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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칼럼] 혼돈의 시대를 살면서
2019/07/08 14:5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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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인간에게 근원적으로 하신 질문이 3가지가 있다. 첫째는 창세기 3:9절의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이며 둘째는 창세기 4:10절의 가인에게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이며 셋째는 창세기 16:8절의 하갈에게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이다. 이 질문은 창조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질서가 함축되어 있는 내용이다. 질서에는 위치질서 역할질서 관계질서가 있다.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이 모든 것이 관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상하관계 수평관계를 통해 아름다움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창조질서의 이치다. 이것이 무너질 때 카오스현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작금의 국제정세나 국내 상황이 그렇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아픔이 아닐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상황이 그렇고 북미간의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한 상호 저울질이 그렇고, 남북문제가 그렇고, 국내 정치는 말할 것 없고 경제 사회 교육 문화, 그 어느 곳도 어제보다 더 나은 것 없음이 오늘의 카오스현상이다. 더 두려운 것은 교회도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후들거린다. 연일 안방에 전달되는 뉴스 보도는 그 어느 것 하나 국민들의 마음을 편하게 하고 소망을 갖게 하는 내용이 없다. 세월호라는 이름으로 온 국민의 가슴이 절절이 아픔으로 젖어든 통한의 세월이 역사의 흔적이 되었고, 최 아무개라는 이름 석자가 온 나라를 마치 맷돼지가 농사밭을 휘젓고 다녀 그 어느 것 하나 거둘 것 없는 패농 위기의 상황을 보여주듯 한 불과 몇 년전 처절한 역사의 아픔을 우리는 몸서리치면서 경험했고 그 후유증은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너나없이 하나같이 너는 돼지고 나는 소크라테스라는 식으로 무자비할 정도로 그 모든 잘못에 대한 비판과 정죄는 우리들의 삶의 현장을 더욱 혼돈스럽게 한다.
그런데, 더욱 마음이 아픈 것은 교회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은퇴 후에 5년이 되어가도록 전국 방방곡곡 다니면서 말씀 사역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영적 질서를 통한 아름다움의 조화가 아니라 이리저리 부딪치는 철연장소리 망치소리 도끼찍는 소리가 교회에서도 들린다. 이해와 관용과 용서와 사랑이 복음의 삶인데 오해와 비판과 정죄와 미움으로 인한 갈등이 회오리바람처럼 불어치는 현상을 본다. 네가 있기에 내가 있음이 아니라 네가 없어져야 내가 존재하는 사악한 멸망의 영이 지배하는 어두움을 본다. 그래서 더욱 엎드림의 시간이 깊어진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요나의 삶을 통해서 교훈을 얻는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에는 다양한 상황을 겪게 된다. 순풍에 돛달고 노래하듯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말 죽도록 성실하게 살았음에도 억울하고 속 터질 일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정말 살고 싶은 마음이 없고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것이 삶의 혼돈이다. 여기저기 살맛이 나지 않는다고 탄식을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때, 요나처럼 하면 된다.
첫째는 기도해야 한다. 요나서를 보면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라는 놀라운 말씀이 있다. 물고기 뱃속, 요나는 이 상황을 스올의 뱃속이라고 고백했다. “스올”이란 말은 ‘죽음의 세계’, ‘무덤’, 지옥을 나타내는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종종 사용하는 말이 “지옥 같다”.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하는데 더 이상 처참할 수 없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이보다 더 극한 혼돈은 없다. 그런데 요나는 이러할 때 기도한 것이다. 기도는 혼돈에서 질서로 어둠에서 빛으로 전환시키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둘째는 성전을 바라보아야 한다. 4절의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라는 요나의 고백은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진정한 지혜의 메시지다. 그것은 진정한 회개의 자세다. 그것이 믿음의 회복, 소망의 회복, 사랑의 회복이다. 절박한 상황을 역전 시킬 수 있는 능력과 은혜는 성전을 바라볼 때 시작된다. 즉 여호와 앞에서 잠잠하게 된다. 그것이 진정한 겸손이다.
셋째는 하나님만 생각해야 한다. 언제 요나가 이런 고백을 했는가?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라고 했다. 요나의 영혼이 얼마나 피곤했던가?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모두가 어둠으로 휩싸인 상태, 그 상황이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다고 표현을 했고 땅이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빗장으로 막은 듯하다 했으니 우리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 상황이다. 이럴 때 인간적인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회복의 지름길이다.
넷째는 감사해야 한다. 요나가 언제 감사의 고백을 했는가? 카오스 현상, 곧 혼돈과 극한 고난의 자리, 곧 스올의 뱃속 같은 상황에서 감사를 한 것이다. 그렇다 은혜를 모르면 감사가 없다. 비록 물고기 뱃속, 스올의 상황이지만 거기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기를 발견하고 자기의 행위를 돌아보고 회개했다. 회개가 되니 주의 성전을 바라볼 수 있었고, 주의 성전을 바라보니 하나님만 생각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생각하니 하나님의 은혜가 깨달아졌고, 은혜를 깨달으니 감사가 저절로 나왔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요나는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그래서 이 요나 사건이 예수님의 부활사건의 예표라고 주님이 직접 말씀 하셨다. 우리말로 바꾸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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