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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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교계 민낯 드러낸다
    부산성시화운동본부(본부장 안용운 목사)가 제1차 부산기독교 교단별 교회 전수조사를 실시한다. 이달 30일부터 금년 10월 노회 및 지방회를 통해 2015년 말까지 부산교계의 정확한 교회수와 성도수, 또 주일학교 학생 수와 청소년, 청년, 장년 숫자까지 파악할 예정이다. 과거 교회숫자에 대한 조사는 있었지만, 성도수와 주일학교, 청소년 숫자까지 파악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교회수 얼마나 될까? 아무리 특정지역으로 한정한다고 해도 정확한 교회숫자 파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주 새롭게 개척되는 교회와 사라지는 교회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부산교계 안에서는 대략 1,600-1,800 사이라는게 교계 지도자들의 중론이다. 지난 2010년에는 영남기독기자협회가 4월 봄 노회와 지방회, 총회까지 문의하면서 다양한 자료를 수집해 교회숫자를 파악한 바 있다. 이때 교회수가 1,612개로 파악됐다.(2010년 4월말 기준) 하지만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교계내에서는 여전히 “1,800여 교회”라는 말이 대세로 쓰여지고 있다. 이번 전수조사로 근접한 교회숫자가 파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또 부산지역 교단별 교회숫자 파악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부산교계 안에서는 합동-고신-통합 순으로 교회숫자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이외, 장로교와 성결교, 기하성, 감리교 의 교회숫자와 보수성향 및 진보성향의 교회 숫자 파악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성도숫자 파악한다 부산의 성도숫자를 정확히 알아보려면 통계층이 실시하는 ‘인구총조사’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정부기관인 통계층이 5년 단위로 인구총조사를 실시하고 있지만, ‘종교인수’ 같은 전수조사는 10년 단위로 하고 있다. 금년 2015년이 전수조사를 하는 해이다. ▲ <표 인구총조사로 알아본 부산시 3대 종교 현황> 과거 인구총조사를 바탕으로 부산시 기독교인 숫자는 1985년 354,113명으로 당시 부산시 인구대비 10.1%가 기독교인이었다. 그후 1995년에는 424,631명(11.1%)로 기독교인 숫자가 1% 증가했지만, 지난 2005년에는 364,592명(10.4%)으로 성도숫자가 다시 감소했다. 때문에 금년 인구총조사에 대한 전망도 좋지 않다는게 교계안에서의 여론이다. 현상유지만 해도 선전했다는 말이 돌고 있을 정도. 문제는 과거 정부의 인구총조사가 이단숫자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이단들의 숫자를 제외하면 그 숫자는 훨씬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재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천지 안드레, 야고보지파 숫자만 하더라도 3만 명에 육박하고 있고, 하나님의교회도 그 숫자가 몇 만 명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 통일교, 구원파, JMS 숫자까지 포함한다면 2005년을 기준으로 했을때, 실제 교인수는 30만명 아래가 될 것이라는 예상을 낳고 있다. 천주교에 추격 허용? 198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 부산시의 개신교와 천주교 인구 현황은 개신교가 10.1%, 천주교가 3.7%였다. 둘 사이 6.4%의 격차가 있었다. 10년 지난 1995년에도 개신교가 11.1%, 천주교가 4.7%로 둘 사이에는 여전히 6.4%의 격차가 존재했다. 하지만 2005년에 들어서면서 개신교 인구는 0.7% 감소한데 비해, 천주교 인구는 2.7% 약진했다. 둘 사이 6.4%였던 격차가 3%로 좁아진 것이다. 인구수로는 약 10만명 차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도 금년 인구총조사에서도 개신교는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천주교는 대폭 약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아직까지는 천주교가 개신교 인구를 추월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조심스런 전망을 하고 있다. 하지만 성시화운동본부가 조사하는 전수조사 결과가 나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기에는 이단들의 숫자가 제외될 것이고, 순수한 개신교인들의 숫자만 파악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천주교 숫자가 개신교 숫자를 초월 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민낯을 드러내야 한다 아직도 교계지도자들 중에서는 개신교인 숫자를 1천2백만, 우리나라 국민의 1/4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냉혹한 현실을 부정하는 발언이다. 인구총조사에서는 우리나라 개신교인 숫자를 85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이단을 제외한 실제적인 개신교인 숫자는 이보다 훨씬 떨어진다는 사실은 개신교인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교계내에서는 지금이라도 냉정하게 개신교의 현실을 알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개신교의 자리가 천주교에 추월 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과 그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하고 현실적인 분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교계지도자들은 위기감 없이 한국교회가 새롭게 거듭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냉정하게 현실을 파악하고, 한국교회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국교회가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너무 늦기 전에 한국교회의 민낯을 드러내고, 모두가 위기감 속에서 회개의 기도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희망적인 것은 과거 위기감 속에서 한국교회가 하나되어 함께 기도했고, 그때마다 위기를 극복해 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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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8-19
  • [은혜의 말씀] 오직 성령 예수증인 (행 1:8)
    사도행전은 성령의 능력을 받은 사도들이 복음을 증거 한 그 행적을 기록한 신약성경의 유일한 역사책입니다. 우리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역사는 살아 움직이고,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어떤 간섭, 하나님의 주관을 찾아보는데 특별히 예수님에 의해서 시작된 복음사역이 사도들을 통해서 어떻게 확장 되어 나가는가를 기록한 것이 사도행전이고 또 성령행전입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많이 나타난 곳이기 때문에 성령행전이라고 하는데 오늘 말씀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이렇게 시작 됩니다. 사람이 살아갈 때 여러 방법으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 살아보지만 진정한 효과가 있고 최고의 교사는 성령님이십니다. 저는 이 말씀을 통해서 힘으로 능으로 돈으로 말로 안 되는 세상이기 때문에 우리가 세월이 흘러갈수록 성령님만이 사람의 마음을 비로소 감동하시고, 성령님만이 우리를 온전히 가르쳐 주시기 때문에 성령의 권능을 덧입고, 그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파워풀한 힘을 가져서 자기 내면의 문제를 극복하고, 이웃을 바라보고 땅 끝까지 퍼져나가는 삶 이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여기에 “내 증인 되리라”고 하십니다. 증인은 자기 자랑 하는 게 아니고, 자기를 어떻게 실현하느냐가 아니고, 듣고 본대로 전달하는 것이 증인이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는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예수님의 증인이 되고 어디를 가도 예수 향기가 나고, 예수 냄새가 나고, 예수 흔적이 나타나고, 예수님 자랑을 하고, 예수님을 높여야합니다. 모든 건 내가 선택하는 겁니다. 우리 성도들 마음의 움직임이 오직 성령님의 그 어떤 흐름을 마음 흘러가는 대로 두지 말고, 기분 가는 데로 두지 말고, 성령보다 기도보다 앞서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거기서 오는 힘을 얻어야지 다른 힘은 헛심에 불과하고 다른 힘은 의미가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권능을 받고 난 뒤에 내 삶의 반경 전 영역에서 나의 주되심을 고백하고 내 삶이 영향력 있게 나가야 됩니다. 사무엘상 16장에 가서보면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 왕과 다윗 왕 사이에 그 임무교대가 될 때 결정적인 것이 성령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서 성신을 거두고 나니 사람이 이상해져버립니다. 사울이 신접한 여인에게 가고, 바보 같은 행동을 하고, 패가망신의 길을 갑니다. 다윗은 들판의 목동에 불과 했지만 사무엘이 기름 꿀 병을 가져다가 기름 부어준 그날 이후로 의의 영에 큰 감동을 받은 다윗은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성경을 볼 때 그 성령님과의 관계가 그렇게 중요한 겁니다. 다윗이 범죄 했을 때도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그 기도가 만사를 변화시킨다고 오로지 기도에 힘쓸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고의 선물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오직 성령이 임할 때 성령님이 우리 속에 감동으로 충만하게 역사하실 때 비로소 그 사람이 헛심을 쓰지 않게 되고, 여러분 성령이 임하시면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열매가 나타날 때 그 사람이 비로소 멋진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성도들의 삶이 SOLA LIFE 오직 예수,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은혜 쪽으로 흘러가고 그 가운데 집중해서, 성령님께서 그 사람을 축복의 통로로 권세와 능력을 부어주실 때는 그 힘을 가지고 사역을, 삶을 감당하되 내 문제를 벗어나서 이웃 바라보고 이제는 좀 더 기도의 반경을 넓혀서 열방을 품어야 된다는 겁니다. 성령보다 기도보다 앞서지 말고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이 보실 때나 사람들이 볼 때나 참 대단하다 칭찬 듣고, 오직 예수, 오직 성령의 길을 감당하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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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8-13
  • [성경인물탐구]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1)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활동한 시기는 AD.27년경에서부터 AD. 60년경으로 약 30여 년간입니다. 이 시기는 그리스도가 당신의 공생애 활동을 펼치기 전 기간이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로마의 황제 네로가 대 박해를 가할 때까지 유대를 중심으로 복음 전파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에 의하여 이름이 개명되기 전까지 시몬이라는 이름으로 어부 요나의 아들이었습니다. 그 자신이나 형제 안드레는 모두 가업을 따라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으며(참조, 마 4:18), 세베대의 아들인 야고보, 요한과 더불어 동업종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참조, 눅 5:10). 베드로는 '고기 잡는 집'이란 의미를 지닌 벳새다지방에서 살았습니다(참조, 요 1:44). 그리고 훗날에는 가버나움 지방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이며 또한 기혼자였습니다(참조, 마 8:5, 14). 본래 학문이 높지 못했고 어부 출신이었던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그 인생이 바뀌었습니다(참조, 행 4:13). 시몬에서 게바로 이름이 바뀐 것만큼이나 그의 인생은 폭과 질에 있어 차원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는 갈릴리 해변에서 고기를 잡다가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고 즉시 따라 나섰으며(참조, 마 4:18), 그리스도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여 스승을 메시야로 정확히 이해한 개가를 보이기도 했습니다(참조, 마 16:16).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들 중에서도 특히 인정을 받아 변화 산 사건을 목격하는 등 총애를 받기도 했습니다(참조, 벧후 1:16-18). 또한 그리스도와의 대담 중, 용서에 관한 진리를 직접 묻고 듣기도 할 만큼 친근한 제자로서의 위치를 가졌었습니다(참조, 마 18:21). 그러나 그 역시 인간으로의 약한 면모를 보이고야 말았습니다. 그리스도께 청하여 물 위를 걷다가 믿음이 부족하여 실족하는가 하면(참조, 마 14:18-21),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 시에는 그의 제자 됨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나약성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참조, 막 14:54-72).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과오를 철저히 회개한 베드로는 이후,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전도 활동을 왕성히 전개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무덤을 찾아 부활의 주님을 확인하였고 승천하시는 그리스도를 목격한 이후, 오순절 성령 세례를 받은 베드로는 이전의 나약한 인간 모습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수제자로서 능력을 발휘하였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고(참조, 행 3:3-8), 이방인 고넬료에게 말씀을 전하는 등(참조, 행 10:1-43) 초대교회의 지도자로서 사역을 다하였다(참조, 행 5:3-10). 전설에 의하면, 그는 AD. 60년경 네로의 대박해시에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수제자 베드로는 성격이 급한 인물이었습니다. 사고에 있어 신중하지 못하고 실수가 많아 그리스도로부터 잦은 책망을 받기도 했습니다(참조, 요 6:67).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그리스도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제자 중 한 명이었는데 베드로는 성격만큼이나 순종에 즉각적이었고, 자신의 과오를 즉시 깨달아 회개할 줄 아는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참조, 마 2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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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8-13
  • [성공칼럼] 사람 속의 사람
    창세기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말씀을 볼 때 하나님이 실제 사람의 생명이신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의 혼은 하나님의 생명을 담는 그릇이며 사람의 몸은 그 혼을 담는 그릇인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의 혼이 떠나면 그 몸은 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제 사람은 혼이 사람이며 하나님은 사람의 생명이시며 사람의 몸은 생명을 담는 그릇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몸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생명이신 하나님과 자신의 혼을 소중히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의 혼과 사람의 몸을 배분할 수 없는 것처럼 나누어질 수 없는 것이다. 먼저, 사람에게는 사람의 혼을 담는 그릇인 몸이 있다. 사람의 몸은 선한 일을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의 몸은 머리와 심장과 폐와 온갖 내장과 여러 기관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모든 신체기관은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두가 협력하여 몸이 살도록 존재한다. 그리고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양식도 잘게 부서져서 기꺼이 모든 영양분을 내어주며 희생하고 있다. 몸이 그러한 것처럼 사람은 자신의 몸으로 나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사랑과 선을 목적으로 삼아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몸이 되어야 혼을 담는 그릇이 되는 것이다. 만약 몸으로 악한 일을 한다면 이미 혼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것이기에 죽은 몸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사람의 혼이 생명을 담는 그릇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의 혼이 하나님의 형상이 되어야 한다. 그릇이 깨끗하지 않으면 그 안에 생명을 담을 수 없는 것같이, 내 혼이 깨끗하지 않으면 사람의 몸도 선한 일을 할 수 없을뿐더러 그 생명을 담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며 선이며, 기쁨이며 자유이며 진리이며 빛이시다.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은 항상 하나님의 본성을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마음으로 두려워하는 것, 미워하는 것, 화내는 것, 욕심 부리는 것, 원망하는 것, 비난하는 것, 거짓말하는 것, 분당을 짓는 것, 지배욕을 불태우는 것 등은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을 더럽히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러운 그릇에 하나님의 생명이 함께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의 회개나 M.P.M 훈련에서 만나게 되는 ‘그 누구도 아닌 나’는 생명이 아니라 ‘그릇’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생명을 담는 그릇임을 안 이후에도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아래로 어두움을 향해 내려갈 수도 있고 사랑과 선을 행함으로 위로 하늘을 향해 살 수도 있는 것이다. 좋은 강의와 설교를 들으면 가슴에 자유와 행복이 생기면서 바르게 살고 싶어진다. 종교와 교육과 도덕과 상담 등을 통해서 마음이 맑아지는 것은 생명이 아니라 내 그릇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그릇에 생명을 담기 위해서는 깨끗하게 하는 작업을 해야 하며 깨끗하지 않으면 생명을 담을 수 없는 것이다. 세 번째, 사람의 혼은 생명을 수용하는 그릇인데 그릇이 아무리 깨끗하고 뛰어나도 그릇일 뿐이다. 그릇이 생명이 될 수는 없다. 사람의 생명은 오직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사랑이시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이는 그 누구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 외에 무엇이 생명인가! 나인가? 조상인가? 찬란한 해와 은은한 달빛, 광활하고 장엄한 자연인가? 아니면 자연에서 발견하는 진리인가? 이 모든 것들은 생명이 아니다 생명에서 나온 피조물인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이며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 생명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생명으로 살기 위해서는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사랑이시며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의 몸도 있고, 사람의 혼도 있을지라도 생명이 없다면 그 모든 것은 죽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온전한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은 선한 일에 사용되도록 해야 하며, 자신의 마음은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과 기쁨과 빛과 진리로 채워지도록 해야 하며, 사람이며 신이신 주님을 사랑하며 사람을 사랑하고 선을 행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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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8-13
  • [시내산]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맞으며
    해방 70년을 맞아 남한은 남한 대로 북한은 북한대로 이곳 저곳에서 다양한 행사들을 펼치고 있다. 한민족사의 입장에서 보면 근현대사에서 광복절보다 더 의미있는 역사적인 날이 없기 때문이다. 매년 계속 되는 연례적인 행사도 있지만, 올해는 광복 70주년이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현란할 정도로 행사들이 많다. 일제 강점으로부터 벗어난 이 자체를 기념하기 위한 행사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분단 70년이란 이 사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광복은 지나간 과거사에 대한 기념이지만, 분단 70년은 현재진행형 중이기 때문이다. 광복의 환희와 의미도 현재화하는 작업이 필요하지만, 어쩌면 현재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역사적 과제인 분단극복의 문제가 더 시급한 일이다. 그리고 분단이 해소되지 않는 한 진전한 의미의 광복은 아직 우리에게 주어지진 것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느 역사적 순간이든 그 민족에게 주어진 역사적 과제가 있다. 이 과제에 대한 책무는 그 민족 구성원 누구든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의 선배들은 일제 강점의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피와 땀을 흘려 광복의 날을 희구해온 것이다. 그 시대 우리 민족의 역사적 과제는 한 마디로 민족이 광복을 쟁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선배 세대들이 광복을 위해 싸웠던 기간(1910년 8월 29일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로 보면)인 34년 10개월 보름보다 2배가 넘는 긴 시간인 70년을 보냈지만, 분단극복의 역사적 과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다른 나라에 빼았겼던 나라를 찾는 시간의 두 배의 시간이 지났지만, 하나의 민족이 두 개로 쪼개어져 70년을 지내왔으니, 이에는 분명 문제가 많은 것이다. 우리가 현재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역사적 책무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전력을 다 바쳐 왔는가 하는 점에서, 다시 깊은 반성을 해야 할 시간이다. 사실 분단극복을 위한 난제들이 한둘이 아니기에 그 동안 오랜 시간을 끌어온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이 문제의 근원은 그 근저가 너무 다양하고 복잡다단하여 명쾌하게 한 마디로 정리하기는 힘들다. 국제적인 역학관계, 남북한 간의 정치적 상황, 남북한 통일론의 입장차이 등 얽히고 설킨 문제들로 꼬여 있다. 그러나 우리가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맞는 이 시점에서는 분단극복을 위한 새로운 각오가 절실히 요청된다. 특히 한국교회는 한민족의 분단에 대한 민족사적 사명을 다시 한번 재인식해야 할 시점이다. 교회가 그 민족의 현실에 대해 역사적 책무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하면, 교회는 교회로서의 존재성을 잃고 만다. 일제 강점기 한국교회는 민족의 독립을 위해 온 교회가 하나가 되어 항일의 역사를 기록해 왔느냐 하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야 할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민족사적 과제를 외면하지 않았다. 이런 과거사에 비추어 본다고 하면, 지금 현재 분단극복을 위해 한국교회가 어느 정도 힘을 쏟고 있느냐 하는 점에서 다시금 우리 스스로를 추스려야 할 시점이다. 현재 한국 교회가 남북한 통일을 위해 다양한 기관과 단채들을 통해 힘을 쏟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온전히 한국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한 상태에서, 교단별, 교회별, 관련기관별로 통일을 앞세워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한 특수집단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는 북한을 생각하면, 다양한 방법을 통한, 다양한 채널을 통한 각개전투도 필요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각개전투를 하면서도 여기에 참여하는 모든 개인과 단체, 교단들이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어 온전히 민족통일이란 하나의 목표 아래 하나가 되는 힘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형식적인 틀거리는 하나를 이루고 있는 듯 하지만, 실질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모두가 각각의 길들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통일전략은 현실적으로 통일 준비 작업을 해나가는 데도 문제가 있지만, 통일 이후에도 더 많은 부작용을 야기시킬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가 왜 남북한이 하나 되지 못하고 나뉘어졌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는 쉽게 풀리는 문제이다. 똑 같이 민족 독립이란 하나의 명제를 두고, 싸워왔지만, 서로의 입장들이 달라 서로 하나가 되지 못했기에 남북한으로 갈라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민족통일의 과제를 위해서도 우선 먼저 남한 교회가 하나되는 선결과제부터 해결하고 가야 한다. 남한 교회가 하나되지 못하면서 남북한 민족이 하나되는 통일 과제를 논하고 있다는 자체가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닌가?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맞는 한국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엄정히 돌아보아야 할 시대적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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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8-13
  • [교회회계] 복식부기시스템에 기초한 교회 부채의 관리와 공시
    “우리 교회의 차입금과 상환 후 현재잔액은 얼마입니까?, 수입지출보고서 어디에도 표시가 없습니다.” 교회 제직회 때마다 자주 나오는 질문중 하나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금융감독원의 조사에 의하면, 2012년 우리나라 교회 부채는 약10조원(은행?상호금융회사 대출액)에 이른다. 즉 많은 교회가 고유의 사업목적과 성전건축 등을 위해 대출을 실시, 적지 않은 채무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채란 교회가 갚아야 할 채무이다. 또한 교회의 재산가치를 나타내는 순자산은 자산에서 부채를 차감한 금액으로 표시된다. 따라서 교회가 사업계획에 따라 예산을 세우고 효과적으로 집행해 가기 위해서는 자산과 부채, 순자산에 대한 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하 본 칼럼(제6회)은 재무상태표의 대변항목인 부채와 순자산의 표시 방법을 복식부기시스템에 기초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첫째, 부채는 교회가 갚아야 할 채무로서, 상환기간이 1년미만은 유동부채, 1년이상은 비유동부채로 표시한다. 또한 현금수입을 수반하는 것(차입금,선수금,선수수익)은 ①[현금 xx/차입금 xx], 수반하지 않는 것(미지급금,미지급비용,매입채무)은 ②[건물 xx/미지급금 xx]로 표시한다. 둘째, 퇴직급여충당금과 같이 미래 지급의무 가능성이 높은 항목은 부채성충당금으로 분류, 최초 설정시 ③[퇴직급여 xx/현금 xx]으로 처리하고, 동 금액을 교회가 관리(예금)할 경우 [퇴직급여기금 xx/퇴직급여충당부채 xx]로 처리한다. 셋째, 부채는 이자비용의 지급을 수반하는 것(차입금,장기부채)과 수반하지 않는 것(미지급금, 퇴직급여충당부채,단기부채)을 구분하여 관리한다. 즉 이자비용의 부담이 교회재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별도 구분하여, 이자율(단리/복리,변동금리/고정금리)과 시간개념(현재가치/미래가치)을 고려해 의사결정을 하는 시스템을 갖추도록 한다. 넷째, 순자산은 자산에서 부채를 차감한 것으로 기본금, 교회 사업목적에 필요한 각종적립금, 자산의 재평가등과 관련한 기타포괄손익누계액, 차기이월잉여금의 순으로 표시한다. 또 최초 기본금 조성시는 ④[현금 xx/기본금 xx]으로 표시한다. 다섯째, 순자산 중 각종적립금은 교회가 선교(건축,장학)등의 기금을 조성하는 경우 표시하며, 최초 설정시는 ⑤[선교비 xx/현금 xx]으로 하고, 이를 교회가 예금?관리할 경우 [선교기금 xx/선교적립금누계액 xx]로 한다. 그리고 공정가치를 적용해 건물등을 재평가한 경우에는 ⑥[건물 xx/기타포괄손익누계액 xx]으로 처리한다. 또한 이러한 누계액은 퇴직급여충당부채 처리와 유사하나, 미래 지급의무를 지닌 부채 항목이 아니므로 순자산으로 표시한다. 여섯째, 순자산은 기업의 자본과 유사한 개념으로, 기본금과 적립금등에 포함되지 않은 금액은 차기이월잉여금에 표시한다. 단 교회자체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특정 주주지분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므로 비영리법인에 준하는 회계처리를 하며, 주주지분 개념이 없으므로 배당을 하지 않는다. 또 마지막으로, 재무상태표의 부채와 순자산 합계는 자산합계와 일치하도록 작성한다. 재무상태표는 교회의 자산과 부채, 순자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재무상태표 공시가 이루어질 경우 재정 투명성이 높아짐은 물론, 모두에서 언급한 제직회 질문내용이 자동으로 해결되는 효과가 기대된다. 다음 회는 교회의 재무제표분석 방법에 대해 설명한다. <문의 sblee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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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8-13
  • [박철 목사] 제발 순리대로 살자
    하늘은 늘 공평하여 모든 사람에게 재능을 골고루 주었다. 간혹 배분이 잘못되어 조금 더 낫거나 약간 모자라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확실한 건 한 사람에게 모든 걸 다 주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가령 힘 좋고 튼튼한 사람에게 냉철한 머리까지 준다거나, 기발하고 뛰어난 머리에 건강한 신체까지 준다는 건 좀처럼 없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재주가 열 두 가지면 굶어죽는다"라고 했을까? 한사람이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일개 서민이 '선택된 사람' 인양 행동한다면, 그렇게 큰 피해가 없지만 위쪽, 즉 지도층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일개 서민이 천지를 모르고 설친다면 그냥 머리에 손가락을 대고 한 바퀴 빙글 돌리고 무시해 버리면 되지만, 지도층에서 그런 생각을 갖게 되면 그 피해가 예삿일이 아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되고 세상을 바꿀 사람은 나뿐이며 나부터 역사를 다시 쓰겠다는 이 위험한 생각, 공평하게 나누어준 하늘에 도전하는 이 생각 때문에 우리나라 국민은 수년간 그야말로 '욕봤다'. 아비가 제 자식을 교정하기도 어렵고 아랫사람이 어른의 생각을 바뀌게 한다는 것도 쉽지 않고 다른 모든 친구를 자신의 취향에 맞게 바꾸는 것도 역시 어렵다. 약삭빠르고 싹싹하고 눈치가 빠른 사람은 마음속이 쉴 틈이 없다. 무슨 일이든 만들어 꾸며 보려는 욕심으로 마음을 가만 두질 못한다. 성급하고 조급해서 양은그릇처럼 잘 달구어지기도 하고 잘 식어 버리기도 하는 사람은 진득하게 살지 못한다. 어수선하게 일을 벌여 놓고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이 밤낮으로 쫓기면서 자신을 돌이켜 볼 줄 모른다. 이런 사람은 영악할 수는 있어도 어질 수는 없다. 약삭빠른 현대인은 자신을 이길 생각은 않고 남을 이길 생각만 한다. 그래서 현대인은 벗을 잃었고 이해상관으로 얽힌 동료만 있을 뿐이며, 항상 서로 경계하면서 다투어 상대를 이길 생각만 골똘히 한다. 그리고 염치를 모르며 겸허할 줄 모르고 우쭐대면서 자기선전을 하여 씨름판의 천하장사가 된다.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잊어버린 지 오래다. 사람들이 뻔뻔스러우니까 세상은 점점 추해지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나에게 있는데, 우리는 먼저 남을 탓할 때가 많다. 잘못은 내게 있는데, 내가 오해받을 일을 했는데도, 남의 탓으로 돌리면서 화를 낼 때가 많다. 내 잘못인 줄 알면서도 내 실수인 줄 알면서도, 알량한 자존심과 유치한 자기체면 때문에 먼저 다가가 서 사과하지 못할 때가 많다. ‘나’라는 존재가 그렇게 대단하지도 않은데, '나'라는 존재가 한번 숙인다고 버릴 명예도 없는데, 먼저 다가가 다정한 목소리로 "미안해!" 그 한마디면 다시 사랑할 수 있고 다시 다정한 이웃이, 친한 친구가 될 수 있는데 왜 먼저 다가가 손 내밀어 화해를 청하는 큰마음을 갖지 못하는 것일까? 내가 먼저 숙이고, 내가 먼저 이해하고, 내가 먼저 인사하면, 내가 먼저 사과하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따뜻한 마음을 만날 수 있는데 왜 나는 그리 못하는 것일까? 지금은 그의 잘못이 크다 해도, 내가 먼저 큰 사람이 되어 마음을 먼저 열기만 하면 그 사람은 오히려 낯이 붉어지며 미안해 할 텐데…. 그 멋지고 아름다운 일을 왜 내가 먼저 못하는 것일까? 스님이 절이 마음에 차지 않으면 절더러 떠나라고 할 것인가? 가벼운 스님이 떠나면 되듯이 나를 뺀 모든 사람을 바꾸려고 애쓰지 말고 내가 변하자. 순리대로 좀 살자.
    • 오피니언
    • 정론
    2015-08-13
  • [이단피해] “교회의 배려가 아쉽습니다”
    신앙이 좋은 A씨의 소원은 믿음을 가진 며느리를 맞이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소원이 이뤄져 믿음의 며느리가 들어왔고, 2004년 아들 가정이 다니는 B 교회로 옮겨 아들 내외와 함께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 왔다. 하지만 작년 교회에서 광고 시간에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이라며 명단을 발표했다. 이 명단에 며느리의 이름이 있었다. A씨는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일방적인 발표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10년 동안 다녔는데, 교회가 최소한 나에게 귀뜸이라도 해 주고, 사실 확인을 해 왔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이 깊지 않은 남편은 그 이후 시험에 들어 B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습니다”고 말했다. 우려는 사실이 되었고, 아들 내외와 손자까지 신천지에 빠진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시간이 흘러간 후 남편도 신천지에 빠지게 됐다. A씨는 “교회가 어느 정도 배려가 있었다면 남편까지는 신천지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지금은 가족이 모여도 자신은 외톨이로 전락했다고 한다. “다들 나를 피합니다. 가족 모임이 있어도 제가 있으면 불편해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신천지가 저를 투명인간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며 신천지를 원망했다. 이후 A씨는 심한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힘든 나날을 보내왔다. 상처받은 B 교회를 떠났고, 신앙의 방황이 있었지만, 다행히 다른 교회에서 잘 정착했다. 하지만 지금도 B 교회를 생각하면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교회가 조금만 저희 가정을 배려했다면 남편이 신천지에 빠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저 또한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겁니다.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의 가족까지 벌레 취급해서는 안됩니다”며 “아무리 큰 죄를 지은 사람도 구원의 대상이지 않습니까? 이런 이중적인 교회의 태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상처 받는것 같습니다”며 안타까워 했다.
    • 이단
    • 신천지회심자
    2015-08-13
  • [목회자 칼럼] 탈진과 회복 (16)
    탈진에서 회복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치유를 받는 것이다.사람들은 〈치유, 회복〉을 위하여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소금 먹은 사람이 물을 찾고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고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하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다. 인생길에서 뜻하지 아니한 사연으로 말미암아 지치고 쓰러져가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양한 도움의 손길들을 준비하시고 또 때를 따라 보내어 주신다. 그것은 사람일 수도 있고 음식일 수도 있고 의술과 약 일 수도 있다. 그리고 다양한 자연 환경일 수도 있다.실제로 사람(가족, 친구, 지인, 교우 ...)을 통하여 큰 도움을 받아 예상과 기대 이상으로 큰 효과를 거두는 경우들도 많이 있다. 깨끗한 물과 좋은 음식을 통하여 원기를 회복하면서 탈진에서 벗어나는 미담들도 있다.하나님께서 창조해 주신 아름다운 자연속으로 들어가서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꾸준히 산책과 등산을 함으로써 건강이 회복돼 떠나 왔던 자신의 위치나 직무로 돌아가는 아름다운 사례들도 있다. 좋은 의사를 만나고 자신에게 잘 맞는 약을 만나서 꾸준히 치료를 받는 중에 회복되는 경우들도 분명히 있다.그러나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대한 선물로 보내주신 〈성경〉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오늘 우리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반성하고 새롭게 깨달아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고 한다면 우리들이 시간이 갈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하고 있는 점이다.욥은 욥기 23:12에서 “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라고 고백 하였다. 욥은 하루의 일정한 (세 끼) 식사보다 〈하나님의 입의 말씀〉을 더 귀히 여겼다. 욥은 평소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 하였다. 욥은 동방의 이름 있는 부자였다. 그가 거느린 일군들 숫자가 엄청났다. 자식들도 10남매였다. 요즘 말로 바꾸면 욥은 대 기업의 총수였다. 매일의 일과가 얼마나 빡빡하였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매일의 말씀 묵상〉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욥이 극심하고 중대한 고난을 이겨 낼 수 있었던 힘은 〈말씀 묵상〉에 있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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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8-13
  • [시사칼럼] 개혁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월 6일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취임 후 네 번째입니다(2013.3.4/2014.1.6/2014.5.19). 광복 70주년 및 임기반환점을 앞두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담화문은 자못 비장하고 절박했습니다. “지금 세계 경제는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급격히 재편되면서 각국의 생존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3~4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분수령이 될 것입니다.” 통절한 상황분석입니다. “절실하다”는 말이 두 차례, “절체절명” 1회, “간곡하게 요청/부탁합니다”란 말은 무려 다섯 번이나 나옵니다. 그러면서 제시한 것이 바로 공공·노동·교육·금융 4대 ‘개혁’입니다. 매우 시의적절할 뿐만 아니라, 담화문에서 대통령이 제시한 몇 가지 원칙은 아래와 같이 한국교회에도 의미심장한 울림(echo)입니다. 첫째, 개혁의 절박성(切迫性)입니다.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우리나라가 세계경제의 주역으로 다시 한 번 도약하기 위해서는 경제 전반에 대한 대수술이 불가피합니다”(담화문, 이하 생략). 한국 교계에도 너무나 적실(適實)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원칙론에 있어서만큼은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고질적인 적폐(積弊)에는 근본적인 대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인식과 의지를 갖고 있는 경우는 드문 것이 현실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고자 하는 개혁의 길은 국민 여러분에게 힘든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후손들을 위해서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입니다.” 공감합니다. 비록 아픔이 있어도 환부를 도려내고 치료해야 살아나지 않겠습니까? 둘째, 개혁의 연대성(連帶性)입니다. “(개혁은) 국민 여러분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적극적인 동참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한 배를 타고 있는 운명공동체라는 인식으로 힘을 모아 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 드립니다··· 혁신과 개혁의 동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세상 사람들도 이럴진대 하물며 성령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야하는(엡 2:21~22) 교회공동체는 어떻겠습니까? “대승적인 결단이 필요합니다. 조금씩 양보와 타협의 정신을 발휘해 줄 것을 간곡히 당부 드립니다.” 교회는 더욱 그러합니다. ‘우리만 교회다’라는 식의 개(個)교회주의(individualism)는 그만 벗어던져야 합니다. 한국교회 전체의 생존과 부흥을 위해 교단과 계파를 초월해서 서로 관용하고 양보하여 종교개혁의 정신, 우리가 나온 샘의 근원으로 다시 함께 돌아가야(ad fontes) 할 때입니다. 셋째, 개혁의 혁신성(革新性)입니다. “낡은 시스템과 관행··· 보신주의에 안주”하지 말고, “혁신과 아이디어”로 “우리 안에 내재된 창조적 기질과 역량을 재발견하고, 국민 개개인이 창의력을 발현 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개혁의 성패를 좌우한다 했습니다. 사실 “창조적”이라는 말보다 더 성경적인 용어가 어디 있습니까? 개혁은 때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수반합니다. 노아 홍수 사건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루살렘 멸망 사건은 또 어떻습니까? 이제 우리도 혹 본질과 무관한 낡은 관행과 전통에 안주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교회개혁’이란 기존의 전부를 다 뜯어 고치자는 것이 아니라, 썩어버리고 일탈한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고치겠노라는 고백이요 결단임을 분명하게 마음에 새기고(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회(悔)하고 개(改)하는 교회들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개혁은 이제 더 이상 어떤 한 사람이나 집단의 주장이나 의견이 아니라 모두가 공유하고 가야 할 당위요 과제라는 사실을 이번 대통령 담화로부터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원래 세상은 스스로 개혁하기 힘듭니다(사 53:6). 교회개혁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 또 있습니다. 교회개혁은 교회 자체를 정화할 뿐 아니라 부패하고 오염된 세상을 순화시키는 영적 정수기 역할을 감당하기 때문입니다. 개혁이 절실합니다(절박성), 우리 함께 기도하고 힘을 합쳐(연대성), 곪은 부위를 잘라내고 새살 돋게 하는(혁신성) 교회와 세상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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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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