교교육의 본질이자 현실이 요구하는 기독교교육의 목적이라는 사실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 문화
    • 도서
    2021-10-15
  • [영화]‘서울극장’의 종료와 ‘오징어 게임’의 시작
    영화의 역사를 새로 쓸 시간 서울극장이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지난 8월 31일을 끝으로 한국영화계에 짙은 발자취를 남긴 채 문을 닫았다. 1960, 70년대 영화의 배급과 제작으로 한국영화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합동영화사의 곽정환 회장은 종로3가에 있던 재개봉관 세기극장을 인수하여 새롭게 단장한 뒤 1978년 현재의 자리에서 서울극장의 시대를 열었다. 오직 한 개의 상영관만을 갖고 있었던 당시의 극장문화에서 서울극장은 종로3가 교차로를 앞에 두고 단성사와 피카디리와 마주하는 위치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극장가를 형성하는 데 일조했다. 서울극장은 기독교 영화계의 발전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2011년 제9회 서울국제기독교영화제(현. 서울국제사랑영화제)가 서울극장에서 열린 일을 비롯하여 2019년 ‘모두를 위한 기독교영화제’와 2020년 한국기독교영화제 등 한국 기독교계의 영화인들이 모이고 기독교 영화들을 교회와 대중에게 선보이는 사랑방 기능을 수행해 왔다. 이것은 서울극장을 이끌어 온 곽정환 장로와 그의 부인 고은아 권사의 영화선교에 대한 믿음과 의지의 결과이기도 했다. 비즈니스 마인드가 지배하는 상업영화계에서 돈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기독교 영화를 상영하고 기독교 영화계를 알게 모르게 지원했던 일은 대중문화의 영향을 일찌감치 간파한 덕분이었다. 곽정환 장로는 합동영화사를 설립하여 한국영화사의 중요한 작품들을 만든 제작자로도 유명했지만, 영화배우이자 아내인 고은아 권사와 함께 기독교 전문 영화사인 은아필름을 설립하여 한국 기독교 영화발전에 의미있는 족적을 남기기도 했다. 1994년에 서울극장에서 개봉한 <무거운 새>는 곽정환 감독이 직접 연출한 작품으로 기독교계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위인전 형식의 기존 기독교 영화의 틀을 깨고 재미교포사회를 배경으로 현대적인 감각을 가지고 인생의 위기에 임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영상에 담아서 기독교 영화의 새로운 면모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은아필름의 고은아 권사는 <무거운 새>를 시작으로 10편의 기독교 영화 제작에 대한 신념을 밝혔지만, 교회 성도들은 뜻대로 움직여주질 않았고, 기독교 영화의 부흥과 발전에 대한 소망은 새로운 세대에게로 넘어갔다. 아날로그적인 정서가 물씬 묻어나던 서울극장의 페이드 아웃(fade-out, 영화 장면에서 밝았다가 차츰 어두워져서 사라지는 기법). 그것은 어쩌면 기독교 영화의 변신을 요구하는 신호탄인지도 모른다. 코로나19로 인해 가뜩이나 관객을 잃어버린 영화관의 현실은 넷플릭스와 왓챠, 웨이브 같은 인터넷이 되는 곳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개인 관람 시스템으로 영화를 몰아가고 있는 중에 있다. 서울극장이 사라진 한국 기독교 영화계가 새로운 디지털 플랫폼 시스템에서 어떻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기대와 걱정이 뒤섞여 있다. 세계인의 마음을 훔친 ‘오징어 게임’ 지난 9월 17일 공개된 <오징어 게임>은 불과 4일 만에 미국을 비롯해 대륙을 가리지 않고 세계 22개국 넷플릭스에서 시청자 조회 수 1위에 올랐다. 최근 <살아있다>와 <승리호>, <킹덤:아신전> 등의 한국영화가 세계 1위에 오른 적은 있지만 9편에 이르는 한국의 시리즈형 드라마가 미국 시장에서 1위를 기록하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넷플릭스가 2백억을 투자한 몰입도 높은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명불허전(名不虛傳)이란 말의 뜻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영화 <남한산성>과 <수상한 그녀>, <도가니> 등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의 재능은 이정재와 박해수, 정호연 등 연기력을 검증받은 유명 배우들의 캐릭터를 잘 살려낼 뿐만 아니라 인간의 가치와 사회 문제를 일깨우는 의미있는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특히 한국인 감독과 배우가 참여하고 한국의 문화가 두텁게 입혀진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넷플릭스 가입자들이 열광할 만한 보편적 주제를 제시함으로써 한류문화가 어떻게 세계인의 눈높이에 다가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즉 <오징어 게임>이 단지 한국인들의 호응만을 기대한 것이라면 넷플릭스는 결단코 2백억을 쏟아붓지는 않았을 것이란 뜻이다. <오징어 게임>은 빚에 허덕이며 절박한 상황에 처한 456명의 사람들이 최종 우승자 한 명에게 총상금 456억을 몰아주는 데스 게임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마지막까지 생존한 사람은 막대한 우승 상금을 가져갈 수 있지만, 나머지 455명은 목숨을 잃게 된다. 이 드라마에 대한 찬사와 비난은 한 명을 제외한 참가자 모두의 죽음이 전제되었다는 데 집중되어 있다. 게임 참가자들이 경험하는 6가지 게임의 성격은 개인의 독립적인 능력에 따라 생존이 결정되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설탕 뽑기’도 있지만, 상대의 희생이 있어야 하거나 상대를 희생시킴으로써 살아남아야 하는 ‘줄다리기’나 ‘구슬치기’ 같은 게임도 있다. <오징어 게임>에 대한 찬사는 기성세대가 어린 시절 골목에서 놀았을 법한 천진난만한 놀이가 목숨이 달려있는 잔혹한 게임으로 변할 때 일어나는 감정의 혼란으로부터 시작된다. 놀이동산으로 사용하면 딱 좋을 것 같은 그라운드는 피로 물들고 친분과 인간애로 돈독해진 관계는 하루아침에 피를 보는 사이로 전락하고 만다. 극한의 상황에 내몰릴 때 나타나는 인간의 본능과 욕망의 끝자락을 지켜볼 수 있는 점은 이 드라마가 문화를 초월하여 보편성을 갖게 만든 출발점이기도 하다. 문제는 명확했지만 정답은? 이 드라마가 물질문명을 살아가는 시청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한가지다.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있지만, 인생을 한방에 역전시킬 수 있을 만큼 엄청난 돈을 가질 기회가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드라마는 자본주의 시대에 맞는 매우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현대인들이 얼마나 돈의 유혹에 취약한지를 <오징어 게임>은 참가자의 자유의지와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즉 <오징어 게임>이 범죄드라마로 읽혀지지 않는 것은 게임이라는 형식을 빌려 쓰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게임 참가자들의 자발적 동의로 진행되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진행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가자 절반이 찬성하면 얼마든지 게임을 중단한다는 나름대로 계약도 맺고 있다. 드라마는 참가자들의 불안과 불만이 터져 나오면 숙소로 사용하는 체육관 천장에 달려있는 커다란 돼지저금통에 가득찬 5만원권 지폐 뭉치들을 보여주며 이러한 멘트를 스피커를 통해 흘려보낸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단 한 번도 강요한 적이 없다. 당신들은 모두 스스로의 의지와 선택으로 이곳에 왔다.” 사기꾼들이 피해자들에게 늘 하는 말이긴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인간의 욕망이 죽음의 위협에도 멈추지 않음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게임의 참가자들은 드라마 초반부에 살상의 현장을 목격한 후 게임을 중단하고 세상으로 복귀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에 쪼들리며 사는 세상이 더 지옥 같다는 말을 뒤로하고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다시 게임 현장으로 돌아오는 모습은 이 드라마의 주제 가운데 하나인 현대인의 돈에 대한 충실한 욕망을 드러낸다. 생존을 위한 서바이벌 게임이지만 우승자에게 거액의 상금이 배당되는 ‘오징어 게임’의 규칙이란 돈과 생명이 서로 맞바꿀 수 있을 만큼 균등한 교환가치를 지니는 자본주의 사회의 실상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은 기독교 가치관으로 들여다 볼 때 심각한 오류를 드러낸다. 첫째는 재미를 추구하는 목적으로 설정된 이 게임에서 과연 타인의 죽음과 죽음 앞에서 일어나는 타인의 욕망을 지켜보는 재미가 과연 인생을 만족시켜주는가에 대한 성찰의 부족이다. ‘오징어 게임’의 주최자이자 001번을 받은 첫 번째 참가자이기도 한 노인 오일남(오영수)은 죽음을 맞이하면서 ‘오징어 게임’의 생존자가 된 성기훈(이정재)에게 이 잔혹한 살상게임을 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즉 돈에 대한 욕망을 쫓는 사람들이 죽고 죽이는 모습을 지켜보는 데서 오는 즐거움, 그리고 더 나아가서 참여하는 데서 오는 재미를 느끼기 위함이라고. 둘째는 ‘오징어 게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온전한 자유에 대한 해답을 영화는 제시하지 못하는 점이다. 게임의 실무 책임자인 프론트맨(이병헌)은 이전 게임의 우승자로서 게임의 모순성을 직접 체험한 사람이지만 오히려 게임의 진행자로 남아 있다. 주인공 성기훈은 그 많은 돈은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게임 참가를 독려하는 전화를 뿌리치지 못한다. 결국 돈이 아니면 재미를 쫓는 인생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준다. 재미를 인생의 가치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성경은 역사상 가장 럭셔리한 삶을 살았던 솔로몬왕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 넷플릭스와 기독교영화 인터넷으로 각종 영상물을 즐길 수 있는 넷플릭스(Netflix)는 관객이 사라진 코로나19의 세상에서 영화의 새로운 보금자리로 자리매김을 하는 중이다. 극장 상영을 하지 않고 넷플릭스용으로 제작된 영화들에 대해서 과연 진정한 영화인지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현재의 추세는 일반 영화와 넷플릭스용 영화 사이에 차별을 두지 않는 분위기가 대세다. 작품의 질이 떨이진다고 보기 보다는 오직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도록 제한을 두는 의미가 영화가 역사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창작과 관람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두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넷플릭스의 입맛에 맛는 영화들이 제작되어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을 때 과연 영화의 생태계가 온전해질 수 있는지 의문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상황은 오히려 넷플릭스와 같은 새로운 영화관람의 플랫폼이 영화인들에게는 구원자처럼 다가서고 있어서 넷플릭스의 영화를 기존의 영화계가 거부하기는 힘들게 되었다. 2021년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만 하더라도 넷플릭스용으로 제작된 영화들 가운데 <마이 네임>, <지옥>, <승리호>, <낙원의 밤> 등 4편의 한국영화를 포함한 세계적인 거장의 작품들까지 총 7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국제영화제에서 볼 수 있는 넷플릭스 영화란 이제 영화는 플랫폼에 상관없이 관객을 만나고 관객의 선택을 받는 일이 중요해지는 수요자 중심의 영화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넷플릭스에서 기독교 영화를 볼 수 있을까? 물론이다. 알렉스 켄드릭 감독의 순전한 기독교 영화 <오버커머>(Overcomer, 2019)는 극장 대신 넷플릭스를 선택했다. 단 일반 극장이나 넷플릭스 모두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따른다는 시장경제의 원리에 충실하다는 사실은 반드시 알아 두어야 한다. 기독교 영화를 보고 싶은 관객들이 줄을 서기 시작한다면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 보다 훨씬 많은 돈을 기독교 영화 제작에 투자할 것이다. 사실 <오징어 게임>에 투자된 200억원은 할리우드에서 납품하는 단가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9편에 이르는 시리즈물임을 생각할 때 편단 겨우 20억원이 조금 넘는 금액에 불과하지 않은가!
    • 문화
    • 영화
    2021-10-01
  • 천종호, [천종호 판사의 예수 이야기]
    천종호 저 / 두란노 / 332면 / 2021.09.27 / 18,000원 ‘소년범의 대부’, ‘호통 판사’로 잘 알려진 천종호 판사가 전하는 예수 이야기다. 법조인인 그가 예수 이야기를 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신에게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바로 예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 이야기에 빠져 성장했고, 예수 이야기를 법정에서 실천해 왔다. 그는 예수를 더 깊이 알고, 자신이 만난 아이들에게 잘 전하고 싶은 간절함으로 복음서와 씨름했다. 그 결과 이 책을 통해 복음서에서 전하는 예수의 생애를 하나로 종합해 전달한다. 이 책의 이야기 1, 2, 3에는 예수의 탄생과 죽음, 부활과 승천까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이야기 4에는 복음서의 이야기만으로 풀어낼 수 없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로 뽑아 정리했다. 바로 선과 정의에 관한 문제다. 그는 정의롭고 선한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묻는 이들에게 자신이 예수 이야기를 통해 찾은 답을 전하고, 우리 힘만으로는 선을 행할 수 없지만 예수가 걸어가신 길을 디딤돌 삼아 한 걸음씩 내딛으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한다고 격려한다. 이 책은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가 누구이신가’를 분명하게 그리면서도 선과 정의의 관점에서 예수 이야기를 새롭게 보도록 한다. 예수를 알고 싶은 이들에게 충실한 예수전기가 될 것이고, 이미 예수를 알던 이들에게는 이 땅에 정의로운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던 예수의 이야기를 이제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이루어 가보자는 귀한 초대장이 될 것이다.
    • 문화
    • 도서
    2021-09-29
  • [최병학 목사의 AI시대 읽기]인공 친구(AF) 클라라의 사랑
    소설 『클라라와 태양』(민음사, 2021)은 201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명실상부 현대 영문학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로 꼽힌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노벨상 수상 이후 최초로 발표한 장편소설입니다. 인간 소녀 조시와 그녀의 동반자가 된 인공지능 로봇 클라라의 이야기입니다. 인간과 인공지능 로봇이 그려내는 가슴 저미는 슬픔과 사랑 이야기입니다. 소설의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멀지 않은 미래의 미국입니다. AI 제조기술과 유전공학이 발전하고, 사회는 이 과학기술의 발전을 기반으로 계급 시스템을 재구성합니다. 아이들의 지능은 유전적으로 ‘향상’되고, 학교에 갈 필요 없이 집에서 원격 교육을 받습니다. 인공친구(AF, Artificial Friend)라 불리는 인공지능 로봇이 이런 아이들의 친구로 생산되어 팔립니다. 물론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그 혜택을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재력이나 계급이 그에 미치지 못하거나, 혹은 시스템에 소속되기를 거부하고 따로 공동체를 꾸려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런 과학기술의 혜택에서 제외됩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소녀형 AF인 클라라입니다. 오늘도 클라라는 AF 매장 쇼윈도에서 자신을 데려갈 아이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클라라는 갓 출시된 최신형 모델은 아니지만 매우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유난히 인간을 열심히 관찰하고 그들의 감정과 소통방식을 익히는 데 관심이 많은 것입니다. 클라라는 매장 쇼윈도에 앉아 지나는 사람들의 감정을 파악하고, 그 감정에 자신을 대입하고 상상합니다. 하지만 다른 AF들은 그런 일에 거의 관심이 없습니다. 클라라의 말입니다. “로사와 내가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우리는 매장 중앙부 잡지 테이블 쪽에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도 창문이 절반 넘게 보였다. 그래서 바깥세상을 볼 수 있었다. (…) 이렇게 해가 움직이는 걸 볼 수 있는 운 좋은 날이면 나는 얼굴을 내밀어 해가 주는 자양분을 최대한 많이 받으려 했다. 로사가 곁에 있을 때는 로사에게도 그러라고 말했다. (…) 우리와 같이 있던 소년 에이에프(AF) 렉스가 걱정하지 말라고, 우리가 어디에 있든 해는 우리한테 올 수 있다고 했다. 렉스가 마룻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게 해의 무늬야. 걱정되면 저걸 만져 봐. 그러면 다시 튼튼해질 거야.’” 렉스가 말한 태양은 매우 중요합니다. 클라라는 태양이 사람들에게 자양분을 한껏 쏟아 부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커피잔 아주머니와 한 남자의 포옹하는 장면을 클라라는 매니저와 함께 보고 이렇게 대화를 나눕니다. “RPO 빌딩 쪽에 다다르자 두 사람은 마치 한 몸인 것처럼 서로를 꼭 끌어안았다. 해도 그 모습을 보고는 두 사람 위에 자양분을 한껏 쏟아 부었다. 커피잔 아주머니는 여전히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남자가 눈을 꼭 감은 게 보였다. 행복한지 속상한지는 잘 알 수가 없었다. ‘저 사람들 만나서 무척 기쁜가 보다.’ 매니저의 말에 매니저도 나처럼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네, 아주 행복해 보여요. 그런데 이상하게 속상한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아, 클라라. 너는 놓치는 게 없구나.’ 매니저가 조용히 말했다.” 아무튼 클라라는 창문 앞에 전시되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감정을 예리하게 살펴봅니다. 클라라의 눈에 비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때로는 걸음을 멈춘 사람이 우리에게 아무 관심이 없을 때도 있었다. 그냥 운동화를 벗어서 뭔가 하려고 하려거나 혹은 오블롱(직사각형 창)을 들여다보려고 걸음을 멈출 때도 있었다. 하지만 유리창으로 다가와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주로 아이들, 우리와 가장 잘 맞는 나이대의 아이들이 많이 다가왔는데 우리를 보고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혼자, 혹은 어른과 같이 와서 우리를 가리키며 웃고 괴상한 표정을 짓고 유리를 두들기고 손을 흔들었다. 가끔은 아이가 다가와 우리를 보는데, 우리가 마치 무슨 잘못이라도 한 듯 슬픔 혹은 분노가 어린 표정일 때도 있었다. 이런 아이도 금세 돌변해서 다른 아이들처럼 웃거나 손을 흔들기도 했지만, 창문 앞에 선 지 이틀째에 나는 그래도 여러 아이들 사이에 뭔가 다른 점이 있음을 느꼈다.” 어느 날, 자신을 데려갈 아이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기다리던 클라라 앞에 한 소녀가 다가옵니다. 조시라는 이름의 소녀는 걸음걸이가 불편하고 몹시 야윈 것이, 한눈에 봐도 건강에 이상이 있습니다. 클라라와 조시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둘은 서로에게 이끌립니다. 둘의 첫 만남입니다. “조시는 행인들이 뒤쪽으로 다 지나갈 만큼 유리창에 가까이 다가온 다음 걸음을 멈추더니 나를 보고 웃었다. ‘안녕.’ 조시가 창문 너머에서 말했다. ‘내 말 들려?’ 아이가 나에게 말을 걸었기 때문에 나는 아이를 돌아보고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정말?’ 조시가 말했다. ‘시끄러워서 나도 내 목소리가 잘 안 들리는데. 정말 내 목소리가 들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조시는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조시는 클라라를 꼭 데려가겠다고 굳게 약속하고, 클라라 역시 다른 아이의 간택마저 거부하며 조시가 자신을 데려갈 그 날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AF 매장 매니저는 클라라와 조시의 약속을 믿지 않습니다. “매니저는 자리를 뜨려다 말고 다시 몸을 돌렸다. ‘그건 아니지, 클라라? 너 누구랑 약속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나는 매니저가 창문에서 거지 아저씨를 보고 비웃은 소년 에이에프 둘을 꾸지람했을 때처럼 나한테도 꾸지람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매니저는 내 어깨에 손을 얹고는 아까보다도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말 잘 들어 봐. 아이들은 툭하면 약속을 해. 창가로 와서 온갖 약속을 다 하지. 다시 오겠다고 하고 다른 사람을 따라가지 말라고 해. 그런 일이 수시로 일어나. 그런데 그래 놓고 다시 안 오는 아이가 훨씬 많아. 더 심한 경우는, 아이가 다시 오긴 했는데 딱하게도 기다렸던 에이에프를 외면하고 다른 에이에프를 고르기도 해. 아이들은 원래 그래. 너는 늘 세상을 관찰하면서 많은 걸 배웠지. 이것도 잘 명심해두렴. 알겠니?’ ‘네.’ ‘좋아. 그럼 이제 이 이야기는 끝난 걸로 하자.’ 매니저가 내 팔을 쓰다듬고 돌아섰다.” 그러나 이렇게 오랫동안 펫숍의 동물처럼 진열대에 놓여 있다가 결국 조시의 선택을 받아 그녀의 집으로 가서 살게 됩니다. 클라라는 좋은 친구로서 갖춰야 할 전인적 인격과 미덕을 다 갖춘 AF입니다. 지정의(知情意), 지덕체(智德體)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이, 균형 잡힌 품격을 갖춘 AF입니다. 클라라 덕분에 조시는 하루하루 건강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실 조시는 언니를 죽인 질병을 앓고 있는데, 어느 날 병세가 악화되어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클라라는 자신의 모든 능력을 동원해 조시를 치료하려고 했으나, 해결책을 찾지 못합니다. 결국 클라라는 태양의 도움을 요청하려고 기도합니다. 태양이 사람들을 살리기도 하고 모든 로봇에게도 생명의 자양분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클라라는 붉게 타오르는 석양에게 간절히 기도합니다. “조시가 좋아지게 해주세요. 거지 아저씨한테 한 것처럼요.” 한때 클라라가 진열대에 있었을 때, 유리창 밖으로 거지 아저씨와 개가 아무런 도움이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는 것을 본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찬란한 아침햇살이 거지 아저씨와 개를 비추었는데, 이들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거지 아저씨처럼 조시를 다시 살려달라고 클라라는 정말 간절히 기도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릴 수 있다고 기도합니다. 며칠 후, 어둡던 하늘이 갑자기 열리더니 강렬한 태양 빛이 조시에게 비쳤습니다. 그리고 조시는 건강이 회복돼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클라라는 태양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었다고 생각하고 태양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조시가 떠난 후 클라라는 이제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AF는 어린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었죠. 클라라는 폐기되어 야적장에서 최후를 맞게 됩니다. 다섯 살 때 일본 나가사키에서 영국으로 이주하여 평생을 영국에서 살아온 가즈오 이시구로는 ‘이방인’ 혹은 ‘타자’에 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모든 작품에는 이처럼 타자의 시선을 통해 당연한 듯 존재해온 세상의 근간을 뒤흔드는 조용한 질문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타자, 혹은 이방인은 양면적이고 위태로운 존재입니다. 『클라라와 태양』에서 우리는 인간이 아닌 존재인 타자, 혹은 이방인인 인공지능 로봇 클라라를 통해, 한결같이 인간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엿보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인간됨’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이 인간을 고유하게 만드는지에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을 사랑하는 방식, 그것은 인간이 서로 사랑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클라라의 조시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 사랑인가요? 하나님 나라는 우리 인간이 아니라, 타자와 이방인, 그리고 인공지능 로봇에게서 진정한 휴머니즘을 발견하는 나라인가요? 그리고 빛으로 오신 예수님처럼, 태양의 빛이 그 휴머니즘의 발생사적 근원인가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클라라가~!
    • 문화
    • 도서
    2021-09-03
  • [영화]‘모가디슈’의 한국인을 말하다
    류승완 감독이 그린 남북 갈등의 현대사 류승완 감독이 <베를린>(2015)에 이어 남북 간의 갈등을 역사 속 사건을 통해 새롭게 조명한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 <베를린>이 남북 첩보원들의 충돌과 인간애를 액션을 통해 그려냈다면, 최신작 <모가디슈>는 남북갈등은 시대적 배경으로 전개시켜 놓은 채 소말리아 반군의 혁명 속에서 함께 탈출하기 위해 함께 고군분투하는 남북외교관의 모습을 다루었다. 즉 <베를린>에서는 남과 북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적대적 관계로 등장한다면 이번에는 외부의 총을 피해 협력해야 하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모가디슈>에서 발견하는 한민족의 상황은 한마디로 웃프다(겉으로는 웃기지만 속으로는 슬픈 처지라는 신조어). 동서독을 나누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벌어진 일을 다루고 있어서 남북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가 되어버렸을 때의 상황을 읽을 수 있다. 1991년 남과 북은 유엔가입을 앞두고 아프리카 국가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다. 유엔 회의장에서는 잘살든 못살든 한 국가당 한 표의 투표권이 주어지는 까닭에 아프리카 국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시급했다. 소말리아주재 한국 대사관의 한신성(김윤석) 대사는 안기부 출신의 정보 요원 강대진 참사관(조인성)이 가져온 선물 보따리를 들고 소말리아 대통령을 만나러 가는 길에 무장강도를 고용한 북한 대사관의 방해 작전에 피해를 받고 만다. 강대진은 이에 대한 보복이라도 하듯 북한의 총기가 소말리아 반군의 손에 들어간다는 언론 플레이를 벌여 어떻게든 소말리아 정부와 북한 간의 관계를 떨어뜨려 놓으려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반군은 수도 모가디슈에 진입하게 되고 남북대사관 직원과 그 가족들은 수도를 탈출해야 하는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류승완 감독은 ‘지명(地名)’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이전 작품의 도시 베를린은 동서독 분단을 상징하는 도시여서 남북 정보원들의 생사를 넘나든 작전이 전개되는 상황은 충분히 관객을 납득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베를린은 이제 분단이 아닌 통일을 상징하는 도시가 되었다. 그 누구도 합칠 수 없을 만큼 골이 깊어진 이념과 경제적 차이를 극복하고 한순간에 무너진 베를린 장벽은 남북분단의 상황에서 왜 우리만 과거 냉전 시대의 대결 구도를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일으켰다. 이제 류승완 감독은 ‘모가디슈’를 들고 나왔다. 우리에게 소말리아는 국제 수송선들 납치하여 몸값을 받는 ‘소말리아 해적’으로 알려졌을 뿐이다. 영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랙 호크 다운, Black Hawk Down, 2001>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1993년 소말리아에 파견된 유엔평화유지군으로서의 미군 특수부대와 유엔의 구호식량을 착취하는 소말리아 민병대와의 시가전이 압권인 영화였다. 그런데 소말리아와 모가디슈는 이게 전부였다. 부정과 혼돈의 도시 소말리아의 모가디슈. 그 속의 남북은 부조리한 상황 가운데서 살기위해 함께 탈출을 감행한다는 점에서 모가디슈는 통일 이전에 개별적 생존을 상징하는 도시로 남게 될 전망이다. 한국의 영화 관객들은 이제 낯선 소말리아에 대한 또 하나의 기억을 간직하게 되었다. 모가디슈에서 드러난 한국인의 민족성 영화는 평소 인식하지 못했던 인간 무의식의 통로 역할을 한다. 특히 사람들이 주목하고 인기 있는 영화들은 그 사회 구성원들의 집단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을 보여준다. 칼 융(Carl G. Jung)이 언급한 집단 무의식은 개인이 갖는 무의식과는 달리 사회 구성원들이 역사와 전통 그리고 문화 가운데 갖게 되는 무의식으로 보통은 신화나 설화 그리고 전래동화를 통해 드러난다. 특별히 생각하지 않아도 그 문화 속에 사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은연중 나타나는 것이 있다면 집단 무의식의 영향이라 볼 수 있다. 현대 사회에 적용하자면 집단 무의식은 대중성을 통해 나타난다. 한국의 오랫동안 사랑받는 상업영화나 시간을 뛰어넘어 인기 있는 가요 안에는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모가디슈>에는 세 가지의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 민족성이 내포되어 있다. 첫째는 경쟁(競爭)의 무의식이다. 그 먼 아프리카에서조차 남과 북은 갈라져서 서로에 대한 비방과 투쟁을 멈추지 않는다. 말이 좋아서 외교전이지 실상은 거짓과 술수 그리고 폭력이 난무한다. 그런데 이 같은 갈등은 소말리아에 주재하는 남북외교관들이 아프리카에까지 오게 하는 원동력이며 그들은 경쟁 가운데서 자신의 입지를 넓혀가는 성과를 거둔다. 삼국시대에 민족 안에서 분열했던 신라와 고구려 백제의 모습으로부터 조선시대의 당파싸움과 현대 사회에서 여야로 나누어져 치열하게 싸우고 경쟁하는 모습은 때로는 국민들을 절망시키고 위기로 몰아가기도 하지만 이는 에너지를 고양시키고 적절한 안내를 통해 성장의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일제강점기를 경험했고 미국의 도움을 받아 살아온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은 이 국가들과 경쟁하고 있지 않은가! 둘째는 동정(同情)의 무의식이다. 어려운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돕는 동정은 인간의 본능 같지만 그렇지 않다. 아무리 미워하고 못된 사람이라도 잘못되고 위기에 빠졌을 때 모르는 척 넘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런데 한국인들로서는 모른 척 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도와달라고 사정하는데 이를 어찌 무시할 수 있냐는 생각이 한국인들의 마음에는 있는 듯하다. 북한 대사관이 소말리아 반군에 의해 피습당하고, 믿었던 중국대사관마저 폭도들에 의해 강탈당하는 모습을 보며 북한의 림용수 대사(허준호)가 택한 곳은 한국 대사관이었다. 총알이 빗발치고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림용수 대사는 한국 대사관의 문을 두드리며 도움을 요청한다. 한국 대사관 안에서는 고민이 흐르고 마침내 문을 열어준다. 이들을 망명으로 보고하여 실적을 올리려는 외교적 술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북한 대사관 직원들을 맞이하는 한국 대사관 안에는 난장판 속에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옳다는 기류가 흐른다. 셋째는 문기(文氣)의 무의식이다. 책을 좋아하고 배움을 가치 있게 여기는 무의식이 한국인에게 있다. 남북의 외교관과 가족들은 승용차에 나눠 타고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피신하게 된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류승완 감독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찍은 액션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도로마다 반군이 장악한 상황에서 총알이 빗발치듯 쏟아지는데 이들은 어떻게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임용수 북한 대사는 한국 대사관에 있던 책들을 모아 승용차의 외부에 붙여서 방호벽을 만든다. 끈과 테이프로 책들을 승용차 위와 겉면에 부착시켜서 총알이 뚫고 오지 못하도록 일종의 방탄복 역할을 하게 함을 볼 수 있다. 책으로 총을 막는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라는 서양 속담이 있었다면 앞으로는 ‘책으로 총을 막는다’라는 말도 유행시켜야 할 듯하다. 관객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이지만 이것은 문기(文氣)에 대한 한국인의 무의식을 상징화시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세계에서 금속활자를 가장 먼저 만든 민족일 뿐만 아니라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에 한글로 번역된 성경이 먼저 들어온 선교역사를 우리는 갖고 있지 아니한가? 지금도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성경을 많이 출판하는 나라다. 모가디슈의 그리스도인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한신성(김윤석) 대사의 부인 김명희(김소진)의 이미지에 깊은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다. 김명희는 매우 신실한, 교회 밖의 사람들이 본다면 극성스러울 정도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대사 부인 역할을 맡은 김소진 배우는 <마약왕>에서도 범죄의 길에 빠진 남편(송강호)을 구하고 가정을 지키는 그리스도인 현모양처의 역할로 주목을 받았었다. 대사관 밖의 어려움을 감지한 김명희는 여직원과 직원 부인을 모아 기도회를 연다. 교회도 다니지 않고 심지어 불교 신자이기도 하지만 이들은 청산유수로 주기도문을 외울 줄도 안다. 기독교 영화가 아닌 일반 상업영화 속에서 기독교인이 보여준 신앙의 모습은 대개 긴박하고 무거운 상황을 잠시 쉬어가게 만드는 코믹한 설정으로 자리 잡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후에 나타난 대사 부인의 행실은 감동적이며 긍정적인 그리스도인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대사부인 김명희는 저만 살려고 애쓰며 이기적인 존재가 되기 쉬운 전장의 상황에서 부상당한 현지인 운전사를 치료해주고 대사관을 가득 채운 북한 대사관 가족들에게 아낌없이 식사를 대접하는 면모를 보인다. 남북의 위기 속에서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뻔히 예상할 수 있는 장면을 거부했던 류승완 감독도 이 장면만큼은 뺄 수 없었다. 바로 남북이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절인 깻잎을 집기 쉽도록 젓가락으로 잡아주는 장면이다. 이 주인공은 소말리아의 그리스도인 김명희였다. 모가디슈의 남북이 마음을 여는 순간이다. 이것이 실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류승완 감독의 머릿속에는 남북이 위기 속에서 마음을 열고 함께할 수 있는 자격이 되는 사람을 찾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역할은 그리스도인인 대사부인에게로 돌아갔다. 이것은 세상이 생각하고 수용할 수 있는, 혹은 마땅히 그렇다고 여기는 그리스도인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상업영화 속에 언뜻언뜻 비치는 그리스도인의 이미지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세상의 생각과 판단을 담고 있다. 영화는 세밀한 작업이며 의미 없는 장면이란 영화 안에 들어갈 수가 없다. 또한 반대로 영화 속 그리스도인의 이미지는 관객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비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읽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잘 알기 때문에 부정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아니다. 언뜻 나타나는 이미지, 특히 매스미디어를 통해 드러나는 그리스도인의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새롭게 하기도 하고 기존의 생각을 강화시켜 나가기도 한다.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미지가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하는 영화가 아닐 수 없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2:12)
    • 문화
    • 영화
    2021-08-13
  • 나카가와 켄이치 [3분 변증 : 성경의 관점에서 나아갑시다]
    지은이 : 나카가와 켄이치 / 옮긴이: 이선복, 이시은 / 도서출판 디자인21 / 20210802 / 15,000원 『3분 변증: 성경의 관점에서 나아갑시다』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비신자부터, 초신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질문을 포함하고 있다. ‘성경이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하나님은 누구인가? 구약성경, 신약성경, 신앙과 삶, 기독교와 타종교, 이단, 신앙과 교회 등 8개 카테고리를 질문 내용에 맞추어 성경적 관점에서 답을 하고 있다. 이 책은 비신자들에게도 공감이 되는 내용이 많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궁금하지만 물어 볼 수 없었던 것, 설명이 어려웠던 주제들을 철저하게 성경의 관점에서, 귀납적 방법으로 알기 쉽게 변증(辨證)하고 있다. 신앙생활의 체계를 세워 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사역을 하는 목회자에게도 일상에서 발생하는 질문들을 체계적으로 변증하는 점에서 공과교재 준비 자료로도 유익하다. 또 각주에 일본어 동영상 링크 주소를 표시했다. 일본선교를 준비하거나 일본어를 공부하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 나카가와 켄이치(中川健一) 대표(하베스트 타임 미니스트리)는 1947년생으로, 일본 오사카부 출신이다. 1970년 히토쓰바시 대학을 졸업하고 6년간의 샐러리맨 생활을 했다. 이후 미국 트리니티신 학교에 유학, 동교를 졸업했으며, 1986년 일본 복음 텔레비전 방송 단체 「하베스트·타임·미니스토리즈」를 설립해 2010년까지 24년간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또한 이스라엘을 50여 차례 방문해 성경의 세계를 탐구했으며, 현재 하베스트 타임 미니스토리즈 이사장으로 사역을 하고 있다. 저서로 「3분에 알아가는 성서」(문예사) 1,2를 포함, 「일본인에게 전하는 성서 이야기」 (문예사) 시리즈 (문고판 전8권) 외 다수의 출판물이 있다. 이 책을 번역한 이선복 교수(동서대)는 1965년 충남 논산 출신으로, 니혼(日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9년부터 동서대에서 회계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2007년 부산기독교수연합회 창립, 초대총무와 회장을 역임하고, 전국대학교수선교연합회 회장, 부산성시화운동본부 감사, 한국로고스경영학회 이사로 대외활동을 하고 있다. 화명중앙교회 장로이며, 동서대 일본어채플을 설립 당시부터 15년째 섬기고 있다. 연구논문으로 「성경적 관점에서 본 회계윤리」, 「한일경제 비교와 선교적함의」, 「성경적 가치에 따는 일본 CEO경영연구」 등이 있다. 책을 공동 번역한 이시은 씨는 이선복 교수의 딸로, 1995년 대전에서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유년시절을 일본에서 보냈다. 부경대학교를 졸업, 재학 중 홋카이도대학 교환학생을 경험했다. 2020년에 일본사회사업대학대학원사회복지학(노인복지전공)을 수료하고 현재 삼성 제일기획 일본지점에서 광고기획 AE로 근무하고 있으며, 대한예수교장로회 도쿄온누리교회 청년부를 섬기고 있다. 이선복 교수는 “학교에서 학생들과 일본어채플에서 쓰던 영상을 보며, 성경적 접근방법에 감명을 받았다. 신앙생활의 핵심은 성경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책으로 번역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책은 교보문고, 알라딘외 전국 주요서점에서 판매 중이다.
    • 문화
    • 도서
    2021-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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