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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 교양 읽기 20] “이유없이 남을 위해 겪는 고통, 그게 십자가!”
    “고통은 하나님 안에서 노래가 된다!” 살아가면서 고난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그런데 교회에 다니는 사람의 고통은 이중적이다. 자칫 불신앙으로 비칠까 하는 조바심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걸까 ‘의심’이 들지만 차마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다. 소위 말하는 ‘착한 신자 콤플렉스’다.이에 대해 저자는 하나님에 대해 거침없이 ‘항의하라’고 말한다. 이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고, 자연스러운 행동이라는 것이다. “분이 치밀 때는 그냥 분노하라”고 말한다. 많은 성경의 인물이 그렇게 했고, 예수님도 십자가를 앞에 두고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항의의 다른 면을 슬쩍 끄집어낸다. 항의는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라고. 즉,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이 책은 하박국서를 통해 고난을 철저하게 분석한다. 고난을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명제로 올려놓고, 분노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응원했다가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연결시킨다. ‘고난’이라는 까다로운 주제에다가, 글의 흐름도 반전을 거듭한다. 금방 이것이 옳다고 해놓고는, 곧이어 신학적으로 깊이 있는 의미를 새롭게 제시한다. 그래서 쉽게 읽을 수 있을 듯하다가도 어느새 고민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하박국을 통해 고난에 천착하게 된 이유 중 하나로 저자 자신이 겪었던 고통 때문이었음을 고백한다. 차라리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런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니 진정으로 용서하기 위해 책의 개정판을 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고통을 통해서만 다른 이의 고통에 참여할 수 있음을 고백하며, “고통은 하나님 안에서 노래가 된다”는 말로 마무리한다.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 특별손님 : 김기현 목사 ▲ 이번에는 저자인 김기현 목사를 특별초청하여 《하박국, 고통을 노래하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왼쪽에서부터 김현호, 김기현 목사, 김길구, 김수성] # 읽기 쉬운 책과 어려운 책의 중간 지향김길구 : 이번에는 《하박국, 고통을 노래하다》의 저자인 김기현 목사님을 특별손님으로 모셨습니다(박수). 목사님은 문화적 토대가 약한 부산에서 꿋꿋하게 사역하면서 전국적으로 보급되는 책을 계속 펴내고 계십니다. 어째 이번에 개정판을 내셨는데 많이 팔렸습니까(웃음)?김기현 : 8년 전에 초판을 썼을 때는 책이 전체적으로 거칠고 무거웠습니다. 게다가 개인의 고난을 제대로 밝히지도 못했습니다. 자칫 ‘복수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며 스토리 연결이 안 된다는 지적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출판사와 의논하여 개정판을 준비했습니다.김현호 : 저는 초판을 읽었던 독자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에 대한 내용이 절대적으로 빈약한 상태에서 이 책이 나와 무척이나 반가웠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목회자들은 한 두 구절로 하박국을 설교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한 때에 하박국의 고난에 대해 신학적 지평을 연 책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김수성 : 신학적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겠지만, 저는 읽으면서 어렵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다양한 신학적 해설 때문에 진도가 제대로 나가지 않았습니다.김기현 ; 저는 기본적으로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 중간, 학자와 평신도 중간 입장에서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사실 기독교 서적은 읽기 편한 책과 까다로운 학문적인 책으로 양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중간 지점으로 가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 책은 ‘고난’이라는 까다로운 주제를 다루다보니 조금 더 무거워진 것 같습니다.김길구 : 성경에 고난을 이야기하는 책이 많은데, 왜 하필이면 하박국을 선택했는가요? 또 책에 보면 죽이고 싶을 만큼,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런 고난을 겪었다고 하는데, 당시 상황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기 바랍니다.김기현 : 우선 내용의 부피를 고려한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나의 고통 문제를 해결하는데 하박국이 가장 적합한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내가 겪은 고통은 하박국에 비하면 별개 아닐 수도 있었는데, 당시에는 상당히 고통스러웠습니다. 나에게 직접 가해진 고난이었기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 다툼이 있어 뛰쳐나왔던 분들이 교회를 개척하면서 제게 연락이 왔습니다. 당시 부목사로 있던 교회에서 떠나 개척하고 싶은 마음이 있던 차에 잘됐다하고 그리로 갔습니다. 그런데 이 분들은 자기들이 개척한 교회를 ‘자기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내가 낸 십일조로 먹고사는 당신이 왜 내 말을 듣지 않느냐?”는 막말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 입을 믿지 않고 손발이 하는 것을 본다김수성 : 그 부분을 읽으면서 갑갑했습니다. 죽고 싶을 정도였다면, 그곳에서 벗어나는 게 맞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김기현 : 벗어나려고 노력했죠. 그런데 현실적으로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서울의 한 교회에서 좋은 조건으로 청빙이 들어왔죠. 주위 분들이 말리던군요. 특히 옆에 계신 김현호 대표가 적극적으로 말렸습니다[웃음]. 그런 가운데 하박국이 고통에서 어떻게 벗어났는가를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지나고나니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김현호 : 하박국 당시와 지금 우리의 시대 상황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권력이나 악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김기현 : 먼저 외쳐야 합니다. 불의와 권력의 폭력에 대해 침묵하지 말고 외쳐야 합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말을 전달하는 대언자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 말을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한탄하고 대답을 듣고는 또 묻고 따지고….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모습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하박국 3장의 찬양으로 바로 넘어가는 게 우리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의심의 골짜기에서 찬양으로 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김길구 : 의심의 진정성이 있고 저항의 급진성이 있기에, 포용의 신비성도 있다고 하셨는데?김기현 : 의심이 필요하지만, 모든 의심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의심의 진정성이란 사랑이 내포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가끔 내가 잘못하면 아내가 대놓고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 목사 맞아?” 당연히 섭섭하고 화도 나죠. 그러나 아내가 내게 하는 것을 보면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절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입을 믿지 않고 손발이 하는 것을 봅니다. 포용의 신비성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김수성 : 읽다보니 고난과 ‘자유의지’의 연결이 껄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김기현 : 사실 기독교 신정론이 이론적으로나 실존적으로 명쾌하게 답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럼에도 인간의 고난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언급해야 하는 것이 종교이기 때문에 신정론이 필요한 것입니다. 회피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죠.김현호 : 고난 중에 독서를 많이 하셨다고 하는데.김기현 : 물론 책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현실적으로도 책을 읽지 않고서는 안 될 처지였습니다. 당시 교인들이 날 쫓아내려고 했기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설교였습니다. 그래서 책을 부지런히 읽고 설교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독서가 내게 여유를 가지게 해주었고[쉼],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으며, 고난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나갈 [길]도 보여주었습니다. # 독서가 쉼과 힘을 주고, 눈과 길을 열어줘김길구 : 고통이 고통을 치유한다는 말은?김기현 :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고통의 현장, 바로 거기에 계십니다. 뚝 떨어져서 방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그 고통을 찬양으로 승화할 수 있도록 응원하십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신 사건이 ‘십자가’입니다. 즉, 고난 받는 하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십자가를 도외시하는 기독교는 변질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김현호 : 그동안 교회는 하박국의 찬양만을 많이 강조했습니다.김기현 : 하박국의 찬양은, 곧 고통이 닥쳐올 것을 알면서도 먼 미래의 희망을 노래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찬양했다기보다, 절규하는 마음으로 노래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이 찬양시를 읽어야 합니다.김길구 : 끝으로 용서에 대해 이야기할까요?김기현 : 용서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이것이 나를 고난에서 벗어나게 하였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은 무조건 남을 위한 고통이었습니다. 이유 없이 남 때문에 겪는 고통이어야 진정한 고통이라 할 수 있고, 그 가운데서 용서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김길구 : 이 책은 고난이라는 무거운 주제의 신학적 아젠다를 하박국서를 통해 우리가 새롭게 성찰하도록 도와준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쁘신 가운데서도 이렇게 시간을 내주신 김기현 목사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다음에는 팀 켈러의 《탕부 하나님》(두란노, 2016)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자살은 죄인가요?》 / 김기현 / 죠이선교회《예배, 인생 최고의 가치》 / 김기현 / 죠이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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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1-10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20 : 뇌
    1. 하나님의 고민?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가장 고민하셨던 부위는 인간의 뇌가 아닐까? 너무 완벽하게 만들면 하나님을 넘어설 것이고, 너무 뒤쳐지게 만들면 인간 종이 멸종당할 터, 그래서 뇌라는 복잡한 것을 만들어 그 뇌의 기능을 다 사용하지 못하도록 만드셨는데, 이제 뇌의 기능을 확장시킨 인간들은 자유의지를 통해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들 인간만의 역사를 만들어 온 것이 우리 문명사가 아닐까?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의 소설『뇌』에서 인간의 뇌에는 파충류의 뇌와 관련된 동기유발 부분과 포유류의 뇌와 관련된 동기유발 부분,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최후의 비밀(소설의 원제가 L’Ultime Secret, 최후의 비밀)’이라는 부분을 통해서 미래의 인간이 도달하게 될 뇌의 한 부분을 말하고 있다. 자아의 확장, 자신의 존재를 뛰어넘는 개별자아의 확장이 인류가 미래에 도달하게 되는 진화의 마지막 단계라고 역설하고 있다. 사실 인간의 뇌는 각각의 부위마다 다른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그것을 통합하고 조합하여 사고라는 과정을 만들어내는 부분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마치 호수에 물이 여기저기서 파동을 만들어 내는 것은 확인되나 그것들이 전체적으로 조합이 되어 (사고라는) 큰 그림을 역어내는 부분은 찾지 못한 것과 같다. 2. 뇌의 고민: 스키마, 선입견과 고정관념 “니 아버지 뭐하시노?”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Friend, 2001)>에서 선생님이 동수(장동건 분)에게 물었던 질문이다. 이것은 우리 뇌가 고정관념이라는 편리한 판단기준을 통해 사람을 미리 재단하기 때문에 가능한 질문이다. 성별, 인종, 출신 지역, 가정환경 등을 통해 쉽게 대상을 일반화하려는 것이다. 뇌작용의 이런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스키마(Schema)’라고 한다. ‘과거의 경험이나 지식들을 토대로 새로운 경험을 친숙하게 받아드리는 것’이다. 뇌가 정보를 여러 범주로 조직화할 때 이용하는 기록체계의 일종으로 다양하고 복잡한 정보들 속에서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을 결정하는데 도움을 준다. 사실 정글에서 생활하는 원시인들은 사람의 얼굴을 판단하는 데 그들의 뇌에 필요한 시간은 약 0.4~0.6초이다. 또한 그 사람이 매력적인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겨우 0.2초이다. 원시시대에 유용한 이러한 스키마가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는 종종 잘못된 판단을 야기하기도 한다. 뇌의 태생적 고민이 시작되는 부분이다. 우리의 뇌는 ‘여성은 모성적이고, 흑인 남성은 공격적이며, 유대인은 지갑을 절대 열지 않을 것’이라는 성적, 인종적 편견을 가지고 있다. ‘아줌마는 억척스럽고 아저씨는 뻔뻔하며 요즘 애들은 버릇없고 나이든 노인은 성욕을 잘 다스린다’는 선입견도 갖고 있다. 직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술가는 섬세하고, 정치가는 권모술수가 능하며, 교수는 논리적으로 따지고, 사업가는 통이 크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우리 뇌는 이런 고정 관념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다. 성격의 문제를 넘어 뇌의 문제로 뇌의 고민인 것이다. 3. 중년의 고민: : 절정의 뇌 젊은 시절 약 2만종의 맛을 구별하던 인간은 나이가 들면서 (중년이 되면) 1만종의 맛을 구별하기도 버거워진다. 중년의 기억력 감퇴는 제일 먼저 이름과 얼굴을 잊어버리는 데서 시작한다. 신경과학자들이 정의한 ‘인생의 중년’은 나이 45살부터 68살까지인데, 중년의 뇌는 어떨까? 중년의 고민으로 남을 것인가? 최근 경영학과 신경과학이 융합된 ‘뉴로리더십(Neuroleadership)’이라는 분야는 리더가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뇌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단점은 보완하고 장점은 살려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 시애틀 세로연구소의 ‘뇌 인지능력 검사’ 결과는 중년의 뇌에 대한 놀라운 결과를 보여준다. 어휘능력, 언어기억능력, 계산능력, 공간지각능력(공간 정향 능력), 반응속도, 귀납적 추리 능력 등 6가지 능력이 가장 초절정의 성과를 내는 나이대가 45~53살 사이의 중년의 뇌로 나왔다는 것이다. 중년의 뇌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순발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복잡한 상황에서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 글을 읽고 주제를 파악하는 능력은 매우 뛰어나며, 결과를 예측하는 능력 또한 우수하다는 것이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단기 기억력은 떨어지지만, 중요한 사실에 대해서는 장기 기억 능력이 오히려 좋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나이가 들수록 더 지혜롭고 현명해진다는 말은 뇌과학적으로 사실인 것이다!). 4. 신은 뇌 속에? 신을 영접하는 순간(혹은 명상을 하는 동안)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신학자와 철학자, 종교학자가 질문한 신의 문제에 물리학자, 심리학자들이 가세한 이후 이제 신경과학자들이 합류하여 “신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우리는 신의 존재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왜 우리는 항상 우리보다 더 큰 어떤 존재와 연결되기를 바라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개입하였다. 그리고 신경과학자들의 결론은 ‘인간의 뇌는 종교를 추구하도록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이며 ‘종교적 체험을 하는 동안 뇌의 특정 영역이 활성화되며, 종교적 체험이 우리의 뇌에 유익하기 때문에 인간이 종교활동을 영위한다’고 결론짓는다(뇌의 생물학적 구조와 기능이 존재하지 않은 신을 만들어냈을까?, 아니면 신이 자신을 숭배하도록 인간들의 뇌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20세기 말 펜실베니아 대학의 핵의학과 앤드루 뉴버그(A. Newberg) 교수는 종교적 체험을 하는 동안 인간의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관해 6년간 실험을 반복했다. 종교인들이 종교적 체험을 하는 동안 뇌활동에는 비정상적인 변화가 일어났고 자신들의 초월적인 종교적 경험을 아주 생생한 현실처럼 인식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실제로 현실에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는데 그들은 마치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처럼 생생한 각성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신경과학적으로 감정과 행동을 통제하는 전두엽(Frontal lobe)과 사고 기능을 조절하는 하두정엽(inferior parietal lobe)이 나란히 활성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어떤 종교를 믿느냐에 관계없이 영적 체험을 하는 사람의 뇌활동 상태는 거의 비슷한 변화를 보였다. 따라서 뉴버그는 2001년, “신은 인간의 뇌 속에 들어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뉴버그 교수가 기독교인이 영어로 기도할 때와 방언으로 기도할 때의 뇌 스캔을 통하여 어떤 차이가 나는지도 실험한 것이다. 영어로 기도할 때는 언어를 관장하는 전두엽의 활동이 활발하게 나타났지만 방언으로 기도할 때는 활동이 감소되고 조용했다. 즉 방언으로 기도할 때는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개신교적으로는 ‘성령’)가 나의 기도를 통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의 수도승이 명상할 때와 프란체스코회 수녀가 기도할 때는 전두엽이 활발하게 작용했지만 개신교인이 방언을 말할 때는 전두엽 활동이 감소되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즉 방언기도 할 때는 나의 생각이 아닌 나의 영이 직접 기도하기 때문에 두뇌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신은 전두엽과 하두정엽에 있을까? 뇌에 전기자극을 가함으로 신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 인류의 원형적인 종교적 기억들은 미리 실현된 전기자극인가? 5. 엔그램: 기억의 장소 기억은 뇌 신경세포와 시냅스에 저장된다. 뇌에는 엄청나게 많은 신경세포(뉴런)가 있다. 대략 860억개 정도인데, 다른 체세포와 달리 신경세포에는 많은 가지(축삭과 가지돌기)들이 뻗어 나와 서로 연결되는데, 신경세포 하나에 무려 수천, 수만이나 된다. 신경세포들의 가지와 가지를 이어주어 신호를 주고받는 부위가 바로 시냅스이다. 사람의 뇌에는 무려 수십조 내지 100조개의 시냅스가 존재한다. 현대 뇌과학은 신경세포와 세포들 사이 시냅스의 전기적 신호로 만들어진 시공간적 패턴을 통해 기억이 만들어지고 저장된다고 가설한다. 따라서 신경세포들의 전기적 패턴을 지우거나 방해하면 기억을 지울 수 있고, 패턴을 재생하면 기억을 복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기억의 메커니즘은 이런 신경세포와 시냅스의 작용을 통해 일어난다. 신경세포들은 기본적으로 전기적 방법으로 소통하지만, 세포들끼리의 신호 전달은 시냅스에서 물질을 교환해서 이뤄진다.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민산염, 도파민, 세로토닌 물질이 신경세포의 활성을 ‘흥분시키거나 억제(스위치를 켜고(+, 흥분성), 끄는(-, 억제성)’시킨다. 이것이 바로 기억의 메커니즘이다. 곧 기억의 메커니즘은 신경세포와 시냅스의 작용을 통해 일어나는데, 그것은 신경세포와 시냅스 분자들에 나타나는 변화이기도 하다. 또한 세포간 연결 패턴의 변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기억이란 어떤 생물학적 현상이라고 말해주는 단 하나의 답은 아직까지는 없다고 한다. 기억이 저장된 분자, 세포, 연결망 수준의 흔적, 즉 ‘기억 흔적’ 또는 ‘기억 장소’를 일컬어 과학자들은 엔그램(engram)이라고 부른다. 기억의 장소인 엔그램이야말로 신이 창조했거나, 혹은 신이 깃들어 있는 장소가 아닐까? 6. 고향 뇌과학적으로 고향이 편한 이유는 어릴 적 경험한 음식, 소리, 얼굴과 풍경,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뇌를 완성시킨 바로 그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나란 존재를 만든 고향, 그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나란 존재의 원인과 이유를 의심하기 시작한다는 말과 같다. 따라서 인간은 고향을 그리워할 수 밖에 없다. 1000억개 신경세포들 간의 수많은 시냅스(연결고리)들의 위치와 구조를 유전적으로 물려받기는 불가능하기에 뇌는 미완성 상태로 태어난다. 대신 뇌는 약 10년간의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라는 것을 갖고 있다. 결정적 시기 동안 자주 쓰이는 시냅스들은 살아남고 사용되지 않는 시냅스들은 사라진다. 따라서 결정적 시기의 뇌는 찰흙같이 주변 환경에 의해 주물러지고 모양이 바뀔 수 있다. 어쩌면 조기 인성 교육이 조기 어학 공부 및 선행 학습보다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우리 속담에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인문학적으로(아니 신학적, 종교적으로까지!) 우리는 고향으로 향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출애굽한 이스라엘, 혹은 오디세우스의 후손들이다. 키르케 섬에서 탈출한 오디세우스는 지옥 하데스에서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를 만나서 그에게 물어본다. 자신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고, 그러자 예언자는 말한다. “그래, 오디세우스야,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넌 결국 이타카로 돌아갈 것이다. 사랑스러운 아내를 품에 안을 것이고, 멋진 청년으로 자란 아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디세우스야, 이것만은 알아야 한다. 네가 아는 고향에 도착한 넌 다시 네가 아는 고향을 떠나야만 너의 진정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단다. ……” 우리의 진정한 고향은 하늘나라이기에 이 땅에서의 고향은 잠시 머무는 것임을 호메로스도 알았던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고향은 뇌가 형성된 어린시절, 혹은 창조의 때인가? 기억의 장소인 엔그램은 이 땅에 진정한 고향이 없음을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통해 잘 보여준다. 7. 영화 <루시>: ‘신화적 예수’의 ‘과학적 구현’? 뤽 베송(Luc Besson) 감독이 오랜만에 복귀하여 만든 액션 영화 <루시 (Lucy, 2014)>에서 주인공 루시(스칼렛 요한슨 분)는 평범한 삶을 살다 어느 날 갑자기 인간의 모든 한계를 뛰어넘어 두뇌와 육체를 완벽하게 컨트롤하게 된다. 영문도 모른 채 지하세계의 절대 악 미스터 장(최민식 분)과 만나게 되었다가 결국 신종약물(C.P.H.4로 임산부가 임신 중 자신의 신체에서 만드는 것으로 아기의 뼈 구성에 필요한 에너지를 주며, 힘을 갖게 만드는 물질)을 다른 나라로 운반해야 되는 전달자로 이용당하게 된다. 하지만 루시를 겁탈하려는 부하의 폭력에 의해 뱃속에 든 약물이 루시의 몸 안에서 퍼지게 되고, 이로 인해 몸 속의 모든 세포와 감각이 깨어나게 된다. 이후 뇌의 활용도가 점점 높아져 가는 루시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인간의 역사를 경험하고, 최초의 인류인 루시를 만나기도 한다. 루시는 자신의 뇌 기능을 100%까지 사용하게 되었을 때, 인간의 신체성을 벗어버리고, ‘언제나 어디서나 존재하는(ubiquitous)’ 신적 존재로 변화된다. 그리고 루시는 노먼 박사에게 자신의 모든 지식을 USB에 담아 전달해 준다. 인간의 신체성을 벗어버리고, 인류의 시작(원시인 루시)과 현재(노먼 박사)에 지식을 전달해주는 것이다. 이 지식은 인류의 기원과 미래의 비밀이 담긴 지식으로 인류 구원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이것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내어주고,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주신 예수의 길이라 할 수 있다. 태초에 계셨으며, 마지막에도 계실 분, 알파와 오메가이신 예수, 시간의 처음과 나중이며, 시간을 넘어서 계신 분! 우리는 루시에게서 ‘신화적 예수’의 ‘과학적 구현’을 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신은 인간의 뇌 속에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이 글의 뇌관련 정보와 예시는 정재승 교수의 ‘영혼공작소’ 및, 정재승, 김대식 교수의 저서와 번역된 앤드류 뉴버그 교수의 저서 등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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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0-27
  • [찬양사역자를 소개합니다] 늘소리 국악선교단
    늘소리 국악선교단은 우리 부산ㆍ경남지역뿐 아니라 우리나라 교계 전체에서도 보물과 같은 사역팀입니다. 바로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 국악으로 복음을 전하는 팀이기 때문이죠.1980년대 주찬양으로 시작된 교회 찬양의 열풍은 많은 찬양팀을 탄생시켰고, 이로 인해 각 지역과 교회마다 많은 찬양팀이 생겨났지만 막상 국악으로 찬양하며 복음을 전하는 팀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전문 국악인들로 구성된 이 팀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과 기독교문화에 새로운 모델을 만든 팀이기도 합니다. 1989년에 창단된 늘소리 국악선교단은 '사람을 살리고 세우며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다양한 문화적인 접근을 통해 이 땅에 사랑과 희망, 봉사를 실천하며 복음적인 선교를 꿈꾼다'라는 취지로 한국 전통음악을 전공한 단원들로 구성된 자비량 선교문화예술단체입니다. 이 팀은 교회에서 주최하는 다양한 행사에 초대되어 집회를 하지만, 특히 큰 은혜와 의미를 가지는 집회는 단연코 복음을 전하는 전도 집회입니다. 시골교회 어르신들 전도축제, 노인교실 전도축제 같은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집회에 국악으로 접근해 갈 때 다른 어느 문화적 접근보다 더 큰 효과가 나타납니다. 교회에 처음 나오신 어르신들이 민요와 전통음악을 들으며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간증과 이어지는 국악찬양을 듣고 부르시면서 춤을 추시기도하고 “예수 모시고 가시는 님은 영원 생명을 누리겠네~” 라며 아리랑을 개사한 찬양을 따라 부르시면서 복음을 받아들이실 때 천국잔치가 이와 같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은혜의 시간을 가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각 교회마다 전도축제가 많이 열리는 이 가을에 국악의 향기로 복음을 전하는 늘소리 국악선교단이 더욱 더 많은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리가 많아지기를 기도합니다. (집회문의 : 단장 서한나 010-7720-6876) ◇부산,경남 문화사역자 집회 소식 (11월1일~ 13일) 1. 그리스도의 편지(찬양팀:문지희단장. 010-4570-2803) 11월6일(주일) 오후7시30분 : (경남)진례영은교회 찬양집회 2. 킹덤드림(예배?찬양인도팀:최미라간사. 010-9811-9601) 11월1일(화), 8일(화) 오후3시, 4시 : 경성대학교 비전홀. 경성대학교 채플 찬양인도 11월5일(토) 오후2시 : (부산)하나로장로교회, G1319연합예배 11월7일(월) 저녁7시30분 : 부산역광장, 통일광장기도회 찬양인도 3. 노래하는 순례자(찬양팀: 이동석집사 010-3880-6355) 11월6일(주일) 오전11시 : (부산)세광교회 찬양집회 11월8일(화) 오후6시20분 : 부산밀알화요모임 찬양인도 11월13일(주일) 오후2시 : (통영)영접교회 찬양집회 4. 늘소리 국악선교단(국악찬양팀: 서한나 단장 010-7720-6876) 11월6일(주일) 오전10시30분 : 물금제일교회 새신자초청집회 5. J-piE(찬양팀, 이은호전도사 010-8033-0062) 11월3일, 10일(목) 저녁7시30분 : 삼남연회 본부 감리교회관. 목요찬양예배 6. 디아코너스(연극팀, 윤은대실장 010-2840-4834) 11월2일(수) : (부산)경남산업고등학교 11월3일(목) : 부산시민도서관 11월5일(토) : 디아코너스 소극장 11월6일(주일) : (부산)문현제일교회 11월9일(수) : 연제구청 구민홀 11월11일(금) : 거제시청소년수련관 11월12일(토) : (부산)비전교회 11월13일(주일) : (부산)익투스교회 7. 이창주 집사(찬양사역자 : 010-8516-2594) 11월5일(토) : (부산)사랑샘침례교회 찬양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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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0-27
  • [기독교 교양 읽기 19] 종교개혁은 세계의 역사를 바꾸었다
    종교개혁은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는 비텐베르크 성당 정문 앞에 가톨릭교회의 면죄부 판매 등에 대한 95개조의 반박문을 게시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듬해 6월, 루터는 교황 레오 10세가 보낸 파문을 경고하는 교서를 비텐베르크대학 교수들과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불태워버림으로써 본격적인 투쟁에 돌입했다.루터보다 102년 앞선 1415년 7월 6일, 면죄부 판매에 반대하던 얀 후스는 교황청으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되어 체코의 콘스탄츠에서 화형을 당했다. 그러나 그가 뿌린 종교개혁의 씨앗은 유럽 곳곳에서 서서히 열매를 맺었다.루터와 비슷한 시기에 스위스에서는 츠빙글리가 면죄부 판매를 반대하고 교황제도에 대해 성서적 근거가 빈약하다고 주장하는 등 입바른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522년부터 본격적으로 종교개혁 투쟁에 나섰다. 츠빙글리는 1531년 가톨릭 진영과의 카펠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결국 전사하였다.이들 선배가 목숨을 바쳐가며 전개한 종교개혁은 장 칼뱅에 이르러 프로테스탄트의 깃발을 역사 속에 우뚝 세웠다. 16세기 당시의 상황은 프랑스의 위그노 탄압 등 아직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오직 성서의 말씀을 중심으로 한 홀로서기는 오늘날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있게 만들었다.이 책은 대학원생들과 이들 종교개혁의 발자취를 따라 체코, 독일, 스위스, 프랑스의 도시들을 방문한 기록이다. 후스, 루터, 츠빙글리, 칼뱅이 머무르며 말씀을 전파하고 몸으로 저항했던 그곳을 살펴본다. 내년은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종교개혁은 오늘도 현재진행형임을 깨닫게 한다.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기독교계는 내년에 맞이할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한국 교회에 위기감이 상당히 고조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종교개혁’이라는 말이 던지는 의미는 남다를 것이다. 우리 모두 무릎 꿇고 겸손하게 그 의미를 되새기고 나아갈 바를 찾아야 할 것이다. #‘종교개혁’인가, ‘종교혁명’인가?김길구 : 평소에 가지고 있던 의문부터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얀 후스로부터 따지면 600여년 전부터 시작된 ‘종교개혁(reformation)’은 오히려 ‘종교혁명(revolution)’이었지 않은가 하는 생각입니다. 종교개혁가들은 처음에는 가톨릭교회의 면죄부에 관한 문제점 등을 지적하였지만, 궁극적으로는 사회 전 부문에 걸쳐 패러다임을 바꾸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는 혁명이라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김현호 :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개인적이긴 하지만, 철학이나 사회학 쪽에서 공부하는 사람들 중에 종교혁명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분이 여럿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종교개혁이 단순히 교회의 문제점만을 고치고자 한 것이 아니고, 당시 사회의 모순을 바로잡고자 한 부분이 분명히 있었습니다.김수성 : 후대 사람들이 종교개혁을 당시 사회에 몰아쳤던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보지 않고, 루터에게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종교개혁을 거대한 역사적 흐름으로 본다면, 루터의 주장과 행동은 혁명이라고 명명하기에는 한정적인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어서 일어났던 독일의 농민전쟁에 대해 취한 입장도 그러하고.김길구 : 일반적으로 ‘종교개혁’ 하면 우선 1517년의 루터(Martin Luther)를 생각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는 4명의 선각자들을 포함한 다양한 종교개혁의 흐름은 얀 후스로부터 1750년경까지 유럽 각지에서 일어난 방대한 운동입니다. 후스 외에도 루터에 의한 독일 루터교회, 칼뱅주의로 일컬어지는 개혁주의운동, 독특한 영국의 성공회,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내부에서 일어난 제2차 종교개혁과 재세례파 등 급진 종교개혁은 물론, 여기에 맞선 가톨릭의 반종교개혁운동까지도 포함됩니다.김현호 : 체코의 얀 후스(Jan Hus)는 루터보다 100년 앞서 종교개혁을 이끌다가 화형을 당했습니다. 후스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영국의 위클리프(John Wycliffe)는 1370년대에 이미 성서를 영어로 번역하고, 영국이 교황권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등 적극적으로 저항하였습니다. ▲ 종교개혁은 단순히 가톨릭교회의 변화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변혁을 추구한 운동이었다. 그림은 Diebold Schilling(1485)의 ‘얀 후스의 화형 모습’. [출처: en.wikipedia.org] #‘오직 성서’ ‘오직 믿음’ ‘오직 은혜’김길구 : 츠빙글리의 경우는 시의회와 손잡고 기독교적 공화정을 만들려고 하는 데까지 나아갔습니다. 이로 인해 재세례파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함으로써 내부적으로 분열되는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만,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볼 때, 단순히 ‘종교개혁’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수성 : 실제로 종교개혁의 깃발을 들었던 선각자들은 목숨을 바치기도 하고, 가톨릭교회를 지지하는 도시와의 전투에서 전사하기도 하고, 죽은 후에 시체가 훼손되기도 했습니다. 목숨을 잃지는 않은 분들도, 항상 생명에 위협을 느끼면서 운동을 이끌어왔다는 점에서 단순히 개혁으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김길구 : 루터의 종교개혁을 거론할 때 당시 가톨릭교회 내의 자정운동 노력도 감안해야 할 것입니다. 즉, 가톨릭교회의 문제점에 대해 내부적으로도 많은 지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종교개혁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교회 내의 분위기와 시대적 환경 등, 시대적 여건이 절묘하게 들어맞은 부분도 있습니다. 김현호 : 종교개혁을 기독교문화라는 측면에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 상황은 가톨릭교회의 독점적 문화였습니다. 이에 대해 종교개혁자들은 성서를 중심으로 다양한 의견을 피력하였죠. 가장 대표적으로 만인제사장설을 들 수 있습니다.김수성 : 종교개혁을 추구한 분들이 역점을 두고 주장했던 것 중 하나가 ‘오직 성서’였습니다. 즉, 성서에 기준해야 함을 천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성서를 읽을 수 있도록 라틴어 성서를 자기 나라의 언어로 번역하여 보급하였습니다. 문화라는 측면에서 아주 중요한 조치였습니다.김길구 : ‘오직 성경’을 비롯하여 ‘오직 은혜’ ‘오직 믿음’ 등과 함께 만인제사장, 성만찬 등은 종교개혁가들이 주장했던 핵심적 요소였습니다. 이러한 핵심적 요소의 본래적 의미는 자유 평등 민주 등 근대정신의 기독교적 고백이라고 보아야합니다. 즉, 교황이나 가톨릭교회가 모든 것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권리가 모든 사람에게 있다는 사실을 주장한 것입니다.김현호 : 종교개혁에 있어 구텐베르크 인쇄술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자국어로 성서를 번역했지만, 이들 성서가 인쇄되어 대량 보급되었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도 성서를 읽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라틴어 성서는 대부분 필사본이었기 때문에 라틴어를 읽을 줄 안다고 하더라도 성서를 구하기조차 어려웠었죠.김수성 : 1999년 뉴 밀레니엄을 앞두고 미국의 ‘라이프’지가 학자와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지난 1000년 동안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이 무엇인가를 설문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많이 꼽았던 사건이 바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었습니다. 활자인쇄술은 근대사회로의 변혁을 가져온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성공을 이끈 원동력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회개, 청빈, 희생의 정신 되살려야김현호 : 현시점 우리에게 있어 종교개혁이 더욱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은 한국 교회의 위기 상황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회개와 개혁, 청빈과 순종, 희생과 성결을 추구한 그 정신이 더욱 절실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김길구 : 청교도정신으로 대표되는 칼뱅의 개혁교회 전통이 장로교회로 이어져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우리나라의 프로테스탄트교회도 장로교회가 상당수를 차지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교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것일까요? 이제 개혁교회가 개혁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개혁하지 못한 것이 오늘 우리가 직면한 위기의 근원입니다.김현호 : 이 책은 신학교 대학원생들이 종교개혁지를 순례한 기록입니다. 예루살렘 성지순례 못지않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년에는 종교개혁지 순례가 봇물을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김수성 : 대학원생들의 필수과목 중 하나로 ‘종교개혁지 순례’를 넣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단과 교회의 지원이 당연히 있어야겠죠. 공부할 때부터 현장에서 종교개혁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졸업 후 목회할 때 그 정신을 쉽게 잊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김길구 : 종교개혁은 반동의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교황권을 중심으로 권력과 문화를 장악하고 있던 구세계에 대한 반동이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이르는 삶의 모든 부문에 폭발성을 가졌으나, 오늘 우리는 종교개혁을 교회 안에만 국한하여 개인의 신앙에서 사회적 성화로 이어지지 못함으로써 기독교의 위기를 자초하였습니다.다음에는 김기현 목사의 《하박국, 고통을 노래하다》(복있는사람, 2016 개정판)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종교개혁 이야기》 / 사토 마사루 / 바다출판사《역사를 바꾼 종교개혁가들》 / 이동희 / 넥서스크로스
    • 문화
    • 기독교 교양 읽기
    2016-10-13
  • [찬양사역자를 소개합니다] 찬양하는 사람 이창주
    이번 주 부터 부산과 경남에서 활동하는 찬양사역자를 시리즈로 소개합니다. 그리고 문화사역자의 집회소식도 함께 게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찬양하는 사람’ 이창주는 한국 사람으로는 드물게 애절함과 짙은 호소력이 묻어나는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진 부산·경남의 찬양사역자이다.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찬양사역은 18년이 지나는 동안 1,000여회의 개인사역과 팀(약속의 땅)사역을 병행해가며 청소년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을 아우르는 폭넓은 찬양사역을 해오고 있다. 마치 외국의 팝가수 같은 음색으로 인해 다양한 CCM앨범과 피처링에 참여했으며, 사역의 범위도 넓혀져 2000년도부터 국내뿐 아니라 해외 찬양선교활동을 시작해 현재까지 매년 꾸준하게 해외사역의 지경을 넓혀가고 있는 왕성한 에너지를 가진 사역자이다.현재 소나무선교회(소중한 것을 나누는 무리들)의 태국선교 홍보대사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에도 태국 파타야 땅 중심부에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 찬양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고 돌아왔다.‘찬양문화사역’이라는 단어보다는 가스펠이라는 장르에 익숙해 있을 2000년 당시 부산경남지역에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대중음악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내용 면에서는 기독교의 정신을 담아내는 모든 장르를 포괄하는 기독교 음악-에 가장 부합하는 찬양사역자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매 집회마다 마지막 찬양을 부르듯 땀과 열정을 쏟아내면서 찬양에 담긴 예수님의 사랑을, 마음을 다해 지금껏 전하고 있다.또한 쟈마뮤직에이전시(동래구 명장동)를 3년 전에 오픈해 찬양문화 개발과 전문성을 가진 후진양성을 위해 힘쓰고 있다. 현재 영안침례교회에서 중고등부 교사로도 섬기고 있는 그는 이 땅의 방황하고 힘겨워하는 청소년들과 믿음을 상실해가는 청소년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조금이나 회복하고 돌이키고자 기성세대들에게는 마음을 찢는 회개를 선포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찬양을 통해 청소년들의 회복을 호소하고 있다.무대 아래서는 후배와 동료들에게 유머러스하고 부담 없는 모습으로 동네친구 같지만, 무대 위에서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와 짙은 호소력으로 터져 나오는 그의 찬양은 단순히 좋은 목소리를 가진 것으로 설명하기 힘든, 그 속에 들어있는 복음에 대한 진심을 맛볼 수 있다.그는 끓이면 끓이는 대로 깊은 맛이 우러나는 된장국 같은 맛이 나는 사역자이다. 부산이라는 열악한 사역의 현실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복음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의 회복이 필요한 곳이라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교회를 넘어 세상을 향하여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는 하나님의 일꾼이 바로 이창주 찬양사역자이다.앞으로도 하나님의 귀한 도구로 많은 교회들과 회복의 장소에 보내지길 간절히 소망해본다.사역문의 010-8516-2594 이창주 [프로필]동의대대학원 뉴미디어학과 졸업2002년 창신대 전국 ccm 경연대회 은상 수상현 동의대학교 출강(교회음악)현 브니엘 예술 고등학교 출강(ccm)현 부산 극동방송 (드림 스테이션)출연현 소나무 선교회 홍보대사현 영안침례교회 집사현 쟈마 뮤직에이전시 대표현 약속의 땅(워쉽&콘서트)팀 리더 ◇부산,경남 문화사역자 집회 소식 (10월18일~18일) 1. 그리스도의 편지(찬양팀) 10월23일(주일) 오후1시 : (경주)황성교회 새신자초청 찬양집회 10월30일(주일) 오후2시 : (마산)사랑샘침례교회 찬양집회 2. 킹덤드림(예배?찬양인도팀) 10월18일(화) 오후3시, 4시, 경성대비전홀 : 경성대학교 채플 찬양인도 10월20일(목) 저녁7시30분, 수영로교회 희락홀 : 쥬빌리 구국 기도회 찬양인도 10월24일(월) 저녁7시30분, 부산역광장 : 통일광장 기도회 찬양인도 3. 노래하는 순례자(찬양팀) 10월18일(화) 오후6시20분 : 부산밀알전도협회 화요모임 찬양인도 10월23일(주일) 오전11시 : (부산)행복한교회 새신차초청 찬양집회 10월30일(화) 오전11시, 오후2시 : (부산)믿음찬교회 찬양집회 4. J-piE(찬양팀) 10월 20일(목) 오후7시30분 : 삼남연회 본부 감리교회관. 목요찬양예배 5. 박보영(찬양사역자) 10월 27일(목) 오후6시, 카페긱스 : 좋은날 풍경 토크 콘서트 10월 31일(월) 오후7시, 남천성결교회 : 좋은날 풍경 바스락 콘서트 6. 변용세 목사(찬양사역자) 10월18일(화) 오후8시 : 브니엘신학교 찬양집회
    • 문화
    • 문화사역자
    2016-10-13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19 : 깡통신학
    문화를 읽고 그 속에 감춰진 신학과 기독교 신앙의 의미를 펼치다 보니, 안목과 시선이 날로 새롭게 변해가기도 하지만 기발하거나/엉뚱해지기도 한다. 여기 엉뚱한 깡통 철학이자 깡통 신학 몇 가지를 소개해보니 독자들은 웃어넘기시기 바란다. 1. 곡선의 신학 ▲ 곡선과 직선 2016년을 10년 정도의 근시적인 눈으로 보면 ‘사드’라든지, ‘경주 지진’이라든지 ‘최순실과 K스포츠, 미르재단’이라든지 하는 것으로 역사에 남겠지만, 100년 정도의 역사적인 안목으로 보게 되면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에서 인간이 4대 1로 졌다’는 것과 또한 ‘포켓몬고 열풍’을 들 수 있다. 바로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2016년 국민미래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1등만 살아남습니다.”라고 말한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등의 신산업이 주도할 미래는 가장 빨리 관련 기술을 개발한 기업이나 국가가 계속 시장을 주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3가지로 볼 수 있다. ‘자동화, 융합화, 연결화’가 바로 그것이다.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자동화는 가속화될 것이고, 개별적으로 발달한 다양한 정보기술은 융합되어 연결될 것이며 생각지도 못한 변화와 혁신이 일상화되는 것이 바로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아날로그의 여유로운 곡선’을 ‘디지털의 빠른 직선’으로 만든 것이다. 디지털의 직선은 자동화와 가속화를 상징한다. 모든 ‘실재적인 것’은 시공간의 4차원을 가지고 있지만, 디지털화를 통해 차츰 4차원에서 움직이는 입체는 조각품의 세계(시간 없는 입체)→ 그림의 세계(깊이 없는 평면)→ 텍스트의 세계(평면 없는 선)→ 컴퓨터화 된 세계(선 없는 점들)로 요약되는 자동화와 가속화, 그리고 디지털화의 추상게임을 시작한다. 이렇게 파시스트적인 속도로 변화되어가는 세상 속에서 양적 성장은 당연하고, 더 많은 양을 획득하려면 더 빨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속도를 내야 한다. 이처럼 속도와 양적 성장과 목표지향적인 직선의 가치관이 오늘 화살처럼 창처럼 사회와 세상과 교회와 교인들, 특히 목회자들에게 몰아치고 있다. 그러나 자연은 본래 곡선이었다. 곡선인 자연을 인간이 직선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직선의 마음은 급하게 지식을 만들어내려고 하고, 급하게 일을 처리하려고 하며 획일적이다. 하지만 곡선의 마음은 때를 기다리며 곰탕과 같이 우려내어 지혜를 잉태시킨다. 따라서 스페인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Antonio Gaudi)는 이렇게 말한다. “직선은 인간이 만든 선이고, 곡선은 신이 만든 선이다.” 오스트리아의 화가이자 건축가인 훈데르트바서(F. R. D. Hundertwasser)도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강조하면서 “직선은 신의 부재”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서 깡통신학 하나! 성경은 하나님의 곡선을 인간이 직선으로 만든 사건들의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선악과 사건으로부터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에 이르기까지! (직선과 같은) 인간의 교만과 탐욕은 속도와 성장의 다른 이름으로 (신(神)인) 곡선을 지워버린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직선의 획일성과 가속성에 곡선으로 튕겨져 나가 부활하신 예수님은 교만하고 강팍한 직선들 위에 부드러운 곡선으로 다시금 재림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2. 거미 신앙 “스피노자가 기거하는 방에는 거미 한 마리가 왕으로서 살고 있다. 그러나 이내 스피노자가 길거리에서 동종의 거미를 구해와 그만의 세계에 개입시킨다. 자신의 의지와 타인의 의지와의 충돌이 일어나고 하나의 세상에서 ‘왕’이 되기 위해 그들은 싸움을 벌인다. 스피노자는 이에 그치지 않고 파리 한 마리를 거미줄의 세계에 집어 던진다. 그 거미들은 파리를 잡아먹고 다시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싸움을 벌인다.” ▲ 긴호랑거미 종교적 박해와 빈곤 그리고 불치의 질환과 항상 싸워야 했던 고독한 철학자 스피노자(Benedict de Spinoza)는 그 불행한 가운데서도 마음의 평화와 삶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평범한 실천 속에서 조용한 기쁨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스피노자는 거미가 집을 짓는 과정을 바라보며(혹은 거미들의 싸움을 보면서) 기뻐하곤 했는데, 거미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엮어가는 큰 보람과 기쁨을 찾은 것은 아닐까? 인간은 거미처럼 자유의지로 자신의 세상(비록 거미줄 위의 세상이긴 하지만)을 만들며 살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어떤 ‘의지’(위 인용구에 의하면 스피노자를 통한 동종 거미같은 것이긴 하지만, 인간 세상의 유행, 관습, 규범, 제도, 사회, 국가라는 운명의 울타리이기도 하다.)와 대립하며 충돌하고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며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비극적 존재이기도 하다. 스피노자의 거미의 자유의지에서 긍정적인 측면을 발견한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이렇게 말한다. “진정한 철학적 동물은 올빼미가 아니라 거미이다.” 사실 거미는 빛을 보지 못한다. 어떠한 빛의 형상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거미는 자신의 다리로 세상과 소통한다. 촉각으로 전해오는 미세한 파장에 반응해서 소통하는 것이다. 따라서 들뢰즈는 거미의 집짓는 과정이나 동종간의 싸움 등에 흥미를 느낀 스피노자와는 달리 거미의 타고난 비자발적 신체구조에 흥미를 느낀다. 들뢰즈의 말을 들어보자. “거미는 거미줄 꼭대기에 올라앉아서, 강도 높은 파장을 타고 그의 몸에 전해지는 미소한 진동을 감지할 뿐이다. (…) 이 거미는 오직 기호에 대해서만 응답한다. 그리고 미소한 기호들은 거미에게로 침투해 들어간다. 이 기호들은 파장처럼 거미의 신체를 관통하고 그로 하여금 먹이에게로 덤벼들게 만든다. (…) 거미줄과 거미, 거미줄과 신체는 하나로 접속된 기계이다. (…) 비자발적인 감수성, 비자발적인 기억력, 비자발적인 사유는 (…) 매순간 강렬한 전체적 반응들 같은 것이다(『프루스트와 기호들』277-278).” 스피노자의 인간 세상의 유행, 관습, 규범, 제도, 사회, 국가라는 운명의 울타리이기도 한 타자의 의지, 혹은 신의 의지는 들뢰즈의 말로는 ‘홈이 패인 공간, 정주적 공간, 국가 장치에 의해 설정되는 공간’인 것이다. 이에 대립되는 것으로 들뢰즈는 ‘매끈한 공간, 유목적 공간, 전쟁 기계가 전개되는 공간’을 언급한다. 따라서 들뢰즈는 고정 불변의 이상향(이데아나 천국)을 향해 뻗어 있는 홈-패인 길(이것은 직선일 것이다.)을 건설하는 철학을 비판하며 올빼미로 상징되는 전통의 철학서와는 다른 글쓰기의 방식을 추구하는 것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들뢰즈의 거미의 철학은 비자발적 노출에 놓여진 감각을 중시하고 따라서 매순간 생동하는 시간을 살아가는 거미의 차이 생성을 찬양한다. 그것은 홈 패인 공간이 아니라. 매끄러운 공간으로 미끄러져 가는 공간, 유목적 사유, 노마디즘인 것이다. 여기서 깡통신학 둘! 성경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율법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홈 패인 직선의 공간 속에서 그것을 가로질러 미끄러져간 사유와 실천의 기록이 아닐까? 따라서 예수님의 신앙을 거미의 신앙이다. 홈 패인 직선의 획일성과 고정 불변한 이념을 곡선으로 미끄러져 튕겨져 나가 부활하신 예수님은 정주적이며 국가 장치에 의해 설정된 이 폭압적인 자본주의 세상을 새롭게 만드시기 위해 다시금 재림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3. 색깔 목회 우리말 가운데 ‘새빨간 거짓말’은 흰 것을 오염시키는 색깔을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는 표현이다. 서양은 ‘하얀 거짓말(white lie)’을 선의의 거짓말로 표현한다. 기색(氣色), 본색(本色), 생색(生色), 특색(特色), 정색(正色), 이색적(異色的)이라는 말도 색깔을 통한 정서를 보여준다. 조선의 선비들은 육체와 정신을 구분하여 남성을 양(陽)으로 여성을 음(陰)의 존재로 보았다. 따라서 육체적 본능을 천시하였는데, 여색(女色)을 밝힌다거나 주색잡기(酒色雜技), 곧 술과 여자와 노름에 빠져 패가망신한 사람을 천한 인간으로 여겼다. 반면 재색(才色)을 겸비한 미인과 같이 긍정적인 표현들도 동시에 존재한다. 푸른색에 관련하여 독야청청(獨也靑靑), 청춘(靑春), 청상과부(靑孀寡婦), 청출어람(靑出於藍), 청산유수(靑山流水)라는 말들은 색깔이 주는 상징이 문화의 경험을 통해 맺어진 정신의 표현임을 알 수 있다(이하 성기혁,『색의 인문학: 색으로 엿보는 문화와 심리산책』(교학사, 2016) 참조). 현재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과 같이 색을 보는 포유류는 원숭이 밖에 없다고 한다. 따라서 강아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빨강 옷을 입힌다거나 노랑 밥그릇을 준비하는 것은 주인의 만족이지 강아지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이제 색깔의 의미를 살펴보자. 자동차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색은 노랑이다(따라서 위험을 알리는 경고등의 색이 노랑색). 유아나 어린이가 탑승하는 자동차를 노랑으로 정해 놓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인데, 노랑은 가장 밝게 느껴지고 어떤 환경에서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색이기 때문이다. 진찰실에서 진료하는 의사들은 흰색 가운을 입지만 수술실에 들어갈 땐 초록색 수술복을 입는다. 수술복이 흰색이라면 옷에 묻은 선명한 피가 의사를 자극할 수 있다. 그러나 초록 수술복에 피가 묻으면 갈색으로 보인다. 초록은 빨강의 보색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초록은 피로를 회복하고 마음을 안정시킨다. 사실 눈의 피로와 마음의 피로를 풀어주는 초록은 자외선과 적외선의 중간에 위치해 있어 눈이 가장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색이기도 한다. 남(藍)색이라고 부르는 쪽빛은 파랑의 백미이다. 영원한 하늘의 색이고 그리움의 색이다. 동시에 쪽빛은 청결, 심원, 성실, 창조, 발전의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파랑은 지성과 연결된다. 형식보다는 내용을, 감성보다는 이성을 내세우는 색이기도 하다. 미국인의 이상이자 젊은 대통령의 상징인 케네디가 짙은 파랑 정장차림으로 대중 연설을 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또한 첨단 기술을 내세우는 회사나 통신회사, 신용을 생명으로 여기는 은행들은 파랑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동시에 파랑은 식욕을 억제하는 색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색으로 요리한 음식을 돋보이게 만들어 준다. 음식의 배경색으로는 아주 좋은 색이 바로 파랑이다. 파랑의 심리적 반대색인 빨강은 자극적이고 활동적이며 의지력을 특징으로 삼는 색이다. 빛의 스펙트럼(빨주노초파남보)의 첫 번째에 위치하는 빨강은 애정과 흥분, 진취적 기상, 신체적인 힘, 강인함과 연결된다. 동시에 육체적인 사랑과 욕망도 빨강이 지닌 독특한 감성이라고 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빨강은 귀신을 물리치는 색으로도 최고라는 것이다. 동짓날 문설주에 팥죽을 뿌리거나 장을 담글 때 빨갛게 잘 익은 고추를 띄우는 것 또한 빨강의 적극인 에너지로 귀신을 물리치겠다는 생각이라 할 수 있다. 귀신은 어둡고 습하고, 죽음과 음기가 있는 곳을 좋아한다. 빨강은 양기가 왕성한 색으로 태양과 밝음을 상징한다. 따라서 남쪽을 뜻하는 양의 색인 빨강을 귀신이 싫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출애굽 당시 마지막 10번째 재앙인 장자 죽음에서 히브리 백성들을 구원해 준 것이 바로 어린양의 빨간 피가 아닌가! 회색은 빛의 강약에 의해서 생긴다. 어두움과 밝음의 중간에 서는 회색은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성향을 보여준다. 단아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의 색이기도 하다. 따라서 불교에서 중생의 선한 마음을 해치는 가장 근본적인 3가지 번뇌를 독에 비유한 삼독(三毒), 곧 탐진치(貪瞋痴, ‘탐욕’과 ‘분노/노여움’과 ‘어리석음’)를 경계하기 위한 승려의 옷은 회색이다. 여기서 깡통신학 셋! 색깔 신학은 예수님께 옷 한 벌 맞춰드린다. 노란 목도리에 회색 옷을 입혀드리고, 그 위를 파란색과 빨간색을 연결한 태극 모양의 겉옷을 걸친 패션인데, 서 계신 배경은 초록 들판이다. 이렇게 옷을 입으신 예수께서 거미와 더불어 매끄러운 곡선의 길을 가시며 우리들에게 따라오라고 말씀하신다.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 바로 색깔 목회가 아닐까? 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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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9-29
  • [신간] 탁지일 교수
    국내 가장 영향력 있는 이단 전문가 탁지일 교수의 신간 <교회와 이단>(두란노, 2016)이 발간됐다. 저자는 사회와 이단이 교회에 던지는 설득력 있는 질문에 눈을 열어 직시하며 한국 교회의 잘못된 모습과 변형된 정체성을 지적한다. 개혁의 필요성을 교회가 운명으로 받아들여, 비도덕적이고 비상식적인 교회가 정결한 개혁의 첫 발을 내딛기를 바라고, 이단 문제가 온전한 치유와 회복을 이루기를 바라는 저자의 의도를 이 책에서 읽을 수 있다. 탁지일 교수는 현재 부산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로 재직하면서, 월간<현대종교> 이사장 겸 편집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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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9-29
  • [기독교 교양 읽기 18] 제도가 바뀌면 여성리더십의 역할도 바뀐다
    ‘남녀동등’은 예수님의 새 창조 질서이다 아직도 상당수 한국 교회에는 부끄러운 사실이 하나 남아 있다. 교회 안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저자는 이에 대해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창조 기사에 나타난 남자와 여자는 평등성에 기초하여 창조되었다. 그렇지만 구약의 세계에서 여성은 분명히 불평등한 대우를 받았다. 당시 유대의 문화가 가부장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러한 유대의 문화와 관습을 뒤집었다. 여성의 지위를 남성과 동일한 위치에 올려놓았다. 예수님의 말씀 곳곳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바울은 예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갈라디아서 3장 28절을 내세운다. 실제로 초대교회에서는 유대 회당과는 달리, 여성의 활동이 남성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저자는 그동안 보수적인 교회가 여성을 굴종시키기 위해 내세운 성경 구절에 대해 신학적 오류 등 문제점을 지적하며 성경을 올바로 해석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가르침과 신약의 주된 흐름은 남녀의 동등성과 상호주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교회가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복음을 왜곡하여 선포할 때, 교회는 해방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억압을 가져온다”고 결론짓는다.◈ 《그리스도가 구속한 여성》 || 저자인 김세윤 교수는 현재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에서 신약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바울 복음의 기원》 《바울 신학과 새 관점》 《구원이란 무엇인가》 등 다수가 있다. 두란노, 2016. 8,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우리나라의 양성 평등지수는 얼마나 될까? 겉으로 보기에는 여성 대통령을 탄생시킨 나라지만, 지난해 세계경제포럼의 젠더격차지수는 조사대상 145개국 중에서 115위였다. ‘유리천장’ 지수도 OECD 국가 중 꼴찌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어떨까? #여성 안수, 개인적으로는 찬성하지만… 김길구 : 최근 들어 한국 교회에는 영성 시대의 도래와 함께 가부장적 남성 위주의 문화에서 부드럽고 포용적이며 관계지향적인 여성문화의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김현호 : 얼마 전 서점에 오신 모 보수교단의 원로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성 안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은 개인적으로는 찬성하지만 교단 전체적인 분위기는 아직도 시기상조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신학적으로 절벽’이라는 말에,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김수성 : 단적으로 교회가 역사의 흐름에 뒤처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를 이끌어가던 기독교가 이렇게 정체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처지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김길구 : 최근 들어 여성정치인의 부각은 시대적 요구였습니다. 세습 정치와 부정부패, 과다한 권력욕 등 남성성의 정치적 현황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은 여성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정설이었습니다. 한국 교회에 여성리더십의 부각은 이런 시각에서도 긍정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김현호 : 우리나라 교회에서 아직도 여성 목회자와 장로를 회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유교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몸은 교회에 와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유교의 가부장적 문화에 바탕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도 겉으로는 성경말씀을 내세우는 것 같습니다.김길구 : 10년도 더 지났습니다만, 모 교단 증경총회장을 역임했던 어떤 목사님이 모교 신학교 채플 시간에 “여자들이 기저귀를 차고 강단에 올라가는 것은 절대 안 된다”는 말을 해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아직도 이 같은 생각을 가진 교인이나 지도자들이 많이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라디아서 3장 28절. [출처: www.kingjamesbibleonline.org] #여성목회자 스스로의 노력도 중요 요인김수성 : 여성 목회자를 인정하고 있는 교단도 생색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장 통합의 ‘2014년 교단총회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목사 1만 7468명 중 여성목사는 1,477명으로 8.5% 수준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들 중 임시목사 298명, 무임목사 158명 등으로 자리를 제대로 찾지 못한 교역자가 30%가 넘습니다.김길구 : 예장 통합은 1995년 총회에서 여성의 안수를 결의한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2012년 총회 자료에 참석한 대의원 1,500여명 가운데 여성은 단 14명이었고, 여성목사는 4명에 불과하였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좀 더 앞섰다고 하는 기독교 감리회도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압니다.김현호 : 몇 년 전 미국장로회에서 교인 5,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여성목회자를 선호한다는 응답은 전체의 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심지어 여성 장로들도 3%만이 지지하고, 남성 장로의 경우 한 명도 없었습니다. 대다수 교인이 하나님을 남성으로 이해한다고 응답했는데, 이것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 아닐까요?김길구 : 우리나라에서 신학대학원 교수와 신대원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는 또 다른 설명을 합니다. 여성목회자에 대해 누가 편견을 가장 많이 갖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여성평신도라는 응답이 28.9%로 가장 많았습니다. 다음으로 남성목회자(25.5%), 담임목회자(20.1%) 순이었습니다. 물론 교인들을 대상으로 직접 설문조사한 것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응답내용이라 하겠습니다.김현호 : 여성목회자 스스로의 노력도 한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면에서 남성목회자에 뒤처지지 않음에도 목회 현장에서 일정 직책이나 임무에 만족하는 경우를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마이너스 요인을 작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제 교회에서도 여성운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봅니다.김수성 : 최근 젊은 여성 교인이 대폭 감소하고 있다는 자료가 나왔던 적이 있습니다. 한국교회여성연합회에서 20~40대 교회 여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교회 내에서 불평등한 성역할이 가장 큰 이유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김길구 : 여성리더십 스스로 ‘착한 그리스도인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여성들도 남성 못지않은 놀라운 믿음과 담대함으로 순종의 미덕을 넘어 지도력을 발휘해 왔습니다. 드보라나 훌다 같은 구약시대의 여선지자, 안나와 루디아 등 초대교회 여성 지도자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 복음의 기본정신은 혁신이었다김현호 : 이 책 저자는 남녀동등을 성경적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가장 핵심이 되는 성경 구절로 갈라디아서 3장 28절을 제시합니다. 다른 어떤 성경 구절도 이 구절을 뛰어넘지는 못한다고 봅니다.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는 말씀은 예수 복음의 핵심이라는 것이죠.김길구 : 예수 복음의 기본정신은 혁신이었습니다. 복음을 올바로 선포할 때 교회는 항상 하나님 나라 구원의 현실화로 노예 해방과 여성 해방, 그리고 약자를 보호함으로써 만민의 인권이 증진되도록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 본래의 모습을 회복시켜 모든 차별을 무너뜨렸습니다. 김수성 : 이러한 현상을 사회학적으로 보면, 기득권층이 자기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 다른 사람의 권리를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김현호 : 저자인 김세윤 교수도 이 점을 강조합니다. 당시 유대사회에서는 여성은 증인이 될 수 없었는데, 예수 부활에 대해서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성들이 증인으로 나섰습니다.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에서도 이들의 증언을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들여 성서에 기록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여성의 동등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김수성 : 문제는 교회의 실천의지입니다. 몇 년 전 장신대에서 지난 10년 동안 장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여학생 1천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여성목회자를 회피하는 이유로 남성 위주의 목회문화라는 응답이 48.8%였습니다. 이어서 여성목회자에 대한 불신이나 편견이 19.9%, 출산 및 육아 16.9%로 나타났습니다. 그나마 오래 전 감리교에서 예시했던 부부목회일 경우 신도들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 것은 긍정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김길구 : 가장 중요한 것은 시스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여성목회자에 대한 편견, 자체 노력 등도 시스템이 변하면 함께 변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해 감리교는 성별·세대별 할당제(15%) 의무화를 통과시켰습니다. 이렇게 되면 여성목회자와 여성장로의 참석이 대폭 늘어날 것이고, 그에 따라 이들의 의욕과 역할도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개교회에서도 여성목회자 못지않게 여성장로가 많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교회에서 남녀동등을 이룩하는 첩경일 것입니다.다음에는 박경수 교수 편저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대한기독교서회, 2013)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여교역자 입을 열다》 / 오인숙 외 / 새물결플러스《한국교회와 여성》 / 이덕주 외 / IVP
    • 문화
    • 기독교 교양 읽기
    2016-09-08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⑱
    1. 좀비 영화와 좀비의 실체 좀비가 출몰하고 있다. 마니아층을 넘어 국내외 게임, 소설, 영화의 인기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공포영화나 문학의 하위 장르 주인공으로 여겨지던 좀비가 극장의 은막과 TV 채널, 서점가를 어슬렁거리고 있다. 영화 <부산행>(2016)을 통해 이제 서울과 대전을 점령하고 부산을 향한다. 좀비 영화 장르를 처음 정립한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데뷔작이자 ‘시체 3부작’의 첫 영화 인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1968)에 나오는 좀비들은 혐오감을 주는 외형과 팔이 떨어져 나가고 다리가 부러져도 멈추지 않고 사람들을 물어뜯어먹기 위해서 다가오는 것으로 당시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비록 최근의 좀비처럼(2013년 작 <월드 워Z>와 <부산행>) 속도감은 없지만 당시 미국인들에게는 이 흑백 영화의 좀비는 마냥 허구 속의 살아있는 시체가 아니었다. 미국은 외부적으로 소련과 냉전 중이었고 베트남에서 전쟁을 벌이는 등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에 맞서고 있었고, 내부적으로는 흑인 민권운동과 인종차별 반대, 전쟁 반대 시위로 뜨겁게 불타고 있었다. 따라서 좀비들은 공산주의자들과 노동자들의 모습으로 미국 사회를 습격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좀비 영화는 영화 내적으로는 복잡한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현실을 투영하고 비판하는 고도의 우화장치들을 보여줌으로 호러물에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였다. 1) 로메로 감독의 두 번째 시체 3부작인 <시체들의 새벽>(1979)은 좀비 영화의 전설이다. 2) 첫 번째 흑백 영화와는 달리 두 번째 영화에서는 총천연색과 환한 조명을 통하여 도심 한가운데 대형 쇼핑몰을 어슬렁거리는 좀비들의 모습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쇼핑몰을 어슬렁거리는 좀비들은 흡사 백화점을 쇼핑하는 인간들의 모습으로 투영된다. 현대 소비 자본주의 체제와 중산층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읽을 수 있는 역작이다. 좀비를 통해 점점 더 난폭해지는 ‘자본주의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공포스러운 속성을 이미 예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3번째 시체 3부작인 <시체들의 낮>(1985)은 전작들에서 볼 수 있었던 강렬하고 복잡한 휴먼 드라마가 존재하지 않고 그저 캐리커처와 욕설, 살육만이 남았지만(가장 고어씬이 강한 작품), 좀비들을 학습시키려는 새로운 시도가 있었다(가령, ‘정중한 행동을 하면 보상을 받는다’라는). 사실 좀비는 주요 장기들을 다 제거했는데도(위가 없는데도) 먹을 것을 갈망한다. 따라서 문제는 뇌와 원초적인 본능인 것이다. 아무튼 조지 로메로의 좀비 영화가 잔혹한 취향의 공포 장르였다면,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와 <28일 후>(2002), <월드워 Z> 등 최근 좀비 영화는 인류의 종말과 연결되는 바이러스 재앙 영화로 진화해 버렸다. 3) 한국의 좀비 영화라면 2010년 개봉한 옴니버스 영화 <이웃집 좀비>(오영두 감독 등)를 뺄 수 없다.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퍼진 ‘좀비 바이러스’가 서울 전역에서 발생하자 좀비 색출을 위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정부와 ‘감염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서민들과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부산행>처럼 좀비를 폭력의 대상으로, 마동석의 ‘슈퍼파워~ㄹ!’로 무찌르는 것이 아니라 4)). 따라서 기존 헐리우드의 좀비처럼 무참히 찢겨지고, 총알받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생긴 건 달라도 이웃사촌인 이웃집 좀비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맘몬숭배 시대에 대형정당(새누리, 더민주), 대형마트, 대형교회, 대형기업(재벌)이라는 골리앗이 존재하는 이때 좀비는 허구의 괴물이 아닌 실체를 가진 작은정당, 구멍가게, 미자립교회, 중소기업의 이름으로 출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의 뜻은 ‘호모 사케르’이다. 2. 자본주의 좀비서사 : 호모 사케르 헤겔과 하이데거, 데리다로 부터 언어와 존재에 관해, 그리고 벤야민과 슈미트를 통해 역사와 법, 정치 신학을 수용하고, 아렌트와 푸코를 통해 전체주의와 생명정치를 사유한 조르지오 아감벤(G. Agamben)은 유기(遺棄)된 채로 존재를 드러내는 인간, 곧 호모 사케르(Homo Sacer)를 이야기 한다. 호모 사케르는 말 그대로의 성스런 인간(sacred man)이 아닌, 벌거벗겨진 생명(bare life)으로 살해는 가능해도 희생제로는 드릴 수 없는 것, 가령 소, 양과 달리 지렁이와 벌레 등을 뜻한다. 죽여버릴 수는 있어도 희생으로 쓸 수 없는 것. 사회학적으로 말하자면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벌거벗은 생명인 것이다. 물론 아감벤은 이 용어를 무젤만(Muselmann, 무슬림)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지만,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이들은 사회로부터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한 존재들이다. 가령 용산에서 불에 타 죽은 존재들로부터 시작하여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된 노동자들, 외국인 노동자들, 세월호에 갇혀 죽어간 아이들, 지하철 역 안의 노숙자들, 취업을 하지 못하고 거리를 헤매는 젊은이들, 재래시장 상인들, 지체 장애우 등으로 확장된다. 자본주의가 창출한 좀비들이며, 예수께서 친구로 부르며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었던 생명의 동지들이다. 아감벤에 의하면 서양 정치의 근본적인 대당 범주는 ‘동지-적’(칼 슈미트의 구분처럼)이 아니라 ‘벌거벗은 생명-정치적 존재’, ‘조에(zoe)-비오스(bios) 5),‘배제-포함’이라는 범주쌍이다. 따라서 서양 정치는 인간이 언어를 통해 자신에게서 벌거벗은 생명을 분리해 내며, 그것을 자신과 대립시키는 동시에 배제함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것이다. 인간이 좀비를 배제하듯 자본주의가 창출한 좀비는 자본주의의 혜택을 받은 대형 골리앗들(대형정당, 대형마트, 대형교회와 대형기업)에 의해 짓밟히고 있다. 그들에게 좀비는 배제하고 제거해야 될 대상이기 때문이다. 1960-70년대 전성기를 맞았던 좀비가 노동자 계급출신으로 묘사된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자유롭게 노동력을 팔면서도 사물로 변해버린 노동자의 형상은 좀비와 닮았기 때문이다. 3. 사라지는 매개자 영화 <이웃집 좀비>는 2010년 바이러스로 인해 좀비로 초토화된 서울을 그리고 있다. 정부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좀비 감염자를 찾아가 제거한다. 그러나 시민들은 감염될 위험도 무릅쓰고, 가족이었던 좀비들을 숨겨주고, 먹여주며, 오직 함께 살아남기 위해 온갖 지혜를 모은다. 가령 두 번째 에피소드 인 ‘도망가자’에서는 좀비가 되어가는 남자와 그 남자를 사랑하는 여인을 보여주고 있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남자는 여자가 떠나주기를 원한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와 운명을 같이 하기로 한다. 좀비가 되어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보는 안타까움과 차라리 그와 운명을 함께 하겠다는 고결한 사랑을 보여준다. “Love Conquers All” 세 번째 에피소드인 ‘뼈를 깎는 사랑’에서는 사랑하는 어머니가 좀비가 되자 신고하지 않고 집에 가두어 자신의 신체를 희생하여(특히 자신의 손가락을 절단하는 장면을 보라) 어머니의 생명을 부지하는 딸의 사랑을 보여준다. 피를 먹어야 하는 좀비가 되었지만, 딸에게는 그 좀비는 어머니였고 지켜야 할 대상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결국 <이웃집 좀비>에서 인간들에게 좀비는 제거 대상이기 전에 사랑을 하고, 밥을 주고, 인정도 베풀어야 할 애인이며, 엄마이고, 이웃사촌이었다. 이웃집 좀비는 그렇게 탄생된다. 생긴 건 달라도 이웃사촌인 것이다. 레닌과 헤겔을 부활시키고 싶은 슬라보에 지젝(S. Zizek)은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인간사랑, 2004)에서 헤겔의 도움을 받아 ‘사라지는 매개자’라는 개념을 현실 분석의 도구로 사용한다. 이것은 서로 대립하는 두 개념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고 퇴장하는 개념을 뜻하는데, 지젝에 따르면 프랑스 혁명 때의 자코뱅이 ‘사라지는 매개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코뱅은 구체제(Ancien Regime)를 부수어 새 체제의 기반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부산행>의 석우(공유 분)와 상화(마동석 분)가 그렇지 않은가?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주인공 벤을 죽임으로 정치적 현실과 사회적 갈등을 드러내었다면, <부산행>은 석우와 상화의 사라지는 매개 역할을 통해 모성과 순수성이라는 한국적 감성으로 이끌며 관객 천만을 (불행하게도) 돌파한다. 예수의 죽음 역시 그의 부활을 기리는 이들에게 사라지는 매개자가 되었으며 동시에 성령의 등장을 이끄는 매개자였다. 대형들이 판치는 세상에 교회가, 교단 총회가, 교계의 어른들이, 소금이 짠맛을 음식에 남겨주고 사라지듯, 아니 상화가 그렇게 좀비가 되어가듯, 이웃집 좀비가 만연한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매개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마 5:13)” ----------------------------------------------------------------------- (각주) 1) 가령,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이성적이고 지적이며 리더십이 있는 데다 잘 생기까지 한 주인공 벤(드웨인 존스 분)만이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안도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민병대원들에게 사살된다. 그들은 벤이 사람인지 좀비인지 구분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벤을 좀비로 간주하여 사살한다. 왜냐하면 벤이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부산행>은 아이와 임산부를 살려줌으로 복잡한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현실을 순수성과 모성으로 봉합한다. 2) 잭 스나이더 감독의 2004년 작 <새벽의 저주>는 이 영화의 리메이크이며, 같은 해 에드거 라이트 감독의 <새벽의 황당한 저주>도 이 작품의 오마주 영화이다. 3) 반면 좀비 영화에 <로미오와 줄리엣>의 모티브를 담아낸 영화로 1993년 브라이언 유즈나 감독의 <리빙 데드 3>가 있다. 공포와 멜로 장르를 결합한 혁신적인 작품으로 여성 좀비와 인간 남성의 사랑을 다룬 영화로 고어 영화의 잔혹함에 슬픈 로맨스를 결합하였다. 잔혹하고 노골적인 고어 취향 때문에 대중적인 인기 대신 컬트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그리고 최근에는 <웜 바디스>(2012)가 있다. 4) <부산행>이 재미있는 3가지 이유에 관해 김세윤 부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첫째 마동석, 둘째 기차, 셋째 우리가 부산행 KTX를 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특히 마동석은 관객의 한 줄 평, “<부산행>은 좀비가 마동석을 피해 부산으로 도망가는 영화”라는 말처럼 ‘정의로운 근육’이었다. 5) 조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생명을 뜻한다. 곧 생체활동을 통해 발현되는 생명이며 비오스는 한 사회 내에서 자신이 가진 정치적인 위치 혹은 태도를 통해 발현되는 생명을 말한다. 사실 그리스 아테네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던 생명은 비오스로서 생명이었다.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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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8-24
  • ‘인명진을 말한다
    예장통합 영등포산업선교회 60주년 기념도서 ‘인명진을 말한다’가 출간됐다. 지난 7월 4일 초판이 발행됐다.정의화 제 19대 국회의장을 비롯해 황우여 전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그리고 고성국 정치평론가,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임현모 한·호기독교선교회 상임이사 등 교계와 교육계, 정치계 인사 29명이 공동집팔한 책이라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인 목사는 1970년대부터 한국의 사회, 정치, 경제상황에서 하나님의 정의화 평화를 이루는데 온 몸을 던져 동참하며 노동운동에 앞장서왔다. 경기노회 영등포지구 산업전도위가 1958년 4월 19일 영등포산업선교회를 창립하여 60년의 역사와 더불어 인 목사는 40년 목회(갈릴리교회 담임)와 반독재,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에 헌신한 인물로 이 시대의 예언자적 사명에 뛰어난 공로를 높이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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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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