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11-27(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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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기계문명에 종속 될 미래를 위해 돌아온 경고
    할리우드 SF 액션영화의 화려한 복귀 할리우드 최고의 SF 액션 영화를 한편 꼽으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터미네이터2>(1991)를 위해 엄지를 치켜 들 것이다. 비록 기계인간을 향해 쏜 것이긴 하지만 총기난사와 같은 어린 청소년들이 보기에 다소 과격한 폭력장면이 있는 것을 제외한다면 스토리나 배우들의 연기,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추격 장면과 무엇보다도 슈퍼컴퓨터를 사용한 특수효과에 이르기까지 뭐하나 흠잡을 데가 없는 오락영화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연출자는 관객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명확히 알고 있다. 적절한 공포와 유머를 섞을 줄도 알고 공상과학 영화라고 하지만 줄거리는 나름 그럴듯한 개연성도 갖추고 있다. 최첨단 촬영 기술에 능숙한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타이타닉>(1997)과 <아바타>(2009)를 통해 세계 흥행시장을 휘어잡을 수 있었던 것도 <터미네이터1,2>를 연출하면서 쌓아두었던 내공의 결과였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소환되어 오는 것은 언젠가는 스스로 생각하는 컴퓨터가 나타나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미래사회가 탄생할지 모른다는 어두운 설정이 꽤나 일리 있어 보이는 까닭이다. 과학자들은 컴퓨터는 단지 제공된 프로그램 안에서만 작동한다는 원리를 내세워 인간과 기계와의 전쟁은 단지 허구적인 상상력에 불가하다고 말하지만, 이세돌 9단을 물리친 알파고의 위력을 실감한 우리로서는 적어도 창조적인 사고능력을 갖추진 못하더라도 빅데이터를 가지고 끝없이 정보를 확장시키고 반복된 적용을 통해 인간을 농락할 만한 괴물이 제작될 가능성을 완전히 뿌리치지는 못하고 있다. <터미네이터:다크 페이트>는 지금까지 ‘터미네이터’란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온 영화 가운데 <터미네이터1,2>를 직속으로 잇는 작품이다. 2015년도에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5번째 영화 <터미네이터: 제네시스>가 개봉하는 바람에 <터미네이터:다크 페이트>는 <터미네이터6>로 불릴 만도 하지만 제작진이나 감독, 그리고 ‘터미네이터’의 골수팬들은 이 영화야말로 <터미네이터1,2>를 잇는 연속작으로 참다운 3부작을 완성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1,2편의 연출을 맡아 <터미네이터>를 최고의 SF 액션영화로 만든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직접 제작을 맡아 <터미네이터> 본래의 흐름과 맥을 이을 뿐만 아니라, 1,2편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물론 그동안 스크린에서 뜸했던 린다 해밀턴까지도 컴백함으로써 그후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악에 대항하는 신구(新舊)의 연합 <터미네이터:다크 페이트>는 <터미네이터2:심판의 날>로부터 27년의 시간이 흐른 뒤 사건을 진행시키지만 근본 이야기의 구조는 매우 유사하다. <터미네이터2>가 미래 반군의 지도자가 될 어린 존 코너를 제거하기 위해 기계들을 조종하는 스카이넷이 액체금속으로 만든 T-1000(로버트 패트릭)을 과거로 보내지만, 미래의 인간 지도자 존 코너 또한 새롭게 프로그램 된 T-800(아놀드 슈왈제네거)을 과거로 보내 어린 자신과 어머니 사라 코너(린다 해밀톤)를 보호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인간 파멸을 위해 프로그램된 T-1000은 자신 보다 성능이 다소 뒤떨어진 T-800과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게 된다. 미래로부터 온 터미네이터의 존재를 잘 파악하고 있는 존 코너의 어머니 사라 코너의 등장은 다시 한번 여전사의 역할을 그녀에게 부여하기도 하지만 악에 대항하기 위한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중심에 서게 되는 모양새를 갖추게 된다. 인간과 선하게 프로그램화된 기계, 남성과 여성, 노인과 젊은이 등 다양한 모습의 존재들은 서로 다른 차이를 넘어 미래 인간세상의 구원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T-1000과의 싸움이 나서게 된다. <터미네이터:다크 페이트>에서 미래 인류의 생존을 위해 보호받아야 하는 인물은 존 코너에서 대니 라모스(나탈리아 레이즈)로 바뀌었다. 사라 코너(린다 해밀턴)는 대니의 입장을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는 위치에서 이번에는 대니를 위한 싸움에 나선다. 대니를 죽이기 위해 더욱 진화된 액체금속 터미네이터 ‘Rev-9’(가브리엘 루나)는 T-1000을 대신하고, 전편에서 T-800이 했던 역할은 슈퍼 솔져인 그레이스(맥켄지 대이비스)가 맡는다. 즉 미래의 인간을 구원할 지도자를 제거하려는 인공지능 세력과 어떻게든 이를 막아보려는 인간과 또 다른 기계인간 여전사 연합의 대돌이 각종 액션을 동반하며 펼쳐지고 있다. ‘터미네이터’는 성경에서 아이디어를 빌렸는가? 제임스 카메룬의 <터미네이터>는 항상 미국의 보수적인 기독교인들로부터 극단의 평가를 받곤 했다. 한쪽에서는 화려한 액션으로 위장한 폭력장면이 지나치다는 비판을 받는가 하면, 다를 한편에서는 기독교의 종말론에 입각한 메시아사상을 최첨단 문명을 누리는 현대인의 시각에서 재구성한 것이 아니냐는 우호적인 시선도 있었다. <터미네이터1,2>의 진정한 후속편인 <터미네이터:다크 페이트>도 마찬가지다. 공관복음서에 기록된 메시아 탄생의 역사적 사건을 구조적으로 모방하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1편의 경우 미래세계에서 인간 구원을 위해 싸우게 되는 존 코너의 아버지는 어머니 사라 코너를 보호하기 위해 미래에서 온 카일 리스(마이클 분)다. 그로 인해 사라는 동정녀 마리아의 잉태처럼 매우 신비스러운 임신을 하게 된다. 스카이넷이 보낸 사이보그 T101은 사라 코너와 이름이 같은 동명의 사람들은 모두 죽이는 한편, 2편에서 T-1000은 어린 코너를 살해하기 위해 주변의 사람들을 무참히 살해한다. 동방박사로부터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들은 헤롯대왕은 그 때를 기준으로 두 살 아래의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하는(마2:16) 성경내용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그러나 주의 사자가 꿈속에서 위험을 알려준 덕분으로 아기 예수와 모친 마리아는 애굽으로 피난을 가게 된다(마2:13). <터미네이터1>의 마지막 장면에서 미래의 인간 지도자를 잉태한 사라 코너는 살해위험을 피해 멕시코로 떠나간다. 사라 코너에게 인간이 멸절당할 운명으로부터 구원할 지도자가 자신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리는 카일 리스의 행동이나 사라 코너를 보호하기 위해 나타난 T-800과 <터미네이터:다크 페이트>의 그레이스는 마치 예수의 탄생을 알렸던 천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다. 여주인공의 이름이 사라인 것도 흥미롭다. 주인공 사라 코너의 ‘사라’는 아브라함의 아내이며 ‘열국의 어머니’란 뜻을 가진 사라(Sarah, 창17:16)와 같다. 그녀가 신비스럽게 잉태한 아들의 이름은 존(John)인데 이 이름 역시 엘리사벳과 제사장 사가랴 사이에서 천사의 예언 과정을 통해 태어난 세례 요한의 이름과 같다. <터미네이터:다크 페이트>에 등장해서 대니를 보호하는 슈퍼 솔저 ‘그레이스’는 서구의 기독교인에게는 흔한 이름이지만 ‘은혜’를 뜻하는 ‘Grace(그레이스)’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어디까지나 성경의 여기저기를 베껴서 조합하고 상업 영화의 본질을 잃지 않기 위해서 허구적인 상상력을 덧입힌 통속적인 영화일 뿐이다. 노인이 된 사라 코너가 다시 한 번 총을 들고 싸우고 미래의 희망으로 또 다른 인물 대니가 등장하는 것은 아무리 우격다짐으로 집어넣는 다고 하지만 성경의 맥락과는 전혀 맞지 않는 얘기다. 그러나 이렇게는 생각할 수 있다. 성경이 현대 영화제작자들에게 문화콘텐츠의 원천으로서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역할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십계>와 <삼손과 데릴라>를 만들었던 세실 드밀 감독은 성경이 얼마나 위대한 이야기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바 있다. “누구든 성경 20쪽 만 읽을 수 있다면 영화 한 편을 만들 수 있다” 성경은 세상과 인간의 처음과 끝에 대해서 말하는 유일한 책이다. 기독교인에게 성경은 단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도 살아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통로이지만,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자들에게는 뭔가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꼭 들춰봐야 하는 참고서와 같다. <터미네이터>의 기본 골격은 세상의 종말과 구원의 메시아 존재에 대한 성경의 이야기를 참고했을 뿐이다. 놀라운 컴퓨터 그래픽과 좋은 기술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할리우드는 단지 돈을 벌고 감독의 영광을 위한 가장 세속화된 성지임을 증명하는 듯하여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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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28
  • [기독교교양읽기] 캄캄한 밤에 별처럼 빛난 화가
    반 고흐의 예술과 신앙- 고난을 통한 치유의 묵상 - 반 고흐만큼 가을에 어울리는 이도 드물 것이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품은 해바라기와 추수를 앞둔 밀밭 위로 넘실대는 구름, 그리고 밤하늘에 가득한 별들… 우리는 근대미술을 연 이 위대한 아마추어화가에게 열광한다. 그의 인기에 힘입어 꾸준히 출간되는 고흐 관련 책을 올해는 박철수목사가 펴냈다. 저자는 캔버스에 자신의 신앙과 근대적 사고를 통합하려고한 고흐의 생애를 헨리 나우웬의 ‘상처 입은 치유자’를 키워드로 추적해 본다.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영원을 추구한 화가의 짧지만 불꽃같은 삶을 통해 우리가 왜 위로받고 치유 받는지? 아트지에 옮겨진 90여장의 작품과 편지, 그리고 그의 삶을 이 한 권의 책에 담았다. 가을 밤, 별이 빛나는 밤에 읽으면 좋을 책. ◈ 저자소개 ∥박철수: 연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풀러신학대학원(D.Min.)를 마쳤다. 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 지도위원과 성서한국이사로 있으며, 분당두레교회 담임, 겨자씨형재단 대표, 「복음과상황」 초대편집장 및 발행인을 역임하고, 한동대학교에서 〈성경적세계관〉을 강의한 바 있다. 저서로는 하나님나라/축복의 혁명/성경제사/두개의 십자가 등이 다수가 있다.대장간 간 / 2019년 / 20,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고흐의 하나님》 / 안재경 저 / 홍성사《영혼의 순례자》 / 캐슬린 에릭슨 저 / 청림출판《고흥의 영성과 예술》 / 최종수 역편 / 한국기독교연구소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현호 기쁨의집 대표, 김형기 팔복교회 목사 ▲ 너무나 멀리 떨어진, 너무나 먼 길이기에 슬프나, 멀리 영원한 도성을 바라보기에 희망에 가득 차 있다. 성직자 대신 화가의 길로“이건 신학과는 거리가 멀어, 그저 난롯가에 있는 저 가난에 찌든 목수나 농부, 또는 광부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영원한 안식처가 있다는 느낌, 그런 감정과 영감에 사로잡힐 수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려는 것뿐이야.”(고흐의 편지에서) 근대미술을 연 반 고흐김길구 오늘은 머리도 식힐 겸 분위기 전환용으로 문화에 관한 책을 선정해 봤습니다. 고흐는 저보다 정확히 100년 전 사람입니다. 두 분 다 고흐의 팬으로 알고 있고 김목사님은 고흐관련 시도 쓰셨다고 들었습니다, 그가 특별히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김형기 흔히 예술가들의 작품을 평가할 때 그 화가와 작품의 완성도, 그리고 작품의 미술사적 위치를 보고 평가하는데, 고흐는 그 외에도 동생 테오와의 애틋한 형제애 등 숱한 얘기꺼리가 많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봅니다. 김현호 그림 못지않은 방대한 독서량에 바탕한 그의 글쓰기 작업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부분이지요. 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들은 세계 서간문학(書簡文學)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특이한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고요.김길구 문화수준을 가늠하는 잣대로 ‘고흐지수’가 있다고 해요? 그 나라에 고흐작품이 몇 점 있느냐는 것인데, 그만큼 그는 문화의 아이콘이 된지 오래입니다. 고흐에 대한 사랑은 우리나라도 유별나서 서울 전시회에 70만이 넘는 최다인파가 다녀갔어요. 김현호 그의 작품은 현재 고국인 네덜란드에 364점, 미국에 190점, 스위스에 80점 등이 많이 가지고 있어요. 살아생전에는 유화를 1점 밖에 팔지 못한 비운의 화가이지만 지금 그의 작품들은 천문학적인 최고가를 갱신 중입니다. 김길구 누구나 한두 명씩은 좋아하는 예술가가 있겠지만, 특이한 현상은 저 주위에 고흐를 좋아하는 분들은 팬 수준을 넘어 매니아에 가까워서 놀랐습니다.김형기 당시 화가들의 등용문인 아카데미 출신이 아닌 늦깎이 독학의 아마추어, 그것도 늦은 나이에 화가로서 1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900점의 작품과 드로잉 1,700여점을 남기고 37살의 나이로 불꽃같은 삶은 살아간 그의 치열성은 하루를 의미 없이 소비하는 우리들에게 큰 울림을 주지요.김현호 혹자는 생전에 유화 1점밖에 못 판 불우한 천재에 대한 미안한 생각에서 그를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고흐에게는 뭔가 우리를 끄는 힘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김길구 저는 헨리 나우웬의 책을 통해서 고흐를 접했습니다만, 고흐에 대한 교계의 관련 책도 여러 권 있지요?김현호 예. 몇 년 전에 출판된 안재경목사님의 〈고흐의 하나님〉이란 책이 있어요. 그의 고국인 네델란드의 화란한인교회에서 7년 동안 목회하시면서 고흐에 매료돼 지은 책인데. 고흐의 생애와 그림의 신앙적 측면과 목회자의 단상을 담은 책입니다.김형기 제가 감명 깊게 읽은 책은 캐슬린 에릭슨의 <영혼의 순례자 반 고흐>라는 책입니다. 교회의 위선에 실망하고, 지금으로 말하면 가나안신자로 기성교회를 떠났고, 기독교가 금지하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고흐의 평가에 대한 반론으로 그간 간과되어 온 고흐의 영적시각(spittual vision)을 재조명한 책입니다. 그의 결론은 하나님을 향한 ‘영적인 삶’이야 말로 반 고흐의 삶과 신앙과 그림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키워드임을 역설한 책인데 상당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상처입은 치유자 반 고흐김길구 우리도 어느새 그의 예찬론에 빠져들고 있네요. 이제부터는 본론으로 들어가 보죠. 책 제목이 <반 고흐 상처 입은 치유자>예요? 그리고 제호 밑에 “나는 항상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최선의 방법은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김형기 세잔느, 고갱, 고흐를 흔히 근·현대미술을 연 선구자라고 합니다. 고흐는 사물의 형태를 예쁘고 정확히 그리지 않았고 당시에 일반화된 원근법도 무시한 채. 느낌에 따라 형태를 과장하가나 변형시키며 어떠한 관습이나 틀에도 매이지 않았습니다. 자연을 모방한 사실적인 묘사는 막 보급되기 시작한 사진기의 몫으로 넘어가요. 이런 과도기에 새 시대를 연 것입니다.김현호 고흐는 밀레를 참 좋아했습니다. 그를 닮고 싶어 했죠. 우리가 어릴 때 보았던 〈만종〉이나 〈이삭 줍는 농부〉 등의 그림들을 그냥 농촌의 서정적인 풍경정도로 알고 향수를 달레잖아요. 종전의 그림을 생각해 보세요. 예술은 권세 있고, 돈 많은 사람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기풍 있고, 우아하고 예쁘게 그린 그림이 좋은 그림이지요. 이런 시대에 밀레는 힘든 서민의 삶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굳이 영웅이나 성서의 주인공들이 없어도 노동을 마치고 들녘에서 기도하는 농부의 일상에서 우리는 경건함을 느끼잖아요. 이것이 근대라는 시대정신이었습니다. 예술이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예술이 된 것입니다.김길구 여기서 중요한 말씀을 하셨어요. 화가는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아닌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제공해 주는 사람이다. 문학이나 예술가들이 그래서 중요해요. “신성하고 위풍당당한 큰 예배당에는 없는 그 무엇이 사람의 눈 속에는 살고 있거든, 불쌍한 가난뱅이나 창녀의 영혼이라 할지라도 한 인간의 영혼이 내 눈에는 더 흥미롭다”는 고흐의 작품을 감상할 때 어떤 사람은 바로보지 말고 비스틈히 봐야한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의 삶과 작품, 그리고 글 속에서 한 인간의 영혼을 찾는 것도 의미가 있겠죠.김형기 동생 테오의 생활비로 연명하는 고흐는 굴하지 않고 화가라는 직업을 신앙의 소명으로 이해하고 그의 목표를 분명히 했어요. “갈기갈기 찢어진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는 예술을 원했다. 엄마가 상처 받은 아이를 위로하듯 반 고흐는 위로가 되는 미술을 준비하라”는 소명과 함께 “위로는 현대의 삶의 회피할 수 없는 슬픔 속에서도 삶을 분명하게 바라보는데 있다” 고 함으로써 그의 그림에 숨어 있는 종교성을 강조했어요. 종교3부작-<피에타>, <나사로의 부활>, <선한사마리아인>김길구 1888년 12월23일 일요일 밤 반 고흐는 고갱과의 다툼 이후 정신발작으로 자신의 귓불을 면도칼로 잘른 후 24일 병원에 실려 가고 고갱과 헤어진 후 5개월 후인 1889년 5월에 생레미의 생폴드모솔 정신병원에 자진해서 입소한 후 그곳에서 〈별이 빛나는 밤〉, 〈자화상〉, 〈마지막 자화상〉, 〈아이리스〉,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밀밭〉과 〈해바라기〉 같은 아를에서 그렸던 작품의 연작 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생레미에서 완성하는데 그중 관심을 끄는 것은 종교 3부작입니다.김현호 3점의 종교화는 고흐 자신이 겪던 비참한 고통과 회복의 희망을 담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어요. 〈피에타〉는 이태리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란 뜻인데,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앉고 있는 모습을 그린 들라크루아의 <피에타>의 모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피에타〉와 〈나사로의 부활>에서 예수의 얼굴 대신 자신을 그려 넣어서 주인공의 고통과 비애에 공감하며 죽음과 부활, 치유와 재생을 기원하는 고흐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작품입니다.김형기 고흐가 토마스아캠퍼스의 책 <그리스도를 본받아>와 존번연의 〈천로역정〉을 즐겨 읽고 영향을 받았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요. <선한사마리아인>은 종교의 형식보다는 사랑의 실천을 표현하며, 제사장과 레위인으로 상징되는 기성 종교인들의 행태를 힐난하는 의미도 있다고 봐야겠지요. 저자는 이 책에서 19세기 고흐를 조명할 뿐 아니라 시대를 넘어 기독교의 본래의 정신을 일깨우며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준 상처 입은 치유자 고흐의 정신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김길구 장시간 수고하셨습니다. 끝으로 〈드 포르트푀유〉에 게재된 이삭손의 글로 마치겠습니다. “그는 캄캄한 밤에 홀로 분투하면서 자신의 길을 갔던 선구자다. 그의 이름을 기억해 두는 게 좋을 것이다. 그가 바로 반 고흐다.”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미뤄진 제임스 앨런 외 《종교개혁의 5대원리》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정리: 김길구]
    • 문화
    • 기독교 교양 읽기
    2019-10-14
  • [영화] 비극이 사랑을 만나 희극이 된 영화
    차승원표 희비극 차승원표 코미디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리>는 추석연휴가 끝나더라도 오랜 시간 동안 기억되는 한국영화로 꼽힐만한 가치가 있다. 도박과 범죄조직이 등장하는 블록버스터 급의 영화들이 추석 극장가를 압도하며 <힘을 내요, 미스터리>를 밀어내는 듯한 형국을 보였지만 관객들은 마음 한구석에 진한 감동의 메시지를 간직하며 두고두고 얘기할 거리가 풍성한 이 영화를 찾게 될 것이다. 이것은 마치 자극적인 향신료가 들어간 이국적인 음식에 한번은 손이 갈 수 있지만 연거푸 찾기 쉽지 않은 이치와 같다. 대신 잘 익은 김치만 있다면 늘 먹는 반찬에 그 밥이라 할지라도 결코 질리지 않는 집밥의 맛에 <힘을 내요, 미스터리>를 비유할 수 있다. <힘을 내요, 미스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장애인을 둔 가족드라마의 장르를 반복하면서도 <럭키>(2016)를 만든 이계벽 감독의 스타일로 색다르게 변형시킨 착한 영화다. 지적 장애를 앓고 있는 아빠와 어른스러운 어린 딸의 동행은 <아이 엠 샘>(2001)에서 이미 그 감동의 깊이를 확인했고, 백혈병과 같은 불치병을 앓고 있지만 어른 뺨치는 똑똑함과 의젓함은 <열두 살 샘>(2012)이나 우리나라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2014)의 아역주인공들을 보는 듯하다. 출생의 비밀을 안은 채 아빠와 대면하는 어린 소녀라든가 화재현장에서 사람을 구하는 소방관들의 희생적인 모습, 깡패 같지 않은 깡패들의 희화된 이미지 등 <힘을 내요, 미스터리>에는 어디선가 본 것 같고 익숙한 장면들이 퍼즐처럼 하나의 그림을 위해 맞춰져 있다. 익숙하지만 다른 영화의 매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숙한 장르 영화를 새롭게 인식시키는 것은 차승원이 있기 때문이며, 그가 2003년 2월 18일, 대구 중앙로역에서 일어난 대구지하철 화재참사에서 인명을 구하는 소방관 역할을 맡아 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설정이 주는 결코 가볍지 않은 메시지 때문이다. 첫째, <힘을 내요, 미스터리>가 차승원표 영화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신라의 달밤>(2001)으로 출발하여 <광복절 특사>(2002)를 거쳐 <선생 김봉두>(2003)와 <이장과 군수>(2007)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뛰어난 외모와는 정반대로 망가지는 연기를 통해 웃음을 선사했던 차승원은 이 영화 안에서도 사회적 기대감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역할을 잘 수행했다. 키가 크고 잘생긴데다 근육질의 몸으로 칼국수집의 주방을 장악한 그의 첫 등장은 그를 보기 위해 줄을 선 여고생들의 행렬처럼 관객의 기대감을 한껏 부풀게 만든다. 그러나 그는 여지없이 미끄러지고 넘어지면서 외모의 힘을 내팽개쳤고, 어눌한 목소리로 손님에게 “밀가루 몸에 안 좋아, 살쪄. 보리밥 먹어!”라고 말하는 순간 관객들은 주인공이 망가지는 차승원표 영화를 보러 왔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의 지체장애인 연기는 그와 유사한 영화들이 이미 보여주듯이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연계되어 세속에 찌든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는 것은 물론이다. 어린 딸 샛별(엄채영)이의 과자를 빼앗아 먹으려는 치기어린 행동과 자신의 피를 모두 주고서라도 샛별이를 살리려는 마음이 한 인물로부터 나오는 점은 이 영화가 찰리 채플린의 영화들처럼 희비극(tragicomedy)의 구조를 갖고 관객을 웃기고 울린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둘째, 대구지하철 화재참사를 끌어들인 점은 코미디 장르의 특성을 넘어서서 감동의 드라마로 발전시키는 원동력 역할을 한다. 특히 지체장애를 갖고 있는 주인공 철수(차승원)의 행동을 관객이 이해하도록 만들뿐만 아니라 그가 지체장애를 갖게 된 이유가 다름 아닌 참사 현장의 소방관으로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자기희생적인 구조의 결과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시킨다는 사실에서 이 영화의 개성은 살아있게 된다.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대구지하철 참사는 한국인의 기억 속에서 자취를 감췄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는 비극적 참사를 날 것으로 내놓기 보다는 잘 보듬어서 더 이상 상처가 성나는 일이 없도록 치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즉 192명의 사망자와 21명의 실종자 그리고 148명의 부상자라는 비극의 역사를 분노나 허망한 마음이 아닌 사랑과 희생 그리고 은혜를 갚는 현실의 기억으로 소환시킨 것은 이 영화를 기독교적 가치로 해석되게 하는 결정적 이유이기도 하다. 거기다 사고의 트라우마로 인해 지하철 계단 조차 내려가지 못하는 주인공이 자신의 딸을 위해서 과감하게 지하도로 뛰어들 수 있는 용기는 사랑의 힘이 치유를 위한 첫 걸음일 수 있음을 나타내는 일이기도 하다. ▲ 스틸컷 우리에게는 ‘착한 영화’가 필요하다 기독교영화의 세계에서 ‘착한 영화’는 세 가지의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는 그리스도인의 선행을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착한 영화’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10:25-37)를 따른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자기를 옳게 보이려는 마음을 가진 율법교사의 질문인 ‘내 이웃이 누구인가?’(눅10:29)에 대한 답으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된 사람을 구해주는 사마리아 인의 행동은 위기에 처한 영화 속 두 주인공의 상황과 겹쳐진다. 백혈병에 걸려 골수이식이 아니면 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한 샛별이를 위해 정신지체장애를 가진 철수를 비롯하여 대구일대를 주름잡는 조폭들까지 나서는 선한 행동은 누가 진정한 이웃인가를 보여준다. <힘을 내요, 미스터리>의 경우 철수는 그 자신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돌봄이 필요한 강도만난 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때는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들을 구했지만, 유독가스 흡입의 여파로 뇌기능을 일부 잃게 되어 이제는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로 그의 처지는 바뀌었다. 그러나 과거의 선행은 현재의 보상이 되어 돌아온다. 그가 화재현장에서 구한 사람들은 이제 그를 돕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나타났기 때문이다. 둘째, ‘착한 영화’는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이 공유하는 콘텐츠라는 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갖는다. <힘을 내요, 미스터리>를 기독교영화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영화 제작사나 마케팅을 담당하는 홍보사 그 어느 곳도 이 영화를 기독교영화로 홍보하지 않는다. 일반 사람들 눈에는 그저 휴머니티가 물씬 풍기는 감동적인 드라마 정도로 여길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따른 분석이 가능한 것처럼 성경적 가치관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영화의 등장하는 모든 이들이 긍정적 변화의 결과를 갖게 된 다는 사실은 세속적인 영화들에게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용서와 화해 그리고 평화라는 성경의 가치관을 보여준다. 철수와 자신의 딸이 결혼하는 것을 반대했고 그나마 시집간 딸이 지하철 화재로 죽은 까닭에 한과 울분을 안고 살아왔던 철수의 장모(김혜옥)는 사위와 화해하게 된다. 철수와 샛별 주위에서 문제를 일으켰던 폭력 여고생과 대구 조폭들은 샛별이를 위한 골수이식에 동참하기 위해 헌혈을 자처할 만큼 행동의 변화를 일으킨다. 샛별이와 함께 투병중인 어린이들은 다음 번 생일까지 살기를 소망하며 생일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죽음을 하찮게 다루는 일반 영화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생명의 고귀함을 일깨우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모두 성경적으로 합당한 내용들이다. 이 영화는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가치관이 무엇인지를 보여줌으로써 기독교인에게는 비기독교인과의 접촉점을 형성하게 하며, 비기독교인에게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별종이 아니라 자신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인식시킴으로써 친밀감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셋째, <힘을 내요, 미스터리>는 현대인들에게 접근하여 복음을 전하려는 기독교 영화제작가 필요로 하는 지혜를 제공하고 있다. 그것은 ‘착한 영화적 접근’이라 할 수 있다.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모두 기독교 영화라는 타이틀이 걸릴 경우 관객은 그리스도인으로 한정되는 경향이 짙다. 제작비가 상대적으로 적게 드는 다큐멘터리의 경우 기독교인 관객이 많이 오지 않더라도 집행된 제작비를 건지거나 많은 손해를 볼 가능성이 줄어든다. 그러나 대중성을 갖춘 드라마 형식으로 기독교 영화를 제작할 경우 감독이나 제작자 모두 많은 부담을 않게 될 수밖에 없다. 관객은 제한되어 있는데다 그 관객마저도 극장에 온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힘을 내요, 미스터리> 같은 착한 영화의 경우 성경적 가치관을 내포함으로써 기독교 문화 안에서 수용될 수 있음과 동시에 비기독교인들 까지도 관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까닭에 성경적 가치관의 전파가 용이하고 무엇보다 제작비를 회수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힘을 내요, 미스터리>와 같은 착한 영화는 한마디로 교회와 세상 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그 자체로 충분히 기독교 영화라 말할 수 없지만 기독교 영화가 세상에 뿌리내리고 친밀하게 다가설 수 있도록 복음이 자라는 토양을 구성하는 역할을 할 수는 있다. 기독교와 교회 소리만 들려도 도망가는 세상 사람들을 향한 영화의 선교적 역할을 우리는 <힘을 내요, 미스터리> 같은 ‘착한 영화’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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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2019-09-23
  • 대화의 시작은 상호존중에서
    대화로 풀어 보는 과학과 신학 - 철학자와 과학자가 존재와 진리를 말한다 - 작년에 고려대학교에서 개최된 제1회 베리타스(진리)포럼의 강연내용을 보완하여 올해 출간되었다. 1992년 하버드대학교에서 진리를 중심주제로 삼아 시작된 포럼을 모델로 고려대 기독교수회가 중심이 되고 조영헌교수가 실무를 맡아 설립한 한국베리스타포럼의 첫 결과물이다. 당시 수백 명 청중의 뜨거운 관심과 열기는 한국교회의 척박한 지적풍토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 책에서 저자인 과학자 우종학교수, 철학자 강영안교수는 최근의 천체물리학이 이룬 성과를 바탕으로 과학과 철학, 그리고 신학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으로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모색하고 있다. ◈ 저자소개 ∥강영안: 현재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와 미국 칼빈신학대학원 철학신학 교수로 재학 중이다.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칸트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 저서로는 《철학은 어디에 있는가》,《어떻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인가》, 《강교수의 철학이야기》 등 다수로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공동대표, 대한철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 우종학: 현재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블랙홀과 은하 진화의 천문학자다.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산타 바바라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교와 UCLA에서 연구원으로 일했고, NASA로부터 젊은 연구자에게 수여하는 허블 펠로십과 한국천문학회가 중견연구자에게 주는 학술상을 받았다. 천체물리학저널 등 국제학술지에 100여 편의 논문을 게재한 저명한 학자이다. 학술단체인 ‘과학과 신학과의 대화’를 설립하여 과학과 신학과의 소통에 힘쓰고 있는 크리스천 과학자이다. 복있는 사람, 2019. 13,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믿는다는 것》 / 강영안 저 / 복있는 사람 《종교전쟁》 / 장대익, 신재식, 김윤성 / 사이언스북스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 우종학 저 / 새물결플러스 《신을 모르는 시대의 하나님》 / 강영안 저 / IVP 대화의 시작은 상호존중에서- 질문을 허용하는 교회의 환경 필요 -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현호 기쁨의집 대표, 김형기 팔복교회 목사 ▲ ■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이다! 허블망원경이 찍은 안드로메다성운(사진출처:네이버) 차이의 인정에서 출발“기독교가 무신론에 비하여 훨씬 설명력이 크다는 신학자 맥그래스의 말을 빌리면, 과학의 서사가 있고 종교의 서사가 있습니다. 두 서사를 독립적으로 읽어야지 둘을 섞으면 두 서사가 모두 망가집니다.” 질문할 수 없는 풍토가 고립자초김길구 작년 고려대에서 개최된 포럼실황을 인터넷을 통하여 본적이 있습니다. 책을 보면서 현장의 뜨거웠던 열기가 떠올랐습니다. 포럼의 첫 주제로 ‘창조와 진화’의 문제를 꺼냈는데 어떻게 보셨어요?김형기 그만큼 이 주제가 심각하다는 반증이 아닐까요? 김현호 교인들은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지만 이중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해있어요. 교회에서는 창조론을 가르치는데 교실에서는 진화론이 진리이지요. 여기에 토를 달면 왕따 당하기 십상이구요.김길구 비단 과학의 문제만이 아니지요. 성서는 사랑과 나눔을 얘기하지만 사회는 승자가 독식하는 무한경쟁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런 논리는 교회 안이라고 예외가 아니지요.김형기 요즘 국제관계를 보세요. 전입가경입니다. TV를 틀기가 무서워졌어요.김현호 그 원인을 제공한 책임이 교회도 있어요. 질문을 허용치 않으니까요. 머리 굴리지 말고 그냥 믿기만 하라는 풍토가 있잖아요. 그러니 교인들은 교회 안으로 그들만의 천국을 만들어 갈 수 밖에 없어요. 그 결과 마치 갈리파고스 섬처럼 고립되지요.김형기 그래서 교인들은 존재니 진리니 하는 거대담론에 무관심해져요. 논리가 막히니 감성팔이에 몰두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궁색해 보이는 교인들에게 이 책은 그럴 필요가 없다며 어깨를 당당히 펴라고 말합니다.김현호 이 책의 제목이 ‘대화’입니다. 숨지 말고 맞장 서서 얘기해보자는 것입니다. 우주의 5가지 특성김길구 본문으로 들어가 볼까요. 천문학자 우종학, 철학자 강영안 두 분의 글을 읽으면 우선 글들이 군더더기 없이 명료해서 진지한 주제임에도 지루함 없이 읽는 재미가 있어요. 첫 번째 주제가 <우주가 던지는 질문>으로 우교수의 주장을 들어보죠.김현호 인류가 지난 한세기 동안 과학의 발달로 이해하게 된 우주의 5가지 특성인 시공간의 광대함과 경이로움, 우주의 수학적 특성, 우주의 우발성과 지성의 출현, 인간의 이성과 수학적 우주의 공명, 끝으로 우주의 특별한 역사에 대하여 말합니다.김형기 우교수는 천체물리학자인 마틴 리즈의 《6개의 숫자》라는 책을 인용하면서 물리학의 기본이 되는 6가지의 상수, 이를테면 원자 간 결합력이 너무 컸다면 수소가 다 없어져서 물의 생성이 불가능 했다는 등의 상수가 있어 지금의 우주가 만들어졌고, 인류의 탄생이 가능했다며 이것이 우주의 특별한 역사라고 말하지요.김길구 우연 같은데 우연이 아닌 필연? ‘우주를 마치 누군가가 그렇게 세밀하게 조정한 것 같이 보인다고 해서 미세조정 우주(fine-tuned universe)라고 하는데, 마치 인류를 탄생시키기 위하여 우주가 준비해 온 것처럼 보이는 우주를 과학철학자들은 ‘인류원리’ 혹은 ‘인간원리’ 라고 한다’는 대목이 가슴에 와 닿아요.김형기 과학은 경험의 세계를 파악하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지금의 진리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 ‘잠정적이고 가변적’임을 알아야 해요. 과학은 그동안의 많은 성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학이 답할 수 없는 많은 질문에 직면해 있습니다.김현호 아인슈타인의 고백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종교심을 이루는 것은 우리의 나약하고 힘없는 정신으로 인식할 수 있는 사소한 일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무한히 우월한 영을 향한 겸손한 감탄이다’며 ‘과학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을 뿐 당위를 알아낼 수 없다’며 과학의 영역 밖에서는 온갖 종류의 가치 판단이 여전히 필요함을 말합니다.김길구 우교수는 앞에서 언급한 우주의 5가지 특성에 대하여 과학주의 무신론의 입장을 비판하며,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 이에 대해 오히려 기독교가 더 많은 답을 준다고 말합니다.김형기 예를 들면 우주의 수학적 특성에 대하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해서 질서 있게 운행되는 수학적 특성을 갖는 우주를 파악할 수 있는 이성을 가졌고, 그래서 우주의 수학적 특성과 인간의 이성은 서로 공명한다’고 변증하지요.김현호 우교수는 결론적으로 기독교신앙은 과학과 대립하지 않다며, 신에 대한 믿음은 과학으로 증명되어 생긴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과학으로 경험한 우주와 잘 들어맞는다고 주장합니다. 왜 무엇이 존재하는가?김길구 다음으로 왜 무엇이 없지 않고 존재하는가에 대한 물음, 즉 존재론에 대한 얘기입니다. <왜 무엇이 존재하는가> 강영안 교수의 주제에 대하여 얘기해 보죠.김현호 강교수는 이 물음에 답하는 세 가지 방식인 반실재론, 자연주의, 유신론적 입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입장인 반실재론은 세계가 보여주는 구조와 성질은 그 자체로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이성이나 상상의 산물이라는 주장으로, 인간을 중심에 놓고 인간의 관점으로 보기 때문에 ‘인간주의’라고도 하는데, 존재하는 것들이 과연 인간의 상상력과 지성, 인간 정신의 산물인가에 대한 부정적 측면을 지적합니다.김형기 두 번째 입장은 자연주의인데요. 자연주의도 갈래가 많지만 여기서는 철학적 자연주의로 신과 같은 존재는 없으며 존재하는 것은 오직 자연밖에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물질적이고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는 자연 밖에 없기에 결론적으로 유물론과 무신론에 불과하다고 비판합니다.김길구 왜 무엇이 없지 않고 오히려 존재하느냐의 질문은 존재의 기원뿐 아니라 존재의 목적, 존재의 의미와 연관된 물음이기도 한데, 유신론적 답변은 삼위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삶의 목적과 방식이 있어 이 모든 물음의 답이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김길구 제3부는 두 연사의 토론시간인데요. 토론을 보고 느낀 점 한 가지씩 얘기해 주시죠?김형기 처음엔 진부한 주제를 선택했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강연과 토론의 수준을 보고 제 말을 철회했어요. ‘나는 천문학의 제사장이다’라는 케풀러의 말대로 평신도들이 재능과 자부심을 가지고 전문영역에서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가를 확인했지요. 저명한 천체물리학자가 과학을 넘어 신학과 철학의 범주를 넘나들며 대학자와 대화하는 것을 볼 때 한국의 기독교도 희망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김현호 패러다임으로 유명한 쿤은 과학활동을 이른바 ‘정상과학’안에서 주어진 퍼즐들을 풀어나가기에 비유했지만 포퍼는 과학활동을 진리에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으로 이해했어요. 과거 교회사에서 저지른 갈릴레이나 원숭이 재판 등을 되풀이 않기 위해서도 과학에 대한 열린 마음으로 대화했으면 좋겠네요.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이다 는 말이 떠오른 독서였습니다.김길구 장시간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제임스 앨런 외 《종교개혁의 5대원리》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정리: 김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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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 교양 읽기
    2019-09-10
  • [기독교교양읽기] 생명의 근원인 마음의 비밀
    세상은 사랑을 위해 설계되었다! -정신의학자가 풀어본 하나님의 사랑의 법-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요.’ 주변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이처럼 나를 들었다 놓았다하는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의 실체를 성경적 관점에서 풀어놓았다. 그리스도인이며 저명한 정신과 의사인 저자 티머시R 제닝스는 수년전 펴낸 하나님을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뇌가 변하고 삶이 변한다는 《뇌, 하나님설계의 비밀》의 후속작으로 펴낸 이 책은 하나님의 뜻을 왜곡된 실정법이 두려움과 중독과 폭력적의 노예로 만든다며, 신학적이며 신경학적 관점에서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법인 사랑의 자연법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온전히 누리고 싶은 분이라면 앞으로 출간 예정인 사고의 비밀을 다룬 《생각, 하나님 설계의 비밀》과 함께 읽으면 유익한 책이다. || 이 책의 저자는 현직 정신과 및 신경과 의사로 정신약리학자이다. 경두개 자기자극, 우울증에 대한 약물치료분야의 전문가로 2008, 2010, 2011년 미국소비자연구위원회에서 뽑은 미국 최고의 정신과 의사 중에 한명으로 선정 되었다. 20년이 넘게 성경 원리와 현대 뇌과학과의 관계를 연구 중이며 기독교와 정신과의 관계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를 해오고 있다. 저서로는 《뇌, 하나님 설계의 비밀》 등이 있다. 도서출판 CUP / 2019.5. / 15,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뇌, 하나님 설계의 비밀》, 티머시R. 제닝스 / CUP / 2015 《신학과 심리학에서 본 인간》, 테리 쿠퍼 / 도서출판 대서 / 2011 《마음 뇌 영혼 신》 말콤 지브스지음 / IVP / 2015 생명의 근원인 마음의 비밀사랑으로 왜곡된 하나님과 율법주의 극복해야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현호 기쁨의집 대표, 김형기 팔복교회 목사 ▲ internet. godpeaple.com에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힘, 마음“ 사고의 위력은 우리의 신념, 즉 내밀한 자의식에 영향을 미치고, 그 신념은 다시 우리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마음(성품, 깊은 신념, 핵심 자의식)은 실제로 우리 뇌를 바꾸어 놓는 능력이 있다. ” 과학이 발견한 마음과 뇌김길구 우리 코너가 시리즈Ⅰ을 포함하여 50회 가량 이어오면서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통해 기독교인의 교양을 높이기 위하여 노력하여 왔습니다. 이번 호에는 최근 관심이 높아진 뇌과학과 신앙에 대한 얘기를 해 보겠습니다.김형기 이 책을 읽으면서 생소한 분야라 공부는 많이 했는데 내용이 방대하고 과감하고 복잡해서 제대로 된 얘기가 될지… 김현호 이 책은 미국의 저명한 정신과의사인 티머시R.제닝스가 우리나라에 4년 전에 소개된 책《뇌, 하나님설계의 비밀》의 후속편입니다. 전편을 읽었으면 더 이해하기 쉬웠겠지만 이 책만으로도 뜻은 충분히 전달된다고 볼 수 있어요. 인용한 사례는 저자가 임상에서 실제 경험한 것이라 설득력도 있고요.김길구 그동안 과학이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찾지 못해도 뇌 영상 촬영기법의 발달로 소위 갓스폿(God spot)이라는 뇌의 부위를 찾았다고 주장하고, 명상과 기도가 뇌를 변화시킨다는 연구결과도 학계에 보고되었는데, 여전히 논쟁이 많은 분야라 조심스럽군요.김형기 이런 주장은 신경학이나 신경과학에서 주류의 입장은 아니지만 이런 연구를 활용해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런 유의 주장을 신경신학(neurotheology)으로 분류하기도 해요.김현호 이 책의 주장을 한마디로 축약하면 ‘하나님을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뇌가 변하고 삶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뇌도 바꿔김길구 이 책의 제목이 《마음, 하나님 설계의 비밀》인데, ‘마음’이란 무엇이며, 어디에 있나요?김형기 사전적 의미론 사람이 본래부터 지닌 성격이나 품성이라고 나와 있는데, 그동안 심장에 있다, 뇌에 있다 논쟁이 많더니 요즘은 뇌에 있으며 뇌는 마음이라는 소프트웨어가 돌아가게 하는 하드웨어라고 하는데 이견이 없는 것 같아요.김현호 저자는 ‘마음은 혈액을 뿜어내 순환시키는 흉부의 기관도 아니고 뇌도 아니라 성경 용어로 마음은 자아의 응어리로 심연의 내밀한 자아를 가리키며, 개성의 핵심 요소인 각 사람의 참 갈망과 애정과 동경과 신념과 정체가 머무는 곳이다.’라고 정의합니다. 결국 마음이란 ‘나를 나 되게 하는 성품’으로 이해하면 되겠네요.김형기 저자는 2011년 예일대에서 실시하고 〈건강 심리학지〉에 발표한 결과를 인용했는데 46명을 2팀으로 나눠 2주 간격으로 한 팀엔 620㎈의 지방과 당분이 든 유해음료를 주고, 다른 한 팀엔 140㎈의 영양분이 든 건강음료를 준 후 체내 그렐린 수치를 측정하는 실험인데, 그렐린은 공복일 때 위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배불리 먹으면 그 분비가 줄어 혈액 내 그렐린 수지가 떨어져 이 수치가 뇌에 전해져 식욕과 공복감을 줄이는데, 연구 결과 620㎈의 유해음료를 마신 팀은 수치가 떨어졌고, 140㎈의 건강음료를 마신 팀은 반대의 결과가 나왔어요. 문제는 두 팀 다같이 380㎈가 든 음료를 줬는데도 말이죠. 몸의 반응과 그에 따른 포만감을 결정한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얼마나 열량을 섭취했느냐가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마신다고 믿느냐는 것이었어요. 결국 마음의 문제라는 것이죠. 이처럼 마음은 우리의 뇌를 바꾸는 능력이 있습니다.김길구 이 책은 심리학, 신학으로 분류하지만 너무 기존 교리에 얽매여 이 책을 볼 필요는 없다고 봐요. 저자는 기독교의 핵심은 사랑인데 성서가 쓰여진 때가 실정법이 지배하는 시대라 하나님상이 왜곡됐는데, 그 결과 법을 어기면 벌주시는 율법주의적인 무서운 하나님으로 각인 되었다며 하나님의 법인 자연법으로 성경을 재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이지요. 그래서 사역으로 신약성서를 쓰기도 해 기존의 신학의 틀을 넘고 있어요. 김형기 이에 대해서 저자 자신도 책 말미에 신약의 27%는 신학교를 다니지 않은 의사 누가에 의하여, 23%를 쓴 사도 바울 등의 예를 들면서 초기 성경 저자들이 다 평신도였잖느냐 는 당당한 입장이예요. 재미있는 분이 예죠.김현호 저자는 성경을 하나님의 법인 자연법적 입장에서 쓴 이유에 대해 ‘미국이란 사회가 전체인구의 80% 이상이 기독교인이지만 십대 임신과 낙태 비율이 서구국가 중 가장 높다’며 ‘음주문제, 불륜, 거짓말, 사기, 직무 유기, 염려와 불안 수준에 대한 연구 결과를 보면 기독교인들이라고 전체인구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개탄하면서. ‘기독교는 뭔가 잘못됐다’고 진단하고, 이 이유로 서구 기독교 전체가 콘스탄티누스의 개종을 계기로 ‘실정법’에 길들여져 기독교를 병들게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말하는 ‘실정법’의 부작용으로 △잘못된 하나님관 △왜곡된 신관념 △왜곡된 행위 △율법주의적인 태도를 지적했어요. 실정법과 자연법김길구 저는 저자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심리학적 인간 이해는 신학적 인간이해와 다를 수 있지요. 의사로서 현장에서 부딪히는 상황의 임상학적 이해와 실존적이며 존재론적으로 접근하는 신학적 이해와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김형기 신학과 심리학의 차이라, 전통적인 신학은 타락한 인간의 문제는 교만으로 팽창된 과대평가된 자기라고 보는 반면 인본주의 심리학은 자기를 멸시하고 증오하는 과소평가된 자기가 있다고 보는 경향이 있어요. 물론 좀 더 들어가면 동전의 양면 같은 유사점이 있지만, 그런 사람에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건강한 이해와 믿음으로 자기의 자존감을 높여줘야겠지요.김현호 저자는 유명한 심리학자 피아제의 나이에 따른 인지발달단계를 적용하여 만든 로렌스 콜버그의 도덕발달 6단계이론에 하나를 더한 7단계 발달단계인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추가하여 신약성경을 12년에 걸쳐 체계적으로 풀어썼는데 《하나님의 사랑의 법》입니다.김형기 구체화 하면 옳고 그름을 이해하는 능력의 7가지 발달단계로 ⓵ 상벌 ⓶ 교환가치 ⓷ 사회적 동조 ⓸ 법과 질서 ⓹ 타인의 사랑 ⓺ 순리를 따름 ⓻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인데 1~4까지를 보상과 처벌 등에 의해 조건이 붙는 인간의 법인 ‘실정법’으로 분류하고 자발적인 5~7까지를 하나님의 법인 ‘자연법’으로 구분했어요.김길구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이 율법과 낮은 단계의 도덕적 발달에서 벗어나 높은 단계로 자라서 가족이나, 동료, 사회와 같은 이타적인 사랑의 삶으로 더 넓은 관계망을 형성하여 마지막 단계에서 성숙된 그리스도인으로 통합되기를 바라고 있어요.김현호 하나님의 법이 사실상 인간의 법과 같다는 잘못된 생각에 감염되면 성장장애에 걸려 4단계에서 머물러 그 위인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지 못한다는 주장이지요. 교인이라면 한번쯤 내가 지금 어느 단계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겠네요. 균형있는 신앙김길구 이 책을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은 이미 오래 전에 쓰여진 성서에 그 답이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끝으로 한 말씀씩‥김현호 그동안의 저서를 통하여 뇌신경 속에 감정과 이성이 어떻게 조화롭게 성장하는지, 사랑은 뇌 속에서 어떻게 기능하는 하는지를 보여 주었던 저자가 오직 사랑만이 연합을 이루고 규칙을 뛰어 넘고 자의적인 법을 초월하고 교리적인 차이를 대신하며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는 사랑의 해법이야말로 난마처럼 얽힌 우리의 현실을 푸는 열쇠라는 생각이 듭니다.김형기 본문 중에 최근의 미국, 캐나다, 중국, 요르단, 남아공, 터키 6개국 1,170명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종교적 가장에서 자란 아이는 세속적 가정에서 자라 아이보다 나눠가질 줄을 모르며 더 남을 벌하는 경향이 있어 종교가 아이의 이타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통계를 인용했는데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는 말씀에 반해 충격적인데요.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사랑은 우리를 변화시켜 치유하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리: 김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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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12
  • [영화] 세종은 없고 불교만 남은 영화 ‘나랏말싸미’
    역사왜곡의 정점을 찍다 지난해 개봉된 범죄드라마 <마약왕>(2018)에 대해서 한 영화평론가는 ‘캐비아로 알탕을 끓인 영화’라는 혹평을 내어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송강호라는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의 이름에 걸 맞는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평론가와 일반관객들 모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이 같은 신랄한 비평의 칼날은 조철현 감독의 신작 <나랏말싸미>로 옮겨가도 무방할 듯싶다. 이 영화 역시 우연찮게도 깐느 그랑프리 수상작인 <기생충>의 주연을 맡은 송강호를 내세웠고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의 인물이자 한국인의 정신적 지주인 세종대왕의 한글창제역사라는 귀하고 풍성한 재료를 가지고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영화를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캐비아로 알탕을 끓였다’는 말은 알탕의 가치를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예상치 못한 전혀 다른 성격의 음식을 만들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캐비아(caviar)는 푸아그라와 트러플(송로버섯)과 더불어 3대 진미중 하나로 꼽힌다. 캐비아의 품질과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철갑상어로부터 얻은 원재료를 손질하는 방법도 중요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저장방법에 있다. 신선한 캐비아는 0~7℃ 정도에서 저장해야 하는데, 조금만 온도가 올라가도 품질이 급속히 떨어지게 된다. 캐비아를 알탕이 되도록 끓여먹는 일은 맛과 풍미를 모두 잃어버리게 되는 최악의 상태로 전락시키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초등학생조차도 잘 아는 한글창제역사에 대한 왜곡의 정점은 한글을 만든 이가 세종대왕이 아닌 승려 신미(信眉·1403~1480)라는 주장을 일관되게 주장하는데서 찾을 수 있다. 세종 당시 산스크리트어나 티벳어 등 불교경전과 관련된 다양한 외국어에 능통한 인물로 알려진 신미가 뜻글자 대신 말글자를 만들려는 세종의 의지를 실현시킨 인물로 영화는 그를 부각시키고 있다. 이 같은 영화의 주장이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다. 학계에서는 이미 사라졌지만 불교대중들의 입소문으로 떠돌던 신미의 한글창제 개입설은 2013년 5월 조선 세종태학원 총재인 강상원 박사의 ‘신미 대사와 훈민정음 창제 학술 강연회’를 통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는 신미의 저서 ‘원각선종석보(圓覺禪宗釋譜)’가 훈민정음 창제 시기(1443년)보다 8년 앞서서 한글과 한자로 출간된 사실이 있음을 주장하며 신미가 한글창제 실제적 주역이었을 밝힌바 있다. 또한 영화의 원작 시비를 일으킨 박해진의 『훈민정음의 길 - 혜각존자 신미 평전』이 2014년 출판되어 세종의 한글창제 역사에 도전장을 내밀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역사학계와 국문학계의 입장은 세종의 한글창제설을 확고히 지지하고 있다. ‘원각선종석보’는 명확한 증거를 통해 2016년에 위작임이(2016.05.03, 뉴시스) 밝혀졌다. 무엇보다도 훈민정음의 원본이라 할 수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집현전 학자인 정인지는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정음 28자를 처음으로 만드셨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조선왕조실록 1443년(계해·세종25) 12월 30일자에도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으셨다”고 기록함으로써 세종의 한글창제설에 의심을 가질만한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왜곡이라는 비판을 받을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세종의 한글창제설이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숭상하던 당시 상황에서 승려가 한글을 만들었을 경우 혹시라도 한글 보급이 어려워질 것을 염려한 세종과 신미의 타협에 의해 집현전 학자들이 참여한 것으로 거짓 발표되었다는 가설을 통해 개연성을 확보하려 함을 알 수 있다. <나랏말싸미>의 역사왜곡은 의문점을 낳을 수밖에 없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일을 갖고 있는 글자인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한글의 역사를 굳이 훼손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단순한 호기심과 상상력의 결과인가, 아니면 노이즈 마켓팅을 통한 흥행에 욕심이 난 것일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감독은 영화의 내용을 사실 그대로 믿고 있을 수도 있다. 신미와 감독의 하나 된 세계관 한글창제의 주역이 누구인가를 놓고 볼 때 영화는 세종이 아닌 신미의 편에 서있다. 통치자로서 왕의 최종결정권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한글을 만든 결정적 역할은 승려신분인 신미가 주도하고 있다. 유교를 중심 이념으로 삼고 불교를 폄훼하는 사회를 이끌어가는 왕의 신념에 승려 신미가 거부하지 않고 참여한 이유를 영화는 숨기지 않는다. 조선 땅에 불국토(佛國土), 즉 부처가 있는 나라를 이루려는 승려의 야망이 조선사회를 다시 고려시대처럼 불교의 나라로 돌이키고 싶은 것이다. 백성들 누구나 읽을 수 있는 한글이 만들어질 경우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여 조선의 백성들은 부처의 말씀을 쉽게 들을 수 있고 조선은 다시 불교가 왕성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판단을 영화는 신미역을 맡은 박해일의 입을 통해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세종대왕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겉은 같으나 속은 전혀 다른 생각이 있음을 의미하는 대목이다. 즉 한글창제라는 한민족 역사의 중심에 불교를 놓고 한글창제의 본래 뜻 속에는 불국토라는 불교의 이상이 있음을 만인에게 공표하고 싶은 감독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 볼 수 있다. 신미가 한글을 통해 불국토를 이루고 싶은 염원을 감독은 영화를 통해 이루려는 의지는 영화 곳곳에 반영되어 있다. 첫째는 한글창제 이야기의 갈등 구조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세종과 유학자들이 아닌 유교와 불교 사이의 갈등관계로 몰아가고 있는 점이다. 유교는 가해자로서 신분의 억압을 통해 한자를 배우지 않으면 편지하나 쓸 수 없는 사회를 만들었지만 새로운 말글자를 만들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대신 불교는 피해자로서 개와 같은 취급을 받지만 한글을 만들 만큼 뛰어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유교는 민심을 읽지 못하고 무능력한 반면 불교는 민간에서 신앙되는 현실에 기반하며 아울러 창조력을 발휘한다. 둘째는 세종의 친불교적 행보를 영화는 매우 의미 있게 다루고 있다. 조정대신들은 궁궐에 승려들이 드나드는 것을 경계하지만 세종은 이를 무시해버린다. 세종이 유자(儒者)나 불자(佛者) 모두 조선의 백성임을 언표하는 대목은 과연 배불숭유(排佛崇儒)를 통치의 근간으로 삼는 당시 사회에서 가능한 일이었는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결정적인 것은 세종의 부인인 소현왕후의 49제를 승려들이 주관하는 가운데 궁궐에서 지내는 장면이다. 불상 앞에 놓인 왕후의 위패를 향해 세종은 엎드려 절한다. 해석의 여지를 남겨둘 수는 있지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말처럼 세종이 ‘불교덕후’가 되는 순간이다. 셋째는 한글창제에 불교 사상이 관여된 사실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영화 초반부에서 말글자의 원리가 팔만대장경 안에 있음을 언급하는 한편 세종이 직접 썼다는 훈민정음 언해본의 서문의 글자 수를 일부러 108자로 맞추는 장면을 보여준다. 108은 불교에서 말하는 번뇌의 가지수를 뜻한다. 결국 영화는 정사(正史)와는 다르게 세종과 한글창제의 역사의 숨은 사실로 신미와 불교가 깊이 내재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영화 제작의 목적은 신미가 한글창제에 개입한 목적과 같지 않을까? 영화를 통한 불국토의 달성. 감독은 신미가 한글창제의 중심에 있음을 믿고 있고 그 믿은 바를 영화를 통해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가 한글에 관심이 있는 이유 유교와 불교가 한민족 역사에 끼친 영향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특정 종교에 소속된 사람이라면 자신의 종교가 민족문화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음을 알았을 때 큰 자긍심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역사는 역사 스스로의 입을 통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조작된 역사를 통해 이득을 위하려는 행동은 그것이 상상력이 개입된 예술이라는 이름을 빌리더라도 비난과 조롱을 받기 쉽다. <나랏말싸미>는 현대적이며 새로운 스타일로 덧입혀진 불교영화다. 겉으로는 역사물의 장르를 취했지만 메시지는 결국 불교가 한글창제의 중심임을 선포하며 대중들에게 불교의 가치를 전파시키고 있다. 다문화 다종교 사회에서 불교의 사상과 문화를 담은 영화를 제작한 일에 대해서 누구도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종교와 관계없는 사람들이 연루된 가장 기초적인 문화인 언어와 연관된 일이라면 다르다. 왜곡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의 기독교는 영화가 제기하는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세종이 만들면 어떻고 신미가 만들면 어떠냐고 대충 넘어갈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개화기부터 지금까지 한글은 복음에 가장 적합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신념 가운데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사랑받아 왔기 때문이다. 1882년 중국 심양에서 존 로스 목사는 이응찬, 서상륜, 백홍준 선생 등과 함께 ‘예수셩교누가복음전셔’와 ‘예수셩교요한 복음젼셔’를 발간한 것을 시작으로 1887년에는 드디어 최초의 한글 신약전서인 ‘예수셩교젼서’를 발행하기에 이른다. 불교가 1965년이 돼서야 팔만대장경의 한글화 작업을 시작한 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기독교의 한글사랑은 뜻 깊다. 남녀노소뿐만 아니라 신분에 관계없이 문자를 애용할 수 있도록 만든 한글의 정신은 곧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요3:16) 일면 닮은 점이 있다. 선교의 방법으로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교사들이 잊지 말아야 할 일은 한글에 담긴 세종대왕의 뜻이 갖는 인간 사랑의 의미이며, 한국에서 기독교가 부흥발전하게 된 결정적 이유 또한 한글에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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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7-30
  •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나라’
    평신도들을 위한 기독교 신앙 가이드북 저자 김형국목사는 연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한국기독학생회(IVF)에서 5년 동안 간사로 청년사역을 했는데, 전도한 청년들이 기존 교회에 안착하지 못하는 현실을 고민하다 목회를 결심하고 미국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Ph.D.신약학)에 수학했다. 18년전 나들목교회를 개척하여 1,300여명의 교인을 둔 목회 경력 30년의 중견목회자이다. 대형교회보다는 온전한 복음에 충실한 건강한 교회를 지향하고 있다. 이 책은 기독교의 근본 진리를 친절하게 소개하면서 그의 목회철학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기독교의 핵심교리는 ‘하나님나라’에 있다며 신앙적 결단을 촉구한다. 지난 5월 200~300명 규모의 5개의 지역형 네트워크체제로 교회를 분립한 그의 도전이 최근 교계에 큰 화제가 되고 있다. || 저서로는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 《교회를 꿈꾼다》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주기도문》등이 있다. 비아토르, 2019. 11,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 김형국 지음 / 비아토르 / 2017 《풍성한 삶으로의 첫걸음》 김형국 지음 / 비아토르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현호 기쁨의집 대표, 김형기 팔복교회 목사 ▲ < <나들목교회의 도전: 창립 18년만에 5개 독립교회로 새 출발하는 파송예배/국민일보 인터넷판에서>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초기 기독교공동체를 가능하게 했던 힘은 예수가 전한대로 하나님나라가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실제로 이 세상에 임했다고 믿은 데 있었다. 하나님나라가 시작되었다고 진정으로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 그들에게 선물로 주어진 성령을 따라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려 했다.” <정림건축>의 김정철 회장김길구 오늘은 화제의 인물 저자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보겠습니다. 《하나님나라의 도전》이라는 이 책은 기독교 근간을 소개한 기본진리 안내서입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목회철학을 엿볼 수 있습니다.김형기 저자의 약력은 신간소개 난에 있으니까 가족이야기부터 해보죠. 부친인 故 김정철 회장은 국내 건축설계의 1위 업체인 정림건축의 설립자입니다. 청와대 본관과 춘추관, 인천국제공항, 국립중앙박물관, 서울월드컵경기장과 전주예닮교회, 전주 서문교회, 한국교회100주년기념 순교자기념관 등 한국건축사의 기념비적 작품을 남긴 존경할만한 건축가요, 진정한 크리스천 건축가라는 평가를 받는 분이지요.김현호 개인중심의 우리나라 건축분야에 조직과 협업을 통한 기술의 표준화와 선진화에 기여한 분으로, 한 통계를 보니 2017년에는 정림건축이 세계 16위에 랭크된 세계적인 건축설계업체가 되었습니다. 2010년 고인이 되셨는데, 자신이 소유한 회사 주식 10%(60억원)를 유언에 따라 임직원에게 무상으로 분배해서 놀라게 하더니, 고인의 주식 30%를 두 재단에 기부한 윤리적 경영인이기도 해요. 김길구 저자의 간증을 들어보니 고교 1학년 때 회심을 경험하고 건축을 전공하여 ‘가업을 이어라’는 부친의 간곡한 청을 거절하고 ‘건물이 아닌 사람을 세우겠다’고 연대 사회학과를 나와 IVF 간사를 거쳐 신학을 하고 목회자의 길을 걸었더군요. ‘너 왜 그렇게 이기적이니?’라는 부친의 말을 들으면서도 그 고집을 꺾지 않았다니 대단하죠.김형기 신학을 하게 된 동기가 기독청년회(IVF) 출신들이 기존교회에 들어가면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서라고 했는데 저도 새문안교회 대학부 출신이지만 젊은 열정을 수용하지 못하는 기존교회가 반성할 부분이 많아요.김현호 2001년 대학로에서 첫발을 뗀 나들목교회는 고등학교 생활관에서 출발해서 기존교회와는 다른 행보를 보였습니다. 그들이 추구한 것은 규모보다는 건강한 교회였어요. 나들목교회의 중심가치김길구 저자는 사회학도답게 한국의 대다수의 교회가 교인중심, 이원론적 영성, 개인주의 영성, 기복주의, 기복주의적 예배라고 진단하였는데 이런 기성교회의의 현실을 극복하는 목회전략을 세우고 꾸준히 추진했어요. 7~8년 후 회고해 보니 그의 계획대로 목회를 했다고 평가하는 것을 보면…김형기 그래서 성도들의 지속적인 양육을 통해 나들목교회는 찾은 이 중심, 진실한공동체, 균형 있는 성장, 안팎의 변혁, 소망하는 예배 중심가치로 둔 목회였어요.김현호 사실 교회가 목적문이나 교회사명문 등을 두고 있으나 새해 등 한동안 반짝이지 전교인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추진하긴 힘든데 이런 훈련이 네트워크체제의 교회분립도 가능케 한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드네요.김길구 교회분립문제는 마지막부분에 다루기로 하고 이제 본문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저자는 기독교의 본질이 죽어서 천당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나라는 무엇이죠?김형기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나라, 혹은 하늘나라, 천국 등의 용어들이 혼재되어 있어요. 학자들 사이에 예수가 ‘하나님나라’를 자신의 선포와 사역의 중심에 놓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어요. 다만 하나님나라를 말하기는 하지만 그 뜻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서 다양한 학문적인 논쟁이 있습니다.김현호 대표적인 것이 하나님나라의 시기 문제 즉 현재인가 미래인가? 구원과 심판 중 어느 쪽이 더 강조된 기대인가?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라는 역동적 개념인가, 아니면 영토라는 공간적 개념인가? 등이죠. 이미 시작된 하나님나라김형기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내 안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 예수의 이름과 함께 땅 끝까지 전파되는 하나님 나라, 믿는 자들이 가는 영원한 천국, 그리고 역사의 초월로서 예수 재림 이후에 이루어질 영원한 나라 즉 새 하늘과 새 땅이지요.김길구 저자는 예수가 이야기하신 하나님나라를 죽으면 가는 천당 같은 곳으로 생각하게 된 이유를 번역의 문제로 마태복음에서 하늘나라라는 표현이 하나님의 호칭을 입에 올리기 불편해 했던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쓴 표현을 종전의 한글 개혁성경이 천국으로 옮기면서 이를 죽어서 가는 천당이라는 의미로 생각한데 있다고 지적했어요.김현호 그러나 성경은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나라는 이미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완성될 미래적 하나님의 나라뿐 아니라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지금 이곳의 현세적 하나님의 나라! 여기에 예수 가르침의 독특성이 있습니다.김형기 저자는 십자가의 의미를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로운 성품에서 찾으면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성품인 사랑과 정의가 완벽하게 구현되었다며, 정의 없는 사랑은 무용지물로 우리사회의 문제도 정의의 실종에서 찾고 있어요.김길구 저자는 사회참여문제에서도 적극적입니다. 교회의 나들목교리신조에도 나와 있는데 나들목교회는 1974년 7월 스위스회의에서 채택된 로잔언약와 1989년 마닐라선언문, 2011년 케이프타운 헌신의 10개 신앙서약과 행동을 위한 요청으로 이어지는 정신을 계승하고 있습니다.김현호 하나님나라가 이미 임해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은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서 인류의 역사 속에서 정의, 자유, 평등, 인권을 위해 살아왔으며, 세상 속에서 하나님나라 공동체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사회문제에 참여하여 서로 연대하고 지원하는 공동체가 되어서 ‘깨어진 세상’을 회복하여야 한다는 적극적인 입장이지요. 5개 교회로 분립김길구 지난 5월이니 따끈따끈한 소식입니다. 저자가 시무하는 나들목교회의 새로운 도전, 네트워크체제의 교회분립에 대하여 의견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김현호 창립 18년 만에 1,300여명의 중견교회를 200~300명 정도의 5개의 독립교회로 분립하는 새로운 형태의 교회라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교회들이 한 명의 교인이라도 더 모으려고 하는데 스스로 도시형 네트워크체제의 작은교회를 지향하는 실험이므로 교계가 주시하고 있지요. 이러한 실험은 설립초기부터 계획하여 수년간의 협의 과정을 거쳐 민주적으로 분립하게 되어 더욱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김형기 이번 나들목교회의 분립은 여러 면에서 파격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8년 전 자신이 세운 교회에 정년도 아직 안된 60세의 나이로 원로목사도 포기한 체 내려온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지요. 결과를 떠나 이미 교계에 큰 파문을 던졌다고 생각합니다.김길구 본문에도 언급된 ‘링반데룽’Ring-Wanderung 야간이나 악천후로 산에서 길을 잃으면 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 원을 그리며 계속해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산악인들의 용어인데요. 우리교계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오랜만에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이번 책읽기가 저로서는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이며 교회란 무엇인가를 되묻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은 티머시 R. 제닝스 저 《마음, 하나님 설계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길구]
    • 문화
    • 기독교 교양 읽기
    2019-07-09
  • 보고 싶지 않은 사회현실을 대중에게 전하는 법
    대중성을 갖춘 영화사회학의 출현 봉준호 감독은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봉준호 감독의 이 간단한 약력 안에는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두 가지 키워드가 담겨 있다. 그것은 ‘사회’와 ‘영화’다. 대부분의 영화감독이 사회현실을 기반으로 영화를 제작한다는 점에서는 누구나 ‘사회와 영화’라는 범주 안에서 작품 활동을 한다고 볼 수 있지만 봉준호 감독만큼 세밀하게 사회를 관찰하면서 영화 안에서 압축적이고 은유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감독은 매우 드물다. 거기다 그의 영화들은 관객들이 보고 싶지 않은 사회현실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찾는다는 점에서 대중성도 갖추고 있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괴물>(2006)은 미국과의 미묘한 정치적 문제와 더불어 환경오염의 위험에 대한 메시지를 담았었다. 미군이 한강에 버린 독극물에 의한 결과가 괴물의 탄생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영화 첫 장면에 제시함으로써 환경오염의 해악성을 알리면서 동시에 있지도 않은 바이러스의 존재를 있는 것인 양 정보를 왜곡하고 위험을 확대재생산하는 미국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간접적으로 보여주었다. 935만 명을 동원한 <설국열차>(2013)는 무신론적 입장에서 현대자본주의 사회의 변동을 설명하는 알레고리로 읽혀질 수 있다. 새로운 빙하기를 맞이한 인류의 미래가 오직 기차 안의 승객들에게 달려있다는 가정 하에 기차의 앞쪽칸과 제일 뒷 칸인 꼬리칸에 탄 승객들과의 대결을 영화는 흥미 있게 보여주었다. 이것은 계층이 고착화되어 꼬리칸에 탄 사람들은 절대로 상류층 사람들이 사는 앞쪽칸 쪽으로는 갈 수 없을 것 같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풍자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옥자>(2017)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슈퍼돼지를 생산하고 친환경기업인양 감추려는 다국적 거대 기업의 숨은 진실을 파헤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오직 돈만을 추구하는 거대기업의 음모를 밝혀냄으로써 유전자조작식품의 위험성을 간과한 채 살아가는 현대사회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의 문제점을 낱낱이 드러냄에도 불구하고 봉준호 감독의 작품들이 대중친화적인 영화로 인식되는 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은유적 묘사를 통해 부정적 현실을 감각적이고 사실적으로 와 닿게 만드는 감독의 재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만일 봉감독이 다룬 주제들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면 아무리 잘 만든다고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성과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는 어디서든 터지는 유머가 있기 때문이다. 봉감독의 유머는 극적 긴장을 해소하는 역할과 더불어 부정적 사회현실을 객관화시키는 작용도 한다. 유머를 통해 실현되는 풍자와 해학은 오히려 자신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보다 잘 이해하도록 돕는다. 셋째는 가족이다. 가족의 사회의 가장 기본 단위이며 봉준호 감독이 제시한 부정적 사회현실에 맞서는 우군이다. 특히 아버지의 희생과 자녀의 생존을 통한 가족의 존속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대중성을 갖게 만든 숨은 공로자이기도 하다. 빈부격차의 한국사회를 그리다 <기생충>은 빈부격차가 큰 한국사회의 현실을 봉감독의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은유적이고 압축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반지하에서 가족 전원이 백수로 살고 있는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화려한 주택에서 살고 있는 박사장(이선균)집의 고액과외 선생으로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양한 장르적 접근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 대학도 못간 기우가 학력위조를 통해 최상류층 집안의 선생이 되는데서 오는 블랙코미디적 요소가 있는가 하면, 기택이네 가족이 생존을 위해 피자박스를 접으며 살아가는 모습은 여느 가족드라마와 다르지 않다. 박사장 집 지하에 숨어 지내며 살아가는 가정부 국문광(이정은)의 남편 근세(박명훈)의 발견과 기택네 집안과의 갈등은 다분히 서스펜스 스릴러를 방불케 하고, 결과적으로 박사장과 기택과의 충돌은 빈부격차에서 오는 사회현실을 묘사한 사회심리 혹은 사회비판 드라마로 읽힐 수 있다. <기생충>은 지하와 반지하 그리고 최상의 이층 주택이라는 공간의 배열을 통해 한국사회의 심각한 문제인 빈부격차에서 오는 갈등과 공존을 압축적이며 은유적으로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생충’이라는 영화제목이 주는 혐오적인 어감과 달리 부잣집에서 붙어 사는 지하와 반지하 가족들의 비현실적인 실상은 자본주의 사회 현실에 대한 은유인 동시에 압축된 모습이기 때문이다. 특히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박사장이 자신의 차를 운전하는 기택에게서 ‘지하철을 타다 보면 나는 냄새’가 난다며 기택의 가족들을 의심하기 시작하는 대목은 향기가 아닌 ‘냄새’가 ‘주거 공간’과 더불어 우리 사회에서 자신이 속한 신분과 계층을 대변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봉감독의 사회를 보는 눈이 얼마나 세밀한지를 알 수 있다. 지난해 4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60만으로 1년 전보다 3.6% 증가했다. 그러나 근로활동을 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의 소득이 증가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상위 20%의 소득 5 분위 가구는 932만 4000원으로 10.4% 증가한 반면, 하위 20%의 소득 1 분위 가구는 123만 8000원으로 오히려 17.7% 줄어들었다. 이 수치는 통계가 잡힌 이래로 사상 최대폭으로 감소한 것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잘 사는 사람은 점점 더 잘살게 되지만 못 사는 사람은 점점 더 힘들어지는 현실을 통계는 숫자로 표시하고 <기생충>은 시각적 이미지로 보여주고 있다. 봉준호 장르의 한계 봉준호 장르의 영화들은 확실한 결말을 보여주기 보다는 계속되는 위협과 위험의 현실을 인식시키는 것으로 끝을 맺곤 한다. <살인의 추억>(2003)의 연쇄살인범은 잡히지 않았고 <괴물>은 한강 어디에선가 살아있는 것처럼 위험이 제거된 온전한 평안의 상태에 이르지 못한다. 즉 온전하고 이상적인 상태를 제시하기 보다는 끝에 희망의 단초를 제시하는 정도다. 영화감독에게 사회문제의 해결점까지 제시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 수 있다. 찰리 채플린의 경우에도 영화 <모던 타임즈>(1936)를 통해서 산업사회의 기계문명을 비판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인간을 상징적으로 묘사하는데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대안을 제시한 것은 아니었다. 봉준호 감독 또한 마찬가지다. <설국열차>에서 투쟁 끝에 전복된 기차 안에서 나온 사람은 어린이들이었다. <괴물>에서 송강호는 자신의 딸과 같이 있던 고아를 아들처럼 여기며 밥상을 마주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기생충>에서 아들은 부잣집을 매입하고 아버지를 지하로부터 구하는 상상으로 끝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영화가 제시한 본질적인 문제는 사라지지 않지만 그래도 막연하나마 희망적인 미래를 그리게 만든다. 예수님이 <기생충>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의 빈부격차를 그린 영화를 만드는 연출가로 나선다면 어떠했을까? 찰리 채플린이나 봉준호 감독처럼 막연하게 희망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제시하셨을까? 우리는 누가복음에 나오는 ‘부자관원’과 ‘세리장 삭개오’라는 두 인물의 비교를 통해 기독교는 봉준호 감독이 영화에서 그려내지 못한 다른 길과 다른 차원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필요가 있다. 그것은 내적인 변화가 가져오는 외적인 변화에 대한 이야기다. 부자 관원은 누가복음 18장에 언급된 표면적인 사실로 보더라도 퍽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는 철저한 율법주의자처럼 계명을 모두 지켰고(21절) 거기다 부자였다. 한마디로 그는 도덕적인 사람이었고 외형적으로나마 훌륭한 신앙인이었으며 거기다 성경은 그가 ‘큰 부자’(23절)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가 지닌 치명적인 약점은 있었다. 자신의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전시키는(22절) 일에는 마음이 없었다. 그는 예수님께 영생의 문제를 물으러 왔지만 재물의 문제에 막혀 심히 근심하고 말았다. 그러나 다음 페이지인 누가복음 19장에는 또 다른 부자 관리인 삭개오가 등장한다. 이번에도 성경은 그가 세리장이면서 아울러 부자라고(2절) 언급하고 있다. 그는 부자관원과 달리 말만 가지고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이 아니라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고(4절) 예수님의 말씀에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행동파였다. 그는 주변인들의 수근거림에도(7절) 개의치 않았으며 예수님이 얘기하지 않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줄 뿐만 아니라 속여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다는(8절) 폭탄발언(?)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는(9절) 영적인 응답을 하셨다. 봉준호감독이 영화를 통해 제시한 갈등과 격렬한 싸움 그리고 죽음으로 귀결된 빈부격차의 문제는 근심하며 돌아 간 부자관원의 상태에서 엔딩 크레딧을 올릴 수밖에 없다. 봉감독은 돈의 문제가 성경이 지적한대로 영적인 문제임을 알지 못하고 있다. 내적인 변화 없이는 해결될 수 없으며 어떠한 물리적인 싸움도 빈부격차를 일으키는 돈의 문제에 대한 답이 될 수 없다. 정답은 하나님 나라에 있다(사1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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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26
  •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온전한 가치를 위하여
    따뜻한 시선으로 본 신학과 인문학의 대화 이 책은 작년 932쪽의 대작 ‘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문명이야기’란 부제가 붙은 《신》의 출간을 계기로 저자가 신학과 인문학의 관계를 강연한 내용을 보완하여 펴낸 110쪽 분량의 단행본이다. 신학이라 따분하고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은 버려도 좋다. 고대의 플라톤부터 최근의 유발 하라리까지 고금을 넘나드는 저자의 해박한 인문학적 소양과 얇은 두께에 손에 꼭 쥐어지는 소책자에는 22장의 친절한 도표가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질적으로 보이는 신학과 인문학이 서로에게 영향을 줘 발전해 왔으며, 따뜻한 시선으로 ‘온전한 신학’을 위하여 인문학의 필요성을 설파한다. 키치kitsch 그 가벼움이 일상이 된 시대, 교양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 저자 김용규는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며 후설의 현상학과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몰두했고, 튀빙겐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위르겐 몰트만과 에버하르트 융엘의 강의를 들었다. 전업작가로 최근에 출간된 《신》을 비롯하여 《데칼로그》, 《생각의 시대》, 《설득의 논리학》,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 《철학카페에서 시 읽기》, 《영화관 옆 철학카페》 등 다수가 있다.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과 깊이 있는 성찰에 생동감 있는 문체가 어우러진 다양한 대중철학서와 인문 교양서를 집필하여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 같이 읽으면 좋은 책《신》 김용규 지음 / IVP / 2018《묻고 답하다》 강영안, 양희송 / 홍성사 / 2012《서양철학과 신학의 역사》 존 프레일 / 생명의 말씀사 / 2018 ▲ 작은 이야기 없는 큰 이야기는 폭력이다! 그러나 큰 이야기 없는 작은 이야기 역시 폭력이다!(본문 93P 중에서)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현호 기쁨의집 대표, 김형기 팔복교회 목사 신학은 통합과 융합의 산물“기독교신학은 지난 2천년동안 성서의 계시와 시대의 인문학, 신앙과 이성,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즉 서로 이질적이고 때로 상반되는 둘이 만나 빚어낸 이름답고 거대한 정신적 구조물이다.” 믿음은 지성을 배제 안 해김길구 순서를 바꿔 이번호에는 <신>의 저자 김용규의 <그리스도인은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란 책에 대하여 얘기해 보죠. 저번 시리즈에서 다뤘던 <신>이 932쪽의 방대한 책이라면 이 책은 100쪽이 조금 넘는 요약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현호 양도 적고 내용도 강의를 바탕으로 쓴 책이라 그런지 평소 신학에 관심이 없던 분들도 쉽게 접할 수 있어 기독교인문학 교재로 좋을 것 같아요.김형기 최근에 일기 시작한 기독교인문학의 지침서로서 좋은 자료가 될 수 있겠네요. 4차 산업혁명을 겪고 있는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는 책입니다.김길구 들어가기에 앞서 교계의 반지성적 정서가 적지 않은 풍토에서 우리의 신앙에서 과연 지성은 필요한가? 하는 문제부터 다루어 보죠.김형기 성경은 지성을 강조하지도 않고 지식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다고 보지도 않아요. 오히려 지식보다는 체험이나 실천을 우선하지요. 히브리적 전통에서는 하나님을 ‘안다’라고 할 때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지성이 무시되지도 않아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는데 ‘회개’의 뜻은 지성을 완전히 바꾸라는 뜻이에요. 지성의 변화 없이 하나님의 나라에 갈수 없다는 것이죠.김현호 사도 바울도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라고 했을 때 ‘마음’은 앎의 능력 즉 지성을 바꿔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라는 의미가 있다고 해요. 인문학의 도움으로 신학도 발전김길구 맹목적인 신앙이 아니라면 믿음 안에는 어느 정도 지성이 전제 된다는 의미네요. 그럼 한걸음 더 들어가 보죠. 오늘의 주제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지금 왜 인문학입니까?김현호 우리사회에 한동안 붐을 이뤘던 인문학 열풍의 영향이 아닐까요? 미미하기는 하지만 저희 서점에도 독서모임 등을 통한 기독교인문학 관련 책들을 찾는 이들이 있고, 평신도 중에도 교양으로서의 신학에 대한 관심도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김형기 인본주의와 인문학은 구분돼야겠지요. 인문학은 인간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것이라면 인간 구원을 목표로 하는 우리가 소위 문사철(文史哲)로 대변되는 인문학을 도구로 초월적인 신앙을 시대의 사유양식으로 표현하여 대중과 소통하면서 복음사역에 도움을 주려는 의미도 있겠죠. 김길구 저자도 신학이 신 중심사회였던 중세까지 제1학문으로서 지위를 유지하다가 근대에 이르러 인간에게 자리를 내줬는데, 모두가 신이 되어버린 지금 분열과 투쟁과 파국의 포스트모더니즘의 본질을 알아야 하며, 나아가 문명과 인간을 구원하고 치유하려면 인문학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합니다.김현호 신학이 하나님 중심적 사유체계라면 인문학은 인간 중심적 사고체계라 대립과 갈등이 늘 있어 왔지만 그럼에도 인문학은 부단히 기독교신학에 새로운 피를 제공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김형기 소책자라 너무 단순화 한 위험이 있지만, 고대신학은 플라톤, 중세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철학, 근세에는 개혁신학이 인문주의라는 문예사조의 영향을 받았으며, 근대는 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았고, 현재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듯이 시대를 불문하고 인문학이 신학에 크든 작든,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영향을 미쳐왔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지구촌시대, 그 유동하는 공포김길구 니체는 1882년 그의 책 《즐거운 학문》에서 “우리가 신을 죽였다-너희와 내가! 우리 모두가 신을 죽인 살인자다!”라고 외쳤는데 그가 죽인 신은 어떤 신일까요?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고 신이라는 이름으로 그동안 누려왔던 신본주의의 몰락을 얘기 합니다. 신의 자리에 이성, 합리성, 객관성, 과학, 계몽, 자유, 평등, 박애, 진보, 혁명 등등 인본주의 가치들이 대신하게 되지요. 니체의 ‘신이 죽었다’는 말은 인간이 신이 되었다는 놀라운 선언이죠. 그 자리를 인간의 이성을 뜻하는 이신교(理神敎), ‘집단적 인류’가 하나님인 인류교. 급기야 인간이 신이 되는 호모 데우스의 시대가 도래 했습니다. 그렇다고 인류는 행복할까요?김현호 그렇지 않죠. 1986년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백은 ‘문명의 자기파괴적 잠재력’이라는 개념을 통해 문명은 발달하면 할수록 파괴될 위험이 증가하는데 이 문명은 실패가 아니라 성공이 곧 파멸로 이어진다며 우리 사회를 ‘위험사회’라고 했어요. 핵무기, 생화학무기, 환경오염, 기후변화 등의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사회를 말합니다.김형기 여기에 2017년에 죽은 유대인 사회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은 2008년 미국의 서브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보듯 세계화가 낳은 인류의 단일화는 “근본적으로 달아날 곳이 아무데도 없다는 뜻이‘라며 신과의 유대를 단절하고 삶을 스스로 통제토록한 근대적 이성이 만들어낸 위험과 공포를 ’유동하는 공포‘라고 했어요.김현호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이런 불확실의 시대에 바로 이때다!고 나온 종교가 ‘데이터교’입니다.유발 하라리가 《호모 데우스》에서 명명했는데 실리콘밸리가 만들어 이제 막 태어났어요. 유명배우 안젤리나 졸리의 예에서 보듯 건강한 유방을 암에 걸릴 확률이 87%라는 이유로 수술한 컴퓨터 알고리즘이 곧 ‘신’이고 데이터가 ‘말씀’인 종교입니다. 온전한 가치를 향하여김길구 요즘은 거대 담론이 사라지고 있어요. 개인의 심리와 성적취향, 다양한 문화와 요리, 놀이, 주거, 관광, 레저 같은 작은 이야기에만 몰두해요. 신문, 방송, 인터넷도 온통 이런 얘기들이에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카르페 디엠, 인생은 단 한번 뿐 이라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소확행(小確幸)과 같은 것인데 그 밑바닥에는 소비를 통해 생존하려는 후기자본주의의 교활한 상술이 도사리고 있어요.김현호 예로 대형서점의 인문학 코너에는 신, 진리, 사랑, 이성, 계몽, 혁명 같은 거대담론이 거의 사라졌어요. 그 자리를 차츰 작은 이야기들로 채워지는 추세입니다. 물론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성, 보편성, 객관성, 역사성 등을 내세워 자행된 그동안의 폭력성을 차단할 수 있으니까요.김형기 그래서 포스트모던니즘을 ‘큰 이야기에 대한 불신’이라고 리오타르는 정의했는데, 저자는 생명, 진리, 선함, 아름다움, 정의, 위대함 같은 전 근대적, 신본주의가치뿐 아니라 이성, 계몽, 혁명, 과학, 진보, 해방과 같은 근대적, 인본주의적 가치와 상대성, 다양성, 개별성, 현재성 등 탈근대적, 개인적 가치들까지 되살려 냄으로써 ‘온전한 가치’가 되게 하자고 합니다.김길구 저자는 기독교는 거대한 용광로라며, 기독교가 처음부터 물과 기름 같은 이질적이고 적대적인 사상과 사조들의 숱한 도전을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끌어안아 마침내 자기 것으로 만듦으로써 더욱 풍성하고 강해진 것처럼 ‘경직된 교리를 뛰어 넘는 사고’의 유연성과 올곧은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번호는 토론보다는 책을 요약하여 소개해드렸습니다. 다음호엔 저번에 예고해 드린 김형국목사의 《하나님나라의 도전》을 읽고 얘기를 나누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길구〕
    • 문화
    • 기독교 교양 읽기
    2019-06-11
  • [영화] 죽음으로 살아나는 신앙-영화 ‘교회 오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지켜보다 한국죽음학회 회장을 역임한 이화여대의 최준식 교수는 한국인이 갖고 있는 죽음의 태도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하나는 ‘외면’이다. 죽음을 바로 응대하지 못한 채 의식적으로 피하려는 태도가 한국인들에게는 있음을 지적한다. 죽음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일도 없을 뿐만 아니라, 죽음은 자신에게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도 되는 듯 머릿속에서 죽음이란 단어를 떠올리지 않기 위해 죽음과 연관된 어떤 것도 마주하려 하지 않는다. 둘째는 ‘부정’이다. 죽음을 금기시하는 한국인의 태도는 어디서나 쉽게 발견된다. 은행에서 대기표를 뽑을 때 44번이 나오면 구겨서 휴지통에 버리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버튼에서 4자가 F로 둔갑하는 일은 낯설지 않다. 죽을 사(死)자와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아라비아 숫자 4가 얼마나 홀대를 받아왔던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지만 혹시라도 집안에 부정 타는 일이 생길까봐 상가 집에 같다오면 집 앞에 소금을 뿌리는 일은 옛 사람들의 풍습이기 조차 했다. 셋째는 ‘혐오’다. 화장장이나 추모공원 등과 같은 죽음과 연관된 시설을 우리 사회에서는 혐오시설로 분류한다. 인간의 죽음을 처리하는 일은 애를 받는 산부인과의 존재처럼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결코 곁에 두어서는 안 될 것으로 여기고 이를 싫어한다. 객관적이거나 과학적 지식과 상관없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일으키는 부정적인 정서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이호경 감독의 영화 <교회 오빠> 는 최준식 교수가 얘기한 한국의 죽음의 태도를 모두 불식시킨다. 주인공은 죽음과 고통 앞에서 부정도 외면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기독교 신앙인이 죽음을 바라보는 태도가 분명 세상 사람들의 그것과 다름을 이 영화는 생생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교회 오빠> 2017년 12월 22일 ‘KBS 스페셜 앎’ 2부작으로 방영된 동명의 프로그램을 재촬영·편집하여 극장용 영화로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서른일곱 나이에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은 남편 이관희 집사와 림프종 4기 진단을 받은 아내 오은희 집사의 투병장면이 신앙 안에서 펼쳐지고 있다. 구약의 욥기의 진행 과정을 따라 영화는 욥과 주인공 이관희 집사의 신앙적 면모를 비교해 가면서 흥미로운 연출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욥과 같은 알지 못하는 고난을 당했을 때 신앙인이 보이는 반응과 또한 신앙인으로서 마땅히 우리가 기대하는 반응 사이에 미묘한 갈등을 묘사하며 죽음 앞에 선 신앙의 어려움과 위대함을 전해주고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믿음의 선한 싸움에 관한 이야기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딤전6:12) <교회 오빠>가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말기암의 고난 가운데서도 승리하는 믿음의 싸움이며, 이를 통해 많은 관객 앞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증인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 오빠>를 봐야하는 이유 <교회 오빠>는 개봉 일주일을 맞았을 때 다음 사이트에서 일간 영화 검색어 순위 3위에 오르기도 했다. 1위 <알라딘>과 2위 <악인전>에 이은 순위다. <어벤져스:엔드 게임>은 <교회 오빠> 다음 순서로 밀려나 있다. 관객 수도 3만 명을 넘어섰다. 역대 최고의 관객을 모은 외화 <어벤져스:엔드 게임>이 1천3백5십3만 명을 넘어선 것과 비교하면 너무 왜소해 보이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개봉 첫날 <어벤져스:엔드 게임>은 전국 2760개의 스크린에서 1만2545회 상영되었다. 하루에 1만 2545회가 상영되었다는 말은 한 번 상영에 10사람만 봐도 10만 2천 명이 훌쩍 넘는다는 뜻이 된다. 첫날 상영점유율은 80.9%, 좌석점유율은 85%로 역대급이다. <교회 오빠>는 상영하는 극장 보다 상영되지 않은 극장이 훨씬 많다. 극장에 걸리더라도 하루에 고작 1회 내지 2회가 전부다. 상영시간도 아침 첫 회 아니면 늦은 시간을 배정 받아 단단히 마음을 먹지 않는다면 <교회 오빠>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극장에서 외면당하는 독립예술영화의 설움을 고스란히 받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지만 지금까지 기독교영화가 한국 영화계에서 받아왔던 기대와 실망을 교차시킨다면 꼭 서럽게 생각할 만한 일도 아니다. 개봉 5일 만에 달성한 3만 관객이란 숫자는 서울의 대형 교회 출석 교인 수보다도 적다. 기독교영화를 제작하고 상영하는 실무자들은 항상 기대감을 갖고 출발한다. 한국의 기독교인의 10%만 볼 수 있다면 1백만 관객을 모을 수 있다고. 이런 얘기를 예전에 했다면 영화가 가진 작품성이나 예술성 혹은 오락성을 무시하고 무조건 신앙영화는 재미가 없더라도 보러가란 말이냐는 타박을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 오빠> 만큼은 이에 대한 변명을 적극적으로 들을 필요가 있다. 첫째는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로서 <교회 오빠>의 작품성은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말기암 환자의 투병생활과 부부애 그리고 신앙을 잃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를 다루는 영화의 정서적 접근은 결코 신파적이 아니다. 눈물을 짜내기 위해 억지스런 연출 보다는 인생의 희노애락 가운데 다가오는 죽음을 신앙의 자연스러움 안에서 표현하고 있다. 만일 이호경 감독이 대중의 충격적인 시선을 한 몸에 받길 원했다면 암환자가 겪는 고통을 극대화 시켰을 것이고, 죽음으로 끝을 맺는 환자 보다는 신앙의 기적으로 회복되는 주인공을 택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근본적으로 소재주의를 택한다. 일상에서는 보기 힘든 정말 특이한 인물과 사건을 쫓아다니는 특성이 다큐멘터리에는 있다. 부부가 함께 암투병을 해야 하고 죽음 앞에서도 신앙의 의미를 포기하지 않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기독교 영화의 훌륭한 소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교회 오빠>는 분명 다큐멘터리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다큐멘터리는 ‘생각하는 영화’로서의 장점이 있는 반면 드라마는 생각하는 순간 망해버리는 단점을 갖고 있다. 즉 드라마는 관객이 정신을 차릴 수 없도록 계속 자극적인 장면을 쏟아내야 한다. <교회 오빠>는 다큐멘터리로서 충분히 죽음에 맞서는 신앙을 생각하도록 만든다. 영화가 구약의 욥기를 따라 진행되며 중요한 욥기의 성경구절이 화면에 자막으로 나타날 때 마다 관객들은 그동안 신앙생활 가운데 배운 욥과 성경의 지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영화를 위한 변론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난 후 관객들은 마치 한편의 잘 만든 드라마를 본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흔히 다큐멘터리에서 나타나는 카메라 앞에 서는 주인공들은 일반인으로서의 어색한 모습은 나타나지 않는다. 마치 배우가 연기하는 것처럼 상황에 잘 녹아들고 있다. 이것은 ‘편집의 예술’이 <교회 오빠>에는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주인공은 연기를 하고 있지 않으며(만일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연기를 하려든다면 그것은 다큐멘터리의 본래적 성격을 잃어버리는 일이 되고 만다) 죽음의 상황은 연출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에 일어난 현실일 뿐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이관희 집사는 이제 다른 영화에 다른 배역을 맡아 출연할 수 있는 드라마의 배우와는 다르다. 그는 오직 한 편의 영화에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을 보여주고 영화계를 은퇴한 셈이 되고 말았다. 감동이란 말은 영화의 오락성 안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대중의 가치를 말한다. 대중영화가 오락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일상생활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즐거움을 관객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감동은 즐거움을 포함하여 다양한 감정을 분출시키는 가운데 일상의 기대감을 넘어서는 경험을 넘어설 때 쓰는 말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생각한 자신의 생일에 느닷없이 서프라이즈 파티를 열어주는 동료들에게서 우리는 감동을 받는다. 대통령이 비를 맞으며 전사자를 맞이하기 위해 활주로에서 기다리는 장면은 우리를 감동시킨다.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평범한 집사의 마지막 시간은 감동적이다. 기독교영화가 재미없고 작품성이 떨어져서 보지 않는다는 얘기는 이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에는 제대로 된 기독교영화가 없다는 애기는 이제 할 필요가 없다. 부산국제영화제나 칸영화제만큼은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에도 올해로 16회를 맞은 기독교영화제인 ‘국제 사랑 영화제’도 여전히 활동 중에 있다.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 있을 뿐이다. 오직 우리의 신앙은 교회 안에만 머무르고 있을 뿐이며 영화가 문화계를 지배하는 세상에는 이르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맛집에 찾아가기 위해 돈과 시간을 써 본 적이 있다면 <교회 오빠>를 찾아 영화관을 수소문 해볼 일이다. 훌륭한 설교 말씀을 찾아 유튜브를 뒤적여 본일 있다면 <교회 오빠>를 찾아 볼 일이다. 신앙의 감동은 25년 평론을 해온 기독교영화의 전문가가 보장해드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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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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