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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기독교이야기] 부산에서 일한 북장로교 선교사들, 위철치
2020/01/13 15:03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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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철치(魏喆治)로 불린 George H. Winn(?-1963) 조지 윈 선교사는 베어드 목사, 브라운 의사, 어빈 의사, 아담스 목사, 루이스 체이스 양, 시릴 로스 목사, 시더보탐 목사, 월터 스미스 목사, 어네스트 홀 목사에 이어 17번째로 1909년 부산으로 온 미국북장로교 선교사였다. 그는, 1899년 내한하여 1900년부터 부산에서 일하던 중 첫 안식년을 맞아 1908년 본국으로 돌아 갔으나 가스폭발 사고로 순직한 시더보탐, 곧 사보담 선교사의 후임으로 내한하여 부산지부에 배속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1914년까지 5년간 일했다. 그후 대구지부로 배속되어 박낙현(朴洛鉉)을 조사로 채용하여 교회 개척과 순회 사역 등으로 1926년까지 일했다. 그가 대구에서 지역교회를 돕는 사역을 전개하며 설립한 대표적인 교회가 ‘칠성정교회’였다. 1921년에 설립된 이 교회는 지금은 수성구 두산동에 위치한 칠성교회로 발전하고 있다. 위철치는 대구에서 1926년에는 서울지부로 옮겨갔다. 그 후에는 다시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사역하다가 1941년 일제에 의해 한국을 떠나 본국으로 돌아갔다. 해방 후 다시 내한했으나 1948년 한국을 떠났고, 1963년 6월 18일 미국 아리조나 주 투스콘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1909년 미혼으로 내한했는데, 1910년에는 블랑케 에직(Blanche Essick, 1883-1955)과 혼인했다. 에직 양은 1908년 북장로교선교사로 내한하여 대구에서 일하던 중 위철치와 혼인하여 함께 일하던 중 1955년 6월 24일 플로리다 주 폴크시티에서 사망했다. 위철치 선교사 부부는 Paul, Elinor, George, Julia, Thomas 등 3남 2녀를 두었다.
 
부산에 도착한 위철치는 우선 조선어 공부에 주력하였고, 부산에 체류하는 동안 일본어를 모르고는 선교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고 일본어 공부도 시작했다. 이런 시작이 후일 주한 선교사들을 위한 일본어 교제를 편찬하는 배경이 된다. 윌리엄 베어드의 부인 에니 베어드는 1896년 선교사들을 위한 한국어 교재인 『五十指針』(Fifty helps for the beginner in the use of the Korean language)을 편찬한 바 있는데, ‘조선어 50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일종의 한국어 회화 교제인데, 1926년에 6판이 발간되었을 정도로 유용한 한국어 교재였다. 그런데 위철치는 에니 베어드의 한국어 교제와 같은 방식으로 일본어 교제를 편찬했는데, 그것이 『일본어공부 50강 Fifty helps in the study of the Japanese language』 이었다. 이 책은 1914년 출판되었다.
 
위철치의 부산에서의 주된 사역은 교회 개척 및 지역교회 순회였다. 그는 지금의 초량교회, 제일영도교회, 항서교회, 구포교회, 김해교회, 김해 시례교회 등을 돕고 순회했다. 일예를 소개하면, 1913년 4월 9일 수요일 하오 3시 영도교회 제1회 창립당회가 열리는데 사회자가 위철치 선교사였다. 참석자는 한득룡 목사와 이춘서 장로였다. 이때부터 위철치는 심익순에 이어 1914년 정덕생 목사가 제2대 담임목사로 부임할 때까지 이 교회 당회장으로 활동하게 된다. 본래 1896년 김치몽에 의해 시작된 영도(影島)교회는 부산부 서남편에 소재한 교회로서 심익순(Walter E. Smith) 선교사 담당구역이었다. 그러나 당회의 조직부터 위철치 목사가 이 교회를 관장하게 된다. 이 영도교회는 영선정(瀛仙町)교회 영선동(瀛仙洞) 교회 등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지금의 제일영도교회로 발전하고 있다.
 
미국북장로교회는 1891년 윌리엄 베어드의 내부 이래 1913년 말로 부산경남지역에서 사역을 마감하고 철수 하게 되는데, 이때 북장로교 선교부를 대표하여 지역 조정 및 재산처분과 관련하여 호주선교부와 협의했던 인물이 위철치였다. 즉 1913년 연례회의에서 왕길지(G. Engel) 와 라대벽(D. M. Lyall)은 호주선교부를 대표하는 이들이었는데, 이들은 북장로교 선교부에 지역 이양을 공식적으로 요청하였다. 이 안건은 북장로교선교부의 투표로 결정했는데, 50대 6으로 가결했다. 호주선교부는 부산과 밀양에 있던 북장로교 선교부 재산의 보전을 보장했다. 이때 재산 처분과 관련된 일을 책임 맡았던 인물이 북장로교 회계였던 존 갠소(Mr John F. Genon)과 위철치였다. 그 결과 1914년 밀양의 재산은 호주선교부에 5,259엔으로 판매되었고, 부산 영선현의 부동산은 1919년 일본인에게 44,717.37엔에 매매되었다. 이중 2만엔은 만주의 새로운 선교지부 개설을 위해 사용되었다. 그리고 여자학교의 비품들은 서울의 여자학교로 이관되었다. 참고로 부기하면 미국북장로교 선교부가 지역 조정을 통해 호주선교부로 이관할 당시 북장로교 관할에는 101개 처의 교회 혹은 기도처, 1,887명의 수세자, 그리고 전체 신자수는 3,816명에 달했다. 이처럼 위철치는 5년간 부산에서 체류하면서 언어공부, 교회개척 및 지역교회 순회, 선교부 행정 등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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