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0.01.23 12:32 |
제14회 기독교문화대상 봉사부문 수상자 김종세 장로 인터뷰
2019/12/23 15:33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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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서원한 약속 지키기 위해 끝까지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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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수상소감 부탁드립니다.
A. 그동안 큰 과오 없이 최선을 다해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건강과 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고진감내라는 말처럼 막상 큰 상을 받고 보니 감격스럽기도 하고, 솔직히 다소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35년간의 긴 세월 동안 박봉과 한직에서만 근무한 못난 사람을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저를 지지해주며 직장생활을 함께 해 준 아내와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Q. 공직 35년간 사회봉사업무만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요?
A. 제 나이 3세 때 광복과 함께 일본에서 아버님을 따라 선친의 고향인 경북 달성군 논공면 시골 작은 마을에 정착하였습니다. 어렵게 살아오던 중 다섯 살 때 어머니께서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셔 큰 슬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몹시 힘들었던 것은 또래들과 어울리면서도 말이 통하지 않았던 것과 가난 그리고 외로움이었습니다. 13세 때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는데 그러던 중 16세 때 제가 열병에 걸려 병원에서 수혈을 받았습니다. 죽음을 직감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살려주시면 저와 같은 불우한 아동과 청소년들을 위해 한평생 봉사하며 살겠습니다”며 서원의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2주 뒤 병이 완치되어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하나님께 한 이 약속이 시작인 것 같습니다.
 
Q. 한 길만 걷기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A.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졸업 후 1968년 6월 1일부로 3급 아동상담원 발령을 받았습니다. 문제가 많은 아동·청소년들을 상담 지도하는 업무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막상 한 사람 한 사람 상담하다 보니 눈물겨운 사연이 많았습니다. 오히려 저의 어린 시절보다 불행한 아동, 청소년들이 의외로 많은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저들의 힘이 되고, 버팀목이 되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의욕을 갖고 했지만 많은 문제를 지닌 아동·청소년들과 여러 해 상담을 하다 보니 너무나 힘이 들고 지쳤습니다.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어 많은 갈등과 고민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때마침 부산대학교 사회복지학과가 신설되면서 서주실 총장님께서 교수채용 제의를 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 이듬해에는 성결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서도 교수채용 제의가 있었습니다. 당시 많은 갈등과 고민 끝에 결국 사양하고 하나님께 서원한 약속을 지키기로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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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처음 전문아동상담원으로써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A. 가출부랑아동 전담 아동보호시설인 ‘재생원’을 중심으로 5년간 약 6만명의 아이들을 상담했습니다. 개별상담지도 및 조치를 하는 업무였습니다. 매일 30~50명의 아이들을 상담했는데, 5년간 지속하다보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특히 가출 아동들은 거짓말을 많이 하기 때문에 상담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어린 나이인데도 이성에 지나치게 밝은 걸 보면서 회의가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힘든 환경에서도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하나님께 “이 일을 하라고 저를 살려주신 것이죠? 그럼 가겠습니다”며 매일 새롭게 다짐했습니다.
 
Q. 그간 어떤 직책을 거쳐오셨는지요?
A. 35년간 아동복지사업소 교육계장과 아동청소년회관 청소년부장, 근로청소년회관장을 역임했습니다. 새로운 업무개발과 수혜 대상자를 넓혀가기 위해 제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해 왔습니다. 근로청소년회관장을 역임하던 시절에는 사하구 다대동에 근로자임대 아파트를 건립해 미혼근로여성들의 주거 안정을 도왔습니다.
 
Q. 홑트아동복지회 부산사무소 개설을 추진하신 것으로 압니다.
A. 보호자로부터 버려진 아동을 기아, 길을 잃어 떨어지게 된 아동을 미아라고 합니다. 제가 근무하던 1968년 당시에는 기・미아 아동이 750~800명으로 고아가 너무 많았습니다. 지금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과거에는 비일비재 했습니다. 당시 30대 청년이 저를 찾아와 연인과 동거 중 아이를 출산했는데 아이 엄마가 도망을 갔고 보름된 아기가 집에 방치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급히 직원과 함께 집을 찾아가 보니 참혹한 상황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오물과 울음에 찌든 아기를 안고 데려왔습니다. 아기가 입을 옷이며 먹을 음식이며 양육에 필요한 물건들이 급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를 전문으로 하는 기관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찾던 중 홀트아동복지회에 연락해 협의한 끝에 부산사무소를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3세 미만 기・미아 전담 기관으로 보호자를 찾아주고 힘들 경우 국내외 입양을 도와주는 기관입니다.
 
Q. 어린이집 4개소를 설립하셨다고 들었습니다.
A. 영유아복지를 위해 또한 근로 중인 여성들을 위해 어린이집이 필요했습니다. 이를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하도 생각되어 근로청소년회관 내 시립어린이집 1개소(정원 131명), 아동복지사업소 2개소(어린이집 180명, 지능개발실 40명), 동백아파트 복지동 내 국공립어린이집(정원 60명)을 설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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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전국 최초 아동신고센터를 개설하셨는데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A. 1972년 전국 최초 가출아동신고센터를 설치 운영했고, 아동학대신고센터를 설치 운영했습니다. 아동복지사업소, 부산역, 부산진역에 개설해 운영했습니다. 서무계, 교육계, 상담지도계를 조직해 주도적인 일을 했습니다. 과거 육교나 거리에서 돈을 구걸하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구전, 도벽, 걸식하는 아이들이 많았고, 이 아이들을 착취하는 넝마주의집단이 28곳 있었습니다. 경찰들과 함께 아이들을 꺼내오기 위해 집단에 뛰어들기도 했습니다. 사복을 입은 경찰 두어 명과 함께 들어가 아이 한 명을 데려 나오는 게 절대 쉽지 않았습니다. 데려온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고 용돈을 주고 상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Q. 많은 아동청소년들을 만났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사연이 있습니까?
A. 숱한 사연들이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28번째 가출을 하고 저를 만난 명호(가명), 안동에서 부산진역으로 오게 된 선우(가명), 그리고 지금도 가끔 인사를 건네는 영희(가명)가 기억에 남습니다. 한번은 아동학대신고센터에 문현동에 부모 없이 3남매가 있다며 이웃집 아주머니의 신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사를 위해 찾아가보니 방 한칸은 주인이 사용 중이고, 다른 방 한칸에는 고2 여학생과 두 남자아이가 있었습니다. 남자아이들은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고 누나는 각혈을 해 급히 보건소로 데려가 입원을 시켰습니다. 폐병 3기로 생명까지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 돈을 털어 약을 샀습니다. 6개월간 약을 먹고 병이 고쳐졌고 영희가 학업과 취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복지사로 취업한 후 떨어져 지내던 남동생들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미국에서 살며 나이가 60이 넘었는데도 가끔 제게 안부를 전하며 감사인사를 합니다.
 
Q. 앞으로의 바람이 있으시다면?
A. 이번 기독교문화대상을 준비하면서 참 많은 일들을 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지칠 때도 있었지만 보람을 느낄 때도 많았습니다. 제가 만약 하나님께 서원하지 않았다면 결단코 힘든 이 길을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웃음)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남은 여생도,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불우한 아동청소년들을 돌보면서 살아가고자 합니다. 옛날처럼 많은 일들을 할 수는 없겠지만 지친 이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 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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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혜진 ohj1113@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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