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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와세금] 교회의 법인세 납부와 면세 기준
    소득세와 법인세는 일정 과세기간 발생한 소득에 대해 부과하는 조세이다. 또한 통상 개인에 부과하는 세금을 소득세(income tax), 법인에 부과하는 세금을 법인세(corporation tax)라 부른다. 2020년 우리나라의 법인세 징수액은 총55.5조원이다. COVID-19의 상황 속 전년대비 16.7조원이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득세 93.1조원과 더불어 국세수입의 52.0%에 이를 정도로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법인세 항목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회계실무에 적용할 경우, 세금을 납부해야 할 경우와 그렇지 않음이 분명히 나뉘어짐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현행세법은 교회와 같은 비영리법인의 경우, 고유목적의 활동과정에서 생긴 소득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있다. 즉 교회 고유의 예배 활동과정에서 성도들이 낸 헌금이나 헌물에 대해서는 법인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 이는 교회 자체가 수익사업을 목적으로 하지 않을 뿐더러, 사회적 전반에 유익을 주는 공익적 성격의 기관으로 인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동시에 교회가 이러한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신고절차를 숙지하고, 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이행할 필요가 있다. 첫째, 국세기본법(제13조)에 따라 교회 설립시 관할 세무서에 신고를 하고, 고유번호 등록증을 교부 받아야 한다. 성도에 의한 헌금 수입은 과세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교회는 성도들이 헌금을 하고 소득세법에 따라 연말정산 등을 위해 기부금(contribution) 발행 신청을 한 경우, 반드시 그 영수증 내역을 다음연도 6월까지 관할 세무서에 신고를 하고, 관련 자료를 5년간 보관하여야 한다. 둘째, 교회의 고유목적에 사용하기 위해 취득한 자산은 3년 이상 고유목적에 맞게 사용하여야 한다. 만약 동 기간 내에 자산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한 경우 과세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으며, 특히 소급하여 취득세를 납부하거나 처분시 양도차액 소득에 대해 세금을 납부하여야 한다. 셋째, 교회가 만약 수익사업(부동산임대 등)을 하는 경우 사업자등록증을 교부 받아야 한다. 사업자등록증은 부가가치세가 과세되는 일반 사업자와 면세사업자로 구분되며, 고유번호 등록증은 부가가치세 납세의무가 없는 사업자에게 과세자료의 효율적 처리를 위하여 고유등록번호를 부여하는 것으로 수익사업이 없는 교회는 이에 해당한다. 넷째, 비영리법인의 수익사업은 제조업, 건설업, 도소매업, 부동산 및 서비스업 사업 중 수익이 발생하는 것으로, 교회에서도 이러한 사업을 하거나 고유 목적활동에서 벗어난 경우 법인세를 납부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유료 형태의 카페, 학사관, 선교원, 기도원 운영 등은 그 대상이 될 소지가 있다. 즉 이 경우 교회도 수익이 발생하면 세금을 납부하여야 함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즉 현행세법은 교회의 법인세에 대해, 고유목적 활동과정에서 발생한 헌금수입에 대해서는 비과세를 인정하면서도 자료신고를 요구하고, 또 수익사업에 대해서는 세금납부를 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회(church)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이 그 언약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인 신앙공동체이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힘을 쓰고, 또 성례전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따라서 교회의 재정회계 담당자 및 지도자는 그 운영을 맡은 청지기로서, 현행세법을 포함 국가법에도 내용을 잘 숙지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소홀함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도하며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 문의: sblee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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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와 세금
    2022-04-29
  • [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 어린이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다음세대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과 사랑입니다. 복음이란 다음세대가 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를 바르게 들려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이들이 다른 여러 교회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교회에 와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바르게 알고 사랑을 깨닫는 아이들은 교회를 절대로 떠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잘 자라서 기둥같은 일꾼들이 됩니다. 만약 아이들이 교회에 들어오는 숫자는 많은데 그 아이들이 잘 정착을 하지 않고 계속 빠져나가고 있다면 이 두 가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학교 교역자들과 교사들이 복음을 바르게 알려주고 있나? 또한 우리 교회의 여러 성도들과 분위기가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경험을 제대로 전달해주고 있나? 이 두 가지가 확실하게 교회 안에 자리잡게 된다면 한 번 우리 교회에 나오게 된 다음세대가 빠져나갈 이유는 없습니다. 오늘은 이 중에서 첫 번째 요소인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어린이들에게는 어떤 방식으로 복음을 전해줄 수 있을까요? 저는 아이들을 만나면 이렇게 전도합니다. “안녕! 나는 분홍목사님이에요. 오늘 너희에게 성민이라는 친구의 이야기를 해주려고 해요. 성민이는 친구들과 놀고 있는데 갑자기 반장이 찾는 소리를 들었어요. “성민아! 선생님이 너 빨리 교무실로 오래!” “어! 무슨 일이지? 나를 칭찬해 주시려고 하나? 아니면 혼내주려고 하나?” 성민이는 고민에 빠졌어요. 그래서 함께 가 줄 친구를 찾기로 했죠. 그래서 첫 번째 친구, 자기가 제일 사랑하고 아끼는 친구에게 갔어요. “친구야! 선생님이 나 찾는데! 걱정이 되어 죽겠어. 같이 가자!” 그랬더니 첫 번째 친구는 “야야~ 내가 왜 가냐? 흥!” 그리고 가 버렸어요. 너무 놀란 성민이는 두 번째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이 친구는 첫 번째만큼 못하지만 그래도 자기가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였거든요. 두 번째 친구는 말했어요. “성민아! 그래 좋아! 내가 교무실 앞까지는 가 줄게! 그런데 같이는 못 들어가! 이해해 주길 바라!” 성민이는 놀랐어요.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다가 평소에 자기가 별로 잘해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자기를 아껴주는 세 번째 친구를 찾아갑니다. 그랬더니 세 번째 친구는 손을 덥석 잡으면서 “성민아! 잘 왔어! 내가 너랑 선생님 앞까지 같이 가 줄게! 그래서 내가 선생님께 너의 칭찬을 같이 해주고 만약에 혼나는 자리라면 내가 대신 혼내줄게! 걱정하지 마! 우리 가자~!”라고 말하는 것이었어요. 자, 여러분 어때요? 어떤 친구가 진짜 친구일까요? 우리는요,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 천국으로 갈지? 지옥으로 갈지? 아무도 몰라요. 자, 그때 어떤 친구와 함께 가야 할까? 첫 번째 친구는요? 바로 돈이에요. 우리가 너무너무 좋아하죠? 그런데 돈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갈 때 함께 갈 수가 없어요. 두 번째 친구는 부모님과 친구들입니다. 너무너무 좋지만 미안합니다. 장례식까지예요. 하나님께는 같이 갈 수 없어요. 그러면 누가 같이 가 줄 수 있을까? 바로 세 번째 친구는 예수님이세요.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어요. 그리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주님이 되셨답니다. 예수님은요. 우리와 함께 하나님 앞까지 가 주시고, 우리 친구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잘 믿었는지, 하나님의 귀한 자녀인지를 하나님께 증언해 주시는 분이세요. 우리 친구들! 돈도 좋지만, 친구도 좋지만, 가장 좋은 우리의 천국까지 함께 가는 친구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으실 여러분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같이 우리 기도할게요. 하나님! 저는요, 돈 되게 좋아하고요. 친구도 좋아하는데요. 그런데 오늘 말씀 들어보니 예수님 밖에는 천국까지 함께 갈 친구가 없대요. 저는 제힘으로는 천국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꼭 천국 갈 수 있도록 예수님을 믿는 어린이로 살게 해주세요.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예수님과 함께 이 땅에서 또 하늘나라에서 행복한 삶을 사는 하나님 자녀가 되게 해주세요. 저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여러분, 잘했어요. 또 만나요.” 이 이야기는 유대인의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를 제가 약간 각색한 스토리입니다.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아이들의 시기에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교우관계를 연결시키면 아이들이 흥미를 가지고 이야기 속으로 빠져듭니다. 이 세상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수많은 것들 보다 더 우리를 끝까지 귀하게 여기고 동행해주시는 예수님에 대한 복음메시지를 다음세대들에게 꼭 들려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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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2-04-29
  • [우리는학교에서도예배합니다] 다음세대 사역의 대안은 ‘학교복음화’
    지난호의 한국교회와 다음세대사역의 현황과 미래 예측에 이어서 회복과 부흥의 대안으로 “See you at the pole! 국기게양대기도사역”과 “인근학교 영적입양사역”을 소개한다. 우리가 모두 인식하고 있듯이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20년 후 한국 교회의 모습은 무너진 둑과 같을 것이다. 그러기에 다음 세대 복음화사역은 손해 보고, 실패 하더라도 뛰어들어야 할 절박한 사역이다. 참담한 기독교 위기상황을 벗고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제 강력한 영적 전쟁에 돌입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절박함 앞에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를 몰라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에 한국교회에 그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청소년 프로그램이나 제도적인 변화 그리고 교회 교육기관의 부흥을 위한 노력과 수고 등 개 교회적인 다음세대 사역도 필요하다. 그러나 댐을 만들어 논에 물을 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것처럼 먼저 여러 가지 제도와 악한 문화와 왜곡된 가치관으로 철저하게 복음이 차단되고 있는 여리고성과 같은 학교의 영적인 벽을 허물어야 한다. 한국교회의 다음세대 복음화 사역의 분명한 대안은 “학교복음화”이다. 수족관에 고기가 없으면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아 오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교회에 학생들이 없으면 학교에 가서 데려와야 한다. 학교에 가면 학생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다. 이제 교회에서 학생들을 기다리는 식으로의 부흥은 기대할 수 없다. 우리는 복음서를 통하여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사역의 방법도 길거리사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장으로 찾아가는 사역으로의 방향전환이 있어야 한다. 바다에 나가지 않고 어찌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학교에 가지 않고 학생들을 전도할 방법들은 없다. 이제 교회는 학교로 나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 한 가지 고민에 부딪힌다. 학교에 가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교회들이 하던 방식대로 학생들을 훈련 시켜서 학교에 가서 전도하라고 가르치면서 아이들이 전도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방식으로는 이 위기를 넘어서기가 어렵다. 교회들이 연합해서 연합 청소년수련회를 개최하는 것이 청소년 사역의 핵심사역인 것으로 착각해서도 안 된다. 필자에게도 동일한 고민의 시간이 있었다. 학교복음화를 위한 기초사역의 일환으로 미국에서 시작된 “국기게양대 앞 기도운동”을 실시했었다. 이것은 크리스천 학생들과 교사들이 학교의 국기게양대에 모여서 기도하는 신앙운동이다. 미국에서 사역을 할 때 보았던, 학교의 중심에 있는 커다란 국기게양대 앞에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기도하는 모습은 한 폭의 감동적인 그림 같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학교 국기게양대 앞 기도운동”은 1990년 미국에서 시작되어 학교의 영적흐름을 바꾸고 크리스천 청소년들의 영성과 복음의 열정을 회복시키는 권세 있는 사역인 “See you at the pole !운동”이다. 1999년 미국의 콜롬바인고등학교의 케시버넬의 순교사건 이후에 미국 전역에 이 운동이 퍼져나가 현재 미국의 50개주 전역에서 실시되고 있으며 미국의 영성회복과 청소년복음화에 큰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역이 미국과 다른 한국의 학교현실과 상황에 적용하기에 버거운 사역임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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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학교에서도 예배합니다
    2022-04-29
  • [신앙교육나침반] 아버지를 깨우는 성경학교를 준비하라!
    “우리가 이를 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사 그들의 자손에게 알리라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후대 곧 태어날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들의 자손에게 일러서 그들로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계명을 지켜서그들의 조상들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들의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이 하나님께 충성하지 아니하는 세대와 같이 되지 아니하게 하려 하심이로다.” (시편 78:4-8) 시편 78편은 아버지가 자녀에게 하나님을 전하여,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는 세대가 되지 않게 하라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78편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수하지 않은 결과, 그들의 자녀들이 결국 이방우상을 섬겨 심각한 죄 가운데 빠지게 된 것을 보게 된다. 사사기 2장에 보면, 아버지로부터 하나님을 전수받지 못하는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한 일도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되었다고 기록한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단지 한 세대 동안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하고 놀라운 일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이유는 단순했다. 가정의 아버지들이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자녀들에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 아버지들은 가장의 성경적 책임과 역할에 대해 무지하다. 그들은 어린 시절, 자신들의 아버지와 함께 가정예배를 드리거나 아버지의 기도를 받거나, 아버지로부터 성경말씀을 배운 적이 거의 없다. 어릴 때부터 배운 남성적 이미지에는, 가정예배를 이끌고, 눈물로 기도하며, 성경말씀을 가르쳐주는 것은 빠져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교회의 아버지들은 자신들의 아버지로부터 영적 유산을 물려받지 못한 이유로, 스스로 영적 리더가 되지 않으려하며 아내에게 그 책임과 역할을 넘겨버린다. 세상은 자녀의 일상에서 날마다, “하나님은 없어!”, “인생은 네가 주인공이야!”, “너의 행복이 가장 우선이야!”, “너의 선택이 가장 최선이며 옳은 거야!”라는 것을 가르치고자 수많은 미디어를 동원한다. 그러나 정작 교회의 아버지들은 자녀의 일상에서 하나님을 전하기 위해 어떤 전략도 세우지 않으며, 어떤 미디어도 동원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다. 아버지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이에,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은 없어!”라는 명쾌한 결론을 내리고는, 하나님을 떠나 심각한 죄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은 코로나 펜데믹을 통해 그리스도인 아버지들이 그동안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수하지 않은 현실을 여실하게 드러내셨다. 교회는 이제 잠자는 아버지들을 깨워야 한다. 아버지의 자리가 세상 그 어떤 자리보다 존엄하며 위대한 자리임을 일깨우며,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맡겨주신 복음 전수의 사명을 다해야 함을 깨우쳐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교회들이 2022년 여름성경학교라는 특별한 때에 어떤 방향을 갖고 준비하길 원하실까? 예년 여름성경학교와 같이 아이들만 불러서 즐겁게 예배하고 경험하는 성경학교일까? 그렇지 않다. 교회는 그동안 멈춰 서서, 자녀들에게 제대로 하나님을 전수하지 않은 아버지들을 성경학교에 적극적으로 동참시켜야 한다. 온 가족이 함께 성경학교에 참여하여 함께 예배하며, 함께 성경놀이를 하고, 함께 말씀의 은혜를 주고받는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그 가운데 아버지들은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과 가족들 앞에서 자녀에게 영적 유산을 물려주는 영적 제사장으로 서겠다는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는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향기나무교육개발원은 “하나님의 열마디 사랑의 외침, 십계명”을 주제로 부모와 자녀가 함께 성경학교를 경험할 수 있는 컨텐츠를 제공한다. 올해 성경학교는 부모들이 교사가 되어서 자녀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수하며, 온 몸으로 놀이하며 십계명의 귀한 복음을 경험할 수 있다. 5월 12일 향기나무 지도자클래스를 신청하면, 온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십계명 찬양 +십계명 실물 설교법 + 십계명 성경놀이 +십계명 성경요리를 배울 수 있다(신청접수: 향기나무 교육개발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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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교육 나침반
    2022-04-29
  • 부산동부노회 ‘여성안수제’ 눈길
    부산동부노회에서 ‘여성안수제’를 청원하는 안건이 올라와 눈길을 끌었다. 평화교회 한성국 목사는 제안 설명을 통해 “현 총회헌법에는 교회 일군을 세울 때 여성안수를 금하고 있으나, 여성안수는 성경의 말씀에 합당한 제도이며, 다음세대가 교회에 정착하고 시대에 맞는 복음전파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여성안수는 교회구성원의 70% 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아내어 교회와 당회를 활성화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목사는 이 논의를 위해 노회가 열리기 두 달 전 ‘여성안수, 한국교회가 가야할 길’이라는 소책자를 만들어 노회원들에게 발송한 바 있다. 부산동부노회는 예민한 사안이라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공청회와 연구를 통해 내년 봄 정기노회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예장고신은 지난 65회 총회에서 성경적 근거가 없다며 ‘여성 안수 불가’를 결의한 바 있다. 64회 총회에서 부산노회가 질의한 여성안수(장로, 권사)에 대해 신학위원회가 신대원 교수회에 1년간 연구를 의뢰해 연구보고서를 채택한 바 있다. 당시 신대원 교수회는 ‘구약에서 여성 안수에 대한 성경적 근거가 없고 신약에서도 여자를 안수해 직분을 맡긴 경우가 없다’, ‘사도시대에 교회직분을 맡길 때 안수로 임직한 것이 있는데, 이는 교회의 항존 직원(목사, 장로, 집사)에 한한다’, ‘권사는 한국교회의 독특한 제도로 항존직이 아니므로 권사안수제도는 도입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보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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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2-04-29
  • ‘세상법정 소송 불가’라는 총회결의와 헌법의 모순
    고신총회는 제62회 총회(2012년)에서 ‘고소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나 교회치리회를 우선으로 하되 부득이한 경우에만 할 수 있다’고 결의했고, 이듬해 이를 재확인했다. 그리고 64회 총회(2014년)에서는 ‘부득이 한 경우’를 교회법으로 할 수 없는 일, 형사사건, 재정문제로 잠정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그런데 65회 총회(2015년)때 반고소, 고소 문제로 나눠진 예장 고려와의 통합이 있었다. 이때 ‘성도간의 세상법정 소송은 불가하다’는 총회 결의를 가결했다. 고려총회와의 통합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풀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총회헌법 권징조례 제5장 제156조(재심사유)에서 1, 2, 4, 5항에 ‘증명된 때’라는 문구들이 나온다. 예를 들어 1항의 경우 ‘원심판결의 증거된 서류 또는 증거물이 위조 또는 변조된 것이 증명된 때’ 이럴 경우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증명된 때’에 대해서 헌법적 규칙 제4장(권징조례) 제16조(재심청구) 2항에 “권징조례 제5장 제156조 재심사유 중 1항, 2항, 4항, 5항에서 ‘증명된 때’라 함은 그 증명이 공공기관의 증명이나 국가법원의 확정판결에 의한 것을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총회는 ‘성도간의 세상법정 소송은 불가하다’고 결의하면서, 헌법은 ‘국가법원의 확정판결’을 인정하고 있다. 세상법정에 가라는 것인지, 가지 말라는 것인지 성도들의 혼란 방지를 위해서라도 총회결의나 헌법개정이 시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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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2-04-29
  • 역사를 모르는 국민은 미래가 없다
    2022년 부산 지역 부활절 연합예배는 부산 교계의 염원을 저버리고 말았다. 부산 교회가 약 1800여개 되자, 연합회 대표기관들은 교회가 적은 1970년대는 하나로 뜻을 모았으나, 교회가 비대해지자 연합회는 하나에서 둘로 셋으로 나눠지고만 형태로 변했다. 감투, 명예에 골몰하고 만 것은 장로지도자들이 아닌 목회자들이 주역인 것은 명백한 역사의 현실이다. 소위 부산기독교총연합회(부기총)은 44년 전에 불과 부산교회 숫자가 300여개에 불과할 적에는 모임의 연합과 단결이 잘 되었다. 교파를 초월하여 부활절연합예배는 물론 대 사회적 문제를 잘 대처하기도 했다. 교회 숫자가 늘어나자 연합회는 사분오열 분열되는 참상의 민낯을 보여 주어 하나님 영광을 가리우고 사회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고 만 것이다. 2022년 4월 17일 부산부활절연합예배가 오후 3시 부기총은 포도원교회당에서, 오후 5시 고신교회당에서 부교총 연합예배가 열렸는데 웃지 못할 헤프닝이 있던 것은 박형준 부산시장 축사 순서를 각각 넣은 관계로 박 시장이 어찌할 수 없이 두 곳을 왔다 갔다하는 촌극을 보였다. 부산기독교장로총연합회 강치영 대표회장도 양측 순서에 기도가 있어 이쪽 저쪽 왔다 갔다하면서 바빠서 어찌할 바 몰라 했다. 아마도 가장 바빴던 분은 부산시장이었을 것이다. 박형준 시장이 다 마치고 일정 때문에 나갈 때에 필자에게 “제발 부산 교계가 하나로 만들 수는 없는가요?” 한숨을 쉬면서 차에 타는 것을 보았다. 지금 부산 교계의 연합회가 분열된 원인은 광복동 크리스마스트리축제로 인해 부산시와 중구청으로부터 나오는 축제 비용과 교계모금 총 6억이라는 맘몬 우상이 연합회를 둘로 갈라서게 해놓고 말았다. 주도권 다툼이 오늘날 이런 분열의 비극을 자초했다, 돈독에 눈이 멀어 깊은 구렁텅이에 빠지고 헤어 나오지 못해 절절 매고 있다. 목사 장로 교회 지도자들이 주도권 다툼에 주역들이고 서로 헤게모니를 누가 쥐느냐? 여기에 관심이 모아지기에 할 말이 없다. 예수님도 예물을 드리기 전에 먼저 형제와 화해하고 나서 예물을 드려라고 한 말씀은 제쳐놓고 나만의 축제로 여념이 없었다. 회개는커녕 “너 잘못이라고, 네 탓으로 돌리고 마는 아집”이 병들어 가고 있다. 수도권의 한기총과 한교총도 마찬가지로 한국교회 전체가 처음 사랑은 간 곳 없고 바로 앞에 있는 내가 주도권을 쥐어야 된다는 극히 독선과 이기주의에 함몰 되어 있다. 과거 1950년 6.25 사변 시절에 한국교회 교단 분열이 몰고 온 현상들이 하나님께서 한국사회를 전쟁의 공포로 몰아 넣었다. 그래서 부산 초량교회에서 지도자들이 “우리 잘못이라고 회개의 눈물을 밤낮으로 기도한 것이 16개국 유엔에서 파병하여 대한민국을 구출한 것이다. 이런 역사를 우리는 기억하며 살아가야 한다. 역사를 모르는 국민은 미래가 없다. 이런 회개의 불꽂을 피웠던 곳이 부산인데 부산교계가 사분오열 분열의 중심이 되고 있으니 현재 주도권 쥔 핵심 인사들이 다 내려 놓고 ”우리 서로 합하여 하나로 연합하자“고 제의하는 지도자가 교계의 큰 영웅이 된다. 김문훈 목사와 김경헌 목사가 같은 고신측이어서 2021년에 하나가 될 줄 기대했는데 내부의 압력에 못이겨 이것마저 불발되고 말았다. 마음만 비운다면 실현할 수 있는데도 그렇지 못하는 것은 감투나 교권의 욕심이 꽉 쌓여 있는 고로 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목사들이 주도권을 놓지 않으면 장로들이 반대입장으로 동조하지 않으면 되는데 장로들도 같은 공범이고 동조하기 때문에 더욱 합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교회는 목사, 장로 지도자들이 망쳐 버리고 있다. 아마도 코로나19 전염병이 소멸되지 않는 것도 이런 질병을 가하고 있는 것인 줄 모른다. 극도의 교만과 아집에 견디지 못하는 줄 안다. 부기총 관계자들은 젊은 목회자들이고 나이 든 증경대표회장들이 간섭 없으니까 좋고. 부교총은 대부분 나이 많은 증경회장단들이 포진하고 너무 고수가 되어 있고 일부 강경 은퇴장로들의 입김이 세어 현 회장은 상임회장 장로들에 시키는 대로 따라 가는 격이 되고 있어 한 발도 못나가고 있어 걱정이다고 주변에서 말하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 뜻있는 인사들은 일반 사회 선거판이나 뛰어 들자 해서 ‘부산자유기독총연합회’를 조직하여 대선 및 지방선거에 개입하는데는 얼마나 열기 가득한지 모인 곳마다 만원이다. 지금 부기총 일부 관계자는 부교총 관계자진정에 의해 트리 축제 재정 의혹으로 부산시경 반부패 방지부인 시경찰청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게 오늘날의 부산 교계 현주소이다. 부산 교계 연합전선은 꼬일 대로 꼬여 있고 병이 들어도 자기들 논리에서 갇혀 나오지 못하고 있다. 전도서 말씀대로 헛되고 헛되니 다 헛되도다.이래 가지고도 부산교계가 부흥의 나팔을 불겠으며 사회로부터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다만 하나되는데 있어서 중요 핵심 키는 부산의 많은 순수한 교회 지도자들이 양측 모두에게 협조도 안하고 러브콜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저절로 하나가 되는 길이 열릴 것이다. 트리 축제의 주도권도 제3의 사단법인에게 양보하고 여기서 떨어져 나온다면 부기총은 처음 사랑처럼 되돌아가 순수한 부산 교계의 대표기관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가장 영향력 있는 기관으로 길이 역사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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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29
  • [목회자칼럼] 기도와 회복
    기도를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을 단번에 알 수가 있다. 주기도문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이므로 가장 모범적인 기도이며 예수님의 교훈이 농축되어 있는 말씀이다. 주기도문은 생일이나 결혼식이나 장례식이나 전쟁터에서나 잔칫집에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기도이다. 주기도문을 통하여 회복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하늘에 계신”은 하나님과 나와의 거리감을 회복하는 것이다. 내가 바다 끝에 자리를 펼지라도 주께서 거기 함께 계시며 내가 어디에 있을지라도 주님은 나를 굽어보신다. 보름달은 부산에서도 보이고 서울에서도 보인다. 인공위성이 하늘에 떠 있으면 GPS기능으로 온 땅을 커버할 수가 있다. 이 땅에 계신 육신의 아버지는 소통이 안될 수도 있지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언제라도, 어디서라도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다. 핸드폰은 통화중일 때도 있지만 헤븐폰은 걸면 걸린다. 하늘 높이 떠 있는 달이 온 땅을 비추이듯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 아니고 나를 가까이 지켜 보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은 주님과 나와의 거리를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나 사이에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도 되시지만 우리 하나님이시다. “우리”라는 말은 울, 울타리가 되시고 보호막이 되시는 분이시다. 우리나라 말 중에 “우리”라는 말이 참 좋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이 있듯이 너와 나 사이는 남이 아닌 가까운 사이를 말한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도 되시지만 우리 하나님이 되시니 공동체적인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된다. “아버지여”는 관계의 회복을 말한다. 모든 인간관계의 원점은 아버지이다. 부부, 부자, 부녀관계... 눅15장, 탕자의 비유에는 탕자의 엄마, 이모, 누나가 등장하지 않는다. 고대 사회의 상속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된다. 아버지는 상속권을 물려줄 수 있는 분이다. 그래서 “아버님이 누구시니?”는 중요하다. 왕대밭에 왕대나고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다. 아버지를 부르는 것은 상속권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아버지여”하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시고 응답해 주시는 분이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는 예수 이름에 권세가 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기뻐하신다. 어느 교회의 평생 구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가정을 행복하게, 교회를 건강하게, 세상을 아름답게, 인격을 향기롭게”이다. 하나님의 뜻은 성공이 아니고 성결이다. 가정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고 거룩이다. 이 기도는 거룩을 회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거룩을 회복하면 주께서도 나를 마음껏 들어쓰신다. “나라가 임하시오며”는 나라가 회복되어야 된다. 대한민국은 대통령 중심제이다. 정권의 힘이 무섭다. 대통령이 바뀌면 다 바뀐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사람이 1만5천명이라고 한다. 왕이 덕이 있으면 백성들이 태평성대하고 왕이 복이 없으면 흉년이나 홍수나 염병이나 대재앙이 임한다. 생사화복,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왕을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구국기도를 해야 된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땅위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야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리실 때가 가장 안전하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기도가 내 고집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본심을 살피고 그분의 뜻에 기꺼이 순종하는 것이다. 기도는 내가 중언부언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고 하늘의 뜻을 묵상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뜻대로 행하시는 분이다. 정으로 살지말고 뜻으로 살아야 된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뜻을 회복해야 된다. “오늘”은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우리 앞에는 어려움이 있다. 내일 일을 알수가 없다. 그래서 오늘이 구원의 날이고 지금이 은혜의 때이다. 시간을 회복해야 된다. 하루를 천년 같이 종말론적인 삶을 살아야 된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시는 분이다. 내가 오늘 누구를 만나거나 무슨 일을 당하든지 그것은 일용할 양식이다. 하루 삼시세끼면 필요충분완전하다. 욕심을 내어서 만나를 많이 거두어 들이면 썩었다. 영광의 주께서는 날마다 때마다 나의 필요를 아시고 풍성하게 채우시는 분이다. 일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는 빠삐용신앙이다. 빠지지도 말고 삐지지도 말고 용서하는 것이다. 분노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고 요셉처럼 원수도 사랑하는 것이다. 감정선을 회복하는 것이다. 분노의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사랑과 용서를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는 주를 믿는 자는 시험을 감당하고 환난을 벗어나고 피할길을 열어 주신다. 시험에서 회복되는 것이다. 시험에 퐁당 빠지는 것이 아니고 건짐 받고, 구원받는 것이다.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는 죄악이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 하나님의 본심은 심판이 아니고 구원이시다. 구원의 감격이 회복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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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29
  • [부산기독교이야기] 마리안 앤더슨의 부산공연
    전화의 파도가 휩쓸고 간 피난민의 도시 부산에서 미국의 유명한 흑인가수 마리안 앤더슨(Marian Anderson, 1897-1993)의 공연이 있었다. 휴전을 2달가량 앞둔 1953년 5월 28일이었다(강인숙은 이때가 1952년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어느 인문학자의 6.25』, 180쪽). 미8군의 요청으로 마리안 앤더슨은 피아니스트 후란츠 루프(Franz Ruff)와 함께 일본을 경유하여 내한하였고, 이날 대청동 제3육군병원 앞 뜰 야외 곧, 지금의 부산의 남일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한국음악협회 주최로 앤더슨의 공개공연이 펼쳐졌다. 어수선한 피난지 부산에서 마땅한 공연장을 찾지 못해 초등학교가 인접해 있는 가설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공연은 오후 6시 시작되었다. 이날 공연은 전화로 지친 고난의 백성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날 병원 야외에 설치한 가설무대에서 진행된 무료공연을 보기 위해 모인 인파는 무려 1만여 명에 달했고 대청동, 보수동 거리를 매운 인파는 발 디딜 여지도 없었다고 하니 이날의 열화 같은 성원을 헤아릴 수 있다. 세계 최고의 콘트랄토 앤더슨은 인종차별이 심하던 1800년대 말 미국 필리델피아에서 출생하였고, 극심한 가난 가운데서도 교회에 다니며 6살 때부터 성가대에서 활동하며 음악성을 키웠다.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음악학교에 들어갈 수가 없었고 음악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나 28세 때는 300여명의 기라성 같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 협연자로 뽑혔고, 성악가의 길을 가게 된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식당에서 거절당한 그는 주린 채로 무대에 서기도 했고, 호텔에서 투숙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워싱턴의 컨스티튜션 홀에서 리사이틀을 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흑인이기에 연주장 임대가 취소된 일도 있었다. 이 때 앤더슨은 항의의 표로 링컨 기념관 광장에서 연주를 강행 했을 때 무려 7만 5천명의 청중이 운집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처지를 딛고 일어선 그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당대 최고의 성악가였다. 세계적인 지휘자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는 앤더슨을 가리켜 “100년에 한 명 나올 수 있는 성악가”라고 극찬했다. 그는 백악관에서 루즈벨트 대통령 부처와 영국 여왕을 위한 독창회를 가질 정도로 국가적인 인정을 받기도 했다. 그런 저명한 성악가가 1953년 대청동, 보수동 거리에서 1만 명을 앞에 두고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던 일은 전쟁기 부산에서의 감동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 때 그가 불렀던 노래가 어떤 것이었는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단지 두곡은 알려져 있는데, 한 곡은 지금 찬송가 372장에 편집되어 있는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 Nobody Knows’ 이고, 다른 한 곡이 ‘깊은 강 Deep River’이었다. 어디서든 흑인영가를 즐겨 불렀던 그는 고난의 현장, 전쟁의 아픔을 안고 하루를 마감하는 부산시민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노래로 대신했던 것이다. 이 두 노래는 앤더슨이 불러서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흑인영가 가운데 하나였다.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 또 나의 슬픔 알까? 주 밖에 누가 알아주랴, 영광 할렐루야.” 황폐한 거리에 울려 퍼졌던 이 노래가 지금도 우리 가슴을 감동으로 채워 준다. 이 노래는 세계적인 가수가 불렀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이 노래 자체가 앤더슨의 삶의 여정을 그대로 고백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몇 분간의 침묵이 흐른 후 그가 다시 부른 노래가 ‘깊은 강’이었다. “깊은 강, 내 집은 저편 요단강 너머에 있네. 주여, 저 강을 건너 그리운 땅으로 가고 싶네.” 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고난의 현실을 떠나 저 영원한 천국으로 가고 싶다는 자유를 갈망하는 노래였다. 가사나 곡은 슬픔을 당한 우리 민족에게 주는 위로의 메시지였다. 이날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가슴 뭉클한 감동이 있다. 어떤 기자가 마리안 앤더슨에게 그의 생애에서 가장 기뻤던 날이 언제였는지를 물었을 때 “나의 생애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어머니에게 더 이상 남의 집 빨래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리던 그 날이었습니다.” 그 때가 공연료를 처음 받았을 때였다고 한다. 흑인이라는 멸시와 가난, 인종차별의 아픔을 겪어왔기에 그의 노래 ‘깊은 강’은 일상에 지친 우리들에게 위안을 주고도 남았을 것이다. 마리안 앤더슨은 1958년 10월 다시 한국을 찾았고 그 때는 당시 서울에서 가장 큰 공연장이었던 이화여전 강당에서 노래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감동의 무대였고 앵콜 송으로 ‘아베 마리아’를 불렀다고 한다. 앤더슨은 1993년에 9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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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29
  • [김태영 목사] 우크라이나 인접 국가들의 난민구호 현장과 기도요청
    인간이 저지르는 범죄 중에 가장 악한 죄라면 그 첫째가 전쟁이다. 군인들끼리의 힘겨루기가 아니라 그 안에는 인간의 탐욕과 소유욕, 정복욕, 과시욕, 교만이 들어있다.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비무장 민간인들과 어린이들이 희생당하고 얼마나 많은 약탈과 파괴가 있었던가. 도시 전체가 잿더미가 되기도 하고, 나라가 통째로 무너지기도 하면서 생명의 소중함이나 인권은 깡그리 짓밟히고 만다. 참 무섭다. 온 세계가 지구촌이라며 그 어느 때 보다 정보, 통신, 교류가 활발한 21세기에 난데없이 전쟁이 터지고 벌써 2개월이 되어 가지만 휴전이나 종전 소식은 들리지 않고 많은 국민들이 고통당하고 있다. 필자가 섬기는 한국교회봉사단(한교봉)은 15년 전, 서해안 태안지역의 기름 유출 사고 때 전국의 교회와 기독교 NGO들이 기름 방제 작업을 각각 하면서 효과적인 연합 사업을 위하여 설립되었으며 국내의 크고 작은 재난 현장뿐 아니라 용산참사 유가족 위로, 정신대 할머니들에게 마포 주택을 제공하였으며 해외의 네팔과 아이티 지진에도 현장에 가서 봉사하고 기술학교를 세워서 지금까지 섬기고 있다. 금년 2월 24일, 군사 강국인 러시아의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함으로 전쟁이 시작되었고, EU소속 국가뿐 아니라 대다수의 국가들이 ‘전쟁을 그칠 것’을 권하여도 아랑곳하지 않고 민가까지 미사일이 떨어지므로 400만명 이상의 피난민이 생기고 방공호에 피신한 국민들은 날마다 생사의 기로에 놓여지게 되었다. 한교봉은 고난받는 우크라이나를 위한 기도회를 한 후에 3.8-14 까지 기자들을 동행하여 8명을 루마니아 국경 지역으로 파견하여 긴급구호 활동과 사태의 심각성을 생생하게 보도하여 한국교회로 하여금 기도하고 관심을 가지게 하였으며, 4.1-8 2차로 필자와 함께 5명이 체코, 스로바키아, 헝가리를 방문하여 긴박한 구호 현장과 효율적인 피난민 지원을 점검하였다. 국경 인접 지역의 기독교 교단과 기독교 NGO, 한인선교사회, 우크라이나 선교사님들의 희생적 수고가 있음을 보았다. 체코에 머무르는 우크라이나 피난민은 약 30만명이며, 국립 프라하대학교 총장이며 신부였던 종교개혁가 얀 후스(1372-1415)가 종교 재판으로 화형당한 후 후스의 후예들이라고 하는 ‘체코형제복음교단’(ECCB) 소속 130교회에서 1,200명의 피난민들에게 숙소와 음식, 유치원 교육을 제공하고 있었으며, 이 지원을 총괄하는 디아코니아 기관이 있었다. 헝가리 정부는 에너지 정책 등의 이유로 친러 정책을 펴고 있으나 칼빈의 교리를 따르는 헝가리개혁교단(RCH)은 ‘약자를 섬기는 것이 곧 주님을 섬기는 것이다.’는 말씀을 모토로 1,249교회, 180만 성도들이 피난민 20만명을 적극적으로 보살피고 있었다. 한교봉은 헝가리개혁교단 봉사단과 MOU를 체결하고 종전 후 우크라이나 복구 때에도 함께 협력하기로 하였다. 특히 우크라이나 안에 헝가리개혁교단 소속 교회가 108교회가 있으며, 그중에 73명의 목회자들이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고 있다고 하였다. 그들은 회중이 피난 간 교회에서 사례비조차 받지 못하면서도 남아 있는 교인들을 돌보고 있었다. 한교봉은 전쟁지역인 우크라이나에 입국할 수가 없어서 유엔 세계식량계획(UN WFP)과 유엔 난민기구(UN HCR)에 각각 10만 달러(환화 2억 6천만원)를 기부하여 그들로 하여금 우크라이나의 눈물을 닦아주도록 하였다.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은 한국교회가 전쟁 종식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에 ‘알지 못하는 나라를 위해 기도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지금은 교단이나 기독교 NGO가 각자의 방식으로 모금하고 돕고 있으나 종전 후에는 기독교 라운드 테이블을 만들어서 ‘한국교회 이름’으로 선교사회와 전후 복구에 함께 했으면 한다. 6.25 전쟁의 참회를 겪은 우리나라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하여 국가 안보의 소중함을 더욱 절절히 깨달아야 한다. 파스칼은 ‘힘이 없는 정의는 무능이요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라고 했다. 힘없는 우크라이나와 정의 없는 푸틴을 보면서 새 정부가 힘과 정의의 균형을 이루고 교회는 평화의 도구가 되는 일을 위하여 기도를 요청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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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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