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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칼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2019/03/14 10:0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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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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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이 시작되었다. 주님 고난의 절정인 수난주간에 이르는 동안 우리는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주님의 이 고난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지내기를 바람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을 돌아보면 주님이 고난 받으시던 당시의 군중들과 나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진정 사순절의 묵상이란 무엇인가?
예루살렘 성에 마지막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를 외치던 군중들이 불과 닷새 후에는 “저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외쳐댔다. 3년 동안이나 함께 지냈던 베드로는 자기 생명이 위태로울 때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맹세하며 저주까지 했다. 사랑 받던 가룟 유다는 은 30에 예수님을 팔아 버리고 말았다. 예수님의 수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개처럼 질질 끌려 가야바의 뜰과 빌라도의 뜰로 가서 심문을 받으셨다. 채찍을 맞으시고, 침 뱉음을 당하시며, 뺨을 얻어맞으셨다. 온몸은 멍이 들고 살은 터졌으며, 예리한 납덩이에 찍혀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피로 얼룩진 몸에 입으신 수의, 그 위에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를 오르셨다. 이리 비틀 저리 비틀거리시면서. 그러다 넘어지면 사정없이 내리치는 군병의 채찍에 고난을 당하셨다. 그렇게 오르신 골고다 언덕에서 매고 오신 십자가 형틀에 눕혀졌고 양손과 발에 못이 박혔다. 그래서 목마르셨으며, 이마는 가시관에 짓눌려 피가 흘렀다. 창에 찔린 옆구리에서는 마지막 물 한 방울, 피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쏟아졌다. 그 참혹한 고통 속에서 운명하시면서도 마지막 기도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신 주님은 디베랴 바닷가에 고기 잡으러 나온 실의에 찬 모습의 시몬을 만나 말씀하셨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여기 ‘사랑’이라는 단어를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질문하셨던 ‘사랑’은 ‘아가페(άγάπη)’다. 그러나 베드로의 대답 속 ‘사랑’은 ‘필레오(φιλέω)’였다. ‘아가페’는 ‘하나님의 사랑, 신적인 사랑, 숭고하고 헌신적인 사랑, 완전히 이타적인 사랑’을 뜻한다. 그러나 ‘필레오’는 ‘인간적인 사랑, 조건적인 사랑, 친근하고 우정에 가까운 사랑’을 뜻한다. 그렇게 주님은 아가페로, 베드로는 필레오로 사랑을 말하였다. 그리고 17절에서는 예수님도 ‘필레오’를 사용하셨다. 물론 베드로는 계속 ‘필레오’로 대답을 하였다.
Living Bible에서는 “Simon, Son of John, are you even my friend?”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진정 나의 친구냐?⌟로 번역하고 있는 것을 참고하면 예수님도 베드로의 진실성과 주님에 대한 그의 사랑을 수용하겠다는 마음의 표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주님과 베드로의 디베랴 바닷가에서의 이 대화가 오늘 우리의, 나와 주님과의 대화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눈시울이 젖는다. 나를 위하여 고난 받으신 주님께서 나를 그렇게 사랑하신다는 사실에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감격을 주체할 수 없다. 저절로 책상 앞에 무릎이 끓어지며 쏟아지는 눈물에 기도가 터져 나왔다. “주님! 날 위하여 고난 받으신 주님! 정말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면서 유다처럼 시므이처럼 고라, 발람, 데마처럼 자기의 소욕을 이루기 위해 주님을 더 사랑하지 못했던 그들의 슬픈 자리에 내가 서지 않기를 하염없이 울면서 기도했다.
그렇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모든 것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느냐?’라는 것이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질문하신 내용이 바로 이것이다. 주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베드로는 가야바의 뜰까지 예수님을 따라 갔다. 그러나 “이 사람도 예수의 당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덜컥 겁이 났고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맹세하며 저주한 것이다. 가룟 유다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문제는 유다는 주님을 사랑하되 돈보다 덜 사랑하였다는 것이다. 데마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았는가? 아니다. 데마는 주님보다 세상이 더 좋았기 때문에 세상으로 갔다.
주님을 사랑하는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도 이 질문에 “아니오!”라고 대답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주님을 나의 삶의 모든 것들 보다 더 사랑하느냐이다. 내 체면, 내 명예, 내 직장, 내 사업보다 더 사랑하느냐? 그것이다. 이 물음 앞에서 “그 모든 것 보다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요셉처럼, 다윗처럼, 바울처럼 살아갈 수 있으리라.
나는 목회를 하면서 많은 것을 경험했다. 생명이라도 내어줄 것처럼 사랑한다고 하던 사람들, 세례를 베풀고 주례를 하고 성직의 기름부음을 베풀며 가슴 열어 진실로 사랑한 사람들, 그들이 아파할 때 기도실에 엎드려 마루바닥을 적시며 간구했고, 그들이 어려울 때 내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일으켜 세워주었다. 건너지 못할 시내 앞에 섰을 때 돌다리가 되어 건너도록 해 주었고, 그들의 아픔이 깊어 숨을 쉴 수 없을 때 나를 대신 아프게 하고 그들을 웃게 해 달라고 밤을 새워 기도했다. 그래서 그들은 늘 내 곁에서 사랑을 고백했었다. 그런데 내가 은퇴를 하자 그들은 마치 베드로와 유다처럼, 시므이와 고라, 데마처럼 한순간에 돌변하여 언어의 돌팔매질하고, 거짓의 채찍으로 내 삶을 후려쳤다. 위증과 모함으로 그간의 내 목회를 못질하고 자기의 소욕을 성취하려는 것들을 이루지 못하게 됨을 분내어 모해와 조작으로 나를 빌라도의 법정에 세웠다. 입에 담을 수 없는 수욕으로 내 가정을 난도질해 댔다. 그 격한 고통에 숨을 쉴 수 없어 헉헉거리면서도 골고다를 오르신 주님을 묵상했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십자가 사랑의 절정을 묵상하며 오늘도 그들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면서 주님 가신 길을 걷는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신 “네가 나를 이 모든 것보다 더 사랑 하느냐?”는 질문에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십니다.”라는 대답이 나의 고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너무 아프다. 그러나 여전히 사랑하면서 함께 동행하는 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사순절의 묵상이 깊어간다. 얼마나 주님은 아프셨을까... 부활의 아침은 반드시 온다. 반드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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